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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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원내대표

3대
나경원

4대
심재철

현직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선거구 통합
최희준[1]
이석현[2]

제16대
심재철

선거구 분리
이석현[3]
심재철[4]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선거구 분리
심재철[5]

제17~20대
심재철

현직


심재철의 역임 직위


제4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심재철
沈在哲 | Shim Jae-chul

출생

1958년 1월 18일 (만 62세)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5가

종교

천주교(세례명: 베드로)

본관

청송 심씨

학력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 학사)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 / 석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소속

지역구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을

의원선수

5

의원대수

16, 17, 18, 19, 20

소속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경력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동대문여자중학교 영어교사
MBC 보도국 기자
신한국당 부대변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 대표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18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18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외부 링크

1. 개요
2. 생애
2.1.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
2.1.1. 전문가의 평가
2.2. 서울대 프락치 사건 주동 후 책임 전가
2.3. 교육 및 언론활동
2.4. 정계 입문
3. 정치 활동
3.1.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4. 논란
4.2. 국회부의장 시절 특수활동비 논란
5. 선거 이력
6. 여담
7. 둘러보기

1. 개요

2008년에 찍힌 공식프로필 사진

현재 언론에서 보이는 모습[6]

대한민국언론인 출신 정치인. 비박이면서 범 친이계로 분류되나, 자유한국당 비박의 좌장으로 여겨지는 김무성, 홍준표와는 딱히 협력하고 있지 않다.

1958년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으며, 정양석, 조훈현, 신보라(정치인)와 더불어 광주전남(光州全南) 출신 자유한국당 의원이다.[7]

2. 생애

1958년 광주 금남로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어려운 형편 속에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7남매를 키우셨다.

가난한 형편임에도 공부를 잘해 1974년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광주일고를 졸업한 1977년 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했다. 광주일고 시절부터 유신반대 시위를 이끌었던 심재철은 서울대 입학 후 운동권이 되었으며 77학번 동기인 유시민과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섰다.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 되었고, 당시 '서울의 봄' 정국에서 신군부에 맞서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학생운동 세력의 대표인물로 떠올랐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는 서울대, 고려대 등 전국 18개 대학에서 온 학생 10만 명이 모여 계엄해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하였는데, 심재철은 이때 대학 총학생회장단 대표를 맡았다. 해가 저물면서 시위대는 철야농성을 하느냐, 아니면 자진해산을 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 신계륜은 철야농성을 주장했지만, 심재철은 서울대 학생처장 이수성의 권유에 따라 자진해산을 주장했고, 결국 10만 시위대는 자진 해산하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이다.

'서울역 회군'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신군부5.17 내란을 결행하면서 심재철은 지명수배 되었고, 약 두 달 동안 숨어다닌던 끝에 6월 30일 치안본부 특수수사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그 후 수경사 33헌병단으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가담자로 몰린 그는 군법회의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1.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

24인의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대부분은 5월 17일에 연행되었다. 나머지는 6월 15일 이석표 체포, 6월 16일 이신범 체포, 6월17일 전국에 심재철 지명수배령이 내려지고 6월 18일 설훈, 송기원 체포, 며칠 후 이해찬, 조성우 체포, 6월 30일 심재철이 체포되었다.

1988년 5공 청문회에 출석한 심재철 자신이 검찰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가 거짓 자백을 했으며 한통련 사건과 관련한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 받은 것은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간첩의 증언 때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8] 실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의자중 대부분이 이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책을 써 자신들이 고문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했다. [9]

심재철이 수배 중이었던 6월 17일 이미 계엄사령부는 김대중의 학생운동 총책인 이해찬의 조종을 받아 심재철이 전국의 학생운동을 진두지휘했다고 발표하였으며 심재철이 체포된 후 이미 발표된 내용에 꿰맞춰서 그는 고문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의 거짓 진술에 의한 조작에 꿰맞춰지기 위해 심재철은 남산 중앙정보부에서 고문받던 다른 피의자들과 달리 치안본부 특수대에 끌려가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청와대 경비를 맡고 있던 33 헌병단 군인들(최하가 무술 유단자로 구성된)에게 고문을 받았으며, 내란음모사건 피의자 중 가장 혹독하게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0][11]

