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철

  N.EX.T의 리더겸 보컬 신해철에 대한 내용은 신해철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름

신대철(申大澈)

출생

1967년 2월 16일 (53세), 서울특별시

혈액형

O형

본관

평산 신씨[1]

소속

에코브리드 대표이사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학부장)
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 (학부장)

소속그룹

시나위(리더, 기타리스트)

가족

아버지 신중현, 남동생 신윤철, 남동생 신석철, 3남 중 장남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예술대학교 영화과 졸업

1. 소개
2. 가족
3. 활동사항
3.1. 음악활동
3.1.1. 데뷔
3.1.2. 참여
3.1.3. 교직
3.1.4. 방송활동
3.1.5. 수상경력
4. 이야깃거리
4.1. 성격과 음악적 성향
4.2. 발언
4.3. 신해철의 돌연사와 신대철의 대응
5. 바른음원협동조합

1. 소개

시나위(밴드)기타리스트.

한국 락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로, 기타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신중현이 대마초 파동 및 금지곡으로 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할 때 신대철이 기타를 배웠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 때, 항상 바빠서 얼굴 보기 힘들었던 아버지가 어느 날 보니 집에 계속 계시길래. "아버지 기타 좀 가르쳐 주세요" 라고 부탁드리고 3개월간 매일 매일 개인 레슨으로 배웠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2]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갔을때는 이미 국내에 적수가 없었다. 고2 때인 83년에 시나위 결성, 86년에 데뷔했지만 그 전부터 인지도는 상당했다.[3] 이후의 행적은 시나위(밴드) 문서 참조.

2. 가족

아버지 신중현, 동생 신윤철, 신석철이 있다. 신해철이 이름이 비슷해 동생인 줄 오해하는 사람도 있으나 아니다.[4] 참고로 둘째 신윤철기타리스트보컬리스트, 막내 신석철도 탈 장르 드러머다.

가족이 모두 조용하다. 신대철이 그나마도 방송에 많이 나오는 사례다.[5] 형제가 모여 인터뷰를 할 때 보면 신대철 혼자 아웃사이더급 속사포 랩을 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김도균, 김태원과는 다르게 예능 활동이 적다. "예" "아니오"로만 답을 하기 때문이다.

3. 활동사항

3.1. 음악활동

3.1.1. 데뷔

1986년 시나위 1집 앨범 Heavy Metal Sinawe

3.1.2. 참여

김종서, 서태지, 이승철, 박광현, 이현우, 임재범, 박상민, 손성훈, 김장훈, 이상우, 이소라, 이은미, 크라잉 넛 등 80여 명의 가수, 뮤지션 음반 작곡, 편곡, 작사, 연주 및 프로듀싱.

이선희 11집 'Dream of Ruby(98)'의 수록곡 '너에게 가면' 작사, 작곡. '너에게 가면'은 이선희의 역대 앨범의 곡들 중 애드리브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음역대를 자랑한다.

영화 '황무지(미개봉)' '나에게오라', '북경반점', '현상수배', '기방난동사건' 음악감독.

EBS 다큐멘터리 '시베리아 호랑이', 역사 복원 시리즈 '두만강에서 흑룡강까지' 음악감독.

시나위(밴드) 전집, 신대철 독집앨범 코로나(Corona), 신대철과 자유 1집, D.O.A

도시락특공대 2집 참여 등

3.1.3. 교직

2010.12~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

2013.12~ 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 실용음악예술학부 학부장

前 동덕여대, 호원대 겸임교수

3.1.4. 방송활동

KBS 밴드 서바이벌 TOP밴드에 코치진으로 출연. 시즌3에도 코치로 출연한다.

2012년 9월 MBC 나는 가수다 2시나위(밴드)를 재결성하여 출연.

3.1.5. 수상경력

추가바람

4. 이야깃거리

4.1. 성격과 음악적 성향

성격은 리더십이 강하고 음악적인 고집도 좀 있는 편이라고 한다.[6] 그래서 시나위의 역대 보컬인 김종서임재범보다 동생이면서도 시나위의 리더를 맡았다 [7]. 더불어 시나위에 있었던 서태지도 신대철을 많이 무서워 했다고.[8]

3대 기타리스트인 김태원과 김도균은 나름 감성적인 면이 있으나 신대철은 다소 냉철한 편. 과거 놀러와 3대 기타리스트 특집으로 나왔을때 김태원과 서로 편지를 읽으며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을때 혼자 오글거려하며 빵터지기도 했다.

블루스와 메탈을 기반으로 한 1980년대 뮤지션임에도 의외로 음악적 성향이 진보적인데, 나는 가수다 2와 새 앨범 Mirrorview에서 보여준 일렉트로닉 사운드나 '슬픔의 이유'등에서 사용된 우쿨렐레 등의 악기를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힘든 나이 임에도 스스로 배워서 수준급의 연주를 보여주었다. 물론 기타를 오래 쳐서 운지법 등이 익숙한 건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최근에는 국산 하이엔드 기타를 메인 기타로 사용 중이다.

