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양도성

  한양도성 안쪽을 일컫는 지역에 대한 내용은 사대문안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대한민국 사적 제10호

서울 한양도성
서울 漢陽都城 | Hanyang City Wall, Seoul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누상동 산1-3 외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시설

면적

639,217.6㎡

지정연도

1963년 1월 21일

건축시기

조선시대, 14~18세기

1. 개요
2. 축성
3. 시련
4. 복원
4.1.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5. 한양도성 순성길
5.1. 인왕산 구간
5.2. 백악(북악) 구간
5.3. 낙산 구간
5.4. 흥인지문 구간
5.5. 남산(목멱산) 구간
5.6. 숭례문-정동 구간
6. 기타
7. 바깥고리
8. 같이보기
9. 둘러보기
10. 서울한양도성 개요
11. 한양도성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12. 상세
13. 시티오브런던과 유사성
14. 녹색교통지역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제한
15. 풍부한 문화유산

1. 개요

도성도(18세기 제작 추정)

조선수도였던 한양, 지금의 서울특별시의 주위를 둘러싼 성곽과 문을 일컫는 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396년에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후 궁궐과 도시를 방위하기 위해 지은 도성이다. 흔히 한양도성하면 성벽만을 생각하는데 숭례문, 흥인지문을 비롯한 서울 4대문과 그외 문도 한양도성에 포함된다.

'서울 성곽'이라는 이름도 이 도성의 한때 공식 명칭이었지만 2011년 7월 사적의 통일된 지정명칭 부여 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서울 성곽이라는 단어는 통용되고 있으며 문화재 안내판에도 서울 성곽이라고 표기된 곳이 많으며 서울시가 정한 도성 순례길의 명칭도 '서울 성곽길'이다.

2. 축성

1395년 수도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이성계는 도성을 건축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를 위해 도성 건축 담당 기구인 '도성축조도감(都城築造都監)'을 설치했다.

성이 낙성된 후에는 배수지(排水地)로 5칸 수문(五間水門)·2칸 수문 등을 만드는 한편 성곽의 관문(關門)으로 숙청문[1](肅淸門 : 북대문)·흥인문(興仁門 : 동대문)·돈의문(敦義門 : 서대문)·숭례문(崇禮門 : 남대문)의 4대문과 혜화문(惠化門 : 동소문)·광희문(光熙門 : 시구문)·창의문(彰義門)·소덕문(昭德門 : 서소문) 4소문을 합해 8문을 완성하였다.[2]

초축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태종, 세종, 숙종 연간 등의 여러 시기에 걸쳐 유지보수된 흔적이 남아있으며 그에 따라서 성석을 쌓은 모습이 차이가 있다. 그 양상의 변화는 일정한 패턴이 있는 것은 아니나 점차 정방형(정사각형)의 석재로 가공해서 쌓는 방법으로 변화하며 숙종 대에 이르러서는 정교한 정방형의 형태가 완성된다. 북악산 안내소의 팜플렛에 이러한 시대별 축조 차이가 설명되어 있으며, 성벽을 조금만 살펴보면 쉽게 볼 수 있으니 알아두면 투어의 소소한 재미가 될 것이다.

성벽의 높이는 5m 남짓으로 그다지 높지 않으며, 해자조차 없었기 때문에 방어력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적이 한양까지 쳐들어오면 한양을 버리고 도주해야만 했다. 임진왜란,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모두 그러했다. 3차 거란 전쟁 때 10만의 정예 거란군이 개경까지 왔으되 끝내 함락시키지 못해서 돌아가다가 귀주에서 격파됐던 것을 생각하면, 또 태조 이성계요동성도 함락시킨 역전의 명장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동래성진주성에도 있던 해자가 왜 도성의 성곽에는 만들어지지 않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이어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도성은 전쟁이나 내란 방어용 성곽으로서의 방위 기능보다 왕권의 상징으로서의 의미가 더 컸으며, 실용적 시설이라는 측면보다 인의와 예를 강조하여 평온을 기원하고자 했던 관념적으로 운영된 성격이 컸다고 설명한다[3]. 여러 전란을 겪는 동안 한양 방위체제는 계속해서 개편되었다. 또한 한양도성이 토성이 아닌 석성이 된 이유는 조선 전기 동아시아에서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수도가 석성으로 이루어진 도성을 갖고 있느냐 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참고로 한양도성을 처음 축성했을 때 사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곽 축성 기간이 49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기만하다.

