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수창

LG 트윈스 시절

넥센 히어로즈 시절

롯데 자이언츠 시절

이제는 한화 이글스의 투수

한화 이글스 No.1

심수창(沈秀昌 / Soo-chang Shim)[1]

생년월일

1981년 2월 9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강동구

학력

고명초 - 이수중 - 배명고 - 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2]

프로입단

2000년 신인드래프트 2차 11라운드 (LG 트윈스)

소속팀

LG 트윈스 (2004~2011)
넥센 히어로즈 (2011~2013)
롯데 자이언츠 (2014~2015)
한화 이글스 (2016~현재)

등장곡

지드래곤&태양 GOOD BOY

등번호 변화 일람표

LG 트윈스 등번호 67번

김동호(2000~2003)

심수창(2004~2011)

서보민(2012)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67번

이성욱(2010~2011)

심수창(2011~2013)

김태형(2014~2015)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7번

고원준(2011~2013)

심수창(2014~2015)

이우민(2016~2017)

한화 이글스 등번호 1번

박성호(2015)

심수창(2016~ )

현역

1. 소개
1.1. 개관
2. 어린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3.1.1. 2006 시즌
3.1.2. 2007 ~ 2008 시즌
3.1.3. 2009 시즌
3.1.3.1. 심논개 사건
3.1.4. 2010 시즌
3.1.4.1. 대굴욕 연봉
3.1.5. 2011 시즌
3.2.1. 2011 시즌
3.2.2. 2012 시즌
3.2.3. 2013 시즌
3.3.1. 2014 시즌
3.3.2. 2015 시즌
3.4.2. 2017 시즌
3.4.3. 2018 시즌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화보
7. 기타

1. 소개

"믿기 어렵겠지만, 난 노력형 선수다."[3]

한화 이글스 소속의 오버핸드, 사이드암 투수. 그리고 KBO 불운의 대명사 중 하나. 참기름 초능력자

1.1. 개관

본격 2011 프로야구의 3대 화제의 인물[4]이자 불운의 아이콘. 2011년에는 모든 야구팬들의 슈퍼스타 심수창이 되기도 했었다.

2000년 드래프트에서 2차 11라운드에서 LG에 지명된 뒤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2004년에 프로 데뷔했다. 참고로 당시는 대학 진학 후에도 프로구단의 지명권이 유효하던 시절이었다. 2011년 7월 31일 넥센으로 트레이드됐다. 등번호는 넥센 히어로즈 시절까지 LG 입단시부터 사용하던 67번을 계속 쓰고 있었다.

LG는 선수를 얼굴로 뽑는다는 루머가 퍼지게끔 했던 선수 중 한 명. 어느 정도냐면 심수창이 선발로 등판할 때마다 LG팬들과 넥센팬들은 연예인 시구자라고 부른다. 이대형과 더불어 LG 트윈스 얼굴의 양대 축이었다.

처음 떠돌아다닐 때 파일명이 "얼굴만큼 야구하길 바라.jpg" 얼굴만큼 야구하는 선수처럼 됐으면 그냥 사기 캐릭터

한편 LG 시절에는 같은 팀 우규민과 돈독한 친분을 과시해 KBO 후로게이의 대표주자로도 유명했다.# 일설에는 심수창이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해 구치소에 수감된 적이 있었는데, 심수창의 여친과 우규민이 함께 면회를 갔단다. 근데 우규민이 심수창과 손을 붙들고 서럽게 울어제끼고 여친은 병풍이 되었는데 그 뒤에 헤어졌다고(...). 외모 덕분에 일본 잡지에 소개되기도 하였고, 송승헌과 닮은 외모로 인해 우규민을 응원하기 위해 대만으로 갔을 때엔 송승헌으로 오해받아 싸인 공세를 받기도 하였다. 아니야 틀렸어. 자넨 송승헌보다 잘 생겼다네 이로 인해 "심승헌"이라는 별명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한때 같은 팀 소속이었던 박용택, 그리고 조인성과 야구부에서 함께 뛰었다. 또한 데뷔 당시의 미모와 지금의 미모사이에 상당히 큰 갭이 존재한다. 나이 먹을수록 더 잘 생겨진다는 게 중론. 게다가 185cm의 위너이다.[5]

모에선을 맞으면 심땅이 된다. 믿으면 골룸 박종훈 문서에도 서술된 것이나 이것은 심수창+땅볼이지, 결코 OS땅 같은 원리가 아니다!

2. 어린 시절

배명고등학교 때에는 실력이 좋은 야구 유망주로 유명했다. 고3 시절에는 대통령배 야구대회에서 에이스로 배명고를 준우승에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에 지명될 당시 2차 11라운드로 지명되었는데, 그 당시 12라운드밖에 없었다는 것을 볼 때 실력에 비하면 굉장히 후순위였다. 이런 지명을 받게 된 이유는 좋은 성적을 거둔 후에 부상이라는 명목으로 경기 출전을 하지 않았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는 소문을 들은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은 심수창을 절대로 지명하지 않기로 서로 담합하였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투구폼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밸런스가 무너지고 선수생명에 지장이 있는 블래스 신드롬까지 걸리면서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 아버지의 정성어린 노력으로 간신히 극복했다고 한다.

아버지 심태석.

이를 주도한 그의 아버지인 심태석은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으로, 경기 때마다 판정 문제로 악명이 높은 데다가 이 일로 인해 스카우트들의 기피 대상이 되었다. 2012년 10월경 고교야구 선수들의 대학 입학과 관련하여 비리를 저질러서 또 논란이 되기도 했다. KBA 심판위원 심모씨 구속.[6] 여담으로 뇌물을 먹인 고교 감독은 당시 제물포고 감독이었던 가내영이라고 한다. 사이좋게 감방 가내영 어째 아들과 아버지가 모두 구속되어 감방에 갔다.

하지만 프로야구 지명 당일날, LG 트윈스의 스카우터가 11라운드에서 담합을 깨고 심수창을 지명하게 되고, 심수창은 대학에 진출하게 된다.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는 대표팀 중 유일하게 아마추어 선수로서 출전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뒤 2억1천만 원이라는 11라운드 선수치고는 굉장히 높은 계약금으로 지명권이 있는 LG로 입단하게 된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LG 트윈스 시절

풋풋한 신인시절.

