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누

  J.R.R. 톨킨의 소설에 등장하는 존재에 대한 내용은 아이누(톨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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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종
3. 신화 및 설화
3.1. 오이나와 유카르
3.2. 레타르 세타 설화
3.3. 그 외 설화 및 매체
4. 문화
4.1. 아이누 음악
4.2. 아이누 요리
5. 역사
6. 이미지
7. 아이누 출신
7.1. 실존 인물
7.2. 가공 인물
8. 여담

1. 개요

이 문서는 주로 홋카이도 지역의 아이누에 대해 설명합니다.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도호쿠 북부(아오모리현, 이와테현 북부) 그리고 러시아사할린, 쿠릴 열도, 캄차카 반도 등지에 걸쳐서 분포하는 민족. '아이누'라는 말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일본에서는 턱수염을 새우에 비유해 '蝦夷'라고 쓰고 발음은 에미시(えみし), 에비스(えびす), 에조(えぞ)[5] 등으로 불렀다. 아이누는 크게 "홋카이도 아이누", "사할린 아이누", "쿠릴 아이누"로 나뉜다.

혼슈도호쿠에는 "도호쿠 아이누"란 아이누계 민족도 존재하였고 헤이안 시대에 야마토 조정과 충돌하면서 상당한 세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9세기부터 11세기에 이르러 단계적으로 복속, 현재는 야마토 민족에 동화되어 완전히 사라졌으며 이들의 흔적은 도호쿠 내 일부 지명으로만 남아있다.

언어는 본래 아이누어를 사용했으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일본어러시아어가 대세이다.

2. 인종

홋카이도 아이누[6]

사할린 아이누

쿠릴 아이누

러시아 아이누[7]

북극 문화권의 최남단 민족.[8] 외모는 주위의 일본인이나 한국인과 같은 동북아시아 계열보다는 폴리네시아인이나 호주 원주민, 코카소이드를 닮았으며, 체모가 많다.[9] 하지만 하플로그룹을 통한 DNA 분석 결과에 따르면 외모가 비슷한 위 인종들과는 관련이 없다. Y-염색체(표본소수) 하플로그룹을 통해 분석해 볼 때, 아이누족의 87.5%에게서 하플로그룹 D2가 나타나는데, 이들은 하플로그룹 O2b에 속하는 한반도인의 진출 훨씬 이전부터, 아시아 각지에 진출해 있던 인종으로, 이렇게 인류가 본격적으로 아시아 지역에 퍼지기 전에 미리 진출해있던 인종을 통칭해서 고아시아 인종이라고 부른다.[10]

즉, 아이누인들은 기원이 굉장히 오래된 인종이며, 백인을 닮은 외모 때문에 근대 유럽의 탐험가들이 이들을 보고 처음에는 러시아인으로 착각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며, "극동에 백인이 살고 있다."라며 놀라기도 했고, 그 덕에 아이누 백인설이 크게 퍼지기도 했다.[11] 러시아에도 아이누들이 살고 있으므로 연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는데, 그들의 외모는 어보리진폴리네시아인에 가까운 외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특징으로는 눈이 들어가 있으며 흰 피부에서부터 까만 피부까지, 코가 짧고 넓은 형태, 긴 인중, 사냥을 위해 손과 발이 발달되어 있다. 사각 형태의 장두형으로 머리가 크며, 치아가 매우 작고, 입술이 두껍고 볼살과 광대가 발달해있다. 과거 아기를 밸 때 후손을 유지하지 못하고 떼죽음당한 기록도 존재한다. 키는 근처 아시아 민족들과 비슷했다.[12]

