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제전

KBS 교향악단 제 709회 정기연주회 마지막 레퍼토리로 연주된 실황(53:50부터).[1]

1. 개요
2. 역사
2.1. 공연 준비
2.2. 초연
2.3. 공연 이후
3. 곡의 형태
4. 악기 편성
5. 연주
6. 그 외

1. 개요

악마와도 같은 봄의 제전을 누가 만들었는가. 도대체 누구에게 이따위 것을 쓸 권리가 있단 말인가. 무력한 우리들의 귀를 거역하고 소음을 마구 내던질 권리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더욱이 이것을 봄의 제전이라 하다니! 봄이란 무릇 기쁨으로 날개치고, 새들이 상쾌하게 재잘거리는 계절이 아닌가. ‘봄의 제전’을 쓴 인간은 (만약 나의 바람이 그른 것이 아니라면) 마땅히 교수형에 처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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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보스턴 공연 이후 보스턴 헤럴드 지에 실린 풍자시

프랑스어: Le Sacre du printemps(원제)

러시아어: Весна священная

영어: The Rite of Spring

러시아 출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1913년에 발표한 발레곡. 러시아의 원시적인 종교 제전을 배경으로 한, 복잡하고 치밀하게 구성된 리듬과 원시주의인 선율이 특징인 곡이다. 그 당시로서는 물론이고 현재의 기준으로도 대단히 전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곡. 너무나 앞서간 나머지 내용, 의상, 안무, 음악 모든 면에서 당시 사람들의 상식을 뒤집었다. 초연 때 청중들의 폭동에 가까운 격렬한 거부 반응으로 인해 유명세를 얻은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 물론 제목만 보면 비발디 '사계'의 '봄'이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봄의 소리' 같은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스트라빈스키의 3대 발레로 꼽히는 곡들 중에 전작들인 '불새(1910)'나 '페트로슈카(1911)'도 러시아 민화를 소재로 하고 러시아 전통음악 요소들을 자신의 전위적인 면모와 적절히 조합해 기존 음악에 길들여져 있었던 청중들의 귀에도 어느 정도 잘 받는 편이었으나, 이 작품은 좀 많이 달랐다.

말년에 출간된 자서전에 의하면 이미 '불새' 의 작곡을 마무리할 무렵에 창작 동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에서 매우 추상적인 형태의 원시 종교 제전[2]을 보았다. 스트라빈스키는 로에리치라는 작가에게 자기 꿈 이야기를 했다. 로에리치는 그전부터 원시시대 유적이나 유물에 관심이 많았는데, 꿈 이야기를 듣고는 스트라빈스키의 꿈과 자기가 직접 원시시대 유적을 보고 느낀 인상을 바탕으로 대본을 만들었다.

다만 실제 작곡에 들어간 시기는 '페트로슈카' 를 완성한 뒤에 가서였다. 전작인 두 발레와 마찬가지로 당시 스트라빈스키와 호흡을 맞추고 있던 발레단인 '발레 뤼스' 의 단장이자 흥행주인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도 창작과 초연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이 대본을 본 디아길레프가 스트라빈스키에게 이것을 발레음악으로 만들어보라고 권했고, 이에 영감을 받아 봄의 제전이 탄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원시시대로 퇴행했지만 그것을 담아내는 방식은 너무나 미래지향적이었다. 1913년, 즉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거대한 전쟁의 재앙이 불어닥치기 바로 직전에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독창적이고 혁명적인 작품이 쓰여진 것이다.