3.1.1. 2006 시즌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병역비리 사건에 휘말려 구속되었다. 6개월 간 복역을 마치고 받은 재검에서 완전히 면제 판정을 받았다.

그후 꾸준히 성장하여 2006년에는 선발 10승을 거두는 등 괜찮은 선발자원으로 성장하는 듯했다. 단 2006년이 희대의 투고타저 시즌이었는다는 걸 생각하면 4.38의 평균자책점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다. 사실 이 시즌 심수창은 당시 LG의 토종 선발진에서는 유일하게 사람다운 구실을 했던 선수였다. 어쨌든 이 때의 심수창은 운이 있는 투수였다. 지금은 운 대신 재미가 있다

3.1.2. 2007 ~ 2008 시즌

하지만 2007년에는 불펜으로 강등되자 좋지 않은 성적을 보이게 되었고, 덕분에 팬들에게 '심태업'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결국 그 다음해에 선발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보직의 변경에 적응을 못 했는지 역시 변변찮은 성적을 냈다.

3.1.3. 2009 시즌

그러나 2009년 전반기에 좋은 성적을 보여주면서 크리스 옥스프링의 부재로 빈약해진 LG 선발진의 한 축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받았다. 당시 타자들을 주로 땅볼로 처리하여 붙은 별명이 '심땅꾼'.

결국 2009년 시즌에는 봉중근과 함께 LG의 원투 펀치로 불렸지만 6승 12패를 기록했다. 봉중근과 마찬가지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하고도 패전 투수가 되는일이 많아서 이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평균자책점은 5.31로 그 시즌이 역대급 타고투저였음을 감안하더라도 대단히 높은 편이었다.

6월 14일, SK전에 선발 등판하여 7⅓이닝 5탈삼진 3볼넷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를 달성했고, 팀이 스코어 5:3으로 이겨서 심수창은 이날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런데 이 승리가 이후 786일 간의 마지막 승리가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2월 10일, 심수창의 어머니가 잠실옆의 신천에 '신천 펫코파크'라는 야구컨셉 호프집을 새로 개점했고, 그 다음날인 12월 11일 골든 글러브 시상식을 마치고 우규민, 이대형, 박용택 등 동료 LG선수들이 찾아와 가게일을 거들어준 덕분에 팬들이 대거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특히 여성팬은 많으나 경기 끝나고 바람같이 사라져 싸인을 득템하기가 어려운 이대형 같은 선수는 몰려든 여성팬들 때문에 현장에서 즉석 팬미팅이 벌어진 수준이었다고(...). 가게 내부는 선수들의 싸인이 있는 유니폼 등 야구 관련 물품들로 장식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음식의 가격 대비 질은 매우 최악인지라, 실제 LG 트윈스 갤러리에 "펫코파크 갈 만 하냐?"라고 질문을 올리면 욕으로 점철된 답변이 나왔다. 게다가 2010년 심수창의 성적이 상당히 안 좋은데, 심수창은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효도한답시고 틈날 때마다 가게에서 서빙이나 하고 있었으니 오히려 부모님이 욕을 먹게 되는 불효를 저질렀다. 결국 부모님의 맘고생 끝에 개업 1년도 채 안 된 2010년 9월 7일, 펫코파크는 폐업했다.

여담으로 이 당시 어깨 건초염을 앓았던 듯 하다. 선동열도 꼼짝 못했다는 그 염증

3.1.3.1. 심논개 사건

2009년 8월 6일, 잠실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포수조인성과 마찰이 있었다. 조인성이 경기 초반부터 욕을 하면서[7] 계속 심수창을 다그쳤고, 안 그래도 팔목 부상의 와중에 힘겹게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욕을 먹어 열받은 심수창이 "제가 뭘 잘못했습니까!" 운운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하였다. 결국 조인성과 함께 2군행.

리드 좀 잘해! → 잘 하고 있어! → 못하잖아! → 잘 하고 있다니까!? →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 확 꾸겨버린다!?

당시 경기 영상.

1:32:40 지점으로 돌리면 심수창이 조인성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한다. 나중에 카메라가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심수창을 잡을 때 조인성의 표정도 백미.

평소부터 나쁜 성질머리, 바깥쪽 일변도의 볼 배합, 승패가 다 기운 경기 후반에만 스탯 관리 하는 타격, 떨어진 송구 능력으로 인해 조인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대부분의 LG팬들은 '심수창이 팀을 위해 몸 바쳐 희생했다'며 심논개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군에 간 조인성을 대신해 올라온 김태군은 8월 7일 LG의 새 외국인 투수 제레미 존슨을 비롯한 불펜진과 배터리를 이뤄서 무실점 경기를 펼쳤다. 그리고 다른 투수들도 김태군과 배터리를 짜니 훨씬 안정적인 피칭을 했다.

다만 후에 알려진 기사에 의하면 이 때만 하더라도 조인성은 스스로 볼 배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벤치에서 볼배합을 지시했었다고 한다. 자신이 리드했으면 모를까 벤치에서 지시한 상황에서 리드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LG팬들에게 미움을 받았으니 억울할 만도 하다. 팀 내에서도 조인성이 너무 착할 뿐이라며 두둔하는 것을 보면 심수창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진실은 당사자들만 알겠지만.

그리고 7년뒤 이 사건이 한화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심수창이 아니라 정민태 "코치"(...). 심수창은 옆에서 말려보려다 기세에 눌려 슬금슬금 도망친다(...).

3.1.4. 2010 시즌

2010년 3월 23일, 조인성과 함께 박동희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뭐 그동안 안 좋았고 이제 앞으로는 나아지겠다고 자신감 있게 인터뷰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어색한 사진 이후로 이대형-임준혁이라든가 그리고 2015년 말 이 어색한 배터리는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하는 말이,

"투수는 포수와 다를 수 있어요. 타자가 두산 김동주 선배라고 하죠. 김 선배는 바깥쪽 공을 잘 치는 걸로 유명해요. 하지만, '그러니까 커브로 공략하자?' 전 아니라고 봐요. 김 선배가 바깥쪽을 좋아하니까 웬만큼 비슷하면 배트가 나올 거 아니에요? 그럼 바깥쪽을 더 잘 공략해서 범타로 일찍 처리하는 게 낫다고 봐요. 전 바깥쪽을 던질 겁니다."