그리고 역시 한국의 명 기타리스트들인 김도균, 김목경과 함께 펜더에서 커스텀 기타를 헌정 받았다.# 아버지 신중현에 이어 부자가 펜더 사에게 기타를 헌정받은 셈.

신대철의 음악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은 크게 라디오를 켜고인듯 하지만, 실상은 91년도에 했던 밴드 자유에서 작사 작곡 그리고 직접 부르기까지한 멀어져간 사람아이다. 물론 박상민의 리메이크로 잘 알려지게 된 것이지만. 신대철을 아는 사람이라면 몰래 아는 명곡. 박상민 판보다 화려한 기타 연주와[9], 기교없이 수수하지만 진솔한 목소리에 팬들이 좋아한다.

4.2. 발언

신중현과 더불어 말이 하도 없어, 시나위 데뷔 후 부자 락커로 인터뷰를 진행했을 때 거의 "예, 아니오"로만 대답을 하여 인터뷰 진행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사실 말은 별로 없는 편이라고. 사실 말수가 적은 건 동생들도 마찬가지라서 이 네 부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 입장에선 매우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가족들 중에 신대철이 제일 말수도 많고 말도 잘하는 편이다(!). 아버지 다음으로 대중에게 많이 노출됐을 뿐만 아니라 2010년대 들어 여기저기 방송출연도 많아졌기 때문인지 자기 소신을 조리있게 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적응이 됐는지 할 말은 다 하는 달변가가 됐을 정도.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명언으로 알려진 "기타가 펜더면 뭐하나. 손가락이 펜더여야지"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나름 명언으로 TOP밴드 시즌1 코치 결정전에서 남긴 "후회하지 말고 저한테 오시면 됩니다"가 있다. 코치 결정전에서 게이트 플라워즈와 리카밴드 둘을 선택한 상황에서 후반부에 '갈 길 잃은 밴드'들을 포섭하기 위한 말이었다.

지인의 꼬임에 힘입어 페이스북에 가입했다. 매일 자신의 장비 사진을 올리거나 개인적인 감상 등을 적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팔로워가 10,000명이 넘은 상황. 조용필의 빼앗긴 저작권 이야기나 이철호의 사랑과 평화 상표권 등록 문제같은 음악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송포유를 까는 등 페이스북을 시사적으로도 잘 쓰고 있다.

게다가 지적인 수준이 상당하다. 한번 읽어보자. #[10] 본인 말처럼 지속적으로 알고자 노력하는 듯.

그런데 가끔 '해장국에 들깨를 넣으면 술이 들(덜)깨' 같은 개드립도 치거나 '넘을 수 없는 벽이라면 부숴버리겠다!' 같은 말을 하는 등[11] 어째 개그 캐릭터가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박근혜 게이트관련한 박사모의 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른 것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말을 남겼다.# 해당 글의 말미에서 촛불집회에서 본인을 섭외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고 집회 측도 이를 받아들여 12월 31일에 보컬 전인권과 함께 공연을 성사시켰다.인터뷰 링크

2017년 2월 16일에 쇼파르뮤직의 소속사 대표가 식당에 만취된 채로 쇼파르뮤직의 한 매니저와 함께 찾아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폭언을 하고 폭행을 했는데, 해당 아르바이트생들은 신대철이 교수로 재직 중인 호원대학교 실용음악과 출신이었던 것으로 밝혀져 신대철이 SNS상에서 공개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링크

4.3. 신해철의 돌연사와 신대철의 대응

신해철의 돌연사 이후 신대철이 "복수해줄게"라는 글을 페북에 올렸고, 이것이 촉매가 되어 의료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커졌다.[12] 이후 신해철이 수술을 받은 병원과 병원장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고, 이후 이미 화장을 결정했던 유족을 설득하여 검시를 받게 하는 등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오직 신대철만의 생각이나 행동은 아니었겠지만[13] 그 나름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셈. 실제로 이후 관련 시사 프로에서 모습을 비추며 유족의 입장이나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본인의 페이스북에 신해철이 생전에 선물했던 기타를 공개하여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다만 그를 감안해도 결국 인터넷 여론이라는 한계 속에 "복수해줄게"라는 표현이 너무 극단적이고 과하다는 인상도 주었다.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은' 일이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엄밀히 말해 복수와 다른 개념이다. 즉, 페북의 뜻을 우호적으로 해석해도 '복수'라는 표현은 '틀렸다'. SNS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행동의 합치인데, 이에서 부족함을 보인 것.

신해철의 사망이 비극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가해자로 알려져있는 의사가 의도를 가지고 저지른 범죄[14]가 아닌이상(살인이 아니라 잘 해야 업무상 과실치사 정도일 테니) "복수"라는 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물론 해당 의사가 이름만 바꿔 재개업을 하는 등 의료인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쌩까고 있는 상황과 함께 저 따위로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조차도 의사면허를 박탈당하지 않는구나 싶기는 하지만 이는 신해철의 사망에 대한 복수와는 거리가 있다. 신대철은 해당 의사의 처벌여부와는 상관없이 동태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사회 밑바닥으로 숨어서 다시 몰래 활동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한다.