러시아에 살던 어린 시절, 스트라빈스키는 매년 봄마다 척박한 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자연의 거대하고 충만한 에너지, 너무 강렬해 때로는 폭력적이라는 느낌마저 드는 자연의 그 폭발적인 에너지에 깊은 감명을 받곤 했다고 한다. 꿈에서 원시부족이 산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본 후, 스트라빈스키는 죽은 땅에서 산 것들을 피워내는 자연의 에너지, 대지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 비문명의 근저에 깔린 날것 그대로의 에로티시즘 같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척박함을 딛고 일어서는 당시의 시대를 음악적으로 은유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2. 역사

2.1. 공연 준비

스트라빈스키는 꽤 구체적인 줄거리와 세부 사항을 미리 결정해놓은 모양이었는데, 원시적인 소재를 주로 그리고 있던 화가 니콜라스 뢰리히에게 무대와 의상 디자인을 맡기고 '페트로슈카' 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었던 희대의 발레리노 바슬라프 니진스키에게 안무를 맡겼다.

하지만 막상 스트라빈스키가 내민 악보를 받아든 니진스키는, 평소 해왔던 곡들보다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거절하려고 했다고 한다. 결국 비교적 규칙적인 박자와 템포에 맞춰 안무를 짜던 기존 방식을 버리고 거친 폭력과 성적인 요소를 더한 상당히 '날것의' 춤을 무용수들에게 요구했다.

곡이 어려워서 힘들어했던 것은 무용 쪽 뿐 아니라 연주를 담당하는 관현악 쪽도 마찬가지였는데, 섭외된 지휘자인 피에르 몽퇴는 평소에 한두 번 연습하고 공연에 임했던 발레나 오페라 반주 관현악 리허설의 관례를 깨고 열여섯 번의 강도높은 리허설을 행했다. 물론 이렇게 많은 연습량과 강도는 무용단이었던 발레 뤼스도 마찬가지였고, 적어도 초연 직전까지는 모든 준비가 차질없이 행해질 수 있었다.

2.2. 초연

영화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에서 묘사된 초연 모습

그렇게 해서 1913년 5월 29일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첫 상연이 행해졌는데, '불새' 나 '페트로슈카' 에서 보여준 스트라빈스키의 절충적인 면모를 기대한 청중들의 바람을 제대로 역행했다. 바순이 극단적으로 높은 음역에서 연주하는 솔로로 시작하는 서주 부분부터 청중석에서는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고[3], 이 가락을 코랑글레가 받고 갑자기 북이 '밤밤밤밤'하고 울릴 즈음에는 대놓고 욕설과 비난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무용과 음악에 충격받은 관객들이 극장 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것이다.

'봄의 태동: 젊은 여자들의 춤' 에서 현악기와 호른의 거친 8비트 리듬이 들려올 즈음에는 고함과 야유가 크게 터져나오다 못해 야유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야만적인 춤과 파괴적인 음악을 보고 관객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며 악을 쓰고 휘파람을 불면서 난리를 쳤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공연은 계속되었다. 그래도 곡을 옹호하는 몇몇 청중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시끄럽다고 짜증내는 청중들 사이의 멱살잡이와 주먹다짐까지 있었다(...).

숲 자체가 미쳐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당시 그 자리에서 공연을 보았던 시인 장 콕토.

무대 뒤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디아길레프는 조명 스탭에게 청중들의 혼란을 진정시키라며 조명을 깜빡깜빡거리라고 했는데, 오히려 청중들의 흥분만 더 돋굴 뿐이었다.

이런 아수라장 속에서도 몽퇴는 입을 꼭 다물고 태연히 계속 지휘봉을 휘둘렀고, 악단도 청중석의 혼란을 완벽히 무시하고 공연을 진행했다. 스트라빈스키조차도 지휘자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끝까지 지휘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할 정도였는데, 진작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낀 디아길레프가 어떤 일이 있어도 개의치 말고 지휘를 계속하라고 사전에 이미 언질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는[4]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가, 사람들의 난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중간에 슬그머니 공연장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혼란을 무시하고 공연을 강행한 것은 무용단도 마찬가지. 사람들의 악다구니가 커지면서 무용수들에게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경이 되자 니진스키는 할 수 없이 무대 뒤에서 무용수들에게 러시아어로 '하나, 둘, 셋, 넷' 소리를 지르며 박자를 쳐주었다.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난장판 속에서 발레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상황이 거의 폭동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판단한 극장 관계자들은 경찰을 불렀는데, 경찰들도 1막이 끝나고 나서야 극장에 출동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리둥절하게 있었다고 한다. 2막에서도 소동은 진정되기는커녕 더 커졌고, 디아길레프가 공연을 끝까지 하게 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관객들의 난동은 멈추지 않았다.