그런데 김동주는 심수창 상대로 통산 13타석 10타수 5안타 2볼넷, 타율 5할, 출루율 6할, 장타율 8할. 약 빤 그분급 성적이다. 이 뭐...

하지만 심수창은 2010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첫 경기인 3월 2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3이닝동안 6실점을 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그 후에 승패가 없다가 4월 23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2⅔이닝동안 4실점하면서 LG의 6연승을 끊었다. 그리고 2군에 41일 동안 있다가 6월 3일 오래간만에 1군에 와서 롯데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섰건만, 1회에 6타자 연속 안타를 맞으며 1⅓이닝 5실점을 하면서 LG의 4연승을 끊었다. 이토록 연승을 끊어대자[8] 팬들은 심수창이라 하면 아주 이를 갈았다. 안습. 연승 브레이커

게다가 2군에서도 못한 건 마찬가지여서, 5월 1일 LG가 SK한테 21실점하며 깨지던 날 2군에서 4이닝동안 16실점으로 평균자책점 36.00을 기록했다고 한다(...).

3.1.4.1. 대굴욕 연봉

이제는 구권이 되었다. KYK라는 신권이 나왔거든

여기서 일련번호 부분을 주목해 보자.

2010시즌에 거의 등판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LG 트윈스의 신 연봉 정책에 의해 2011년 연봉으로 겨우 3000만 원을 받게 생겼다. 신인 선수급 연봉되시겠다. 물론 대부분의 LG팬들에겐 최악의 FA 먹튀 박배추와 더불어서 둘 다 한 푼도 주기 싫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특히 2009년에 팬들에게 엄청나게 까였던 조인성이 2010년에 괴물같이 부활해서 심수창을 보는 눈이 훨씬 더 차가워졌다. 물론 심수창이 야구를 잘했다면 이런 액수가 나올 일이 없었고 지지리도 야구를 못했기 때문에 다 자업자득이었다.

심수창이 한동안 사인을 거절하며 저항했기 때문에 LG팬들은 뭘 잘한 게 있다고 연봉 계약서에 사인을 안 하냐고 욕을 했고, 심수창은 결국 사이판으로 떠나는 구단 버스에 타기 직전에 3천만 원에 사인했다. 그 이후 수창이 야갤에선 화폐 단위로 쓰이게 되었다. 1수창=3천만 원 되시겠다. 예를 들어 실제 사용 방법을 설명하면 '2012, 2013, 2014 김태균의 연봉=50수창=15억 원'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2011년 스토브리그에서, 한화 이글스의 한 메이저리거 출신 베테랑은 한화에 입단하는 과정에서 0.8수창을 받게 되었다. 물론 박찬호는 실력이 부족하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연봉을 전액 기부하려 하였으나 무조건 최저 임금 이상은 받아야만 해서 "0.8수창+야구발전기금 6억원(=20수창)"을 기부한다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이다.

그러나, 2013년 종료 후 권용관이 FA로 1년간 1억원에 재계약한 뒤로는 심수창 대신 권용관이 새로운 화폐 단위가 되었다. 그리고 이대형이 2013시즌 후 KIA 타이거즈와 총액 24억 원이라는 초대박 FA 계약을 맺자 13 이대형 'FA 총액(24억)=24용관(또는 24KYK)=80수창'이라는 드립이 나왔다. 강민호는 75KYK, 250SSC, 장원삼은 60KYK, 200SSC

2014년 FA 시장이 과열을 넘어 미쳐버릴 지경까지 가자 급기야 소속팀이랑 싸게 계약해서 딸을 울게 한 선수마저 지니 계수처럼 하나의 단위가 되고 말았다.

3.1.5. 2011 시즌

심수창/2011년 문서로.

3.2. 넥센 히어로즈 시절

3.2.1. 2011 시즌

심수창/2011년 문서. 8월부터 참조.

드디어 780일 만에 첫 승을 따냈다.

믿긴 힘들겠지만 스탯티즈 기준 세이버 커리어하이

3.2.2. 2012 시즌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연봉협상을 마쳤는데, 그 상승률이 116%라는 꽤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관련기사

그리고 2012 시즌 시작 전에는 룰루랄라에서 박규리에게 '심창수'로 불리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김택용김용택이 떠오르지 않는가?

2012년 4월 1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 전에 선발로 출장했다. 1회말에 2점이나 내어주었다. 허나 3회초에 넥센 타선이 분발해 5점을 획득했다. 그러나 다시 3회말에 김상수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여 나와 1사 만루를 채웠고, 배영섭에게 안타를 맞아 다시 한 점을 헌납했다. 4회말에는 이승엽, 최형우, 박석민을 연속으로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활약을 보였으나 투구수가 많아 5회까지 111개를 던지고 스코어 7:3으로 팀이 앞선 6회말 첫타자부터 이보근과 교체되었다.

이날 심수창의 기록은 5이닝 111투구수 8피안타 4사사구 3K 3실점 3자책점. 타선빨로 선발승을 어찌저찌 먹나 했더니 승리가 날아갔다. 이번 블론의 주인공은 손승락이었다. 이제는 익숙하다

그 이후 왠지 그가 선발로 등판 예정인 날에는 경기가 우천 취소되는 일이 많아 오랫동안 등판을 못 하다가, 426 대첩 때 팀이 1:6로 지던 6회말 3번째 투수로 컨디션 점검차 등판하여 2이닝 31투구수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하고 스코어 1:6인 상황에서 내려가서 승패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전승의 발판이 되어 팀은 9:7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5월 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하였지만 4⅔이닝 5실점하면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6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나왔지만 3이닝 9실점하면서 말그대로 탈탈 털렸다. 그리고 이날도 역시 패전 투수가 되었다.

5월 30일에는 9회초 손승락이 임훈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블론세이브를 한 뒤 최정에게 역전 적시타를 맞으며 스코어 4:3이 된 상황에서 등판했다. 하지만 이때도 3실점하면서 배팅볼 기계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8월 10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는 9회초 주자 2명을 출루시키고 강판되었으나 후속 투수 손승락이 분식회계를 하면서 또 패전투수가 되었다.