하플로그룹 D2의 경우, 일본인의 34.7%에게서 이 유전자가 나타나며, 관동에서도 48.2%가 이 유전자에 속한다. 비교적 근세기에 일본에 복속된 도호쿠, 홋카이도 지역에서 이보다 높게 나타난다. 관서 지방에서도 꽤 나타나는 걸로 봐서는 후대에 큐슈, 관서 지방을 통해 일본 열도에 진입한 야요이인[13]들이 선주민인 조몬인들을 무작정 전쟁을 통해 몰아낸 것은 아니었고[14], 융화 등을 통한 포섭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일 거라 추정된다. 이를 통해 현대 일본인은 O2b계열의 이주민과 D2계열의 아이누족이 혼혈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몬인들은 사할린 섬에서부터 일본 열도 유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처의 한국인이나 퉁구스에게선 하플로그룹 D2가 적게 나타난다. 한국의 D2유전자는 일부 지역에 극한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볼때 한자릿수대의 유전적 분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일본의 주류 유전자가 D2계열임을 감안할 때 명확한 차이임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오키나와 제도에서도 하플로그룹 D2가 많이 발견되는데, 1. 류큐 왕국을 건설했던 류큐인들이 오키나와 제도에 진입한 건 역사시대에 해당하는 비교적 후대의 일이었으며,[15] 2. 그들이 사용했던 류큐어는 일본어와 동일 계통에 속한다.라는 2가지 근거를 이유로 일본 열도에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오키나와 제도에도 조몬인들이 먼저 진출해서 살고 있었지만, 후대에 진출한 류큐인들이 그들을 정복, 포섭하고 류큐 왕국을 세웠기 때문에 오키나와 제도의 하플로그룹 분포가 현대와 같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명에 기반한 언어학적 관점에서 아이누인의 분포를 파악하면 이렇게 나타난다. 의외로 혼슈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혼슈의 아이누는 간토와 도호쿠 지역에 주거하고 있었고, 이들은 자체적으로 7세기 무렵부터 11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진행된 일본인들의 정복과 동화로 일본인에 흡수되게 되었다. 다만 도호쿠 아이누인들은 비록 자체적인 통일국가 형성에 실패하기는 했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일본군에게 일반적으로 밀리지 않고, 오히려 일본군이 도호쿠 지역의 정복을 포기하게끔 만들 정도가 되었기 때문에 일본 전통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오니가 아이누족에게서 유래되었다거나 사무라이가 에미시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는 점이 바로 그것.

3. 신화 및 설화

가야노 시게루(萱野茂, 1926~2006)

아이누족의 옛 이야기는 구비서사시 형태가 거의 대다수다.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발달시키긴 했으나 문자를 받아들인 경우가 드물었고, 군소 국가들은 존재했지만 통일된 국가가 형성되어 있지는 않아 기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래서 아이누와 관련한 기록물들은 적지 않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일본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1900년대 인류학 및 고고학 연구자들이 나서기 전까지는 문자화된 기록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나마 아이누족 출신인 지리 유키에(知里幸惠)가 아이누 신화를 많이 발굴해냈다. 또한 아이누족 출신 학자였던 가야노 시게루(萱野茂, 1926~2006)가 아이누족으로선 최초로 참의원[16]이 되어 1997년 '아이누문화진흥법'의 제정을 이뤄내기 전까지는 문화활동에 필요한 법적 지위 보장도 힘들었다.

3.1. 오이나와 유카르

아이누의 구비서사시는 오이나(성전[聖傳])와 유카르(영웅사곡[英雄詞曲])로 나뉜다. 오이나는 투이탁(туитак), 우에페르케(уэпэркэ)로도 불린다. 유카르의 특징 중 하나는 이야기를 말해주는 구전자가 있다는 점이다.

오이나는 신들의 이야기로, 그중 오이나 카무이가 가장 유명하다. 오이나 카무이는 지진이나 해일 등의 재해가 나타나면 등장하는 반인반신으로 그리스 희극에 나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매우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유카르는 신이 아닌 영웅 서사시다. 물론 영웅뿐 아니라 곰이나 흰 개 등 자연의 강자 혹은 자연 자체를 상징하는 동물도 등장한다.

3.2. 레타르 세타 설화

하얀 털의 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17] 관녀 유와나이가 레타루 세타(하얀 개)의 정을 얻고 아이를 낳았다는 설과 늑대 여동생이 인간과 결혼한 이야기, 흰 개가 인간에게 시집와 세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신화라고 하기에는 기록이 너무 적었다.[18]

아이누 문화 연구가인 사라시나 겐조 교수의 책인 '아이누 신화'에 의하면, 사실 옛날에는 늑대를 '세타'라고 불렀는데, 관녀 유와나이 설화를 번역한 사람이 '세타'를 흰 개로 오역했기에 개 관련 설화로 알려졌다고 말하며, 늑대로 봤을 경우에는 수렵 민족들에게서 나타나는 늑대 관련 설화와 같은 부류라고 정의했다.

레타르 세타 설화를 영상화해 신화로 재구축한 작품이 바로 그 유명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 재앙신의 저주를 받은 에미시 일족의 왕자 아시타카는 마을을 떠나 서쪽에 가서 들개신 모로의 수양딸인 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즉, 과 아시타카가 각각 이 설화의 흰 개와 인간에 해당한다. 역사적으로 둘의 후손인 아이누가 나중에 탄압받게 되기 때문에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의견이 많다.

마찬가지로 아이누 설화를 모티브로 만든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에서부터 아이누 설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미야자키는 자료가 부족하던 레타르 세타 설화를 현대인들이 쉽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로 부활시켰고 레타르 세타 설화를 다룬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가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반대로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기록이 적었던 레타르 세타 설화는 아이누 신화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3.3. 그 외 설화 및 매체

아이누족 전설에 나오는 크로복클(コロボックル)이라는 요정이 있는데 일본의 신화 중 소인 관련으로는 가장 네임드급이다. 《목장이야기 코로보쿠르 스테이션》등 모티브나 제목 등을 차용하는 경우도 꽤 있는 듯. 사토 사토루가 쓴 소설 《아무도 모르는 작은 나라》의 소재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이무기를 물리친 소녀영웅 시토나이의 이야기도 있다.

