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시대

The Steroids Era

1. 개요
2. 영향
2.1. 2003년. 발코(BALCO) 스캔들
2.2. 2005년. 의회 청문회
2.5. 이후
3. PED를 사용하지 않은 선수들
4. 기타
5. 둘러보기

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 중에서도 블랙삭스 스캔들 다음으로 꼽힐만한 흑역사.

메이저리그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금지약물 복용에 대한 규제가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었고[1], 1991년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경기력 향상 약물(Performance Enhancing Drugs. 줄여서 PED)이 금지된 이후에도, 도핑 검사가 없고 느슨한 규제로 인해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약물 사용 이후 급격한 성적 향상을 이룬 선수들이 여기저기 나타나면서, 경기력 향상 약물은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으며, 이로 인해 기록의 인플레이션이 두드러졌던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후반(1994~2004년을 피크로 본다.)까지를 흔히 스테로이드 시대라 부르고 있다.

2. 영향

스테로이드 계열의 경기력 향상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정직하게 플레이한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성적으로 인해 평가절하 되고, 금지 약물을 마음껏 사용해 한껏 기량을 끌어올린 선수들은 놀랄만한 성적 덕분에, 리그를 주도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되어 기록과 몸값 양쪽 모두 수혜를 받게 되었다.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직접적인 근육량 증가와 근력 향상을 이루어 낸 타자들이 먼저 크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는데, 아마 시절이나 유망주 때 큰 주목을 못받던 선수들이 급격하게 슬러거로 변신해 장타를 펑펑 날려댄 덕분에, 스테로이드의 효과가 공공연하게 입증되면서 많은 타자들을 악마의 유혹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평범한 3루수에서 일약 MVP 수상자로 업그레이드 한 켄 캐미니티, 24홈런이 최다 기록이던 175cm의 2루수가 약물 사용 후 30홈런을 넘기는 기적을 보여 준 브렛 분 등의 사례는, 보통 선수가 스테로이드를 통해 얼마나 강력하게 변신할 수 있는지 입증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슬슬 약물 사용자의 숫자가 늘어나더니, 급기야 1998년 역사적인 홈런 레이스의 주인공 마크 맥과이어새미 소사를 지켜본 수많은 선수들이 앞다투어 약물 행렬에 동참했다.[2] 이런 행태가 극에 달한 1999년과 2000년은 그야말로 홈런과 각종 타격 기록의 홍수가 쏟아졌는데, 이 당시 30홈런 100타점 정도의 기록은 팀의 중심타자로서 최소치에 불과해 슬러거라고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미 그 전에도 역대 최고의 호타준족 중 하나이자 MVP 3회 수상자였던 배리 본즈는, 2001년부터 2004시즌까지 4년 연속 내셔널 리그 MVP로 선정되며 리그를 초토화한다.

1999년 메이저리그 전체 타점 순위로 *표시는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이 적발되었거나 의혹이 풀리지 않은 경우.

1. 매니 라미레즈 44홈런 165타점 *

2. 라파엘 팔메이로 47홈런 148타점 *

3. 마크 맥과이어 65홈런 147타점 *

4. 맷 윌리엄스 35홈런 142타점 *

5. 새미 소사 63홈런 141타점 *

6. 카를로스 델가도 44홈런 134타점

7. 켄 그리피 주니어 48홈런 134타점

8. 단테 비세트 34홈런 133타점 *

9. 블라디미르 게레로 42홈런 131타점

10. 후안 곤잘레스 39홈런 128타점 *

11. 제프 배그웰 42홈런 126타점 *

12. 마이크 피아자 40홈런 124타점 *

...

57. 게리 셰필드 34홈런 101타점 *

58. 딘 팔머 38홈런 100타점

2000년 내셔널리그 홈런 순위로 *표시는 경기력 향상 약물 사용이 적발되었거나 의혹이 풀리지 않은 경우.