9월 13일까지 16경기 출전에 단 1승도 거두지 못하고 3패에 평균자책점 7.03으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다가 9월 14일에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3회초 선발 투수 김영민의 뒤를 이어 구원등판하여 5회까지 3이닝 동안 2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팀도 스코어 5:3으로 앞서나가며 승리 투수가 되는가 싶었으나, 6회초에 한화 타선에 또다시 털리면서 단 1개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하고 폭투로 인한 실점까지 하며 5:4인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다음에 올라온 한현희박성훈이대수장성호에게 각각 희생플라이와 안타를 허용하며 2실점을 당하는 바람에 승리가 날아갔다. 역시 이제는 익숙하다 이날 팀은 8:7로 패하여 승리 투수가 아니라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되었다. 이날 심수창의 기록은 3이닝 55투구수 2피안타 2K 3실점 3자책점.

9월 21에도 역시 한화 이글스전에 9회말 4:4 동점 상황에서 구원 등판하여 0⅓이닝 15투구를 던지는 동안 1볼넷과 함께 한화 하주석에게 결승 3루수 스퀴즈 번트로 1실점을 하며 팀이 4:5로 패하여 또다시 패전 투수가 되며 올 2012시즌 1승도 없이 5패째만 적립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심수창은 멸망했다.

2012년 성적은 21경기 40⅔이닝 0승 5패 평균자책점 7.30. 그야말로 폭망한 수준이다.

결국 내년 2013시즌 연봉 계약에서 1,000만 원이 깎인 5,500만 원에 재계약하게 되었다.

3.2.3. 2013 시즌

2013 시즌 내내 2군에서만 등판하였으나 2군 최종 성적은 12경기 54이닝 0승 6패 평균자책점 6.83점으로 말 그대로 탈탈 털렸다. 21세기 한국프로야구의 1군과 2군의 실력차를 생각해보면 이건 꽤 심각하다.

결국 이런 기사까지 떴다.

11월 22일 2차 드래프트 2라운드에서 롯데가 지명하여 또 다시 김시진 감독과 함께하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포텐 터질 것도 없고 2군에서도 처참히 털리는 선수를 데려오는 것 보고 김시진이 또 학벌잔치 벌이는 거 아니냐고 불신을 가지는 의견도 꽤 있었다.[9] 넥센 감독시절부터 한양대 출신들을 챙긴다는 비판이 인터넷에서 종종 나왔다. 특히 정명원 거르고 정민태

11월 27일 개명하였는데 '밝을 창(昶)'에서 '창성할 창(昌)'으로 바꾼 것. 기사 심창창씨 심수창 창창맨

3.3. 롯데 자이언츠 시절

3.3.1. 2014 시즌

4월 6일 울산 문수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5:0으로 지던 7회초 2사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⅓이닝 34투구수 2피안타 1피홈런 2사사구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7:1로 패했다.

4월 11일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서 6이닝 3실점 3자책점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한 쉐인 유먼에 이어 팀이 무려 스코어 15:3으로 앞선 7회초부터 등판하였으나 3이닝 61투구수 4피안타 1피홈런 3사사구 1K 5실점 5자책점으로 상당히 부진했다. 그리고 타선이 폭발하여 20점이나 뽑아내며 에릭사도스키가 이 글을 매우 싫어합니다 스코어 20:8로 승리하여 심수창은 이날 7년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10] 그리고 심수창 덕택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3이닝을 던져 마무리를 하면 이 기록이 적용된다는 것을 알았다.

5월 8일 사직구장 두산전에서 2⅔이닝동안 58투구수 5피안타 3피홈런 1사사구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했다. 홍성흔-양의지의 백투백 포함 3홈런을 얻어맞은 게 압권. 팀은 스코어 15:6으로 완패했다. 이리하여 이날까지 성적은 159투구수 8이닝 11피안타 5피홈런 6사사구 2K 11실점 11자책점. 투수는 탈쥐효과 제외임을 잊지 말자 이쯤되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5월 9일 2군으로 강등되었다.

8월 15일,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간만에 2⅔이닝 무피안타 5탈삼진의 준수한 투구를 했고, 8월 19일 1군에 콜업되었다.

그 후 간간이 등판하여 1, 2이닝씩 꾸역꾸역 막아내다가, 9월 12일 NC 다이노스 전에서 3이닝 4피안타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2세이브를 따냈다. 그래, 어떻게든 3이닝을 던지면 되는 거야

시즌 최종 성적은 11경기 19⅔이닝 0승 0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9.15. 2군에서도 16경기 24⅔이닝 1승 2패 1홀드 평균자책점 6.57으로 부진했다. 2군 성적도 이 정도라면 심수창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어.

3.3.2. 2015 시즌

심수창/2015년 문서로.

3.3.2.1. FA

2013년 이대형 이후 역대급 FA 계약

2015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 롯데 자이언츠와의 우선협상이 결렬되어 시장에 나오게 됐다. 보상선수가 없었다면 300%의 보상금+적절한 계약금과 연봉으로 영입이 가능한 준척급이 되었겠지만, 아직 보상선수를 줄 필요가 없는 어드밴티지가 있는 kt wiz가 아닌 다른 팀은 보상선수가 아깝기 때문에 주워 갈 팀이 없을 줄 알았는데..

11월 30일 4년 총액 43.33수창 13억 원에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조인성참된 약속 배터리를 이루게 되었다.

한화 팬 입장에선 "이딴 투수를 FA로 사오냐!"라며 울분을 터뜨릴만 하긴 한데, 프런트가 2015년 투수 FA 최대어로 평가받은 정우람[11]을 가져오면서 병주고 약주고를 시전한 덕분에 분노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감이 있다(...). 일부 팬들, 특히나 한화 팬들은 좋든 싫든 자기팀 선수가 되었으니 "델동님 밑이 아니니까 반등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식으로 위안을 삼으려 하지만 역대 기록을 보면 글쎄올시다. 당장 보상선수가 더 아깝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롯데팬들은 딱히 그에게 애착이 없었기도 했고, 심수창도 별 말 없이 조용히 나갔기에 너네는 잘 쓰고 우리는 감사히 보상선수를 받아 가겠다는 입장.