3. 시련

임진왜란 당시 성곽의 일부가 부서지고 광해군이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지만 이후의 병자호란때 청나라와의 조약 중 성곽을 복원도 추가로 쌓지도 하지 말라는 조약으로 그냥 방치되다가 1704년(숙종 30년) 이조판서 이유(李儒)의 주장으로 5군문(五軍門)의 장정을 동원하여 1711년(숙종 37)까지 수축하였으며, 1743년(영조 19년)에 다시 고쳤다. 그밖에도 효종·현종·영조·순조 시대에 부분적인 개수를 행했으나 현재 남아 있는 서울의 성곽은 대체로 태조·세종·숙종 때의 것이다. 이때까지 만 해도 한양도성은 상당히 90%가량 복원되었으나 일제강점기6.25 전쟁으로 도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4. 복원

위 이미지는 2012년 자료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방 유적 보존 및 정비 지시에 따라 구자춘 서울특별시장이 본격적으로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다. 1975년 광희문 문루 복원을 시작으로 훼손된 체성과 여장 복원, 주변 가옥 매입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1975년부터 삼청지구(창의문~숙정문) 복원에 이어 2013년까지 진행된 인왕산 정상구간까지 총 길이 18,627m 중 69%인 12,771m의 복원작업이 완료되었다. 2013년 5월 4일 숭례문 복구 기념식과 함께 숭례문 남동측 광장구간 성벽복원까지 마무리 됐으며 남산 구간, 시장공관 구간, 동대문 성곽공원 구간이 추가로 복원될 예정이다.

2019년 정동길에서 돈의문터에 이르는 순성길을 정비하기로 했다. 그동안 사유지였거나 이화외고, 창덕여중에 속해 있어 우회해야 했던 순성길을 원래 도성터 근처로 정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성곽이 건물에 가려져 있거나 아직도 땅속에 파묻혀 있다. 그리고 숭례문같은 대문에 비해 성곽은 인지도가 많이 떨어져 일반인들의 관심도 필요할듯 하다.

4.1.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2012년 11월 23일 서울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면 1년 뒤부터 등재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유네스코 권고 기준에 맞는 보존 관리를 하기 위해 올해 한양도성 전담부서를 신설한 데 이어 내년에 한양도성 연결 사업 등에 71억 원 가량을 우선적으로 투입할 계획이다. 2013년부터는 연차별로 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초 세계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만약 서울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성곽은 물론 그 외 숭례문,흥인지문,숙정문같은 서울 4대문도 세계유산에 등재될수 있다.[4] 서울시는 체계적인 한양도성 관리를 위해 시 내부에 전담조직인 한양도성도감을 올해 하반기에 새로 만들고 책임자로 ‘도제조’[5]를 두기로 했다. 책임자는 4급 공무원이 맡게 될 예정으로 규모는 시 조직의 1개 과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내 공간을 활용해 한양도성 박물관과 연구소도 설립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7년 3월 21일 이코모스로부터 다른 나라의 세계유산 도시 성벽과 비교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등재 불가로 결정되면서 사실 상 등재가 불가능해졌다.# 꼭 다른나라의 도시 성벽까지 안가더라도 우리도 있잖아

현재 세계유산 2022년 등재를 목표로 자료를 보강하여 재추진하는 중이다. 참고로 이 성 내에 일부로 추정되는 5대 궁궐중 하나인 창덕궁종묘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있다.