복수는 행위자의 주관적인 감정, 원한의 유무에 따라 성립되는 말이지 행위의 정당성으로 성립되는 말이 아니다. 과실치사조차 아닌 단순한 불운으로 인한 사망이었더라도 원한을 품고 갚고자 하면 정당하지 못할지언정 복수라고 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또한 원한 같은 것 없이 순수히 '잘못을 시정한다는 원칙'에 의거해 의료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다른 개념이겠지만 거기에 병원 측에 대한 원망이 섞여 있었다면 복수라 하지 못할 것도 없다. 신대철이 어떤 생각을 품고 그런 글을 썼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그저 원칙적으로 옳으니 책임지는 것을 바랐던 것인지 사적인 감정으로 책임지는 것을 바랐던 것인지 알 수 없으므로 복수란 말을 바르게 썼느냐 아니냐를 운운하는 것은 잘못됐다.

5. 바른음원협동조합

페이스북에서 한창 활동하는 중 조용필, 사랑과 평화 등 선배 뮤지션들의 저작권 문제를 제기한 이후, 이에 대한 연속선상으로 현재의 음원 유통 방식에 대한 쓴소리를 남겼다.# 그리고 말 한마디에 그치지 않고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음원 유통조합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2014년 11월 현재 홈페이지가 열렸다. 조합원 가입신청을 받고있으며 출자금 5만원을 납부하면 정식 조합원이 된다. 창립하면서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이 길었는지 '바른음원협동조합'으로 다소 짧아졌다. 그렇지만 유통을 안 하는 것은 아닌듯, 홈페이지에 따르면 음원 MP3 서비스 사업과 음악의 유통사업, 그리고 공연 사업을 '다른 회사보다 이윤을 적게 남기면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말 돈 없는 인디 음악인들에겐 단비 같은 말이다. 2015년 10월 현재 유통사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1. [1] 평산 신씨 34세손 '澈'자 항렬이다. 참고로 나이상으로는 아들뻘인 아웃사이더와는 같은 본관이자 같은 항렬이다. 이것은 아웃사이더의 노래 20에 가사에서 평산 신씨 사간공파 34대손 신옥철이라는 가사가 있다.
  2. [2] 보통 기타 학원에서 1주일에 하루 정도 몇 시간 기타를 가르쳐 주는 식으로 몇 년간 배워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3개월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최고의 기타리스트에게 3개월간, 그것도 매일이다.
  3. [3] 기타에 손을 대지 않고 소리를 낼 수 있다는 황당한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4. [4] 대신 이름이 비슷해서 서로 의형제를 맺으면서 지낸다고 한다. 사실 이 둘은 평산 신씨 34세손 '澈'자 항렬을 쓴다. 족보와 문중을 제대로 따진다면 종형제뻘인 관계다.
  5. [5] 어디까지나 그나마다. 신대철도 무척 조용한 사람이다. 밑에서 배웠던 학생들은 "워낙 조용해서 어찌 처신할지를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6. [6] 까딱 흥분하면 꼰대로 진화하기도 하는데 스스로도 젊을 때 그런 기질이 매우 심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나이 먹으면서 조금씩 유순해져서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고.
  7. [7] 신대철과 임재범은 실제로 서울고 동창이다. 신대철은 빠른 년생이라 66년생들과 같은 학년이었고, 임재범은 62년생인데 가정사 때문에 4년 늦게 학교를 들어갔다고 본인이 주장한다
  8. [8] 서태지시나위에서 탈퇴할 때 정식으로 선언하고 탈퇴한 게 아니라, 담배 심부름하러 나갔다가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서 탈퇴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9. [9] 박상민 판에서의 기타연주도 신대철이 직접했다
  10. [10] 일반인으로는 남다르게 라플라스의 악마와 불확정성 정리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썼다. 교양을 지향해도 나이 먹을수록 과학에 대한 관심은 어려워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훌륭한 수준이다.
  11. [11] 근데 저 말은 나중에 신곡 가사가 된다.
  12. [12] 신해철의 지인이자 그 자신도 저명성을 확보하고 있었기에 정보의 소스가 되어 여론을 형성한 것이다. 만약 의료사고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만 오갔다면 의료사고에 대해 접근성과 전문성이 떨어지는 기자들을 쉽게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 자신이 쓴 기사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S병원은 의료사고 여론이 일자 고인이 관리를 잘못했을 거라는 책임전가와 함께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 경고했었다. 그러던 차에 신대철의 페북글로 자신을 향해 주의를 끌게 하며 의료사고 자체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킨 것이다. 거창해보이지 않을 지 몰라도 명예훼손 등의 주체가 되어 총대를 멘 것.
  13. [13] 실제로 검시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유족을 설득한 것은 이승철남궁연 등으로 알려져 있다. 더 정확히는 언론인 이상호 기자가 소속사 대표를 설득하여 음악인들이 동의하고 다시 유가족을 설득한 것.
  14. [14] 고의적인 일이라는 말들이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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