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구

  상위 문서: 부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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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시청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자치구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남구

북구

해운대구

사하구

금정구

강서구

연제구

수영구

사상구

자치군

기장군

밑줄은 구청 소재지.

사상구 법정동

법정동

삼락동

모라동

덕포동

괘법동

감전동

주례동

학장동

엄궁동

사상구청. 주소는 부산광역시 사상구 학감대로 242 (감전동 138-8).윗동네 구청하고의 갭이...

사상구
沙上區 / Sasang-gu

국가

대한민국

면적

36.06km2

광역시도

부산광역시

행정동

12개

법정동

8개

인구

226,845명
(2018년 4월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6,328.15명/km2

구청장

송숙희 (자유한국당)
재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구의회

자유한국당 6석

더불어민주당 6석

시의원

1

이상갑 (자유한국당)

2

오보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장제원 (자유한국당)
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홈페이지

http://www.sasang.go.kr/img/sasang/sub/s4_1_7_img01.jpg

사상구 심볼. 야따 신나네 야도 沙上!!!!!

http://www.sasang.go.kr/img/sasang/sub/s4_1_7_img05.jpg

신바람이는 사상구의 미래상인 ‘첨단문화도시'의 모습이자, 머리 위의 바람 개비를 이용하여

사상구 곳곳을 날아다니며 신바람을 일으키는 귀염둥이

  • 활용형

사상구 마스코트. 캐릭터 신바람이.

사상구 20주년 기념 사상구 찬가

2. 역사
3. 지리
4. 교통
4.1. 관내 철도 목록
5. 경제
6. 정치
7. 행정 구역
8. 관내 각급학교
8.1. 대학교
8.2. 고등학교
8.3. 중학교
8.4. 초등학교
8.5. 특수학교
9. 바깥 고리

1. 개관

부산광역시의 서부에 위치한 자치구.

1995년 3월 1일에 북구의 가운데 부분을 분리하여 모라동 남쪽 부분이 북구에서 독립하여 생겨난 곳이다. 따지고 보면 옛 동래군 사상면의 관할구역이 그대로 자치구로 승격한 셈이다.[1]

흔히 사하구, 강서구, 북구와 함께 낙동강 벨트의 한 축으로서 서부산권에 속하는 지역이며 북부산이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쓰이는 명칭은 아니지만 북구를 가리킨다.

2. 역사

조선시대에는 경상도 동래군 사천면의 영역에 해당한다.

  • 1914년 4월 1일 : 경상남도 동래군 사천면이 남북으로 분할되어 북쪽지역을 사상면으로 설치.
  • 1963년 1월 1일 : 사상면이 부산직할시에 편입되고 부산진구 사상출장소로 전환.
  • 1975년 10월 1일 : 사상출장소가 폐지되고 직할시 직할 북부출장소로 전환.[2]
  • 1978년 2월 15일 : 북부출장소가 북구로 승격. 김해군의 일부지역이 북구에 편입.
  • 1979년 1월 1일 : 주례동이 주례1동과 주례2동으로 분리.
  • 1979년 8월 8일 : 감전동이 감전1동과 감전2동으로 분리.
  • 1982년 5월 1일 : 법정동 경계조정으로 감전동(1동 소속)의 일부가 엄궁동으로 편입.
  • 1982년 9월 1일 : 덕포동이 덕포1동과 덕포2동으로 분리.
  • 1991년 9월 15일 : 모라동이 모라1동과 모라2동으로, 주례1동의 일부가 주례3동으로 분리.
  • 1994년 7월 1일 : 모라2동의 일부가 모라3동으로 분리.
  • 1995년 3월 1일 : 북구의 일부(구 사상출장소)가 사상구로 승격되어 분리됨.
  • 2008년 1월 1일 : 감전1동과 감전2동이 감전동으로, 모라1동과 모라2동이 모라1동으로 합병.

3. 지리

부산의 대표적인 공업지구인 사상공단이 이곳에 있다. 원래 사상공단이 있던 곳이 낙동강 삼각주처럼 점토로 이루어진 충적평야였으며, 폭우가 쏟아지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홍수크리를 당하던 곳이었으나, 70년대 들어 이곳에 대규모 공업단지를 조성하였다. 지금도 사상구하면 사상공단부터 먼저 떠올릴 정도의 네임드.

공단에 인접한 주거지가 으례 그렇듯이(창원 제외), 주거환경에 있어서는 다른 자치구에 비해 평판이 나쁘다. 사실 모라동과 주례동, 학장동, 엄궁동은 택지로써 썩 괜찮게 개발되기는 했지만 공장과 주거지가 확실하게 분리되지 않은 동네(특히 감전동과 덕포동)일수록 이런 경향이 현저하다. 더군다나 사상공단에 입주해 있는 업체들이 하나같이 공해산업으로 악명높은 주물업체라서…….

4. 교통

부산 도시철도 2호선사상로가야대로를 따라서 지나가며, 경부선 사상역이 이곳에 있다. 하지만 여객취급은 거의 개점휴업상태나 다름없을 정도로 정차 편수가 안습하다. 경전선 광역전철이 이 역을 경유하고, 부산김해경전철사상하단선이 사상역에서 시종착하기 때문에 향후 사상역은 왕십리역에 버금가는 환승의 요충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안그래도 서부산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이 사상역 근처에 있으니.