어찌됐건 첫 공연은 소란과 별도로 중단은 없이 마무리되었는데, 관객들의 이런 소동은 디아길레프가 내심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그는 스트라빈스키와 니진스키에게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개판 5분 전 소동 때문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봄의 제전'이라는 작품이 확실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파리의 신문 방송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봄의 제전 이야기가 대서특필되었다.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격렬하게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카미유 생상스 같은 고명한 원로 작곡가들도 스트라빈스키가 음악 공부를 다시 해야 할 것이라고 대놓고 질타했고[5], 후속 공연 일정을 취소하라는 협박조의 투서가 날아들기도 했다.

하지만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주요 스탭들은 전혀 꿈쩍이지 않고 예정된 나머지 5일 동안의 공연을 속행했다. 청중들도 첫날과 달리 큰 소요 없이 관람했는데, 첫 공연에서 벌어진 대소동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관객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계속 엇갈린 비평이 쏟아져 나왔고, 그 뒤로 유럽 각지와 미국에서 연주되었을 때도 한동안은 계속 찬사와 비난이 엇갈렸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논란이 흥행에 일조하기도 했다.

2.3. 공연 이후

하지만 이 작품과 관련된 논란은 점차 이 작품의 작품성을 긍정하는 쪽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극한의 리듬감과 분절적이고 타악기적인 음향, 기존의 화성체계를 완전히 무시하는 귀를 찢을 듯한 불협화음 등의 작곡수법은 초연에서는 음악을 모독했다며 크게 비난을 받았지만[6] 어느 시점부터는 새로운 음악적 경향을 개척했다는 찬사를 받기 시작했으며 점차 다른 작곡가들도 이런 수법들을 차용하기 시작하였다.

1차대전 이후부터는 봄의 제전보다 더 충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관계로 결국 이 작품은 연착륙(?)에 성공했으며 현재에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가운데 최고의 걸작중 하나이자 20세기의 음악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컸던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도 이 음악을 바탕으로 한 발레공연이 자주 이루어지고 있으며 쇼스타코비치, 바르톡 등 20세기의 많은 대작곡가들이 이 작품을 참고했다는 것은 이 작품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7]

다만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거나 없는 이들에게 이 곡을 들려주면 아직도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무용 쪽에서도 정통 발레를 주로 공연하는 발레단 보다는 여러 실험적인 동작이나 연기, 무대 디자인으로 전위적인 면모를 추구하는 모던 댄스 그룹에서 더 자주 이 음악을 활용하는 편이다.

클래식 애호가도 전문 무용수도 아닌 뒷골목의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춤을 추게 해 현대무용 공연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으며, 2003년사이먼 래틀 지휘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안무가 로이스턴 말둠이 이 방법으로 야외 공연을 해서 큰 호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레퍼토리를 매년 바꿔가며 계속 진행하고 있다.[8]

스트라빈스키의 음악 외에도 니진스키가 보여준 안무를 복원하는 움직임도 1980년대 후반 들어 진행되고 있는데, 다만 공연 당시의 사진이나 무용단 소속 생존 무용수들의 증언 등의 단편적인 자료로만 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안무가 개개인의 재해석이나 보완이 곁들여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는 곡의 전위성에 안무가의 현대적인 재해석을 한껏 끌어올려 무용수가 변기통을 붙잡고 구토를 하는 등의(...) 행위예술에 가까운 안무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3. 곡의 형태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며, 그 때까지의 스트라빈스키 발레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표제는 프랑스어로 기입되어 있다.