1. 새미 소사 50홈런 *

2. 배리 본즈 49홈런 *

3. 제프 배그웰 47홈런 *

4. 리차드 이달고 44홈런 *

5. 블라디미르 게레로 44홈런

6. 게리 셰필드 43홈런 *

7. 토드 헬튼 42홈런

8. 짐 에드몬즈 42홈런

9. 켄 그리피 주니어 40홈런

10. 마이크 피아자 38홈런 *

별표 없는 선수를 세는 게 더 빠를 지경. 1999년에는 메이저리그 100타점을 올린 선수가 무려 58명, 즉 단순 계산으로 봐도 팀당 2명의 100타점 타자들이 있었다는 소리다.

위 절정의 스테로이드 시대와 비교할만한 내용을 첨언하자면, 프레드 맥그리프는 양대 리그에서 각각 홈런왕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 1989년 36개 아메리칸리그 홈런 1위
  • 1992년 35개 내셔널리그 홈런 1위

즉 90년대 초반까지도 40개면 홈런왕이 되기에 충분했고, 30개 이상만 날려도 리그 최상위권 슬러거로 대접 받았다는 소리다. 물론 당시에도 약물과 무관하게 50홈런을 때린 선수들이 존재했다. 메이저리그에서 50홈런의 위상은 대단한 것으로, 1977년 조지 포스터가 52홈런을 기록한 이후, 1980년대에는 단 한명의 선수도 달성하지 못할 정도로 귀중한 가치를 인정받았다.[3] 1990년 충격적인 51홈런을 날린 세실 필더[4] 1995년 단축 시즌에도 불구하고 50홈런과 함께 역사상 최초의 50(홈런)-50(2루타)을 달성한 알버트 벨은 최고의 홈런왕으로 각광을 받았으나, 불과 몇 년만에 흔해빠진 기록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당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 켄 그리피 주니어는 2년 연속 56홈런을 기록하고도 맥과이어와 소사의 홈런 열풍에 완전히 묻혀버려, 별 것 아닌 기록처럼 여겨질 정도였으니......

9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의 흥행을 이끌었던 새미 소사마크 맥과이어의 홈런 레이스도 그 이면엔 약물이 큰 역할을 차지했다. 이 시기를 관통하는 동안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승부했던 타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플레가 크게 심해지면서 30홈런 100타점 정도는 지극히 흔한 기록으로 취급되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리피는 2년 연속 56홈런을 기록하고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고, 95년만 해도 50-50을 달성한 메이저리그 최고의 슬러거로 독보적인 위치였던 알버트 벨 역시,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명' 정도로 위상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짐 토미와 같은 선수들은 상대적으로 더욱 저평가가 심했는데, 알버트 벨과 매니 라미레즈라는, 더욱 완성도 높은 슬러거들과 같은 팀이었기에 상대적으로 그늘에 많이 가렸다. 게다가 전성기를 맞이한 1996년부터 2004년까지가 하필 스테로이드 시대를 관통하는 10년이었다. 토미는 9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때렸지만 90년대 말의 30홈런은 왠만한 팀의 중심타자로서 평범한 것이었다. 게다가 2001년부터는 4년 연속 40홈런과 함께, 2003년 무려 52홈런을 기록했지만, 약물복용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57홈런에 밀렸다. 이제는 50홈런은 밥먹 듯 나온 바람에 예전만한 가치를 인정 받지도 못하고, 그냥 의외로 많이 친다는 정도의 저평가를 받았다. 2003년 필라델피아 이적 후 47홈런으로 생애 최초의 홈런왕에 오르면서야 겨우 최정상급 슬러거로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토미는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하면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2005년을 제외한다면, 38세인 2008년까지 34홈런을 기록하는 등 1996년~2008년까지 모두 30홈런 이상, 1994년~2010년까지 20 홈런 이상을 기록한 동 시대 최고의 슬러거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성기 내내 약물 선수들의 맹활약에 묻혀 직접적인 저평가의 대상이 된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이다.

