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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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特別市長 / Mayor of Seoul

1. 개요
2. 법적 권한
3. 상세
4. 주요 서울특별시장
5. 명단

1. 개요

대한민국수도서울특별시시장이다. 임기는 4년이며, 3선까지 가능하다.

서울특별시의 규모만큼이나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권한과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도 매우 크며, 정치적 비중도 아주 높다. 다른 광역자치단체 수장이 차관급으로 대우받는 데 비하여, 유일하게 서울특별시장은 장관급으로 대우받는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비슷했는데, 관찰사(지금의 도지사) 등은 참판(차관)급(종2품) 대우를 받았지만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은 판서(장관)급(정2품) 대우를 받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경기도 인구가 서울시를 추월하기는 했지만, 서울특별시장의 위상이나 특별 대우는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특별시장은 '특별시의 시장'으로서 정치적 영향력 외에도 지자체장 자체의 권한이 막강한 반면, 경기도 지사는 도의 지사로서 광역시장에 비하면 지자체 내의 권한이 약하기 때문이다[1]. 여기에 서울시의 수도로서 위상이 플러스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서울시가 설립하고 운영 중인 서울시립대학교의 학교운영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2. 법적 권한

국무회의 규정

제7조(대리 출석)

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에 출석하지 못할 때에는 각 부의 차관(행정안전부의 재난안전관리사무에 관하여는 이를 담당하는 본부장을 포함한다)이 대리하여 출석한다. <개정 2013.3.23., 2014.11.19., 2017.7.26.>

② 대리 출석한 차관은 관계 의안에 관하여 발언할 수 있으나 표결에는 참가할 수 없다.[전문개정 2011.11.7.]

제8조(배석 등)

국무회의에는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안보실장,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무조정실장, 국가보훈처장, 인사혁신처장, 법제처장, 식품의약품안전처장,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금융위원회위원장, 과학기술혁신본부장, 통상교섭본부장 및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 다만,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중요 직위에 있는 공무원을 배석하게 할 수 있다. <개정 2013.3.23., 2014.11.19., 2017.7.26.>

② 의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중앙행정기관인 청(廳)의 장으로 하여금 소관 사무와 관련하여 국무회의에 출석하여 발언하게 하거나 관계 전문가를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들을 수 있다. [전문개정 2011.11.7.]

3. 상세

소통령(小統領)[2]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사실상 대한민국 공무원 2인자이다.[3][4] 임명직 시장 시절부터 현행 선출직 시장까지 국무회의에도 참석이 가능하며, 발언권, 심지어 자유롭게 의결권도 있다. 한국의 국무회의는 대통령 중심제 특성상 서울시장을 제외한 참석자 전원이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뜻에 반하는 의견이 나오는 경우는 야당 출신 서울시장이 발언할 때를 제외하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야당 출신 서울시장이 참석하면 국무회의가 만장일치가 안 나오는 경우가 있다. 제7조에 따라 차관을 파견할 수 있는 지위에 바로 서울시장이 자리해 있기때문에(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대리출석 시킬 수 있다), 서울시장도 국무위원은 아니나 국무회의에서 의결권을 가진 존재로 분류된다.

장면 내각 시절에는 민선 서울시장도 각의(현재의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다. 이때 민선 서울시장이 김상돈 한 명뿐이고 임기도 몇 달 못 갔다는게 함정이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지방자치제도가 폐지되고 난 관선제 시절에는 당연히 서울시장도 국무회의에 의무적으로 참석했고, 1995년에 민선 서울시장이 들어오면서 다시 권리로 약화된 것이다. 그래도 초대 민선 시장인 조순 시장과 2대 민선 시장인 고건 시장은 다른 일정이 없는 한 화요일 정례 국무회의에 매주 참석했다. 이명박 서울시장 들어서면서 정무부시장을 대타로 보내는 등 조금씩 출석율이 떨어지다가 박원순 서울시장 들어서 정무부시장도 보내지 않아 국무회의 참석율이 10% 아래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2018년 지금은 정말로 예산시즌 아니면 아예 서울시장이 청와대에 찾아가질 않는다.(...)

  • 사실 위의 국무회의 규정을 보면 알겠지만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이지 배석할 수 있다아니다. 즉 2018년 현재까지도 서울시장은 의무적으로 국무회의에 참석해야하는 존재이다. 조항을 보라. 아예 서울특별시장이 배석한다라고 명시까지 해놨지 않은가.(...) 그간의 민선 서울시장들이 일부러 배째라로 안 나가는 거다.(...) 서울시장한테 출석 의무를 달아놓은 규정은 2008년 2월 29일에 생겼다. 이명박대통령 취임 하자마자 바로 의무를 달아놓은 것이다.

