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상위 문서: 국가

남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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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네팔


부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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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방글라데시


영국령 인도양 지역


몰디브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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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جمهوریت (파슈토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 (다리어)

국기

국장

표어

أشهد أن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و أشهد أن محمد رسول الله
(알라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사도다)

면적(㎢)

652,230

인구

36,129,768명 (2018년)

민족 구성

파슈툰족,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족, 기타

국가

파슈토어: ملی سرود 다리어/페르시아어: سرود ملی

수도

카불 (کابل, Kabul)

시간대

UTC+4.5

화폐

아프가니 (AFN)

1인당 GDP

명목 615$(2015)

정치체제

단일 국가, 대통령제, 이슬람 공화국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

임기

2014년 9월 29일 ~ 2019년 9월 29일
2019년 9월 29일 ~ 2024년 9월 29일 (예정)

최고행정관

압둘라 압둘라

공용어

다리어(50%), 파슈토어(35%), 튀르크어(11%),
기타 30여 개의 방언

국교

이슬람

대한수교현황

남북한 동시 수교(남한 1973~1978/2002, 북한 1978)

여행경보

여행금지(전지역)

다리 페르시아어: جمهوری اسلامی افغانستان (좀후리예 에슬러미예 아프거니스턴)

파슈토어: د افغانستان اسلامي جمهوریت (다 아프가니스탄 이슬라미 좀호리야트)

타지크어: Ҷумҳурии Исломии Афғонистон (줌후리이 이슬로미이 아프고니스톤)

우즈베크어: Afgʻoniston Islom Respublikasi (아프거니스턴 이슬럼 레스푸블리카스)

투르크멘어: Owganystan Yslam Respublikasy (오브가느스탄 으슬람 레스푸블리카스)

1. 개요
2. 자연
3.1. 제국의 무덤
4. 국가 상징물
4.1. 국기
4.2. 국가
5. 정치
7.1. 마약 수출국
8. 사회
8.1. 여성인권
8.2. 민족과 언어
9. 문화
9.1. 스포츠
10. 지리
12. 외교
12.1. 러시아와의 관계
12.2. 중국과의 관계
12.3. 영국과의 관계
12.4. 타지키스탄과의 관계
12.5.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
12.6.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
12.7. 파키스탄과의 관계
12.8.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12.9. 아랍에미리트와의 관계
12.10. 이란과의 관계
12.11. 인도와의 관계
12.12. 독일과의 관계
12.13. 터키와의 관계
12.14. 미국과의 관계
12.15. 한국과의 관계
13. 창작물에서
14. 아프가니스탄의 도시
15. 참조 서적

1. 개요

https://publicintelligence.net/afghan-landscapes-2/

http://www.vivowallpaper.com/wallpaper/herat-10708 아프가니스탄 중부 사진 보기

중앙아시아중동, 남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내륙국. 주요 도시는 수도카불칸다하르, 헤라트, 마자르샤리프 등이 있다. 2015년 1월 초 기준 카불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의 치안이 극도록 악화되었다. 애초에 이 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프가니스탄의 홈 경기는 다른 나라(보통 이란이나 타지키스탄)에서 한다.

이 문서에 아프간이나 아프칸, 아프카니스탄 등으로도 검색해도 모두 여기로 들어올 수 있고 흔히 아프가니스탄을 줄여서 "아프간"이라고도 부르지만, "아프칸," "아프카니스탄"은 모두 잘못된 표현들이므로 "아프간," 또는 그냥 원래 이름인 "아프가니스탄"으로 부르는 게 맞는 표현이다.

국명이 "Af...."로 시작하며 전세계 국가를 라틴 알파벳 순으로 배열할 시 최상단에 온다. 하지만 나라 상태는 묻지 말자 따라서 올림픽에서 입장할 때 개최국이 아닌 이상 라틴 알파벳을 쓰는 나라들에서는 그리스 다음으로 들어올 확률이 가장 높다.[1] 동계올림픽에는 참가할 일이 없기에 아직까진 한국에 올 일이 없다. 서울 올림픽에서는 가나다 순이었기에 91번째로 입장했다. 참가국 명단 참조. 그리고 외교부 지정 여행금지국가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머지 나라들은 소말리아, 예멘, 시리아, 이라크, 리비아, 필리핀(일부 지역).

외교부 및 NSC 등 정부합동부처 심의에서 아프가니스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승인을 받지 않은 입국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사태는 외국도 비슷하며 참고로 일본의 경우 북한을 "여행 연기를 추천함" 단계에 두는 반면 아프가니스탄은 "대피 권고" 단계다.

주재국 화폐인 아프가니(AFN)을 사용하지만, 달러 역시 널리 통용되는 편이다.

2. 자연

힌두쿠시 산맥에 인접해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은 매우 높은 고산 지대[2]이며 메마른 지역이다. 최고봉 노샤크 산은 무려 7,492m라는 높이를 자랑 하며, 그 외에는 북부 아무다리야강 유역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으로 덮여있다. 서남부 쪽에 넓은 평지가 하나더 있긴 하지만 그곳은 완전히 사막이다. 참고. 기후는 주로 온대기후로 건조하고 연교차와 일교차가 크며,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탁한 공기로 인해 호흡기 질환 등이 자주 유행하는 편이다. 해발 1,791m의 고지에 위치한 카불의 경우 1월 평균기온 -2.3℃, 7월 평균기온 23.7℃에 연강수량은 312mm[3]이다. 겨울에는 서울보다 약간 따뜻한 수준으로,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가끔 영하 20도도 기록된다고 한다. 이는 여름도 마찬가지로 평균기온은 서울보다 약간 시원하나 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산이 많고 나라 자체가 넓은지라 기온 편차도 꽤 큰데, 중부 산지의 차그차란(چغچران)의 경우 1월 평균기온이 -9.4℃로 모스크바(-6.5℃)보다도 더 춥고, 심지어 영하 46도가 기록된 적도 있다. 반면 서부 사막 지대에 있는 자란지(زرنج)의 경우 7월 평균기온은 35.0℃로 미국의 피닉스(34.9℃)와 비슷한 수준이며, 가장 높게는 영상 51℃까지 기록된 바 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에서 기록된 최고 기온은 2009년 8월 파라(Farah)에서 기록된 49.9℃이고, 최저 기온은 1964년 1월 샤흐라크(Shahrak)에서 기록된 -52.2℃라고 한다.#

그리고 무슨 연유에선지 저격의 명소(?). 베트남 전쟁카를로스 헤스콕이 세운 세계 초장거리 저격 기록은 한동안의 긴 공백 끝에 전부 이 나라에서 깨지고 있다. McMillan Tac-50이 이 나라에서 한 전투에 두번이나 저격 기록을 갱신하고, 그 뒤론 L115A3가, 그 뒤로는 또 Barrett M82이 깨는 등, 진짜 저격의 명소인가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AK47로 무장한 소련군들을 무자헤딘전사들은 구식 리-엔필드 소총으로 800m 이상의 거리에서 저격함으로써 불리한 화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의 사기를 크게 꺾어두었다. 워낙 험준한 고산 지대라 대규모 화력은 이동시키기도 어렵고 체력 안배도 쉽지 않은 곳인지라 자연히 저격수들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은 소련군의 무덤이 되었다. 이에 소련은 고심 끝에 스페츠나츠 저격수를 3배나 늘리고 민간인 마을에 마구 보복하는 등 갖은 수를 썼지만 국제 여론까지 악화되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무자헤딘 측은 소련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현재 저격 최장거리 기록도 저격수의 이름이 밝혀진 기록에 한해서는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기록이다.

3. 역사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 د افغانستان تاري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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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옥수스 - 인더스 문명권

아리아 인

메디아 왕국

아케메네스 왕조

마케도니아 왕국

셀레우코스 왕조

박트리아 왕국

마우리아 제국

인도 파르티아 왕국

쿠샨 제국

사산 왕조

사산 왕조

에프탈 백훈족

사산 왕조

인도 그리스 왕국

인도 스키타이 왕국

키다르

카불 샤시

중세

라시둔 왕조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타히르 왕조

사파르 왕조

사만 왕조

가즈니 제국

셀주크 제국

고르 왕조

호라즘 제국

몽골 제국

일 칸국

카르트 왕조

티무르 제국

후나

티베트팔라 왕조

힌두 (카불) 샤시
카피사 왕국

가즈니

호라즘

델리 술탄 왕조

중근세

근대

현대

바부르

사파비 왕조

호타키 왕조

아프샤르 왕조

두라니 제국

바라크자이 왕조

영국 - 아프간 전쟁

아프가니스탄 왕국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소련 - 아프가니스탄 전쟁

나지불라 - 무자헤딘 내전

탈레반 치하

미국 - 아프가니스탄 전쟁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로디

수르

무굴

}}}

전쟁 역사만 보자면 가히 중앙아시아베트남, 아니 베트남동남아아프가니스탄일 정도.