이외에도 남해고속도로제2지선과 연결되는 도시고속화도로헬게이트동서고가로가 사상구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며, 감전나들목과 주례램프가 있다. 이 때문에 주례교차로를 중심으로 한 가야로 일대는 항상 교통정체에 시달린다. 지나가는 고속도로로는 남해고속도로제2지선대구부산고속도로가 있다.

4.1. 관내 철도 목록

5. 경제

학장동, 감전동 일대에 있는 사상공업단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의외로 외국인들의 소비 규모가 큰 지역이다. 2014년에는 부산에서 부산진구에 이어 2번째로 외국인이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한 지역으로 꼽혔다. 사상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데다 괘법동 일대에 다문화 거리가 들어서고, 주말이면 괘법동 홈플러스, 이마트를 이용하는 외국인 쇼핑객과 근처 수변공원을 이용하는 외국인 커플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기에 김해국제공항과 교통상 가깝다는 점 때문에 외국인들이 이 곳에서 소비를 많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6. 정치

19대 대선 사상구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61,743
(41.38%)

46,540
(31.19%)

23,023
(15.43%)

10,096
(6.76%)

7,156
(4.79%)

+ 15,203
(△10.19)

75.62%

삼락동

37.40%

36.79%

15.68%

4.78%

4.83%

△0.61

64.91

모라1동

39.41%

34.05%

14.90%

6.60%

4.63%

△5.36

74.60

모라3동

37.66%

36.40%

16.13%

6.01%

3.27%

△1.26

71.58

덕포1동

39.53%

33.55%

16.58%

6.08%

3.85%

△5.98

72.13

덕포2동

40.62%

32.41%

15.87%

6.53%

4.18%

△8.21

73.50

괘법동[3]

41.19%

32.16%

15.05%

6.65%

4.56%

△9.03

69.44

감전동

36.00%

39.77%

14.32%

5.66%

3.89%

▼3.77

67.29

주례1동

40.25%

33.33%

14.77%

6.64%

4.58%

△6.92

74.44

주례2동

41.37%

30.69%

15.42%

6.96%

5.21%

△10.68

74.81

주례3동

40.19%

32.17%

15.66%

6.87%

4.81%

△8.02

77.37

학장동

41.95%

30.83%

15.69%

6.50%

4.57%

△11.12

76.24

엄궁동[4]

43.29%

28.65%

15.64%

6.91%

5.16%

△14.64

76.83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갑 선거구[5]

39.61%

33.84%

15.51%

6.33%

4.27%

△5.83

71.85

을 선거구[6]

41.13%

31.68%

15.37%

6.65%

4.78%

△9.45

74.98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거소·선상투표

39.18%

19.13%

28.47%

6.15%

4.78%

△10.71

93.98%

관외사전투표

48.83%

19.60%

15.12%

9.29%

6.67%

△29.23

99.95%

재외투표

64.86%

6.68%

13.99%

3.34%

10.81%

△50.87

80.22%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사상구[7][8]

40.49%

32.59%

15.43%

6.52%

4.57%

△7.90

73.62

2012년 18대 대선/2016년 20대 총선(비례)/2017년 19대 대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선거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율 (대선/대선)

증감율 (총선/대선)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율 (대선/대선)

증감율 (총선/대선)

사상구

43.89%

29.89%

41.38%

▼2.51 (-5.7%)

△11.49 (+38.4%)

55.81%

40.44%

31.19%

▼24.62 (-44.1%)

▼9.25 (-22.9%)

15대

16대[9]

17대

18대

19대

20대

권철현/초선
신한국당

권철현/재선
한나라당

권철현/3선
한나라당

장제원/초선
한나라당

문재인/초선
민주통합당

장제원/재선
무소속

신상우/7선
신한국당

신상우 전 국회의원이 신한국당, 한나라당 소속으로 이 곳에서 마지막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리고 권철현 전 주일대사가 이 곳에서 3선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때는 갑/을로 나뉘었다가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단독선거구로 합구되었다. 또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문재인 현 대통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임기를 지낸 곳이다.

다른 경상도 지역과 비슷하게 전통적인 새누리 우세 지역이었으나, 2010년대경부터는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도가 높아져 낙동강 벨트 중 하나로 본다. 19대 총선에서는 2017년 현재 대통령인 문재인손수조 를 누르고 당선해 부산에서는 사하을 지역구 조경태 의원과 함께 더불어 두 명밖에 없는 비 새누리당 의원이다.[10] 하지만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상구에서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비례대표배재정 의원한테 지역구를 넘겼는데[11], 만일 배재정이 당선될 경우 문재인의 대선 가도는 더욱 더 강고해질 수 있었지만, 접전 끝에 공천에 불복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장제원이 간발의 차이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손수조는 다시 나왔지만 장제원 vs 배재정 구도에서 밀려나며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도 25% 득표율에 머물러 3위로 탈락했다. 이 결과는 엄청난 의미를 가지는데, 영남에서 새누리당이 20% 득표율에 그친 것은 3당 합당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장제원이 새누리당으로 복당하였으나,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 친박 주류에 반발해 다시 탈당하여 바른정당의 창당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남겨두고 다시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면서 철새라는 오명이 씌워지게 되었으며 지역민심 또한 싸늘한 상황이다. 그리고 직후에 열린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41.4% : 31.2%로[12]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에 비해 10% 이상 우위를 보이게 되면서 사상구도 더불어민주당에게 유리한 정치지형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장제원 의원의 정치생명 또한 위태로워지게 되었다.[13]