5. 한양도성 순성길

한양도성은 서울 도심을 순환하며 수록이 적당히 우거져 시원하면서 보기 좋고 높낮이도 적당히 있어서 산책하기에 매우 좋다. 과거에도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면서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을 순성(巡城)놀이라고 하며 조선시대 당시 한성부 사람들이 여가활동으로 하였다. 현대까지 풍경이 잘 남아있는 인왕산-북악산 지역은 물론이고 낙산, 목멱산(남산)등지 또한 조선시대에는 서울의 명승지였다. 최근들어 한양도성 순성길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시내에 위치한 순성길 주변에 많은 편의 시설이 갖춰지기 시작했으며 외국인 들에게도 인기코스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 산책의 소소한 재미로 각 대문 인근에 스탬프가 있으며, 같은 함에 들어있는 스탬프투어 종이에 각 대문의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완주기념배지를 준다. 스탬프투어 종이 뒷면에는 꽤 잘만들어진 서울 한양도성 관광안내지도가 인쇄되어 있다. 동대문이 있는 동대문역한양도성박물관도 있다.

한양도성 순성길 세부지도, 2012년 자료

5.1. 인왕산 구간

강북삼성병원 입구 돈의문 터에서 인왕산 정상, 창의문에 이르는 인왕산 구간은 비교적 최근 지어진 경희궁자이 단지를 끼고 있어 무난히 출발할 수 있다. 가는 길 중간에 홍난파 가옥과 사직터널 위를 통과하며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 길을 건너면서 본격적인 산행 코스가 시작된다. 평소에 운동을 좀 했다면 무난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꽤 힘든 여정이 될 수 있다. 의외로 외부 순성길에서 바라보는 성벽이 훨씬 멋지므로 외부 순성길을 통해서 오르다가 인왕산 정상에 가까워 질 무렵 내부 순성길로 들어갈 수 있다. 참고로 해가 지기 1시간 반 정도 전부터 강북삼성병원에서 오르기 시작하면 서울 사대문 도심의 마천루들이 조명을 켜는 순간을 볼 수 있으므로 일몰 시간을 체크한다면 멋진 서울 도심의 야경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왕산 정상에서 본 사대문안 도심

참고로 인왕산 정산 뿐만 아니라 인왕산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 창의문, 윤동주 기념관 방향으로 5-10분 가량 걷다보면 시야가 홍제동, 한강 하류 방향과 서울 사대문 도심 방향이 모두 보이는 포인트가 있으니 참고할 수 있다. 입산 시간이 한정되는 북악산 구간에 비해 산행이 자유로우며 풍경은 그에 못지 않아 야경을 보기 위해서는 낙산 구간과 더불어 서울 야경을 위한 멋진 코스 이다.

창의문 방면 야경 포인트에서 바라본 사대문안

참고로 반대편에 보이는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N서울타워에서 보는 서울 야경보다 인왕산-창의문 구간에서 보는 서울 아경이 더 멋지다고 하는 외국인 후기들도 많다. 인왕산을 거쳐 창의문으로 들어오게 되면 윤동주 시인의 언덕과 기념관이 있는데, 운영시간에 맞춰 들어가면 윤동주 관련 동영상(12분)뿐 만 아니라 윤동주의 일생에 대해서도 훑어볼 수 도 있다. 저녁 때 창의문까지 왔다면 북악산 구간을 입산 제한 시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버스를 타고 광화문 인근으로 와서 삼청동에서 택시를 타고 삼청터널을 거쳐 한성대학교 쪽에 있는 혜화문-낙산 구간으로 이동하거나, 삼청동-계동길을 거쳐 와룡공원-경신고-혜화문 구간을 거쳐 낙산 구간을 향할 수 있다. 계동길중앙고등학교창덕궁 후원, 북촌한옥마을, 사대문안 종로 도심과 더불어 상당히 멋진 풍경을 제공한다.

5.2. 백악(북악) 구간

한옥 건축가로 유명한 황두진이 지은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2005년 출판, 해냄출판사)를 보면 그 당시만 해도 개방되지 않은 구간이라 상상으로 북악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사대문안을 스케치한 이미지를 실을 정도로 이 구간에서 바라본 사대문 도심, 경복궁과 창덕궁 후원이 매우 아름다울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악산, 청운대 뿐만아니라 구간 대부분에서 서울 사대문안이 멋진 모습으로 보이며 인왕구간의 곡장처럼 이곳도 곡장이 있어 아리랑 고개 뒷편과 성북동 방향도 아주 잘 보인다. 창의문 방향에서 숙정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1.21 소나무(68년 무장공비 침투 때 생긴 총탄 흔적)도 볼 수 있다. 개방된지 이제 10여년 밖에 되지 않아 나무가 꽤 우거진 편. 여담으로 말바위 안내소에 있는 화장실은 물을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설명으로는 발효를 이용해서 분해하는 방식인 듯.

