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가

코모도어의 컴퓨터

CPU

모델

MOS 테크놀로지 6502
(1976~1994)

KIM-1

코모도어 PET

코모도어 VIC-20

코모도어 64

코모도어 플러스/4

코모도어 128

코모도어 CBM-2

코모도어 SX-64

코모도어 MAX Machine

코모도어 에듀케이터 64

코모도어 16

모토로라 68000
(1985~1996)

아미가

아미가 500 (© Bill Bertram 2006, CC-BY-2.5 — Attribution. You must give the original author credit.), 주소

아미가 1200 (저자: Boffy b), 주소

Amiga

1. 개요
2. 사양
3. 역사와 특징
3.1. 영상 분야
3.2. 음악 분야
3.3. 게임
4. 현재
5. 기타
6. 발매 모델
7. 외부 링크

1. 개요

코모도어 인터내셔널에서 개발한 16비트/32비트 컴퓨터 시리즈. 1985년부터 1996년까지 판매했다.

계보로 보자면 코모도어의 전작인 8비트 컴퓨터 코모도어 64의 직계 후손이며 코모도어 128의 발전형이지만 호환성은 없다. 코모도어 64와 마찬가지로 컴퓨터 업계에서 전설로 남은 기종. 서구권 쪽에는 아직도 매니아층이 존재하는 클래식 컴퓨터라는 점에서는 코모도어 64나 MSX와 비슷한 데가 있다.

아미가(Amiga)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아미고(Amigo, 친구)라는 뜻의 여성형이다. 즉, 여자친구.

2. 사양

아미가 500 기준

  • CPU: 모토로라 68000 7.16MHz
  • 메모리: 코모도어 아미가 칩 램 512KB 66MHz(패스트램을 증설해 9MB까지 확장 가능)
  • 보조 프로세서: 코모도어 OCS(Original Chip Set)
    • 해상도(NTSC): 320×200, 640×200(순차 주사 방식), 320×400, 640×400(비월 주사 방식)
    • 발색 수: 4096색 중 32색(저해상도 모드), 16색(고해상도 모드)
      • HAM(Hold-And-Modify) mode: 4096색 동시 발색 모드. 그러나 인접 픽셀의 색상 값이 제한됨. 저해상도 모드에만 가능. 움직이는 영상에 부적합. 주로 시범 영상 모드나 사진 감상 등에 쓰임.
      • EHB(Extra Half-Bright) mode: 32색 발색 모드에서 밝기를 조절해(절반으로 낮춤) 64색으로 발색할 수 있는 꼼수가 있었다.
    • 애그너스, 데니즈, 폴라로 구성
      • 애그너스: 블리터(비트맵 이미지 처리 장치), 코퍼(MOVE-WAIT-SKIP 상태로 동작하는 프로그램 가능한 유한 상태 기계(Finite State Machine) 처리 장치), DMA 콘트롤러, 메모리 콘트롤러 등으로 구성
      • 데니즈: 프로그램 가능한 색상 순람(Color Lookup) 기능, 스프라이트 처리(스캔라인 당 4색(그중 하나는 투명) 8개의 16픽셀), I/O 콘트롤러 등으로 구성
      • 폴라: 플로피 디스크 콘트롤러, 오디오 콘트롤러, 직렬 포트 콘트롤러 등으로 구성
  • 사운드: 8비트 28KHz 스테레오 PCM, 최대 4채널, 64단계 볼륨 조절
  • 저장 장치: 3.5인치 단면 플로피 디스크(880KB)

3. 역사와 특징

시리즈의 첫 작은 1985년에 만들어진 아미가 1000이다. 이 컴퓨터가 유명한 건 당대의 모든 16비트 컴퓨터 중에서도 최상급이었던 멀티미디어 성능 때문이다. CPU 등의 일반적인 하드웨어 사양은 매킨토시, 아타리 ST 등 당대의 경쟁 상대들과 비슷했지만, [1] 특별히 디자인된 커스텀 칩들이 CPU와 별도로 작동하며 그래픽과 사운드 및 I/O를 처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아미가 1000이 나온 지 2년 후인 1987년 발매된 매킨토시 II의 256 컬러 표현이 가능한 모델 가격이 7000달러가 넘었던 것을 보면, 게임이나 비디오, 모션 그래픽 분야에서 아미가의 가성비는 압도적이었던 것. 심지어 멀티미디어라는 단어가 현재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다. 동시대에 견줄 만한 멀티미디어 성능을 지닌 개인용 컴퓨터라면 일본의 X68000 정도밖에 없을 수준이었는데 이것도 2년 늦은 1987년에 나왔다.

