보수주의

1. 정치/사회적 보수주의
1.1. 자본가일수록 보수적이다?
1.2. 대한민국의 보수
1.3. 보수주의의 종류
2. 일상에서의 모습
2.1. 심리적 보수주의
3. 회계 용어
4. 학술 용어

1. 정치/사회적 보수주의

保守主義 / conservatism

현 상황의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변화 또는 보존/유지를 선호하는 사상이다. 어떤 변화도 인정하지 않고 가만히 있겠다는 건 아니고(이런 경우가 수구꼴통이나 반동주의이다.)과도기를 오래 두면서 천천히, 신중히, 그러나 완벽무결하게 바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바꾸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을 지켜내자는 사상이다.[1]

따라서 기존현상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변화를 추구하는 진보주의(進歩主義)에 대립되는 개념이며, 종교, 문화, 민족적 가치관 등 현 체제 또는 가치관을 가능한 보존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 이념 및 태도를 말한다. 이는 특정 시점부터 현재까지를 기준으로 하였을 때 현재 체제가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냐에 따라서 현 체제와 상생을 도모하려고 하면 보수주의, 부정하려고 하면 진보주의가 되는, 사실 사상이라 칭하기에는 그 강령이 고정되지 않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집단은 과거에는 진보로 불렸지만 지금은 보수로 불려야 한다.

하지만 보수주의가 반드시 안정적이거나 점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념을 위해서는 급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치이론가 코리 로빈에 의하면 "보수주의는 바로 사람들이 상급자들(혹은 상위 개념)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 특히 사적 영역에서 자유를 얻는 것에 대한 반대이다." 이것은 단순히 자신의 지위와 특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체제에서 반드시 자신이 이익을 얻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일련의 '반혁명적'인 운동, '반동적'인 정신이 곧 보수주의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진보주의의 격렬한 급진성에 대한 경계와 의심, 비판이 바로 보수주의이다. 보수주의는 진보주의의 급격한 준동을 막기 위해 필요하며, 진보도 보수와 반발하며 서로 큰 영향을 받는다.

보수주의는 역사적 보수주의와 심리적 보수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일컫는 보수주의는 역사적 보수주의, 즉 사상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의미를 지닌 정치사상의 한 조류를 말한다.

초기 보수주의는 18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정치철학자였던 에드먼드 버크에 의해 프랑스혁명 이듬해인 1790년 내놓은 저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사상적 조류로써 이론적 기초를 갖추게 되었다. 그는 프랑스혁명의 여파가 영국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면서 당시 급격하고 과격했던 프랑스혁명 이후 급진적이며 급격한 사회변혁보다는 검증된 과거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점진적으로 조금씩 사회를 개선해 나가자는 영국의 점진주의(개량주의)를 지지했다. 그리고 '보수주의'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정복고주의자였던 F. R. 샤토브리앙 자작[2]이 1818년 왕당주의운동 기관지 <보수주의자(Le Conservateur)>라는 간행물을 발간하면서 1830년 7월혁명으로 부르봉왕가가 몰락하기 전까지 민주주의의 확산을 막고 왕정복고의 정당성을 옹호하던 왕당파의 정치적 입장 또는 이념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근대 보수주의로서의 이념은 영국, 독일 등의 유럽국가들은 물론 미국에까지 확산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시민계급의 진보주의와 대립한 귀족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한 근대 보수주의와는 달리, 19세기 후반부터는 사회주의에 바탕을 둔 노동자계급의 진보주의에 대해 시민계급의 자본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현대적 보수주의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역사적 보수주의로,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급진적 사고방식에 대하여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속에서 발전을 꾀하는 것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보수 진영 안에서도 서로 반목하는 부류가 많기에 "그냥 옛날 꺼고 낡았음" 식으로 판단해선 안된다. 진보주의가 절대선도 완연한 파멸도 아닌 것처럼 보수주의도 전부 답답한 꼴통 마냥 행동하진 않는다. 서로 틀리고 나만 옳다진영논리는 펼치지 말자.

1.1. 자본가일수록 보수적이다?

