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제국

실존했거나 현존하는 식민제국 목록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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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스웨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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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오만

오스만

이탈리아

일본

포르투갈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1. 개요
2. 상세
3. 식민제국의 목록
4. 관련 문서

1. 개요

식민지를 기반으로 한 근대적 형태의 초대형 국가. 지금은 거의 대부분 해체되었다.

2. 상세

그 주체는 아메리카 국가인 미국을 제외하면 모두 유라시아 지역, 그 중에서도 특히 유럽에 위치했던 열강이었다. 이 중 세력이 가장 강한 것은 단연 대영제국이었고 프랑스 식민제국이 그 뒤를 따랐다[1].

프랑스 외에 러시아 제국도 대영제국의 주요 라이벌이었는데 영국과 러시아의 힘싸움은 따로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한다. 다만 러시아는 다른 식민제국들과는 유형이 완전히(다른 식민제국이 대부분 항해술의 발달로 서유럽 각국이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형성되었으나 러시아는 예외적인 케이스로 동유럽에서 시작해 내륙을 통해 동쪽으로 확장해 나갔고 그 땅들은 식민지보다는 본토라고 볼수 있다. 실제로 재정이 폐지되고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여전히 본토가 넓다.) 다른 식민제국들과 직접 비교는 잘 하지 않는 편이다.

참고로 여기서 표기된 제국이라는 명칭은 "황제가 존재하는 국가"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데 주의해야 한다. 물론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만 제국, 독일 제국, 일본 제국처럼 황제(Emperor)가 다스리는 식민제국 국가들도 몇 있었지만 영국, 이탈리아 왕국, 스페인,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등은 국가원수가 왕이나 여왕인 왕국이고, 미국프랑스, 포르투갈 등은 정치 체제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통치하는 공화국임에도[2] 제국으로 지칭하는 데 아무런 어폐가 없다. 제국은 다수의 국가, 민족, 공동체 등을 하나의 정치 체제가 총괄하여 지배적이고 상하 질서적인 구조를 형성하는 형태의 국가를 가리킨다. 특히 근대적인 우생학, 사회진화론, 인종주의 등이 주요한 이념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제국'을 이런 기준에 따라 비추어 보자면 대한제국 같은 나라들은 이름만 제국이었을 뿐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유야 당연히 다들 알다시피 대한제국은 침략을 당하고 식민지배로 전락하기 직전의 망국 상황으로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만약은 무의미하긴 한데 굳이 억지로 가정을 해본다면 일종의 대체역사처럼 조선이 해외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영토를 넓혔다면 대한제국 역시 본 문서의 조건에 적합한 역사의 여러 식민제국 중 하나로서 등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대한제국은 만주- 특히 간도 -에 대해서 의외로 패권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현대 세계는 당연히 근대를 계승했으므로, 이들이 미친 영향이 매우 지배적이다. 특히 아프리카와 중동의 경우가 가장 극심하며, 이들 국가 중 대부분은 유럽 열강에 의해 현재의 국경이 정해진 경우가 많다.[3] 즉, 좋든 싫든간에 세계는 현재까지도 이들이 지배하던 시기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식민제국의 직계 국가들은 식민지에 근대까지 걸쳐 수백년동안 자신들이 한 착취, 학살 등의 만행에 대해 사과하는 일은 거의 없다. 도리어 '내가 직접 한 것도 아닌데 왜 사과해야 해?'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이 때문인지 직접 맞아본 적이 있거나 하지 않은 이상 한국이 일본에 식민지 시절에 대한 일에 사과를 요구하면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는 세계 대전과 68 혁명, 냉전이나 기타 풍파를 겪으면서 사회적,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급격하게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로 돌아 버려 근본적으로 역사적 공동체로서 자국과 시민 개개인의 정체성 사이에 선을 확실하게 긋는 경향이 강해서, 아무리 식민지배에 대한 과거사를 가지고 비판을 해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영감들이 저지른 짓 가지고 어쩌라구'라고 나오는게 일반적이다.

물론 이것이 전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식민지배를 경험했던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피지배 국가 출신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책임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개소리망언으로밖에 안 들릴 것이다. 체감상으론 과거의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구 식민제국 국가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부와 복지가 과거 식민지를 착취한데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걸 생각하면[4] 그리 신빙성있는 말도 아니다. 물론 가끔씩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식민지에서 저지른 만행들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오히려 부정하려 드는 편이다. 유럽 몇몇 국가에서 홀로코스트 부인론을 처벌한다면서 다른 만행이나 학살 행위에 대해 아몰랑하는(심지어 정당화하기까지 하는) 점에서 홀로코스트 부인론과 대체 다른점이 무엇일까? 가령 독일의 경우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을 무시할 수 없어서 유대인들에게는 배상할거 다 하고 총리가 홀로코스트 유적지에 찾아가 희생자 묘비 앞에서 비오는 날 무릎꿇고 반성하고 사과하는 정말 제대로 된 반성과 참회의 모습을 보이고 이후 이스라엘 관련해서 외교 문제에선 철저히 미국-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5] 쩔쩔매지만 유대인처럼 돈도 힘도 없는 피해자인 집시나 나미비아 등 기타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했던 만행들에 대해서는 유대인 학살과 탄압에 비교해서 보면 거의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아주 최소한의 형식적인 수준에만 그치는 등 차별을 한다는 점이 확 드러난다. 특히 집시는 독일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학살당하고 탄압받은 역사가 있는데 독일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에게서도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고 떠돌이 부랑자 취급으로 멸시당하고 있다. 그나마 최근에는 독일도 약간은 형평성을 두자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사과와 배상이 조금 더 이뤄진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러나 대영제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배가 악랄하다고 해서 독일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멍청이들이 몇 있는데 독일 제국도 아프리카와 샨둥 반도에 식민지 경영을 했으며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서의 여러 학살과 약탈도 존재했다. 물론 그렇다고 반대로 독일의 식민지배만 부각하면서 대영제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괜찮은 것 처럼 넘어가려고 하는 역 물타기적 성향도 있는데 이 역시 경계해야 할 것이다. [6] 더불어 19세기에 가장 군국적인 나라이기도 하다. 사실 전체주의가 무조건 영-프에서 먼저 시작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지고 보면 전체주의는 당시 시대 분위기상 여러 국가에서 비슷하게 나왔다 정도가 맞을 것이다.

