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해 해전

산호해 해전

일본군의 공습을받고 폭발하는 렉싱턴]

날짜
1942년 5월 4일 ~ 1942년 5월 8일

작전명

MO作戦 (MO 작전)

장소
태평양 산호해
교전국

<^|1> 미군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1>일본군
일본 제국

지휘관

<^|1> 프랭크 플레처
토머스 C. 킨케이드
존 그레이스

<^|1> 이노우에 시게요시
다카기 다케오
시마 기요히데
고토 아리토모

결과

일본의 전술적 승리, 미군의 전략적 승리

영향

일본의 남하 저지. 최초의 항공모함 간 전투.

병력

정규항모 2척
순양함 9척
구축함 13척
항공기 128기

정규항모 2척
경항모 1척
순양함 9척
구축함 15척
수송함 및 기타 함정 14척
항공기 139기

피해규모

정규항모 1척 침몰
보조함 2척 침몰
정규항모 1척 대파
항공기 69기 손실
656명 전사

경항모 1척 침몰
보조함 4척 침몰
정규항모 1척 대파
항공기 92기 손실
966명 전사

1. 개요
2. 전투 준비
3. 전투 경과
3.1. 전초전
3.2. 5월 7일
3.3. 5월 8일
3.4. 피해
3.5. 결말
4. 이노우에의 철수명령은 적절했는가?
4.1. 비판
4.2. 옹호
5. 전투 이후
6. 의의
7. 대중매체에서 다룬 산호해 해전
8. 관련 링크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5월 1일 ~ 1942년 5월 8일까지 미합중국 해군 태평양 함대일본군 해군 연합함대가 벌인 전투로 세계 최초의 항공모함간의 항공전으로 알려져 있다.

2. 전투 준비

진주만 공습의 성공 이후 태평양 전선의 주도권을 장악하면서 승승장구하던 일본 해군은 새로운 작전 계획을 수립한다. 솔로몬 제도의 툴라기 섬을 점령하고 그곳을 발판으로 파푸아뉴기니의 수도인 포트 모르즈비(Port Moresby)를 점령하여 남방 한계선을 더욱 확장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툴라기 침공을 맡은 상륙부대는 경항공모함 쇼호와 제6전대(기함 아오바) 소속 중순양함 4척, 무츠키급 구축함 우즈키로 편성된 부대가 호위하게 되었고,[1] 포트 모르즈비 점령에 동원되는 일본 육군의 상륙부대를 엄호하기 위해서 해군중장 이노우에 시게요시(井上成美) 제독의 작전지휘 하에 기동부대(지휘관 해군소장 타카기 타케오 제독)를 편성, 해군소장 하라 추이치(原忠一) 제독이 지휘하는 제5항공전대 산하의 정규 항모 즈이카쿠쇼카쿠를 중심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했다.

한편 이미 일본군의 암호를 가로채고 있던 미 해군도 이런 움직임을 알아챘고, 진주만 공습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게 된 허스번드 킴멜 제독의 후임으로 태평양 함대 사령관으로 부임한 해군대장 체스터 니미츠 제독은 해군소장 프랭크 '블랙 잭' 플래처 제독의 지휘 하에 정규 항공모함 USS 렉싱턴과 USS 요크타운을 중심으로 구성된 함대를 파견하여 이노우에 제독의 함대를 막도록 한다.

양측의 항공모함 전력

3. 전투 경과

3.1. 전초전

5월 3일, 일본군은 무방비 상태인 툴라기를 성공적으로 점령한다. 미군도 이 사실을 알았지만 11기동부대는 급유를 받는 중이라 당장 반격할 수가 없었고, 17기동부대는 무선침묵중이라 역시 반격이 불가능했다. 5월 4일에 미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17기동부대의 요크타운에서 출격한 미 함재기가 툴라기의 시마 함대를 공습해서 일본의 구축함 1척과 기뢰제거함 3척을 침몰시키고 수송함 4척에 피해를 주었다.