세부적으로는 1995년 이전까지 같은 지역이었던 북구와 마찬가지로 단 한개동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승리하였다. 하지만 삼락동, 모라동, 감전동은 사상구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강한 곳이라 1%수준으로 이겼겨나 져야 했지만, 공단을 비롯해 낙후지역이 많고 고령인구가 많은 사상구에서 10% 이상 격차로 승리했다는 것은 부산에서 보수정당에 대한 벽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뜻하므로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14] 그동안 낙동강벨트로 묶여 진보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여겨졌지만, 사상구 역시 엄연한 영남 지역으로서 19대 총선에서 문재인의 개인기로 승리한 것, 6대 지선에서 오거돈 후보가 신승한 것을 제외하면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 인사가 이겨본 적이 없었던 보수 강세지역이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문재인 당시 후보가 이 지역을 지역구로 삼았음에도 10% 이상 크게 패배했던 요새지역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19대 대선의 문재인 압승, 특히 과반 이상의 지역에서 40% 이상 득표율을 올린 것은 향후 부산의 정치 지형을 다스릴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으로 삼을 수 있을 법하다.

사상구 : 문재인 61,743(41.38%) > 홍준표 46,540(31.19%) > 안철수 23,023(15.43%)

1위 - 문재인 : 엄궁동(43.3%), 학장동(41.9%), 주례2동(41.4%), 괘법동(41.2%), 덕포2동(40.6%), 주례1동(40.3%), 주례3동(40.2%), 덕포1동(39.5%), 모라1동(39.4%), 모라3동(37.7%), 삼락동(37.4%), 거소/선상투표(39.2%), 관외사전투표(48.8%), 재외투표(64.9%) (11개동 + 관외투표)

1위 - 홍준표 : 감전동(39.8%) (1개동)

7. 행정 구역

http://www.sasang.go.kr/img/sasang/sub/s4_1_1_img02.png

7.1. 삼락동 (三樂洞)

삼락동은 옛날 낙동강 동쪽 물길따라 길게 뻗은 모래톱 섬으로서 조선시대의 기록에는 <유도>로 나와있고 삼락이라는 기록은 없다.

행정단위는 양산군 좌이면 유두리로서 구포권에 속했는데 일제시대인 1914년 동래군 사상면, 삼락리와 유두리가 되었다. 삼락의 지명을 군자삼락, 인생삼락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곳에 1935년 낙동강 제방을 쌓으면서 강쪽으로 많은 땅이 편입되어 긴 섬이 둑 안팎으로 갈라졌다.

양산군지에 보면 조선조 중엽 지금의 삼락동인 유도에는 김씨들이 최초로 들어와 갈대를 베어내고 땅을 갈아 농사를 지으면서 섬 주위에 둑을 쌓고 나무를 심는데 후세에 이 정자나무 덕택으로 사람들이 홍수의 재난에서 살아 날 수 있었으므로 활인수, 활인정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도라는 지명도 섬에서 자라던 나무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두리의 본동네는 <새(쇠)각당>과, 제방을 쌓고 활인수가 있던 <환방리 (고리방)> 지역이었고, 위쪽의 <솔뫼섬>과 아래쪽의 <오복섬>은 유두와 이어 지는 섬이었다. 조선시대 지도를 보면 낙동강이 삼차수로 흐르는 강서쪽에 출두도, 대저도, 덕두도, 소요저도가 있고 강 동쪽에 동두저포가 있는데 동쪽 머리 포구는 유도에 있던 나루터를 일컫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포 <범방산>에서 발원한 <범방천>이 모라 운수천과 합류하여 샛강인 <유두강>이 되었는데 모라동, 덕포동과는 <멍에개(가포)>나루터에서 배로서 왕래하였고 낙동강 본류쪽 <진등뫼(잔등)>에서 김해 덕두로 왕래하는 나루터가 있었다. 옛날부터 유두리는 퇴적사질토로서 땅이 기름졌는데 제방 안쪽 둔치지대에 일제말기부터 우기를 피해 생산되는 딸기를 재배하였고 해방이후 1970년대까지 삼락 딸기밭은 봄철에 낙동강 제방을 찾는 부산시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였다. 그래서 삼락동의 지명을 강상청풍(낙동강 위의 맑은 바람), 노전낙조(갈대밭의 저녁 노을), 누하표전(원두막 아래의 딸기밭)의 삼락으로 칭송하였다.

7.2. 모라 1·3동 (毛羅洞)

모라동에는 <운수사>라는 고찰이 있어 그 뒷산을 <운수산>이라고 하며 여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을 <운수천>이라고 부른다. 모라는 삼한시대부터 마을이 있었던 오랜 동네라는 것을 이곳에서 발견된 조개 무지 유적인 모라 패총이 증명해 주고 있다. 모라의 지명은 조선시대 동래부지에 사천면 상단 모라리와 뒤에 사상면 모라촌으로 나와 있다. 모라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을>이라는 우리말의 고래어인 <모라>에서 연유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병도 박사의 논고에 의하면 고대 사회 집회소의 명칭이 <마을>이며 이것이 촌락의 명칭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양서제이전 신라전에는 성을 일러 <건모라>로 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는데 이는 <큰마을>이라는 뜻이므로 <모라>는 <마을>로 풀이하고 있다. 그런데 모라의 지형을 살펴보면 산을 배경으로 저지대는 낙동강의 토사가 퇴적하여 쌓인 땅이므로 <모라>는 <몰개> <모래개>에서 유래하며 넓은 땅의 지명에 붙는 <라>와 함께 모래로 된 땅으로 <모라>가 되었다는 풀이도 있다.