중앙정부의 회의에 참석할 정도면 이미 일개 지방정부의 수장을 훨씬 뛰어넘은 지위라고 볼 수 있는데, 단순 법적 권한이 아닌 정치적 비중으로 보자면 서울시장의 정치적 지위가 대통령 바로 다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5] 그거야 서울은 지방이 아니기에 그렇다. 다만 기본적으로 국무회의 참석 여부는 서울시장 자율이라, 대통령과 서울시장의 당적이 다르면 참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오세훈 전 시장의 경우 이명박 정권 출범 후에는 계속 국무회의에 참석했으며, 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이명박 시장이 정권 출범 직후, 오세훈 시장이 취임 직후 인사차 참석한 게 전부였고,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후에도 참석율은 10%대로 저조하다. 그래도 오세훈 시장 때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꽤 자주 참석했다. 3개월에 1회는 정례적으로 참석(보통 예산 문제다)하고, 보통은 정무부시장을 배석시켰는데, 박원순 시장은 정무부시장 배석조차 잘 안 시킨다.

여하간 정치적 위치와 상징성 때문에 서울특별시장은 사실상 차기 대권주자로 보내기에 딱 좋은 위치이어서 뭇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정치에 관심 많은 전국의 시민들이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많은 관심을 쏟는 것도 다음 차기 대선후보를 점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일명 서울시장→대선후보→대통령 테크. 이 테크가 아니어도 전·현직 시장이 가지는 정치적 가치는 어마어마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로 전/현직 서울특별시장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정치계에선 당연한 일로 자리를 잡았다. 아래 주요 서울특별시장만 봐도 한국 정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윤보선,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을 지낸 뒤에 대통령이 되었고, 허정은 과도정부 수반, 고건은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았다. 부통령 중에서는 이기붕이 서울특별시장 출신이다. 박원순은 그의 태도로 인해 대권 도전하는 게 아니냐, 혹은 시민들이 그의 대권 도전을 바라는 상황까지 왔으나 그는 끝내 불출마 선언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전임시장(이원종)의 경질 이후, 후임 시장에 취임했던 우명규는 취임하자마자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그러나 성수대교 건설 당시 서울시 건설부시장으로 실무 총책임자였다는 게 밝혀져 근 열흘 만에 자진사퇴하고 최병렬이 시장으로 임명된다. 조순 또한 당선 이틀 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전임 시장(최병렬)의 퇴임으로 인해 취임하자마자 사고 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고 첫 임무를 무겁게 시작했다.

4. 주요 서울특별시장

  • 허정: 제8대 서울특별시장. 뒷날 대통령 권한 집무대행을 맡았다.
  • 김현옥: 제14대 서울특별시장. 불도저 시장이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이명박의 원조 파리의 오스만시장에 버금가는 서울 대개조 사업을 벌였다. 60년대 말 서울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자집을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개발정책을 주도했고, 서울 지하철의 기본계획도 이 사람이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를 연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너무 개발정책에만 목을 맨 나머지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 염보현: 제20대 시장. 치안본부장(현 경찰청장) 출신이다. 재임 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했고, 한강종합개발을 추진했으며,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개장, 목동신시가지 건설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경희궁, 보라매, 종묘공원, 석촌호수 공원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기도 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공은 실질적으로 염보현의 공적이라 보는 사람이 많다. 부임 중에 이규동 대한노인회장 등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과 연루된 비리로 인해 1988년 구속되었다.
  • 박세직: 제23대 시장. 1990년 12월 임명되었으나 두 달도 못 되어 수서 비리 사건으로 경질되었다.
  • 최병렬: 제29대 서울특별시장. 마지막 관선시장.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시작해 퇴임 전날의 삼풍백화점으로 끝나는 안습한 임기를 보냈다. 즉 '사고로 시작해서 사고로 끝났다'고 한다. '최틀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사고 현장에서 너무 기가막혀 눈물만 흘렸다고. 참고로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시에 탄핵을 주도했던 그 한나라당 대표 맞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된 한나라당 후보로 고건에게 맞서 패배.
  • 조순: 제30대 서울특별시장. 민선 초대 시장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최초의 민선 시장은 제2공화국 때 제11대 김상돈 시장이다. 공교롭게도 시장에 당선된지 2일 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이 사고를 시작으로 무거운 첫 임무를 시작하였다. 참고로 삼풍백화점 사고 때문에 취임식도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취임식을 치뤘다가 바로 사고현장으로 가서 상황을 살피는 일화가 있었다.
  • 이명박: 제32대 서울특별시장. 재임기간 동안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개장, 서울 대중교통 체계를 바꾸었다. 이후 17대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 오세훈: 제33대, 제34대 서울특별시장. 민선으로는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시장이다. 반듯한 이미지와 준수한 외모로, 강력한 차기 대권 후보로 꼽혔지만
  • 박원순: 제35대, 제36대 서울특별시장. 바로 윗줄의 오세훈의 사퇴로 열린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그 이후 재선에 성공하였다. 2011년 10월에 취임하여 2014년 재선에 성공하였고 재선 임기 3년차에 들어서면서 역대 서울시장 중 최장기 재임 기록을 세웠다.