5월 5일에 미군의 11기동함대, 17기동함대, 44기동함대가 집결하는데 이때 일본군 정찰기가 미군을 탐지했으나 상부에 보고도 못하고 격추당한다. 그러나 정찰기가 실종된 것을 안 일본군은 미군이 어딘가에 있음을 알게 된다. 양측은 상대편을 찾기 위해 정찰기를 띄웠으나, 6일에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3.2. 5월 7일

쇼카쿠에서 발진한 함상폭격기가 "항모 1척, 순양함 1척, 구축함 3척으로 이뤄진 미군 함대 발견"이라는 보고를 보냈고 일본군은 미군 함대를 괴멸시키기 위해 7시 22분, 공격대를 대거 발진시킨다.

8시 15분, 요크타운의 급강하폭격기가 포트 모르즈비 침공을 위해 전진하던 일본 함대(제6전대가 있는 그 함대)를 발견하고 상부에 보고하는데, 코드를 잘못 찍는 바람에 "항모 2척과 중순양함 4척"이라고 보고해버린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플레처 제독은 일본군의 주력 함대를 발견했다고 판단하고, 놈들을 공격하기로 한다.

8시 20분, 제6전대(기함 아오바)의 중순양함 후루타카에서 발진한 정찰기가 미군 항모들을 발견하고 급히 보고했고, 8시 30분에 키누가사의 정찰기가 이를 재확인한다.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일본 해군 지휘관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그냥 밀고 나가기로 한다. 그러나 적의 항모가 접근한다는 보고가 후루타카의 정찰기에서 계속 날아오자, 일본해군 지휘관들은 "적이 2개의 항모전단을 보냈다"고 판단한다.

9시 15분,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함재기들이 유조선 네오쇼와 구축함 심즈를 공격한다.

10시 12분, 플레처 제독은 B-17 3대로부터 "항모 1척, 수송선 10척, 군함 16척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들었고, 곧 코드를 잘못 찍었던 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기로부터 정정보고도 날아온다. 플레처 제독은 양쪽의 보고를 들은 후 둘 다 같은 함대를 발견한 것이며 놈들은 주력함대가 틀림없다고 판단, 목표 상공으로 날아가고 있는 함재기들에게 공격명령을 내린다.

10시 40분, 미 해군은 경항모 쇼호를 공격했다. 쇼호의 위에는 2대의 96식 함상전투기과 6기의 0식 함상전투기로 구성된 호위대가 있었고 제6전대(기함 아오바)의 중순양함 4척과 무츠키급 구축함 우즈키, 경순양함 유바리와 함께 있었으나 미군기는 93대였으므로 역부족이었다. 결국 쇼호는 렉싱턴에게 2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5발의 어뢰를 얻어맞은 후 요크타운의 항공대에게 11발의 1000파운드 폭탄과 어뢰 2발을 추가로 얻어맞았고, 이때 어뢰가 내부의 연료들을 유폭시키면서 쇼호 내부에 한편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10시 51분, 정찰을 맡았던 쇼카쿠의 함상폭격기 승무원들은 자신들이 유조선을 정규항모로 착각했음을 깨닫는다. 일본군은 뒤늦게야 자신들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닫고 11시 15분에 유조선 공격을 취소하고 귀환할 것을 명령했지만, 이미 불덩어리가 된 쇼호는 11시 35분에 침몰했다.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는 북쪽으로 후퇴했고, 구축함 사자나미가 나중에 돌아와서 쇼호의 생존자 203명을 구조했다. 쇼호의 함재기 중 살아남은 전투기는 3대 뿐이었다.

쇼호 침몰 이후, 제6전대의 후루타카와 키누가사는 차출되어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주력함대와 합류했고, 아오바와 카코는 포트 모르즈비 침공부대와 계속 동행하게 된다.

3.3. 5월 8일

6시 15분, 일본 함대는 뇌격기 8대를 출격시켜 정찰을 시작했고, 플레처는 6시 35분에 18대의 급강하폭격기를 출격시켜 정찰을 시작한다. 7시에 제6전대의 후루타카와 키누가사가 일본 주력함대와 합류한다.

8시 20분, 요크타운의 급강하폭격기가 일본 함대를 발견했고, 2분 후에 쇼카쿠의 뇌격기가 미 함대를 발견한다. 양측은 함재기를 대거 발진시켜 공격을 개시한다.