위의 99시즌의 리스트를 한번 살펴보자, 약쟁이들을 빼고 랭킹을 매길 경우 타점 순위는 톱10에서 공동 1위가 됐어야 할 카를로스 델가도 (134타점)와 켄 그리피 주니어 (134타점) 3. 블라디미르 게레로 (131타점)로 세 명만 남게 되며, 홈런 리스트의 경우 그나마 나아 6명이 남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켄 그리피 주니어가 48홈런으로 홈런왕, 그렉 본과 치퍼 존스가 45홈런으로 2위, 카를로스 델가도가 44홈런으로 3위, 게레로와 숀 그린이 42홈런으로 공동 4위에 오르게 된다. 보면 알겠지만 홈런왕이 됐을 그리피는 40홈런대 후반으로 앞서 언급된 대로 40개대의 홈런으로 최정상급 슬러거 취급받던 다른 시대와 큰 차이가 없다. (전 시대에 비하면 조금 늘긴 했지만 선수들의 피지컬이 전체적으로 늘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이 경우 최정상급 타자였지만 거포로서 평가는 약쟁이들에 밀리던 켄 그리피 주니어가 시대를 풍미하는 홈런왕으로 합당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심지어 이때 그리피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석권하게 된다. 은근히 과소평가받곤 하며, 해당 시즌에 홈런 공동 5위였지만 맥과이어와 소사에게 20개나 뒤지며 거의 묻혔던 그렉 본같은 선수가 홈런왕 레이스에 합류하며 더욱 주목받았을 것이다.[5]

이 시기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던 선수들, 다시 말해 정직했던 선수들이 받은 불이익은 아래 프랭크 토마스가 언급한 약물 시대의 회고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 30홈런 100타점을 때려내면 대단한 선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40홈런과 120타점을 목표로 했고 그것을 이뤄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선수들이 60개씩 홈런을 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나에게 평범한 선수라고 했다.

다만 프랭크 토마스도 한동안 누적 커리어 평가에 불이익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처럼 과장되어 묘사한 것은 당시의 상황과 사실에 많이 차이가 있다. 적어도 토마스 본인이 1990년대부터 한결같은 주특기인 언론에 징징거리기 신공으로 떠드는 것처럼, 당시 그가 약물 선수들 때문에 당대에도 크게 불이익을 겪고 푸대접 받은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심한 비약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상대적으로 타자들의 약물 열풍에 비해 투수의 약물 확산은 더딘 흐름이었는데, 당시만해도 근육량과 근력이 집중 향상되는 스테로이드는 투수에게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유연성과 순발력을 유지하는데 해가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굳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속설을 거스르고 용감하게(?) 자신을 실험하는 약물 선구자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약물 확산으로 폭발하는 타자들에 비해 투수들이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역사상 최고의 타고투저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단적인 예로 2000년도 아메리칸 리그 평균자책점을 보면, 리그 평균이 5.07, 평균자책점 2위인 약물 투수의 선구자 로저 클레멘스가 무려 3.70 이었다 [6] 2000년대 들어 약물 선발의 클레멘스와 함께, 100마일을 거침없이 던져대는 최강의 약물 마무리로 툭 튀어나온 에릭 가니에의 맹활약이 신호탄이 되어, 투수에게도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이 크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투수들의 약물 사용도 크게 확산되고 만다. 즉 리그 전반에 걸쳐 타자들의 약물복용이 급격하게 확산되는 시기를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반으로 보는데 반해, 투수들은 2000년대 이후 꾸준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약물 스캔들이 본격화 되면서 타자들의 약물 사용과 적발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 투수들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금지약물 복용이 꾸준하게 적발되고 있다는 점에서 확산 시기의 차이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투수 약물의 사실상 시발점은 97년의 로저 클레멘스였다. 클레멘스는 드와이트 구든, 잭 모리스, 데이브 스튜어트와 함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우완투수였으며, 시즌 MVP와 사이영상 3회를 수상한 실적으로, 누적 기록과 한 시즌을 완벽히 지배한 임팩트까지 갖춘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이 되면서 강속구와 슬라이더의 위력도 점점 떨어져갔고, 에이스로서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판단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그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하고 만다. 그러나 한물 갔다는 평가를 비웃는 것처럼, 1997년 클레멘스는 최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 무려 264이닝을 던지면서 21승 7패, 평균자책 2.05, 탈삼진 292개 모두 리그 1위의 무시무시한 기록으로 타자를 압도하고, 앞 시대에 활동했던 전설적인 좌완인 스티브 칼튼과 동시대의 그렉 매덕스에 이어 역사상 세번째로 4회째 사이영상 수상자가 되었다. 1998년 역시 20승과 2.65의 평균자책점으로 2년 연속 리그 1위를 달성하고 사이영상을 연속 수상, 전무후무한 5회 사이영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뉴욕 양키스로 영전하여 숙원이던 월드시리즈 제패의 꿈을 이뤘고, 휴스턴 이적 후 40대에도 여전한 위력을 보이면서 사이영상을 두개나 더 추가하는 등, 354승을 거두고 화려했던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당시에는 토론토 이적 후 새로 장착한 스플리터가 그의 회춘을 가능하게 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으나...[7] 은퇴 이후 트레이너이던 브라이언 맥나미의 폭로와 2007년 미첼 리포트에서 약물복용자로 지목됨에 따라, 톰 시버와 함께 월터 존슨 이후 최고의 우완투수라던 그의 영광스런 커리어도 결국 추악한 약물 냄새로 얼룩지게 되었다.