4. 문화

4.1. 아이누 음악

아이누어로 노래를 우포포(ウポポ)라고 한다.

묵쿠리의 모습

톤코리의 모습과 톤코리를 연주하는 여성

아이누의 전통 악기로는 주즈하프(Jew's harp)를 닮은 채명악기인 묵쿠리(ムックリ, Mukkuri)와 사할린 지역에서 쓰인 오현금(五弦琴)인 톤코리(トンコリ, Tonkori) 등이 있다.

아이누 음악 뮤지션으로는 톤코리 연주자인 오키(OKI, 본명 카노 오키加納沖)와 그가 이끄는 밴드 '오키 덥 아이누 밴드'(Oki Dub Ainu Band), 안도 우메코(安東ウメ子, 2004년 작고) 등이 있다.(아이누 음악 스튜디오 CHIKAR STUDIO 사이트)

안도 우메코의 페캄베 욱(Pekambe Uk, 밀 수확 노래). 톤코리 반주는 오키의 연주다.

사할린 록(Sakhalin Rock)

수마 무카르(Suma Mukar)

4.2. 아이누 요리

아이누 요리는 사냥으로 얻은 육류나 해산물을 많이 이용하며 야생에서 채집하는 식물이나 소규모 농경으로 수확한 작물들을 사용한다. 현재 홋카이도에 아이누 음식점이 드문드문 있다고 한다.

  • 오하우(オハウ, Ohaw): 생선, 육류, 산나물, 채소 등을 넣어 끓이는 국. 연어를 많이 쓰는 모양. 홋카이도의 일본요리인 연어 전골 이시가리나베(石狩鍋)가 오하우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 라타스켑(ラタシケプ, Rataskep): 채소나 산나물, 콩과 기름(생선기름이나 비계)을 소금간 하여 섞어 만드는 요리. 요즘 만들어 지는 것은 버터를 쓰며 비쥬얼이 단호박 샐러드나 감자 샐러드 비슷하다.
  • 사요(サヨ, Sayo): 피(식물)나 쌀 등으로 만드는 죽 요리
  • 시토(シト, Sito): 아이누의 떡 요리다. 고대 일본에서 먹던 떡인 시토기(しとぎ)가 기원으로 추정된다.
  • 치타탑(チタタプ, Citatap): 생선이나 육류를 다져 만든 요리다.
  • 루이베(ルイベ, Rui-be): 연어를 얼려서 익히지 않고 먹는 것.[19]
  • 토노토(トノト): 나 다른 잡곡을 원료로 해서 빚은 아이누 전통주이다.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한 청년 만화인 골든 카무이요리만화 수준으로 아이누 요리가 많이 나온다. 이 문서보다 골든 카무이 문서가 아이누 요리에 대해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나 싶을 정도.

5. 역사

유골 등을 통한 고고학 연구에 의하면 아이누인들은 일본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조몬 시대를 주도했던 조몬인들의 직계 후예에 해당된다고 추정된다. 조몬인들은 혼슈 및 캄차카 반도를 통해 일본 열도로 진출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단, 아이누인들이 완전히 순수한 조몬인의 후예는 아니고, 북방에서 내려온 퉁구스 계통이나 니브흐 계통, 후대에 들어온 일본인들과의 혼혈이 어느 정도 일어났었을 거라 보고 있다. 다만 혼혈이 광범위하게 진행되지 않았을 뿐.

고고학적으로 홋카이도에서 발견되는 찰문토기(擦文土器)로 대표되는 찰문 문화(擦文文化, 7세기~13세기)가 현재 아이누 문화의 기원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어업을 중심으로 사냥과 소규모의 농경으로 식량을 구했으며, 철기도 제조하고 사용하였다. 수혈식주거(움집) 생활을 했다. 출토되는 동전과 거울을 통해 중국, 야마토 조정과 교류가 있었다고 추정된다.

