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군

1. 장군이라는 뜻의 일본어, 또는 정이대장군의 준말
1.1. 각종 매체에서의 정이대장군
4. 세계수의 미궁 시리즈에 등장하는 클래스
5. KTF 매직엔스 게임단 마스코트 Show군
7. 아이실드 21의 등장인물 쇼지 군페이의 별명
9. 20세기 소년의 등장인물 오치아이 쵸지의 별명

1. 장군이라는 뜻의 일본어, 또는 정이대장군의 준말

보통은 '장군' 보다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 세이이타이쇼군)을 뜻한다.

직위로서의 정이대장군은 일본의 율령제 하의 영외관 장군직이다. 무가시대의 무가(武家)의 최고 통치자, 즉 사실상의 국가 수장이며 최고 권력자였다.

역대 쇼군은 총 46명이었으며, 1867년 대정봉환으로 권력을 덴노에게 돌려주면서 권력을 잃게 된다. 가끔 더글러스 맥아더를 47번째 쇼군이라고 하기도 한다.

고대에는 이쿠사노카미라 불렀으며, 율령제 하에서 병사 1만명에 대하여 쇼군 1인, 부쇼군 2인을 두고, 3개 군에 대쇼군(대장군) 1인을 두도록 규정하였다. 실제로는 북방의 에조 원정, 남서의 하야토 정벌, 덴노의 호위, 외국 사절 응대 등 네 가지 사안에 대하여 임명되는 임시직이었다.[1] 각 쇼군은 서로 다른 칭호를 가졌기에 실제로 '쇼군'이라는 관명은 없었다. 유일하게 상설직이었던 쇼군은 대에조 방위를 담당하는 '진수부장군(鎭守府將軍)' 하나 뿐.[2]

무가 정권의 최고 통치자로서의 세이이타이쇼군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시초인데, 이 발상은 요리토모가 이전 무가정권의 양태를 분석하여 고안했다고 추정된다. 맨 처음 무가정권을 이룩한 헤이케 일족은 기존의 율령 내에서 관위를 높여 나갔고, 이를 제압한 미나모토노 요시나카는 조정으로부터 세이토우타이쇼군직을 임명받았다.

1189년에 곤노다이나곤(権大納言-권대납언, 대납언은 율령제에 존재하는 고위 관직명이다. 앞의 권은 이미 관직을 맡은 누군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에게 명예직으로서 같은 관직을 정원외로 수여했음을 나타낸다.) 겸 우콘에노다이쇼(右近衛大将,우근위대장)에 올라 공경이 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만도코로(政所;가정家政 기관)을 개설하면서 사실상의 무가정권이 시작되었는데, 당초에는 관동 일대를 다스리는 지방 영주에 지나지 않았다.[3] 또한 우콘에노다이쇼는 교토의 방위를 담당하는 관직이라서 조정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독립한 관동에서의 무사정권을 구상하고 있던 요리토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관직이었다. 게다가 현재의 도호쿠 지방인 오슈(奥州)일대는 히라이즈미 일대에 몇 대에 걸친 강한 세력을 구축했던 후지와라 일족이 사실상 사유하고 있었는데, 요리토모는 이를 능가하는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세이이타이쇼군직에 주목하였다.

당시 무가정권을 구상하고 있던 요리토모에게 필요했던 권한은

  • 관통 내 무사의 정점에 군림하는 '동량(棟梁)'[4]으로서의 권한
  • 전국에 '슈고(守護 ; 지방관)'를 파견할 권한.
  • 공경의 위에 오르면서 설치한 가정기관을 공적인 정치기구에 준하는 기관으로 인정받을 것

이상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를 만족하는 것이 세이이타이쇼군직이었다.

단, 이를 뒤집는 주장도 있다. 요리토모가 필요로 했던 것은 '다이쇼군(대장군)'이라는 칭호 뿐이었다는 것으로, 이는 본래 '쇼군(장군)'의 후예라 자부하였던 요리토모 자신에게 위엄을 더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후로도 세이이타이쇼군 이외의 쇼군이 임명된 예가 없지는 않았으나 예가 지극히 드문 관계로 단순히 '쇼군'으로 약칭되었다. 단, 윗사람의 관명을 직접 지칭하는 것은 대단한 실례였으므로, 실제로는 '오카미(お上)', '쿠보(公方)' 등으로 불리었다.

