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해체

[1]

1. 개요
2. 전개/발단
3. 영향
4. 섣부른 해체?
5. 해체 순서
6. 여담

1. 개요

국제법의 내용과 지정학적 상황으로 인하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벨라루스비아워비에자 숲에서 이루어진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의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 중-

Распад СССР

Dissolution of the Soviet Union

1922년 12월 30일에 건국된 소련은 끝내 1991년 12월 26일에 해체된다. 최초이자 최대의 사회주의 국가임과 동시에 공산주의 진영의 맹주였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공식적으로 1991년 12월 26일에 해체를 선언했으며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신생 공화국 15개가 새로이 국제 사회에 등장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공산 진영 자체가 무너지며 제1세계 vs 제2세계 구도의 냉전은 완벽하게 종료된다.[2]

2. 전개/발단

1991년 일부 지역은 독립 수순을 밟고 있었다. 다만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 결과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연방 소속 공화국에서 연방 유지 여론이 압도적으로 더 높게 나왔다. 리투아니아 SSR, 에스토니아 SSR, 라트비아 SSR은 이미 독립을 확정지으며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수순을 밟고 있었고 이에 공산당 보수파들이 고르바초프가 무르게 대응한다며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략무기감축협정에 조인한 뒤 크림 반도에서 하계휴가를 보내는 틈을 타서 그가 모스크바에 돌아오기 하루 전 쿠데타를 감행해 고르바초프를 크림 반도의 별장에 감금했다. 오전 6시에 일어난 고르바초프는 아침 식사를 하며 모스크바에서 있을 신연방조약 체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때 소련의 보수파들은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킨 쿠데타로 소련의 유지를 꾀한다. 8월 쿠데타 참조.

그러나 쿠데타는 국내외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민중들의 저지로 실패하였고, 도리어 공산당, 그리고 소련이 해산되는 결과를 자초하게 되었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9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만나 신연방조약 조인 문제 등을 논의하면서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재개했지만 이미 그는 완전히 실각한 거나 다름없었다. 공화국의 지도자들은 대대적인 자치를 요구했고 발트 3국과 몰도바 등 6개 공화국은 아예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번 쿠데타로 야기된 거대한 역사의 물결은 고르바초프의 반대파들을 쓸어갔지만 고르바초프 본인도 쓸어버렸다. 연방을 유지해야 할 소련의 주요 인물들은 이번 쿠데타로 완전히 실각한 후였다. 고르바초프가 자신의 측근으로 믿었던 인물들까지 대거 쿠데타에 동참하면서 고르바초프 본인이 "실망했다."란 발언을 할 정도였다.

1991년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의 주도하에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대통령이 벨라베자 숲에서 모이고 벨라베자조약을 체결하면서 러시아 공화국을 비롯한 여러 공화국이 소비에트 연방을 탈퇴하고 따로 독립국가연합(CIS)을 결성하였다. 고르바초프는 끝까지 해체에 반대했지만 대세를 막을 수 없게 되자 12월 25일 대통령직을 사임했고 1992년 1월 독립국가연합의 출범과 함께 마침내 소련은 해체되었다. 1922년 탄생한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3. 영향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연출된 역사적 비극의 결말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자본가되려고 안달이었던 관료들에 의해서 현실사회주의가 자멸되고 그 영토중심부 내지 준중심부 산업 자본을 위한 자원 공급지이자 상품 시장으로 전락됐습니다. 혁명의 유산을 지켜내지 못한 과거의 '인민'들은 계급적 적 앞에서 너무나 약했던 죄로 새로운 과두재벌의 권리 없는 머슴이 되거나 저처럼 자기자신을 중심부에 팔아야 하는 망국노적 신세가 된 것입니다."

- 박노자

"누군가에게는 지금이 훨씬 좋겠죠. 하지만 우리에겐 아니에요. 그때는 저에게도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먹을 것, 입을 것...."

- 표트르 트로피모[3], MBC 러시아 혁명 다큐멘터리 : 제5부 혁명의 유산 중

"우유값도 못 내던 가 기억나십니까? 우린 그 시대를 살았습니다."

- 파벨 그루지닌

"소련 정권은 에스토니아 같은 나라에서 사람들을 죽이고 테러했습니다. 모스크바는 나치로부터의 해방에 대해서만 말하면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인들에게 있어서는 (소련이) 수십만의 강제추방자들, 카틴에서 학살당한 수만 명의 사람들을 뜻한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리에게 있어 소련은 파시즘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뜻합니다."