원래 아미가는 차세대 게임기로 개발하던 물건이었다. 아미가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에서 아타리의 자금 지원을 받아 게임기용으로 그래픽과 사운드를 처리할 전용 칩셋들을 만들고 있었는데 아타리 쇼크가 터지는 바람에 게임기 시장이 곤두박질치자 만들고 있던 하드웨어를 게임기 대신 범용 컴퓨터쪽으로 방향을 돌려 재설계했다. 나중에 코모도어가 아미가 코퍼레이션을 인수하면서 '코모도어 아미가 1000'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985년 여름 처음 선보인 아미가 1000은 4096색의 팔레트 범위 안에서 스크린 모드에 따라 16, 32, 64, 4096색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그래픽 성능에 4채널 PCM 스테레오 사운드 지원이라는 당대 최고의 하드웨어 사양에 개인용 컴퓨터로는 최초로 선점형 멀티태스킹을 구현했다. 당시 IBM PC 호환기종의 운영 체제는 MS-DOS였고 매킨토시에서도 1987년에 System Software 5 운영 체제에 멀티파인더가 등장해서야 협력형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던 시절에, 아미가는 그 시절부터 이미 진일보한 선점형 멀티태스킹 운영 체제를 탑재했던 것이다. 게다가 무려 1985년에 마이크로 커널 개념을 도입하였다.[2] 단순히 동시 발색 수만 많았던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스크롤, 스프라이트, 다중 배경화면, 스테레오 PCM 사운드, 고속으로 그래픽과 사운드 데이터를 처리하는 커스텀 칩, Plug & Play에 해당하는 Autoconfig 기능 등 모든 면에서 아득하게 시대를 초월한 기종. IBM PCEGA가 겨우 64색 팔레트 중 16색을 동시 표시하는 게 고작이었고, 대부분의 컴퓨터가 16색, 혹은 256색을 표현하며 1비트의 비프 스피커에 사운드를 출력하던 시절에 실감나는 사운드와 함께 매끄러운 수백 가지 색상의 애니메이션 구현이 가능한 아미가의 성능은 환상적인 수준이었던 셈이다.

모니터 포함 1600 달러 대로 성능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당시 경쟁 기종들의 가격은 IBM PC AT>>매킨토시>>아미가>>아타리 ST 순이었다. 물론 IBM PC의 경우 가격이 훨씬 싼 IBM PC 호환 기종 쪽이 보급되었지만 어쨌거나 아미가의 가격대 성능비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었다.[3][4]

아미가 500의 그래픽 데모 영상. 1980년대 당시에는 타 기종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굉장한 레벨이었다.

이런 획기적인 물건이었음에도 코모도어의 삽질[5] 때문에 큰 인기는 끌지 못하고 있다가 1987년 가격을 반으로 떨어뜨린 아미가 500이 나오면서 홈 컴퓨터 및 게임기로 대박을 터뜨리며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전설의 기종으로 등극한다. 미국에서는 애플, IBM 등의 강자에게 밀리고 있었고 미국이나 일본 시장의 영향을 크게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보급률이 매우 낮았지만 유럽의 홈 컴퓨터 시장은 아미가가 거의 평정했다.[6][7]

운영 체제로는 그래픽과 멀티미디어 성능의 장점을 살린 GUI 운영 체제인 'Work bench'를 사용했다.[8] 물론 GUI 운영 체제만 있는건 아니고 CLI 방식이었던 아미가도스(AmigaDOS)도 있었다. 윈도나 macOS와 같이 GUI 운영 체제에 파워 셸이나 터미널을 내장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초기 기종인 아미가 1000, 500, 2000은 모토로라 68000을 사용한 16비트 컴퓨터였지만 3000 이후의 후기 기종들은 모토로라의 68020, 68030 계열 CPU를 장착하면서 32비트 컴퓨터로 발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주변기기 중 IBM PC 호환기종이나 매킨토시의 소프트웨어를 구동시키기 위한 호환 보드가 있었다는 것. 매킨토시는 아미가와 동일한 모토로라 680x0 계열의 CPU를 사용하고 있어 상호 호환이 수월했다. 매킨토시의 경우 호환 보드 없이 단순히 전용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키고 매킨토시 운영 체제를 포함한 플로피 디스크를 넣어 부팅하는 일종의 가상 머신 소프트웨어로도 나오기도 했다. 당시 매킨토시 운영 체제였던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용량이 매우 작아서 800 KB 3.5인치 플로피 디스켓 한 장에 충분히 들어가고 남을 정도였다. 반면 CPU가 아예 다른 IBM PC 호환 보드는 80x86 CPU를 때려 박아서(!) 상호 호환이 가능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VGA사운드 블라스터의 등장으로 IBM PC 호환기종의 멀티미디어 성능이 크게 발전해 나갔다. 반면 코모도어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컴퓨터 시장에 그냥 안주하고만 있었고, 아미가 컴퓨터의 핵심 칩셋이었던 코모도어 OCS의 차세대 칩셋을 너무 늦게 내놓았다. 차세대 칩셋 아미가 AGA(Advanced Graphics Architecture)를 무려 7년이나 흐른 1992년에서야 내놓았는데, 이 시기 IBM PC 호환 기종은 단순한 그래픽 어댑터에서 벗어나 높은 해상도와 트루 컬러 등의 발색 성능을 자랑하는 ATI, 시러스 로직, Tseng Labs, 트라이던트, S3 등의 SVGA 그래픽 칩셋들이 일명 '윈도 가속기(Windows Accelerator)'라 불렀던 블리터를 비롯한 각종 처리 기능도 무장해 서로 활발하게 경쟁하고 있었는데, 아미가 AGA 칩셋보다 월등한 성능을 자랑했다. 오디오 칩셋 역시 IBM PC 호환 기종의 명작, 사운드 블라스터 16이 이 시기에 등장하였는데, 사운드 블라스터는 FM과 MIDI 음악은 물론 44.1kHz 16비트 PCM과 ADPCM 음성까지 지원한 반면, 아미가 AGA 칩셋은 그대로였다. 결국 시장에서 IBM PC 호환 기종에 점점 밀려 나갔다.