최근에는 진보진영에서 비난을 하기도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심재철이 1996년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하기 전에는 아무도 심재철을 배신자로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복학 이후 복학생협의회에 참여했고 1988년 5공 청문회 당시에도 야당 측 증인으로 증언했다. 심재철은 1995년에도 5.18 단체들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5.18 진상조사를 요구하며 당시 5.18 단체와 교류했다. 결론적으로 심재철이 이후 보수정당으로 갔다고 비판하는 것은 자유지만, 1980년의 행적을 가지고 배신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12]

2.1.1. 전문가의 평가

5.18 민주화운동의 대표적 권위자인 김영택 박사의 저서인 '5월 18일, 광주 - 광주민중항쟁, 그 원인과 전개과정'에서 김영택 박사는 서울역 회군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신군부의 정권 탈취 음모를 피한 것으로 서술하기도 했고 심재철을 전혀 배신자로 서술하지 않았다.

진보 성향의 한인섭 교수도 심재철에게 잘못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시민, 심재철, 1980]

전두환이 권력장악의 완성수순으로 5.17. 비상계엄 확대하고, 예비검속하여 재야, 정치, 학생들을 엄청 잡아갔고, 어마어마한 고문과 장기불법구금을 자행했다. 그때 조서도 작성하고, 자술서도 쓰게 한다. 말이 자술서이지, 강제타술서와 실질적으로 같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민주화된 뒤에, 그때 자술서는 뭐라 썼던 법정증거로 배척된다. 고문과 강압에 의해 쓴 것이므로.

그런데, 그때 그 자술서에 뭘 담았느냐, 혹 동료를 고자질한 게 아니냐고 뜬금없이 논란되고, 옆에서 불불이는 사람도 있다. 정리한다.

1. 그 자술서는 강제타술서임. 자발성 전혀 없음.

2. 어떻게 썼던 당시 학생, 정치, 재야운동의 동향은 전두환 군부의 정보망에 이미 다 들어 있었음.

3. 그 자술서대로 사건윤곽 잡은 게 아니고, 첨부터 군부가 짠 프레임에 억지 끼워 맞추는 것이었음. 유. 심이 뭐라 주장하든 상관없음. 신군부집권에 가장 유리한 프레임대로.

4. 민주화 이후 재심과정에서, 1980 서울의봄, 5.17, 5.18과 관련된 모든 구속.유죄건은 무죄판결로 바뀌었음. 그때 고문정권은 내란죄로 단죄된 것이고.

5. 그러니 거기서 뭘 썼던, 그런 것 갖고 상대 흠집내기나 비난할 게 전혀 못됨.

마지막으로 남는 건, 그때 한 글자도 쓰지 않고 버텨야지, 동료 이름은 절대 쓰지 말아야지... 그래야 투사이고, 민주화운동가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그런 아쉬움의 찌꺼기 같은 것... 그런데 그건 사람이 아니라 감각 없는 좀비인간. 기계인간이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둘 다 극도의 폭력과 위축감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고 본다. 몇십 년 뒤의 정치노선 갖고, 소급해서 그때 누가 잘못했니 하는 비난자료로 쓰지 말 일이고.

나는 독재시대 재판자료, 변론자료 많이 정리하고 책도 내고 했다. 자술서도 자주 들여다봤다. 그러면서 자술서에 타인에게 불리한 내용이 가득 들어 있으면, 그 사람도 별수 없네, 이렇게 독해하지 않는다. 그 분이 얼마나 고초에 시달렸으면, 안 쓰고 견딜 수 없었구나. 이 고문한 나쁜 놈들... 이렇게 판독하면서, 그때 그의 고통을 같이 느껴보려 애쓴다. 자술서의 내용은 고문의 심각성을 재는 바로미터다. 유, 심의 강제타술서에 뭔가 마뜩잖은 몇 줄을 찾아낸다 해도, 그건 고초/고문의 정황증거이지, 그들이 밀고자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

