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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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보수정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국민신당

신한국당

공식명칭

신한국당
(新韓國黨, New Korea Party)

창당일

1995년 12월 6일

해산일

1997년 11월 21일
(통합민주당과 합당, 한나라당 창당)

선행조직

민주자유당(1990년, 3당 합당)

중앙당사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18
(여의도동 17-7, 아시아원빌딩)

대통령

김영삼

국회의원

153석 / 298석(15대 국회, 한나라당 창당 직전)

당 색

파란색 (#003990)

이념

보수주의

1. 개요
2. 본문
3. 당가
4. 역대 선거결과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

대한민국 보수정당 민주계의 전성기

1995년 12월부터 1997년 11월까지 존재했던 한국의 정당.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당의 역사상 손꼽힐 만큼 개혁적이었으며, 대구/경북에서 가장 외면받았던 당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신한국당이 TK 출신이 대부분인 5공, 6공 시절의 군인 출신 정치인들을 숙청한다는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여파로 TK에서 자민련이 약진하는 돌풍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nkptel.or.kr', PC통신(신한국텔) 접속 명령어는 'go nkptel'이었다.

2. 본문

가장 짧게 존속 했던 여당 가운데 하나로, 비슷한 예로는 열린우리당(3년 9개월), 대통합민주신당(6개월)이 있다. 그런데 대통합민주신당은 사실 대통령이 입당한 적은 없어서 여당이라고 하긴 어려우므로 가장 단명한 대통령 소속당으로 볼 수 있다.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여당인 민주자유당의 다수파는 여전히 민주정의당 출신의 민정계였는데, 1995년 12월 김영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특별법을 제정하여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12.12 군사반란 가담자들을 전격 구속했다. 12.12 군사반란의 주요 가담자 허삼수, 허화평, 유학성 등이 그때까지 민자당 국회의원 신분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정말 흠좀무한 일.[1] 그리고는 자신이 노태우와 함께 만들었던 민주자유당의 간판을 내려버리고, 김영삼 정부의 국정 슬로건이었던 신한국 창조에서 따온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고친다.# 로고 또한 중도노선으로 방향을 돌리는데 이는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도 취한 태도였다. 어찌보면 좋은 현상일지도 모르나 이 현상은 철새 국회의원의 대량 생산 원인이 되었다.[2]

1996년 실시된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수도권에서 선전했음에도[3] 전두환, 노태우 구속의 역풍을 맞고 대구광역시, 경상북도에서 자유민주연합무소속에게 대거 의석을 내주는 바람에 과반수 확보에 일단 실패했으나, 선거 후 자민련과 민주당, 무소속 의원들을 끌어와 과반수를 확보하였다.[4]

1996년 12월 크리스마스 노동법 및 안기부법 "날치기"(직권상정) 파동[5]1997년 외환 위기로 지지율이 떨어지자,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997년 11월 민주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된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했었다. 이 때 선출된 후보가 이회창. 당시 9명의 후보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하여 9룡으로 불렸다. 마침 명사극 용의 눈물이 인기리에 방영될 때라서, 이들을 다룬 만평 중 용의 눈물 버전으로 된 9룡 풍자도 꽤나 등장했었다.

3. 당가

후렴구만 바꾸었을 뿐 민자당 시절과 가사가 동일하다.

(1절) 새시대 새역사의 아침을 열고

우리는 달린다 세계로 미래로

개혁의 큰 물결로 꿈과 희망을

민주 복지 통일의 선봉에 서서

세계속의 한국을 이끌어 나가자

(후렴) 아 세계로 미래로 힘차게 가는 그 길

그 길에 우뚝 선 신한국당

(2절) 새시대 새역사의 아침을 열고

우리는 뭉쳤다 하나로 뭉쳤다

희망의 새 정치로 더 크고 넓게

자유 평화 통일의 역군이 되어

세계속의 한국을 드높여 보자

4. 역대 선거결과

5. 기타

1997년 8월 10일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이후 추락한 사고기의 잔해 앞에서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은 병크를 터뜨린 적이 있다.

6. 관련 문서


  1. [1] 그 외에도 민정계 출신 정치인이 많이 남아있었다. 서정화, 이세기, 김영구, 강성재, 박명환, 박주천, 박범진, 김기배, 김명섭, 유용태, 이상현, 최병렬, 서상목, 김중위, 김형오, 정문화, 강경식, 이상희, 정형근, 김진재, 유흥수, 강재섭, 서정화, 심정구, 이강희, 조진형, 이경재, 김인영, 오세응, 이택석, 전용원, 이성호, 정영훈, 이한동, 이해구, 이웅희, 한승수, 함종한, 김영진, 최연희, 박우병, 이응선, 김기수, 신경식, 김종호, 강현욱, 이상득, 권정달, 박세직, 김윤환, 박시균, 박헌기, 이상배, 장영철, 정창화, 김광원, 김종하, 김태호, 차수명, 하순봉, 허대범, 황성균, 김영일, 김기춘, 김용갑, 윤한도, 나오연, 박희태, 권익현, 이강두, 현경대, 양정규, 변정일, 조영장, 김기재, 오장섭, 이만섭, 이홍구, 신영균, 정재철, 전석홍, 남평우, 주진우, 김정숙, 김일윤, 임진출, 이해봉, 박종근 등이 신한국당에 남아있던 민정계 정치인들이다.
  2. [2] 양당이 서로 중도화하면서 성향차이가 거의 없어지다보니까 소속 정치인들 또한 당적 변경에 거리낌없어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3. [3] 모래시계 검사로 떴던 홍준표,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등 정치 신인들을 대거 공천하고 야권이 새정치국민회의통합민주당(1995년)으로 분열한 영향이 컸다. 대략 수도권에서 30여개의 선거구가 야권 분열로 승패가 뒤집혔으며, 심지어 야권 단일화를 가정한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는 야당에게 1당을 내줄 수도 있었다.
  4. [4] 이 때문에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를 증오하게 되었으며 훗날 김대중과의 관계가 틀어졌음에도 이회창에 대한 적개심을 풀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불과 2년 만에 김대중 정권이 거꾸로 한나라당(신한국당의 후신) 의원 영입을 통해 정계개편을 인위적으로 감행할 때는 이에 반발하던 하순봉 한나라당 원내총무를 향해 구천서 자민련 원내총무가 "우리는 원금 받으려면 아직 멀었다."라고 일갈하는 굴욕적인 상황도 있었다. 당시 MBC 뉴스데스크 보도
  5. [5] 그냥 "날치기"라고 하면 와 닫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비정규직(변형근로제) 및 파견근로제를 골자로 한 새 노동관계법, 그리고 불고지죄 및 찬양고무죄 수사 부활을 골자로 한 새 안기부법이 이 때 통과되었다. 대신 복수노조 허용이란 순기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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