조선시대, 사천면 상단이었던 사상의 지명도 <모래내>와 <모래땅(모라)>에 그 어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모라동의 저지대는 모리펄로서 물이 고인 웅덩이와 미나리깡, 갈밭으로 형성되어 1935년 낙동강 제방을 쌓기 전에는 인가가 없던 곳이었다.조선시대 사상지역에 제방을 쌓은 기록을 보면 <모라촌 뒤에 키 모양으로 석축을 하고, 같은동네 위의 주을산 일원과 산밑에 둑을 쌓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모라에 사람이 살았던 지역은 패총이 발견된 근처와 현재의 철도 동쪽 윗각당과 철도 서쪽 아랫각당이었다. 모라동이 역사적인 내력이 있는 고장이란 것은 운수사 사찰이 증명해 주고 있는데, 이곳에 남아 있는 2기의 부도탑은 조선시대의 귀중한 유물이다.

운수사를 따라 오르는 절곡 계곡은 물이 맑고 경관이 아름다워 <청류동천>이라 불렀는데 <큰골>과 <작은골>이 있고 서당너머 <서당골>, 못이 있는 <못골>, 고동바위의 전설이 있는 <고동바위골>, <문리골>에다 계곡 좌편은 <잿골>, 안쪽 골짜기는 <안골>등 많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운수천은 옛날 양산 구포와 동래 사상의 경계지점이었는데 구포의 사랑골로넘어가는 고개가 <어부랑고개>이며 수리가 살았던 <수리재고개>가 있다

7.3. 덕포 1~2동 (德浦洞)

덕포동에는 백양산 기슭에서 낙동강을 향하여 길게 뻗어 내린 곳에 바위 언덕이 있고 동·서 양쪽에 독산을 이룬 암구에 고목이 우거져 선경을 이룬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신선이 내려온다는 전설이 깃든 강선대이다.

덕포동의 지명에는 이처럼 바위 언덕과 강선대가 있는 마을로서 옛날 배가 들어왔던 갯가의 뜻이 담겨 있다. 덕포의 원 이름은 <덕개>이며 덕은 <언덕>에서 따온 말로 언덕 끝에 배를 대는 포구로서 <덕포>가 되었다는 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덕은 글자 뜻대로 크다는 뜻이 담겨 있어 동· 서 양쪽 강선대와 바위 언덕이 있는 이 일대가 옛날 배가 와서 닿을 수 있었던 큰 갯가 포구로서 <덕개>,<덕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덕포동의 지명이 공식 명칭으로 나타나기는 조선시대 1740년에 편찬한 동래부지의 각면원근도정에 보면 <사천면 상단 덕포리 거관문 34리>로 나와있다. 지역의 지명을 살펴보면 <삼각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려 덕포동과 괘법동의 경계를 이루는 하천이 <덕개천>인데 이를 <한내천>이라고도 하며 옛날 이곳 한내도랑은 동네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유명하였다. 그리고 소나무가 많았던 <솔베기천>은 현재의 한일 시멘트와 저온 창고 앞을 흐르던 도랑인데 이곳에서도 빨래를 많이 하였다고 한다. 여기를 향해 넘어가는 고개를 <고개 넘게(넘어)>라고 한다.

옛날 이곳은 산이었는데 전설에 의하면 장군이 가다가 칼로 산 입구를 끊어서 고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덕포동의 산쪽에는 이곳의 토박이인 황씨들의 논이 있는 <황산골>이 있고, 산이 크고 너른 <큰 골>, 물이 많고 소태나무가 있었던 <소태골>이 있었으며 병풍처럼 서 있는 <병풍등>, 약수암 밑에 그림처럼 멋진 <기림산(길음산)>이 있다. 옛날 배가 들어 왔던 상강선대에는 조선시대 이 고장에 제방을 쌓아서 홍수의 피해를 막아 주었던 동래부사 세분의 축제 헤민비가 있는데 둑을 쌓을때 제방따라 대나무를 심었다고 이를 <대밭둘(둑)> 또는 <10리줄대밭>이라 하였다고 한다.

7.4. 괘법동 (掛法洞)

괘법동은 북쪽으로 덕포동, 삼락동, 남쪽으로 감전동, 동쪽으로 주례동에 둘러 쌓여 있는 사상지역의 중심 마을이다. 괘법동이라는 지명은 1914년 일제시대 이곳의 <괘내리>와 <창법리>를 합쳐서 생긴 이름이다. 감현천은 덕포동과 삼락동과 경계를 하고 동남쪽은 주례동과 감전동을 경계하여 괘내, 동괘, 서괘마을이 합쳐 괘법동이 되었다.

괘내천 물은 동네 배산인 삼각산 아래 현재 신라대학교가 들어서 있는 <가내골(개내골)> 골짜기에 물방앗간이 있었던 <물방산 (물뱅이산)> <수용골(물방앗골)>에서 흘러 내려 현재의 사상역 앞을 지나 옛날 사상 명진학교 앞의 목을 거쳐 감전동 쪽으로 흘러 낙동대교의 북쪽장인도 배수문을 거쳐 현재의 낙동대교가 있는 곳으로 흘러 내렸다. 괘내라는 지명은 옛날 마을 앞 나루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던 갯가의 동네요, 냇물이 괴어 있는 동네라서 <괸내>였는데 <괘내>가 되었다는 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창법리는 1872년(고종8년) 제작된 경상도 지도에 나오는 사상면 사창이 있었던 <창나루>를 말한다.