덴노와 쇼군의 관계는 그 역사가 길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기술하기가 어려우나, 쇼군직의 승계는 어디까지나 덴노에 의한 '선하(宣下)'였으므로, 기본적으로는 주군과 신하인 셈. 본래 일본에서는 덴노가 친정을 한 예가 드물기에 쇼군이 실세이고 덴노는 얼굴마담이었다고 단순화하기보다는, '무사 계층에 의한 현실 정치를 쇼군이, 쇼군과 무사의 권력행사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덴노 및 쿠게(公家)가 담당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실권과는 관계없지만 관직 위계상으로는 쇼군보다 위인 쿠게[5] 계층도 존재했다.[6]

단, 에도 막부 중기 이후에는 쇼군 선하의 칙사가 에도로 내려오고, 이 때 쇼군이 상좌에, 칙사가 하좌에 앉는 형태로 정착되었고, 쇼군의 가격(家格)이 명실공히 일본 최고가 되면서 막부덴노의 조정과의 외교면에서 상위에 위치하는 시기가 150년 가까이 이어졌다. 물론 이는 막부 말기 대두되는 존황사상에 의하면 대역부도한 일이었기 때문에 유교적 존왕(황)양이사상은 곧 막부를 쓰러뜨리자는 도막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일본 제국의 병크로 이어진다.

앞서 말했듯이 가마쿠라 막부는 관동지방을 다스리는 지역정권의 성격이 강했으니, 관서 지역에서는 여전히 덴노의 조정이 통치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3대 째로 미나모토 씨가 단절되자 덴노 측은 가마쿠라의 막부를 토벌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려 했는데, 오히려 가마쿠라 측의 역습에 관광당해 교토가 함락되고 덴노가 쫓겨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죠큐의 변). 이후 남북조시대까지 덴노의 정권은 실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단, 그 이전에도 덴노가 폐위되어 쫓겨나거나 살해당한 예는 적지 않다.

보통 '겐지만이 쇼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헤이케를 자칭하고 있던[7][8] 오다 노부나가에게 쇼군직을 제안한 것을 보아 이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9] 무엇보다 가마쿠라 막부의 3대 쇼군이었던 사네토모 사후 대가 끊긴 가마쿠라 막부는 쿠죠 가 등의 '셋케(攝家, 섭정직을 제수받을 수 있는 가문)'와 황족(친왕)으로부터 대대로 쇼군을 모셔왔기 때문에 겐지 이외의 가문에서 쇼군이 나온 예는 상당히 많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쇼군직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노부나가는 삼관추임문제(三官推任問題)[10] 및 당대의 영향력 등을 보았을 때(쇼군 직에 관심이 있었다면 1568년에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부 쇼군 직을 권하였을 때 응하였을 것이다.) 쇼군 직에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히데요시는 덴노의 조정의 필두인 간파쿠에 이르렀기 때문인지, 쇼군직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이 때문에 쇼군 및 막부 정권을 대역무도한 것으로 취급하는 존황사상을 이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히데요시가 조정과 덴노를 존중했기 때문에 쇼군이 되지 않은 것이라 해석되어 덴노의 충직한 신하로써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대륙 침략의 좋은 본보기였던 것은 덤)[11]일설에 따르면 아시카가 요시아키[12]의 양자가 되어 쇼군이 되려고 했으나 요시아키의 필사적인 거부로 꿩 대신 닭이라고 조정의 필두가 되기 위해 후지와라 가의 양자가 되어 간파쿠가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간파쿠가 되기는 쇼군보다 몇십 배는 더 어려웠다. 애초에 후지와라씨의 분파인 코노에, 쿠죠, 니죠, 이치죠, 타카츠카사의 다섯 가문이(고셋케(오섭가 五攝家)라고 부른다) 이외에는 취임할 수 없는 관직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고노에 사키히사의 조카로 들어가서 간파쿠가 되었지만, 나중에 도요토미 라는 성을 얻고도 간파쿠 자리를 유지한 것은 물론이요, 그 자리를 도요토미 히데츠구에게 물려주기까지 했으니, 기존의 원평등귤(源平藤橘; 미나모토, 다이라, 후지와라, 타치바나 기존의 4대 성씨)과 어깨를 견주는 풍(豊, 도요토미)씨를 창설한 셈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히데요시가 자기 어머니가 사실 쿠게나 황족의 씨를 받아 자신을 낳았다는 굴욕적인(...) 내용을 날조했다는 설이 있고, 한때 후지와라 성씨를 받아 '후지와라노 아손 히데요시'를 칭하기도 해 가며[13] 일본 전체를 쥐고 흔들던 최고권력자 히데요시조차도 조정의 최고위직 간파쿠에 오르기까지는 실로 어려운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원평등귤의 4대 성씨는 성립한지 5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어떤 도전도 받아들인 적 없는 일본 고유의 전통이었기 때문에 이는 매우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14] (다만 그 직후 도요토미씨는 곧 멸문당한다.)