1부: 대지에 대한 찬양 (Première Partie: L'adoration de la Terre): 초록의 풀과 나무, 꽃으로 뒤덮인 대지에서 환희에 찬 젊은 남녀들이 춤을 추며 행복한 미래를 기원한다.

서주 (Introduction)

봄의 태동: 젊은 여자들의 춤 (Les Augures Printaniers: Danses des Adolescentes)

유괴 의식 (Jeu du Rapt)

봄의 윤무 (Rondes Printanières)

적대하는 두 부족의 의식 (Jeux des Cités Rivales)

현자의 행렬 (Cortège du Sage)

대지에 대한 찬양 (Adoration de la Terre)

대지의 춤 (Danse de la Terre)

2부: 희생제 (Seconde Partie: Le Sacrifice): 젊은 남녀들이 신비로운 모임을 열고 여기서 봄을 맞기 위해 한 처녀를 희생시키는 의식을 시작한다.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를 한 사람 뽑은 다음 젊은 남녀들이 그 주위를 돌며 봄의 영광을 찬송하는 춤을 춘다. 신에게 바쳐질 제물로 선택된 처녀가 희생의 춤을 춘 후 숨을 거두고, 남자들이 그녀의 시체를 들고 나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서주 (Introduction)

젊은 여자들의 신비한 모임 (Cercles Mystérieux des Adolescentes)

선택받은 여자에 대한 찬미 (Glorification de l'Élue)

조상에 대한 초혼 (Evocation des Ancêtres)

조상에 대한 의식 (Action Rituelle des Ancêtres)

신성한 춤 (Danse Sacrale)

물론 이 발레도 '러시아적인' 것에 대한 배려를 게을리하지 않고는 있지만, 매우 추상적이고 몽환적이며 때로는 폭력적인 줄거리와 거기에 걸맞는 음악적인 파격이 더해져 있다.

저마다 다른 리듬형이나 조성이 복잡하게 얽히는 복리듬(Polyrhythm)이나 복조성(Polytonality), 단음정이나 증음정을 가까운 거리에서 겹치게 만들어 노골적인 부딪힘을 얻는 불협화음(Dissonance) 등이 전위적인 느낌을 조성하는 핵심적인 작곡 기법인데, 물론 이런 요소들이 스트라빈스키 시대에 갑자기 등장했다거나 스트라빈스키 자신이 만들어낸 독자적인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전체적으로는 조성감을 뚜렷하게 유지하면서 양념처럼 넣어 텐션 조절에 쓰였던 예전의 용법과 달리, 이 곡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이 오히려 주를 이루고 있어서 명확한 조성감도, 그렇다고 규칙적인 박절법이나 리듬을 찾아보기도 쉽지 않게 꾸며져 있다. 이 때문에 당대 안무가들은 여기에 안무를 어떻게 짜넣어야 하는지 미친듯이 고민해야 했다.

초연에서 안무를 맡은 전설적인 안무가 니진스키는 이제까지 내려온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새로운 움직임을 도입하는 충격적 시도를 했다.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어려웠는데, 몸의 각 부분을 따로따로 움직여야 했고, 동작도 매우 복잡했다. 무용수들은 오로지 봄의 제전만을 위해서 이제까지 자신들이 배웠던 발레 동작과 완전히 반대되는 새로운 동작을 익혀야 했다. 게다가 음악마저 복잡하고 어려우니 더욱 춤추기가 힘들었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대부분이 불평을 했다고 한다. 안 한 건 작곡가 스트라빈스키와 발레단장 디아길레프, 안무가 니진스키 정도.(...)