5. 명단

서울특별시장이 선출직으로 완전히 전환되기 전인 1995년 이전까지는 재임기간이 채 1년을 넘기지 못한 시장이 10명이나 있었다.

선출직 전환 이후에도 1990년대 말까지는 여당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었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야당 출신의 인물이 내리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의 이명박, 오세훈(이상 한나라당)[6], 보수정당 재집권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박원순이 여기에 해당된다.

역대 시장의 사진과 주요 업적에 대해서는 서울시 홈페이지의 이 문서를 볼 것.

대수

이름

당적[7]

임기시작

임기종료

재임기간

비고

임명직

1대

김형민 (金炯敏)

1946년 9월 28일

1948년 12월 14일

2년 78일

[8]

2대

윤보선 (尹潽善)

1948년 12월 15일

1949년 6월 5일

172일

3대

이기붕 (李起鵬)

1949년 6월 6일

1949년 8월 14일

69일

4대

1949년 8월 15일

1951년 5월 8일

1년 266일

5대

김태선 (金泰善)

1951년 6월 27일

1952년 7월 24일

1년 27일

6대

1952년 8월 29일

1956년 12월 13일

4년 107일

7대

고재봉 (高在鳳)

1956년 7월 6일

1957년 12월 13일

1년 160일

8대

허정 (許政)

1957년 12월 14일

1959년 6월 11일

1년 179일

9대

임흥순 (任興淳)

1959년 6월 12일

1960년 4월 30일

323일

10대

장기영 (張基永)

1960년 5월 2일

1960년 12월 30일

242일

선출직[9]

11대

김상돈 (金相敦)

민주당

1960년 12월 30일

1961년 5월 18일

139일

[10]

임명직

12대

윤태일 (尹泰日)

1961년 5월 20일

1963년 12월 16일

2년 210일

13대

윤치영 (尹致暎)

1963년 12월 17일

1966년 3월 30일

2년 104일

14대

김현옥 (金玄玉)

1966년 3월 31일

1970년 4월 15일

4년 15일

[11]

15대

양택식 (梁鐸植)

1970년 4월 16일

1974년 9월 1일

4년 139일

[12]

16대

구자춘 (具滋春)

1974년 9월 2일

1978년 12월 21일

4년 111일

17대

정상천 (鄭相千)

1978년 12월 22일

1980년 9월 1일

1년 254일

18대

박영수 (朴英秀)

1980년 9월 2일

1982년 4월 27일

1년 237일

19대

김성배 (金聖培)

1982년 4월 28일

1983년 10월 14일

1년 169일

20대

염보현 (廉普鉉)

1983년 10월 15일

1987년 12월 29일

4년 76일

[13]

21대

김용래 (金庸來)

1987년 12월 30일

1988년 12월 4일

340일

22대

고건 (高建)

1988년 12월 5일

1990년 12월 26일

2년 21일

23대

박세직 (朴世直)

1990년 12월 27일

1991년 2월 18일

53일

24대

이해원 (李海元)

1991년 2월 19일

1992년 6월 25일

1년 127일

25대

이상배 (李相培)

1992년 6월 26일

1993년 2월 25일

244일

26대

김상철 (金尙哲)

1993년 2월 26일

1993년 3월 4일

7일

[14]

27대

이원종 (李元鐘)

1993년 3월 8일

1994년 10월 21일

1년 227일

[15]

28대

우명규 (禹命奎)

1994년 10월 22일

1994년 11월 2일

11일

[16]

29대

최병렬 (崔炳烈)

1994년 11월 3일

1995년 6월 30일

239일

선출직

30대

조순 (趙淳)

민주당

1995년 7월 1일

1997년 9월 9일[17]

2년 71일

직무대리

강덕기 (姜德基)