또한, 그렇다고 연합국이 절대선이 아닌 건 맞지만 이걸로 추축국의 만행이 정당화되는 건 절대 아니다. 추축국이 식민지 착취의 악명이 덜한건 단지 기회가 적었을 뿐이지 기회가 있을때 한 일들은 더하거나 비슷하면 비슷했지 딱히 강도가 덜하지는 않았다. 굳이 조금 옹호하자면 그래도 연합국보다 식민지 차지한 영토가 적었지 않느냐 라고 할 지는 모르겠는데 이것 역시 그들이 착해서 덜 차지한게 아니라 영-프 등 선점한 국가들에 비해 늦게 사업을 시작해서 타이밍을 놓친 거니까 이렇게 반론하면 할 말이 없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지배하던 식민지가 강력하게 성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인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 등의 경우 정치적, 군사적으로 지배국을 긴장시킬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미국은 한때 자기들을 지배했었던 영국을 이기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급부상한 사례고, 브라질 또한 포르투갈어의 표준이 브라질식 포르투갈어의 표준이 될 정도이며, 브라질식 포르투갈어 화자수가 포르투갈식 포르투갈어의 화자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남미를 주름잡는 지역강국이다. 인도네시아 역시 옛 식민 종주국이었던 네덜란드조차도 함부로 내정간섭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국력과 인구수가 강대한데다 동남아시아의 패권을 쥐락펴락하는 지역강국으로 성장했다. 특히 네덜란드, 벨기에나 미국은 식민지였으면서 동시에 식민제국의 대열에 들어가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리고 한국이나,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아일랜드, 체코, 3국, 남아프리카공화국, 튀니지, 알제리. 페루, 콜롬비아, 우루과이, 칠레, 멕시코 같이 전세역전이나 구 종주국을 긴장시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구 지배국 못지않게 성장하거나 선전하는 국가들도 더러 있다.

역으로 한때 식민제국이었지만 나중에 식민지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왕위 공백기에 스페인 제국에게 점령당한 포르투갈 왕국이나 세력 약화 후 대영제국에게 점령당한 오만 등이 있다. 혹은 식민지가 안 되더라도 다른 식민제국의 2중대로 추락하기도 하는데 17세기~18세기 시절 프랑스 왕국의 2중대로 전락 당한 스페인이나, 17세기 이후 영국의 2중대로 추락한 포르투갈이 있다.

또한 제국주의와 식민지라는 게 당한 입장에선 국가적 혼란을 불러오기 너무 쉽다. 차후 국가를 꾸려나가는 데 너무 많은 고난이 생기며, 같이 독립운동을 해내던 동족들이 내정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동족상잔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처럼 서구 지배국들이 자신들의 편리에 맞게 민족과 종교, 언어의 구분 없이 획정시킨 국경선을 지닌 상태에서 식민지배에서 독립하여 민족, 종교간 갈등으로 내전을 벌이는 것도 덤.

아프리카 등 독립이전에 석유, 가스, 금, 다이아몬드등 지하 자원이 많이 발견된 지역은 거의 보츠와나나 나미비아 같은 극소수 국가들을 제외하면 독립 후 비워져 있는 공백을 틈타서 주인이 국가라는 틀 안에서 임자가 정해지지 않은것을 서로 자기가 전부 다 가져가겠다고 독점하려다가 결국은 아무도 못가지거나 그것으로 독재자가 집권하거나 군부 쿠데타와 내전등으로 국가가 개판이 되었으며 중동 국가들은 독립 이후 석유, 가스 등이 발견되서 그런 문제가 훨씬 덜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분배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식민통치를 경험했던 대한민국이나 아일랜드, 핀란드, 리비아, 시리아, 알제리, 레바논, 그리스, 라오스, 베트남, 미국 같은 국가들만 해도 식민지배에서 해방, 독립된 이후 한국 전쟁, 아일랜드 내전, 핀란드 내전, 리비아 내전, 시리아 내전, 알제리 내전, 레바논 내전, 그리스 내전, 라오스 내전, 베트남 전쟁, 남북전쟁이라는 잔혹한 전쟁을 겪었다.

