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머스 맥클래리

아티머스 맥클래리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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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1




2000-01 시즌 KBL 베스트 5

가드

포워드

센터

주희정
(수원 삼성)

강동희
(부산 기아)

조성원
(창원 LG)

아티머스 맥클래리
(수원 삼성)

재키 존스
(청주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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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아티머스 맥클래리(Artemus McClary)

생년월일

1973년 12월 28일 (46세)

국적

미국

출신학교

잭슨빌 대학교 (1992~1996)

포지션

파워 포워드

신체사이즈

191cm

KBL 소속팀

수원/서울 삼성 썬더스 (2000~2002)
대구 오리온스 (2003~2004)

수상 내역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1회 (00-01)
KBL 최우수 외국 선수상 1회 (00-01)
KBL 베스트 파이브 1회 (00-01)
KBL 올스타전 MVP 1회 (00-01)

1. 소개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2.2. KBL 시절
2.3. KBL 이후

1. 소개

3년 동안 KBL 무대를 장악했던 조니 맥도웰의 시대를 종식시키며 서울 삼성 썬더스의 KBL 첫 번째 우승을 안겨준 특급 외국인 선수... 였으나, 우승 이후 갑자기 찾아온 무릎부상에 마르커스 힉스안드레 페리 등 더 잘 뛰는 선수들의 유입까지 겹치면서 영향력이 급격히 감소하며, 그 전성기가 너무도 짧았다.

2. 선수 시절

2.1. KBL 입성 전

NCAA 중하위권의 잭슨빌 대학교 출신으로 1학년 때부터 4년간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3학년 때와 4학년 때는 2년연속 컨퍼런스 득점왕을 차지했었다. 4학년 때인 95-96 시즌, 맥클래리는 시즌평균 18.5득점-10.0리바운드-3.7어시스트-2.2스틸-1.3블록슛을 올리며 5개 부문 모두 팀내 1위를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원맨쇼를 펼쳤지만, 소속팀 전력이 워낙 약한 바람에 4년 동안 NCAA 토너먼트에는 한 차례도 나서지 못한 채 졸업하게 된다.

6-5(196cm)의 단신 포워드였던 맥클래리는 NBA판 황금드래프트였던 1996 드래프트[1]에서 당연하게도 낙방했고, 미국 하부리그인 USBL과 IBA를 거쳐 벨기에, 필리핀 리그에 진출했다가 만 27세이던 2000년 KBL 드래프트에 지원해 전체 10순위로 서울 삼성 썬더스 유니폼을 입으며 KBL에 입성한다.

2.2. KBL 시절

2.2.1. 서울 삼성 썬더스 (2000~2002)

특급 외인 버넬 싱글턴을 데리고도 2시즌 연속 4강에만 머물렀던 서울 삼성은, 00-01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선발제도가 개정과 함께(두 선수 신장합계 398.78cm) 싱글턴과의 재계약을 포기[2]하며 최적의 외인 조합 찾기에 나섰지만, 드래프트 픽 운이 나빠 전체 10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마이클 매덕스, 에릭 이버츠, 리온 데릭스 등 괜찮은 빅맨들을 모두 놓친 서울 삼성은 큰 기대없이 그저 힘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맥클래리를 10순위로 선발하는데, 이게 그야말로 대박픽이었다.

투박하게 생긴 외모와는 달리 맥클래리는 그저 힘만 좋은 선수가 아닌, 부드러운 볼핸들링에 스피드와 탄력, 그리고 긴 슛레인지까지 갖춘 만능선수였고, 개막전 24점-10리바를 시작으로 6경기 연속 더블더블 행진을 펼치며 서울 삼성의 개막 6연승을 이끈다. 기량은 출중했지만 독단적 플레이가 많았던 버넬 싱글턴과 달리 시즌 평균 4.8 어시스트를 올릴 정도로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친 맥클래리는 포인트가드 주희정과 좋은 시너지를 보였고, 주희정과 맥클래리, 그리고 식스맨 강혁이 이끄는 속공 농구는 서울 삼성의 새로운 팀컬러가 되었다. 대학 시절 센터로 뛰었던 루키 이규섭 또한 맥클래리의 존재로 골밑 부담을 덜면서 내외곽을 넘나드는 만능 포워드로 성장할 수 있었고, 센터 무스타파 호프(200.7cm)도 전 시즌 대구 동양에서 뛸 때보다 기록은 다소 줄었지만 더 좋아진 골밑수비를 선보이며 서장훈(서울 SK), 조니 맥도웰(대전 현대) 등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았다.

