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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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관련 틀

서울의 대학

대한민국의 여자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淑明女子大學校
SOOKMYUNG WOMEN'S UNIVERSITY

교훈

정숙(貞淑)·현명(賢明)·정대(正大)

상징

교화

매화

교목

소나무

교조

백로

교색

숙명 BLUE

국가

대한민국

분류

사립대학

개교

1906년 명신여학교

설립자

순헌황귀비 엄씨

총장

제19대 강정애

재단

학교법인 숙명학원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47길 100 (청파동2가)

재학생

학부생

10,492명(2016년)

대학원생

893명(2016년)

교직원

교원

1,417명(2016년)

직원

288명(2016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자율개선대학(2018년)

링크

공식 홈페이지
노조 홈페이지
총동문회 홈페이지

1. 개요
2. 연혁
3. 주변 교통편
3.1. 버스
3.2. 지하철역
5. 역대 총장
5.1. 제1대 임숙재 총장
5.2. 제13~16대 이경숙 총장
5.3. 제17대 한영실 총장
5.4. 제18대 황선혜 총장
6. 상징
10. 이모저모
10.1. 숙제여대
10.2. 스노로즈
10.3. 리더십 그룹
12. 여담

1. 개요

숙명여자대학교 서울캠퍼스

숙명여자대학교 홍보영상

숙명여자대학교 홍보영상(2019년)

숙명여자대학교, 淑明女子大學校, SOOKMYUNG WOMEN'S UNIVERSITY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사립 종합 여자대학교. '정숙, 현명, 정대(貞淑·賢明·正大)'를 교훈으로 하고 있다. 전진숙명이라는 별칭이 있다.

2. 연혁

1906년 용동궁[1]에 세운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를 모태로 삼는다.[2] 설립자는 순헌황귀비 엄씨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영향하에 있던 경선궁과 영친왕궁이 하사한 농경지 수익금을 재원으로 1912년 재단법인 숙명학원이 설립되었다. 1기는 단 5명의 여학생만으로 출발했다. 초대 교장 이정숙은 순헌황귀비가 총재를 맡았던 한일부인회에서 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3]. 오늘날 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의 전신이 된다.

한편 순헌황귀비 엄씨와 그녀의 친정인 엄씨 가문은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아, 진명여학교양정의숙도 세웠다. 후에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숙대입구역부터 숙명여대 정문까지의 길이 '순헌황귀비길'의 명칭을 부여받게 된다.

현재 쓰이는 '숙명(淑明)'이라는 명칭을 달고 본격적인 민립 여성교육기관으로 정립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8년, 지식층이 주도한 숙명여전 설립 모금 운동이었다. 그렇게 건립된 당시 명칭은 숙명여자전문학교였으며, 학교 부지는 구황실 소유지 가운데 용산 청파동 일대 2만여㎡(현재의 숙명여대 제1캠퍼스 부지)였다.[4] 초대 교장으로는 전직 경성제국대학 교수였으며 당시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장이었던 오다 쇼고(小田省吾, 1871~1953)가 부임하였다.[5]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해방 후인 1945년 11월 숙명여자전문학교로 재개교하였다. 1948년 5월에는 미군 군정청에 의하여 대학 승격을 인가 받고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부산으로 피난하여 동대신동에서 가교사를 짓고 수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서울 지역이 다시 수복되자 1953년에 서울로 복귀하였다. 1955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총장으로는 숙명여전 교장이었던 임숙재가 취임하였다.

1964년~1966년에는 계속하여 학내분규가 발생하였다. 그 사유는 제4대 총장인 김순식에 의한 신입생 부정입학,[6] 제5대 윤태림 총장의 횡령, 영친왕이방자의 차남인 이구의 숙명학원 경영권 주장 등이었다.[7] 1968년[8] 6관구 사령관이 한강 이북 방위선을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숙명여대가 소유한 관악구 남현동 토지를 강제 점유하자, 숙명여대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4차례에 걸쳐 점유당한 토지를 전국에 산재한 국방부의 유휴지로 환지 받았다.