10시 32분,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이 일본 함대를 발견했지만 즈이카쿠는 구름 속에 숨는다. 요크타운의 함재기들은 아직 숨지 못한 쇼카쿠에게 10시 57분에 공격을 감행, 2발의 1000파운드 폭탄을 먹인다. 즈이카쿠 역시 폭격을 받았지만, 구름 때문에 폭격은 실패한다. 운 좋은 자식

10시 55분, 렉싱턴의 레이더가 일본기의 내습을 탐지하고 와일드캣을 보내지만 일부가 고도를 너무 낮게 잡는 바람에 일본기들을 놓친다. 다급해진 미군은 와일드캣은 물론이고 SBD 돈틀리스까지 출격시켜 일본군의 뇌격기를 요격했고, 와일드캣들은 본래 임무대로 8대의 뇌격기를 격추시킨다.[2]

11시 13분, 요크타운이 일본 뇌격기 4대의 어뢰 공격을 받지만 전부 빗나간다. 그러나 렉싱턴은 14대의 뇌격기에게 공습을 받았고, 11시 20분에 2발의 어뢰를 맞는다.

11시 30분, 렉싱턴의 함재기들이 쇼카쿠를 공격해서 1000파운드 폭탄 1발을 더 먹인다. 그러나 어뢰는 다 빗나간다. 쇼카쿠는 전방엘리베이터 및 함수 쪽 비행갑판과 격납고가 파손되었고, 12시 10분에 구축함 2척이 호위하는 가운데 전선을 이탈한다.

12시 17분, 요크타운이 일본군 급강하 폭격기의 공습을 받고 250kg 폭탄 1발을 맞지만, 이것으로 일본군의 공습은 끝난다. 미군과 일본군 모두 전선에서 물러난다.

12시 37분, 렉싱턴의 중앙제어실 부근 전기모터에서 스파크가 발생, 가솔린에 인화되어 화재가 발생한다. 항공기 연료 등에서 새어나온 인화성이 높은 기체가 함내에서 유폭한 것. 이후 2차례의 폭발이 더 일어나면서 렉싱턴은 대파되었고, 배를 구할 수 없음을 안 미군은 렉싱턴을 포기한 후 뇌격처분한다. 렉싱턴은 19시 52분에 침몰한다. 이 때 렉싱턴의 승조원들은 갑판에 모여서 퇴함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에 아이스크림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는 냉동고 문을 따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나눠 먹었다(...). 관련 링크(영문) 이러니 필리핀 해 해전 때 비행단장 조종사 구한 뒤에 아이스크림 더 내놓으라고 하지

3.4. 피해

USS 렉싱턴은 침몰했고, 공격을 받은 USS 요크타운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명중 및 지근탄으로 인한 선체 손상으로 완벽하게 수리하려면 3개월이 걸린다는 판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피해를 입었지만 다행히 동력과 엘리베이터가 무사했기 때문에 응급수리 후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일본 해군은 미해군의 항모 수를 단단히 오해하게 된다. 왜 오해하게 되는지는 미드웨이 해전 참고.

반면 일본은 당장 전력에는 그렇게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소형 항모 1척만을 잃었으므로 누가 봐도 일본이 득을 본 상황. 게다가 요크타운이 전투불능에 빠지면서 미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은 엔터프라이즈와 호넷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쇼카쿠는 폭탄 3발을 맞아 전방엘리베이터 및 함수 쪽 비행갑판과 격납고가 파손당하는 피해를 입었고[3] 즈이카쿠는 심각한 함재기 손실을 입었기에 이 전력으로는 상륙부대를 엄호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이노우에 중장은 뱃머리를 돌려서 퇴각했고 산호해 해전이 마무리됐다.

양측의 피해

  • 일본군 해군 연합함대
    • 항공모함 쇼호 격침, 쇼카쿠 중파, 항공기 손실 81기
  • 미합중국 해군 태평양 함대
    • 항공모함 렉싱턴 격침, 요크타운 중파, 항공기 손실 69기

3.5. 결말

항공전이 일단락된 뒤, 제5항공전대 사령관 하라 소장은 기동부대 사령관 타카기 중장에게 0식 함상전투기 24기, 99식 함상폭격기 8기, 97식 함상공격기 26기만이 작전가능한 상태임을 보고하였고, 타카기 중장은 항공기 손실에 더해 함선들의 연료부족[4]을 우려하고 있었다.