거의 모든 정치체제를 근 30년간 경험한 파란만장한 국가[4]

비단길이 지나가는 경로였던 터라 여러 민족들이 오고 가는 곳이었다. 그 말은 이 지역의 주민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정복자의 군대들과 계속해서 전쟁을 벌이든가, 아니면 자기들이 정복을 하든가'라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그리스계 왕조와 페르시아계 왕조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다. 이슬람이 도래한 후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칭기즈 칸의 침공으로 몽골 제국, 일 칸국의 지배를 받는다. 일 칸국이 무너진 후에는 티무르 제국, 무굴 제국의 지배를 받는 등 정말 다양하게 지배당했다.

18세기 자체적인 왕조인 두라니 왕조가 세워지나 내분으로 멸망하고 시대는 제국주의 시대로 접어든다. 인도 대륙을 식민지로 삼은 영국은 아프가니스탄도 식민지로 삼으려 하였으나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끝에 포기하고 퇴각하였다.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안정기를 맞았다.[5]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대의 사진들.[6]

탈레반이 집권하고 난 뒤의 아프가니스탄. 위의 사진과 비교하면 정말 충격적이다. 참고로 바로 위의 사진과 같은 장소다.

위 비교 사진은 과거 아프가니스탄이 현재 보수적인 집단 지배 하의 아프가니스탄보다 얼마나 세속적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아프간의 극단적 이슬람식 복장, 구식 건물이라는 고정관념을 확실하게 깨는 사진이라 임팩트가 워낙 크기 때문. 하지만 실제 아프가니스탄에 거주했던 사람 말에 따르면 당시(1950~60년대)에도 마찬가지로 전통 복식 착용이 대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그런 모습은 한창 근대화를 추진하는 국가의 당연한 사회상이기도 하다. 한국도 경성에 양장을 걸친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활보하던 일제시대는 물론, 1950년대까지도 서울시내에서 한복 차림의 시민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시골은 거의 구한말이나 다를 것이 없었지 않은가.

한편, 위의 사진은 아프가니스탄의 개방 구역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서방에 대한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이 구역만 특별히 전통을 따르지 않는 복식과 생활 양식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던 것이라고도 한다. 게다가 어디서나 이런 옷과 문물들이 유행이기는 했으나, 청년층에서만 유행했다는 의견도 있다. 사진의 상징적인 의미 때문에 다소 남용되고 있는 사진이라 잘 가려서 보아야 할 듯싶다. 사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아직 인구의 90% 정도가 농촌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1967년 신문기사를 보면 1958년경에 히잡 의무착용이 폐지되고 1965년에 여성참정권이 주어졌으며, 1950년대말과 비교해서도 10년 사이에 인식의 변화가 크다고 전하고 있다.#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무함마드 자히르 샤 치세 아프간 왕정이 근대화와 세속화를 지향하고 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전 총리이자 무함마드 자히르 샤의 사촌인 다우드 칸이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공화국을 세웠다. 다우드는 소련과 우호적인 관계를 추진하였으나 정작 자국 내 공산주의자들은 탄압했고, 결국 공산주의 정당인 인민민주당이 쿠데타를 일으켜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이 들어섰다. 그러나 공산정권은 지나치게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여 보수적인 이슬람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샀다.

이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공산정권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인접한 소련 내 공화국들의 정치적 혼란을 우려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개입,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퇴각하고 말았다. 소련이 퇴각한 후 이슬람 세력인 무자헤딘은 겨우 버티던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나지불라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무자헤딘은 혼란상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내분으로 찢겨지고 말았고 그 가운데 악명 높은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 탈레반이 등장하였다. 탈레반은 1996년 들어 수도 카불에 입성하였고, 내전의 혼란에 지친 주민들 역시 초기에는 탈레반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탈레반이 집권한 뒤로는 전후 과부들이 많은 현실 따윈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여성의 사회활동과 텔레비전과 영화 상영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남성이라도 면도나 축구를 하면 최고 사형까지 시켜버리는 극도로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는 등 시급한 전후복구보다 문화탄압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민심이 이반되기 시작하였지만 탈레반은 이를 공포정치로 억눌렀다. 그러던 와중에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자 미국이 아프간에 군사를 투입하면서 탈레반 세력은 카불등 주요지역에서 축출당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그나마 자유로워졌다지만 새로 들어선 신정부 또한 부패하기 짝이 없어서 외국정부로부터 원조금을 대거 횡령하는 등 국가발전보다 이권창출에 열을 올리는 모양새이며[7] 탈레반 세력들이 완전히 소탕이 된 것도 아니라서 이들 세력이 수시로 테러를 벌이는 등 치안은 불안하여 전후복구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판이라 신정부에 대한 염증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빈 라덴 제거라는 목적은 이뤘으나 여전히 전투를 치르고 있다. 워낙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모든 게 다 막장인 곳이며 현지인들과 점령군이 서로를 불신하다 보니 세계의 내로라 하는 특수부대들도 피를 상당히 보는 중이고(특히 네이비 씰) 전쟁이 언제 끝난다는 가망도 없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병력 지원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현지 정부의 치안 병력, 즉 군대, 경찰, 민병대도 수틀리면 언제 연합군의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상황. 아프간 침공 이후 하미드 카르자이(حامد کرزی)의 새 과도정부가 들어서 있지만 여전히 상태는 좋지 않다. 게다가 아프간은 현재도 외국인납치가 빈번하게 발생되고 2016년 12월 20일에 스페인 국적의 국제적십자위원회 직원이 납치되는 등 치안도 불안한 상황이다.# 그리고 아프간은 내전이 격화되면서 11개월만에 1만8천명의 군경사상자가 발생되고 아프간 정부가 통제하는 영토는 6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아프간은 내전을 겪고 있으면서 사상자가 1만5000명에 달했고 이 중 30%가 어린이사상자였다.#

게다가 최근들어서면서 아프간에 다에쉬가 진출하면서 아프간에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리고 탈레반의 공세와 함께 다에쉬의 공세로 인해 적십자 회원들이 사망하는 사태가 발생되고 무차별 공격이 발생되고 있다.# 2017년 5월에 카불에서 테러가 발생하자 카불과 헤라트 등 아프간의 주요도시에서 테러를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테러가 자주 일어나면서 아프간에서도 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되었다.# 그리고 아프간에서 일어난 테러로 150명이 사망하자 탈레반 정권이 붕괴한 이후 최악의 테러로 기록되었다고 2017년 6월 6일에 가니 대통령이 밝혔다.# 그리고 아프간은 상반기에 1,662명이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 테러로 인해 사망했다.# 거기에다 다에쉬에 의한 공격이 자주 일어나고 심지어는 다에쉬가 득세하면서 일부 탈레반 조직원들이 아프간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일이 발생되고 피란민 수천명도 발생되었다.##

그리고 아프간내 다에쉬 지부가 부상하면서 종파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아프간에서는 다에쉬, 탈레반에 의한 테러가 자주 일어나고 거기에다 치안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아프간 주민들이 내전지역을 가로질러 평화요구행진을 진행했다.#

2018년 7월 1일에 아프간에서는 소수민족들을 노린 다에쉬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3.1. 제국의 무덤

한마디로 영국소련미국도 모두 실패했다.[8]

큰 나라가 국력만 믿고 여기를 쳤다가 좋은 꼴 본 일이 거의 없다. 몽골, 그리고 무굴 제국 정도가 대부분의 영토를 직접 지배했고, 무굴제국은 애당초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 왕조이므로 이 땅을 직접 지배한 '외세'는 몽골 하나뿐일 정도다. 이는 아프간의 지리적 환경과도 연관이 깊은데 나라 전체가 거대한 산지인 데다 그 험준함도 무시무시한 수준이라 점령군이 적은 비용으로 장기적인 주둔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이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재까지도 나오는 문제점으로 현대에서 과학 기술을 믿고 쳐들어 온 미국과 소련도 결국 산세의 험난함으로 버티며 기습을 하는 게릴라들의 저항에 질려버려 떠나버렸다.

1차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4500명의 영-인도군 병력은 12000명의 민간인과 함께 죽음의 골짜기를 통과하여 후퇴하려다가 포로로 잡히거나 자살하거나 전멸, 의사 1명만 간신히 살아왔다. 나중에 다시 쳐들어간 영국은 이기긴 했지만 절대로 직접 가서 주둔하고 지배하지 않고 전투만 이긴 뒤 물러나서 허수아비 왕조를 조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9]

그러나 이와 달리 직접 지배하려 든 소련은 오랜 개입 끝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여러 내부 문제까지 겹치며 아예 체제가 붕괴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군(탈레반)과의 전면전은 역시 손쉽게 승리했으나 몽골과는 달리 이곳을 점령하려 들었으므로 피해가 막심해지고 있다. 또한 잡으려던 알 카에다도 못 잡고 탈레반은 다시 강성해지는 등 지금도 엿먹고 있다. 그나마 미국은 2011년 5월 2일, 10년만에 오사마 빈 라덴을 죽이는데 성공했으나 정작 파키스탄에서 해냈을 뿐이며 여전히 탈레반 세력은 건재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은 2014년 12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모든 전투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결국 이라크처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국은 공연히 10년 이상 막대한 전비를 퍼부어 국고에 구멍나게 만들고 무고한 민간인 피해를 엄청나게 일으켰을 뿐 탈레반 제거나 민주주의의 정착 같은 목표의 달성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그나마 빈 라덴을 잡아 체면치레에는 성공했지만 그마저도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파키스탄에서 해냈기에 이러자면 뭐하러 여기로 와 전쟁하느냐 볼멘 소리가 많았다. 결국 미군은 완전철수와 같이 전쟁 종결을 선포하면서 러시아로부터 늬들도 결국 똑같았다는 비웃음을 받으며 물러나야 했다. 베트남 전쟁 때처럼 반발하는 세력이 있었으나 그들도 결사적으로 항전을 외치진 못했다.