4. 악기 편성

관현악 편성도 기존 발레에 동원되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큰데, 다음과 같다;

목관: 피콜로, 플루트 3(3번 주자는 피콜로를 겸함), 알토플루트[9], 오보에4(4번 주자는 코랑글레를 겸함), 코랑글레, 피콜로클라리넷(D), 피콜로클라리넷(E플랫), 클라리넷(A)3(3번 주자는 베이스클라리넷을 겸함), 클라리넷(B플랫)3(3번 주자는 베이스클라리넷을 겸함), 베이스클라리넷2, 바순4(4번 주자는 콘트라바순을 겸함), 콘트라바순

금관: 호른8(7, 8번 주자는 테너 바그너 튜바를 겸함), 피콜로트럼펫(D), 트럼펫(C)4(4번 주자는 베이스트럼펫(E플랫)을 겸함), 트롬본2, 베이스 트롬본1, 베이스 튜바2

타악기: 팀파니5(연주자 2명), 큰북, 탐탐, 트라이앵글, 심벌즈, 앤틱 심벌즈, 탬버린, 기로

현악기: 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발레 음악 치고는 거의 바그너 오페라에나 쓰임직한 5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을 구사한 것도 중요한데, 단순히 크기만 크게 뿔린 것도 아니고 특수한 관악기들을 대거 투입하고 현악 파트도 기존의 5분할 이상으로 잘게 쪼개거나 비올라와 콘트라베이스 같이 당대에는 찬밥 신세였던 악기들을 독주 혹은 중주로 구사하는 등 의외로 섬세하고 정밀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워낙 편성이 큰 탓에, 초연 후 발레로 상연되기 보다는 무용을 생략하고 관현악 연주회의 레퍼토리로 공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연주 난이도도 당대의 어떠한 관현악 작품들 이상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처음에 지휘자가 악보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나누어주었을 때, 단원들은 이런 음악은 도저히 연주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지휘자의 설득으로 간신히 연습을 진행시킬 수 있었지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금관악기는 비명 소리를 내고, 플루트는 '푸드득' 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고, 클라리넷은 비명을 지르고, 튜바는 뱃고동처럼 거친 소리를 내야 하는 판이니.

특히 1부의 서주 첫머리에 나오는 바순의 고음역 솔로는 지금도 관현악단에서 바순 주자를 뽑을 때 꽤 자주 과제로 내놓을 정도[10]로 숙련된 기교를 요한다.

악기마다 다른 리듬 때문에 연주자들은 쩔쩔맸으며,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박자도 그들을 애먹게 했다. 규칙적인 박자는 커다란 빌딩의 철제 구조물과 같은 것으로 만약 이것이 없으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고 마는데, 봄의 제전에서 스트라빈스키가 한 일이 바로 이 골조를 없애는 일이었다. 이 작품의 리듬에는 예측가능한 반복 그런 거 없다. 위로 뛰어오르고, 도약하며, 딸꾹질을 하고, 발을 구른다. 그러니 초연 때 이런 음악을 처음 들은 관객들이 불안을 느낀 나머지 난리를 친 것도 그럴 만한 일이었다. 이 곡은 2박자와 3박자가 일정한 패턴 없이 마구잡이로 조합되어 있다. 규칙적인 박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갑자기 불안정한 우주공간으로 내던져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말로 건물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지휘자에게도 꽤 도전적인 레퍼토리인데, 현대음악 쪽에 특화된 지휘자의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기존 곡처럼 지휘자가 자기 재량으로 곡을 연주시켰다가는 곡의 색깔을 죄다 망쳐놓는 일이 다반사라서, 가능한한 악보의 지시에 충실하게 연주하는 것이 곡의 특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현대음악의 일반적인 성격을 미리 보여준 곡으로도 평가받는다.

여타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작품들처럼 초연 후인 1921년1943년 두 차례 개정한 판본을 내놓았는데, 각 판본들 사이에는 큰 차이점은 없고 세부적인 면을 주로 수정한 정도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1913년 초연판.[11] 이외에도 피아노 두 대를 위한 축약형 편곡판이 존재한다.