경제력이나 권력에 따라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보통 부유한 계층일수록, 그리고 부강한 국가일수록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성향이 강해 보수적이기 쉬워 보일수 있다. 이는 좌/우파 분류법과는 또 다른데, 간단히 말해 좌파든 우파든 일단 기득권에 올라서 있다면 당연히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므로 자연히 보수화하기 쉽다. 이렇게 말해보면 그럴듯 해 보이지만, 실상은 사상이 부패해가는 것.[3]

다만 부유층이라고 전부 보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현대까지 혁명에 투신했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당신의 정치적 배경이나 시대상황을 파악할수 있는 시야를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 였는데, 이러려면 아무래도 당장 먹고사는게 어렵지 않고, 잘 교육받은 쁘띠부르주아지 계층이 아무래도 혁명의 선두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4] 동시에 티파티나치, 네오나치의 경우 사회 하층민이 쇼비니즘이라고 불리는 보수적 태도를 띄는 경우도 심각하게 많다. 오히려 이쪽이 더 심하다.

오히려 혁명을 반대하는 보수주의는 사회 하층민들의 경우에서도 보기 쉽다. 보수주의 하층민들은 "변화가 동반되는 경우 현 상태에서 누리고(?)있는 코딱지만한 혜택마저 박탈 될 것을 두려워 해" 보수화 된다고 보는 것이다. 상류층이 보기에는 그런 작은 혜택에 집착하는 것은 우스워 보일 수 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하층민에게는 당장 생존의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오바마케어에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것은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의 혜택을 누리고 있던 빈곤층과 노령층이었다. 당시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가 시행되는 경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 반영되는 예산이 갂여 혜택이 줄어든다."고 오바마케어를 공격했으며 여기에 동조한 것이 바로 미국 사회의 빈민층과 고령층이었다. 그 밖에도 변화 그 자체를 받아들일 정신적 여력이나 변화에 대해 정보를 획득할 수단 역시 부족하다는 점 또한 문제가 된다.

이와는 반대로 낮은 교육수준과 정보부재로 인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는 저학력 빈곤층이나 고연령층과는 달리 쁘띠부르주아 계층은 충분한 교육수준과 더불어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는 여력도 많다보니 변화가 일어나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을 가지지 않는다. "까놓고 말해서" 변화를 통해 더 많은 이익을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명심하고 있어야 할 점은, 보수주의는 절대악 혹은 절대선이 아니다. 물론 이는 진보주의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여담으로 보수주의를 나타내는 색은 대체로 파란색으로 영국 토리파 시절부터 유래한 것이다. 종종 역사상에서 프랑스나 러시아등의 왕당파가 하얀색 깃발을 쓰기도 하는데[5] 20세기 이후에는 파란색을 보수주의에서 자주 쓴다.# 그래서인지 종종 민족주의자들도 파란색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간혹 갈색을 쓰는 경우도 있다.

1.2. 대한민국의 보수

대개는 해당 사회의 현 체제를 옹호하는 마당이므로 한국에서는 대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옹호한다. 다만 서구권과 문화가 크게 다르므로 개발독재식 발전[6]을 선호하던 경향도 있다. 전경련 회장을 지냈던 좌승희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자유로운 경쟁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경쟁력 있는 기업을 국가 주도로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7]

사회적인 측면을 따지면 전통적 사회상을 선호하는 편. 예를 들면 고정된 성 역할의 구별이나 이성애규범성, 유성애규범성 등. 그렇기 때문에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와 결합하기 쉬우며 국가 전체의 안보와 질서를 중요시하는 측면이 있다. 불교, 기독교 등 종교와 결합하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 민족주의를 가진 우파나 보수주의자들이 없는 건 아니나, 정치세력인 거대 양당 보수정당, 민주당 기준으로, 보수세력은 민족주의를 좀 멀리하고 국가주의를 선호하며, 오히려 민주당이 민족주의에 더 가까운 형태다.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한 진영에 있지 않은 예이기도 하다.