제4함대 사령관 이노우에 중장은 쇼호의 상실로 인해 상륙부대에 항공엄호를 제공할 수 없게 되었고, 5월 8일 아침에 포트 모르즈비 근방 해역에서 크레이스 제독 휘하의 미국-호주 연합함대를 발견한 바 있기에 작전의 중지를 결단, 상륙부대 및 기동부대를 후퇴시켰다.

4. 이노우에의 철수명령은 적절했는가?

이노우에 제독이 포트 모르즈비 침공을 포기하고, 상륙부대를 철수시킨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4.1. 비판

전투 보고를 들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크게 노해 펄펄 뛰면서 이노우에 중장을 엄청나게 질책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호넷은 둘리틀 특공대를 출동시킨 후에 진주만으로 돌아오고 있었기에 전투력이 0이나 다름없었고,[5] 요크타운은 전치 3개월 진단서를 끊었으며, 렉싱턴은 바닷속에 가라앉았고, 레인저와 와스프는 당시 몰타항공전에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셔틀 같은 임무를 수행하면서 대서양에 발이 묶여 있었으니 사실상 이 시점에서 미 해군이 사용할 수 있던 항모는 엔터프라이즈 한 척뿐이었다.

반면 일본은 아카기, 카가, 소류, 히류가 건재했다. 게다가 아직은 일본 전투기들의 성능이 연합군 전투기들보다 눈꼽만큼 앞서 있었고, 이 시기까지는 미군의 타치 위브 전술도 활용되지 않았고, 일본의 베테랑 조종사들도 건재하던 시기였으므로 비록 제로센의 종잇장 방어력으로 항공기 손실은 비슷했지만 전체적인 항공전력은 아직 일본군이 우위였다. 무엇보다도 목표점인 포트 모르즈비의 육상 방어 태세는 수백 명 규모에 변변한 야포조차 없는 등 그야말로 형편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일본이 여세를 몰아서 공격했다면 연합군은 빠르고 깔끔하게 박살날 상황이었고, 일본군은 파푸아뉴기니 전체를 장악할 수 있었다. 물론 태평양 전쟁의 전황이 결정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이후 부나-고나 전투 등 파푸아뉴기니에서 미군이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생각하면 훨씬 오랜 기간 미군을 괴롭혔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후 포트 모르즈비를 발판으로 한 미군/호주군의 상륙을 허용하면서 파푸아뉴기니는 치열한 전투 끝에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만한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전략적인 안목과 대담성이 있어야 한다. 애초에 전략적 목표는 포트 모르즈비였고, 허울뿐인 미드웨이의 전략적 목표는 미군 함대를 끌어내어 격멸하는 데 있었지, 미드웨이의 점령 자체는 큰 의미가 없으며, 포트 모르즈비는 미드웨이[6]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정말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포트 모레스비를 확보한다라는 것은 당시 제대로 된 병력이 없었던[7] 오스트레일리아 전체, 또는 적어도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지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만일 오스트레일리아가 일본군 손에 떨어진다면 일본군은 중국해안과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어지는 완성된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다. 결국 이어진 코코다 트랙 전투가 왜 일어났는가만 봐도, 포트 모레스비의 가치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처음부터 항모 한두 척은 각오하고 들어간 곳이며 오히려 이 정도는 예상했던 것보다는 가벼운 피해였는데, 조종사들이 피를 쏟아 가며 애써 차린 밥상을 '그냥' 물린 것이나 다름없는 어리석은 패착인 것이다. 이는 정확하게 진주만 공격 때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진주만에서도 피해를 지나치게 걱정해서 결정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는데, 이게 여기서 재연된 것이다. 상당히 냉정하고 차분한 성격인 야마모토 제독[8]이 길길이 날뛴 것도 이 때문.

4.2. 옹호

이노우에 제독에게도 철수할만한 이유는 있었다. 쇼카쿠 정찰기의 삽질로 상륙부대를 엄호할 경항모 쇼호를 잃었고, 주력부대에게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키누가사를 차출당한 공백이 컸다. 두 중순양함은 대파된 쇼카쿠를 호위하며 일본으로 돌아갔기에 포트 모르즈비 공격에 참가할 수 없었고, 남은 전력은 정말로 빈약했다.