소위 전국 삼걸 중 도쿠가와 이에야스만이 쇼군직에 흥미를 보인 이유도, 새로운 성씨를 창설하고 이에야스에게도 이를 하사한(당대 이에야스의 풀네임은 하시바 다이나곤 도요토미노 아손 이에야스였다!) 히데요시의 그늘로부터의 단절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15] 미나모토노 아손[16] 을 자칭한 건, 원평등귤풍 중 히데요시의 입김이 들어간 후지와라와 도요토미를 제하고, 오다 가의 씨인 다이라를 제하면, 남는 것은 미나모토와 타치바나인데, 타치바나는 이미 듣보잡화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의외로 별 거 없는 이야기.

조선 시대에는 덴노를 왕으로 보고 쇼군을 왕자, 즉 대군으로 불렀다. 그래서 종종 왕의 사신이 어떻게 대군에게 무릎 꿇을 수 있겠냐는 식으로 예전 관련으로 다툼이 일어났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에도 시대 쇼군들을 일반적으로 '관백(간파쿠)'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대군'과 '일본국왕'이 혼용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시대에 들어오면서 조선-에도 막부 측이 서로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맺은 협정에서는 조선측이 막부측을 '일왕'으로 호칭하려다가 되려 일본측에서 이 호칭을 거절한 적이 있다. 이는 무로마치 막부중국으로부터 일왕의 명칭을 공식 통보받았듯이, 조선은 일본의 신지배자인 도쿠가와 가문이 도요토미 가문을 완전히 몰아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이용했던 것. 하지만 당사자인 일본측에서는 아직 덴노의 협조가 필요한 한편,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상당히 민감한 사항이라서 이를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효종 대까지 '대군'을 쓰다가 숙종 때 일본의 요청으로 '일본국왕'으로 돌아갔다.즉, 조선 역시 덴노가 명색만 왕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1763 ~ 1764년(영조 36년)에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단의 일원이었던 원중거의 '승사록'에서는 덴노를 '왜황(倭皇)'으로 칭하고, 쇼군을 '관백' 혹은 '대군'으로 칭하고 있으며, 임진왜란 직전 황윤길김성일을 각각 정사와 부사로 한 사절단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한 예우 문제로 시비가 붙었던 일을 떠올리며 쇼군에 대한 예우가 딱 잘라 정하기가 힘들고 애매하다는 것을 거론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에도 막부에 통신사를 파견할 당시 일본 국내 정치판이 다소 불안정해 통신사가 보고를 올린 바 있는데 이에 따르면 관백이 제위를 겸한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기도 하다.

역대 쇼군 명단은 가마쿠라 막부, 무로마치 막부, 에도 막부, 지에이치큐 막부, 자민 막부 항목을 확인할 것.

실질적 국가의 최고 독재관이나 명목상으로는 천왕의 신하였고 이에 '최고사령관'을 뜻하는 정이대장군을 호칭으로 대신했는데 그게 오늘날의 쇼군으로 굳어졌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로마 제국황제와 비슷한 케이스다. 실제로 로마 제국 역시 황제들은 실질적 국가의 최고 독재관이였지만 명목상으로는 원로원의 일원이였고 이에 '최고사령관'을 뜻하는 임페라토(Imperator)를 호칭으로 대신했는데 그게 오늘날의 엠퍼러(Emperor)로 굳어졌다.[17]

1.1. 각종 매체에서의 정이대장군

2. 소설

호주계 미국 작가인 제임스 클라벨의 작품. 다음 항목의 원작이다. 동작가의 아시안 사아의 첫 시리즈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가는 길을 열었다. 이후 작품들과 세계관이 연결된다.