게다가 2015 시즌 순위의 역순으로 롯데가 SK보다 먼저 보상선수를 뽑아가게 된다. 그렇게 롯데의 부름을 받게 된 보상선수는 1994년생 우완 투수 박한길. 김성근 감독이 재미있는 투수라고 말한 적이 있는 투수 유망주인데, 팔꿈치 수술 전력에도 불구하고 무려 1994년생이기에 심수창보다 훨씬 높은 기대치를 자랑한다. 박한길과 심수창을 1:1 맞트레이드해도 손해보는 느낌인데, 롯데에 웃돈까지 얹어 주면서 데려온 꼴이니 롯데가 이익을 봤다는 평이 많은 편

한편 심수창 본인은 한화 팬인 배우 조인성과 떳떳하게 초등학교 동창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인성이 보고파서 한화에 왔는데, 꼴보기 싫은 또 다른 인성이도 보게 되었다 거기에 초등학생 때 같은 리틀야구팀에서 뛰었던 이재우와도 함께 뛰게됐다. 이렇게 되면 박용택만 왕따당한다

3.4. 한화 이글스 시절

3.4.1. 2016 시즌

방어율만 보면 먹튀같지만 실제로는 혜자[12]

한화 이글스의 불펜 에이스이자 새로운 살려조

3.4.2. 2017 시즌

피칭 머신

왜 노장 불펜은 사면 안 되는지 보여주는 산 증인[13]

분식왕그래도 10년 만에 4점대 방어율

누가 팔팔한 유망주 둘 팔아서 사왔더라

시범경기에서의 3.2이닝 무실점 호투로 감독이 선발로 점찍었으나 목에 담이 올라와 개막전 합류가 불발되었나 싶었는데 개막전부터 나왔다. 개막 3연전중 두경기 등판.

뭐 17년에도 늘 그랬듯이 살려조일 확률이 높다. 아직까지는 관리받고있다

4월 11일 삼성전 6회말 마운드에 올라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다.

4월 13일 삼성전에서 8회말 조인성의 개떡같은 리드 덕에 박정진이 남겨둔 만루 주자를 싹 다 홈으로 불러들인뒤 자신도 1실점해 패배의 원흉이 되고 말았다.

4월 15일 12대 3으로 뒤진 9회말 등판해 뜬공과 삼진 2개로 이닝을 끝냈다. 아무리 타고투저 시대라지만 경기가 뒤집어질 일이 거의 없는 9점차에 필승조급 투수를 내는 노감독혜안상대 SK 팬들과 한화 팬을 비롯한 10개구단 팬들은 감탄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필승 상황에 써먹기 도저히 힘든 수준으로 지친 모습이 계속되었고 결국 2군으로 떨어졌다.

5월 기록 추가 바람.

6월 9일 대전 삼성전에 오른쪽 허벅지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된 오간도의 뒤를 이어 올라와 1.1이닝을 소화했다. 그러나 팀은 9회 정우람의 방화로 패배.

11일 4대3으로 이기던 8회 1사에 권혁의 뒤를 이어 등판했으나, 이지영에 희생타를 맞아 동점을 허용했고, 장민석의 장님수비로 박해민의 뜬공이 3루타가 되며 비야누에바의 승리를 깔끔하게 날려버렸다. 9회에도 올라와 1실점했고 팀은 7대4로 대패해 시즌 21번째 역전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경질 뒤엔 확실히 휴식일이 보장되어 연투가 거의 없는 상태다.

18일 12대 3으로 앞선 kt전에 8회말 등판해 1이닝 1K 무실점을 기록했다. 어째 볼 때마다 불만 지른 것 같은데ERA는 3.33을 기록했다. 현재 스탯티즈 기준으로 WAR이 0.644인데, 이걸 144경기로 환산하면 1.405, 즉 커리어 하이다(...)

30일 두산전에서 2사 만루에서 등판해 당일 만루홈런을 친 에반스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이후 1실점했지만 총 1.2이닝을 무사히 소화한뒤 한화가 7회와 8회 각 2점/4점씩 점수를 내며 역전에 성공해 의문의 승리투수가 되었다. 시즌 첫 승.

이 이후로도 추격조와 스윙맨 그 어느 한가운데 계속해서 휴식일을 보장 받으며 등판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직구 구속이 다시 상승했다! 실제 7/9 LG전 불펜으로 나온 경기에서는 제구가 되는 몸쪽과 바깥쪽의 방송 기준 최고 구속 146km 빠른 직구를 선보이며 해설위원들의 감탄사를 뽑아냈다. 다만 필승조로 쓰기엔 애매한 타입이라...

8월 23일 수원 kt전에서 11회말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정우람의 승리를 지키고 447일만에 세이브를 기록했다.

8월 25일 대전 기아전 8회 1사에 등판해 0.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은 뒤 오선진의 결승 석점포로 시즌 2번째 승을 챙겼다.

이후 엔트리 변동으로 2군을 다녀온 뒤 9월 23일 연장 10회초 등판해 내야안타를 내준 뒤 희생번트-삼진-뜬공으로 10구만에 1이닝을 삭제했고, 김회성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벌써 3승째. ERA도 4.53으로 생각보다는 준수한 편. 통산 기록이 5.33이니까

9월 24일 광주 기아전 8회 2사 1점차에 등판해 1아웃을 잡은 뒤 4득점이 9회초 추가로 났고 9회말 삼진 2개를 솎아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세이브를 추가했다.

9월 28일 8회초 무사 상황에서 등판해 안타-희생번트-동점타로 비야누에바의 마지막 승리를 쳐날린 것은 물론 이어 등판한 정우람마저 션하게 경기를 말아먹으며 0.1이닝 2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게 리빌딩 운운하더니 결국은 추격조도 버거운 노장 올리다 50번 가까운 역전패를 창조하시는 감독님의 문제긴 하다만, 너무하는게 아닌가 싶다. 한길아 돌아와 ㅠㅠ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후반이긴 하지만 4점대를 찍었다. 전 시즌의 혹사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커리어 하이(...).