비슷한 나라로 베트남이 꼽힌다. 강대국인 미국, 프랑스, 중국에게 치욕적인 패전을 안겨주었다. 또한 베트남에서는 중국(3차 베트남 전쟁 말고... 1000년 가까이 중국이 베트남을 지배한 옛 역사를 말한 것)이 그나마 체면치레 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영국이 그나마 체면치레 했다는 점을 보면 정말 비슷하다. 반면 소련, 미국, 프랑스는 체면치레도 못하고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에서 굴욕적으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4. 국가 상징물

4.1. 국기

워낙에 정치 상황이 막장이라 국기도 자주 바뀌었다. 역대 아프가니스탄의 국기. 124년간 22개. 대략 6년마다 한번씩 바뀐 꼴. 영국령 때는 주로 검은색이었다. 1931년부터 1973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왕국 국기를 제외하면 내전기에 거의 3년마다 한번씩 국기(11개)가 바뀌었다. 돌고돌아 다시 비슷한 문양으로 돌아오는데 근 30년이나 걸렸다. 참고로 1996~1997년 국기는 진짜 하얀색 국기[10]였다.

4.2. 국가

제목은 말그대로 아프가니스탄 국가(파슈토어 : ملی سرود)이며 2006년 5월에 지정되었다.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시절 1978년부터 1992년까지 사용된 국가. 보통 گرم شاه لا گرم شاه 라고 불려진다. 가끔 현재 아프가니스탄 국가라고 잘못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기악 버전

1992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된 국가. 단 1996년부터 2001년까지는 탈레반 지배기간이라 금지되었다. 기악 버전

5. 정치

부패인식지수에서는 소말리아북한과 함께 8점(100점 만점)을 기록, 꼴찌를 차지했지만 2014년 부패인식지수 결과 아프가니스탄 점수가 12점으로 향상되어 꼴찌를 탈출하였다. 어쨌든 부정부패가 엄청나다보니 탈레반이 구석으로 찌그러지기는 해도, 여전히 버틸수있는 원인중 하나가 고위층은 물론이고 탈레반을 소탕해야할 단속요원과 군인들도 뇌물만 받으면 대충 넘겨주는 등의 행태를 보이는 등 돈에 환장해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서 민영방송사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서 풍자될 정도다.

오랜 내전전쟁으로 수도 없이 피를 흘렸고 장기간에 걸친 전쟁과 외세 침략으로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이란이나 파키스탄 등 이웃 인접국가들을 떠도는 난민들이 속출하고 있으며 탈레반과 외국군, 여러 지역 무장 군벌간 전투와 유혈 충돌은 끓이질 않고 있고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고 들어선 신정부도 부정부패로 찌들어 있는 등 나라 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이런 현재의 모습에 많은 아프간인들이 희망을 잃고 심지어 비교적 평화로웠던 옛날 자히르샤 왕정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하소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일각에선 왕정 붕괴 후 내전과 유혈 대학살, 외세 개입, 침략으로 헬게이트로 전락했다가 1993년 왕정이 복고되면서 나름대로 안정을 되찾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보디아처럼 이 나라도 왕정으로 복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허나 32년에 거친 전쟁과 내전으로 찢어질 대로 찢어지고 법보다는 군벌과 부족 세력들의 힘이 강력해지다시피 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왕정이 복고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11]

2010년 총선에 한 표를 행사한 아프간 유권자. 따봉

하지만 현재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대통령제가 도입되었다. 2004년 첫 대선에서 하미드 카르자이 당시 자치정부 수반이 쉽게 당선되었고, 2009년 대선에서 재선되었다. 2009년 대선에서는 2위 압둘라 압둘라 전 장관이 30.59%라는 무시 못할 득표율을 올리기도 했다. 마침내 기나긴 카르자이 독재 시대가 끝나고[12], 2014 대선에서 아슈라프 가니 후보가 당선되었다. 사실상 2001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을 이끌어온 카불 시장 카르자이 시대가 막을 내리는 것. 하지만 2014년 대선은 부정선거 의혹으로 점철되었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했던 압둘라 후보가 결선 투표에서 역전당했기 때문. 결국 아슈라프 가니와 압둘라 압둘라 두 후보가 공동정부 구성에 합의하여, 아슈라프 가니가 대통령을 맡게 되었고, 압둘라 압둘라가 최고행정관을 맡게 되었다.

6. 군사

* 현대 아프가니스탄 보안군 항목 참조.

7. 경제

마르코 폴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푸른색'이라고 부른 보석, 라피스 라줄리의 최상품은 바로 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바다흐샨 주에서 나온다. 자그마치 6000년 동안 라피스 라줄리를 캔 광산 사르-이 상그(سر سنگ, Sar-i Sang)라는 광산도 있다고.

이나 망간, 여러 광물자원이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으며 힌두쿠시 산맥 쪽에는 우라늄도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어서 미국은 핵 관련 문제 이란의 핵개발을 미치도록 걱정하는 이스라엘과 유태인들의 압력 만으로도 100% 완전 포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다만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탈레반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13] 손을 뗄 가능성이 확실하다. 석유가 나긴 하지만 생산량이 극히 미미한 수준이고, 현재 미국 자본이 파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을 잇는 오일 파이프라인을 아프가니스탄에 놓기 위한 지속적인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아프리카 밖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초강대국들과의 싸움에 모든 힘을 쏟아낸 아프가니스탄은 이후 거짓말처럼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UN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1인당 GDP는 668달러로 세계에서 14번째로 가난한 나라라고 하며, 이는 남한의 1/40, 미국의 1/80에 불과하다. 심지어 북한(696$)보다도 조금 낮은 정도.[14] 인간개발지수는 0.374로 끝에서 13번째다. 이 인간개발지수는 앙골라에티오피아보다도 낮다.

2016년 유럽 연합(EU)와 아프가니스탄이 공동 주최한 "아프간 지원 회의"에서 유럽연합은 2020년 아프가니스탄에 52억 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하였다. #

우습게도 소련과 기나긴 전쟁으로 소련군 전차라든지 온갖 장비가 고철로 남아 한때 이걸로 팔아먹었다고 한다. 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던 채수문 중령의 회고를 봐도 아프간 산지 곳곳에 소련 전차가 남았는데 베트남 전쟁 이후 미국제 헬기나 온갖 장비가 남아서 90년 초반만 해도 고철로 활용되던 베트남이랑 똑같았다.

7.1. 마약 수출국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다. 이미 17세기에도 아편 재료인 양귀비꽃 재배로 알아주는 기록이 있을 정도. 1960년대 안정적인 생활을 할 당시에도 시골 지역에선 여러 생필품 부족 및 생활난으로 양귀비는 활발하게 재배되었으며 왕실이 금지하려고 했으나, 금지했더라면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거나 굶어죽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금지를 전면 취소할 정도로 양귀비가 생활에 깊숙히 들어온 곳이 많다.

결국 단속한다고 해도 마약은 민병대의 주요 수입원 1등[15]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소비되는 아편 계열의 마약은 아프가니스탄산이 많다. 덕분에 한때는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80%(자료마다 다르지만 어떤 자료는 전세계 생산량의 약 93%)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지역을 골든 크레센트(황금 초승달)라 한다.

아편 생산량이 많은 이유는 아편의 원료가 되는 양귀비꽃이 건조한 기후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건조한 아프가니스탄의 기후와 맞아 떨어지고, 또 양귀비가 각종 해충에 강해서 다른 농산물보다 재배하기 쉽기 때문에 농부들이 유혹에 빠진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대부분이 산지라서 적발이 힘든 점도 있고 전쟁으로 인한 치안 부재 상태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은 완벽한 아편 생산지가 되었다. 재배 지역은 헬만드 주가 가장 많으며, 그 밖에도 칸다하르 주와 파라 주 같은 여러 지역이 엄청난 수를 재배하고 있다.