코모도어는 최후의 수로 1993년 '아미가 CD32'라는 코모도어 64의 C64 게임용 콘솔처럼 게임만 가능한 세계 최초의 32비트 게임기를 출시하였다. 아미가 CD32에 대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하자. 이후 코모도어는 1994년 4월 29일 파산하였고, 코모도어 파산 후 인수한 독일 기업 Escom에서 아미가 컴퓨터를 1년 정도 더 소량 생산했으나, Escom 마저 1996년 7월 15일에 파산하면서 아미가 시리즈는 단종했다.

3.1. 영상 분야

1990년대 당시 그래픽스 쪽에서 두각을 보인 한 축인 매킨토시가 출판(DTP)이나 시각 디자인 쪽에 특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면 아미가는 주로 영상 분야에 특화하는 경향이 있었다.[9] 1990년에는 뉴텍의 동영상 편집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인 비디오 토스터(Video Toaster)[10]가 이 기종으로 나왔고, 요즘은 AutodeskMaya3ds Max에 밀려 위세가 예전 같지 않지만 한때 3D 그래픽스 툴로 유명했던 뉴텍의 LightWave 3D도 원래는 아미가용 소프트로 출발했다.

영상 분야에서는 표준 장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당시에 KBS나 MBC같은 주요 방송국에서도 영상 편집과 이펙트용으로 아미가를 사용했다.(#) 또한 당시 방송국에서 사용하던 한글 자막을 방송 화면에 추가하는 기능을 지닌 소프트웨어가 아미가용 소프트웨어였으며 위에 언급한 비디오 토스터와 함께 1990년대 후반까지도 사용하였다. 대학 중 방송 관련 기술을 가르치는 학과의 영상 기기 실습실에는 기본적으로 아미가 PC가 놓여져 있었다. 이런 영상 분야에서의 위상 덕에 코모도어 64가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못한 데 비해 아미가는 당시 한국에서도 마이컴 같은 컴퓨터 잡지에서도 아미가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는 지면을 소량이나마 지속적으로 할애했을 정도였고, 1990년을 전후하여 한국 지사인 코모도어 코리아를 설립하면서 아미가 500, 2000을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아미가 500과 2000은 확장성을 제외하면 모든 사양이 동일하기에 비디오 토스터나 68030 가속 보드 등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는 2000보다는 500이 나은 선택이었다.

앤디 워홀이 아미가 1000을 작업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3.2. 음악 분야

샘플링 모듈 음악을 뜻하는 '아미가 음악'의 어원이기도 한데, 앞서 말했듯이 아미가의 사운드 성능은 상당히 뛰어나서 당시 음악을 샘플링 모듈 기법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게 아미가 컴퓨터밖에 없었다. 아미가는 4개의 8비트 PCM 샘플링 베이스의 스테레오 사운드 채널을 가지고 있어 당시의 PSGFM 사운드 칩셋에서는 들어볼 수 없는 폭넓은 음색을 들려주었다. IBM PC에서 제대로 PCM 사운드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초반에 사운드 블라스터 시리즈가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였으니 아미가의 사운드 성능은 당시에는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수 있다.

나중에 IBM PC가 발전하면서 이후에 IBM에서도 모듈 음악을 만들 수 있었지만 이 분야의 원조가 아미가인 것도 있고 PC에 아미가에서 사용하던 기술을 이식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불리기는 여전히 아미가 음악이라고 불린다. 이런 아미가 음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트랙커'(tracker)라고 한다.[11] 당시 아미가 게임들의 음악도 트래커로 작곡해서 동시대의 다른 컴퓨터에 비해 높은 음악 품질을 보여주었다.