그리고, 그 자술서 다 공개해서 대중에게 판단 받으라는 말도 한다. 30년 전의 타술서를, 당시의 공포스런 수사환경도 잘 모르면서, 사건 맥락도 모르면서, 정치공격용으로만 악용될 그 자료를 호기심의 먹이로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양심에 반해 강제로 쓴 글로 당시 피해를 봤는데, 다시 30년 뒤 반양심분자로 공격하기 위해 그자료를 공개하라고? 이중의 참혹함이요, 안 될 말이다.

난 1980년 때 대학4학년이었고, 대학신문 기자였으므로, 유/심의 활동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었다. 둘 다 훌륭했고, 멋있었고, 닥쳐올 고난의 불안 속에서도 각오하고 임한 학생리더였다. 1980.5.17 이전의 그들의 행적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리고, 이후 수사.법정에서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 고초에 대해 함께하지 못했음에 미안하고, 그리고 이후의 정치행적은 각자 판단받을 대목이다.

요컨대, 1980년 정보부, 보안사에서 쓴 강제타술서는 개개인의 인간됨 여부를 평가할 자료 자체가 될 수도 없는 것이고, 타술서를 강제한 군부집단들이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참혹한 인권유린자였는지 확인하는 자료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한인섭, 유시민, 심재철, 1980 #

심재철의 '자백' 자체는 고문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권 기준상 비난 받야할 이유가 전혀 없기도 했고, 실제 전문가들에게 비난 받지도 않았다.

2.2. 서울대 프락치 사건 주동 후 책임 전가

정작 서울역 회군의 주동자 심재철은 군사정권 당시 독재와 싸운다는 미명하에 서울대 학내에서 프락치로 의심되는 자교 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생 등 4명을 붙잡아 가두고 폭행했다. 이 사건 때문에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던 유시민이 그 폭력 행위를 행했다는 혐의로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06년 유시민의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가 지명되어 임명을 위한 청문회를 앞두고 이때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당했던 전기동(당시 관악구청 소속 공무원)이 "나를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1인 시위를 하여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에서 이 사건에 주목했다. 이에 한나라당에서는 전기동을 유시민 인사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였는데, 거부당하자 대신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은 "유시민은 폭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럼 누가 폭행했냐"고 묻자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당황한 한나라당 이성구 의원이 즉시 기자회견을 중단시키고 전기동을 돌려 보내며, 이 사건은 어영부영 끝나 버렸다.

당시 전기동의 주장은 "나는 (가짜 서울대생이었지) 프락치가 아님에도 여러 사람이 나에게 폭행을 가했고, 유시민은 폭행이 일어날 때마다 자리를 피했다가 끝나고 나타나는 등, 교묘하게 뒤에서 지시하였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 나를 보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폭행 가담자들에게 나를 돌려 보내라고 지시하였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폭행을 뒤에서 조종한 자가 유시민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다만 직접 폭행을 가한 사람은 심재철 한나라당 의원이라고... 덕분에 서로 할 말이 없어, 마타도어가 가장 난무하는 선거 때도 심재철 측이건 유시민 측이건 이 건에 대한 마타도어는 이후 전혀 없다.

2.3. 교육 및 언론활동

이후 1985년 교사에 임용되어 동대문여자중학교[13]에서 영어교사로 지내다가 MBC에 입사하였다. MBC방송국 보도국 기자를 지냈으며 1988년 방송사 최초 MBC노조를 만들어 초대 전임자를 지냈고 1992년 MBC방송민주화 투쟁 중 업무방해·노동쟁의조정법, 징역8월·집유2년 (1993.1.20)을 선고받는다.[14]

당시의 상황은 이미 군부 독재 시절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결정적으로 집행유예는 말 그대로 집행을 안 한다는 뜻이니 미결수로 구치소에 수감된 시기를 옥고를 치른 것으로 한 셈이다.