제국주의에 심하게 시달린 반작용으로 인해 민족주의가 강해졌다는 의견도 있다. 당장 위의 "우리 할아버지들이 친 사고를 왜 현세대인들이 책임져야함?"라는 주장 자체가 논리적 완성도를 떠나 심정적 차원에서 구 제국주의 국가 밖에서는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하는게,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에도 식민 시절 뿌리를 박아 놓은 권위주의와 진영논리의 그림자 아래 살아야 했던 피지배민들은 저런 간편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받아 들일만한 여유도 없었다.

대외적으로 남의 나라를 쳐들어가 약탈하고 승승장구하던 무렵 식민제국 본국들의 내부 실상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산업 혁명의 부작용으로 빈부 격차가 지금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했고,[7]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투표권도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구권과 일본에서 모든 국민들이 질 좋은 삶은 누리게 된 시기는 2차대전 이후부터이다.

3. 식민제국의 목록

몰타 섬에 근거지를 두고 이슬람 세력과 수백년을 싸웠던 기사단. 아랍인들이 납치해가는 유럽인들을 구출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으나, 그들 또한 아랍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아먹는 짓을 자주 했다. 프랑스의 식민지 확장에 묻어가는 형식으로 카리브 해의 세인트 키츠 섬을 점령했던 적이 있다. 현재는 무기는 버리고 순수한 구호단체로 활동 중이다. 곧 한국에도 지부가 생길 예정.
대표적인 식민지로는 인도네시아가 있다. 향신료 무역으로 시작해서 강제 재배로 대표되는 플랜테이션 농업을 실시했고,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식량 상황은 악화되었다. 네덜란드는 독립 직후 이전 지배자였던 스페인을 누르고 전 세계의 패권을 휘어잡았지만, 영란전쟁 이후 영국에 패권을 넘겨주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네시아를 재차 침공하여 다시 식민지로 삼으려 했으나 국제사회의 방관 속에 패배, 1949년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1975년에 남미의 수리남까지 독립을 인정하면서 식민제국으로서의 역사를 끝맺는다.
독립적인 군함과 군대를 가지고 인도네시아를 지배하였다. 1799년 경영 악화로 파산하였고, 그 영토는 네덜란드 정부가 직접 통치하게 된다.
20세기 초에 해외 영토 획득에 나서 북극해와 남극해 일대에 얀 마옌 섬, 페테르 1세 섬, 스발바르 제도 등을 병합하였다. 다만 스웨덴과 덴마크에게 식민 지배를 당했던 시절이 더 길었던지라 식민지배의 가해국보다는 피해국이란 인식이 더 강한 편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그린란드가 있다.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영국, 포르투갈과 함께 인도를 점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카리브에 여러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의 가나 공화국 해안에서 장사를 해먹기도 했다. 당시 덴마크인들은 스웨덴, 독일인과 함께 노예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제국주의의 융성기인 19세기에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편들었다가 패배한 영향으로 노르웨이를 잃게 되어버린데다가 식민지 개척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그린란드나 일부 도서부만 남아있는 상태이며 이것도 식민지배라고 보기에는 좀 뭐하기 때문에 식민제국으로써의 이미지는 약하다[8].
1616년 처음으로 인도에 진출한 이래 한동안은 스웨덴 동인도 회사와 함께 차 수입량의 90%를 차지했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인도에서 자바 섬까지 곳곳에 덴마크의 상관이 존재했었다. 유럽에서의 전쟁으로 잠시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곧 회사를 재편하여 재기하였다. 새 전성기에는 중국과의 무역에 집중하였고, 덴마크 내에서 희망봉을 지나는 모든 무역 경로를 40년간 독점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 전쟁 도중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코펜하겐을 침공할 때 대부분의 함선들을 잃었고, 이 피해를 회복하지 못한 채 1850년대까지 인도 내의 식민지들을 영국에 팔아치우게 된다[9].
지금의 라트비아 지역에 있었던 독일계 공국이며 한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봉신국이었다. 아프리카 감비아 일부 지역과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점령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제국의 괴뢰국이 되고, 폴란드 분할 이후 그대로 러시아에게 병합된다.