항모와 베테랑 항공대가 건재했으나, 문제는 이 건재한 전력이 일본 본토에 있었다는 것(...). 실제 5월 8일 전투 종료 시점에서 일본군이 포트 모르즈비 침공을 강행했을 경우 동원가능한 항공전력은 고작 39대(+수리 가능 기체 17대)가 전부였다. 반면 미 항모부대는 전부 퇴각했으나 포트 모르즈비와 호주 북부 다운즈힐 공항의 미 육군 항공대는 여전히 건재했다.

이 시점에서 이노우에 제독에게 남은 전력은 다음과 같다.

  •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카코, 경순양함 유바리
  • 후부키급 구축함 사자나미
  • 무츠키급 구축함 7척 - 2차대전 무렵에는 이미 구식으로 분류되었으며, 1942년 시점에서 무츠키급에 달린 대공화기는 13mm 기관총 2정과 7.7mm 기관총 2정밖에 없다. 이걸로는 연합군의 공습을 절대로 못 막는다.
  • 카미카제급 구축함 3척 - 무츠키급보다 더 구식이다! 이 녀석들의 대공화기는 7.7mm 기관총 2정 뿐이다!
  • 경순양함 텐류, 타츠다 - 신형 구축함보다 약한 구식 순양함이다. 대공화기는 13mm 기관총 2정 뿐.
  • 수상기 모함 키요카와마루, 카미카와마루
  • 기뢰부설함과 수송선 수 척

대공화력이 정말로 안습하다. 그나마 25mm 대공기관포가 달린 놈들은 몇 척밖에 없고, 수상기 모함에 실린 수상기들이 본격적인 전투기에 맞서는 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노우에 제독이 상대해야 할 적은 포트 모르즈비와 호주의 쿡 타운 등에 배치된 연합군 비행대와, 근처에 있음이 확인된 크레이스 제독의 미국-호주 연합함대이다. 이런 전력으로 제공권도 없이 적 함대와 맞서는 것은 쉽게 결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습이라도 당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이 시점에서 포트 모르즈비를 공격했더라도 일본군이 윗 문단에 서술된 것 마냥 압도적인 전력으로 전략적 승리를 거뒀을 가능성은 낮다.

비슷한 예가 훗날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재현되는데, 미군과 일본군의 주력함대가 양측 모두 후퇴했지만 핸더슨 비행장이 있어서 미군이 제공권을 틀어쥐고 있었던 것. 과달카날에 상륙할 예정이었던 일본군 수송함대는 위험을 감수하고 진격했지만, 미군의 공습을 견디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수송함대의 행보에 대한 내용은 아오바 항목 참조.

그런데 사실 2차대전 개전 전에 요나이 미츠마사 해군대신, 야마모토 이소로쿠 해군차관과 함께 3국동맹 체결 및 개전에 끝끝내 반대한 이노우에 제독은 해군 주류한테 찍혀 있었다. 결국 일본군의 파벌주의가 이 전투의 평가에도 영향을 미친 셈. 어쨌든 해당 작전을 발안한 해군 군령부, 입안한 연합함대 양쪽에서 문제시되어 이노우에 중장은 10월에 해군병학교장으로 전출되고 만다.

5. 전투 이후

한 마디로 이 해전은 전술적으로는 일본군의 판정승, 전략적으로는 미군의 판정승이라 평가받는다. 피해는 미군이 더 입었지만, 전략적 목표인 포트 모르즈비를 지켜냈으니 최후의 승자는 미군. 덕분에 한숨을 돌린 미군은 둘리툴 특공대의 작전 성공으로 일본의 어그로를 끄는 데 성공하여 일본의 주력 함대를 태평양 한복판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하고, 미드웨이 해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가해자(?)인 일본군, 피해자인 미군 할 것 없이 최소한 3달은 수리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산호해에서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은 요크타운은 대반전 드라마를 찍어낸다. 자세한 것은 미드웨이 해전 항목을 참조[9]

사실 일본의 기동부대 중에서 햇병아리 취급을 받던 쇼카쿠와 즈이카쿠[10]가 이 전투에 참가하게 된 경위는 실전경험을 쌓게한다는 이유에서였는데, 신참 파일럿들이 난데없이 선배들도 겪어보지 못한 역사상 최초의 항모 기동부대전을 치르는 통에 괜히 피해를 늘리는 결과를 낳았다. 일본의 주력 기동부대였던 1항전이나 2항전이 참전했더라면 일본군의 압승에다 전략적 목표까지 달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평.