- 토마스 헨드릭 일베스, 에스토니아 전 대통령.

그들 중 심판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아무도요! 그 들은 존경받는 연금수령자들로 살다가 제명대로 죽었다고요. 제가 뭐라고 하고 싶은 줄 아세요?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지 마세요. 인민들이, 우리 국민들이 선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만들어내지 마세요. 아무도 죄를 뉘우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요."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세컨드 핸드 타임>, 391쪽

소련 붕괴 후 러시아는 1990년대파탄국가로 추락해버렸다. 1990년 당시 소련의 1인당 GNP는 9,300$로 5,800$에 불과하던 한국을 압도하였다. 그러나 1991년 붕괴 당시 소련의 1인당 GNP는 비정상적으로 고평가된 루블이 폭락해 순식간에 6,700$이 된다. 그리고 소련 붕괴 후, 1992년 러시아의 1인당 GNP는 576$로 과거의 5% 수준이 되었다. 물론 이후 다시 회복되긴 했지만 그 와중에 소련보다 복지 수준이 훨씬 나빠져 지금도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은 소련 시절보다 낫다고 장담할 수 없다.[4]

게다가 군대도 물량면에서 절반 수준이 되어버리고 냉전 시절 미국과 세계를 양분하던 강한 모습은 사라진다. 또한 국가의 경쟁력도 잃어[5] 자원에 의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련 시절 세계 공업 생산량의 20%를 차지하던 막강한 중공업은 혼란기 때 붕괴되고, 사회적으로 무상의료 등이 사라지면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속출하더니 평균수명을 10세나 깎아먹었다. 그야말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다만 이런 상황은 선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회적인 눈높이 불만족에 따른 저출산이 아니라 식량 부족 등 진짜로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안 되면서 출산을 기피하는 것이었으므로, 다행히 1990년대 말 바닥을 친 뒤 푸틴의 집권과 함께 나라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출산율이 1.7명까지 회복되었고, 이에 따라 1993년부터 2008년까지 인구가 660만 명 감소하였으나 2009년부터는 다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 붕괴 20년이 지난 현재도 아직까지 러시아는 후폭풍이 남아있는 상태다. 이것은 경제체제 변화를 얼마나 신중히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현재 블라디미르 푸틴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 소련권 및 해외 러시아계 위주로 이민을 적극 수용하고[6] 재산업화를 추진하는 중이며, 인구 증가를 통해 내수 시장을 확충하고자 소련권이였던 국가들과의 연합을 적극 추진하는 중에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때로는 무력 개입도 주저하지 않는다.

러시아 외에 소련을 구성하던 15개 공화국의 해체 이후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사정이 제일 나은 것은 역시 발트 3국으로 1990년대 초중반에 경제적 혼돈기를 겪으면서 인구가 급감하는 바람에 한동안 국가존립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발트 3국은 소련 시절에도 산업발달이 가장 잘 이루어진 지역이어서 기존에 쌓아놓은 것이 있었던 데다가 서방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에 비교적 빠르게 경제성장에 성공했다. 정치적으로도 친서구적인 외교 노선으로 갈아타 유럽 연합, NATO에 가입하면서 안보를 보장받고 반러 국가로 탈바꿈했다. 다만 인구가 300만도 안 되는 소국들이라 국민소득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고, 이들은 저출산 및 인구 감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의 경우 국가마다 차이가 나는데, 사실 이 차이라는 것은 천연자원의 부존 여부에 따른 것이다. 5개국 모두 체제 전환 초기에는 극심한 혼란과 경기침체를 경험했으나, 세계적인 자원 보유국이자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은 그럭저럭 먹고살 만한 개발도상국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천연자원 덕분이었던 만큼, 2015년 유가 폭락을 맞아 현재는 둘 다 타격을 입었다.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은 내륙 깊숙한 곳에 쳐박혀 있는 내륙국으로, 인구도 많지 않고, 천연자원도 미미하기 때문에 현재 시점으로도 최빈국이고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근대 세계에서 내륙국이란 지리적 특성은 발전에 있어 쥐약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럽의 내륙국처럼 해안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고 교통망이 발달되어 있으며 주변국과 협력된 상태라면 모를까, 중앙아시아의 경우는 제대로 된 항구까지 닿으려면 그야말로 한없는 세월이고 교통 수준과 협력 수준도 높지 않다. 키르기스와 타지키스탄 모두 러시아카자흐스탄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는 자국민들의 송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사실 이 동네는 워낙 입지가 형편없기 때문에[7] 소련 시절부터 15개 공화국 중에서 가장 개발이 덜 된 지역이었고, 체제 전환 때문이라기보다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중앙정부(정확히는 러시아)의 지원이 끊기고, 노동 이주도 제한된 것이 더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우즈베키스탄도 마찬가지로 내륙국이고, 자원은 있지만 카자흐스탄에 비해 인구가 2배 많고 자원은 더 적기 때문에 수출은 고사하고 자국의 수요도 모두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가 3,000만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데다가 소련 시절에 쌓아놓았던 산업기반도 어느 정도 유지는 되었으며 내수 시장이 어느 정도 있고 노동력도 풍부한 바, 1997년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한 이후 2000년대 초반 평균 5%, 중반 이후 8%를 넘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카자흐스탄을 따라 잡으려면 (카자흐의 성장이 멈추더라도) 수십 년은 족히 걸리겠지만... 그런데 소련 시절부터의 삽질로 아랄해가 말라붙고 있지...