아우크스부르크의 금융재벌이었던 벨서 가문은 엘도라도를 찾기 위해 거금을 투자하여 약 20년간 베네수엘라를 지배했던 적이 있다. 당시 식민지명은 클라인 베네디히(Klein-Venedig). 작은 베니스라는 뜻이다. 짧은 지배였으나, 이 식민지명에서 현재의 베네수엘라라는 국가명이 탄생하였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부터 기아나 지역을 잠시 빌렸던 적이 있다.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의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해군력 증가에 많은 투자를 하며 대외 식민지 획득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 결과 아프리카 황금 해안의 일부와 현재의 버진아일랜드 등을 얻었지만,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이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된 뒤에 즉위한 그의 후계자들이 식민지들을 전부 팔아치우고 해군도 없애다시피 했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후발주자이긴 했지만 아프리카의 나미비아와 탄자니아, 토고, 카메룬, 중국의 칭다오, 오세아니아의 미크로네시아, 뉴기니섬 북부 지역, 비스마르크 제도 등을 식민지로 합병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보유했었다. 나미비아 헤레로 족과 탄자니아의 응긴도 족과 무분가 족 등에게 벌인 독일 제국군의 학살이 특히 유명하나, 현재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을 치뤘던 유럽의 전쟁 피해 국가들에게 사과, 피해 배상을 하는 것과 달리 이 시절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에서 독일 제국군이 자행한 학살들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고 최근에 이들 아프리카 나라들과의 외교관계와 경제협력을 고려해 식민지 학살 등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있지만 정작 피해 배상만큼은 거부하고 있다.
흔히 개척 정신이라고 미화되지만, 미국은 시작부터 침략국가였다. 미국 독립의 근본적인 요인 중 하나는 미시시피 서부로 이주민들이 넘어가는 것을 저지하려는 영국 정부에 대한 반감이었다. 식민지 독립 이후로는 막는 국가가 없었으니 중, 서부로 거침없이 영토를 넓히며 북아메리카의 원주민 집단들을 학살하였고, 더 나아가서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유타, 네바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텍사스 등을 병탄하였다. 거기다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학살과 탄압의 국가 정책적 규모는 중앙, 남아메리카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브라질, 콜롬비아,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칠레[10],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같은 나라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었다. 이후에도 미국-스페인 전쟁을 통해 필리핀쿠바, , 푸에르토 리코 등을 식민지 내지는 속국으로 삼았다. 게다가 미국은 쿠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19~20세기 내내 강력한 내정간섭을 일삼은 바 있다.
대표적인 식민지는 콩고 자유국. 콩고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발상으로 세워진 식민지였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가 사익을 위해 콩고를 자신의 사유지로 만들어 무자비한 학살과 착취를 벌인 결과 거의 천만 가까이의 콩고인들이 살해당했다. 레오폴드의 통치는 당시 유럽인들도 경악시킬 정도였다. 셜록 홈즈 시리즈 작가인 아서 코난 도일,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앙 10세, 조지프 콘래드 등 수많은 지식인들이 벨기에를 비난했다. 콘래드의 경우 아예 직접 콩고 강에서 배를 몰며 벨기에의 잔혹행위를 목격한 인물이었고, 어둠의 심연에서 이를 묘사했다. 결국 이를 보다 못한 벨기에 정부가 왕으로부터 콩고를 뺏어 직접 통치를 시작하며 그나마 나아졌다. 그러나 벨기에의 직접 지배도 레오폴드보다는 아니지만 악랄하긴 마찬가지로, 현지 아프리카 흑인 부족들을 이간질시키며 식민 통치를 하여 이후에 르완다 내전, 부룬디 내전, 콩고 내전의 발단이 된다.
핀란드, 노르웨이와 같은 주변국 뜯어먹기는 기본이었던데다 전성기에는 주변 강대국들을 돌아가며 패고 다녔다. 유럽 밖으로도 뉴 스웨덴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델라웨어주를 점령한 적이 있었고, 노예무역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 외에 카리브해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제국주의의 융성기였던 19세기 말경에 식민지를 죄다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식민제국으로써의 이미지는 약하다.
포르투갈과 더불어 최초의 식민제국이자, 영국, 프랑스와 더불어 삼대 식민제국. 브라질을 제외한 남아메리카 국가들 대부분과 중앙아메리카,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멕시코, 현재의 미국 중서부, 아프리카의 서사하라와 모로코 일부 지역, 적도기니,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등을 식민지배했다. 그리고 누가 안 그렇겠냐만 식민지에 대해선 악랄했다. 대표적으로 중앙, 남아메리카에서는 식민지 정복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대량 학살함과 동시에 공사 및 광산 노동에 강제동원하고 천연두, 폐렴, 감기등의 질병들을 옮기는 바람에 천만이 넘는 중남미의 원주민들이 사망했다. 그러나 건국할 때부터 레콘키스타로 금융 기반을 날려버렸던 데다 본국 내수 경제가 빈약했기에 1600년대부터 빠르게 몰락한다.
인류역사상 가장 큰 식민제국. 수많은 식민지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본국의 강력한 산업 기반에 힘입어 오랜 세월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패권은 빅토리아 시대 말기부터 불안해지더니, 2차 대전 이후 경제난이 찾아오고 미국과 소련이 양강으로 떠오르는 상황 속에 주요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 곳곳에 영국령 섬들이 남아 있으며 물론 유엔 상임이사국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도 아직 죽지 않은 상태이다. 당대에 식민지였던 국가들에서 저지른 학살, 독립운동 탄압 등 범죄 행위들도 그 덩치에 걸맞게 많으며, 프랑스와 함께 지도에 자 대고 그어댄 근본없는 국경선들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각종 민족분쟁들의 원인이 되었다.