특이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타 국가와는 다르게 북한에 대한 관점, 안보관이 척도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전쟁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북한의 대남도발에 대해 북한의 적극적인 태도 변화를 요구한다. 경제력과 국방력 등이 북한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에 선 지가 오래되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가 아닌 북한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전쟁시 북한에 대한 억제력과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미국과의 공조를 중시하며 물론 진보주의라고 해서 미국과의 공조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반보수 측에서는 북의 만행은 용납될 수 없지만, 현실적인 이유[8]로 북에 대해 상대적으로 유화적인 면이 있다.

양안관계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인다. 다만 여기서는 입장이 반전된 모습이다. 범람연맹이 현실적인 이유로 본토와의 대화를 중요시 하지만, 범록연맹은 독립을 추구한다.

1.3. 보수주의의 종류

보수주의도 진보주의와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통해 꽤나 다양한 분파가 성립되어 있다.

2. 일상에서의 모습

가끔 꼰대의 이미지와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9] 보수주의자들이 속칭 꼰대가 되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모든 보수주의가 그런 건 아니다. 사실 보수/진보 관계없이 의외로 꼰대는 흔하다. 또한 하단의 특징들은 사실상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우므로 모든 보수주의자들이 이러한 특징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부여된 권위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인다. 예로 들어서 선거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공직자나 법에 근거하여 합법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국가 공무원에게 협조적이며 법을 존중하고 자발적으로 따르는 자세를 보인다. 다만 부정의하고 합법적이지 않는 법이나 권력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자는 거부하거나 저항한다.[10]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헌법과 하위 법률에 부합하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권력에 대해서만 복종하며 오히려 정당하고 합법적이지 않은 권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 질서서열을 중시하기에, 배경이나 결과에 따른 차등 대우를 당연하게 여기며 이를 지키지 않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강경하게 비난하고 법에 따라 처벌하려는 의지가 강하다.[11] 또한 상기한 대로 배경이나 결과에 따른 차등 대우를 당연하게 여기기에, 대체적으로 차별을 긍정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 개선을 경시한다.[12] 그래서 선민의식과 결합되기 쉽다. 때문에 모든 종류의 차별을 반대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 개선을 매우 중시하는 진보주의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 관행이나 전통을 중시하며, 선례가 없는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서도 선례가 있는 행위만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그 경우에는 선례 없는 행위를 용인할 수 있다.
  •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체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하며,[13] 안정적인 삶을 중시한다. 여기서 보수주의(保守主義)라는 말이 나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진보주의에 비해 관용성이 떨어진다.[14][15]
  • 권리에 따르는 의무책임의 수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16]
  • 법이나 규정으로 정해져있는 도덕윤리는 중시하지만,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는 도덕적·윤리적 감수성(예를 들어 인권 감수성이나 젠더 감수성 등)은 경시한다.[17]

2.1. 심리적 보수주의

한편, 심리적 보수주의는 이제까지 생활해 오던 습관처럼 익숙한 것을 선호하고 새로운 사회환경 변화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을 가지게 되어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인간의 심리적ㆍ감정적 태도 또는 성향(性向)을 말한다. 인간은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適應)하거나 조정(調整)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폐쇄 또는 개방적 교육에 따른 특정 환경이나 연령에 따라 보수적 성향의 강도에는 차이를 보인다. 특히 연장자일 수록 보수적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회계 용어

회계에서 둘 이상의 선택가능한 방법이 있는 경우 재무구조의 건실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처리하는 관습을 칭하는 말이다. 기본은 이익을 적게 계상하고 손실은 많이 계상하는 것이다. 가장 흔한 방법은 감가상각을 통한 것. 예를들어 100의 설비가 있고 그걸 5년동안 20씩 나누어서 감가상각해도 되는데 일부러 100중 90을 설비를 도입한 첫해에 감가상각해버리는 식이다. 이런식으로 하면 각종 투자나 연구개발비 증액시 회계상의 이익이 쫙쫙 빠져나가버린다. 좀더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선생님께 손바닥을 10대 맞는데 2대씩 맞는 것이랑 10대를 한큐에 맞는 것(이쪽이 보수주의)의 차이다.