코카서스의 경우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 천연가스를 소유한 아제르바이잔의 소득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지만, 자원의 배분이 영 신통치 않은지 임금 수준만 놓고 보면 아르메니아, 조지아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참고 코카서스 3국 모두 월 평균 임금이 4~50만원에 불과한 빈국이다.

러시아를 제외한 동유럽 3개국 또한 사정이 영 안 좋기는 마찬가지. 우크라이나몰도바는 1인당 GDP가 2,000불수준[8]으로 脫유럽급의 최빈국인데 이것도 1990년대 초중반에 비하면 나은 수준이다. 게다가 정정 불안으로 인해 안 그래도 막장이었던 경제는 갈수록 파탄으로 치닫는 중. 의외로 벨라루스는 자원이 없는데도 발트 3국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양호한 소득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웃 러시아가 1990년대 옐친의 급진적 경제 개혁의 부작용으로 나락으로 추락하는 동안 벨라루스의 루카셴카 대통령은 그와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구성국들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데, 우크라이나, 몰도바, 키르기스스탄, 발트 3국,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부분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9]인 반면,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벨라루스, 러시아는 권위주의 독재 국가가 되었거나 되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발트 3국은 애초에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반러 국가가 된 후 소련식 중앙집권체제를 철폐하였고 몰도바는 유럽 최빈국이라 그런지 딱히 독재 권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키르기스스탄,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민중 시위로 권력자를 몰아낸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의원내각제 요소를 도입하여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와 나눠 가지는 등 권위주의를 방지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 해체 직전 각 해당 공화국의 공산당[10] 서기장이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이슬람 카리모프,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가 독립하자마자 최초 직선제 선거를 통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독재권력을 휘둘렀다. 아제르바이잔은 3대 대통령인 헤이다르 알리예프가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을 통해 권력을 획득한 후 훗날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한테 대통령직을 세습 하였고 일함 또한 아들한테 세습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타지키스탄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과 벨라루스알략산드르 루카셴카 대통령 또한 장기집권을 하면서 세습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소련의 붕괴는 보리스 옐친의 결단에 의해 매우 빠르고 극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구성국 중에는 발트 3국처럼 독립을 간절히 원하는 나라도 있었지만 벨라루스카자흐스탄처럼 딱히 반러성향이나 독립의지가 크지 않았던 나라들도 졸지에 독립해버린 경향이 있었다. 저 지역들도 독립 주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주장이 강세였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아르메니아, 몰도바, 조지아와는 달리,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에서는 소련 유지를 지지하는 비율이 77.85%로 소련 해체를 지지한 22.15%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이들 지역에는 구소련 붕괴 이후 어려움을 겪으면서 소련 시절의 강한 국력과 사회보장제도를 그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느슨한 연합체제인 독립국가연합은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국들 중 러시아와 사이가 별로 나쁘지 않은 몇몇 나라들은 러시아-벨라루스 연합, 유라시아 연합 등 다양한 재통합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소련 붕괴 25주년인 2016년 12월에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첸트르'에 따르면, 소련 붕괴를 애석해한다는 응답자는 56%, 그렇지 않다는 응답자는 28%였다. 애석해하는 이유로는 통합경제시스템 붕괴(53%), 강대국에 소속됐다는 느낌 상실(43%), 상호 불신 증가(31%), 친척·친구 관계 단절(28%), 자유로운 여행 불가(15%) 등을 들었다. 한편 다른 여론조사 전문기관 '브치옴'의 조사에선 소련 붕괴를 애석해한다는 응답자가 63%로 더 많았으나, 68%는 구소련 형태의 연방국가 부활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라시아 연합 등 푸틴 주도의 구소련 국가들의 재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스포츠(특히 축구)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축구 대표팀은 소련 시절 월드컵 최저 기록 8강, 유로컵 최저 기록 4강을 기록한 강호였지만, 70년대 월드컵 예선 탈락, 80년대 유로컵 예선 탈락을 거쳐 소련 해체 후 약팀으로 떨어졌다. UEFA 유로에서는 1992년 예선 직후 소련이 해체되어 '독립국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본선에 참가했지만, 사상 처음으로 유로컵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유로 2008에서 4강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 1992, 1996, 2004, 2012, 2016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그 중 2000년에는 본선도 못 갔다. 월드컵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조별 리그 광탈을 시작으로 1994년 조별리그, 1998년 예선 탈락, 2002년 조별리그, 2006~2010년 예선 탈락, 그리고 2014년 무승 조별리그 탈락으로 암흑기의 정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가장 먼저 16강을 확정 지으면서 부활의 서막을 열었다. 또, 현재 러시아를 제외하고 월드컵이나 유로컵 본선에 오른 팀은 라트비아[11]와 우크라이나[12]뿐이다. AFC로 소속을 옮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13],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중 아시안컵 본선에 오른 나라도 우즈베키스탄[14]과 투르크메니스탄[15]뿐이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는 소련의 15개국 중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를 제외한 12개국이 '올림픽 연합 선수단'이라는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했다. 하지만 월드컵이나 유로컵과는 달리 동계올림픽에서는 메달 종합 2위, 하계올림픽 메달 종합 1위를 달성하며 체면치레를 했다.