사창이란, 조선시대 민가가 여럿이 모여 한 마을을 이룬 공동체로 하여금 창을 설치하여 곡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흉년이나 춘궁기에 대여해주고 다음 수확때 환곡하게 하는 제도로서 이 창고가 있었던 곳이 바로 창법리, 창나루터였던 것이다.

괘내리와 창법리는 예로부터 사상지역의 중심지로서 면모를 과시해 왔다. 괘내라는 지명에서 <괘>는 <걸다, 달다, 게시하다>는 뜻이 있으며 <내>는 <냇가 동네>라는 뜻이 담겨 있어 이곳이 행정의 중심지로서 게시하는 곳이므로 괘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곳은 사상의 본거리로서 사상지역 8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회산팔경대>가 있었고 임진왜란때 전사한 분들을 위해 제사를 지내는 <연구제단>이 있었던 곳이다. 그리고, 사상면사무소와 사상면 사창이 있었으며, 구한말 민족 교육기관인 <사립명진학교>도 여기에서 설립 되었고, 경부선 <사상역>이 있고, 부산 신발의 원조인 신라고무공업사가 설립되었으며, 뒤에 국제상사가 들어서 세계적인 신발산업의 원산지가 된 곳이다. 또한 현재 이곳에는 서부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으며 괘내천의 발원지인 수용골에는 신라대학교가 들어서 있어 옛날부터 중심부로서 깃발을 걸고 있는 냇가 마을임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7.5. 감전동 (甘田洞)

감전동은 오랜 옛날 낙동강 하류와 하구였던 사상지역 내륙 깊숙히 바닷물이 들어 왔던 지역으로서 토사가 퇴적하여 생긴 모래톱 섬이었는데 강에서 북쪽은 <유도>였고 남쪽으로<자인도>가 있었으며 안쪽으로 <감도>가 위치하였던 곳이다.

섬이었던 감도는 조선시대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하여 여름철이 되면 논밭이 홍수의 피해를 입었던 곳인데 1788년 사상지역에 제방을 쌓아 주었던 이경일 동래부사의 공덕이 새겨진 축제혜민비에는 <감동도일원이 돌을 세워 새로 물길을 내고 좌우로 둑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1740년에 편찬된 동래부지의 사천면 상단에는 감동의 기록이 없다. 이때는 감동은 높은 지대에서 농사를 짓기는 했으나 대부분 저습지와 갈밭지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1904년에 기록된 문서에는 사상면 감동과 서전리가 나와 있는데 근세에와서 호구가 늘면서 독립된 동네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제방을 쌓았던 기록이나 토지문서에 나오는 <감도>, <감동도>라는 지명은 신의 뜻이 담긴 신성한 땅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감전동은 옛날 바닷물이 들어 왔던 곳으로 오랜 세월동안 토사가 퇴적된 비옥한 섬이라 <감도>로 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한다. 그리고, 감전동의 서쪽 낙동강변에는 <서발>이라는 곳이 있었다. 서발은 강물에 의한 유사의 퇴적으로 모래톱의 생성과 변동이 많았기 때문에 새로 생긴 뻘이라는 뜻으로 새뻘이 서발이 되었거나 서쪽 뻘이라서 서발이라 하였을 것이며 그것이 논밭으로 변하여 서전리가 되었을 것이다. 감전동은1914년 감동과 서전을 합쳐서 생긴 지명이다.

감전동의 지명중에 <자인도>가 있는데 이섬은 갈밭지대가 많아 집이 한두채밖에 없었던 섬으로서 강변 모래펄에는 재첩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제방을 쌓았던 기록에 나오는 <강자도>도 학장동의 건너섬인 <대동도>와 함께 감도와 이어진 섬으로 보인다. 감전동의 이색적인 지명중에는 <포푸라마치>가 있다. 원래 이곳에는 수해방지를 위한 토종 포푸라 나무가 많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강수로를 통한 배가 드나들었던 곳이다.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서감전 입구에는 신선한 생선회를 파는 술집이 포푸라나무 밑에 몇집 있었는데 이곳을 <포푸라마치>라 불렀고 오늘날에도 이지역은 주점가가 형성되어 있다.

7.6. 주례 1~3동 (周禮洞)

주례동은 예로부터 아래쪽 큰 동네인 주례본동과 고갯길 쪽의 작은동네인 냉정마을로 형성되어 왔다.

조선시대 기록으로 1740년에 편찬한 동래부지에는 사천면 상단 주례리로 나와있고 1872년 제작한 경상도 지도에는 사상면 주례촌과 냉정촌이 나와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제방을 쌓았던 기록에는 주례의 하천인 동천과 남천, 그리고 사목포 나루터가 기재되어 있다.

주례의 본 동네 앞에 물길이 합쳐지는 곳을 <냇바닥>이라고 하는데 옛날 이곳에는 강물이 들어와서 나루터가 있었다. 주변에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솔밭이라고 했으며, 주례마을의 중심지는 <골새>였고 <동녘>에도 인가가 있었다. 주례동에서 널리 알려진 곳은 고갯길 중턱에 있던 <냉정>의 약수였다.