아미가 OS로 제작한 트랜스.

트래커로 제작한 음악들.

일본의 아티스트 히라사와 스스무가 아미가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그가 1980~1990년대에 제작한 뮤직 비디오는 아미가로 제작했다.(2D OR NOT 2D, Grid 등등) 참고로 엄청 약 빨았다 1980년대 말부터 사용하기 시작해 무려 2000년대 초까지 사용하였다.

포켓몬스터 시리즈의 주요 개발자 중 하나인 마스다 준이치가 작곡에 사용했던 컴퓨터였다. 먼저 아미가로 곡의 데이터를 만들고 게임보이용으로 데이터를 변환하는 형태로 만들었다고. 인터뷰나 블로그 등을 보면 최소 포켓몬스터 금·은 때까지는 사용한 듯.

3.3. 게임

동시대의 컴퓨터들과 비교하기 힘든 그래픽과 사운드 성능은 당연히 게임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아미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985~1990년경에 아미가로 나온 게임들과 타 기종(PC, 매킨토시 등)으로 나온 동일한 게임을 비교해 보면 그래픽과 사운드의 격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IBM PC 호환 기종 게임이 잘 해봐야 EGA를 지원하던 1989년 무렵부터 소수지만 한국에 아미가를 취급하는 매장이 생기면서 컴퓨터 잡지의 광고면 등에 아미가 게임의 스크린샷이 실리기 시작했는데 한눈에 봐도 PC와 차이가 크게 났다. 코모도어 64와 애플 II의 관계를 연상하게 하는 부분. 1990년대에 PC에서 VGA가 보급되며 널리 사용되었던 그래픽 도구인 디럭스 페인트도 원래 아미가 게임 개발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아미가의 하드웨어 성능을 충분히 발휘하는 게임이 등장하기까지는 아미가 출시 후 대략 3년 가량 걸렸다. 그러나 초기작이라고 해도 동시대의 IBM PC나 애플 IIGS 같은 경쟁기와는 기본 성능이 달랐다보니 초기작도 PC 게임보다는 훨씬 품질이 좋다. 대체로 북미 지역에서는 보급률이 높았던 타 기종용으로 일단 게임을 만들고 팔레트를 늘려서 아미가용으로 컨버팅하는 경우가 많았고 아미가의 보급률이 높았던 유럽 쪽에서는 아미가 버전을 베이스로 만들어 하드웨어의 성능을 제대로 살린 게임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IBM PC 호환 기종에서 아미가와 비슷한 품질의 게임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VGA와 사운드 블라스터를 지원하는 게임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91~1992년 무렵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PC 성능의 눈부신 발전으로 인해 확실히 역전되기는 하지만, 아미가가 1985년에 처음 등장했고 막판까지 하위 호환성을 보장하기 위해 최하위 모델인 아미가 500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게임이 제작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대략 5~6년간은 게임업계의 최선두에 있었던 셈이었다. 동시대의 컴퓨터 중 게임 성능에서 아미가에 견줄 만한 컴퓨터는 기껏해야 샤프전자X68000 정도고[12] 실제로 성능은 X68000이 상당히 앞서긴 하지만 이마저도 2년이나 늦은 1987년에 나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미가의 게임 성능은 당시에는 가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여담으로 PC에는 없는 하드웨어 스프라이트 기능을 갖추고 있어 움직임이 많은 액션, 슈팅 게임 등을 제작하기에도 PC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스프라이트 성능 자체는 생각보다 뛰어나진 않았지만 합리적인 하드웨어 구조를 가지고 있어 게임 성능 자체는 당대 기종 중에서도 가장 앞서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DOS와 아미가 게임을 비교한 영상이다. 보듯이 PC-아미가 플랫폼으로 나온 게임들의 그래픽 품질을 비교해보면 대체로 차이가 상당하다. 그래픽 뿐만 아니라 사운드 역시 개인적 취향의 차이가 있긴 하겠으나 아미가 쪽이 품질이 높다. PC 쪽은 사운드 블라스터가 등장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PCM 음성을 제공할 수 있었으나 아미가는 초기부터 사람의 음성이 나오는 게임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격차는 초기작일 수록 큰데, 아미가가 그만큼 발매 당시에 높은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는 반증.

다만 아케이드 이식작은 작품들에 따라 수준차가 다양하게 갈렸다. 원작 수준에 가까운 게임들부터[13] 좀 떨어지지만 그럭저럭 비슷하게 옮겨온 게임들,[14] 심각할 정도로 구린 게임들[15]까지 천차만별이다.