4. 섣부른 해체?

이렇듯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좋은 의도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소련 해체는 러시아의 전략적 위치를 제정 러시아 시절보다도 후퇴시켰다.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 투표 결과에서 보듯, 연방의 유지에 대해 약 70%의 찬성이 나온 상황에서 찬성하던 지역까지 모조리 독립시킨 것은 보리스 옐친의 과오가 맞다. 물론 이건 소련 유지 찬성파(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아르메니아, 조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를 제외한 소련 내 공화국)에서 본 입장이며, 분리주의가 강했던 발트 3국이나 아르메니아, 조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는 독립 열기가 매우 강했다. 다만 조지아와 몰도바, 우크라이나는 그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입장이 나뉜다. 우크라이나는 독립 열기가 강한 지역에서 투표를 보이콧한 탓에 결과는 오히려 연방 유지 쪽으로 기울었다. 트란스니스트리아와 남오세티야, 압하지야는 당연히 연방 유지에 찬성했다.

사실 보수파가 보리스 옐친이 이끄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부를 장악했어도 분리 독립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반발에 부닥쳤을 것이다. 이미 소련 내에서 공산당의 통치는 종말을 고하고 있었으며, 일부 공화국은 독자적인 독립 움직임까지 보였다. 소련 공산당의 권위가 실추된 가운데 다시 일방적으로 국가비상사태 위원회 구성원들이 이를 되돌리려 했지만, 이에 반대해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키예프, 모스크바 등 연방의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즉, 보수파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소련이 유지되었을 것이라는 예측은 사실상 현실성이 전혀 없다.

보수파 쿠데타는 그나마 남아있던 소련의 재조직 가능성을 완전히 없앴고, 그 상황에서 고르바초프를 몰아낸 보수파가 권력을 잡았다 한들, 오히려 소련은 천안문 사태보다 훨씬 더 방대한 군사력 행사를 통해 중앙권력을 회복해야 했을 것이다. 이미 바르샤바 조약기구 등 군사적 보호장치를 잃고, 경제개혁마저 실패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궁지로 몰린 상황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까지 일으키며 분리독립하려는 공화국들을 강제로 진압했다면 적게는 그에 따른 서방의 경제제재, 천안문 학살 이후의 중국 이상의 외교적 타격, 소수민족들의 장기적인 독립투쟁 등 소련 입장에서 결코 현실 역사 이상으로 순조롭게 흐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비상사태 위원회가 재집권하는 건 현실성이 없었겠지만, 전 연방에서 쿠데타에 반대하는 소요사태 및 봉기가 발생하고 이를 통해 자체적으로 민주화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소련 붕괴에 대해 옐친을 비난하지만, 옐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고르바초프가 애써 추진하던 개혁을 전복시키고 정부를 장악한 보수파, 즉 노멘클라투라에게도 있다. 그리고 소련 붕괴의 단초는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무리한 개혁에서 시작된 것인데 소련이 해체된 원인은 옐친에게도 있지만 결국 경직된 관료제와 자유롭지 못한 독재체제로부터 탄생한 노멘클라투라와 고르바초프로 대표되는 러시아 정치의 한계였다.