과거에는 탈레반이 아편 생산을 금지하였지만, 탈레반이 축출된 이후로부터는 자금 확보를 위해 아편 생산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은 아편 생산을 금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농부에게 보조금 지원 형식으로 공식적으로는 많은 양의 아편 농장을 일반 농장으로 바꾸고 있고 또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양귀비를 재배하다가 밀을 심은 이들이 한탄하길 "양귀비꽃 재배로 받은 돈 절반을 겨우 버는데 누가 미쳤다고 이걸 재배하겠는가!?"

국제 밀값이 올라봐야 정작 그들에게 돌아온 돈이 기대 이하였고 부정부패가 위낙 횡행하고 교통망이나 인프라도 그다지 나이진것이 없기때문에 중간업자들 및 정부요인들이 그 수익의 대다수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밀이나 석류 같은 합법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이 팔러 갈 때 검문소를 지나칠 때마다 뇌물을 요구하니 열 터진 사람들은 이나 석류를 죄다 엎어버리는 시위를 벌일 정도로 썩은 공권력도 마약 퇴치를 가로막고 있다. 그리고 아편이라는 것이 원래 음지에서 거래되는 것을 볼 때 아직도 많은 아편 농장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아니라, 단속해야 할 현지 경찰들도 많은 수가 연루되어 있으며 이들이 뇌물도 받고 단속도 무마시키며 아예 겉으로는 밀이나 다른 곡물을 심고 잘 안 보이는 험난한 곳에는 한가득 양귀비를 키우는 곳이 허다하다.

게다가 미국이 허구헌 날 탈레반 자금줄을 끊고자 지원하는 돈도 단속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그 돈의 대다수가 횡령되어 극히 일부의 주머니로 들어가 사라지며, 단속 수준도 뇌물을 못 바치는 집안, 가장을 잃고 이거 재배로 벌어먹는 집안의 밭을 급습하여 무작정 양귀비를 베어버리는 것인데 이런 행위도 목숨을 걸고 해야 한다. 탈레반이 아니라 이젠 자체적으로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할 정도로 증오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9년 마약단속 경찰 트럭이 지뢰에 터져 23명이 죽기도 했고 양귀비 밭에 지뢰를 심어두기도 하여 단속 경찰이 죽는 경우도 종종 터진다. 더불어 마약 단속반의 적발에 불만을 품고 탈레반으로 들어가버리는 이들까지 생겨나서 미국의 고민을 늘리고 있다.

마약 단속에 대하여 되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 사람을 죽이려는 미국에게 매수된 매국노들의 짓으로 여기며 증오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위낙 깡패짓을 하고 다녀서, 현지인들에겐 도적이라고 악명이 높기에[16] 아이들이나 여자들이 마약단속반들에게 돌팔매질을 할 정도로 단속이 어렵다.

더불어, 마약 단속을 넘어서 재료가 되는 양귀비꽃생필품인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주식인 이나 식용유비누 같은 생필품을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시골이 가득한 아프간에서 양귀비가 모든 걸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양귀비 꽃잎은 과거 오스만 제국이나 여러 지역에서 잼을 만들어 먹었고 씨앗을 갈아서 빵으로 만들어 먹을 수도 있거니와, 식용유로도 만들 수 있으며 마약을 추출하고 남은 줄기는 말렸다가 장작으로 쓰며 남은 재는 비누로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마약을 다 파는 게 아니라 병원도 의약품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비상약으로 쓰이는 경우도 허다하다.[17]

단순히 양귀비를 불태우거나 훼손하는 단속이나 다른 농작물을 대신 심으라는 종전의 행위는 일절 도움이 안된다. 그렇게 해봐야 들어오는 돈도 더 적고 무엇보다 위에 열거한 생필품 자체를 구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즉 저런 문제까지 다 해결해야지 마약 단속에 도움이 되는데 열악한 곳에 물자를 수송하는 문제도 어렵지만 애써서 겨우 수송해봐야 물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18]이므로 양귀비가 많은 지역에서 재배될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미국은 양귀비들을 아예 돈주고 사서 불태우는 작전까지 구사했다가 비난 여론에 밀려 포기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군 내부에선 차라리 우리가 양귀비를 사는 게 괜히 헛돈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는 주장이 거센 상황이다.

참고로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이복아우이던 아흐마드 왈리 카르자이(احمد ولي کرزی)의 별명은 마약왕이었다. 카르자이가 파키스탄의 전 무샤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파키스탄이 마약 유통을 단속 못한다고 불평하자 "당신 동생이나 잘 단속하쇼"라는 비웃음을 들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왈리 카르자이 자신도 나에겐 마약이 있기에 아무나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고 자신만만했으나 2011년 7월 12일 경호원들이 배신하여 총알 수십여 발을 맞고 끔살당했다. 그리고 탈레반이 경호원들을 매수 및 협박했다고 발표하면서 여전히 헬게이트 아프가니스탄을 증명해버렸다.

어찌됐든 현 정부든 탈레반이든 권력층이 마약 거래에 깊이 관련되어 있고 저런 생활 문제가 깊숙히 들어간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약 재배가 사라질 일은 영원히 없어 보인다.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4년도 아프가니스탄의 양귀비 생샨량은 약 6,400t을 기록하여 지난해보다 재배량이 17% 늘었는데 이는 사상 최대의 재배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최근(2017년) 아프간 정부와 유엔에서 공동으로 양귀비꽃 재배조사를 한 결과, 아프간내 양귀비재배면적이 87%(!)나 늘어났고 전년에 비해 급상승했다.#

8. 사회

이슬람 나라들 중에서도 엄청나게 폐쇄적이다. 샤리아를 공식 법률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여론이 99%나 되는 등[19] 이웃나라 파키스탄과 함께 원리주의 성향이 강하다. 이란에서 만든 드라마 가지고도 저질이니 퇴폐적이라고 까대는 나라이니 말이 필요할까. 그러나 이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이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나라들과 견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슬람 공화국 출범 이후에도 이란은 여전히 중동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에서 그나마 순위권 안에 드는 나라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여성 가수 연예계 활동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사실 아프간 내에서도 차이가 있기는 해서 북부 지역이나 카불등으로 가면 나름대로 개방적인데 반해 서부나 남부 지역으로 갈수록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사실 보수적인 여론이 강하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무조건 꽉 막혔냐면 사실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20] 2000년대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로 텔레비전 수상기가 급속하게 보급되면서 적어도 인도 영화나 해외 드라마 같은 것도 볼 수 있게 된데다가 언론의 자유가 생각보다는 잘 보장이 되어있는 편이기 때문에[21] 아프가니스탄 기준으로 제법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있는톨로TV나 1TV등 상업 방송국의 시청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는데다가, 페르시아어 위성방송이나 파키스탄 방송도 꽤 흥하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장노년층들의 폐쇄-보수적인 성향은 여전해서 갈등이 나름대로 있는 편이다. 그래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프간 내에 존재하고 있는 막장치안이나 명예살인, 관료들의 부정부패나 기업들의 결탁 등 사회부조리와 부패상을 널리 알리고 인도 영화터키 드라마 등을 편성하거나 서구나 파키스탄, 인도 음악도 틀어주는 등 나름대로 개방적인 프로그램들[22]을 많이 방영하는 등 아프가니스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많이 하기에 TV가 아프가니스탄에 끼치는 영향은 꽤 긍정적이라 할수있다.

그리고 텔레비전의 보급률이 나름대로 높은데 반해 인터넷은 국토의 대다수가 산지인데다가 인프라를 까는데 드는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인해 쓰는 사람이 적으며 그나마도 사용자들이 도시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그 속도도 느리고 비싸기 짝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사회부조리를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TV와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는 편.

2015년 1월 기준 여성 가수 뮤직비디오 제작 및 공중파 송신이 가능해졌으나, 가슴골이나 다리가 조금만 보여도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상상력을 자극하는 (...)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이란에서는 히잡 차림으로 하라는 제한이 있긴 해도, 니캅 차림으로조차 연예계고 뭐고 사회 활동을 죄다 금지하고 여자를 씨암탉 다루듯 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이란 드라마나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매체는 저질이라고 발악할 만하다.[23]

그나마 권투에 한해서는 여성이 니캅이나 히잡을 벗고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이다. 태권도도 허용은 되지만 히잡은 하고 뛰어야 한다고. 그래도 탈레반 시절 때는 두 종목 모두 여성이 할 수도 없고, 걸린다면 하거나 가르쳐 준 사람까지 동반 처형될 각오를 해야 했다. 이래저래 한국에서 파견나온 태권도 사범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고. 태권도 가르치다 탈레반에 걸려서 고문 당한 사람도 있다. 죽지 않은 게 기적

마약, 전쟁등의 문제로 인명이 손상되거나 마약에 중독되는 사람들이 상당하고 교통이나 치안 등의 문제로 인해 세계적으로 평균 수명이 중하위권이다. 남성이 58살, 여성이 62살 수준에 불과하다.