3.4.3. 2018 시즌

분식왕

더 추해지기전에 은퇴해야

2월 23일 연습경기에서 9회 무사만루를 만들고 2실점해 6대 4 리드를 날려먹었다. 결국 한화는 5무승부(...)째.

3월 17일 NC 다이노스와의 시범경기에 중간으로 올라와 1이닝 동안 볼넷 하나만을 주고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3월 2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개막전에 5회 2사에서 김범수를 이어 올라와 0.2이닝을 잡고 박주홍에 공을 넘겼다. 그러나 이날 무실점한 6명의 불펜투수 중 가장 많은 2피안타를 허용한 것은 불안 요소.

3월 27일 불안감이 현실이 되었는지 1이닝 3실점[14]으로 경기를 완전히 NC에 내주고 말았다.

이틀 뒤인 3월 29일 NC전 박주홍 뒤를 이어 만루상황에 등판해 분식집을 개업하며 패전 요건은 피해갔다.[15]

결국 3월 30일 말소됐다.

4. 플레이 스타일

2016년 현재는 다양한 변화구가 강점인 기교파&살려조전천후 투수이다. 오버핸드 폼에서 내리꽂는 직구로 카운트를 벌고 스리쿼터에서 나오는 결정구로 요리하는 것이 주 패턴. 삼진을 잡고 싶을 땐 높은 스리쿼터에서 포크를, 맞춰잡을 땐 사이드암에 가까운 낮은 스리쿼터에서 횡변화구를 던진다. 직구를 제외하면 투심, 포크, 슬라이더 이 3가지가 주무기이며 이 외에도 다양한 구종을 던질 수 있다.

인생의 굴곡만큼 플레이스타일도 몇 차례 변화를 겪어 왔다. 첫 번째로, LG시절 초창기까지는 딱히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투수였다. 우완 오버핸드, 몇 가지 변화구, 적당히 좋은 구위와 최고 145정도까지 나오는 빠른 직구... 약간의 제구불안과 젊은 투수답게 멘탈이 그리 강하지 못한 점이 약점인 평범한 투수였다. 그러나 심수창만의 특징은 없었지만 구위, 구속, 변화구 모두 괜찮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급기야 06년에는 꾸준한 선발자원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이 당시 젊은 심수창이 더 성장하기 위해 선택한 활로는 변화구의 장착이었는데, 이게 단기적으로는 심수창을 10승 투수로 만들어 주었지만 장기적으로 볼 땐 심수창의 커리어를 망치는 악수가 되고 말았다. 본래 직구커브 정도를 주 패턴으로 구사했는데, 포크볼과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를 장착한 결과, 06년 시즌에는 적당히 빠른 직구와 팔색조 변화구가 어우러져 135이닝을 소화하며 10승을 거두는 준수한 기교파 선발자원으로 성장하는 듯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변화구를 익힌 여파로 직구 감각을 점차 잃어 점차 구속이 떨어져 급기야 2008년쯤에 이르러서는 28살 투수가 직구 구속이 130대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원래 제구나 구위가 특출난 강점인 투수는 아니었는데 구속까지 떨어지니 심수창의 직구는 그냥 배팅볼이 되어버리고 만다.[16]

그렇게 슬럼프에 빠진 와중 2010년의 대굴욕 연봉 사건, 그 18연패 슈퍼스타 심수창 등 파란만장한 사건(...)을 겪은 끝에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되고 정민태 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투구폼을 손보며 파워피처로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직구는 145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으나 이번엔 투구폼 개조의 여파로 변화구들이 맛이 가버렸고 이 과정에서 잠시 상승세를 탔던 시점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다시 배팅볼 투수로 전락하게 된다.

또한 이 시기 심수창에게 불운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아버지의 구속. 아버지가 구속수감되며 그렇잖아도 끝없는 슬럼프에 시달리던 심수창의 멘탈은 완전히 박살이 나버리고 2차 드래프트로 롯데로 이적은 하였지만 2군에서도 얻어맞는 삼류 투수로 몇 년간을 지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커리어를 마감하는가 했더니 오버핸드-스리쿼터(라고는 하지만 거의 사이드암에 가깝게 내려간다)로 두 개의 이중투구폼을 이용한다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부활하게 되는데, 살짝 팔을 내리며 구속이 상승해 투심과 슬라이더의 위력이 상승한 것이다.

또한 변화구 역시 사이드암을 사용하며 횡변화구가 좋아졌고, 횡변화구가 좋다 보니 상대적으로 포크볼 등 종변화구까지 낙차가 더 심해 보이게 되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 투구폼을 바꾸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흐트러트리는 것은 덤. 투구폼이 확실히 나뉘는지라 투구폼만으로 구종을 파악하기 쉬울 것 같지만 던질 줄 아는 변화구가 워낙 많은지라 투구폼만으로 파악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이후 타자들이 어느 정도 패턴을 파악하며 이점이 좀 줄긴 했지만 위력적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심수창 또한 연차가 쌓인 노련한 노장이 되다보니 수 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단점은 변화구가 종류는 많아도 실전에서 위력적인 변화구는 커브와 포크, 잘 쳐줘야 슬라이더 정도뿐이라는 것. 변화구 종류가 많아 다지선다 수싸움을 걸기엔 유리하지만 뭐 하나 확실한 게 없어서 찍혀버리면 그대로 장타가 되어버린다. 변형직구인 투심까지 더하면 4~5가지 구종을 던질 수 있는데 뭐 이 정도면 KBO에선 팔색조 소리 듣기는 충분하긴 하다.

또한 고질적인 제구불안에 스터프가 좋은 편이 아니라 자칫 몰리면 그냥 장타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또한 맞춰잡다 보니 수비의 영향도 많이 받고 볼끝이 깨끗하여, 특히 직구가 작대기같이 깨끗해 안 풀리는 날에는 타자들이 더더욱 타이밍을 잡기도 쉽고 맞으면 더더욱 장타가 나오기 쉽다. 포크볼도 가운데로 몰리면 여지없다.