3. 미드

제리 런던이 감독하고, 미후네 토시로와 리처드 챔벌레인('가시나무 새'등 여러 TV 미니 시리즈의 주연을 맡아서 유명했던 배우. 나중에 게이임을 커밍아웃해서 팬들에게 충격을 던지기도 했다)가 출연한 드라마. 실제 영국인으로 일본에서 무사계급을 받은 윌리엄 애덤스(William Adams, 1564~1620)의 이야기를 따와서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 자신도 인정한 사항 윌리엄 애덤스는

1980년에 만들어졌는데, 인기가 있었는지 이후에 극장판으로 재편집되어 극장상영되었다. TV미니시리즈 자체는 당신 대한민국 심의상 왜색 문제로 들여올 수 없었고, 이후에 재편집된 극장판본만 개봉 되었다.

주인공인 영국인 블랙손은 네덜란드 상선인 에라스무스의 항해사인데 세계일주 도중 배가 난파되어 떠밀려와서 결국 일본에 상륙하고 일본이름으로는 안진(항해사)이라 불린다.

당시 일본은 관백은 되었지만 쇼군은 되지못한 조선의 정복자 사실은 발렸음[18]토요토미 히데요시 나카무라 다이코 사후 진정한 쇼군을 노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토라나가와 이시다 미츠나리 이시도가 대립하는 형국.

일본 한 항구마을에서 표착한 블랙손에게 한 유럽인 예수회 신부가 할당되어 그의 통역을 해주지만, 일본에서 이미 독점적 무역권과 가톨릭 선교권을 가지고 특혜를 누리는 예수회와 스페인,포르투갈 사람들은 자기들의 정치적 적대국이자 종교적 적대국[19] 사람인 영국인 블랙손과 네덜란드인 선원들을 못마땅해 하면서 통역만 건성으로 할 뿐 블랙손과 선원들이 유럽으로 되돌아가는데에 협조해주지 않는다(에라스무스호는 그 지역 제후가 압류해버린 상태).블랙손은 그의 군사적,외교적 이용가치를 알아본 토라나가 제후에게 발탁되고, 블랙손 곁에는 가톨릭 신자이며 포르투갈어에 능통한 미모의 여인(마리코)이 통역을 위해 따라다니게 된다. 그후 그녀와 블랙손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블랙손은 토라나가를 따라다니며 일본 전국시대의 여러 전투와 정치적 암투의 현장을 다니면서 모험을 거듭하고 유부녀인 마리코와 위험한 사랑에 빠져 희로애락을 겪게 된다.

당시 일본문화와 생활상, 가치관 전반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나오는데 예를 들어 블랙손을 체포하고 그를 길들이려는 사무라이가 그를 땅에 엎드리게 해놓고 그 위에 오줌 갈긴다던가(일본문화에는 승리하면 패자에게 오줌을 갈기는듯한 묘사가 종종있다.), 목욕까지 한다.(당시 유럽에는 목욕이 금기시된듯하다. 일본인들이 블랙손에게 목욕을 하라고 하니 질색하는 장면이 나온다.)

*스포일러: 예수회, 스페인, 포르투갈쪽의 상선을 격퇴하고 그들의 부를 빼앗아 토라나가군의 승리를 돕고 자신도 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었던 블랙손은 자신이 타고 온 에라스무스호가 불타 없어진 것을 보고 절망한다. 그는 라이벌인 예수회 신부가 방화했으리라 짐작하지만 실은 토라나가의 소행. 이용가치 있는 블랙손을 영원히 자기 곁에 두고 이용할 심산으로 그렇게 한 것.

4. 세계수의 미궁 시리즈에 등장하는 클래스

5. KTF 매직엔스 게임단 마스코트 Show군

원래는 쇼 CF에 나오던 캐릭터. 사실 농구단 등 KTF 소속 스포츠단에서 먼저 쓰던 마스코트로 SK텔레콤의 마스코트인 벙키가 상당한 인기를 끌자 라이벌 구도를 벌이기 위해 이바닥에도 끌어들였는데 이름이 참...

참고로 여자 캐릭터인 쇼녀도 있다. 꽃남 패러디를 해서 쇼준표와 쇼잔디가 된 적도 있다...