아프간은 테러발생이 계속 커지면서 온라인쇼핑(!)이 성행하고 있다고 로이터와 톨로뉴스 등 아프간내 매체가 보도했다.#

8.1. 여성인권

저 70년대 사진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 여성들이, 40년 뒤에는 할머니가 되어서 부르카를 착용하고 다니게 되었다. 참고로 위쪽 사진은 1달 전까지만 해도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생각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8월 마음을 180도 바꾸어 미군 증파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왕국 시절만 해도 1921년 아마눌라 왕이 여성교육을 강조하면서 강제결혼과 아동결혼(조혼), 신부값과 일부다처제 폐지를 법제화했고 (물론 시대적 상황상 한계는 있었지만) 소라야 왕비도 여성인권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후 무함마드 자히르 샤 치세 들어 여성교육과 사회참여가 점차 활발해져 갔으나... 왕국 붕괴와 소련군 침공 후 사회적 혼란으로 탈레반 따위가 득세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렸다.

탈레반이 패퇴한 직후에는 다소 여성인권이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면서 여성부가 설치되었고, 여학생들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으며 여성국회의원의 숫자도 100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지만, 2014년 쯤에 이르면 오히려 보수 세력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여성인권은 후퇴하는 상황이다. 2013년에는 조혼과 강제결혼을 범죄로 정하고, 여성을 사고 파는 행위를 금지한 여권 신장 법안이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고 여성의 불복종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의회에서 부결되었다.[24]

2014년에는 친척의 범죄 행위를 증언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서 가정 내 폭력에 대해서 처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 게다가 2016년 3월 9일에 여성이 화형당한 사건이 발생되었지만, 법원은 용의자들을 무기징역에서 징역 20년, 10년을 선고하는 사건이 발생되었다. # 아직까지는 여성인권이 최악이지만, 아프간은 여성 경찰 인력을 1만명으로 끌어올리려는 계획을 하는 중이고 2천명이상의 여경이 활동중이다. # 하지만 여성 인권이 최악이라서 아프간 공군 최초의 여성 비행사가 미국 망명을 신청했다. #

그리고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폐쇄 사회이다보니 여성들을 부르면 부적절하지 않고 심지어는 묘비에조차 여성들이 이름을 적을 수 없는 악습으로 인해 아프간의 인터넷에서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이름찾기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아프간에도 조혼이 널리 퍼져서 여성 3명중 1명이 18살이전에 결혼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게다가 2017년 8월 20일에는 아프가니스탄의 킴 카사디안으로 불리우는 아리아나 사예드가 테러협박에도 불구하고 카불의 호텔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소녀 등 젊은이들이 찾는 등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2017년 8월 30일에 아프간의 바글란 주에서는 여성들에 의해서만 운영되는 식당이 아프간에서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자신이 성추행, 성폭행당한 것을 폭로하는 미국의 미투운동이 아프간에도 확대되고 있다.#

8.2. 민족과 언어

아프가니스탄은 기본적으로 다민족 국가이며 페르시아계가 3/4 이상을 차지하나, 파슈토어와 다리어는 같은 이란어군에 속하기는 해도 상당히 달라서 원할한 의사소통은 힘들다. 파슈토어를 쓰는 주류 민족인 파슈툰인이 대략 전체 인구의 50% 정도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다수 민족이지만,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에서는 산악지대에 사는 비주류 민족 대우를 받고 있다.[25] 그 다음으로 다리 페르시아어를 사용하는 타지크인이 대략 30~35% 정도를 차지한다. 그 다음으로는 하자라인과 아이마크인, 투르크멘인 등이 거주하고 있다. 다만 민족에 따라서 도시화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난다.

하자라인은 차가타이 칸국이 이 지역에 파견했던 튀르크계 점령군의 후손이라고 보는 경우[26]도 있으나 정확한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게 하자라인의 경우는 외형에 있어선 몽골 형질이 강한 투르크멘인들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정작 언어적으로는 튀르크 언어가 아닌 페르시아 계열의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타 소수민족에 비해 도시화 비율이 높은 하자라인이 주류 사회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따로 습득했다고 보기에는 또 하자라인들이 쓰는 페르시아어 방언은 이미 파슈토어, 다리어와는 차이가 매우 커서 의사소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자라인들은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종교적으로 소수파인 시아파이기 때문에 안 그래도 눈에 잘 띄는 외모까지 섞여서 아프가니스탄 내에선 가장 심한 따돌림을 받고 있는 민족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들어선 이후로는 어차피 그 실상은 무슬림이라 해도 탈레반 양아치들 말을 듣지 않으면 온갖 박해를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자라인과 투르크멘, 우즈벡 등의 튀르크인들이 모두 연합하여 북부 동맹군을 구성, 중앙의 탈레반과 대적하기도 했다. 탈레반 입장에서는 일종의 역효과였던 셈.

그 외에 아이마크, 우즈베크, 키르기스,[27] 발루치, 아랍인, 펀자브인 등이 있다. 심지어는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에 이주한 1천 명 정도의 러시아인도 존재해 있다. 아이마크인의 경우는 똑같이 페르시아어를 쓰고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타지크인과 합쳐서 계산하기도 한다. 차이점이라면 타지크인들은 정주 농경민이었으나 아이마크인은 유목민이었다는 점.

다민족국가라서 언어도 다양하지만, 공용어는 다수 인구가 사용하는 파슈토어다리어이다. 다리어는 타지크어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페르시아어의 방언 수준이며, 파슈토어도 분류상 이란계 언어이기 때문에 페르시아어와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소수민족이나 외국 이주민 등으로 인해 우즈베크어, 투르크멘어, 타지크어, 하자라어, 키르기스어가 사용되기도 하며 우르두어, 펀자브어, 약간의 영어도 사용되기도 한다. 러시아어 사용자도 극소수 존재한다. 탈레반이 집권하기 전까지 일부 러시아어 신문과 미디어가 존재했지만, 탈레반에 의해 폐쇄되었다. 하지만 극소수의 일부 아프간인들에게 러시아어는 제2외국어로 중요시되고 있다.[28] 거기에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러시아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동시에 러시아어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고, 영어를 배우는 경우도 늘어나면서 동시에 중국어, 터키어를 배우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러시아어 원문) 아프간에도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중앙아시아 아랍어 방언을 쓰고 있지만, 현재 중앙아시아 아랍어 방언의 화자수는 줄어들고 있다.

교육은 파슈토어와 다리어로 이루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파슈토어 또는 다리어로 수업을 받고, 4학년 때 두 언어 모두 배운다. 교과서 역시 이 교육 시스템에 맞게 발행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다리어 학교 1학년 다리어 교과서.

9. 문화

9.1. 스포츠

그나마 6~70년대 안정을 누릴 땐 축구가 역시 인기가 많았지만 오랜 전쟁으로 리그나 여러가지가 죄다 사라졌다. 탈레반은 축구를 아예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국제대회 참가 등은 당연 불가능했고 축구 경기 휴게시간에 축구 골대를 교수대 삼아서 교수형 집행 이벤트를 하는 등 막장을 보여주었다. 탈레반이 여자 월드컵 축구를 싫어합니다 그나마 아프간 전쟁 이후 국제대회에 나왔으나 큰 골차로 대패하는 일이 많다.

자세한 것은 아프가니스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그 밖에 권투가 인기가 있다고 한다. 탈레반조차도 권투를 금지하진 못했을 정도였다고... 하지만 탈레반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권투도 이들의 막장 때문에 타격을 받았다.

또한 태권도도 꽤 잘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로훌라 릭파이가 조국에 올림픽 역사상 첫 메달을 안겨줬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태권도와 한국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며, 현재 약 1,000명이 넘는 선수가 활동하고 있다.자발적 한류

10. 지리

아프가니스탄은 총 34개의 주로 이루어져있다.

바다흐샨 주(Badakhshān)

바드기스 주(Badghīs)

바글란 주(Baghlān)

발흐 주(Balkh)

바미얀 주(Bāmiyān)

다이쿤디 주(Dāykondī)

파라 주(Farāh)

파르야브 주(Fāryāb)

가즈니 주(Ghaznī)

구르 주(Ghowr)

헬만드 주(Helmand)

헤라트 주(Herāt)

주즈잔 주(Jowzjān)

카불 주(Kābul)

칸다하르 주(Kandahār)

카피사 주(Kāpīsā)

호스트 주(Khowst)

쿠나르 주(Konar)

쿤두즈 주(Kondoz)

라그만 주(Laghmān)

로가르 주(Lowgar)

낭가르하르 주(Nangarhār)

님루즈 주(Nīmrūz)

누리스탄 주(Nūrestān)

우루즈간 주(Orūzgān)

팍티야 주(Paktiyā)

팍티카 주(Paktīkā)

판지시르 주(Panjshīr)

파르반 주(Parvān)

사망간 주(Samangān)

사르이폴 주(Sār-e Pol)

타하르 주(Takhār)

바르다크 주(Vardak)

자불 주(Zābol)

11. 관광

지금은 여권법에 의한 여행금지국가이지만, 탈레반이 투항하고 치안이 안정되면 관광지로 개발할 가능성도 크다. 예를 들어 수도카불은 예로부터 "문명의 십자로"로 불린 곳이며, 상업이 매우 발달해 있고, 피혁·가구·유리 공업 등도 행해진다. 이곳은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아 향후 관광지로 개발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힌두쿠시 산맥의 봉우리들을 끼고있는 수려한 경관이 있기에 트레킹 코스 등의 관광이 성행할 수도 있다.