또한 오호츠크 문화도 아이누 문화에 영향을 끼쳤으며 예시로 곰 숭배문화가 있다.[20] 언어는 사츠몬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몽골 제국은 아이누 족이 살던 사할린 섬을 타타르 해협을 건너 1264년, 1284년, 1285년, 1286년에 침공하기도 했다. 원사 세조본기에 따르면 1만의 병력을 투입했다고 하는데, 몽골군은 겨우 2만 병력으로도 러시아 공국 연합군 8만을 탈탈 털어버릴 만큼 당대 기준으로 정예병이었기 때문에 아이누인들에게는 가히 외계인의 침공이나 마찬가지의 날벼락이었다. 몽골군은 사할린에 거점을 확보하고 둔전을 일궜지만, 아이누들의 저항이 의외로 강력했고 하필 1287년 몽골 본국에서 난이 일어나기도 해서 사할린 지배가 그리 오래가진 못했고 조공 체제를 유지했다. 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상기한 일본 큐슈 침공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하기 쉽지만, 원, 명대의 지도를 보면 사할린과 홋카이도, 일본이 쭉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몽골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21]

역사적으로 '일본사'의 영역은 규슈혼슈 서부지방에서부터 동쪽으로 퍼져나가면서 확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누를 포함하여 야마토 조정의 통치가 닿지 않는 주민들을 싸그리 에미시(えみし)라고 부르며 정벌하였는데, 이를 군사적으로 달성하는 직책의 이름이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이며, 덴노 아래 가장 높은 직책이었다. 그리고 전국시대 이후 일본을 통일한 군웅들은 서로 이 자리를 본인이 획득하려고 들었는데, 이 정이대장군을 일본어로 읽으면 세이이다이쇼군, 즉, 우리가 아는 쇼군이다.

정이대장군이 되면 북방 정벌을 위해 마련된 군사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그 세력이 미치는 지역은 혼슈 동북부였는데 이는 혼슈 서부에 위치한 덴노와 제법 거리가 떨어져 독자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 정이대장군이 '에미시'를 쫓아내고 혼슈 북부를 장악해 갔으며, 이후 차차 중앙의 통제력이 떨어져가자 종국에는 둘의 권력이 뒤집혔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모노노케 히메에서 이런 에미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일본이 혼슈를 장악한 이후, 무로마치 시대15세기 경 홋카이도 끝자락에까지 일본인들이 침략하였다. 다케다 씨의 분파인 카키자키(蠣崎) 가문이 이곳을 지배했으며 1599년 마츠마에 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들의 영역도 마츠마에 번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이누들은 자신들의 생선과 모피를 마츠마에 번이 가져오는 금속 도구나 등으로 맞바꾸었다. 아이누와의 무역을 독점한 마츠마에 번에 의해 이러한 교역 관계는 아이누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어갔다. 이러한 와중에 갈등이 빚어지며 코샤마인의 난(1457년)이나 샤쿠샤인[22]의 난(1669년)같은 큰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23] 그러나 마츠마에 번은 이러한 봉기들을 에도막부의 도움을 받아가며 제압해 자신의 입지를 견고하게 다졌다.

1869년 보신전쟁에서 에조 공화국이 멸망하고 홋카이도는 완전히 일본 제국 치하에 들어갔다. 일본 제국에서는 아이누를 구 토인(旧土人)이라고 불렀으며, 일본의 어용 인류학자들은 아이누를 '인간의 덜 진화된 모습'으로 간주했다. 특히 1899년 제정된 《홋카이도 구 토인 보호법(北海道旧土人保護法)》은 아이누에게 대타격을 안겼다. 말이 보호법이지 그 내용은

  • 아이누의 토지 몰수
  • 수렵 금지
  • 아이누 고유 풍습 금지
  • 일본어 사용 의무화
  •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

등으로 사실상 아이누 말살법이나 다름없었다. 이 법안의 내부 조항에 따라 아이누들에게 따로 또 농지를 나누어 주기는 했는데 죄다 농사가 불가능한 불모지였다. 결국 새로운 농지에 정착하지 못한 아이누들은 빈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이누 여성들 또한 일본인의 첩으로 들어가 혼혈아를 낳아야 하는 참담한 역사도 있었다.

아이누 다큐멘터리 <당신은 아름답다>에서 보면 아이누의 후손들은 돌을 맞고 라고 놀림받았으며[24] 결혼이나 취직에도 불이익을 당했다고 한다. '사카이 미나'라는 아이누족 여성은 학창 시절 아이누라고 놀림당해 자신의 털을 상처나면서까지 깎아야했고, 아이누 노인의 말에 따르면 아이누들은 일터에서 아이누어를 쓰다 걸리면 감독관에게 꾸중들었다고 한다.[25] 일제강점기의 수난을 받은 한국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1994년에 아이누로서는 최초로 정치인 겸 학자인 카야노 시게루(萱野茂, 1926~2006)가 참의원이 되었으며,[26][27] 1997년에 구 토인 보호법을 폐지, 《아이누 문화 진흥법》을 제정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1997년 니부타니 댐 건설 금지 소송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홋카이도 비라토리 정(平取町) 니부타니(二風谷) 일대는 원래 아이누들이 연어잡이 의식을 치르는 종교적 성지였으나, 1973년 정부에서 댐을 건설하였으며 아이누들의 피해는 보상금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카야노 시게루를 비롯한 아이누들은 이를 거부하고 니부타니 댐 건설 금지 소송을 제소했다.