1981년에는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었던 김옥렬 교수가 최초의 숙명여대 출신 총장으로서 부임하였다. 김옥렬 총장은 1991년 국방부가 소유한 B지구(현재의 제2 창학 캠퍼스)의 토지 일부를 취득하였다. 1994년에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경숙 교수가 교수 직선으로 제13대 총장에 선출되었다. 이경숙 총장은 현재의 약학대학 뒤에 위치한 국유지의 공원부지 지정을 해제하고 매입하여 제2 창학캠퍼스를 조성하였다. 그 후 2008년까지 제2창학을 표방하며 재임한 이경숙 총장[9] 시절에 학교 인프라가 상당히 발전하였다.[10]

2012년에는 기부금 편법운용 등을 이유로 한영실 총장과 재단 사이에 분규가 일어났다. 이 분규는 2012년 9월에 황선혜 총장이 부임하면서 마무리되었다. 2013년에는 숙명여자중학교숙명여자고등학교가 숙명학원에서 분리되어, 명신여학원이라는 재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숙명학원은 숙명여대만을 운영하는 단독법인이 되었다. 한편 황선혜 총장은 2013년 공과대학 창설을 선언하였고, 2016년에는 이화여대에 이어 여자대학교에서 2번째로 숙명여대에 공과대학을 신설하였다.

3. 주변 교통편

3.1. 버스

3.2. 지하철역

학생들에게 3개의 역 중에서 학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역을 고르라고 하면, 몇몇은 순간 멈칫할 만큼 애매하게 위치하고 있다. 역명에 속으면 안 된다 따라서 통학생들은 굳이 숙대입구역으로 오기보다는, 자기 집과 가까이 연계된 다른 역으로 오는 것이 좋다.

각 역에서 숙대로 걸어오는 건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엄청 힘들지는 않으며, 또 세 역 모두 학교 정문-후문 앞까지 오는 버스가 잘 연계되어 있으므로 가능하면 환승을 하도록 하자.

4. ROTC

숙명여대 학군사관후보생들의 훈련 및 생활 모습

숙명여자대학교 학군단

국내 최초로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생긴 여자대학교이다. 본래 남학생만 뽑던 학군단에서 여학생도 뽑게 됨에 따라 숙명여대도 학군단 설치를 신청했고, 2010년 말에 제217학군단이 창설되었다.

2012년 학군단 하계군사훈련에서는 숙명여대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방학 중에는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주니어 ROTC 리더십 캠프'를 개최, 안보의식과 리더십 등을 교육한다. 현역 육군소장의 안보특강, 도라산전망대와 비무장지대(DMZ) 견학, 인근 군부대에서의 병영체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5. 역대 총장

  • 초대 총장 임숙재 (1955년 3월 취임
  • 제2대 총장 김두헌 (1958년 9월 취임)
  • 제3대 총장 김두종 (1960년 7월 취임)
  • 제4대 총장 김순식 (1963년 6월 취임)
  • 제5대 총장 윤태림 (1965년 1월 취임)
  • 제6대 총장 이인기 (1969년 2월 취임)
  • 제7대 총장 김경수 (1973년 2월 취임)
  • 제8대 총장 서명원 (1977년 2월 취임)
  • 제9대 총장 차낙훈 (1977년 7월 취임)
  • 제10, 11대 총장 김옥렬 (1981년 8월 취임)
  • 제12대 총장 정규선 (1990년 3월 취임)
  • 제13, 14, 15, 16대 총장 이경숙 (1994년 3월 취임)
  • 제17대 총장 한영실 (2008년 9월 취임)
  • 제18대 총장 황선혜 (2012년 9월 취임)
  • 제19대 총장 강정애 (2016년 9월 취임)

5.1. 제1대 임숙재 총장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환경을 다스리십시오."

임숙재 총장이 학생들에게 항상 했다는 말.

임숙재는 1891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17살에 연지곤지 찍고 시집을 갔는데, 시집간 지 2년 만에 신랑이 갑자기 죽어 19살 나이에 과부가 되어 버렸다. 죽은 신랑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던 어느날, 임숙재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거울 앞에 앉아 긴 댕기머리를 사정없이 잘라 버리고,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헤쳐나갈 방도를 곰곰히 생각했다. 친정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작정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낯설고 물설은 서울 생활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지만, 임숙재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고, 남의 집 빨래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부잣집 식모[11]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집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다행히 집 주인은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고, 임숙재를 인정해 주고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입학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임숙재는 낮에는 식모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했는데, 최우수 학생이 되고 장학생이 되었을 정도로 성과를 올렸다.