게다가 함께 금지약물 복용자로 폭로된 절친 앤디 페티트가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잘못을 인정하고 정중하게 사과한 것과 대비되어, 초지일관 발뺌하며 이리저리 논점을 피해가는 클레멘스의 태도는 미국인들에게 크나큰 실망을 안겨주고 말았다. 전형적인 백인중산층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각 투타에서 역사적인 위업을 달성한 거물들인, 맥과이어와 로저 클레멘스가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모습으로 몰락하는 모습을 전 미국인이 지켜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중과 여론은 과거 메이저리그를 오랫동안 빛내 온 수 많은 영웅들의 업적이, 추한 약물 사용자들로 인해 밀려나고 더럽혀지는 것에 대하여 커다란 분노를 느꼈다. 한 예로 역대 2위인 통산 8회 홈런왕이자 베이브 루스 이후 최고의 홈런타자라는 칭송을 받던 마이크 슈미트의 통산기록은 548홈런으로 은퇴 당시 역대 8위로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 게다가 슈미트는 1989년 시즌 초반에 은퇴하여 사실상 1988년이 마지막 시즌이었음에도, 1980년대 최다 홈런인 313개를 기록할 정도로 위대한 홈런왕으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테로이드 시대 이후 그의 순위는 이제 15위까지 떨어졌다. 7,80년대 최고의 홈런왕인 슈미트 위로 올라간 7명의 선수 중, 짐 토미를 제외한 6명은 모조리 약물복용자들이다. 또한 70년대 최다 홈런기록을 달성하고 역대 최고의 파워히터 중 하나로 평가받는 윌리 스타젤은, 6,70년대 최악의 투고타저와 초대형 구장에서 선수 생활을 한 바람에 기록에 손해를 많이 보고 475 홈런으로 은퇴했는데, 그 시점 20위이던 그의 역대 홈런 순위는 이제 순위를 매기기도 어려울 만큼 내려갔으며, 2000년대 이후로는 500홈런도 못 때린 선수로 평가절하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으며, 그의 기록 위로 수많은 약물복용자들의 성적들이 얼룩져 있다.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한 메이저리그도 약물 검사를 올림픽 수준으로 대폭 강화하게 되었고, 약물복용자에 대한 처벌 역시 이전보다 훨씬 더 강도를 높여 약물 근절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스테로이드 시대 약물 사용에서 자유로운 선수들에 대한 재평가와 고평가가 나타났으며, 그들에게는 업적 이상의 '명예'라는 타이틀이 덤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들도 이미 약물복용 선수들로 인해 뒤죽박죽이 된 기록을 바로잡기엔 불가능하며, 약물의 위력을 눈으로 지켜보며 자란 유망주들은 여전히 그 유혹에 노출되어 심심할만하면 적발 사례가 터지곤 한다.[8]