1714년에 편찬된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면 조선 13도의 물 중에서 이름난 약수로서 냉정의 물을 꼽고 있다. 주례동 지명의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사상지역에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주례는 옛날 한 마을의 농사를 동네사람들이 힘을 합쳐 농악을 울리면서 일을 해내었던 공동체로서의 <두레>를 한자로 표기하여 <주례>가 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주례가 지형적인 동평현에서 서쪽으로 돌아 나오는 곳으로서 <두루>라는 어원과 낙동강변의 변두리로서 <두리>와 동평현에서 주례로 나와야 앞이 트인 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드르>를 들고 있는데 우리의 토속어인 <두레, 두루, 두리, 드르>등에서 주례가 되었다는 풀이를 하고 있다. 주례동은 이처럼 낙동강변에서 동평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요지였기 때문에 냉정 산 위쪽으로 있던 성터는 학장동의 학성과 연결된 목장성인데 방어성으로도 활용되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이 성터는 해방이후까지 학장동에서 냉정, 개금을 거쳐 가야공원까지 남아 있었는데 6·25때 미군이 하야리아 부대를 조성하면서 성벽의 돌을 옮겨가 버려 성터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성터로 난 길을 따라 가야, 개금, 주례사람들이 냉정 뒤쪽 호랑이굴이 있었다는 오지봉의 구덕재를 넘어 대신동으로 내왕했다. 그런데 주례에 있던 사목포나루터는 가축을 취급하는 배가 드나드는 곳으로서 목장과 연관된 지명으로 보인다.

주례동의 산기슭에는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었고 그 철로를 따라 구도로가 있었는데 냉정 고갯길 쪽으로 새도로가 나면서 지난날 부산에서 서부 경남으로 나아가는 국도가 되었던 것이다. 옛 성터가 있던 산중턱에는 현재 동서대학교와 경남정보대학이 들어서서 대학촌을 이루고 있다.

7.7. 학장동 (鶴章洞)

학장동은 마을 앞의 학장천 물이 흘러내리던 옛날 모래펄 지역인 서북쪽 저지대와 동남쪽으로 구덕고개를 끼고 산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은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마을이다.

1967년 부산대학교 박물관에서 유적을 답사할 때 도로변에서 기원을 전 후한 김해문화기에 해당되는 토기조각이 발견된 적이 있었다. 여기에서 패총유적이 발견된 것을 보면 옛날 바닷물이 만입해 들어왔던 사상지역에 어패류가 풍부했기 때문에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임을 말해준다.

학장동의 지명은 옛 성터였던 <학성>과 옛 장터였던 <장문평>에서 유래한다. 동래부지에 목장성이 있었다는 기록에 보면 <엄광산 기슭 강변으로 부터 부산범천 산장 15리까지>로 나와 있다. 목장성인 학성은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원래 방어성으로 쌓았을 것인데 후세에 이를 수축하여 목장성으로 활용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보기도 한다.

<학성>이란 지명은 사상팔경의 <평사낙안>처럼 이곳 강변의 모래펄에 학처럼 귀한 새들이 찾아오는 풍경을 보고 붙여 졌을 것으로 보이며 <장문평>이란 지명은 옛날 <장시, 장터>란 뜻으로 이 마을에서는 <장문안> 으로 부르고 있다. 이곳에는 구덕고개로 사람의 내왕이 있었고 고갯배도 들어왔을 것이며 목축을 하던 동네라서 농 ·수산물과 가축의 유통을 위한 조석시로서 장터가 열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학장동의 명소로는 예로부터 이름난 구덕령 고갯길이 있다. 이곳 구덕 골짜기에는 옛날 숲이 많이 우거져 여우가 많이 나와서 야시골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구덕 냇거랑>이다.

구덕천의 바위 틈으로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예로부터 물이 차기로 소문이 났으며 물이 뱅뱅 돌만큼 깊은 <가메우소>라는 웅덩이도 있어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구덕 골짜기 산에는 명당터가 9곳있는데 이 중에 현재 4곳에는 묘가 들어섰고 5곳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학장동에 전해오는 지명중에는 <홍깨>가 있는데 학장에서 주례쪽으로 흐르는 개울을 말하며 둑길 너머 저지대에는 옛날 <대동도>라는 섬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7.8. 엄궁동 (嚴弓洞)

옛날 엄광리의 강변이었던 현 농산물 유통단지 앞쪽으로 서감전의 <자인도>와 마주보고 있었는데 이섬을 엄궁사람들은 물 건너 있다고 <건너섬>이라고 했다. 그리고 배가 와서 닿았던 엄궁선창에는 상선들이 들어와 객주마당이 형성되었고 주로 선창가 주변에 사람이 살았는데 이곳에는 연자방아도 있었다고 한다.