1913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7년 도쿄부립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1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12] 가사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1924년까지 숙명여고보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1926년부터 1937년까지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13] 교유(敎諭)로 활동한 뒤, 1939년 숙명여자전문학교 교수(敎授)가 되었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주최의 국민정신 선양 순회강연회 연사로 활동하는 한편, 1941년부터 1942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부인부 지도위원을 지냈다. 또한 1941년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주최 시국대책 순회강연회 강사‧매일신보사 주최 부인시국대강연회 강사‧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부인대 지도윈원, 1942년 대일본부인회(大日本婦人會) 조선본부 이사, 1943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총무부 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였다. 이와 함께 「대동아전쟁 완수는 주부의 철저한 각오에서」‧「이기기 위하여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등을 기고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선전하였다.(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1945년 해방과 함께 숙명여전은 숙명여자대학으로 개편되었고, 임숙재 교수는 초대 학장이 되었다. 10년 동안 학장을 지내면서 숙명여자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1955년 드디어 숙명여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자 숙명여자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었다. 3년 동안 총장을 지낸 후 1958년 9월에 정년퇴임하였다.

5.2. 제13~16대 이경숙 총장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14] 무려 14년 반 동안 재임했으며, 임기 동안 수많은 건물을 세우고 숙명여대의 공간을 크게 확장하였다. 대단히 많은 기부금을 모았는데, 임기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사정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영어 몰입교육을 정책으로 수립하였는데, "'오렌지'가 아니라 어린쥐로 발음해야 한다"고 말해 조롱을 받았다. 후에 본인이 밝힌 바로는, 공청회 자리에서 학부모가 "'오렌지' 발음을 원어민과 가깝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에 '어린쥐'라고 발음해준 것이 왜곡된 것이라고 하였다. #

5.3. 제17대 한영실 총장

재임 당시 경상대학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구성원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 후 재단 전입금 위장 문제 때문에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이용태 숙명학원 이사장이 취임승인 취소 처분을 받고, 한영실 총장도 긴급이사회에서 해임되는 등, 학내분규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참고로 애칭(?)은 비타민 총장님. 이유? 정말 모르겠는가? #

5.4. 제18대 황선혜 총장

재임 당시 공과대학 신설을 주도하고, 임기 말에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 대형유형에 숙명여대가 선정되도록 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만큼 학교의 재정적자를 심화시켰다는 비판 역시 함께 받았다. 또한 공대 신설을 위해 타 과의 입학정원을 갑자기 무리하게 축소하고 공대 자리를 위해 이전 과학관에 있던 몇몇 과를 강제 이주시키는 등 본인의 정책 추진을 위해 독단적인 행동을 많이 해 학생들과 교수들의 많은 지탄을 받았다. 또한 학생충원이라는 명목으로 대학원 남녀공학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학생들과 동문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존재감이 거의 없어서인지 외부인들과 학교에 크게 관심없는 재학생들은 황 총장의 존재를 잘 모른다. 결국 이경숙 총장과 한영실 총장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임기가 만료되었다.

6. 상징

일명 눈송이대학교

  • 교표와 마스코트인 '눈송이'