1997년 "토지 몰수는 위법이나, 이미 건설된 댐을 파괴하는 것은 공익에 위배되므로 불가능하다." 라고 최종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 때 법원에서 아이누족이 일본의 선주민족이라는 것과 아이누의 권리를 인정하였으며, 이는 아이누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의의였다. 또한 아이누가 원고 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비용을 부담하지 않게 되었다.

아이누족은 2008년(!)까지도 일본 정부에서 "민족"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특히 1986년에는 총리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일본은 단일민족국가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가 간신히 "일본에 소수민족이 존재한다"고 인정한 게 1996년이며, 그나마 아이누를 소수민족으로 인정한 건 2008년의 일이다.

사실 아이누를 민족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즉 아이누에게 국제법상의 민족자결권이 인정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경우에 따라 아이누족이 이를 근거로 독립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긴 하다. 자국 내의 소수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경향은 대체로 어느 나라에나 있다. 물론 국제인권법은 국내에 소수민족이 존재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국가의 재량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결국 일본 정부는 2019년에 아이누족들을 '원주민'으로 인정한다고 밝혔다.#[28]

6. 이미지

한때 공교육에서 아이누의 취급도 미묘했는데, 홋카이도 개척사를 다루면서 "홋카이도에는 사람이 없고 과 아이누만 살았다."고 황당한 서술을 해버린 탓에, 아이들이 아이누를 인간이 아닌 무슨 동물의 일종으로 알고 자라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현대 일본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아이누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늘고 있다.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일본 제국 시절에는 야요이인을 중심으로 한 단일민족설이 주류를 이뤘고, 이를 부정하는 실례였던 아이누인은 탄압당했고 전후에도 그 잔재가 남아서 여전히 아이누족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일본인은 야요이인을 주류로 한 조몬-야요이인의 혼혈이라는 사실이 고고학계, 유전학계 등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졌다. 그래서 전후 세대는 조몬인 또한 야요이인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의 조상이라 인식하게 되었고, 조몬인이 가진 긍정적 이미지[29] 또한 여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여기서도 극우파들은 여전히 아이누인들이 탄압받았다는 걸 아예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혜택(...)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개드립을 치곤 한다. 참고로 일본 극우파는 여전히 아이누가 선주민족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결국 조몬인이 가지게 된 긍정적 이미지는 조몬인의 직계후손이라 할 수 있는 아이누인에게도 전이되었고, 아이누인이 창출해낸 언어, 사상, 신화, 의복 등의 매력적인 문화는 자본주의의 막강한 힘에 의해(...) 각종 문화상품으로 탄생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여하튼 덕택에 일본 넷상에서 아이누인들의 피가 많이 섞인 혼부 북동부와 홋카이도인들이 남방계의 피가 많이 섞인 혼슈 서남부와 규슈 지역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개드립이 횡행하기도 하였다.(...).

아이누인의 비극적 역사에 관한 좋은 참고자료로는 카야노 시게루가 쓴 '아이누 민족의 비석'이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은 주로 가족과 개인의 체험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이보다 더 민족의 전체상을 다룬 내용을 원한다면 '변경에서 바라본 근대(부제: 아이누와 식민주의)'라는 책도 일본의 아이누에 대한 폭압적인 식민정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밖에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왕도의 개'에서도 19세기 일본의 이른바 홋카이도 '개척'에 의해 자신이 살던 땅에서 노예 취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이누족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최근에는 노다 사토루의 골든 카무이가 정발되는 등 일본 근현대사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아이누의 차별이 조금씩 재조명되고 있다.

7. 아이누 출신

7.1. 실존 인물

7.2. 가공 인물

※ 아이누의 문화가 모티브인 경우는 ◇ 표시.