스테로이드 시대가 남긴 가장 큰 문제는 위에 언급한 유명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거나 평가에 손해를 입은 것 정도가 아니다. 무수하게 많은 마이너리거들은 메이저리그 경기에 단 한번만 뛰는 것을 일생의 소원으로 여기며 젊음과 피와 땀을 바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소위 듣보잡으로 평가하고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성적을 올리는 선수들조차, 그렇게 일생을 건 도전과 노력끝에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선수들이며, 마이너리거들에겐 하늘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약물 사용자들은 본래 저들이 정당한 노력을 통해 얻었을 감격스러운 자리를, 부정한 방법으로 기회를 빼앗아버린 것이며, 그야말로 타인의 꿈과 희망을 짓밟은 것과 다름없다.

약물복용자에게 밀려 평범한 선수들이 자리를 내주고, 그 평범한 선수라도 되고 싶어하는 유망주들에게 갈 기회조차 앗아버린 악순환이야말로, 스테로이드 시대가 남긴 가장 큰 과오라고 할 수 있다.

2.1. 2003년. 발코(BALCO) 스캔들

미국의 제약회사인 베이 에어리어 연구소(BALCO)에서 선수들의 60%는 약물 복용을 하고 있다며, 자사로부터 스테로이드를 공급받은 선수들의 명단을 밝혔는데, 그 중엔 역대 최강의 야구선수였던 배리 본즈의 이름도 포함되어 있어 새삼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큰 징계없이 유야무야되었다.

2.2. 2005년. 의회 청문회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 Juiced의 충격적인 폭로와 더불어 트레이너를 비롯한 많은 증언과 고발이 잇따르게 되면서, 미 의회에서 직접적으로 약물복용 실태를 파악하는 청문회를 열게 된다. 의회 청문회에 사건의 중심에 선 마크 맥과이어를 비롯해, 그와 세기의 홈런레이스를 펼친 새미 소사, 함께 자서전에 언급된 라파엘 팔메이로 3사람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증언하도록 했는데, 무수한 의혹과 그들의 위상 때문에 청문회 방송은 사상 유례없는 시청률과 함께 큰 화제를 불러오면서 전 미국이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전 미국의 영웅이자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마크 맥과이어의 발언이었다. 그는 약물 관련 의혹들에 대해 확실한 태도를 밝히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매스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대는 것을 꺼려하고 있었다. 사실 당시의 미국인들 대부분이 맥과이어가 약물 의혹을 당당하게 부정하는 장면을 기대하고, 그에 대한 구설수를 털어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렇게 시작한 증인 발언에서, 단호한 어조와 확신에 찬 제스처로 약물 복용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결백을 주장한 팔메이로, 역시 생각보다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약물복용을 부인한 소사가 증언을 마쳤는데.....[9]

그러나 증인석에서 선서를 마친 맥과이어는 의원들의 질문에, "나는 과거의 일들을 말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니다." 라는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발언으로 발뺌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고, 많은 이들의 바램을 져버리고 미국인들을 크게 실망시키고야 말았다. 단순히 운동 선수가 아니라 사회적 명사의 위치에 오른 맥과이어의 처신은 최악에 가까운 것이었다. 유명인사들의 거짓말을 증오하지만, 잘못을 인정하면서 책임지는 자세에는 관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최소한 어느정도 시인을 하거나 변명을 하는 것만도 못했다. 당연히 맥과이어에게 사람들은 완전히 등을 돌리고 말았는데, 약물복용자로 더 큰 확신을 심어준데다, 과거의 영웅적인 업적들은 부정으로 얻어낸 추악한 결과라고 낙인이 찍혔으며, 가장 중요한 명예마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때문에 한동안 연락을 끊고 은둔하여 숨어 지내야 할 정도로 비난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이어졌다.