백악 구간 스케치: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황두진 저, 2005, 해냄출판사

창의문 안내소-말바위 안내소 구간의 순성길은 탐방시간과 출입구에 제한이 있다. 1968년 김신조 일행이 침투해온 루트였기 때문에 국가보안상 중요한 곳이기 때문. 사건 이후 40년 동안 민간인 통행 불가지역이었던 이곳은 2007년 4월 오픈되었는데, 양끝의 안내소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신분증[6]을 보여주고 신청서를 작성하면 표찰을 빌려주며 반대편 안내소로 나갈때 반납하면 된다. 오픈시간은 하절기는 09시부터 18시까지(입산은 16시까지), 동절기는 09시부터 17시까지(입산은 15시까지)였다. 2019년 4월 5일부터 탐방시간이 확대개방되었다. 겨울(4개월, 11~2월)은 09시부터 17시, 봄가을(4개월, 3~4월/9~10월)은 07시부터 18시, 여름(4개월, 5~8월)은 07시부터 19시까지이다. 동시에 탐방절차가 간소화되어, 신분확인 절차가 생략되어 바로 표찰을 빌려준다. 신분증은 필요하지 않게되었지만 수시로 등산복 차림의 군인들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확인하고 곳곳에 CCTV와 탐조등과 감지장비가 있으니 허튼짓은 생각하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특히 드론 촬영 역시 군사지역이라 허가 없이 불가능하니 꼭 주의 하시길...

5.3. 낙산 구간

혜화문 옆을 통과하는 창경궁로를 건너면 바로 낙산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 북악산 구간이나 인왕 구간에 비하면 비교적 완만하고 듬성 듬성 있는 장수마을 카페나 외부 순성길의 도성은 특히 저녁이나 밤에 로맨틱한 광경을 제공해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길게 연결된 도성에 비치는 조명이 상당히 독특하면서 로맨틱한 장면으로 보이는 듯. 낙산 공원 정상에서 동숭동, 서울대 병원 방면으로 나즈막히 보이는 도심 풍경과 멋진 구간이다. 이후 암문을 거쳐 내부 순성길을 통해 이화벽화마을로 진입할 수 있으며 이후, YWCA방면으로 갈 수도 있다. 계속 순성길을 따라가면 한양도성박물관-서울성곽공원-동대문 까지 이어진다.

낙산 공원 인근의 한양도성

5.4. 흥인지문 구간

이곳 흥인지문 구간은 흥인지문을 걸쳐 이간수문, 동대문 운동장 터에 세워진 DDP, 광희문을 연결한다. 간선도로 및 전차도선이 이미 일제시대 때 부터 놓였기 때문에 숭례문-정동 지역더불어 한양도성이 가장 많이 파손된 지역이다. 오간수문도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복원 같지 않게 복원되었다. 사실 사대문안을 관통하여 물길이 빠져나가는 청계천은 이전 조선 시대부터 사대문안 구역의 하수도 역할도 맡았으며 운반된 퇴적물이 막혀 바닥 준설을 주기적으로 해줘야 했던 곳이다. 이후 한양공고부터 광희문(수구문, 시구문)에 이르는 구간은 그 한양도성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5.5. 남산(목멱산) 구간

광희문에서 이어져서 서울신라호텔, 국립극장, N서울타워를 거쳐,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백범광장을 거쳐 서울 힐튼호텔, 숭례문까지 이르는 구간이다. 목멱산(남산)에는 굳이 입장료를 내고 N서울타워에 오르지 않더라도 경관이 좋은 전망대가 여러군데 있다.