8. 여담

  • 아이누라는 명칭은 아이누족이 자신들과 교역을 하는 일본인들에게 자신들을 오랑캐 취급하는 '에조' 대신 불러달라고 요구한 명칭이다. 반면에 자기들끼리 자기 민족을 부르는 명칭은 '동포'를 의미하는 우타리(ウタリ, Utari)이다.[42] 즉 '아이누'는 다른 민족이 자신들을 지칭할 때 불러주길 바라는 명칭이고, '우타리'는 아이누족이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인 셈.
  • 아이누족이 자신들의 땅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뜻의 아이누 모시르(아이누어: アィヌモシ/Ainu mosir, Aynu mosir, 일본어 표기: アイヌモシリ)라고 한다. 오늘날은 주로 홋카이도를 가리키지만 쿠릴 열도사할린도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신(神)이 사는 곳은 카무이 모시르(아이누어: カムィモシ/kamuy mosir, 일본어 표기: カムイモシリ)라고 부른다. 혼슈는 '이웃 사람의 섬'이라는 뜻의 시삼 모시르(아이누어: シサㇺモシ/sisam mosir, 일본어 표기: シサムモシリ) 또는 '이웃 섬'이라는 뜻의 사모르 모시르(아이누어: サモㇿモシ/samor mosir, 일본어 표기: サモロモシリ)라고 불렀다고 한다.
  • 17~18세기 일본 문헌에 아이노(アイノ)로 기재된 경우도 많다. 아이누어의 /u/는 일본어의 (우~으)단과 동일하지 않아서 일본인들 귀에 (오)처럼 들리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 조선 시대에 선달 이지항이라는 사람이 일행과 함께 표류해서 홋카이도 북방의 제도에 살던 아이누를 만났던 기록이 있다. 표주록이라는 책을 남겼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여기를 참조.
  • 일제강점기 당시, 홋카이도의 광산 등지로 강제노역에 끌려간 한국인들 중 일부가 광산에서 탈출하여 도망치다 아이누인 마을로 숨어들고,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서 혼혈아를 낳은 사례가 약간 있다고 한다. 자신을 이런 이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2ch에 스레를 세운 적이 있다. 또한 글쓴이에 따르면 자신이 아는 모든 한국-아이누 혼혈인들은 자신들을 그냥 아이누 출신이라고 말한다고 밝혀 재일 한국인들과 아이누들 간의 상대적 대우 차이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 조정래아리랑에도 한국-아이누 혼혈인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아이누 마을로 탈출해 그들과 함께 살던 한국인 노동자에게 아이누족이 "우리들은 샤모(아이누족들이 일본인을 부르는 호칭)보다 사람 수가 적어서 졌지만, 당신네 조선인들은 덩치도 크고 힘도 좋으면서 왜 샤모에게 졌느냐?"라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조롱하는 말투가 아니라 다분히 염려하는 어조이긴 하지만. 사실 한국도 일본보다 사람 수가 적었다진짜로 저때는 에도막부 때부터 전쟁이 없어서 일본의 인구가 매우 많았다. 하지만 그뒤에
  • 특촬물 아이언 킹[43]의 초반에 나오는 적 조직인 '시라누이 일족'[44]은 바로 아이누를 의미한다는 말도 있다. 다만 일본(야마토 정권)에 억압받은 민족은 아이누만이 아니므로 단정은 금물. 시라누이(不知火) 자체가 큐슈 지방에서 유래한 것이라서 큐슈 일대에 있었던 옛 민족(현재는 동화됨)인 구마소(熊襲) 또는 하야토(隼人)를 뜻할 수도 있고, 큐슈에서 멀지 않은 류큐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 왕도의 개에서는 초반부 주인공 일행을 도와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주인공 역시 중간에 살아남기 위해 아이누족 행세를 하는데 일본인들이 진짜 아이누인 줄 알고 갖은 폭행과 모욕, 면박, 조롱 등 거의 부라쿠민 수준의 대우를 한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아이누인들을 대하는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 우타와레루모노 시리즈 중 1편에 나오는 신인류의 복식과 문화는 아이누 복식이나 문화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45] 또한 세계관 용어 중에도 아이누 언어를 참고한 사례가 제법 있다.[46]
  • 일본에는 아이누 민족의 권익을 지키고 고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아이누 민족당이라는 정당이 있다. 그러나 가리유시 클럽(구 류큐 독립당)이 류큐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과 달리, 아이누 민족당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아이누족은 류큐인들의 오키나와 현이나 아마미 군도와 달리 자기들끼리의 근거지를 상실한 상태[47]이고 이미 상당히 동화돼 버렸기 때문. 그래서 아이누 민족당은 현실적으로 접근해서 일본 사회 내에서 아이누족의 권익을 지켜 달라고 요구하는 정도이다.

  • 아이누 여성들은 성인이 되면 얼굴과 팔에 문신을 새겼는데, 얼굴에 미소 짓는 모양의 문신을 새겼다. 문제는 이게 멀리서 보면 거대한 콧수염으로 보인다.
  • 홋카이도 시라오이군에 아이누 박물관이 있다. 아이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홈페이지에 방문하거나 직접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아이누민족 포로토코탄)