위력적이지 않은 공, 소위 말하는 똥볼을 던지지만 투구폼을 통한 이지선다와 또 거기서 나오는 변화구 다지선다를 통한 타이밍 승부로 타자를 잡아내는, 배팅은 타이밍이고 피칭은 그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야구계 격언에 충실한 투수. 공이 좋아도 멘탈이 약한 젊은 투수들이 보고 배워야 할 만한 두뇌파 피처이다.

투구폼을 2개를 사용하다 보니 밸런스를 잃기 쉬워 본인도 그 감각을 잘 찾지 못해 경기마다 기복이 좀 있는 편이고, 역시 두 개인 투구폼과 구종마다 다른 팔각도로 인해 몸에 부담이 커 부상위험 또한 상당히 높다. 또한 직구가 구위가 좋지 않다보니 변화구 구사율이 상당히 높은 편에다가 결정구로 즐겨 쓰는 변화구는 부상 위험 높다는 슬라이더와 포크볼. 알고 보면 폭탄을 여러 개 달고 다니는 매우 위태위태한 선수다. 프로생활 10여년간 부상을 당할 만큼 많이 던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터지지 않았을 뿐.

그리고 LG시절 10승을 거둔 것 때문에 선발 투수라 생각하기 쉽지만, 풀타임 선발 경험이 없다. 불펜과 선발을 모두 소화할 수 있으며 사실상 5선발~롱 릴리프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한화에 와서는 선발과 릴리프를 오가는 스윙맨은 아니고 살려조로 전천후로 활약하고 있다. 또한 나이가 16년 기준으로 35살인 노장인 것 또한 불안요소. 그 김성근의 혹사 속에서도 9월들어 148 km/h(!)의 속구를 뿌려주고 있지만 작년의 권혁도 저렇게 팔을 불사르며 던지다가 정말로 팔이 뽑혀(...)버린지라 한화 팬도 롯데 팬도 썩 기분 좋을 상황은 아니다. 이상하게 본인은 선발 나왔다가 중간으로 나왔다가 이틀 쉬고 다시 선발 하는 게 되려 편하다고 한다.[17] LG시절 팔꿈치 주변 인대를 강화하는 훈련을 해서 포크볼을 계속 던져도 별로 안 아프다고...그러나 10선발-56구원 등판이라는 쌍팔년도식 혹사를 겪은 탓인지[18] 17시즌 들어 평속이 4km 정도 감소해버려서 불안해 하는 팬들이 보인다. 하지만 금지어가 경질된 이후 추격조와 스윙맨 어느 한가운데서 휴식일을 보장 받은 채 등판을 지속하자 다시 최고 구속 146km 제구 되는 빠른 공을 선보여 역시 구속 감소는 쌍팔년도식 투수 기용을 했던 금지어의 탓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다시 느끼게 만들었다.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받은 외부영입은 아니었던지라...

반면 4년 계약 중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심수창의 영입을 되돌아보면, 결과적으로 꽤 괜찮았던 영입이었다는 것이 중평. 성적 자체는 썩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16년 10선발 50구원으로 113이닝, 17년에도 54이닝에 4점대로 그럭저럭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은 성적을 찍어주었는데, 선발이면 선발, 롱릴리프면 롱릴리프, 마무리면 마무리, 거기에 필승 셋업에 패전처리까지 그야말로 시키는 건 다 하는 옛날 마당쇠식 투구를 하며 거의 박살난 한화의 투수진을 지켜주었다. 뭐 은근히 결정적인 순간 날려먹은 적도 많았지만 이럼에도 팔꿈치 뼛조각 제거 한 번을 안 받았으니, 다들 심수창이 여태까지 많이 던지지 않아서 고장이 안 났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30대 후반임에도 이 엄청난 내구성에 사실은 정우람이 아니라 심수창이야말로 진짜 고무팔이 아닌가 하는 재평가의 바람까지 부는 상황이다. 가격도 수십억씩 쓴 것도 아닌 꼴랑 13억의 염가. 더군다나 반대 급부로 넘어간 박한길은 암만 유망주라지만 2년동안 1군에 거의 얼굴을 비치지 못하고 수술 후 입대해서 또 앞으로 2년간 1군에서 볼 수 없을 예정이라 박한길이 정말 크게 터지지 않는 이상은 의외로 보상 선수조차 아쉽지 않을 상황.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4

LG

16

29⅔

2

1

1

1

0.667

4.55

41

8

10

18

20

15

1.618

2005

19

32

0

1

0

1

0.000

4.22

33

1

18

21

18

15

1.563

2006

29

135⅔

10

9

0

0

0.526

4.38

147

17

60

56

73

66

1.467

2007

56

77⅓

3

5

2

10

0.375

4.31

83

4

40

47

39

37

1.591

2008

16

66⅓

6

5

0

0

0.545

5.16

97

4

26

20

42

38

1.794

2009

21

122

6

12

0

0

0.333

5.31

143

21

64

57

74

72

1.639

2010

12

35⅔

0

4

0

1

0.000

7.57

58

3

19

7

30

30

2.047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1

넥센

28

109⅔

2

13

0

0

0.133

5.01

138

12

42

52

67

61

1.641

2012

21

40⅔

0

5

0

0

0.000

7.30

58

3

21

24

36

33

1.943

2013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롯데

11

19⅔

0

0

2

0

0.000

9.15

24

7

8

14

20

20

1.627

2015

39

73⅓

4

6

5

3

0.400

6.01

99

9

32

76

56

49

1.745

연도

소속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6

한화

66

113⅓

5

5

2

6

0.500

5.96

138

14

62

76

86

75

1.73

2017

48

57

3

1

2

2

0.750

4.74

71

8

24

54

32

30

1.63

KBO 통산
(13시즌)

382

912⅓

41

67

14

24

0.380

5.34

1130

111

434

522

593

541

1.67

6. 화보

봉중근이 이뻐라 하는 심수창.

일본 잡지에 실린 모습.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로 영화배우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다.

박용택과 함께

2011시즌 종료 후 각 구기종목 선수들과 단체 화보 컷.

과거 어느 야구선수들황재균, 고원준이 배구선수한선수라든가, 문성민이라든가, 김요한이라든가들과 화보를 찍었다가 굴욕을 당한 것과 비교하여 더욱 돋보이고 있다.