이 소련 해체로 인하여 구소련 내의 모순이 폭발하면서 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 전쟁,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체첸 사태, 남오세티야 전쟁, 유로마이단, 크림 반도의 독립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돈바스 전쟁 등 수많은 혼란과 문제를 초래하게 되었다.

5. 해체 순서

공화국

해체 일자

리투아니아

1990년 3월 11일

라트비아

1990년 5월 4일

에스토니아

1991년 8월 20일

몰도바

1991년 8월 27일

아제르바이잔

1991년 8월 30일

키르기스스탄

1991년 8월 31일

타지키스탄

1991년 9월 9일

아르메니아

1991년 9월 21일

우크라이나

1991년 12월 1일

카자흐스탄

1991년 12월 16일

투르크메니스탄

1991년 12월 25일

우즈베키스탄

1991년 12월 25일

러시아 연방

1991년 12월 25일

벨라루스

1991년 12월 26일

조지아

1991년 12월 26일

6. 여담

위 인용문에도 나와 있듯이, 유독 박노자는 소련 해체를 소련의 "망국"이라고 표현한다.##


  1. [1] 이 그림을 보면 의외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소련 해체에 대한 각 공화국들의 다양한 반응을 폴란드공들의 표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헤벌레 웃고 있는 우크라이나눈 커진 에스토니아를 뺀 발트 국가, 빡친 러시아, 뭐가 일어난지 모르는 중앙아시아 국가들, 우울한 소련 유지파 공화국들 등. 물론 투표 결과와 비교해보면 완벽히 고증에 맞춘 건 아니다.
  2. [2] 이미 2년 전인 1989년 12월 2일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몰타 정상회담에서 냉전 종식을 선언하긴 했다.
  3. [3] 소련 시절 집단농장에서 트랙터 운전기사를 했다.
  4. [4] 붕괴 이전까지 한국에서 소련이란 나라는 비록 적이지만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산권의 종주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1990년대에는 뉴스에서 소련 경제가 망했어요라는 보도가 계속되고 러시아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모델, 매춘 등으로 일하러 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 치안이 불안정한 나라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박히게 되었고, 2000년대 후반 상황이 훨씬 나아진 뒤에도 이런 인식은 여전히 남아있다.
  5. [5] 물론 소련도 경쟁력 자체는 꽤 밀리던 수준이였으나 러시아만큼은 아니다.
  6. [6] 이 경우 이민자가 비러시아계여서 러시아어를 못할 수 있지만, 그 가족들 중 누군가는 소련 시대의 교육을 통해 러시아어를 할 줄 알고, 사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같은 나라여서 러시아에 친척을 둔 이가 많으며 어느 정도 사고방식이 통하기 때문에 북미나 유럽의 이민 수용보다 부작용이 적다.
  7. [7]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은 중국 위구르, 티베트 지역과 인접해 있지만 위구르나 티베트 지역이 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고 산업 발전이 이루어진 지역도 아니다.
  8. [8] 두 나라 모두 지하경제의 비중이 큰지라 실질 경제력으로 따진다면 경제규모가 최소 2배-3배 이상으로 껑충 뛰어오른다. 물론 거꾸로 말하자면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얘기도 된다.
  9. [9] 프리덤 하우스세계의 자유 구분에서 '자유' 혹은 '부분적 자유'로 분류된 나라들이다. 아래의 권위주의의 독재 국가로 설명한 나라들은 '부자유'로 분류된 나라들.
  10. [10] 소련은 중앙 권력으로 소련 공산당이 있었고 소속 공화국 별로 휘하 공산당이 존재하였다. 물론 당연히 소련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를 받았다.
  11. [11] 유로 2004.
  12. [12] 2006 독일 월드컵, 유로 2012(폴란드와 공동개최), 유로 2016
  13. [13] 2002년부터 UEFA 소속으로 옮김.
  14. [14] 그나마 아시안컵에서는 연속으로 출전하며 강호로 인정받고 있다.
  15. [15] 2004년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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