5. 연주

이 곡은 대부분의 현대음악이 그렇듯 누가 특기다 라고 할 만한 뚜렷한 비교는 아직 없다. 위에도 서술되었듯 클래식의 거장 카라얀마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정도로 까였을 정도니... 따라서 가장 악보에 충실하게, 또 주제에서 비롯되듯 얼마나 야생의 날것을 음악으로 잘 표현했냐가 이 곡의 가장 큰 키워드다.

스트라빈스키 본인이 1962년 콜롬비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끌고 직접 지휘한 녹음. 요즘 추세와 다르게 템포가 약간 느린 반면에 셈여림이 상당히 세밀하다.

인도의 지휘자 주빈 메타1969년 RAI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진행한 이탈리아 실황 녹음. 템포와 셈여림 모두 상당히 강렬하다.

봄의 제전 초연 100주년 기념으로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진행된 공연. 니진스키의 발레를 최대한 고증해 선보였다.

2015년 김대진이 예술의전당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진행한 실황 녹음. 맨 위의 KBS보다 음질이 양호한 편이지만 목관이 죽고 금관의 실수가 많다.

6. 그 외

  • 곡에 대한 여론이 긍정적인 쪽으로 돌아선 1940년대월트 디즈니가 클래식 음악과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킨다는 취지로 만든 환타지아에도 이 곡이 축약본[12] 형태로 들어갔다:다만 내용이 기존의 잔인한 인신공양 원시종교행사와는 거리가 멀고, 이성적이고 냉정한 과학으로 모든 시나리오를 만든 지구*생명과학 다큐멘터리가 되었다.(원시지구 탄생부터 공룡 멸망까지.)[13][14]
  • 초연 후 각지에서 이 곡이 연주되었을 때, 관현악단들은 여전히 너무 자주 바뀌는 박자 때문에 수도 없이 실수를 하고 있었다. 특히 보수적인 악단이었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연주에 어려움을 겪었다.결국 스트라빈스키가 정한 거의 모든 변박을 싸그리 무시하고 특정 박자를 기본박으로 잡아 아예 새로 악보를 만들어내 가까스로 공연을 성사시켰다.
  • 2차대전 후 클래식 음악계를 주무른 대가들 중 한 사람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이 곡만큼은 제대로 공연해내기 쉽지 않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1964년에 베를린 필을 이끌고 도이체 그라모폰에서 음반을 제작했지만, 스트라빈스키는 이 녹음을 들어보고는 '너무 세련되고 매끄러워 전체적으로 실패작' 이라고 얘기했다. 스트라빈스키 사후인 1977년에 다시 한 번 베를린 필과 재녹음을 했는데, 이 때도 평은 좋지 않았다. 독일 작곡가들의 관현악곡 + 이탈리아 오페라 + 차이코프스키에서 가장 빛나는 지휘를 보여 주고, 유려한 선율과 디테일(특히 현악기군)에 강점이 있는 카라얀과 이 곡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 젊은 작곡가들이 이 곡을 듣고 자기 작풍을 수정하는 사례도 꽤 많았다. 홋카이도 태생의 일본 작곡가 이후쿠베 아키라[15]도 이 곡의 레코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고, 아르헨티나 탱고의 유명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아스토르 피아졸라도 만년의 인터뷰에서 '작곡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 이 곡의 악보를 분석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고 술회했다. 한국의 가야금 작곡가인 황병기 명인도 처음 이 곡을 듣고 충격에 빠졌고, 그래서 매년 새해 첫날에 항상 꺼내듣는 곡이라고 밝히고 있다.
  • 보이저 2호에 탑재된 골든 레코드에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스트라빈스키 지휘, 1960년) 연주 버전 중 제2부 희생의 춤(Danse Sacrale) 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 MBC 뉴스데스크 (당시 뉴스의 현장) 시그널로 쓰였다.
  • 프랑스 파리의 현대미술관인 퐁피두 센터 옆에는 작곡가의 이름을 딴 '스트라빈스키 분수'가 있다. 프랑스 조각가 니키 드 생팔(1930~2002)과 스위스의 키네틱 아티스트 장 팅겔리(1925~1991)가 디자인한 것이다. 알록달록하고 재미있는 모양에 움직이기까지 하는데, 바로 이 '봄의 제전'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