벙키가 임요환을 상징하듯 쇼군도 홍진호를 상징한다. 실제로 프로필을 보면 프런트가 작정하고 콩까기를 하는 듯한 포스를 보여준다(에그에서 탄생했다는 설정이나 저주에 걸려서 풀려면 준우승이 아닌 우승을 해야 한다던가...).

참고로 프로필 사진의 포즈 때문에 김영진이 쇼군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10-11시즌에는 쇼군이 짤리고, 그대신 나오는게 와이파이라는 새로운 마스코트하고 팀의 에이스인 이영호를 본딴 마스코트를 대신 쓰고있다.

6. 프로게이머 김성현의 별명

"쇼"부대장"군"의 줄임말이다.

7. 아이실드 21의 등장인물 쇼지 군페이의 별명

8. 브라질종합격투기 선수 마우리시오 쇼군

9. 20세기 소년의 등장인물 오치아이 쵸지의 별명

10. 테크스텝의 드럼 앤 베이스레이블

11. 아라시 사쿠라이 쇼의 별명


  1. [1] 마치 조선의 체찰사 같다.
  2. [2] 그리고 헤이안 시대쇼군하면 진수부장군이었다.
  3. [3] 처음 1189년에 가정기관이 설치된 것은 맞지만 당시에 설치된 것은 政所가 아니라 公文所였다. 양자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같은데 이는 일본 고대 체계에서 기원한 것으로 본래 고위 공경의 집에 국가의 이름으로 설치해주는 일종의 비서기관이다. 이는 국가의 일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 집안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막부의 지배는 무사의 동량과 개별 무사들간의 개인적인 예속관계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는 기본적으로 공적이라기보다 사적인 家의 지배의 성격을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집안의 일을 관장하는 公文所-政所가 무가의 정치 행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公文所와 政所는 기본적으로 성격상 차이가 없으며 단지 이를 개설하는 공경의 관위에 따른 구분이다. 4위까지는 公文所이고 그 위로는 政所인데 1189년 임명받은 관직의 관위에 맞추어 公文所를 개설했던 것이고 이것이 1192년 세이타이쇼군직을 받아 관위가 정 3위 이상으로 올라가자 자연스럽게 政所로 승격되었다.
  4. [4] 대들보라는 뜻이지만 한글의 "두령"과 발음이 같으며, 실제적인 의미도 같다. 즉 우두머리란 뜻으로 주로 쓰인다
  5. [5] 公家. 일본에만 있는 독특한 귀족 계층으로, 공경으로도 불린다.
  6. [6] 예컨대 요리토모의 관직인 대납언 위로 내대신, 좌우대신, 태정대신, 관백 등과 같은 상위 관위들이 쭉 있다. 물론 그러한 직책을 맡은 인물들의 실권은 쇼군만 훨씬 못하지만...
  7. [7] 세이와 겐지의 후예이자 상당히 오래 된 명가인 다케다 가문 같은 슈고 다이묘를 제외한 대부분의 센고쿠 다이묘는 대개 지방 호족이 세력을 얻자 어디서 주워다 붙인 족보로 헤이지나 겐지를 사칭(...)하는 수준이었다. 헤이지나 겐지가 아니면 뼈대 있는 집안으로 대접받지 못했기 때문. 물론 워낙 흔한 일이었고 제대로 된 검증이 불가능했으니 별로 그런 점을 지적당하진 않았지만... 실제 오다 가문은 오와리 근처의 신관 가문이 무사로 전직한 것이라고 한다. 중요한 건 그렇게 별로 신뢰할 수 없는 족보인데다 다이라(헤이지) 씨족인 노부나가에게 쇼군 직을 제안했다는 것.
  8. [8] 참고로 이러한 일본 가문들의 겐지와 헤이지 사랑(...)때문에 조선에서는 일본 다이묘들이나 쇼군들을 지칭할 때 실제 성 대신 그들이 자신의 본성으로 자처한 겐지(源)나 헤이지(平)를 성처럼 부르기도 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평수길(平秀吉),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행장(平行長) 하는 식. 미나모토의 후손이라고 내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에는 원가강(源家康)으로 불렸다. 마치 루이 16세가 루이 부르봉이 아니라 루이 카페의 이름으로 처형당한것처럼
