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워커

1. 개요
2. 생애

1. 개요

Sam Sims Walker

샘 심즈 워커

1925년 7월 31일 ~ 2015년 8월 8일

세대에 걸쳐 대한민국을 지켜준 전쟁 영웅, 호부호자의 대표적 사례. 이분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최고의 전쟁 영웅 중 한 명인 월튼 워커이고, 샘 워커 본인도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미8군사령관이었던 아버지와 같이 낙동강 방어선의 최전방에서 공산군과 맞서 싸웠다. 이 당시 아버지는 중장, 본인은 대위였다.

2. 생애

1925년에 미국 뉴욕 웨스트포인트에서 월튼 워커의 무매독자 외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인 월튼 워커가 37세 때 태어난 늦둥이였다. 샘 워커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1941년 버지니아군사대학(VMI)에 입교했으며, VMI 재학 중 미 육사 시험을 준비하여 이듬해인 1942년 웨스트포인트 미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다. 1946년 미 육군 보병 소위로 임관, 주일미군 제11공수사단에서 일본 점령군으로 복무했고, 6·25전쟁 당시에는 미 육군 제 24보병사단 보병 중대장으로 참전했다.

6·25 전쟁 초기부터 참전하여 초기 지연전과 낙동강 방어전투, 38선 돌파, 중공군 공세로 인한 후퇴를 다 경험했다. 샘 워커는 6·25 전쟁에서 은성무공훈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1950년의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자신에게 직접 훈장을 달아주기 위해 아들이 있던 부대로 오고 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때 미국 정부에서는 샘 워커에게 부친상을 치르라고 특별휴가를 줬는데, 그는 아버지의 뜻을 자기가 대신 이뤄야 한다면서 이 휴가를 거절하고 한국에 남아서 계속 전쟁에 참여했고, 오죽했으면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이 샘 워커에게 휴가를 다녀오라고 직접 명령을 내려야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샘 워커는 개인사유로 군의 사기에 영향을 끼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맥아더의 명령을 거부하고 계속 싸우기를 고집했다. 더군다나 샘 워커는 한국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고 한국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반도에 남아서 공산군과 싸웠다는 얘기가 항간에 퍼져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샘 워커 대위는 부친의 영정을 미국으로 운구했고, 상주로서 장례식을 끝까지 지켰다. 장례식 이후 규정에 따라 휴가 복귀하여 1년의 파병을 기간을 끝까지 다 채우고, 1951년 미 육군 보병학교로 전근, 교관으로 근무했다.#

1957년 지휘참모대학 졸업, 미 육군본부,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장교, 주한미군 사령부를 거쳐 1963년 국방참모대학을 졸업했다. 30보병 1대대장을 거쳐 베트남 전쟁에 참전, 제1보병사단 작전참모(G-3)로 근무했으며, 중령 계급으로 동 사단 2여단장으로 애틀보로 작전(Operation Attleboro)에 참가했다. 1년 간의 베트남전 파병을 마친 이후 하버드 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육군참모차장실 동원기획관 근무, 미국외교협회(CFR) 파견 근무, 1968년 준장 진급, 제82공수사단 부사단장, 미 육군 사관학교 생도대장, 소장 진급, 제3보병사단장, 중장 진급, 미 육군 전력사령관, 1977년 미군 역사상 최연소 육군 대장으로 진급 후 주터키 터미연합 남동 지상군(COMLANDSOUTHEAST) 사령관 역임. 아버지 윌튼 워커 중장이 대장으로 사후 추서되었기 때문에 미국 육군 역사상 최초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대장을 단 군인으로 남게 되었다.[1] 1978년에 퇴역했다.

퇴역 이후에는 1981~1988년까지 버지니아 군사대학(VMI) 총장을 역임했고, 한미국제교류재단 이사, 한미 안보연구 협의회 이사, 국립 디데이 박물관 이사, 터미친선협회 이사를 지냈다. 2005년 미 육군 사관학교 총동문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15년 8월 8일 별세하였다. 향년 90세.

슬하의 아들들도 다 군대에 입대했고, 그 중 한 명은 대령으로 제대했다.


  1. [1] 참고로 미군 전체에서는 미국 해군존 매케인 부자(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조부-부친)가 각각 1949년(추서)과 1967년에 4성 제독으로 진급한 전례가 있고, 미국 공군에서는 존 라이언, 마이클 라이언 부자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사례가 있다. 21세기 들어서는 2015년에 크레이튼 에이브럼스의 둘째 아들이 4성 장군에 올랐고, 2015년 3남도 4성을 달았다. 이 집안은 아버지와 아들 둘이 대장이고, 맏아들 역시 준장까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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