기자 시절 영상

2.4. 정계 입문

MBC 기자를 거쳐, 1995년 12월에 신한국당 부대변인, 안양 동안 갑구 지구당 위원장으로 정계에 입문했다.[15]

3. 정치 활동

  • 건국절 주장: 건국절을 주장했다. 그 이유로 "국가가 성립하려면 영토와 국민과 주권,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정, 유엔의 인정 이 같은 네 가지 요건이 결합해야만 한다"며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였을 뿐"이라면서 당시는 "엄연히 일제 치하, 국토를 빼앗기고 주권이 없는 상태였지 않은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건국절 제정은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민 투표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세운 바로 근대국가라는 생일을 올바르게 세우자는 그런 취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불법 사찰 국정조사)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4개월 동안 단 1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고 방치하면서 월 600만 원씩 1년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이 2013년 8월에 보도했다. 민간인사찰특위는 6개월 정도의 활동시한을 정한 다른 특위와 달리 ‘본회의 의결 때까지 활동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정치 공세가 반복되면서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심 위원장은 "저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실히 지켰고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모두 세비 반납 운동을 주도해왔다"며 당시 특위로 받았던 활동비 전액을 국회 사무처로 반납했다.#
  • 광우병에 걸린 로 만든 등심 스테이크는 먹어도 절대 안전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네티즌들이 반발하자 "'절대'라는 단어는 뺀다"고 정정했다.# #
  • 이후 MBC <PD수첩>이 '광우병' 방송을 내보내면서 자신의 발언을 비방할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언론사의 보도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해 승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 2013년 3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 사진을 보고 있는 모습이 본회의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포착된 적이 있다. 심재철 의원은 '누가 카카오톡으로 뭔가를 보내줘 이게 뭔가하고 열어봤더니 그런 사진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언론 매체인 '민중의 소리'가 심재철 의원 본인이 직접 '누드 사진'이라는 단어를 입력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개하면서 거짓말이었음이 들통나 버렸다. #
이 사건은 잠깐 잊혀졌다가 2018년 7월 12일에 다시 회자되었는데,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도중 그 당시 당 원내대표이자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던 김성태 의원이 당 혁신 비상대책위 구성 문제를 놓고 심재철 의원과 말다툼을 하다가 이 사건을 들먹인 것이다. 그때 김성태 의원은 자신의 사퇴를 요구했던 심재철 의원을 향해 "여성의 누드사진을 보는 모습이 언론사 카메라에 노출됐을 때 당내에서 (심 의원에 대한)출당 주장까지 나왔지만 막아주지 않았느냐.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항변했다고 한다. 게다가 국회부의장으로서 특수활동비도 받았을 텐데 밥 한 끼 산 적이냐 있느냐는 사족까지 달았다는 후문이(...) #
  • 2017년 11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을 내란죄로 형사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사 이에 대해 여당 지지층은 "문 대통령에 대해 정녕 형사고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되지, '해야 한다'고만 주장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슨 생각인 거냐"는 비판을 던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향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짓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보다 심재철이 조금이나마 낫지 않냐는 의견이다. 일단 본인이 DJ,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의원 중 한 명이었기도 하고.
  • 최근 들어서는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함께 문재인 퇴진 집회(태극기 집회)에 참여하였다.
  •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보상금이 지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해왔던 심재철 의원이 정작 자신이 5·18피해자로 인정돼 3,500만원의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시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포함해 5·18 피해자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 신청서를 내지 않은 관련자를 포함시키는 일괄보상은 이뤄진 적이 없다"고 설명했고,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의 서류를 모두 확인했는데 신청서에 본인들의 도장이나 서명이 다 돼 있다면서 신청서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이는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24인에 대해 일괄보상을 실시했기 때문에 심재철 의원이 직접 5.18 피해자 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해프닝이다. 또 본인이 5.18민주화운동의 유공자로서 보상금을 수령했다고 해서 5.18 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기사#[16]

3.1.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2019년 12월 9일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경선에서 결선 투표 결과 106표 중 52표를 획득하며 나경원의 뒤를 이어 자유한국당의 4대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던 5선 의원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원내대표가 됐는데, 2004년 17대 국회 초반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 이후 보수정당 최다선 원내대표라고 한다. 보통 5선 정도면 당 대표급이며[17] 국회의장 경선에 나가도 태클 안 걸리는 의원선수[18]다.