물론 강력하게 결백을 주장한 팔메이로와 소사도 그 반작용으로 참혹한 결말을 맞게 되었다. 당당하고 단호한 태도로 늠름한 모습을 보여 팬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은 팔메이로는, 불과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도핑 불시 검사에서 스테로이드가 적발되어 개망신을 당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뒤통수인데 한 술 더 떠, '동료 미겔 테하다가 준 크림을 발라서 그런거고 나는 몰랐다.'라는 말 같지도 않은 변명으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거짓말 + 뒤통수 + 떠넘기기 + 물귀신 + 뻔뻔함 5단 콤보를 작렬한 바람에 야구를 넘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해 버린 것이다.

소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증언 이후 일관되게 약물 복용을 부정했으나 수많은 정황 증거와 증언이 나오면서 거짓말쟁이로 낙인찍혀 버렸다.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우겨댔지만, 2003년 비공개 도핑테스트에 스테로이드로 이미 검출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아냥만 잔뜩 들으며 웃음거리로 전락해버렸다.

이 자리에는 프랭크 토마스커트 실링이 나와 약물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규제강화를 지지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2.3. 2007년. 미첼 리포트

여전히 금지약물 복용이 횡행했으나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선 딱히 강력한 규제를 가하지는 않았으며, 흥행을 위해 묵인했다는 음모론이 꽤 신빙성있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다 2007시즌이 종료된 후. 야구팬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사건이 벌어진다.

조지 J. 미첼 상원의원이 금지약물을 구입했거나, 복용한 선수들의 명단을 기재한 보고서를 당시 커미셔너였던 버드 셀릭에게 제출한 것인데, 놀랍게도 그 중에는 2003년 발코 스캔들의 제이슨 지암비, 배리 본즈는 물론 로저 클레멘스, 앤디 페티트와 같은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들의 이름이 버젓이 올라가 있던 것.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털어 손에 꼽힐만한 위업을 달성했던 본즈와 클레멘스는 이렇게 메이저리그에서 버로우를 타게 되었다. 이외에 기아 타이거즈에 새롭게 임명된 외국인 감독인 맷 윌리엄스 역시 이 보고서에 올라와 있다.

2.4. 2013년.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

2010년대가 되었지만 금지약물 스캔들은 끝나지 않았다. 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 항목 참조.

2.5. 이후

2015~2017년에는 헨리 메히아라는 선수가 지속적인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면서 피트 로즈 이후 처음으로 MLB에서 영구제명되는 일이 벌어지고, 어빈 산타나, 디 고든스탈링 마르테 등 20명에 가까운 선수가 약물로 징계받는 등 경기력 향상 약물과 관련한 스캔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급기야 2018년에는 리그 최고의 2루수로빈슨 카노마저 적발됐다.

메이저 콜업이 절박한 마이너리그에서는 메이저리그보다도 더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약물로 인한 징계가 행해지고 있다.## 더 자세히는 List of Major League Baseball players suspended for performance-enhancing drugs를 참조.

3. PED를 사용하지 않은 선수들

금지약물 복용이 횡행하던 시대였음에도, 이를 거부하고 정직하게 플레이 했던 선수들도 있었다. 이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프랭크 토마스, 짐 토미, 크레익 비지오, 페드로 마르티네즈, 켄 그리피 주니어 같은 선수들이 있고, 최초의 한국인 메이저리거박찬호 역시 약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특히 토마스는 1990년대에 이미 약물 검사를 도입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했으며, 미첼 리포트에도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할 정도로 약물을 혐오한 사람이다. 또한 명전이 예약된 데릭 지터도 약물의 힘 없이 3000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심지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는다는 2000년에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평균자책점 1.74를 기록하며 약으로 리그 2위인 3.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로저 클레멘스를 성적으로 학살했다. 즉 순수실력으로 약물투수를 발라버린 것.