  • 그리고 마스코트 '눈송이'는 2013년 '눈송이 2.0'으로 성형수술리뉴얼되었다![15]
  • 눈꽃, 눈송이
교표의 모양이 눈꽃이며 마스코트가 눈송이다. 학교 홈페이지에 가면 다양한 활용동작의 눈송이를 볼 수 있다. '눈송이'의 경우 활용도가 매우 높아 '숙대생=눈송이'를 비롯하여 다양하다. 학교 축제와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면 마스코트 인형을 자주 보게 된다. 학생들이 온갖 짤방에 눈송이를 넣어 활용한다. 학우를 지칭할 때도 '송이들', '눈송이들'이라고 부른다. 담당 교수의 서명이 들어간 허가서를 제출하면 동아리나 리더십그룹, 학생회에서 인형옷을 대여할 수 있다. 학생들이 마스코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특히 새내기들이 3월에사진도 같이 찍으며 좋아한다. 여담으로 인형 옷은 여자가 입는데, 여자대학교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인형 옷의 키가 작아 적정 키가 160cm로 되어 있다. 그 이상의 사람이 입는다면 목이 붕 뜬다. 절대 남자일 수가 없어!! 우린 안될꺼야 아마… 또한 눈송이가 자주 손을 입에 대는 제스처를 취하는데, 귀척한다고 욕하지 마라. 머리가 자꾸 앞으로 쏠려서 받치는 것 뿐이다.
창학 111주년을 맞이해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출시되었다. 숙명여자대학교 공식 플러스 아이디를 친구추가하면 30일 한정이지만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카카오톡 정책상, 학교 이모티콘은 돈 주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인형, 스티커, 파일, 노트, 뱃지 등 온갖 눈송이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교내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공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종류와 개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굿즈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하고 만드는 그룹들이 생길 정도. 학교가 안 만들어 주니까
학생들이 눈송이를 활용한 수많은 짤들을 방출하고 있다.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녹초가 된 눈송이 짤 등을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으로 지정해둔 숙대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
  • 파란색
뭘 해도 파란색이다.[16]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장기 발전 프로젝트 이름조차 '블루리본'. 설마 르 꼬르동 블루도 그래서??(가 아니라 정말로 르 꼬르동 블루 섭외 과정에서 숙명여대가 황실에서 설립한 학교인 점과 더불어 학교 색이 파란색인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학생들은 그나마 눈에 편안한 색이라며 자기위안을 하지만, 매년 학교의 행사 중 하나인 리더십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리더십 그룹(아래 설명)들은 최대한 파란색을 쓰느라 안간힘을 쓴다.

7. 캠퍼스 및 건물

숙명여자대학교/캠퍼스 참조.

8. 학과

숙명여자대학교/학과 참조.

9. 사건사고

숙명여자대학교/사건사고 참조.

10. 이모저모

10.1. 숙제여대

학교에서 워낙 공부를 많이 시키고, 과제를 자주 내줘서 붙은 별명이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어쩐지 모르게 알고 있는(…) 별명. 사실 이는 다른 학교보다 학사과정이 1주 짧은 데에서 기인한다. 보통 다른 대학교의 학사과정이 16주인데 비해 숙대의 경우 15주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교 학생들이 16주에 할 것을 15주에 하려니 당연히 벅찬 것. 2012년부터는 16주 학사과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숙제는 줄어들지 않는다

10.2. 스노로즈

2007년 8월 15일에 개설된 제39대 총학생회 '트로이카'가 만든 커뮤니티. 공식 커뮤니티는 스노로즈가 아니고 학교 홈페이지 내의 SnoWe다.

글 리젠은 빠른 편. 숙대생만을 위한 수업정보, 강의 평가를 비롯해 선후배간 훈훈한 교류가 이어지는 밝고 건전한(?) 사이트. 또한 졸업생들도 다수 서식하고 있어 사회에 나온 선배와의 교류가 가능하고 화장품, 맛집 정보 등 실용적인 정보들도 다수 있다.

능력자 학우들 덕분에 숙명여대 공식 캐릭터 '눈송이'를 활용한 거울, 보틀, 스티커, 전자파스티커 등 다양한 물품들이 활발하게 공구되는 중이다. 눈송템뿐만 아니라 과잠, 후드 등 활발한 공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정회원 등업이 복잡하고 스노로즈 내 규칙(아이디 공유 금지 등)을 어긴다면 엄격한 강등제도가 적용된다. 이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다. 축제 기간에 스노로즈 부스에서 현장 등업이 가능하니 그 시기를 노려보자.

10.3. 리더십 그룹

일반적인 동아리와는 다른 개념으로, 학교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학생 그룹이다. 그래서 소속도 대개 대외협력처 홍보팀, 영상미디어센터, 학사지원팀, 중앙도서관, 입학팀, 취업경력개발원 등 학교의 부속 기관.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해서 2012년 현재 학교 홈페이지에 등록된 것만 40개. 하는 일도 그 종류만큼 다양하다. 다양한 봉사활동부터 시작해서 교내의 학우들을 돕는 일, 대외적으로 학교를 홍보하는 일 등등.

대표적으로 캠퍼스 투어 및 의전을 진행하는 숙명여대 공식 홍보대사 '숙명앰배서더'와, 교내외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 통번역활동을 하는 '숙명통역봉사단',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는 '숙명한국어교육봉사단', 숙명여대 학보사인 '숙대신보', 교내 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교육방송국 'SBS', 도서관 업무 지원과 도서관 투어를 담당하는 'SMARTeer', 외국인 교환학생의 한국 생활을 돕는 'Global Buddy Group U.R.I' 등이 있다.