  1. [1] 상임 지휘자인 요엘 레비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지고 도전하는 지휘자로 유명하다.
  2. [2] 원시부족의 사람들이 산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 봄의 신을 깨우기 위해 젊은 처녀를 잡아 죽음의 춤을 추게 하는 꿈이었다.
  3. [3] 평소에 듣던 바순 소리와 달리 매우 음역이 높아 관객들이 바순인 줄 몰랐다고 한다. '동물의 사육제'로 유명한 작곡가 생상스가 이 자리에 있었는데, 음악가인 그조차도 옆 사람에게 "저게 무슨 악기지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바순이라는 말을 듣고 그가 한 말은 "저게 바순이면 나는 개코원숭이(baboon)다."(...)
  4. [4]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할 때 무대로 뛰어나가기 좋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5. [5] 생상스는 드뷔시의 인상주의 음악조차도 맘에 안들어했을 정도로 보수적인 작곡 성향을 견지했던 인물이었으니, 봄의 제전을 보고 경악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드뷔시보다 더 쇼킹한 자가 있었을 줄이야... 베토벤입장에서 보면 생상스따위도 쇼킹했을것이분은 말할것도 없다.
  6. [6] 리듬의 규칙성은 20세기 이전의 청중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박자를 뼈대로 그 위에 멜로디와 화음을 얹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음악의 상식이었다.
  7. [7] 기본적인 음악성조차 갖춰지지 못했다면, 나온 지 백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공연되거나 비평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8. [8] 이 공연의 준비 과정과 공연 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Rhythm is it' 이 제작되었는데, 현대음악이나 현대무용 뿐 아니라 교육심리학 분야에서도 추천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영화로 손꼽힌다.
  9. [9] 알토플루트를 이른 시기에 관현악에 편성한 작곡가로는 이 사람모리스 라벨밖에 없다.
  10. [10] 초연 당시 처음부터 관객들이 얼굴을 찌푸렸다고 한다. 원래 바순은 낮은음자리표를 사용할 정도로 음역대가 낮다.
  11. [11] 쇼스타코비치 같은 후배 작곡가들의 경우, 스트라빈스키의 개정은 순전히 '출판사로부터 인세 뜯어먹으려고 한 생계형 개정에 불과하다' 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12. [12] 1부 서주-젊은 여자들의 춤-유괴 의식-2부 서주-젊은 여자들의 신비한 모임-선택받은 여자에 대한 찬미-조상에 대한 초혼-조상에 대한 의식-대지의 춤-1부 서주 첫 소절 순
  13. [13] 언뜻 보기에는 음악이 시끄러워서 브금 사용 목적으로 만든 것 같지만, '봄'을 생명 탄생의 기점으로 해석하고, 그런 의미에서 원시지구 탄생을 '봄'으로 본, 제목에 대한 제법 심오한 재해석이라고 한다.
  14. [14] 다만 (2부 곡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1부 8곡이 갑툭튀해 버린 뒤 희대의 바순 고음부가 재현되는(...)) 결말은 디즈니 측의 독자연구이다:운석이나 화산 등으로 공룡들이 멸망했다는 게 학계의 일반론인데, 여기서는 초식 공룡들이 초반에 풀을 너무 많이 먹어서 나중에 먹을 게 없어져서 아사한 뒤 운석이고 뭐고 생겼다는 식으로 처리되었다. 물론 그 당시 공룡연구가 그다지 진전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운석충돌설도 아예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시절이다!
  15. [15] 고지라 시리즈의 음악을 맡아 유명한 작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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