놀랍게도 알버트 벨 역시 약물을 하지 않았다. 본인 말로는 만일 자기가 그랬다면 사무국, 구단,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물어뜯었을 거라고...[10]

또한 이 당시 투수들은 물론이고 청정 타자들도 여러 부분에서 손해를 봤다. 먼저 로저 클레멘스같은 약물 복용 투수들을 상대해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자쪽에서도 약물러들의 활약이 타출장, 홈런수 등에서 리그 평균 수치를 수직 상승시켜 버려[11] 후에 wRC, OPS+ 등 리그평균을 기준으로 하는 조정스탯과 WAR 등을 뽑아내는데에도 큰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12] 이때 활약하던 아시아 타자들도 예외는 아니라서 한참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 등 역시 이런 조정스탯들과 WAR 부문 등에서 큰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다.[13]

4. 기타

약물의 시대는 2005년의 의회청문회를 기점으로 사그러들었고, 숨막히던 타고투저의 시대가 끝나면서 2000년대 후반부터는 투고타저의 흐름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알렉스 로드리게스, 새미 소사, 데이비드 오티즈 같은 최고의 선수들이 계속해서 약물 복용자로 밝혀지는 등 스테로이드 시대의 후유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스캔들을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주리라 믿었던 새로운 아이콘 라이언 브론마저, 약물 파동과 연이은 졸렬한 행동으로 추태를 보이면서 추락해 버리는 등, 스테로이드 시대의 여운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브론과 더불어 알렉스 로드리게스바이오제너시스 스캔들에 연루,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약물의 유혹은 메이저리그의 상징이던 슈퍼스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2014년 3월 143명의 현역 선수를 대상으로 한 익명 설문 조사에서는 현역 선수들은 아직도 경기력 향상 약물(PED)을 몰래 복용하고 있는 선수의 비율이 9.4%에 이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메이저리그 역사의 거의 대부분이 약물에 힘입어 세워졌다는 비아냥까지 공공연하게 들리고 있으며, MLB 명예의 전당을 비꼬는 약물의 전당(Hall of Drugs)이라는 말과 약물 헌액자 리스트까지 생길 정도이다.

무엇보다 팬들은 이제 어떤 선수가 뛰어난 기록을 달성하면 약물부터 떠올리는 등 의심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특히 2010~2011 시즌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이었던 호세 바티스타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홈런 개수로 인해 끝없는 의혹에 시달려야 했으며, 바티스타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2012년까지 2년동안 16회 정도의 도핑 테스트를 받았다고 한다. 역시 2017년 메이저리그 시즌 개막 직후 좋은 성적을 올린 에릭 테임즈도 집중적인 기습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또한 선수들은 고난의 마이너리그 시절이나 수 년간의 노력끝에 무명 세월을 벗어나 큰 성과를 거두게 되었어도, 일주일이 멀다하고 혈액과 소변을 제출하며 도핑이 아님을 밝히는데 온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더불어 팬들의 의심스런 시선까지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과 사무국 역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속임수를 찾아내는 일에 몰두해야 하고, 약물에 대한 느슨한 대응으로 일관하던 과거의 행동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팬들의 차가운 시선을 달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게다가 100년 역사를 무너뜨린 공든 탑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려가야 하는, 커다란 숙제를 안고가게 되었다.

5. 둘러보기

미국의 야구 연표

데드볼 시대
(1900년대 전후~1919)

라이브볼 시대
(1920~현재)

스테로이드 시대
(1989~2007) [14] [15]