독자적 군대와 함선을 보유하고 인도의 대부분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재정 악화, 세포이 항쟁 이후 해체되고 영국 정부가 인도를 직접 지배하기 시작한다.
1707년 연합왕국 구성 이전의 잉글랜드의 식민지는 인도 해안, 아프리카 해안, 북아메리카 동해안 등이었다. 본격적인 면 단위의 식민화와 침략은 연합왕국 구성 이후였다.
1707년 연합왕국 구성 이전 스코틀랜드도 잉글랜드와 별도로 식민지를 보유했었다. 노바스코샤, 뉴저지 등이 스코틀랜드의 식민지였다.
미국의 전신. 영국계 이주민들이 주가 되어 건설한 식민지들이다. 왕성한 팽창 활동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며 영토를 서쪽으로 확장하던 중 본국인 영국 정부와 여러 차례 마찰을 빚게 된다. 이에 불만이 쌓이던 도중 유럽에서의 전쟁으로 본국인 영국이 재정 위기에 빠져 세금을 인상할 기미가 보이자 이에 반발하며 독립하였다. 이후 미국이 된다.
그 자체로 대영제국의 식민지였지만 상당한 내정의 자치를 누리며 노퍽 섬, 크리스마스 제도 등을 통치했고(현재도 이들은 호주령이다)[12], 애버리지니에 대한 학살, 강제 동화정책을 실시했었다. 또한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뉴기니, 나우루를 본국인 영국과는 별도로 위임통치했다. 이 때문에 부분적 식민제국으로 보기도 한다.
역시 호주와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동시에 토켈리우, 쿡 섬을 관할했고(역시 현재도 뉴질랜드령), 독일 제국의 식민지였던 나우루, 사모아를 본국과는 별도로 위임통치했다. 단 원주민인 마오리족에 대한 대대적 탄압은 없었는데, 마오리족이 투쟁 끝에 영국인과 동급의 지위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현재도 많은 섬들을 속령으로 두고 있고, 그 중 토켈리우는 주민투표 실패로 여전히 다른 섬들보다 낮은 수준의 자치를 누리고 있다.
영국의 식민지이면서 높은 수준의 자치를 누렸다. 그러면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해 대대적인 동화 정책 및 차별을 일삼았다.
영국의 식민지이면서 높은 수준의 자치를 누렸다. 1961년 영연방에서 탈퇴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로 대표되는 흑인 탄압 정책으로 유명하며, 로디지아의 백인 정권을 지원하기도 했다. 구 독일 제국령이었던 나미비아를 위임통치했지만, 기한을 한참 넘긴 1990년대까지 불법적으로 강점하며 나미비아의 분리독립운동을 억압했다.
아라비아 반도 남부, 동부 아프리카 해역, 이란 남부와 파키스탄 남부 도서부 지역을 지배했다. 또한 포르투갈과 함께 노예무역으로 악명이 높았다. 중흥기의 수도가 탄자니아 앞바다의 잔지바르 섬이었을 정도로 노예무역은 오만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급속히 쇠락하여 영국의 보호령으로 전락해버렸기 때문에 동아프리카 일대와 아랍권을 제외하면 인지도는 약하다.
주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린 영토를 통틀어서 가리키는 말로, 정식 명칭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제국 또한 이에 포함시키나, 보통 합스부르크 제국이라 하면 1804년 오스트리아 제국 건국 이전의 거대한 동군연합 시절의 합스부르크가의 영지를 칭한다. 따라서 1804년 이후라면 모를까 그 이전의 합스부르크 제국은 일종의 중세 봉건시대적인 체제의 제국으로, 영국과 스페인 같은 식민제국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그런 1804년 이전의 합스부르크 또한 본토 이외 지역에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식민지를 운영하는 것에 관심을 표하긴 했으므로 이곳에 기재한다.
영국 동인도 회사 출신인 윌리엄 볼트의 제안을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용하여 세워진 회사다. 볼트는 연지벌레를 이용해 코치닐을 만들기 위해 인도 서남 해안과 중간 기착지인 모잠비크 마푸토 만을 식민지배하려 하였으나 위협을 느낀 포르투갈의 방해로 마푸토 만의 지배권은 상실한다. 인도 해안에서는 영국의 방해가 있었지만 이는 마이소르 왕국의 지지로 잘 넘길 수 있었다. 곧이어 미국 독립전쟁이 발발하여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가 박터지게 싸우는 동안 안다만니코바르에 상관을 열고 나름 짭짤한 이득을 거둔다. 그러나 그의 후원자였던 합스부르크령 네덜란드(벨기에)의 찰스 프롤리와 갈등이 시작되었다. 프롤리는 미국 독립전쟁의 여파로 차 가격이 폭등한 상황이므로 광저우에의 공행 무역에 집중할 것을 원했으나, 볼트는 중국과의 무역뿐만 아니라 인도 식민지 경영에도 동급의 신경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프롤리가 이겼고, 미국 독립전쟁의 여파로 텅 비어 있던 광저우에 신성 로마 제국의 깃발을 내건 다섯 척의 무역선이 보내진다. 그러나 곧이어 휴전이 성립되어 각국의 무역선 수십 척이 앞다퉈 광저우로 향한다. 게다가 영국이 차 가격에 붙는 관세를 119%에서 12.5%로 후려쳐 버린 까닭에 오스트리아는 비싼 값을 치르고 구매한 차들을 본전도 못 뽑는 가격에 팔아치워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에 지불할 은을 실은 배가 아일랜드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이 상황에서 회사에는 새로운 배들이 납품되고 있었고, 이는 파산으로 이어진다. 프롤리 가문은 완전히 패망했고, 찰스 프롤리는 자살한다. 이후 청나라는 막대한 채무를 진 오스트리아 동인도 회사와 무역을 중단했다.