시즌 평균 25.1득점-10.3리바-4.8어시의 전방위 활약으로 서울 삼성이 창단 첫 정규리그 1위에 오르는 데 1등공신이 된 맥클래리는, 챔피언 결정전에서 무려 35.4득점-13.8리바운드-5.0어시스트를 올리는 괴물 같은 활약을 하며 창원 LG를 4승 1패로 가볍게 격파, 서울 삼성에 첫 KBL 우승 트로피를 가져다 준다.[3] 맥클래리 본인은 맥도웰의 3년 아성을 무너뜨리며 2000-01 시즌 최우수 외국 선수시즌 베스트 파이브에 뽑힌다.[4] 앞서 KBL 올스타전 MVP까지 차지, KBL에서 외국인이 탈 수 있는 모든 상을 석권한 맥클래리는 KBL 데뷔 시즌을 완벽히 접수하며 향후 KBL의 정복자가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우승의 주역 맥클래리-호프 콤비와 나란히 재계약을 맺은 디펜딩 챔프 서울 삼성은 전시즌 베스트 5 중 문경은만이 김동광 감독과의 불화로 우지원과 트레이드 되었을 뿐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했고, 01-02 시즌에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혔다. 하지만 시즌 개막 직후 서울 삼성은 하위권 팀에게 연패를 당하는 등 시즌 3라운드까지 5할을 간신히 넘기며(14승 13패)에 그치며 불안한 행보를 보이는데, 이는 팀의 기둥 맥클래리-호프 콤비가 동시에 무릎부상을 당하면서 정상 컨디션이 아닌 채 뛰었던 탓이 컸다. 시즌 6라운드(54경기)로 바뀐 첫 시즌이라 빡빡해진 일정 탓에 원래 좋지 않았던 맥클래리의 무릎은 혹사를 당했고, 에이스가 부진에 빠진 탓에 전 시즌 MVP였던 포인트가드 주희정과 신인상 이규섭마저 동반 부진에 빠지게 된다. 새로 합류한 우지원도 전시즌 문경은에 비해 떨어지는 득점력[5]을 보인 데다 강혁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벤치자원의 수준마저 확 떨어져버린 탓에 서울 삼성은 신흥 강호 대구 동양 등에 밀리며 플레이오프 진출마저 간당간당한 위기에 처한다.

이에 김동광 감독은 팀의 기둥인 맥클래리-호프 콤비에게 부상 치료 및 회복 시간을 주어 플레이오프를 대비하기로 결정하고, 4라운드 시작과 함께 이들 콤비를 제런 콥(193cm)-이산 스캇(201.5cm) 콤비로 일시 대체하기에 이르는데 이 판단은 01-02 시즌 서울 삼성의 최대 패착이 된다. 원주 삼보 시절부터 공격력만큼은 좋았던 제런 콥 그나마 괜찮았지만,[6] 7경기 동안 평균 4.4득점-7.1리바의 초라한 활약만 남긴 이산 스캇은 원주 삼보의 파트릭 은공바와 함께 01-02 시즌 최악의 센터였고, 이바람에 추억의 콤비 이창수-박상관이 급 소환되지만 이 기간에 8연패를 당한 서울 삼성은 급기야 리그 최하위로 추락해버린다.

상황이 급해지자 서울 삼성은 맥클래리-호프 콤비를 부상이 낫지 않은 상태로 복귀시키지만 상황은 반등하지 않았고, 오히려 센터 호프의 무릎 상태가 악화되면서 5라운드 막판 크리스 화이트(203.6cm)[7]로 완전 대체해야만 했다. 맥클래리는 무릎 부상으로 골골대면서도 평균 21.9점-9.7리바-4.4어시-2.2스틸을 올리는 등 활약했지만, 부상도 없었던 주희정-우지원-이규섭 등 국내 멤버들이 동반 부진에 빠진 탓에 서울 삼성은 시즌 8위에 그치며 디펜딩 챔프의 체면을 구겼고, 1시즌만에 위력을 잃어버린 맥클래리는 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한다.