행정부시장

1997년 9월 10일

1998년 6월 30일

293일

31대

고건 (高建)

새정치국민회의

1998년 7월 1일

2002년 6월 30일

4년

32대

이명박 (李明博)

한나라당

2002년 7월 1일

2006년 6월 30일

4년

[18]

33대

오세훈 (吳世勳)

한나라당

2006년 7월 1일

2010년 6월 30일

4년

[19]

34대

한나라당

2010년 7월 1일

2011년 8월 26일[20]

1년 56일

권한대행

권영규 (權寧奎)

행정1부시장

2011년 8월 27일

2011년 10월 26일

60일

35대

박원순 (朴元淳)

무소속[21]

2011년 10월 27일

2014년 6월 30일

2년 247일

36대

새정치민주연합

2014년 7월 1일

(현직)

[22]


  1. [1] 물론 정치적 위치나 자체적인 권력은 서울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지자체장에 비해 넘사벽인건 맞다.
  2. [2] 서울특별시의 경제력과 인구, 서울시장의 권력에서 나온 별명이다.
  3. [3] 서울시장보다 의전서열이 높은사람들이 널리고 널렸지만 실질적인 권력으로 서울시장을 능가하는 공무원은 대통령 한 명밖에 없다. 당장 나머지 광역단체장과도 격이 다르게 취급받는 편이며, 권력으로는 서울시장 바로 밑, 즉 국내 공무원 넘버3인 경기도지사와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4. [4] 말이 공무원 2인자지 대한민국 내에선 삼성그룹 총수와 조선일보 사주와 동급으로 취급된다. 즉 국가 전체를 봐도 2인자라는 것.
  5. [5] 정무직 공무원은 기본적으로 선출직>임명직이며 서울시장은 선출직 공무원 중에서는 대통령 다음가는 위치. 총리는 실권이 별로 없는 자리이므로 서울시장은 커녕 한 수 아래인 대통령비서실장보다 정치적 입지가 약하다.
  6. [6] 단, 오세훈은 2010년 재선 도전 당시에는 여당 신분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7. [7] 지방선거 당선 당시
  8. [8] 해방 이후 초대 서울시장. 서울(특별자유시)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초창기에는 한성부윤이었다... 이후 곧 '서울시장'으로 개칭되었다.
  9. [9] 장면 내각 정부가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선거로 서울시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얼마 안 있다가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서울시장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통령 임명직으로 회귀했다.
  10. [10] 4.19 혁명으로 장면 내각정부가 들어서면서 선거를 통해 최초의 민선시장이 되었다. 날짜를 보면 예상되지만, 이듬해 일어난 5.16 정변으로 인해 임기를 반 년도 못 채우고 경질된다.
  11. [11] 박정희 대통령의 오른팔이자 최측근으로 서울시장에 임명되어 불도저라는 별명답게 서울 대개조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와우 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 그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12. [12] 임명직 시장 중 최장기간 재임. 그러나 육영수 저격 사건 직후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13. [13]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의 주역. 재임기간 지하철 2 3 4호선을 완공하였다.
  14. [14]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인권변호사 출신에 40대라는 젊은 나이로 참신한 이미지까지 갖추고 있어, 당시 최초의 민주세력 정부였던 김영삼 정권의 주요 인사로 내세울 만했다. 하지만 시장 취임 후 곧바로 서울근교에 위치한 수려한 본인 소유의 전원주택이 그린벨트를 무단 훼손해서 건축된 사실이 언론보도로 드러남으로써 1주일 만에 자진 사퇴하였다. 여담으로 노태우 정권 출범 후에는 보수세력으로 변신하였다. 역대 최단기간 재임
  15. [15] 날짜를 보면 알겠지만,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난 그날 오후 7시에 문책성으로 경질되었다. 후에 민선 충북도지사를 지냈다.
  16. [16] 경북도지사를 하던 중에 이원종 시장의 경질로 급히 신임 시장에 임명되었지만 11일 만에 자진사퇴했다.
  17. [17] 제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시장직 중도 사퇴.
  18. [18] 임기만료로 퇴임 직후 바로 대선에 뛰어들어 당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민선 서울특별시장 출신 첫 대통령. 임명직 서울시장 출신 대통령으로는 2대 시장인 윤보선이 있다.
  19. [19] 최초의 민선 재선 시장
  20. [20] 무상급식 전면확대 논란 당시 투표율이 33.3%에 못 미치자 사퇴했다.
  21. [21] 그러나 사실상 야권의 단일후보였다.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
  22. [22] 역대 최장기간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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