물론 현재는 내전과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는 막장 국가이다. 애초에 여행금지국가이니 이곳에 발을 들일 생각은 하지 말자.

12. 외교

12.1. 러시아와의 관계

러시아-아프가니스탄 관계 항목 참조.

12.2. 중국과의 관계

중국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도 아프간에 800억원대의 군사원조를 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미국이 아프간과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중국이 적극적인 지원과 개입도 나서기 시작했다.# 2015년 5월 12일에 도하에서 열린 중국-아랍국가 협력포럼에서 남중국해 영유권분쟁에서 중국을 지지했다.# 그리고 중국, 파키스탄, 타지키스탄과 함께 반테러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도 했다.# 유엔 연설에서는 중국이 파키스탄의 테러범 지원 활동을 제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2017년 1월 9일에 중국은 아프간 정부와 도로를 건설하는 조약을 체결하면서 3년반에 걸쳐서 도로를 잇는 작업을 할 예정을 보이고 있고, 아시아 개발 은행도 건설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게다가 2017년까지 아프간에 지원을 하기로 밝혔다.# 그러다가 미군이 슬슬 아프간에서 철수를 할 조짐을 보이자 '제국의 무덤'이라는 악명은 귓등으로 흘려 넘긴[29] 중국군이 수개월전부터 아프간의 와칸회랑에 보이는 등 아프간에 진출을 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게다가 아프간의 바다흐샨 주에는 위구르족들이 결성한 투르키스탄 이슬람당의 본거지가 존재하는 등 중국도 경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측은 다에쉬의 진출을 막기 위해 바다흐샨 지역에 군사기지를 지어주고 무기를 무상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참고로 중국과 아프간은 좁은 와칸 회랑을 통해 약 73km에 달하는 국경을 맺고 있지만 현재 이 국경선은 폐쇄되어 출입 및 월경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2018년에 홍콩 언론이 중국이 아프간과 접한 와칸 회랑에 군기지를 세울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도를 하자 중국측은 부인했다.##

12.3. 영국과의 관계

영국은 19세기에 러시아와 함께 아프간에 영향력을 끼쳤다. 거기에다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치뤘지만, 결국 지배하지 못하고 아프간을 보호국으로 두는 정도로만 그쳤다. 그리고 1919년에 아프간은 영국에게서 완전히 독립했다. 하지만 영국이 듀랜드 라인을 정하면서 파슈툰족의 정착지가 파키스탄과 아프간으로 나뉘어졌다.

12.4. 타지키스탄과의 관계

타지키스탄과는 이란과 마찬가지로 혈통, 언어에서 매우 가까운 관계이다. 그리고 아프간에 거주하는 타지크족들은 아프간에서 많은 소수 민족의 하나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프간 내전당시에는 일부 피난민들이 타지키스탄으로 피난을 갔다. 하지만 혈통, 언어는 매우 가까워도 타지크어가 키릴 문자, 파슈토어와 다리어가 아랍 문자로 쓰여져서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 유엔난민기구에서는 타지키스탄의 아프간피난민들을 위해 러시아어와 타지크어강좌를 열어서 러시아어와 타지크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타지크족들의 거주지가 원래는 하나였지만, 19세기에 러시아가 그어놓은 국경의 영향으로 타지크족들의 거주지는 강을 경계로 북쪽이 타지키스탄, 남쪽이 아프간이 되었다.

12.5.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

아프가니스탄도 키르기스스탄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그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에도 소수지만 키르기스족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아프가니스탄 북동부의 바다흐샨 주에 거주하고 있다.[30]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키르기스족들은 키르기스어를 사용할 때 아랍 문자로 된 키르기스어를 사용한다.

12.6.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

우즈벡족들도 아프간에 많이 거주하고 있고 주로 우즈베키스탄과 접한 지역에 우즈벡족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우즈벡어도 아프간에서 사용되지만, 우즈벡 본토와는 달리 아랍 문자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아프간내 우즈벡족들은 아프간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이 아프간에 근거지를 두면서 우즈베키스탄 본토의 우즈벡인들중에 아프간에 건너가서 가담하는 경우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측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에 대해 강경대응중이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의 불안한 정세가 우즈베키스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이 러시아가 주도하는 러시아판 나토 CSTO에서 2012년에 탈퇴한 이유도 러시아군이 우즈베키스탄에 있을시 아프가니스탄 근처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항의와 저항이 더 심해질까봐 그렇다고 한다.중앙아시아 군사 강국인 우즈베키스탄도 이슬람 근본주의 확산에 큰 골치 아픔을 격는 모양.

2018년 3월말에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타슈켄트에서 아프간과 탈레반의 평화협상을 주선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이 참여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12.7. 파키스탄과의 관계

파키스탄에도 아프간과 마찬가지로 북부지역에 파슈툰족들이 거주하고 있고 아프간 내전당시에 내전을 피해 파키스탄에 피난민들이 이주하기도 한다. 게다가 파키스탄도 아프간에 영향력을 끼치고 파키스탄의 영화, 음악, 드라마가 아프간에도 인기를 끄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고 2016년 6월 13일에 파키스탄의 국경강화에 따른 반발로 국경분쟁이 있었다.# 사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역사적으로도 사이가 좋지 못해서 예전에 아프간에 속한 발루치스탄이 파키스탄쪽에 속해서 결과적으로 아프간은 내륙국이 되었고 이에 대해서 아프간은 파키스탄과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파슈툰족 거주지가 영국이 그어놓은 듀랜드 라인에 의해 양분된 점도 갈등이 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2017년 2월 16일에 수피즘 사원에서 다에쉬에 의해 일어난 테러로 인해 88명이 사망하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파키스탄 탈레반과 다에쉬 등 테러조직원 100여명을 소탕했다고 밝혔고 이 과정에서 아프간 국경에서 2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자 아프간 정부가 항의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그리고 2017년 3월 6일에 파키스탄군의 포격으로 아프간인 4명이 사망하자 양국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다가 2016년 3월 6일에 파키스탄 외무부는 아프간 국경통행을 다시 재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파키스탄 정부는 아프간과의 화해표시로 국경통행을 전격 재개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이 아프간과 접한 국경지역에 철조망을 세우기로 결정하면서 아프간 정부가 반발했다.# 그리고 파키스탄과 아프간사이에는 2006년부터 파키스탄-아프간 장벽이 있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파키스탄에도 아프간 내전 당시에 피난간 피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최근 파키스탄측에서 2016년부터 아프간 난민들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어서 갈등이 발생되고 있다. 그러다가 2017년 7월 21일에 파키스탄 정부는 파키스탄내 100만명이상의 아프간 난민들에게 체류증을 발급하겠다고 밝혔다.#

카이베르파크툰크와 주가 아프가니스탄과의 (거의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31] 파키스탄의 현지 기업들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많이 수출을 하고 있다. 주로 시멘트가전제품 등.

2018년 2월 2일에 가니 대통령은 아프간에서 테러가 자주 일어나는 원인은 파키스탄이 그 원인이라고 성토했다.# 그러다가 2018년 4월 7일에 아프간의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아바시 총리는 카불에서 아프간-파키스탄 평화와 연대를 위한 행동 계획을 체결하기 위한 7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그리고 임란 칸 총리는 파키스탄내 아프간 난민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12.8.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으로 아프간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련-아프간 전쟁당시에는 무자헤딘을 많이 지원했다. 그리고 탈레반정권때에도 가까웠고, 특히 탈레반세력이 사우디의 지원을 받고 있고, 지금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32] 심지어 사우디는 탈레반에도 영향력이 있다.# 사우디에도 일부 아프간인들이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차별받고 있다.

12.9. 아랍에미리트와의 관계

아랍에미리트도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으로 매우 가깝다. 그리고 아프간과 연결된 항공편이 아랍에미리트에 있고 아프간인들이 노동자로 아랍에미리트로 건너가서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아프간인도 아랍에미리트에서 차별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아랍에미리트도 아프간을 지원하고 있지만, 2017년 2월 16일에 아랍에미리트 대사가 아프간에서 일어난 폭탄테러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12.10. 이란과의 관계

이란과는 언어, 종교, 혈통에서 매우 가깝고 역사적으로도 아프간은 이란과 매우 가까운 관계이기도 해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란이 시아파, 아프간이 수니파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탈레반정권시절에는 사이가 안 좋았고 거기에다 일부 피난민들이 이란으로 피난을 갔다. 탈레반이 물러난 이후에는 가까워지고 있고 아프간에도 이슬람학교, 문화센터, 대학교 등을 건설하고 이란과 잇는 도로도 건설하는 등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거기에다 이란 드라마가 아프간에서도 인기가 있는 편이다.