강변에는 갈대 밭으로 된 <쇠갈밭섬>이 있었는데 그 섬자리의 일부는 강으로 편입되고 일부는 육지로서 강변도로로 변하였다. 이곳의 산쪽에는 전설의 <장군샘>이 있었는데 이 물을 먹으면서 작은 산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며 하단으로 넘어가는 길은 산을 깎아 지금의 도로가 만들어졌지만 옛날에는 산복으로 난 고갯길로 오르내려야 했다. 그리고 사상쪽으로는 모래둑길로 다녔고 일제때에는 1935년에 생긴 낙동강 제방길로 구포까지 걸어 다녔다. 그만큼 엄궁은 교통이 불편한 마을이었다

엄궁에는 잉어와 민물장어, 그리고 숭어가 많이 잡혔는데 이곳의 최고 명물은 재첩이었다. 강 하구지역인 엄궁강변 모래펄에는 재첩의 수확이 특히 많았는데 농사도 별로 없던 이 마을의 부녀자들은 거의 모두가 재첩국 장사를 하였다. 이들은 밤새 고아서 만든 재첩국을 양철동이에 담아서 머리에 이고 걸어서 새벽 어두운 밤길에 마을을 떠나 구덕령을 넘어 대신동으로 가거나 하단을 돌아 괴정을 거쳐 대티고개를 넘어 부민동, 아미동등 시내까지 거리를 누비면서 큰소리로 <째찌꾹(재첩국) 사이소>라고 외치며 다녔다. 이처럼 재첩국은 과거 부산사람들이 매일 같이 듣던 잠결의 첫소리였고 동시에 기상을 알리는 신호처럼 된 것이다. 그리고 부산을 찾는 외지인들에게는 재첩국아줌마의 소리가 잊지 못할 추억거리가 되어주었다.

엄궁동에는 일제시대부터 8·15 해방 이후까지 양어장이 있어 붕어낚시의 명소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6·25 피난 시절 이곳에 와서 낚시질을 한적이 있었는데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라 하여 뒤에 이 마을을 <평화촌>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 낙동 강변은 철새도래지로서 갈대가 우거진 평화롭고 낭만적인 마을이었는데 현재는 일부 중소 공장들이 들어섰고 산쪽에는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8. 관내 각급학교

8.1. 대학교

8.2. 고등학교

여담으로 면적이 상당히 넓은 구인 반면 고등학교는 여섯 곳 뿐이라 "고등학교가 매우 부족한 측에 속한다."바로 밑에 형제는 학교가 엄청 널렸던데.. 사실 바로 위의 친형제도 인문계 고등학교만 아홉 곳 그 와중에도 부산에너지과학고등학교특성화고이며 부산산업학교는 직업학교라 직업반들만 갈 수 있기 때문에[15] 실질적인 인문계는 네 개 뿐이다. 게다가 이 중에서도 남녀공학하나도 없다.[16][17] 때문에 주례동(주례역, 냉정역 부근)에 사는 사람들은 부산진구의 고등학교로 통학하는 편이고 삼락동, 모라동에 사는 사람들은 북구의 고등학교로 통학하는 편이다.[18] 엄궁동 거주자는 사하구 하단동에 위치한 건국고등학교부산여자고등학교로 가기도 하고 학장동의 경우 여고생들은 부산서여자고등학교[19], 남고생 중 구덕고등학교가 과밀 현상이 발생하면 구덕터널을 넘어서 학군을 넘나들며 서구에 있는 경남고등학교나 남녀공학인 부경고등학교, 특성화고인 경성전자고등학교부산관광고등학교로 올 정도이다.[20]

8.3. 중학교

8.4. 초등학교

  • 감전초등학교 (감전동 119-6)
2011년즈음부터 체육진흥공단의 지원으로 운동장이 모두 인조잔디로 교체되고 트랙이 설치되었다. 여자축구부가 창설되면서 지원이 들어온 것. 덕분에 모래 운동장이 대부분인 인근 초등학교보다 인프라가 앞서는 편이다. 이때 담도 모두 헐어 개방형구조를 취하고 있다.
  • 괘법초등학교 (괘법동 556-2)
1998년 창진초등학교와 분리되었다.
  • 구학초등학교 (학장동 168-15)
  • 덕상초등학교 (덕포동 775-1)
  • 덕포초등학교 (덕포동 406-1)
  • 동궁초등학교 (엄궁동 680-4)
  • 동주초등학교 (주례동 537)
  • 모덕초등학교 (모라동 1364-1)
  • 모동초등학교 (모라동 75-11)
  • 모라초등학교 (모라동 655-3)
  • 모산초등학교 (모라동 550)
  • 사상초등학교 (덕포동 692-1)
  • 삼덕초등학교 (삼락동 409-17)
  • 서감초등학교 (감전동 122-1)
  • 엄궁초등학교 (엄궁동 47)
  • 주감초등학교 (주례동 319)
  • 주양초등학교 (주례동 10-1)
  • 주학초등학교 (주례동 84-192)
  • 창진초등학교 (괘법동 519-2)
1998년 괘법초등학교와 분리되었다.
  • 학장초등학교 (학장동 242-1)
사람이 아주 없다.사상공업단지 안에 위치해 있어서 학부모들이 인근의 학진초등학교나 모라초등학교로 보내는 일이 많은 편.
  • 학진초등학교 (엄궁동 25-21)

8.5. 특수학교

  • 부산산업학교 (덕포동 775-1)
직업반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로 특수학교에 속한다. 부산에너지과학고등학교 바로 옆에 붙어 있다.
  • 부산솔빛학교 (삼락동 365-8)