체제가 아주 복잡하다. 나폴레옹 전쟁 도중 프란츠 2세가 오스트리아 제국을 선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합스부르크 가문이 다스리는 영토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 체계는 없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위를 가지고 제국 내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제국과는 별개인 일종의 가문의 영지 개념으로 동남유럽 여러 국가들의 왕위들도 따내었다. 따라서 소위 '합스부르크 제국'에 속한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서로 별개의 국가들로, 단지 같은 왕을 모시는 동군연합이었을 뿐이다. 또한 합스부르크를 왕으로 모신다 하더라도 그 말이 곧 그 국가가 신성 로마 제국의 일원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구조는 프란츠 2세에 의해 변화하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 도중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할 상황이 되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영역 국가들의 군주였던 프란츠 2세는 가문의 본진이자 소위 '합스부르크 제국'의 '실질적' 중심지 노릇을 하는 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중심으로 자신이 여타 왕위를 가진 지역 모두를 아우르는 제국을 탄생시키는데 이것이 바로 오스트리아 제국이다. 보통 이 때부터 오스트리아를 식민제국으로 분류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퍼뜨린 민족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은 피지배 민족들이 각성하는데 일조하였다. 또한 1848년 독일 혁명으로 독일권이 통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통일 독일에서 몇배로 불어날 독일계에게 천대받기 싫었던 오스트리아 내의 비주류 민족들은 독립 운동을 격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제2의 민족이었던 헝가리의 반발이 심했기에 이들의 반란을 간신히 진압한 오스트리아는 대타협으로 헝가리와 공동의 제국을 건설하며 다시 한 번 새로이 재탄생한다.
시스라이타니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에서 오스트리아 제국과 그 지배지. 보헤미아 왕국, 달마티아 왕국, 모라비아 공국 등 아래 헝가리 왕국 관할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헝가리와 공동으로 관리했다.
트란스라이타니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산하의 헝가리 왕국과 그 지배지.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제국의 양대 지도국으로 상당 수준의 자치를 누렸고,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을 관할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와 공동으로 관리했다. 오스트리아와 달리 상당히 억압적인 방식으로 통치했는데, 이는 오스트리아에 저항하면서 헝가리 민족주의가 만땅으로 찼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오스트리아는 민족이 중심이 아니라 오랜 전통의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제를 중심으로 한 국가였기에 '상대적으로' 민족 문제에 있어 자유로웠다.
통일 이후 늦게 식민지 확장 대열에 합류하여 소말리아, 리비아를 지배하였다. 에티오피아로도 쳐들어갔으나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러나 파시스트당의 득세 이후 1935년 독가스까지 써가며 에티오피아를 재차 침공하여 식민지배하는데 성공했고, 알바니아 또한 점령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주요 추축국이었고, 유고슬라비아에서 대학살을 벌였다. 그러나 무리한 전쟁 수행으로 얼마 안 있어 패망한다.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 등과 함께 2차대전의 주범이자 전쟁 범죄국. 일제의 폭압적 통치 속에 죽어간 사람 수는 삼천만 명을 상회한다. 막부 시절부터 류큐를 간접 통치하면서 아마미 제도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건설하고 대만에도 입맛을 다시더니, 1879년 류큐 왕국을 완전 병합하고 홋카이도를 개척하며 식민제국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다. 이후 청일전쟁으로 대만을 식민지화시키고 러일전쟁으로 남사할린을, 한일보호조약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하였다. 여기까지는 나름 성공적이었지만 경제 대공황 이후 군국주의가 폭주하며 만주, 중원, 남아시아, 태평양, 알래스카를 연달아 침공하는데, 일제는 이 팽창 정책이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아득히 넘는 수준이라는 것을 간과했다. 첫 단추인 중국 전역에서부터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의 만만찮은 저항에 발목이 제대로 잡힌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에 큰 굴욕을 안겨 주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압도적인 패배를 당하고 만다. 그 결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 일본 열도 본토 섬 4개(큐슈, 시코쿠, 혼슈, 홋카이도 등)와 쓰시마 등 인근 소규모 섬들을 제외한 한반도와 쿠릴열도, 남사할린, 대만 등 갖고 있던 아시아의 일본령 식민지와 해외 영토들을 대거 상실하게 된다.
다이토 제도를 독점 지배하며 강제 노동을 일삼았다.
최초의 식민제국이지만 그 몰락은 이미 전설이 되었다. 브라질 지역 및 서아프리카, 인도네시아, 인도의 고아, 마카오 등을 지배했다. 그러나 네덜란드의 급부상으로 인도네시아 지역은 동티모르를 제외하곤 전부 잃어버렸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브라질로 정부가 이사갔다가 브라질의 발언권이 세져 결국 독립해버리는 상황을 맞이했다. 아프리카의 앙골라기니비사우, 모잠비크 등 남아있는 아프리카령 식민지들을 유지하려고 식민지 독립운동들을 억눌렀으나 결국 1974년 카네이션 혁명 이후로 죄다 독립시켰다. 참고로 오만과 함께 노예무역의 첫 스타트를 끊은 동네이다.