또한 이 전투 이후 수리와 함재기의 보충을 위해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당분간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다른 항모가 전력에서 빠진 상황이었다면 일본군의 미드웨이 공략은 좀 더 늦춰졌을지도 모르지만, 햇병아리들이 미군의 주력항모를 상대로 승리했다는 결과가 '미군의 항모는 별거 없다', '우리가 쉽게 이긴다'는 방심을 낳게되고, 일본해군은 항모전력의 1/3을 빼놓은채로 미드웨이 해전을 치르게되었다.

6. 의의

이 해전이 중요한 이유는 당시의 전략적인 요인을 제외하더라도 해전 자체의 틀을 완전히 바꿔버린 점이다. 원래 해전은 동서를 막론하고 수백 년 동안 가시 거리 내에서 이뤄지는 포격전으로 전개되며, 이는 항공모함이 도입된 뒤에도 항공모함의 함재기가 출격해서 적 함대를 포착하더라도 함재기들이 해전의 주역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적 함대를 귀찮게 해서 항해속도를 줄이고 약간 손상을 입히는 동안 고속으로 접근한 아군의 주력함대가 적 함대와 포격전을 벌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부터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해전의 주역이 되면서 답이 없을 땐 항공모함이 가야 하는 양상으로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물론 그 뒤에도 포격전이 간간히 벌어지기는 했다. 초기 포격전에서는 일본이 다소 우위였으나, 미해군이 레이더 조준포격을 활용하면서 포격전에서도 일본군이 박살났다. 실제로 이 해전은 양측의 함대가 서로를 직접 목격하지 못하고 싸운 최초의 해전이라고 한다.

7. 대중매체에서 다룬 산호해 해전

워낙 유명하고, 또 드라마틱한 미드웨이 해전에 밀려서 미디어화는 거의 되지 못했다. 1976년작 영화 <미드웨이>에서 이 해전 부분이 나오는데, 이 영화가 그렇듯이(…) 여러 화면 돌려쓰기와 대사처리로 때웠다. 폭파장면 역시 그냥 나오는 수준. 그나마 한국에서 출시된 비디오는 이것마저 통째로 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일본에서 이 해전을 매우 잘 애니화시킨 영상이 있다. 일본군의 대표적인 에이스 파일럿 중 하나인 '이와모토 테츠조'의 시점에서 재구성되었으며, 일본어 자막을 읽으면서 보면 산호해 해전의 대략적인 흐름도 알 수 있다. 퀄리티가 상당히 높아서 매우매우 강추할 만하다. 다만 이 영상에서는 5월 8일의 전투만 나와 있고, 전투 이후의 피해를 설명하는 부분에도 5월 8일의 전투만을 집계한 것인지 5월 6일에 격침당한 쇼호의 이야기는 빠져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전쟁 초반에 하와이가 일본에 점령된다[11]는 내용의 해리 터틀도브의 대체역사소설 <Days of Infamy>에서는 주인공들의 대사를 통해 산호해를 통해서 일본은 포트 모르즈비를 성공적으로 점령했다고 나온다. 어차피 이 작품에서 하와이가 일본군에 이미 넘어간 상태이니 연합군이 저항하기 어려웠을 터이다.

함대 컬렉션/애니메이션 7화가 상당히 유사하다. 일단 작품내 등장하는 작전명부터가 'MO 공략전'이고, 전개 자체가 산호해 해전을 빼다 박았다. 고증은 잘했지만 일부 묘사는 틀리다.

