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타로

安倍晋太郎 / 안배진태랑[1]

1. 개요
2. 생애
3. 기타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총리를 지낸 아베 신조의 부친이다. 1924년 4월 29일 출생. 자유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으며, 1980년대 일본 외무상을 역임하였다. 친한파로, 아들 아베 신조와는 전혀 다른 정치 성향을 가졌던 걸로도 유명하다. 아베 신조자유민주당극우파라면 아베 신타로는 자유민주당중도우파에 해당된다. 아베 신타로는 시모노세키재일 한국인이나 한국계 일본인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고,그들의 얘기에 귀기울였다고 한다.

2. 생애

1924년에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의 고향인 야마구치 현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 아베 간(安倍寛)은 중의원 의원을 역임하기도 했던 정치인이었다.[2]

1948년 도쿄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3] 마이니치 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했다. 3년 후인 1951년에 기시 요코와 결혼했다. 참고로 기시 요코는 기시 노부스케의 딸이다.

(결혼 생활 초기. 부인 요코와 함께. 안고 있는 아이가 장남, 부인이 안은 아이가 차남 아베 신조다)

기자 생활 8년 후 기자를 그만두고 외무성에 들어가 비서관이 되었고, 1년 후인 1957년부터 총리실 비서가 되어 당시 총리가 된 장인 기시 노부스케를 직접 보좌했다. 역시 1년이 지난 1958년에는 처음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는데, 현직 총리였던 장인의 후광을 업고 무난히 당선되었다. 다만 이 때문에 기시의 데릴사위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본인은 스스로는 아베 간의 아들이지 기시의 데릴사위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정치 성향도 신타로는 아버지를 따라 평화주의자였으며, 친한파 기조를 가졌다.[4][5]

이후 1967년 농림정무차관, 1974년 미키 다케오 내각에서 농림대신,[6] 1977년 후쿠다 다케오 내각에서 관방장관, 그리고 1977~81년 집권 자민당의 정조회장 등의 요직을 지냈다.

▲ 1980년대 외무상 시절. UN 총회에서의 연설 모습

특히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취임 후, 외무상으로 임명되어 4년 동안 재직했다. 이때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미국 정부와 동맹 관계 강화를 비롯한 1980년대 일본의 외교정책을 실무적으로 주도했다. 외무상을 물러난 1986년에도 자민당의 총무회장을 역임했고, 1년 후 나카소네의 후임 타케시타 노보루 내각에서는 자민당의 2인자인 간사장에 올랐다.

이처럼 착실히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일본의 차기 총리까지 노릴 수 있는 유력 정치인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러나 1년 후인 1988년 리크루트 사건으로 인해 타케시타 내각이 붕괴되었고, 본인도 자민당 간사장을 물러나야 했다. 이 사건으로 '부패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정치 경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설상가상으로 1990년 8월에는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입원했는데, 1개월 후 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1년 5월 15일, 향년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3. 기타

(기시가 안고 있는 남자 아이가 바로 아베 신조 현 총리이다. 맨 위쪽의 안경쓴 남자는 부친인 아베 신타로)

상술했듯이 그의 장인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이고, 그의 아들은 아베 신조 현 총리이다.[7] 때문에 그 자신도 외무상, 자민당 간사장 등의 요직을 지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인지도는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없지 않다.

기시와 아베 가문에서 가정부로 40여년을 지냈던 구보 우메는 2006년 '주간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타로가 종종 '나는 조선인이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아베 신타로가 본인의 가문은 북한 지역에서 건너왔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보 우메가 알아본 내역으로는 10세기 경 발해 도래인이었던 것 같다고 한다. 집안의 유래는 불분명하나 아베 신타로 본인은 일단 조선에서 건너온 도래인 출신이라고 인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아베 일본 총리 부친, "나는 조선인이다

또한 아베 신타로의 장인인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인 사토 에이사쿠(둘다 기시 가문에 양자로 들어감)는 심수관 14대와의 대화에서 본인 집안이 1600년대 이후에 건너온 조선인 출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1. [1]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아들과 얼굴이 매우 닮은 편이다.
  2. [2] 아베 간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도조 히데키 등 군부의 전횡에 반대하는 활동에 나서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에 타계했다. 그의 아들 신타로도 그의 뜻에 따랐으며 2차대전 당시 군국주의 정권의 일원이긴 했으나 딱히 적극적인 동참자는 아니었다. 이후에도 친한파로 분류되는 정치 성향을 가졌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신타로는 우익 진영의 거두였던 기시의 사위가 되었고, 손자인 아베 신조는 친할아버지보다 외할아버지의 노선을 이어받아 대표적 우익 정치인이 되었다.
  3. [3] 입학 당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이어서 도쿄제국대학 학생이었다.
  4. [4] 다만 아들 아베 신조는 외할아버지 기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아버지 신타로와 정치 성향이 반대가 되었다. 신타로의 전담 기자였던 노가미 다다오키가 아베 신조의 여러 지인들과 인터뷰하여, 신조의 생애를 기록한 '아베 신조, 침묵의 가면'에 따르면 아들인 신조하고 갈등과 불화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언론사인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인 노가미 기자는 아베 신조가 자신에게 차가웠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에 자신에게 잘해줬던 기시에게 기운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5. [5] 헌데 1984년 외무상 시절 독도 영유권에 대한 망언을 한 적이 있다.
  6. [6] 미키 당시 총리는 2차대전 당시 아베의 부친이 참여했던 반전, 반군부 활동을 도운 인연이 있었다.
  7. [7] 만약 아베 신타로가 좀 더 오래 살아서 총리까지 지냈다면, 후쿠다 다케오-후쿠다 야스오 부자(父子)보다 앞선, 일본 최초로 아버지-아들의 2대(代) 출신 총리로 기록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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