목멱구간의 한양도성

5.6. 숭례문-정동 구간

한양도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의문(소덕문, 서소문)과 돈의문(서대문, 새문)의 멸실 과정에 대해 많이 들어봤을 것이며 이후, 도시화 과정을 거치며 이 구간 대부분의 도성이 멸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지역도 그 위에 빌딩이나 학교가 들어서 있어 앞으로의 실질적인 복원에도 매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인왕 구간 중 사직터널 윗 구간도 마찬가지. 본 지역도 소실된 곳이 많아 별도의 구간을 형성하지 못하고 인왕구간에 포함되어 있다

성문 폐문 시간 이후 소의문 근처 성벽을 넘는 외국인과 안내인 소년; 한양도성박물관 내 모형 촬영

한양도성 박물관에 가면 폐문 시간에 급한 일이 있어 소의문 근처 도성 낮은 부분을 넘어가는 외국인과 그를 안내한 소년의 모습을 모형으로 전시한 것이 있다. 한양도성 박물관 기록에 따르면 실제 있었던 일을 재현한 듯. 숭례문 양측의 성벽이 복원되기 이전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인근에 있던 소의문을 잊고 살았음을 느끼게 해준다. 외국계 회사 지사, HSBC빌딩, 상공회의소 건물에 가려져 있고 파손되어 잊혀져가는 이 구간의 한양도성 터를 보면 안타까울 따름...

6. 기타

  •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은 객관적인 높이 자체는 높지 않지만 서울이 낮은 평지가 많다보니 꽤 경사가 있다. 특히 북악산을 창의문(북소문)쪽에서 올라가기 시작한다면 단번에 200m를 계단으로 걸어올라가야 하니 급격히 증가하는 운동량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바꾸어말하면 넓은 평지 위에 드문 산이니 올라가면 서울 일대가 한눈에 보인다. 잠실타워와 63빌딩으로 동서남북 가늠하기도 쉽다 나름 굉장한 장관이니 운동을 겸해서 종종 올라가면 재미가 있다.
  • 성벽 위에 올라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곳곳에 써있지만, 감시가 느슨한 곳에서 위에 걸터앉거나, 올라서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길이가 상당히 긴편에 속하는데 한양도성의 총 길이는 18.627㎞이고 현재 길이는 12.344km이다.[7] 해외의 도시성곽과 비교해보면 세계 최장의 성은 중국의 남경성으로 총 길이는 약 34km이고 현재 길이는 약 25km이다.출처 비교해보면 길이가 남경성의 절반 정도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긴 성벽으로 역사상 총 길이가 약 19km였던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이나 그보다 더 거대했던 콘스탄티노플 성벽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한양 도성보다 보존상태가 좋지 않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가장 두꺼운 삼중성벽 부분만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의 경우 3분의 2 정도 남았지만 한양도성의 현재 길이보다 약간 짧다. 국내에 소재하는 도시성곽과 비교해보면 개경 나성은 길이가 약 16km, 개경성 총길이는 23km로 더 길고출처[8] 평양성은 총 길이가 약 16km로 약간 짧으며 성벽의 총 연장길이까지 따지면 약 23km로 더 길다.출처 태봉국 철원성은 총 길이가 약 12.6km이며 수원 화성은 총 길이 약 5.5km이다.

7. 바깥고리

8. 같이보기

9. 둘러보기

한양도성 8대문 및 보신각

창의문


북문

혜화문


서대문

지문
동대문

소의문


남대문

광희문

10. 서울한양도성 개요

한국어·Korean: 서울한양도성

영어·English: Seoul Walled City

한자·Chinese: 首爾漢陽都城

이 문단에서는 서울특별시의 두개의 행정구 안에 속하는 15개 행정동을 설명한다.

11. 한양도성에 해당하는 행정구역

*법정동이 아닌 행정동기준*

한양 도성의 행정구역은 종로구 8개동 중구7개 동에 해당한다.

조선시대 부터 근대기를 거치면서 성벽을 기준으로 행정동이 나뉘어졌다.

소실된 구역에 대해서는 성벽은 남아있지 않아도 지적도와 행정동을 기준으로 성벽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이화여고, 한양공고일원에서 과거의 성벽을 넘어 행정구역이 설정된 구역이 손에꼽을만큼 드물게 존재한다.