11. 출신 인물

숙명여자대학교/출신 인물 참조.

12. 여담

  • 2013년 8월 29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201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DB 연계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숙명여대 졸업자 취업률 54.8%를 기록하며 수도권 소재 4년제 여자대학 중 1위, 전국의 대학 및 산업대학 ‘나’그룹[17] 중에서는 14위에 올랐으나#, 2014년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공시된 고등교육기관 취업률 통계 결과, 이화여대 61.9%, 숙명여대 60.8%, 성신여대 59.7%로 역전되었다. 졸업 후 우리, 취업할 수 있을까…[18]


  1. [1] 오늘날의 종로구청 동쪽 건너편 자리
  2. [2] 물론 당시에는 대부분의 당시 사학들이 그렇듯, '있는 집 자녀들을 가르치는 학원' 정도의 개념이었다.
  3. [3] 이정숙이 실제 설립자라는 말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순헌황귀비 엄씨가 설립한 걸로 알려져 있다.
  4. [4]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과 사무를 담당하던 한시적 기구인 이왕직(李王職) 장관이 1938년 5월 20일 현 숙명여대 본관 일대 2만여㎡를 학교 부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하였다. "용도는 학교 부지이고 임대료는 무료다. 학교 부지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
  5. [5] 일본의 역사학자로서 1899년 도쿄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한국에 파견되어 조선총독부 학무국 근무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예과부장/법문학부 조선사학 강좌 교수를 역임했다가 경성제대 정년퇴임 이후 숙명여전 교장으로 부임했다. 숙명여전 교장으로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왕직의 촉탁으로 조선역사에 관한 교과서 편찬, 수사사업, 고적조사 등의 사업을 지휘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고종실록순종실록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6. [6] 1964년 10월 21일 32명의 교수가 김순식 총장이 부정하게 신입생 입학과 건물 신축을 결정했다며 총장 사임과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고 총장실을 점거하여 농성하였다. 그 후 11월 19일 32명의 교수 중 5명의 해면이 결정되자 일부 학생들이 가담하여 농성을 계속하였고, 11월 23일 김순식 총장은 학교가 정상화될 때까지 무기한 휴교한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1965년 1월 21일 김순식 총장이 사임하였다.
  7. [7] 일본에 머물다 1963년 부모인 영친왕·이방자 여사와 함께 귀국한 이구는 본인이 숙명학원 설립자(순헌황귀비)의 직계 손자이며 황귀비의 재산으로 설립된 재단인 만큼 본인에게 재산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현 숙명학원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이사진을 교체하고 내가 선임하는 인사에 학교 경영권을 주어야 한다"고 문교부와 국회 문공위에 청원했다. 문교부는 이에 행정권을 발동해, 숙명학원 일부 이사진으로부터 사표를 받아내고 이구가 지목하는 인물로 이사를 임명하는 등 직접 개입했다. 숙명학원의 기존 이사진과 이구 측 이사들, 국회 문공위와 문교부 관계자들은 1년 이상 서로 책임을 물으며 분규를 계속했고, 숙대의 준국립대학화 등 논의가 이어지다 결국 1967년 제3의 인물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분규가 마무리됐다.#
  8. [8] 이때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
  9. [9] 퇴임 직전에 제17대 대통령 인수위원장을 역임했다.
  10. [10] 한편 그 기간 동안 재학생들은 심유니버시티를 체험해야 했다. 한 학기에 도서관을 포함해 주요 건물 3군데가 공사한다든가.
  11. [11] 임숙재 총장이 본래 '식모'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1950년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장난삼아 숙대를 '식모 숙대'라 부르기도 했다고.
  12. [12]오차노미즈여자대학
  13. [13]경북여자고등학교
  14. [14] 참고로 경기여자고등학교-숙명여자대학교 동문회의 별칭이 '경숙회'라고 한다.
  15. [15] 몰랑이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유명하고 본교 미대 시각디자인과 재학생이기도 한 윤혜지 씨가 디자인했다.
  16. [16] 파란색 중에서도 로열 블루에 가까운 듯.
  17. [17] 졸업자 2,000명 이상 3,000명 미만 그룹
  18. [18] 숙명여대 르꼬르동블루외식경영학과가 본교에서 취업률이 가장 높은데, 무려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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