이런 방법을 쓰는 이유는 회사에 위기의 쓰나미가 몰아친 경우에 보수주의적인 회계관습을 고수한 기업쪽이 그렇지 아니한 기업보다 쉽게 회계상의 비용을 줄여서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려울테니 위의 손바닥 10대 맞기로 돌아가보자. 2대씩 맞기로 한 아이가 처음 2대를 맞고나서 보수주의적인 아이가 10대를 한큐에 맞았다. 2대씩 나누어 맞기로 한 아이는 낄낄 웃으며 보수주의적인 아이를 비웃었는데, 보수주의적인 아이가 화나서 둘이 싸우다 공교롭게도 둘다 손가락이 부러진 것이다.현실성에 문제가 많지만 그러려니 하자 그러나 선생님은 자비가 없으셔서 손가락이 부러진 아이를 또다시 불러 2대를 때리고… 또 때리고… 또 때리고… 후새드… 그걸 보수주의적으로 10대를 한큐에 맞은 아이가 손에 깁스를 하고 웃으며 보았다. 정도의 차이가 되겠다.

매우 희귀한 예지만 감가상각을 감안한 설비 등의 가격이 원래 구입 가격보다 높아진 경우에도 이 보수주의가 적용되어, 설비의 장부 가격은 원래 구입가격보다 높게 기록될 수 없게 된다. 쉬운 예시로 어느 회사에서 AE86자동차 한 대를 회사용으로 1,000만원에 구입했는데, 구입 직후 이 차종이 단종되고 매니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감가상각된 중고차조차 2,000만원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하지만 이 중고차의 시장 시세가 5,000만원이 되건 1억원이 되건 그 자동차의 장부 가격은 원래 구입한 가격인 1,000만원 이상으로 기록할 수 없다.

이렇듯 보수주의 회계관습을 적용하면 위기에 강해지기 때문에 오랜시간 사업을 계속해온 견실한 기업들은 경험적으로라도 보수주의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비용이 커지기 때문에 자연히 이윤이 줄어 법인세 등 세금 차감에도 도움이 된다. 반면 신생기업들은 어떻게든 비용을 작게 계산해서 투자자들에게 이윤을 자랑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신생기업들은 보통 경제가 조금만 나빠지면 적자를 못이기고 나가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론, 회계상에서 규정한 규칙까지 무시하며 소득을 적게 적으면 분식회계가 된다. 적은 소득으로의 분식회계는 세금포탈에 이용된다.

4. 학술 용어

학계, 특히 과학계에서 불필요한 설레발(?)을 피하기 위해서 매사 새로운 발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 동료평가재현성 등과 함께 과학 공동체가 기본적으로 탑재하고 있는 지적 진실성(intellectual integrity) 유지의 수단 중 하나다. 통계 용어로는 1종 오류의 가능성을 낮추는 조건을 만드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학계에서는 "가능한 한 보수적으로 접근하자면...", "보수적인 방향에서 연구를 설계하여...", "아무리 보수적으로 해석하더라도 최소한..." 같은 식의 표현으로 논문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곤 한다. 보수주의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애매한 개념인 게 사실.

학자들은 꾸준히 새로운 발견을 함으로써 연구실적을 올리고 학계에서 자신의 명망이 높아지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기대하는 방식으로 결과가 나오기를 원하고, 그 때문에 가능한 한 자신의 가설에 호의적인 환경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싶어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가급적이면 자신의 연구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도출하기 쉬운 환경을 원한다. 여기서 학계의 건전한 보수주의는 이러한 노력을 좌절시키고 도리어 학자로 하여금 자신의 가설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게 한다. 만일 이렇게까지 하더라도 여전히 의미 있는 데이터가 나오게 된다면, 그것은 꽤 믿을 만한 연구 결과라고 생각해도 위험하진 않을 것이다. 설령 결과가 얻어진다 하더라도, 여전히 보수주의에 입각해 그것을 해석할 경우 과도한 일반화를 제약한다거나, 대안적 설명(alternative explanation)을 제시한다거나 하면서 그것이 갖는 의미를 애써 축소하게 된다. 학자 자신이 자기 주장의 최대의 적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모든 도전에 맞서 승리한 연구만이 동료 학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칭송을 받을 수 있다.