그리고 이란이 경제적으로 아프간보다 높아서 아프간인들중에도 이란으로 건너가는 경우도 있지만, 2018년에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다시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 리얄화가 폭락했고, 아프간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아프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12.11. 인도와의 관계

인도와도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아프간에 원조를 하고 있다.[33] 인도에도 파슈툰족들이 거주하고 있고[34] 게다가 인도에서 제작된 영화, 드라마, 노래가 아프간에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인도는 아프간에도 영향을 줬고 무굴 제국이 아프간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인도와 아프간은 양국국민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무비자협정을 체결했다.#

인도는 미국과의 회담을 가지면서 아프간에 지원을 하지만, 군대를 파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2.12. 독일과의 관계

독일과는 왕정시절부터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아프간이 내전이 일어나자 독일로 이주하는 아프간인도 증가하고 있다.

12.13. 터키와의 관계

터키와는 종교적인 것외에도 아프간 북부의 우즈벡족, 투르크멘족, 키르기스족 등 투르크계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어서 의외로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터키군도 아프간에 주둔한 적도 있었고, 우즈벡 군벌인 도스트가 터키의 지원을 받을려고 하기도 했다. 거기에다 일부 아프간인들중에는 터키에 거주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터키 드라마도 아프간에서 인기가 있는 편이다.

12.14. 미국과의 관계

2001년에 미국에서 9.11테러가 발생되면서 당시 부시 정권은 아프간에 전쟁선포를 했고 탈레반정권은 붕괴되었다. 그리고 아프간에 지금도 미군이 주둔중이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미군의 병크가 계속 일어나면서 아프간인들은 반발했고 거기에다 탈레반다에쉬의 공세와 테러가 계속 일어나면서 미국은 아프간에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계속되는 탈레반의 공세와 다에쉬의 공습으로 인해 미국은 아프간에서 계속 전쟁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12.15. 한국과의 관계

특이하게도 신라의 문화가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등에 있었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과 연관성이 있는데, 스키타이의 실크로드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박트리아는 그리스인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박트리아인들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이나 우스베키스탄인들과 전혀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다. 즉 아프가니스탄에 박트리아 유물이 발견된거지 아프가니스탄과 관련이 없다. 1세기에 만들어진 박트리아왕관은 당시 로마 시대의 금 세공법이 실크로드로 스키타이인들에 의해 전해졌고 5~6세기에 만들어진 신라 금관과 장식이나 제조법이 거의 유사하다.

아프가니스탄은 1973년대한민국과 처음 수교하였으나 5년만에 1978년 아프가니스탄에 좌경 성향의 사회주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그해 단교하였다.[35] 그러나 2002년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 과도정부가 수립되면서 2002년에 재수교하였으며 동년에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도 참가하였다. 한때 미국에게 전투병 파병 요청도 받았으나 여러 문제로 어렵겠다며 흐지부지 거절(!)하고 이라크 전쟁 때 파병 논란과 달리 이건 아예 언론적으로 묻혀졌다 2007년까지 공병, 의무부대인 다산부대, 동의부대가 활동하다가 파병기한이 연장되지 않아 철수했는데 2010년 오쉬노 부대가 재파병되어 파르완주에서 지방재건팀(PRT)으로 활동하였으나 현재 철수하였다.

북한과는 1978년에 수교하였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의 선교 활동을 간 개신교 선교사들의 피랍 사건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이전부터 아프가니스탄 평화 축제 사건 등을 일으키며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대한민국 개신교계는 결국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를 일으키며 아프가니스탄과 한국 양쪽 모두에서 개신교에 대한 반감만을 키우고 말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외교통상부가 여행금지국가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으니, 목숨이 아깝다면 가지 말자.

2017년 1월 17일에 우석대학교헤라트 대학교, 지브라엘 학교와 국제교류협약을 맺고 교환학생프로그램, 교원교류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2018년 9월에 아프간에서 한 소녀가 카불과 한국에 지부를 둔 국제NGO단체인 '영양과 교육인터네셔널'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종양치료를 무사히 받았다.#

13. 창작물에서

옛날부터 유명한 분쟁 지역이다 보니 여러 매체에서 등장하고 있다. 요즘부터 주목받은 소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영국, 소련 등 내로라 하는 제국들이 여기서 발리고 가다보니 과거에도 매체에 수없이 등장했다. 일반인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셜록 홈즈 시리즈일 것이다. 왓슨 박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퇴역한 군인(정확히는 군의관)으로 나온다. 이 설정은 위에도 있는 영국군이 전멸하고 의사 1명만 살아돌아온 사건에서 따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BBC에서 셜록 홈즈를 재해석한 드라마 셜록을 만들었는데, 이때도 왓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이군인으로 나온다. 200년 가까운 갭이 있는데도 똑같은 설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데서 이 나라가 겪은 수난의 역사가 그대로 드러난다.

또한 80년대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문에 주목받기도 했다. 람보 3가 대표적. 이 당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소련 침략자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전사들로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또한 풀 메탈 패닉! 시리즈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블랙 테크놀러지의 힘으로 이 전쟁에서 소련이 승리했다고 나온다. 주인공인 사가라 소스케가 어렸을 적 반군으로 활동한 곳으로 나온다.

현대에는 유명한 분쟁 지역이다 보니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에서 상당히 자주 등장한다. 2000년대 중반엔 잠시 이라크가 이 역할을 했으나 이라크가 비교적 안정되고 미군이 철수함에 따라 다시 "요즘 분쟁지역"으로 나온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튜토리얼 미션의 배경이 되는 곳이 이 나라의 마자르 지역이다. 여기선 GLA가 대량 살상 무기 공장을 지으며 깽판을 벌이는 것도 모자라 미군기지까지 털기도 하고 오프닝씬에선 미군 헬기 세 대를 격추하기도 한다.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에도 등장하는데, 사방팔방에 칼레드 알 아사드의 포스터가 붙어있는 등, 2016년에도 여전히 막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메달 오브 아너의 주 배경이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2에선 과거 회상 장면과 현재 시점의 미션에서 둘 다 등장한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막장 분쟁지역... 지못미.

클로저스의 NPC인 송은이 경정이 이곳에서 붙잡혀 총을 만들던 장인을 구출하면서 게릴라 1부대랑 전투를 했다(...)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연을 쫓는 아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아프가니스탄을 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메탈기어 솔리드 V 더 팬텀 페인의 배경이 되는 장소 중 중요한 곳이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카불 지역.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인 1984년이 시간적 배경이다. 폭스 엔진을 통해 상당히 광범위하게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코지마 히데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실은 아프간 맵의 베이스로 삼은 지역은 아프간이 아니라 요르단이었다고.

아프가니스땅(あふがにすタン)이라는 제목의 웹코믹이 나오기도 했다. 귀엽지만 불행한 소녀 아프가니스땅이 주위의 파키스땅, 타지키스땅, 우즈베키스땅 등의 인물과 얽히다가 결국 탈레반과 미국까지 쳐들어오는 역사를 다루는게 일품(...).불행모에 2005년에 출판도 되었지만 작가가 Winny 사용자의 스크린샷을 찍어 자동배포하는 바이러스에 걸려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작가가 그대로 잠수해버렸다.

14. 아프가니스탄의 도시

15. 참조 서적

아프가니스탄: 알렉산더 대왕부터 탈레반까지의 전쟁사》,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역: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시작해서 몽골 제국영국, 소련, 지금의 미국으로 이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대외 항쟁사와 아프간 전사들의 용맹, 아프간의 영토 확장 역사 등을 다룬 책이다.