  1. [1] 아이누어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이다. 하지만 흔히 쓰이는 관습 표기는 Ainu이다. 아이누족은 다른 민족이 자신들을 아이누라고 불러주길 희망해서 이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 단어는 원래 '사람'이라는 뜻이며 아이누어에서 여전히 이 뜻으로도 사용한다.
  2. [2] '동포'라는 뜻의 자칭.
  3. [3] 17~18세기 일본 문헌에는 アイノ(아이노, Aino)로 적힌 경우가 많다.
  4. [4] 러시아어의 로마자 표기법 중에 ISO 9:1995에 따른 표기법이다.
  5. [5] 에미시·에비스·에조는 모두 하나의 발음에서 나온 단어이다. 이 단어들은 아이누어의 아어(雅語)로 사람을 일컫는 말인 엔추(エンチュ; 또는 그 고어형)가 일본어로 정착된 것 아닌가 하는 설이 있다. 이 설은 아이누어 연구로 유명한 일본의 탐정 언어학자·민속학자인 긴다이치 교스케(金田一京助, 1882~1971)가 처음 제시했다.
  6. [6] 2017년 기준 12,300명. 1억명이나 되는 인구를 자랑하는 일본인에 비하면 훨씬 적지만 아래 러시아 지역의 아이누들에 비하면 가장 많은 수를 자랑한다. 비공식적으론 대략 20만명으로 추측되나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와 야마토 민족과의 통혼으로 인하여 정확한 인구 수는 알 수 없다. 다만 2000년대 아이누 공식 인구 수가 대략 20,000에서 2017년에 10,000명대로 감소한 것을 보면 그에 따라 비공식 인구 또한 줄어들었을 것이다.
  7. [7] 2010년 기준 109명, 여기에 캄차카 반도도 포함. 이들은 일본 패망 이후 대부분이 일본인으로 간주되어 이들 중 90% 이상이 사할린 내 일본인들과 함께 추방당했다. 소련에 남아있었던 이들 또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갈 위험 때문에 일본식 성씨를 슬라브 성씨로 바꾸고 러시아인들과 통혼해서 후손 스스로가 자신이 아이누인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때문에 러시아 연방 인구 조사국에서는 아이누는 러시아에서 멸종된 소수민족으로 보고 있으며 2012년에 러시아 아이누들은 러시아 내 공식 민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민족 명단에서 러시아인이나 캄차달 혹은 무국적자로 분류된다고 한다. 또한 수가 매우 적고 자신을 아이누로 인식하는 이들 또한 아이누어를 쓰지 않고 러시아 아이누 문화를 보전하려고 하는 행동 등을 보이지 않아서 다른 극동 지역의 소수민족들과는 다르게 어업이나 사냥할 권리 등과 같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출처: 영어 위키페디아.) 한국어 위키백과는 영어에 비하면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8. [8] 남방 한계선은 츠가루 해협(혼슈의 도호쿠 지방).
  9. [9] 초기 러시아 탐험가들 또한 아이누를 처음 접할 당시 이들의 외모는 러시아 농부 혹은 집시와 닮았다고 말했다. 웃긴 건 일본인들이 러시아인을 처음 접하였을 때 아이누와 잘 구별하질 못했다고 하며 러시아인의 붉게 달아오른 피부와 금발 때문에 '붉은 아이누' 혹은 '금발 아이누'라고 불렀다고 한다.
  10. [10] 하플로그룹 D가 주로 분포하고 있는 또 다른 장소는 티베트안다만 제도이다. 이렇게 고아시아 인종이 아시아의 변방에 주로 분포하고 있는 이유를 학계에서는 빙하기가 해소되어 인류의 아시아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현재의 동아시아인들을 비롯한 신흥 인종들이 고아시아 인종들을 벽지로 밀어냈기 때문일 거라 추정하고 있다.
  11. [11] 당시에는 인종적 개념이 잡히지 않은 상태로 조선시대에 온 외국인도 이국적인 사람이나 영양 상태가 좋은 양반들을 보고 백인 후손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마찬가지로 이 당시 서구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무어인에 대한 차별은 인종 개념보단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명목이었다.
  12. [12] 남성의 키는 150cm 후반 ~ 160cm 초반으로 옛 일본인들과 비슷하거나 좀 더 크다.
  13. [13] 현대 일본인의 직계 조상에 해당하는 하플로그룹은 O2b로 한반도 고유 유전자로 불리는 그룹이다.
  14. [14] 사실 야요이인들이 대거 일본에 정착했다고 해도 야요이인이나 조몬인이나 각 지역별로 군소국가들이 난립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합집산이 많았고, 죠몬인이나 야요이인이나 하나로 뭉쳐진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야마토가 백제, 가야와의 교류 등으로 동시기에 존재한 타 국가들이 넘을수없을 정도로 위낙에 강성해지면서 타 지역들을 하나하나 복속하다보니까 이 사실이 묻혀지는 것일 뿐이다.
  15. [15] 유골 분석 등을 통해 12세기 이후 구스쿠 시대부터 도래인이 다수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16. [16] 소속 정당은 일본사회당, 사회민주당을 거쳐 민주당 소속이었다.