연구설계 과정에서의 예를 들어 보자. 연구가설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세우고자 한다면, 프로그램이 최대한 효과가 없을 것 같은 상황을 의도적으로 설계하였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과연 이 악조건 속에서도 내 프로그램이 여전히 효과를 보일지를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설계는 일반적으로 가설의 제안자는 떠올리기를 꺼리지만 제3자들은 잘 제안할 수 있는 것들이다. 보수주의에 잘 입각한 연구는 향후 논쟁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후속연구의 숫자 역시 줄어들게 할 수 있다. 자기 가설에 우호적인 연구는 따로 악조건 속에서의 재현성 연구를 해 보아야 하지만, 먼저 악조건 속에서 해당 효과가 존재함을 입증해 보인 연구는 더 우호적인 환경에서 효과 크기가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사가 항상 이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조직 내 인사관리 맥락의 예를 들어 보자. 어떤 학자가 "자신의 권력이 강하다고 느끼는 상사일수록 부하 직원들 앞에서 자신의 업무상의 잘못을 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 주장한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업무상의 잘못을 대체 무엇으로 조작적으로 정의할 것인가이다. 연구자는 그것을 "일상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정당화하기 쉬운 사소한 실수" 로 정의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큰 사고를 쳤을 경우에는 큰 처벌이 뒤따르므로 개인은 가능한 한 책임을 회피하고 싶어하기에, 사소한 실수일수록 선선히 잘못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자는 반대로, 큰 사고의 경우 정당화가 어렵고 변명하기가 힘들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히려 사소한 실수로 정의해서 연구할수록 원하는 데이터가 나오지 않을 거라고 우려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보수적인 접근인가, 어떻게 해야 내가 기대하는 데이터의 패턴이 더 흐릿해질 것인가" 를 판단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다.

연구결과를 해석하는 단계에서 보수주의는 이론의 경계 조건(boundary condition)을 설정할 수 있다. 즉, 당초 연구가 상정한 환경보다 더 열악하고 적대적인 조건, 불확실하고 소음이 심한 조건에서는 적용되지 않도록 일반화에 있어 제약을 둔다. 또한 그 연구의 시사점에 있어서도 거창한 의미부여를 피하고자 하며, 확실하게 알려진 것만을 명료하게 전달할 뿐 연구자 개인의 과도한 뇌피셜(?)은 가급적 배제한다.

이러한 전반적인 건전한 의심의 과정을 통해, 학자들은 자신이 충분히 높은 허들을 넘어서 새로운 발견을 했음을 알리게 된다. 온갖 설레발과 허세와 확대해석을 전부 제거하고도 자신의 연구는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 본인부터가 스스로의 발견에 대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자 했으며, 그것이 옳을 거라고 무작정 믿기보다는 자신이 잘못 생각하지는 않았을지에 대해 두 번씩 세 번씩 고민해 보았다고 어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학계는 자신들이 세기의 발견을 했다고 떠벌리는 허세꾼들과 쉬운 연구만을 찾는 지적 게으름뱅이들 속에 파묻혀서 매우 힘든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할 것이다.