전통적인 3대 식민제국이자 아직까지도 곳곳에 식민지를 보유 중인 몇 안 되는 국가. 왕국 시절에는 북아메리카를 개척했으나 영국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결과적으로 나폴레옹이 기껏 얻은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아버리는 바람에 얻은 게 거의 없었다. 그러나 카리브 해의 식민지들은 남아 있었으며, 나폴레옹 3세 시절에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하여 중동, 아프리카, 인도차이나 등지를 지배하였다. 이 시기 식민지들에 건설한 식민지형 경제 구조는 현재까지도 이들 국가들의 정상적인 발전을 저해하는 중. 거기다 영국 및 다른 열강들과 함께 아프리카 지도에 종교, 민족 분포를 무시하고 그은 근본없는 국경선들은 현재까지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민족/종교 간의 분쟁들을 실시간으로 일으키는 중이다. 2차대전 이후에는 수백만 명을 죽여가면서까지 식민지들의 독립 열기를 억압했지만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의 패배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현재도 누벨칼레도니, 프랑스령 기아나 등지의 속령을 유지 중이며, 구 식민지들에 대한 영향력도 죽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프랑스의 식민통치는 지나치게 중앙집권주의적인데다 잔악하기로 악명이 높아서 현재 동남아시아의 베트남이나 북아프리카알제리, 튀니지, 모로코마그레브 3개국, 캐나다의 퀘벡 주뉴브런즈윅 주,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와 누벨칼레도니,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의 가봉지부티[13] 같은 곳들을 제외하면 여전히 불안정하고 가난한 빈국들이나 해외 영토들이 많다.
러시아는 전통적으로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발악해왔다. 이를 위해 북방전쟁, 러시아-투르크 전쟁 등이 차례로 벌어졌지만, 발트 해나 흑해나 지중해인지라 안정적인 통상로를 확보하기에는 모자란 점이 많았다[14]. 게다가 유럽 지역의 강국들을 상대로 확장하기에는 러시아는 너무나도 후진국이었다. 반면 무주공산이었던 시베리아 방면으로는 무한정 확장이 가능했기에 러시아는 동방 개척에 열을 올렸고, 태평양을 넘어 북아메리카의 샌프란시스코까지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에서 본격적인 국제적 강대국으로 떠오른 러시아는 본격적인 남진 정책을 개시, 영국과 충돌을 빚는데 이를 그레이트 게임이라 한다. 크림 전쟁, 페르시아 분할, 거문도 사건, 영일동맹, 러일전쟁 등이 이 거대한 대립의 산물이다. 러시아 또한 피지배민족에 대한 차별로 악명높다. 다수의 러시아 본국인들도(...) 농노로써 착취당하며 같이 못살고 있었기에 그 이미지가 약하긴 하지만.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민족 정체성을 부정당한 데다 피땀흘려 기른 밀을 수탈당했고, 중앙아시아 및 시베리아 원주민들은 모피 등의 공물을 수탈당했다. 식민제국들이 20세기 중반 이후 어쩔 수 없이 해체되고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본토만 남은 소국으로 전락한 것에 반해 러시아는 구소련이 해체되는 불과 1991년까지 식민제국 시대의 판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의 러시아 연방도 시베리아연해주를 비롯해 충분히 크고 아름답다지만.
식민제국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지라 공식적으로 식민 제국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오스만 제국의 통치제도는 제국으로 편입한 정복지 및 기존 영토에 대해, 좋게 말하면 자치, 나쁘게 말하면 방임 수준으로 방만하게 통치했다. 애초에 제국내 구성민족들에 대해서 이들의 종교에 기반해 공동체(밀레트)를 구성시키고 전혀 다른 법(샤리아, 교회법, 유대율법)을 적용시켜 통치했으며, 세금제도도 밀레트에 따라 서로 다르게 운용했다. 동유럽 발칸반도, 중동, 이집트 등 정복지에 대해서는 총독을 파견시키고, 총독에게 해당 속주에서 왕에 준하는 권한을 부여했으며, 대놓고 기어오르거나 중앙에서 요구하는 세금을 바치지 않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원칙적으로 노터치였다. 다만 기어오르면 확실하게 조지긴 했다. 제국 내 피정복민들에 대해서도 일본이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인재를 발탁하여 재상에까지 앉히기도 하고 향촌 단위에서는 각 지방의 자치를 인정했으며, 북아프리카 지방도 직접 지배하지 않고 간접지배의 방식을 취했다. 이로 인해 제국 후기에 가면 이집트알제리등 지방 자치 정권에게 중앙정부가 위협받거나 무시당하는 안습한 모습도 보였는데, 이러한 사정들을 고려하여 일본이나 서방 국가들처럼 식민제국으로 보지 않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이는 19세기 이전 얘기고, 그 이후로는 오스만은 확실히 식민제국적 특성을 보인다. 제국 말기에는 민족주의 운동의 격화되어 그리스를 시작으로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 동유럽의 피지배 민족들이 계속해서 독립하면서 발칸반도 등 동부유럽 일대에서 지배력을 상실하였다. 또한 튀르크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에 동로마 제국의 계승자로써 수많은 종교의 보호자를 자처했던 오스만은 점차 배타적으로 변하여 이슬람 튀르크인의 제국이 되어갔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착취와 차별, 학살이 있었음은 당연지사. 결국 제국이 망하기 직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 터지며 민족 갈등이 최악의 형태로 폭발했다. 실제로 오스만 제국의 피지배국들에 대한 지배도 절대 온건하지만은 않았고, 피지배국 속주 내부에 민족, 종교간 분열을 조장하며 통치하기도 해서 과거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지역들은 불가리아그리스, 요르단 같은 일부 정치적으로 안정된 유라시아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민족, 종교 분쟁들이 끊이지 않는 화약고들이 많다.