종로구(8개동)

청운효자동, 사직동, 삼청동, 가회동, 종로1·2·3·4가동, 종로 5·6가동, 이화동, 혜화동

중구(7개동)

소공동, 회현동, 명동, 필동, 장충동, 광희동, 을지로동

12. 상세

이곳 '서울한양도성'지역은 1394 년 조선 왕국을 창설 한 후 세워진 도시다.

벽돌로 된 성벽이 도시를 두르고 있어서 조선시대 초기에 기존에 '한양'이라는 명칭에서

성읍도시를 뜻하는 '한성'이라고 바꿔서 불렀다.

현재 서울 지방정부에서는 해당 구역을 '녹색교통지역', '한양도성내부' 등으로 부른다.

13. 시티오브런던과 유사성

서울의 한양도성 지역은 그레이터 런던의 시티오브 런던처럼 별도의 행정시스템을 갖춘 지역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의 서울시 정부에서 자체적으로 특별한 행정구역으로 만드는 시도를 진행하고 있다.

첫번째로 시행한것은 한양도성지역 내부의 오염 차량을 제한하는 것이다.

14. 녹색교통지역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제한

– 운행제한지역 : 녹색교통지역 (한양도성 내부)

– 운행제한 대상 : 녹색교통지역에 진입하는 배출가스 5등급 차량(전국)

15. 풍부한 문화유산

이 도시에는 동대문(흥인지문), 남대문(숭례문)과 같은 대표적인 성문이 있다.

조선 왕국에는 5 개의 대표 궁전도 있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이 있다.

이 도시의 중간에는 청계천이라는 역사적인 개울이 있다.

서울시는 도시 지역을 '특별 지역'으로 선언했으며 오염 된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정확한 이름은 '녹색교통지역' 이다.

현재 서울시청에서는 해당 구역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특별관리하고 있다.

'한양도성내','4대문구역' 같은 토지이용규제 관리 시스템이 있지만 일부는 성밖 구역을 벗어난다.

가장 정확한 한양도성내부를 의미하는 성벽 내부의 구역은 '녹색교통지역'으로 행정적으로 관리및 분류된다.

이 도시에는 동대문(흥인지문), 남대문(숭례문)과 같은 대표적인 성문이 있다.

조선 왕국에는 5 개의 대표 궁전도 있다.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경희궁, 창경궁이 있다.

이 도시의 중간에는 청계천이라는 역사적인 개울이 있다.

서울시는 도시 지역을 '특별 지역'으로 선언했으며 오염 된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정확한 이름은 '녹색교통지역' 이다

누가 편집하다 말았네


  1. [1] 또는 숙정문(肅靖門)
  2. [2] 위키백과
  3. [3] 나각순. 2012. "서울 한양도성의 기능과 방위체제". 향토서울 80. 서울역사편찬원 자료제공
  4. [4] 돈의문은 아직 복원 안됨
  5. [5] 실지 제조, 도제조는 대게 판서, 정승급의 대신들이 겸직했다. 그리고 도제조는 정일품 관료들의 명예직이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우측 링크를 참조. # 대장금 등 드라마에 나온 개념을 차용한 티가 팍팍 난다.
  6. [6] 반드시 원본이 필요하고 사본이나 사진은 인정되지 않는다.
  7. [7] 4. 복원 단락 이미지 참조
  8. [8] 개경성은 한양도성처럼 1단 구조가 아닌 4단 겹구조이다. 가장 바깥의 외성만 있는것이 아니고 내성, 황성, 궁성이 외성 안에 또 있었다. 개경성은 강감찬 제의 왕가도 건설으로 1009년~1029년의 21년간 30만 4,000여명의 인력으로 나성(외성), 황성(발어참성), 궁성 3중 구조로 건설하고 여말선초 1391년~1393년 8.5㎞의 내성 축조로 총 둘레 약 23㎞의 나성(외성), 내성, 황성(발어참성), 궁성 구조의 4중구조, 25개 성문으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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