2.2.2. 대구 오리온스 (2003~2004)

KBL을 떠난 맥클래리는 2003년 여름 필리핀 PBA의 코카콜라 타이거스 팀에 입단했고, 팀을 2003 시즌 우승으로 이끌면서 본인은 다시 한 번 필리핀리그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수상한다.

이후 2004년 1월, 한창 순위 경쟁 중이던 KBL의 대구 오리온스는 외인 아이작 스펜서(196.8cm)의 대체선수로 낙점했던 안드레 페리를 드래프트 순번 탓에 서울 삼성에 뺏기자, 과거 서울 삼성 우승의 주역이었던 만 31세의 맥클래리를 대체 외국인 선수로 데려온다. 무릎부상 여파가 사라진 맥클래리는 여전히 쏠쏠한 골밑 존재감을 보이며 몸싸움이 약했던 센터 바비 레이저를 도왔고,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 김승현을 중심으로 김병철, 박재일, 센터 레이저까지 모두 달리는 오리온스 농구[8]에 금세 적응하면서, 팀이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는 데 기여한다. 다만 그 동안의 부상과 나이 탓에 전성기의 운동 능력을 많이 상실한 맥클래리는 예전처럼 골밑을 파고들기보다는 외곽을 돌다가 3점슛을 날리는 경우가 많아졌고(경기당 3점슛 1.4개. 성공률 30.4%) 리그 20경기를 뛰며 평균 21.5득점-8.4리바-2.9어시의 준수한 기록을 올렸지만, 3시즌 전 KBL 최우수 외국 선수일 때의 모습에는 많이 못 미쳤다.

창원 LG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맥클래리는 평균 21점-11리바운드를 올리며 여전한 활약을 보였지만, 홈에서 열린 플옵 3차전에서 매치업상대 빅터 토마스에게 버저비터 3점 슛을 내주는 등 팀의 업셋 패배를 막지 못하며 시즌을 마무리했고, 이후 외국인 선수 제도가 자유계약제로 바뀌면서 다시 KBL 무대를 밟지 못했다.

2.3. KBL 이후

03-04 시즌 종료 후, 맥클래리는 2004년 고향 잭슨빌로 돌아가 미국 하부리그 ABA의 잭슨빌 웨이브 팀에 입단하지만, 시즌 초 팀이 해체되어 버린다(...). 이후 05-06 시즌 필리핀 PBA에 재진출, 알라스카 에이시즈 팀에서 1시즌을 보냈다.


  1. [1] 앨런 아이버슨(전체 1순위), 마커스 캠비(2순위), 스테판 마버리(4순위), 레이 앨런(5순위), 케리 키틀즈(8위), 코비 브라이언트(13위), 스티브 내쉬(15위), 저메인 오닐(17위) 등이 한 해에 모두 쏟아져 나왔다. 이때 드래프트 탈락 동기 중엔 KBL 역대 최고의 백인ㅇ선수였던 에릭 이버츠도 있었다.
  2. [2] 싱글턴 측에서 거절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다음 시즌 싱글턴은 곧바로 은퇴하고 에이전트로 변신했다.
  3. [3] 하지만 챔피언 결정전 MVP는 10.8득점-4.0리바-11.8어시스트를 올린 팀 동료 주희정이 가져간다. 당시 기자단 투표의 폐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 PER 35.6(맥클래리) <<< 20.2(주희정)이라니...
  4. [4] 00-01 시즌 MVP와 챔프전 MVP 주희정, 식스맨상 강혁, 신인상 이규섭에 감독상 김동광까지... 서울 삼성 멤버들은 00-01 시즌 거의 모든 상을 독식했다.
  5. [5] 00-01 시즌 문경은: 18.8점 → 01-02 시즌 우지원: 14.9점.
  6. [6] 이때의 활약 덕분에 대체기간 종료 직후 전주 KCC에 합류, 01-02 시즌 신선우표 토탈 바스켓볼의 일원으로 전주 KCC의 연승을 이끈다.
  7. [7] 01-02 시즌 가장 인기 있던 일시 대체 외국인 선수로, 01-02 시즌 1시즌 동안 무려 4개 팀(전주 KCC안양 SBS인천 SK서울 삼성)에서 일시 대체 선수로 뛰었다.
  8. [8] 03-04 시즌 팀 득점 1위, 어시스트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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