당시 컴덕이나 게이머 꼬꼬마들의 화제 중 하나가 잡지에 실린 '아미가 컴퓨터용 스트리트 파이터 2'였는데, 이식 시기도 아미가판이 콘솔 최초 이식작인 슈퍼 패미컴판(1992년 6월)보다 앞섰기 때문에 해당 기사는 꼬꼬마들에게 환상을 불어넣기 충분했지만 실제 아미가 버전의 스트리트 파이터 2는 그런 동경의 나래를 펼치던 이들을 무참히 배신하는 품질이었다. 다행히(?)도 아미가 자체가 국내에선 방송/영상 계통에서나 사용되고 일반에는 거의 보급되지 않은 기기라 그 실상이 알려지기는 어려웠다. PC 버전이 나오고 나서도 "아미가는 이렇지 않을텐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현실은 둘다 U.S. GOLD 버전이라 도긴개긴이다.

일부 아케이드 이식 게임이 아미가를 비롯한 서구권 컴퓨터의 이식 수준이 게임기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데는 어느 정도 시대적인 이유가 있다. 아미가는 1985년에 나온 오래된 PC였다. 나온 시기를 생각하면 굉장한 기기였지만 당시의 아케이드 기판은 개개의 기판이 새로운 상품이고 호환성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되며 업소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장비이므로 F1 머신에 비유될 만큼 매년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신형 기판이 나오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반도체 기술이 발전하는 시절이었으니 1980년대 후반 쯤 되면 PC'따위'는 물론이고 아미가조차도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16] 널리 보급된 아미가 500 기종의 사양을 보면 알겠지만 CPU의 성능 자체는 메가 드라이브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단지 네오지오가 그랬던 것처럼 막강한 그래픽 성능 덕분에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512KB의 기본 메모리 용량, 880KB의 플로피 디스크를 저장 장치로 사용한다는 점을 전제하면 단지 메가 드라이브보다 더 불리한 조건 하에서 게임을 제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액션 게임은 다량의 스프라이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미가의 스프라이트 처리 성능은 생각보다 강력한 것은 아니어서, 주사선 당 8개[17], 크기는 16픽셀×해당 스크린 해상도의 세로 높이로 컬러도 스프라이트당 3개(+투명)의 제약이 있다. 게임 성능에서 아미가로 어떻게든 이식 가능한 한계점 쯤으로 여겨지는 CPS1 보드는 256개를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스프라이트 기능은 의외로 뛰어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미가의 게이밍 성능은 스프라이트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오브젝트는 대부분 스프라이트가 아닌 비트맵 데이터 고속 처리 장치 '블리터'를 주로 썼는데, 스프라이트보다 속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스프라이트 같은 색상, 크기, 개수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많은 제대로 된 아미가 게임은 필요에 따라 스프라이트와 블리터 오브젝트(BOB)을 혼용했다. 이는 시스템 설계 당시 GUI 운영 체제의 컴퓨터로는 스프라이트의 제약 사항이 부적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조금 느리더라도 제약이 없는 블리터 보조연산장치를 채용한 것이었다. 또한 간간히 있는 오해와 달리 알타입2 처럼 적극적으로 스프라이트를 사용한 작품도 많이 있었다. 상세한 아미가의 하드웨어 사양에 대해서는 Amiga Hardware Reference Manual#을 참조하기 바란다.