  • 쇼호를 호위한 제6전대와 호위함들의 이름은 고증에 충실하나, 유바리를 제외하면 얼굴도 안 나온다.
  • 작전중 쇼카쿠가 탈탈탈 털렸다. 함대 컬렉션의 대파 일러스트처럼 화려하게 옷이 찢어지지는 않았지만, 묘사로 봐서는 영락없이 대파다.
  • 즈이카쿠가 스콜속에 몸을 숨겨서 적의 폭격을 피한다. 역사에서는 즈이카쿠가 혼자 몸을 피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대파된 쇼카쿠를 데리고 함께 도망친다.
  • 쇼호가 불타는 장면이 나왔다. 일단 침몰하는 묘사는 나오지 않았지만... 침몰까지 했으면 참 좋은 묘사였겠지만... 함대 컬렉션 3화의 쇼크가...
  • 암호문이 심해서함 측에 전부 해독되고 있다. 실제 역사와는 달리 진수부에서도 어느 정도 암호 누출을 파악했다는 게 차이점.
  • 실제 역사에서는 제6전대의 정찰기들이 요크타운과 렉싱턴의 위치를 파악해서 상부에 보고했지만, 위에 나와 있듯 쇼카쿠와 즈이카쿠의 지휘관들이 엉뚱한 데로 함재기를 날리는 바람에 정보가 사장당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고, 후부키의 제5유격함대가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쇼호가 불타는 것으로 나온다. 고증대로 하면 후부키는 무능한 기함이 되므로 수정한 듯.
  • 키누가사와 후루타카가 차출되는 장면도 없어졌다.
  • 실제 역사에서 렉싱턴은 전투가 끝난 후 폭발사고로 침몰하게 되지만, 애니메이션의 심해서함은 공격을 받고 즉시 침몰했다.

배틀스테이션 시리즈에서도 캠페인에서 등장하며, 스커미쉬 모드로도 등장한다. 스커미쉬 라지맵 기준, 항공모함이 2척 주어진다,

8. 관련 링크


  1. [1] 툴라기 침공이 끝나면 이들도 포트 모르즈비에 상륙하는 부대를 엄호할 예정이었다.
  2. [2] 이때 돈틀리스들 중에서도 적기 격추 보고를 올린 이들도 꽤 있었다. 대표적으로 존 레플러 중위가 제로 4기, 스탠리 베타사 소위가 3기를 격추했다고 보고를 올렸지만 일본군 기록에는 격추된 제로센이 없다. 단 이후 "아 이거 얻어맞고 와서 못쓰겠는데요" 하면서 폐기한 제로센들과 모함에 착함이 불가능해 해상에 버려진 제로센들도 있으므로 실제로 교전이 일어난 것은 확실하다.
  3. [3] 마침 항공대가 공격대 뛰러 나가서 그나마 피해가 적었다. 항공대가 폭탄과 연료를 만재한체 이함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공격받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미드웨이 해전아카기 항목을 참조.
  4. [4] 구축함의 경우 연료 재고가 20%인 함선들도 있었다.
  5. [5] 폭격기를 싣느라 함재기들을 모두 다른 곳에 내려야 했다.
  6. [6] 섬이 워낙 좁아 터져 활용할 건덕지도 없고, 본토와의 거리도 애매하게 멀어서 유지비만 와창장 깨지는 곳. 더구나 하와이 점령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판타지였고. 이는 대본영에서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사실이다. #참조
  7. [7] 오스트레일리아의 주력군은 안작군의 형태로 외부 파견을 나갔거나, 혹은 싱가폴 전선에서 포로가 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오스트레일리아 전군 통수권은 필리핀에서 도망쳐 온 맥아더의 손에 들어가 있었는데, 워낙에 자체 병력이 적었기 때문에 맥아더를 통해서 미국 지원을 얻는 것이 더 현실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코다 트랙 전투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군이 사실상 의용군이 주력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8. [8] 진주만 공습의 기적적인 대성공에도, 미드웨이 해전의 어이없는 대패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사람이다. 물론 속마음까지 그랬을 리는 없지만(…). 당연히 겉으로 티를 안 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천성까지 받쳐줘야 가능할 정도로 어려운 일.
  9. [9] 일본군이 자신만만하게 함대결전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상식적으로도 이 판단이 맞았지만... 군대에 불가능이란 없다(…).
  10. [10] 진주만 공습을 석달 앞두고 어떻게든 출격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어거지로 긁어모은 파일럿들이었다.
  11. [11] 앞선 각주에서 설명되었지만, 차라리 샌프란시스코(…)를 기습함락시킨다는 소리가 더 현실성 있을 정도로, 일본군의 하와이 점령은 절대 불가능한 시나리오이다. 그냥 픽션일 뿐이라고 생각하자. 하와이는 지형으로나 병력규모로나 지브롤터를 능가하는 동시대 최강의 요새 중 하나였으며, 일본군은 물론 미군조차도 타라와 전투 이전까지는 원거리 상륙전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하고 어려운 작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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