  1. [1] 예를 들어서 전통, 헌법, 도덕, 사회, 국민으로서의 의무 및 권리 등이 지켜야 할 것에 속한다.
  2. [2] 원래는 루소의 영향을 받은 무신론자였으나 프랑스 혁명에 환멸을 느껴 왕정복고주의자 겸 골수 천주교도가 되었으며,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정수(Génie du christianisme)》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쇠고기 중 가장 비싼 부위로 통하는 샤토브리앙 스테이크가 바로 이 사람에서 유래한 것이다.
  3. [3] 연배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입장은 가난한데 보수적 정책을 옹호한다고 해서 딱히 괴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회든 사고를 치는게 아닌 이상 나이가 들면 직급이 올라가기 마련이고 그럼 이런저런 기득권을 형성하게 된다. 그럼, 그들이 공감대를 가지기 쉬운것은 어린 것들이 자신한테 도전하며 외치는 진보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처럼 이미 위에 올라서서 사회를 운용하고 있는 보수주의일 수도 있는 것이다.
  4. [4] 블라디미르 레닌이라던가, 마르크스라던가, 체 게바라라던가 시몬 볼리바르라던가.
  5. [5] 러시아 역사에서 볼셰비키파를 적군, 황제파를 백군으로 칭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6. [6] 정확히는 박정희 대통령 재직 시절었던 1970년대 경제정책을 선호한다. 친박이 생긴 것도 이런 측면이 크게 작용한다.
  7. [7]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진보층에서 인용되는 케인스의 사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발독재 시기의 한국은 사회주의적 경제정책과 미국식 자본주의가 섞인 혼합경제 체제였다.
  8. [8] 막장국가를 방관할 수 없다는 점, 전쟁이나 외세 개입으로 인해 북이 변화 (또는 망하면) 한반도 전체가 위태롭다는 점, 결정적으로 분단구도가 고착되면 사이좋게 말라죽는 것이 예상된다는 점.
  9. [9] 권위를 남용하며 물리적, 언어적 폭력으로 상대적 약자나 반대파를 괴롭힌다는 이미지.
  10. [10] 이 경우, 보수진보가 한 목소리로 부당한 법과 권력에 맞서는 풍경도 드물게 볼 수 있다.
  11. [11] Skitka(1992a; 1992b) 등의 주장에서 근거를 볼 수 있다.
  12. [12] 이는 상기한 것처럼 차등 대우를 중시하는 것과 관련된 행동이다.
  13. [13] 현실적으로는 점진적 변화조차 거부하는 수구주의자들 역시 보수주의자로 불린다.
  14. [14] 동성애자 등의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15. [15] 관용 개념을 오직 개방적이냐 배타적이냐의 문제로 파악할 경우, 보수주의자가 더 배타적 특성을 가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관용이란 '반대자에 대한 태도'에 관련한 개념인 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보다 더 관용적이라는 말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반대 주장도 가능하다. 역사가 진보한다는 관념에 다소 회의적인 보수주의자와 달리, 진보주의자는 인간이 계몽되기만 한다면 역사가 진보할 것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신념을 가진 자의 입장에서 반대자는 사악하거나 진리를 거부하는 멍청한 자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대체로 진보주의자 중에 선악의 이분법을 가지고 반대자를 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하버드 대학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하비 맨스필드(Harvey Masnfield)는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가 사라질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가 편견과 미신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계몽되기만 하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보수주의자가 더 관용적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SJW들이 득세하는 오늘날의 미국을 보면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볼 여지는 충분하다. 사회정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외치는 미국 좌파는 조금이라는 자신에 반대되는 의견을 나치즘, 파시즘, 인종차별자, 여혐, 호모포비아로 매도하며 입막음 시키는 반면, 우파가 역설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자신에 반대한다면 최소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하라는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전통적으로 보수주의 정치사상은 국지적인, 맥락적인, 상대적인 관점에서 사회를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에, 보편진리에 호소하는 경향이 있는 진보주의자보다 더 타 문화에 관용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진보주의자였던 존 스튜어트 밀은 보편적 계몽의 이름 하에 영국의 동인도 식민지 정책을 찬성했지만,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는 인도 통치가 그들 고유의 문화적 맥락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반대한 바 있다.
  16. [16] 어디까지나 진보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중시한다는 뜻이며 진보주의가 의무와 책임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17. [17] 보수주의자들이 중시하는 도덕과 윤리는 가족적 가치같은 법률이나 풍습 등을 통해 전해내려온 '전통적' 도덕과 윤리를 말하는 것이며 진보주의자들이 주로 주장하는 젠더 감수성이나 인권 감수성 등은 법이나 규정이 아닌 가변적인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좋게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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