7. 기타

사실 클로킹을 배웠다 카더라[19] 당황한듯 흔들리는 역동적 카메라워크가 일품이다.

  • 기부천사 심수창. 2010 시즌 승리당 10만 원씩 기부하도록 했는데, 심수창은 결국 시즌 종료때까지는 고사하고 팀을 떠나기 전까지, 그리고 다음 해 8월 8일까지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영원한 0원 한 기부천사로 남게 되었다.
1대 100에 출연했던 모습. 얼굴을 떠나, 카메라빨 자체가 저렇게 잘 받는 선수는 정말 드물 것이다.
  • 잘 알려져 있듯이 이름의 '창'의 한자명을 昶에서 昌로 개명했다.[20]
  • 2014년 3월 20일, 뜬금없이 애프터스쿨 출신의 유소영과 열애한다는 기사가 떴다.# 심수창 측의 반응이 없던 상황에서, 유소영 소속사에서 열애설을 부인하는 반박기사가 나왔다.##
  • 야구 블로거 배지헌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에서 본의 아니게 굴욕을 겪었다. 칼럼의 요지는 시범경기 성적은 정규시즌과 별 연관이 없다는건데 여기서 천하의 심수창도 에이스급 성적을 낸다고 비꼬았다가 다시 찾아보니 그런 기록은 없다며 확인사살 해버렸다(...).#
  • 이사망루이사만루2015 KBO에서 2015 심수창 카드가 나왔는데, 선발 중계 마무리 전부 S급이라는 개사기급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만 체력이 조루


  1. [1] 2013년 심수창(沈秀昶)에서 개명하였다. 한자만 바꿨는데, 비슷한 케이스로 이동국이 있다.
  2. [2] 기본적으로 오버스로이지만, 2015시즌부터 변칙적으로 사이드암 피칭을 한다.
  3. [3] 심수창의 야구 커리어를 생각해보면 일견 재능으로 버텨온 선수라는 인상은 희미하지만, 꾸준히 1군에서 얼굴을 비치고 있으며 FA까지 커리어를 쌓았고, 팀의 불펜 요원으로 자리잡아 살아남으려면 재능없인 불가능한 일이다. 본인은 거기에 노력을 더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4. [4] 1대 나믿가믿 라이언 가코, 2대 야왕 한대화. 일부에서는 임삿갓 임태훈을 포함해 4대 화제의 인물이라는 드립도 쳤다
  5. [5] 뭐 사실 투수라는 포지션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랍다고 할 수도 없다.
  6. [6] 이 사건 이후 심수창의 멘탈이 완전히 박살나서 2군에서조차 배팅볼러로 전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2013~2014시즌 심수창의 2군 성적은 처참한 지경이다.
  7. [7] 사실 조인성 입장에서 실드를 쳐보자면, 조인성은 포수이지만 굉장한 혹사를 당한 상태였다. 2008년에 엄청난 출장을 하면서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2009년에는 조바깥이라고 까이고, 그러던 걸 화내지도 못하고 분을 삭이던 중에, 심수창은 그걸 직격으로 바깥쪽으로 리드를 하지 말라고 뭐라고 했고, 이에 빡칠대로 빡친 조인성은 심수창한테 욕을 한 것.
  8. [8] 참고로 반대로 2010시즌에 연패를 끊는 남자로는 양현종이 있었다.
  9. [9] 김시진-정민태-심수창 라인은 전부 한양대 선후배 관계이다. 여기에 넥센에서 같이 따라온 박흥식 타격코치도 한양대.
  10. [10] 여담으로 심수창이 이날 경기 이전에 마지막으로 세이브를 올린 날짜는 2007년 10월 3일이었고, 이 경기의 상대 팀이 KIA 타이거즈였다.
  11. [11] 단 아무리 잘 던진다고 해도 겨우 중간계투 투수인데, 80억 이상의 거대 계약을 안기는 게 과연 효과적인 영입인지 의구심을 표하는 야구 팬들도 있다. 한화팬들은 대체로 통큰 투자라며 기뻐하는 분위기지만...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보니 둘의 입장이 반대가 되어버렸다. 둘 다 만만치 않은 혹사에도 부상이 없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긴 하다만...
  12. [12] 10억대 초반의 낮은 가격에 선발 불펜 가리지 않고 등판해 똥을 치우고 자기는 분식당하는 일도 꽤 많았다.
  13. [13] 다만 권혁만큼은 아니더라도 전임 감독이 뭣같이 굴려서 고장이 빠르게 난 점도 있어서 정말로 선수가 모든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는 약간의 의문이 있다. 선수를 욕하려거든 2016년 항목을 보고, 다시 이 선수의 이전 커리어를 보자
  14. [14] 손시헌의 시즌 1호 3점 홈런.
  15. [15] 모창민 희생플라이 + 최준석 쓰리런 홈런. 그리고 정우람은 그 상황에 자신을 쓰지 않고 심수창이 나가자 황당해했다. 변명을 해주자면 김민우가 헤드샷 퇴장을 당해 모든 투수들이 총동원되었으니 다음 3연전을 위해 하나라도 아낄 필요가 있었다.
  16. [16] 그러나 06시즌이 역대급 투고타저 시절이었음을 감안한다면 5점대의 ERA는 대단히 높은 편이었고 그만큼 승운이 좋았다라고 볼 수도 있었다.
  17. [17] 이전의 김민우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고, 장민재도 선발은 쉬는 날이 길어 지루해서 선발도 중간계투도 다 되는 투수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인터뷰를 17년 1월에 했다. OMG
  18. [18] 종전 10선발-40구원 등판 기록은 15시즌 LG의 임정우, 한화의 송창식이 가지고 있고 11시즌 시절의 고효준도 가지고 있다. 어째서인지 저중 2명이 김성근
  19. [19] 일명 마술짤로 알려진 짤방. 물론 진짜로 마술이나 클로킹을 쓴 건 아니고(...) 실제로는 잠시 몸을 앞으로 숙이고 있어서 안보였던 거라고. 박수하기 전 잘보면 심수창 머리가 움찔거린다. #
  20. [20] 밝을 창(昶)→창창할 창(昌) 거기서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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