4. 관련 문서


  1. [1] 당장 현재 국제적인 언어로 영어와 프랑스어가 사용되어지는 것만 봐도 이를 증명한다.
  2. [2] 그러나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경우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이전에 왕국이었고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정치체제가 바뀌어가던 상황에서도 식민제국을 유지했으며 포르투갈은 1910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고 공화국으로 바뀐 이후에도 제1,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서양의 식민제국이 몰락할때까지 마카오, 모잠비크, 기니비사우, 앙골라 같은 식민지들을 지배했으나 공화정 수립 후 정치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살라자르, 카에타누 같은 극우 파시즘 성향의 독재자들이 집권하여 1974년 카네이션 혁명이 일어나 카에타누 정권이 전복될때까지 사실상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독일의 히틀러 나치당 정권이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 같은 극우 파시즘 독재정부들과 다를 바 없었다.
  3. [3] 지금 현재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과 전쟁, 종교분쟁, 민족분쟁등의 원인이 뭔지를 생각해보자.
  4. [4] 구 식민지들은 식민지 시절 경제는 물론 언어나 문화적으로도 강하게 종속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식민지가 아닐 뿐 과거 종주국의 영향력 안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5. [5] 가령 팔레스타인 문제 등 중동과 이스라엘 간의 문제에서는 독일은 대부분 미국과 같이 이스라엘 편을 들거나 일부는 중립을 지키는 쪽이지 절대 이스라엘에 배치되는 외교 입장에 서려고 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국제 표결 때도 팔레스타인 옵서버 국가 승격 반대에 대부분 찬성표 또는 기권이었고 극히 반대표를 던진 10개국이 채 안되는 나라들 중 하나였다.
  6. [6] 이전 문서에서는 독일 식민지에서 손발 자르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마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의 악랄한 콩고 지배 이야기를 잘못 알고 말한 듯하다. 자세한 것은 레오폴드 2세 항목과 콩고 역사 항목을 참고.
  7. [7] 널리 알려졌듯, 현대에는 옛 식민지 국가들에서 문제가 되는 아동 노동만 해도 저 무렵에는 식민제국 본국들의 이야기였다. 역설적으로 식민제국의 하층민들은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높으신 분들이 만든 식민지로 달려가 피묻은 돈을 만져보는 꿈에 부풀었지만 당연히 성공한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오히려 경제적 이득을 본 것은 식민제국 본국의 정치인들과 자본가들, 군부들이었다.
  8. [8] 노르웨이아이슬란드의 경우는 자기들과 같은 노르드계 민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나라였던지라 식민지라기보다는 친한 옆 동네 취급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고, 그린란드는 현지의 이누이트와 별다른 유혈 충돌이 없었고 너무 추워서 농사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서로 소 닭보듯하는 관계였다. 그래서 식민지 착취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식민제국으로서의 이미지가 잘 없는 것이다. 물론, 이건 아프리카카리브 제도에 가지고 있던 몇 안 되는 식민지들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9. [9] 덴마크인도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들 중의 하나가 바로 세람푸르라는 도시였다.
  10. [10]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칠레는 차루아, 테우엘체, 마푸체, 과라니, 케추아 등 남미 원주민 민족 집단들을 일방적으로 대량 학살하여 현재의 자국 영토와 국경선을 정벌, 획정시켰던 국가들이다. 덕분에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인 메스티소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중이 높은 페루나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등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달리 남미에서 혼혈인과 원주민들의 비중이 낮고 백인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1. [11] 아일랜드 자유국, 인도, 파키스탄, 실론 자치령은 이들을 구성하는 민족들의 독립 절차의 일부로써 존속한 자치령들므로 제외. 게다가 이들은 대영제국의 지배에서 100% 피해자였으면 피해자였지 가해자라 볼 수 있는 건덕지가 없다. 반면, 아래 언급된 자치령들은 영국이 본토의 연장선상으로 여긴 지역들이다. 민족 구성도 영국계가 대부분이다. 시칠리아 마피아식으로 보자면 대영제국이란 조직 내에서 영국이 대부가 계시는 큰집이라면, 이들은 친인척들이라 보면 된다. 현재까지도 남아공을 제외한 나머지 셋과 그들의 본가였던 영국 및 영국의 식민지 출신인 미국은 운명 공동체라 불릴 정도로 손발이 잘 맞는다. 5개의 눈 항목 참조.
  12. [12] 다만, 이들 식민지에는 아무런 탄압도 가하지 않았기에, 예나 지금이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3. [13] 아예 이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독립된 뒤에도 프랑스군이 주둔하고 있다.
  14. [14] 그럼에도 19세기에 어찌저찌하여 지금의 소말리아 북부 지역을 잠시 식민지배하긴 했으나, 하필 본국에서 너무나도 먼 아프리카에 있던데다, 근처에 이탈리아영국이 소말리아의 상당부분을 식민지로 확보해놓은 상황인지라서 영국에게 자국령 지역을 할양해버리고 소말리아에서 손뗐다. 그 이외에 당시 자국령이던 알래스카를 통해 지금의 미국 오리건 주와 캘리포니아 주, 캐나다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이르는 드넓은 영토를 차지했지만, 역시 본국에서 너무 멀어서 유지하는데 쌩돈만 나가자 인접한 캐나다멕시코, 미국에게 아메리카에 있는 식민지들을 몽땅 팔아치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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