  9. [9] 어떻게 보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것이, '겐지만이 쇼군이 될 수 있다'고 명시되진 않았지만 오랜 기간 일종의 관례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전근대사회, 특히 귀족사회에서 관례가 얼마나 중요시되는지를 감안하면...
  10. [10] 어떻게든 당대의 실권자인 노부나가와 친하게 지내보고 싶었던 조정이 노부나가에게 좌대신직을 수여했으나 고사하자, 몸이 달아서 쇼군, 관백, 태정대신 중 원하는 자리를 골라 취임하라고 제안한 일이다. 그런데 노부나가는 이 제안 역시 고사했다.
  11. [11] 이게 당연히 말도 안되는 게 히데요시는 고요제이 천황을 에 두고 다이묘들에게 자신에 대해 충성을 서약하게 했다. 물론 메이지 일본은 이를 히데요시가 다이묘들에게 천황에게 충성을 서약하게 했다며 왜곡했다.
  12. [12] 아시카가씨도 겐지(미나모토)의 일파이다
  13. [13] 고노에 가문의 양자로 고셋케 가문의 지위를 얻었지만, '고노에'라는 건 일본 성씨제도에서 '묘지(苗字)'에 해당한다. 공적인 자리나 문서에서는 '고노에' 라고 쓰지 않고 '후지와라노 ~"라 칭한다. '아손(朝臣)'은 ~의 자손이라는 뜻이 아니라 씨족의 지위를 뜻하는 일종의 골품과도 같은 것으로 일본의 유서깊은 귀족가문들의 씨(氏) 다음에 붙이는 성(姓)인데, 일본어로는 '가바네'라고 한다. 우리의 '성(姓)'과 전혀 다른 의미.
  14. [14] 이는 귀족 출신인 오다 노부나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는 달리 출신이 비천한 것이 뻔한 히데요시는 자신의 성씨를 원평등귤로 날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식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15. [15] 이에야스는 농민의 자식이었던 히데요시에게 굴종한 것이 여간 굴욕이 아니었던지, 히데요시 수하의 다이묘가 자신에게 복종한 후에도 집요하게 트집을 잡아 가문을 단절시키는 등 해꼬지를 해가면서까지 히데요시와 손을 끊은 것을 분명히 하고,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시는 신사를 허무는 등 다소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해 격하했다.
  16. [16] 이전 문서에 미나모토의 '아손'을 자칭했다고 적혀있는데, 일본의 성씨제도를 이해하지 못한 서술이다. 마치 아손을 '~의 자손' 처럼 이해한 것인데, 여기서 '아손'은 아손(朝臣), 또는 아소미 로 읽으며 신라의 성골, 진골처럼 일종의 가문의 지위를 나타내주는 족성인 가바네(姓)를 뜻한다. 원래 마히토(眞人), 아손(아소미:朝臣), 스쿠네(宿禰), 이미키(忌寸), 미치노시(道師), 오미(臣), 무라지(連), 이나키(稻置) 등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나라 시대 이후에 이중에 아손(아소미:朝臣)만 남고 다른 것은 없어지다시피 한다. 그래서 흔히 후지와라노 아손~ 미나모토노 아손~ 다이라노 아손~ 식으로 불리니 아손이 성(姓)임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7. [17] 물론 다른 점도 많은데, 로마 제국의 경우 이 것 외에도 아우구스투스가 만든 '제 1 시민'이라는 뜻의 프린켑스(Princeps) - 오늘날의 프린스가 되는 - 도 존재했고, 이 외에 초대 독재관인 카이사르에서 따 와서 그냥 스스로를 '카이사르' - 이게 나중에 황제국을 자칭한 독일에서 카이저가 되고 러시아에서 짜르가 된다 - 로 칭하는 황제도 많았다.
  18. [18] 원작에서는 압록강에서 중국군대에게 대패했다고 한다.미화 쩌내요
  19. [19] 스페인,포르투갈가톨릭, 영국네덜란드신교였다. 당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여 독립한 네덜란드와 같은 신교국인 영국은 동맹국이었고, 이미 세계의 해상무역을 장악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대륙과 아시아를 자기들 마음대로 분할해서 기득권을 나눠먹고 있는 터. 따라서 영국 + 네덜란드 VS 스페인 + 포르투갈의 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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