오히려 아케이드 게임의 아미가 이식작의 그래픽은 (게임성은 제외하고라도) 아케이드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X68000FM TOWNS처럼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의 아케이드 게임을 완전이식에 가깝게 옮겨내는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적어도 그에 준하는 수준까지는 간다. 여러모로 그래픽이나 사운드 성능 만큼은 1980년대 기준으로는 당대 최강급.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부분의 게임 유저들도 아케이드 보드보다 게임기나 가정용 컴퓨터가 그래픽이나 사운드가 떨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하드웨어 성능 안에서 충실하게만 만들어졌다면 유저들은 그 격차에 얼마든지 눈을 감았다.[18] 아미가는 당대의 기기 중에서 가장 아케이드에 가까운 그래픽과 사운드를 보여줄 수 있었으므로, 아케이드 이식작이 욕 먹었던 이유는 겉보기보다는 플레이 감각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파이널 파이트의 경우 피격 시 무적 판정에 대한 자비가 없어서 적들에게 둘러싸이면 그냥 두들겨 맞고 죽는다. 이러한 작품들이 양산된 이유는 무엇보다도 성의없는 사업 전개로 인한 열악한 개발 환경 속에 진행된 이식 작업이 원인이다. 원 개발사의 비협조와 아미가 이식을 담당한 회사의 제작 환경 둘 다 책임이 있다. 비유하자면 정영덕판 스트리트 파이터 2 같은 것이 캡콤의 라이선스 받고 아무런 협조 없이 제작해 판매한 셈이다. 이런 현상은 아미가 뿐만 아니라 PC 쪽도 마찬가지[19]였다. 아미가판 파이날 파이트의 경우가 그러했다. 퍼블리셔인 U.S. GOLD는 캡콤 USA로부터 라이선스를 따와서 Creative Materials에 개발 하청을 주었다. 이 과정에서 캡콤이 관여한 것은 라이선스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개발 회사라는 것이 말이 좋아 '회사'지 개발자 1명이 회사를 설립해 게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인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 파이널 파이트의 경우 리차드 알핀이라는 개발자가 혼자 작업했다. 그의 능력은 훌륭했지만 캡콤의 파이널 파이트 슈퍼패미컴 이식 작업에 프로그래머만 5명이 투입해서 만든 것을, 그는 아무 자료 없이 4~6개월의 짧은 기간 안에 베껴 내야 했다. 이는 그 당시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라 일본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은 항공 우편 뿐이라 사실상 자료를 받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리차드 알핀은 롬 리더기로 데이터를 읽어들인 후 데이터 마이닝으로 스프라이트 데이터를 추출해 만들었다. 이런 능력마저 없다면 그 시절에는 캠코더나 캡처 보드로 녹화해 디지털화 작업을 한 후 도트를 찍곤 했다. 이런 조건만 놓고 생각해 봐도 왜 당시의 아케이드 이식작들이 그 모양으로 만들어졌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케이드 게임의 게임기 이식의 경우 원작사가 직접 이식하거나 하청 제작을 하더라도 같은 일본이었기 때문에 소통하기 훨씬 수월해 여건이 저보다는 나았다.

한편, 아미가를 기반으로 한 아케이드 기판 역시 존재했었다. 아메리칸 레이저 게임(American Laser Games)에서 개발한 건슈팅 게임들중 일부(추정)[20]가 아미가 기반 기판을 사용했는데, 이 건슈팅 게임들은 게임 그래픽의 95%이상이 FMV에 의존하는 게임들이라는게 특징인데, 기판에 레이저디스크 재생장치만 연동하고 나머지 인터페이스나 연산처리에만 아미가cpu를 활용한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전설의 막장 쿠소게로 유명한 소단님 소드 오브 소단의 원작도 아미가 버전이었다. 메가 드라이브판의 처참한 게임 품질로 유명한 게임이지만 원작인 아미가판은 멀쩡한 게임이다. 원작은 덴마크에서 만들었고, 이식을 미국에서 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위의 사례와 비슷한 이유로 이식에 실패했을 것이다.[21]

4. 현재

대부분의 클래식 컴퓨터들과 마찬가지로 현역에서는 은퇴했다. IBM PC 호환기종과 매킨토시[22]를 제외한 나머지 클래식 컴퓨터들의 공통적인 종착역이다. 그래도 한 때 잘 나갔던 컴퓨터라서 꽤 두터운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그래서 오늘날에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1994년 코모도어가 파산한 이후 코모도어의 자산들은 여러 회사에 팔려나갔는데, 그 중 아미가는 아미가, Inc로 법인화해 여러 회사에 팔려다녔다. 이 아미가, Inc의 라이선스를 받은 아이 테크에서 2002년 4월 아미가 컴퓨터의 후속작으로 프리스케일 PowerPC CPU 기반 컴퓨터 '아미가원'(AmigaOne)을 출시했다. 그러나 판매 부진으로 아이 테크는 3년만에 포기했고 현재는 에이큐브 시스템이나 A-eon Technology의 두 회사가 판매하고 있다.

아미가 OS 역시 코모도어가 파산한 이후에도 꾸준히 개발해 현재도 현역으로 가동 중이다. 현재는 아미가, Inc의 라이선스를 받아 하이페리온 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PowerPC 기반의 4.1이 최신 버전이다.(공식 홈페이지) 아미가원 컴퓨터의 기본 OS로 구동하며, 680x0 기반의 클래식 아미가용 소프트웨어를 에뮬레이션으로 구동 가능하다. 같은 PowerPC 기반 하드웨어라고 매킨토시에 설치 시도한 사람들이 있으나 장치 드라이버 소프트웨어 문제 때문에 불안정하다고 한다. 그러나 하이페리온 엔터테인먼트는 2015년 파산했음이 알려졌다.

2012년, 아미가 Inc.는 클로안토에 아미가와 관련된 자신이 소유하고 있었던 권리를 넘겼다# 현재 아미가 Inc.사이트로 접속하면 "Do you remember when Amiga meant friend? We do."라는 문구만 볼 수 있다. 이 회사는 아미가 뿐만 아니라 코모도어 64에 대한 권리도 인수하였다. 그러므로 현재 시점에서 아미가의 공식 웹 사이트는 클로안토가 관리하고 있는 https://www.amigaforever.com/이다.