4. 논란

4.1. 국가 재정정보 무단 유출 논란

심재철 국가 재정정보 무단 유출 논란 문서 참조.

4.2. 국회부의장 시절 특수활동비 논란

국가 재정정보 무단 유출 논란의 전개 과정 속에서 정작 심재철 본인은 과거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 시절 특수활동비(일명 특활비)로 6억 원을 받아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로남불식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특활비 6억 원 외에도 19대 국회 민간인불법사찰국조특위가 운영될 시기에 단 두 번 회의를 열고 활동비 명목으로 9,000만 원이나 받았다가 비판여론에 반납한 사건도 재조명 받고 있다. 박범계 "심재철, 회의 두 번 하고 9천만 원 받아간 사람이…"

이에 대해 비판여론이 일었고, 6억 원의 사용처를 밝혀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2018년 10월 3일 오전 2시 20분 현재 약 2.5만 명이 동의를 한 상태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심재철은 "제가 받은 급여를 정당하게 활용했다"면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난달 30일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집행이 부적절했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부의장 활동비(특수활동비)가 6억 원이라고 했는데,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라고 밝혔다. 또한 “명목이 무엇이든 개인에게 지급한 것은 개인이 자기 맘대로 쓰는 것은 당연한 거다. 문제는 청와대 사람들은 남의 돈을 가지고 마치 자기 돈처럼 쓴 것이다. 그래서 그게 세금 낭비고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특활비가 개인 급여?…심재철 “개인에게 지급한 돈 맘대로 쓰는 것 당연”

하지만 애초에 특활비 자체가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배정된 비용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미 개인에게 지급된 비용이기에 개인 급여'라는 논리는 상당히 어폐가 있으며, '개인 급여'이기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결국 논란이 더욱 확산되어가자, 심재철은 "특활비가 개인 급여라는 말은 실수"라고 정정하며 국회부의장 시절 받은 특활비를 공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심재철 "부의장 시절, 특활비 공개"…의장 측 "개인 판단"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동안 갑)

신한국당

18,222 (24.7%)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동안)

한나라당

62,108 (49.12%)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동안 을)

한나라당

41,838 (50.99%)

당선 (1위)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동안 을)

한나라당

39,453 (61.23%)

당선 (1위)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동안 을)

새누리당

42,405 (51.68%)

당선 (1위)

4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안양 동안 을)

새누리당

36,148 (41.46%)

당선 (1위)

5선[19]