9. 바깥 고리


  1. [1] 참고로 사상구 아랫동네인 사하구도 동래군 시절에는 사하면이라 마찬가지라 볼 수 있겠지만 정확히는 사하면 시절의 관할구역은 사하구와 서구 암남동까지 포함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사하구는 사하면에서 서구 암남동을 뺀 나머지 영역이라 볼 수 있다.
  2. [2] 같이 폐지되는 구포출장소와 한데 묶어 출범하였다.
  3. [3] 사상역, 사상터미널신라대학교가 있는 동네
  4. [4] 지금은 매각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사상구 국회의원이었을 때 그의 자택이 이곳에도 있었다.(엄궁동 롯데캐슬) 그 버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5. [5] 과거 사상구 갑 지역구로 모라동, 덕포동, 삼락동, 괘법동
  6. [6] 과거 사상구 을 지역구로 감전동, 주례동, 학장동, 엄궁동
  7. [7] 관외투표 제외
  8. [8] 지역구 국회의원 : 장제원 (무소속 → 새누리당 → 바른정당 → 자유한국당, 재선)
  9. [9] 16대부터 하나로 합구되었다.
  10. [10] 조경태 이적후에는 유일한 부산 비 새누리당 의원이였다.
  11. [11] 낙하산이 절대 아니다! 초, 중학생 시절 사상구에서 지냈다.
  12. [12] 참고로 이번 19대 대선 때 문재인 후보가 부산 사상구에서 기록한 득표율은 인천광역시에서 기록한 득표율보다 더 높다!
  13. [13] 장제원 의원도 금정구의 김세연 의원과 마찬가지로 지역 토호이기는 하지만 김세연 의원에 비하면 지역평판이 좋지 못하다. 그 이유는 김세연 의원의 경우, 김세연 의원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창업하고 일군 동일고무벨트로 인해 당시 변두리로 평가받던 금정구를 발전시킨 공이 있고 지역주민도 그 혜택을 많이 본 반면, 장제원 의원의 아버지와 그 일가가 속한 동서학원은 온갖 사학비리와 세습경영으로 인해 사상구 주민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4. [14] 특히 삼락동, 모라동, 감전동은 상대적으로 외지인이 적은지라 19대 총선 때에도 유일하게 손수조가 166표 차로 문재인을 상대로 승리한 곳이었다.
  15. [15] 각 고등학교 직업반 학생들끼리 서로 모여서 직업훈련을 하는 학교이다. 때문에 자체 교복은 없으며 특수학교로 취급받는다.
  16. [16] 구덕고랑 사상고는 남자고등학교이고 대덕여고랑 주례여고는 여자고등학교이다.짝짝이네
  17. [17] 그마저도 구덕고랑 사상고는 접근성이 좋으나 주례여고랑 대덕여고가 접근성이 몹시 좋지 않기때문에 부산진구나 서구, 사하구에 위치한 학교들로 많이 가는 편이다.
  18. [18] 이들 동네는 구포3동에 위치한 성도고등학교삼정고등학교로 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낙동고등학교화명신도시에 위치한 화명고등학교, 금곡고등학교로 가기도 한다.
  19. [19] 주례여고로 갈 수 있으나 67번을 타면 환승없이 서여고로 바로 이어준다. 또한 주례여고는 환승을 해서 가야하며 동서대 인근에 위치해있어서 접근성이 매우 병맛이다..
  20. [20] 거짓말이 아니라 실제로 학장동에서는 사상고로 가는 것 보다 구덕터널 하나 넘어서 동대신동으로 가면 바로 경남고랑 부경고로 갈 수 있다. 때문에 경남고 재학생 중 약 1/5정도가 사상구 출신이다.
  21. [21] 원래는 모라폐교가 있는 부지에 사립 고등학교로 개교하려 했으나 무산되는 바람에, 원래 덕포동에 위치했던 사상중학교의 부지와 시설을 그대로 2008년에 공립고등학교로 재개교하였다. 고등학교가 매우 부족한 사상구였기때문에 부득이하게 사상중학교폐교시키고 고등학교로 재개교시켰다.
  22. [22] 만약 사상고등학교가 재개교되지 않았다면 사상구에 위치한 인문계 남고는 구덕고등학교 단 하나뿐만 존재하게 되기때문에 통학하는데 상당히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23. [23] 박근혜 키즈로 유명하고 그 유명한 문재인을 상대로 무려 40%대를 득표한 손수조의 출생 고등학교이다.
  24. [24] 2012년에 어떤 19금 노래를 학예회에서 했다... 다행히 여기는 남자중학교이다. 영상
  25. [25] 참고로 근처에 있을 거 같은 동주여자중학교는 사하구에 있다.
  26. [26] 학교 부지가 위치한 곳이 모덕역 근처에 사상공단 부근이라 주변환경이 별로 좋지 못하다.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삼락생태공원이 있다 학생 수 감소와 사상공단 한복판에 위치한 특성상 공해로 인하여 2019년 3월에 폐교 예정이라고 한다. 허나 사상구에 고등학교가 매우 부족하기때문에 사상고등학교의 사례처럼 남녀공학 일반계 고등학교로 재개교시킬 여지는 충분히 있다.
  27. [27] 농심그룹 공장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부산엔 한개가 더 있는데 바로 부산 강서구에 있는 녹산공장이다.
  28. [28] 2017년 9월 1일 8시 30분, 부산광역시 사상구 엄궁동의 인적이 드문 한 목재소 공장 인근에서 폭행사건이 터졌었다. 유튜버 BJ인 김봉준 - 와꾸대장봉준도 이 사건을 흑역사로 인정받게 되었다. 사상구 제 2의 흑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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