Minimig라는 오픈 소스 하드웨어도 있는데, FPGA 기술을 이용하여 클래식 아미가의 하드웨어를 원칩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원칩 MSX와 비슷한 발상의 물건.

에뮬레이터로는 윈도우 기반의 WINUAE라는 에뮬레이터가 가장 오래 됐고 유명하다. 멀티 플랫폼으로 제작하고 있는 FS-UAE라는 에뮬레이터도 있다.

만약 수집용으로 아미가를 사려고 한다면 아미가 500나 아미가 1200를 사는게 무난하다. 그중에서도 아미가 1200이 500보다 나은 CPU, 칩셋을 가지고 있어서 아미가 500 소프트웨어와 호환하고, 확장성도 좋은 편이라서 이더넷 카드로 인터넷을 하거나 하드디스크 대신 CF 카드를 쓸 수 있고, 확장 슬롯을 이용하여 CPU와 램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PC-TASK라는 아미가용 가상 머신이 있었다.

5. 기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팀 첼시 FC도 1993/94 시즌 당시 유니폼에 아미가 로고를 달고 뛴 바 있었다. 참고로 사진의 선수는 뉴캐슬, QPR 등에서 활약한 개빈 피콕으로, 첼시에서는 1993년부터 1996년까지 활약했다.

6. 발매 모델

  • 아미가 1000(1985년 7월 23일)
  • 아미가 2000/1500/2500(1987년 3월)
  • 아미가 500/500 Plus(1987년 4월)
  • 아미가 3000/3000T/3000UX(1990년 6월)
  • 코모도어 CDTV(1991년 3월)
  • 아미가 600(1992년 3월)
  • 아미가 1200(1992년 10월 21일)
  • 아미가 4000/4000T(1992년 10월)
  • 아미가 CD32(1993년 9월 17일)

7. 외부 링크

  • Amiga Forever: 아미가의 권리자인 클로안토가 관리하는 아미가 유료 에뮬레이터팩 배포 사이트이다. 공식사이트가 없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이 사이트가 공식이다.
  • 아미가 Inc.(아카이브): 아미가의 권리를 관리했던 회사의 사이트 공식 트위터는 2017년 1월 이후 새 트윗이 없고 공식홈페이지는 2013년 이후로 새로 올라온 기사가 없다. 아카이브 스냅샷 상으로는 2017년까지는 홈페이지가 있었고 2018년 6월경부터 흰 페이지에 짧은 문구만 띄운 것으로 보인다.
  • 아미가 뉴스: 아미가와 아미가 관련 회사의 근황을 볼 수 있는 사이트.
  • amiga.org: 아미가 커뮤니티 사이트
  • English Amiga Board
  • Aminet: 아미가 소프트웨어 아카이브 사이트
  • http://amigastore.eu/en/: 아미가 하드웨어 판매사이트