  17. [17] 그래서 근래까지 홋카이도 동부에서는 새끼 늑대를 개처럼 길렀다거나 와 늑대가 교접하여 낳은 새끼를 길러서 사냥에 데리고 나가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18. [18] 기록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탓인지 거의 사람들의 입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라 정말 간략하고 무엇보다 주요 인물들(예: 흰 개와 결혼한 인간)의 서술조차 없다.
  19. [19] 러시아 북부의 사하 공화국에서도 스트로가니나라는 비슷한 요리가 있다.
  20. [20] 근처 니브흐 또한 곰 숭배 문화가 있는데 이들 또한 오호츠크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
  21. [21] 원나라 지도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큰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만 봐도 연해주일본 열도는 실제로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지만 지도에는 완전히 다른 위치로 나온다.
  22. [22] 아이누판 크레이지 호스, 혹은 아이누판 제로니모.
  23. [23] 이 당시에 아이누들이 건설한 챠시(チャシ)라는 성채 유적들이 여럿 남아있다.
  24. [24] アィヌ에서 ア를 빼고 그걸 갖고 놀리는 거다. 동아시아인에 포함되는 일본인이 서양권을 포함한 해외에서 잽스나 원숭이 등과 같은 멸칭으로 놀림당하는 걸 생각하면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격이다.
  25. [25] 말이 좋아 꾸중들었다는 거지 실제로 아이누를 짐승 취급하던 그 시절엔 모욕은 물론 폭행도 저질렀을 것이다.
  26. [26] 당선자가 심장마비로 사망하여 자리를 물려받았다.
  27. [27] 일본사회당-사회민주당 소속이었으나 1996년에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28. [28] 다만 일본이 러시아와 쿠릴 열도 분쟁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사과나 참회의 의미가 아닌 영토 확장의 의미로 아이누를 영토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쓴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9. [29] 현대 사회에서 선호되는 비주얼인 큰 눈, 오똑한 코를 가진 것, 기원이 오래된 신비한 인종이라는 것 등. 야요이인은 동양인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여겨지는 작은 눈과 광대뼈를 그대로 갖고 있는 인종이었다.
  30. [30] 민주당 출신이며, 일본 역사상 최초로 국회의사당에서 아이누어로 발언한 정치인이라는 이력이 있다.
  31. [31] 일본홋카이도 침탈에 맞서서 벌인 대규모 봉기였다.
  32. [32] 멤버들 전체가 아이누족 출신이긴 하나, 아이누족들의 본향인 홋카이도가 아닌 오키나와 출신이다.
  33. [33] 아이누 신화의 번개의 신이 모티브.
  34. [34] 아이누의 설화와 연관지어 해석하자면 아시타카와 산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가 아이누의 시조가 된다.
  35. [35] 정확히는 아이누에서 디자인 모티브만 따온 고양이들.
  36. [36] 이름과 소재로 제작하는 무기 이름을 아이누어에서 따 왔다.(#)
  37. [37] 아이누+류큐 혼혈
  38. [38] 아이누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39. [39] 엄밀히 말한다면 이들 대다수는 인간도 아니지만(...) 아이누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것은 확실하다.
  40. [40] 쿠마에 산은 혼슈에 있긴 하지만 옷의 무늬가 아이누풍이라는 언급이 나온다.
  41. [41] 다만 해당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실제 함선 카모이는 일본이 아닌 미국에서 건조되었기 때문에 좀 애매하며 이 때문에 사실은 미국출신이라는 2차 창작이 많이 생겼다.
  42. [42] 이 점은 웨일스인들과 비슷하다. 웨일스어로 웨일스를 가리키는 Cymru(컴르/컴리)는 '동포'에서 유래하기 때문. 참고로 '웨일스'라는 영어 명칭은 웨일스어명과 반대로 (앵글로색슨 족 입장에서)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43. [43] 이 작품의 각본가이자 울트라맨에도 참여하기도 한 사사키 마모루는 고대사에 조예가 깊었고, 북방 기마 민족설과 일본 원주민론을 주장하며 아이누나 류큐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썼다.
  44. [44] 야마토 조정으로부터 정복당해 2천년간 억압받았다는 선주민족이라는 설정이다. 그들은 일본 정부를 야마토 정권이라 부른다.
  45. [45] 잘 보면 일본풍인 것 같으면서도 기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 있다. 물론 좀 더 가다보면 거의 판타지화되서 복식으로 현실국적 따지기는 무의미
  46. [46] 그 예시가 우타와레루모노 1편에 나오는 국가 중 하나인 쿤네카문. 쿤네는 아이누어로 검다, 카문은 아이누어로 신(神)을 가리키는 말인 '카무이'의 다른 표기이다. 즉 쿤네카문은 아이누어로 '검은 신'이라 해석 가능하다.(벼락의 신으로도 해석 가능)
  47. [47] 홋카이도 내 일부 지역에 아이누족 거주자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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