  1. [1] 반대로 알파벳을 쓰는 나라들 중 개최국 바로 전으로 들어오게 되는 나라는 짐바브웨(Zimbabwe)다.
  2. [2] 한국군 소속으로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채수문 중령은 아프가니스탄 힌두쿠시 산맥을 지나며 본 풍경을 말하길, '이 전쟁을 미국이 이긴다는 소리가 엄청나게 많았지만, 높고 복잡한 산들만 봐도 쏙 들어간다. 괜히 힌두쿠시(힌두교인들이 죽어간 무덤이라는 뜻)라고 불린 게 아니고 소련도 괜히 고전한 곳이 아니다. 지금 미군도 이곳에 대대로 살던 지역민들이 없다면 들어가지도 못하는 곳이다. 위성장치? 최첨단 장비들조차 이 산과 고원들에선 먹통이 되기에 미군들도 절대로 자기들만 안 들어온다'라고 썼다. 이해가 안 간다면 실화 기반 영화 론 서바이버에서 주인공 일행이 전화 한방을 못 때려서 그 생고생을 하다 겨우 한명만 살아남은 것을 떠올리자. 장갑차나 차량은 절대로 못 들어간다. 험난한 산악길을 오로지 헬리콥터만 타고 이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런 경험을 겪어서인지 채중령은 나중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한국군 전투병 파병 논란에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3. [3] 강수량은 비교적 겨울과 봄에 많은 편이다.
  4. [4] 군주제(아프가니스탄 왕국. 1919~1973), 공화제(아프가니스탄 공화국. 1973~1978), 공산주의(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1978~1992), 공화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국 = 무하마드 나지불라 정권. 1992~1996), 탈레반 신정체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아미르국. 1996~2001), 그리고 다시 공화제(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2001~현재).
  5. [5] 아이러니한건 이 시기에 세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죽고 죽이는 전쟁터였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이 시기가 아프간의 근현대사상 최고로 평화롭고 안정적이었던 시절이었다는 점이다.
  6. [6] 70년대 초반까지의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의 1인당 GDP#를 비교해 보면, 1965년까지는 한국이 앞서다가 1966~67년 아프가니스탄이 한국을 근소하게 추월했다. 그러나 1968년 한국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추월한 이래 두 나라 사이의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지게 되었다.
  7. [7] 아닌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에 매년 60억 달러 가량의 원조금이 지급되었다고 하는데 아프가니스탄 1인당 국민소득이 600달러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프간 인구의 30%에게 한해 소득을 보전해줄수있을 수준의 엄청나게 큰 돈이다. 하지만 부정부패로 원조자금의 상당수가 빼돌려지면서 전후복구 수준은 이에 못미치고 여전히 대다수 아프간인들은 그 혜택을 베재로 받지 못한채 하루벌어 하루먹고사는 수준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8. [8] 동남아에서는 베트남 상대로 미국과 프랑스, 중국도 역시 실패했다. 특히 미국이 2번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배한거나 다름없다.
  9. [9] 을사늑약처럼 외교권만 강탈하였다.
  10. [10] 또한 이때는 탈레반 지배기의 시작이기도하다. 이후 샤하다가 들어간다.
  11. [11] 물론 아프가니스탄이 왕정 복고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쪽도 캄보디아와 같이 국제연합(UN) 등에서 UN 평화유지군이나 감시단 등을 파견하여 분쟁에 개입한다면 캄보디아처럼 왕정복고 이후 지금의 심각한 내전 상황이 종결되거나 혹은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처럼 왕정 폐지 후 전국에 난립하여 온갖 폭탄 테러와 게릴라 전, 양민학살 등을 자행하는 탈레반이나 여러 지역 무장 단체들이나 지방 군벌 세력들이 약화되어 붕괴될 가능성도 꽤 있다. 전 국왕이었던 자히르샤가 2007년 사망하긴 했지만 아들이나 손자, 이외 왕족 후손들이 꽤 살아있어 이들을 새 왕으로 앉혀 입헌 군주제를 채택할 가능성도 있다.
  12. [12] 카르자이 정부는 미국의 괴뢰 정부 취급을 당했는데 임기 말 갑자기 미국과 대립각을 세웠으나... 그대로 임기가 끝나게 되었다.
  13. [13] 현 아프간 정부 전복시키고 Again 1996을 하는 것까지는 상관없지만 외국의 테러 집단과 다시 손 잡는 일이 없을 것. 이란 등 소위 '불량국가' 들과 거리를 둘 것을 약속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14. [14] 북한의 경우 통계를 내기 어려워 수치가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으나, 확실한 것은 북한과 비교해야할 정도로 경제가 작살났다는 것.
  15. [15] 매해 최대 40억 달러 추정. 이 정도 돈이라면 탈레반 및 부족들이 무장에 엄청난 수익이 되며 나아가 그것은 정부군 및 미군 희생을 부채질한다.
  16. [16]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는데 마약 단속반들이 벌이는 행패도 문제임을 보여주었다. 외국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들은 식사 시간이 되자 단속 대상이 아닌 사람들의 밭에서 채소까지 훔쳐서 싸온 도시락과 같이 지들끼리 실컷 먹어버렸단다. 기자들이 하도 어이 없어서 "돈도 안 주고 멋대로 훔쳐먹어도 되냐?" 따졌더니 한다는 소리가 "어차피 우릴 싫어하는데 뭐하러 좋게 대해주냐?"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니 현지인들은 탈레반을 따라서 저런 놈들을 죽여버리는 게 낫다며 무섭도록 증오하고 있다.
  17. [17] 가난한 나라들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심지어 5~60년대 한국 시골에서도 병원 갈 돈도 없고, 병원 가기도 어려운 지역에서 몰래 심은 양귀비꽃에서 추출한 아편을 극소수량으로 약 대신 쓰기도 했다.
  18. [18] 보나마나 그걸 일부가 가로채서 배를 채울 게 뻔하다. 종전에 시행하던 밀이나 여러 농작물 씨앗조차도 도중에 상당수가 착복되어 사라졌다.
  19. [19] 그러나 이것이 국민들의 진심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프가니스탄은 탈레반이 공포정치를 펴던 나라였고 현재도 탈레반이 활동을 하고 있는 나라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사는 주민들이 과연 반대 의사를 대놓고 표방할 수 있을까? 사실상 그러한 압박 때문에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20. [20] 사실 중동권이나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위성방송이 생각이상으로 잘 보급 되어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헐리우드 영화나 유럽 축구리그 경기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수준이 된 지 꽤 되었다.
  21. [21]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얘기다. 탈레반 세력이 잔존해있기 때문에 방송사에 테러를 저지른다거나 정치인들이 방송국에 압박을 가하는 일은 많다. 선정적인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상투적인 이유에서부터 정치인 비리를 폭로할 때 죽일 것이라고 협박하는 일까지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톨로TV나 1TV같은 곳은 대충 씹지만 나머지 민영방송의 경우에는 시청률이 영 좋지 않다 보니 보도를 안하는 경우가 있다. 여하튼 아프가니스탄의 부패상이나 전후 막장치안과 정치 상황이 잘 알려질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공이 크기는 큰 것.
  22. [22] 하지만 한국 기준으로 본다면 심심하다.
  23. [23] 사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란은 호메이니 이후에도 서남아시아 기준에서는 그다지 수구적인 사회 분위기는 아니었다. 호메이니 이후 이란의 사회상에 학을 떼고 미주로 이민 온 이란계 미국인들의 불평을 토대로 이런 이미지가 생겨났지만, 현대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메이니 이후의 사회상에 많은 이란인들이 불만을 가졌던 이유는 보수성 때문이 아니라 실패한 경제정책으로 인한 부분이 더 컸다고 한다.
  24. [24] 물론 당연하겠지만 이건 핑계고 실제로는 정부 관료들이나 고위직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매매에 관련 되어서 있어서라는 게 대체적인 중론이다. 바차바지라고 해서 어린 남자애를 가지고 성매매를 하는 풍습이 돈 꽤나 있는 고위직들을 중심으로 은근히 펴져 있지만 제대로 처벌이 받지 않을 정도라 여성 인권이 제대로 지켜질 리가... 사실 핑계부터 여자들을 복종시켜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orz
  25. [25] 반대로 파키스탄의 주민족인 펀자브족은 인도의 펀자브 지방에 걸쳐 존재한다. 사실 이 두 민족의 터전에 정가운데가 국경으로 그어진 꼴.
  26. [26] 징기스칸의 몽골 통일 과정에서 야쿠트와 타타르, 케레이트, 나이만 등 수 많은 튀르크계 외몽골 원주민들이 쫓겨났거나 포로가 되어 서역원정의 선봉대로 끌려갔다. 수도 적은 몽골인들은 절대 잡병으로 있지 않았기 때문에 수가 많은 튀르크인들을 데려갔다. 비슷하게 고려나 일본, 남송 등을 쳐들어 갈 때도 금나라서하 등에서 투항한 한족들을 내세웠다. 한 예로 몽골의 고려 침입 때 주력부대는 거의 한족들이 구성원이었다.
  27. [27] 아프가니스탄 최동단 지역의 툭 튀어나온 지역에 거의 고립된 상태로 거주한다고 한다. 지나치게 고립되고 외진 동네인지라 이 지역은 전쟁의 여파도 별로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튀르크계인 이들 역시 외모가 동양적이다.
  28. [28] 출처는 영어 위키백과의 Russian language
  29. [29] 사실 미국의 경우 스스로 재앙을 자초한 만큼 중국이 이를 반면교사 삼는다면 성공적인 군사활동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30. [30] 바다흐샨 주는 소련-아프간 전쟁에는 전쟁의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다.
  31. [31]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때 괜히 파키스탄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다. 물론 반협박이었지만.
  32. [32] 심지어는 사우디출신의 악명높은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라덴이 아프간에 잠시 거주하기도 했다.
  33. [33] 사실 인도와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안좋은 탓도 있어서 적의 적은 나의 친구란 원칙에 따라 파키스탄을 견제하기 위한 것도 있다.
  34. [34] 인도의 영화배우 아미르 칸이 현대 인도의 대표적인 파슈툰계 유명인이다.
  35. [35] 1988년 서울올림픽 때는 자국 선수단을 공식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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