  1. [1] 모토로라 68000 7 MHz
  2. [2] "개인용 컴퓨터" 에서 최초로 구현했다는 것이 크다는 의미이다. 선점형 멀티태스킹의 이론적 토대는 이미 한참 전부터 있었고 하다 못해 1970년 대에 만들어진 유닉스만 봐도 이미 그 정도는 지원하고 있었다.(당시에 컴퓨터란 메인프레임의 단말기에 불과했다.)
  3. [3] 하지만 1985년 당시 1600달러면 당시 원화 환율로 환산하면 우리 돈으로 140만 원이 넘는다. 당시 대졸 신입사원 초봉이 20~30만원, 서울시내 사립대학 한학기 등록금이 50~60만 원, 개포동 주공아파트 11평형이 1200만 원이었다는것을 생각하면 성능에 비해서 싸다는 것이지, 결코 싼 물건은 아니었다. 그 당시 컴퓨터는 오늘날과 달리 대단히 비싸 극히 일부 계층만이 사용했다. 1988년 기준 대우전자의 MSX 기종인 CPC-400 시리즈가 RGB 모니터까지 80만 원이 훌쩍 넘어갔고 IBM PC XT 호환 기종이 신문 광고 기준으로 100만 원 대 중반이었다. 1989년 교육용 PC를 16비트 IBM PC 호환 기종으로 결정하고 세운상가표 XT가 나온 다음에 본체+모노크롬 모니터 가격이 100만 원으로 내려갔다고 좋아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메인 보드용 램 1메가짜리(기가가 아니다!)가 개당 8만원 했다. PC에 8메가 풀로 꽂으려면 한두 달치 월급을 털어야.
  4. [4] 여담으로 당시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매킨토시나 MS-DOS 및 윈도우 호환 기종에서 전원을 끄기 전에 반드시 행했던 하드디스크 헤드 파킹이 아미가에서는 펌웨어 레벨에서 자동으로 실행했기 때문에 좀 더 편리하게 전원을 끌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시대를 앞섰던 기종.
  5. [5] 아미가 500에 CD-ROM 드라이브만 넣은 아미가 CDTV나, 아미가 500의 마이너 업그레이드 버전인 아미가 600을 출시한지 반 년만에 CPU, 칩셋 모두 아미가 600보다 크게 업그레이드한 아미가 1200 출시 등 코모도어의 삽질은 아미가가 수명을 다할 때까지 계속했다.
  6. [6] 사실상 보급한 아미가의 대부분은 500이었다. 그래서 2000, 3000 등 고성능 후계기들이 나온 뒤에도 대부분의 아미가 소프트웨어, 특히 게임은 500을 기준으로 제작했다. IBM PC에서도 80386 CPU와 VGA 자체는 1987년경에 나왔지만 1990년대 초까지 상당수의 소프트웨어가 XT와 CGA/EGA 환경을 상정하고 제작했던 것과 비슷하다.
  7. [7] 당시 유럽에서는 게임기 대신에 홈 컴퓨터를 구매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인기 있던 유럽산 8비트 컴퓨터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가진 아미가 500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8. [8] 현재의 아미가 OS. 워크 벤치가 아미가 OS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름이 사라지지 않고 운영 체제 내 파일 관리자의 이름이 되었다.
  9. [9] 그러나 지금 와선 아미가의 포지션(영상/음악 제작 특화 등)은 현재의 매킨토시(이하 맥북/아이맥 등)가 이어받았고, 그래픽스-시각 디자인 쪽은 어도비 CC 시리즈가 윈도우쪽에 최적화하면서 그쪽으로 특화한 상황.
  10. [10] 카드와 소프트웨어로 구성. 당시 유일하게 3D 애니메이션, 24비트 그래픽, 비디오 저장과 편집, 디지털 효과 추가, 자막 추가 등이 가능했던 비디오 편집 하드웨어/소프트웨어였다. 덕분에 방송사에서 많이 사용했다. 비디오 토스터 홍보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옛날 방송을 기억한다면 익숙한 효과들이 많을 것이다.
  11. [11] 프로 트랙커, 스크림 트랙커, 패스트 트랙커, 임펄스 트랙커, 모드플러그 트랙커 등.
  12. [12] X68000의 라이벌로 여겨지는 FM TOWNS는 1989년에야 나왔고 처음부터 32비트였기 때문에 아미가와 동시대/동급의 기기로 보기 어렵다. 당시의 기술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FM Towns는 한 세대 정도 차이가 있는 기기.
  13. [13] 버블보블, 알카노이드, 골든 액스 등.
  14. [14] R-TYPE, 미드나이트 레지스탕스 등.
  15. [15] 아웃런, 파워 드리프트, 스트리트 파이터 2 등.
  16. [16] 보통 아케이드 기판과 가정용 게임기의 성능이 만나는 시점은 1990년대 중반의 SYSTEM 11 등의 플레이스테이션 호환 기판들이 나온 시점으로 본다. 이때 조차도 MODEL 3처럼 동시대 게임기 성능을 아득히 능가하는 고급 기판은 여전히 나오고 있었다.
  17. [17] 즉, 가로로 한 줄에 놓일 수 있는 스프라이트가 8개까지. MSX2나 패미컴과 동일한 레벨의 제약이다.
  18. [18] 예를 들면 슈퍼 패미컴이나 메가 드라이브스트리트 파이터 2 시리즈는 크게 품질을 떨어뜨려 이식했지만 당시엔 거의 완전 이식인 것처럼 여겨졌을 정도였다. 그래픽과 사운드는 열악해졌지만 그래도 일단 '비슷하게'는 나왔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임 감각이 매우 잘 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 [19] 어차피 아미가 게임 만드는 그 회사가 똑같은 과정을 거쳐 PC판도 만들었으니까 당연하다.
  20. [20] 매드독 맥크리 1, 크라임 패트롤 1
  21. [21] 참고로 16비트 게임기 중, 특히 메가 드라이브는 CPU, 클럭 주파수, 동시 발색 수 등 게임을 위한 사양으로는 아미가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아미가 vs 메가 드라이브는 아미가 팬들에게 꽤나 인기있는 토론 주제 중 하나.
  22. [22] 인텔 맥은 사실상 PC와 동일한 아키텍처고 독자 아키텍처로서의 매킨토시(68K맥, 파워맥)의 혈통은 IBM메인프레임이나 슈퍼컴퓨터 같은 곳에서나 이어지는 수준이고 개인용 하드웨어에서는 끊겼다고 생각한다면 매킨토시의 '하드웨어'가 살아남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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