6. 여담

  • 당 성향상 정반대라고 할 수 있는 정의당심상정 전 대표와 가까운 종친이다. 실제로 둘 다 운동권 출신이었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출신이다. 심상정이 사석에서는 지금도 친하다고 발언하였으나 이는 그저 아는 사이라는 뉘앙스로 실제 멘트는 다음과 같다.
>안양시민 여러분, 새누리당에 옐로카드를 뽑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지역기호 1번 심재철 후보님 저랑 종친입니다. 사석에서 만나면 종친이라서 서로 가까이 지냅니다. 심재철 후보님 이 지역에서 16년 동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 16년 동안 이 안양시 발전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셨는지, 우리 안양시민 여러분이 냉정히 평가해주시기 바랍니다.[20]이 외에 심상정은 다음과 같은 발언도 했었다.
>하루는 여학생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학생회장 후보였던 심재철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와서는 외투를 홱 집어던지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운동을 한다는 자만심과 우월감이 배어나는 행동이었다. 속이 뒤틀려, 던져진 외투를 심재철의 가슴에 처박으며 내쫓아버렸다. 그러고는 서울대 여학생회를 결성했다. (월간중앙, 2005. 3.24)
  • 의정활동이나 지역사회 시찰에 나설 때 항상 지팡이를 들고 다닌다. MBC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인 1993년 6월 30일 올림픽대로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8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중상을 입었다. #[21] 그 후유증 때문에 아직도 다리가 불편해서 지팡이가 필요하다고.
  • 색소폰 연주실력이 꽤 능숙하다. 총선 유세때나 지역행사가 있으면 색소폰을 들고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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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안양시 동안구 갑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
  2. [2] 안양시 동안구 을 선거구의 제15대 국회의원이다.
  3. [3] 안양시 동안구 갑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
  4. [4] 안양시 동안구 을 선거구의 제17대 국회의원이다.
  5. [5] 안양시 동안구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이다.
  6. [6] 애초에 위의 사진은 10년 전인 2008년(당시 50세)에 프로필 사진으로 찍어 지금도 쓰이는 것이며, 지금은 나이가 6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얼굴도 같이 늙었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비슷한 케이스로는 한선교하고 안철수, 박광온이 있다. 즉, 오신환이 사기캐다.
  7. [7] 예전 새누리당 시절에는 이정현과 정양석, 전북 출신의 진영이 있었는데 2016년 초 진영은 탈당하여 더불어민주당으로, 12월 27일 정양석이 바른정당에 합류, 2017년 1월 2일 이정현이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그 시점부터 2017년 11월까지는 자유한국당에 남은 마지막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11월 중순 전남 보성 출신인 정양석 의원이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8. [8] 출처: 김영진, 충정 작전과 광주항쟁(上) P126, 「동광출판사」
  9. [9] 2000년 10월 이문영, 한승헌, 이해동, 송기원, 설훈 책머리에서 (문이당,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진실, 2002) 中 "1980년에 취조받았을 때 무죄한 김대중 씨를 내란의 괴수로,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내란자로 허위자백한 것입니다. 혹독한 고문에 의한 것이지만 비록 죽더라도 안 한 것을 안 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 약함입니다."
  10. [10] 김종완, 군화발에 짓밟힌 민주화의 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진실, 문이당, 2002
  11. [11] 김상현, 내가 겪은 80년, 그리고 광주 p219,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진실, 문이당 2002
  12. [12] 문제는 심재철이 보수정당에 참여한 이후에 컴플렉스 때문인지, 민주화 운동 시절을 과할 정도로 변호하거나 자신이 그토록 공격하던 군사정권의 색깔론 혹은 북풍에 편승하는 듯한 행태를 종종 보였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의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과거 한때 같은 길을 가던 사람들을 향해서 무리한 공격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가만히 놔두면 될 텐데 심재철 본인이 발끈하면서 긁어서 부스럼 내는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13. [13]동대문중학교. 2003년부터 남녀공학이 되었다.
  14. [14] 개인 홈페이지 참고.
  15. [15] 이후 민주당 진영에서 심재철의 행보를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신한국당을 민주정의당의 후신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5.18 특별법 제정과 15대 총선을 앞두고 이루어진 민정계 의원들의 공천 대거 탈락 등으로 인해 신한국당을 민정당의 후예로 보기는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16. [16] 1998년 광주시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신청’을 한 뒤 심사를 거쳐 ‘연행·구금’ 분야 피해자로 인정됐다고 한다.
  17. [17] 추미애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의원선수가 5선이다. 그 이전에 문희상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지낼 당시 선수도 5선이었으며, 김한길이 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선수는 4선. 황우여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를 지낼 때도 5선이었다. 문재인초선 시절, 안철수초·재선 시절, 박근혜재선 시절에 당 대표를 지냈지만 이들은 대권주자라는 아웃라이어이니...
  18. [18] 19대 국회 하반기 새누리당 국회의장 경선 당시, 후보자였던 정의화 황우여 의원 둘 다 5선 의원이었다.
  19. [19] 전반기 국회부의장
  20. [20] #
  21. [21] 링크에서 그걸 보도하는 사람은 본인의 MBC 선배 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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