  1. [1] 스테로이드급의 '경기력 강화 약물'에 해당된다 보기는 힘들지만, 초창기 야구에서는 선수들이 경기 도중 맥주 등 술을 마시는 것은 일상다반사였으며 1950~80년대 미국 야구계에는 암페타민, LSD, 코카인등 항정신성 약물이 진통제나 피로회복 등의 명목으로 선수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었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피츠버그 마약 재판 항목이나 드와이트 구든, 대럴 스트로베리, 팀 레인스 등의 항목을 보면 당시 메이저리그 선수들 사이에서 마약 복용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들 중 암페타민 같은 경우에는 야구의 경기력 향상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는데, 애더럴 항목에서도 보면 알 수 있지만 집중력이 필요한 동체시력 등이 유의미할 정도로 향상된다. 빠르고 정확한 에임이 필요한 FPS 종목 프로게이머들과 비슷한 강점을 갖춰야 하는 야구선수들에게도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2. [2] 1998년 내셔널리그 MVP가 새미 소사였고, MVP 투표 2위는 맥과이어였다. 당연하게도 둘 모두 실버슬러거와 올스타전 출장까지 달성.
  3. [3] 1987년 신인 마크 맥과이어가 49홈런을 날려 전국적인 열풍을 불러왔으나,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경기출장을 포기하면서 아쉽게 달성하지 못했다.
  4. [4] 필더의 기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는데, 메이저리그에서 사라진 50홈런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그 해에 40홈런을 넘은 사람도 필더가 유일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필더는 일약 메이저리그 최고의 홈런왕으로 엄청난 인기와 명성을 누릴 수 있었다.
  5. [5] 물론 본은 해당 시즌에 MVP투표에서 두 약쟁이들에 앞섰지만 대중적인 인기나 주목도는 비교도 안되었다.
  6. [6] 이런 해에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평균자책 1.74를 기록하며 아예 차원이 다른 외계인으로 논외의 존재였다. 라이브볼 시대 역대 시즌 조정방어율 1위 역시 2000년의 페드로이다. (+291)
  7. [7] 실제로 스플리터의 위력이 엄청나긴 했다. 90마일이 넘는데다가 낙차까지 큰 마구.
  8. [8] 게다가 약물 검사를 피하기 위한 기상 천외한 노하우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화학자를 방불케하는 엄청난 지식과 기발한 검사 회피 사례들은 여전히 팬들에게 지난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곤 한다.
  9. [9] 이들은 미리 서면을 준비해서 그걸 낭독했는데 팔메이로는 자기가 낭독했지만 소사는 변호사가 대리낭독했다. 그 후 질의응답을 했다.
  10. [10] 벨이 뜯겨진 이유는 그 지랄맞은 성격과 사건사고, 그리고 코르크 방망이 사용 여부에 관한 것이다. 약물과는 일절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그 당시 벨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았다는 걸 감안했을 때 약물이 터졌을 경우 바로 매장당할 확률 100% 였을 것이다.
  11. [11] 약물의 힘으로 30홈런 타자쯤은 상당히 흔한 수준이었고 70홈런 타자, OPS 14할 타자까지 등장한걸 생각해보면 리그평균이 얼마나 올랐을지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12. [12] 그래서 약물 복용 선수들을 빼고 당시 리그 평균 수치를 다시 계산해서 조정 스탯을 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13. [13] 당장 이치로 역시 전성기 활약에 비해 조정스탯이 상당히 낮게 나오며 마쓰이도 31홈런과 OPS 9할대를 기록했음에도 WRC가 140을 겨우 턱걸이 한걸로 체감할 수 있다.(오타니의 경우 2018년 마쓰이와 비슷한 OPS를 기록했는데 반해 WRC는 150중후반대를 기록했다.)
  14. [14] 호세 칸세코가 자서전에서 고백한 1989년부터 미첼리포트가 발표된 2007년까지를 스테로이드 시대라고 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스포츠를 통한 체제경쟁이 절정에 오르면서 미국의 스포츠의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도핑에 걸리지 않는 약물의 개발도 적극적으로 진행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나고 제약회사들은 프로스포츠 시장 및 보디빌딩 보충제 시장으로 판매처를 확장하기위해 적극적으로 로비하였으며 대략 이 시기를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스테로이드 시대의 시작이라고 본다. 종결은 미첼 리포트가 작성된 2006~2007년
  15. [15] 다만, 금지약물 규정은 시대에 따라 바뀌며,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과거의 베이브 루스가 양고환 주사를 맞았다지만 현재는 그렇게 하면 양의 고환속에 들어있는 스테로이드 성분에 의해 도핑테스트에서 걸린다. 따라서 약물의 시대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규정짓기란 매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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