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야구딘

알렉세이 야구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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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U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엘비스 스토이코
(1997)

알렉세이 야구딘
(1998~2000)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1)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1)

알렉세이 야구딘
(2002)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3)


ISU 유럽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1997)

알렉세이 야구딘
(1998, 1999)

알렉세이 야구딘
(2000)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1)

알렉세이 야구딘
(2002)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3)


ISU 그랑프리 파이널 남자 싱글 챔피언

일리야 쿨릭
(1997)

알렉세이 야구딘
(1998)

예브게니 플루셴코
(1999)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0)

알렉세이 야구딘
(2001)

예브게니 플루셴코
(2002)


ISU 주니어 세계선수권 남자 싱글 챔피언

일리야 쿨릭
(1995)

알렉세이 야구딘
(1996)

예브게니 플루셴코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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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알렉세이 콘스탄티노비치 야구딘
Алексе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Ягудин
Alexei Konstantinovich Yagudin

국적

러시아

출생

1980년 3월 18일(40세), 상트페테르부르크

신체

175cm, 64kg

종목

피겨 스케이팅

별명

료샤, 알료샤[1], 야신, 야교주, 멸구딘

SNS

1. 소개
2. 생애
3. 선수 경력
3.1. 알렉세이 미쉰 코치 시절
3.1.1. 1993-94 시즌
3.1.2. 1994-95 시즌
3.1.3. 1995-96 시즌
3.1.4. 1996-97 시즌
3.1.5. 1997-98 시즌
3.2.1. 1998-99 시즌
3.2.2. 1999-00 시즌
3.2.3. 2000-01 시즌
3.2.4. 2001-02 시즌
3.2.5. 2002-03 시즌
3.2.6. 2003-04 시즌
5. 프로그램
6. 커리어
7. 기타

1. 소개

러시아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다. 극강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정석적 점프와 폭풍 같은 스텝 및 풋워크, 그리고 대중을 사로잡은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피겨 스케이팅의 새로운 장을 개척한 사나이. 기술적으로 완성된 스케이터들은 야구딘 이전에도, 이후에도 존재했지만 야구딘은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꾼 스케이터였으며 이 점이 다른 레전드들과 그를 구분짓는 특징이다.

구채점제 시절 올림픽에서 유일하게 심판 전원에게서 1위 판정을 받고 예술점수 6.0 만점이 4개나 등장하는 등 깨질 수 없는 기록을 세운 스케이터이다. 희대의 먼치킨이었으며 현역 시절 남자 싱글 피겨계의 최종보스[2], 수많은 명작들을 남긴 레전드, 일본 관중을 기립박수 시켰던 몇 없는 남싱, 알렉세이 유어 핫 이렇듯 믿기 힘든 성적을 낸 그를 기리는 의미에서 한국의 팬들은 그의 이름의 앞글자인 을 조합하여 '야신'이라고 부른다.[3]

2. 생애

콘스탄틴 야구딘과 조야 야구디나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몸이 약했고 때문에 건강을 위해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4살부터 스케이트를 시작하였다. 이후 부모의 이혼으로 홀어머니 밑에서, 외가에서 성장하게 된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로봇공학자인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학업 성적이 우수했다.[4] 게다가 어린 시절 시력이 나빠서 의사에게 '정상적 시력은 불가능하다' 는 진단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헌신적 노력으로 좋은 시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성격은 학교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는 전형적인 개구쟁이로 자존심이 강했다고 한다. 또한 그리고 승부욕이 대단해서 달리기 시합에서 언제나 1등을 했다는 얘기가 있다. 첫 코치는 알렉산드르 마이오로프로 점프, 스핀과 같은 피겨 스케이팅의 거의 모든 요소를 그에게서 습득하였으나 이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함[5]에 따라 정부로부터 급료를 받을 수 없게 된 마이오로프는 스웨덴으로 이주하면서 야구딘에게 자신의 스승인 알렉세이 미쉰을 소개시켜준다. 이때부터 선수로서의 야구딘에 대한 미쉰의 츤데레 및 애증관계가 시작된다.

3. 선수 경력

3.1. 알렉세이 미쉰 코치 시절

점프 지도의 달인 배불뚝이 짜리몽땅 블레이드도 아주 잘 갈아서 야구딘은 은퇴 후 스케이트 날이 부서질 때까지 미신이 갈아준 날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한다.

초기에 야구딘을 맡았던 미쉰은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인 알렉세이 우르마노프 대체 러시아에는 알렉세이가 몇 명... 를 올림픽에 대비 집중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야구딘은 그에게서 대체로 그룹 지도 형태의 수업을 받았다.[6] 그러나 1997년 알렉세이 우르마노프가 사타구니 부상 내가 고자라니 으로 시즌을 쉬게 될 무렵 각종 국제대회에서 야구딘이 계속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계기로 미신의 집중지도를 받기 시작하지만 2살 아래의 예브게니 플루셴코가 미쉰의 휘하에서 2살 위의 자신과 경쟁할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다시 코치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7]

본래 미쉰의 코칭 스타일은 독재자적인 것으로 의상부터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선수에게 요구하는 타입이었다.[8] 그런 그의 스타일에 있어서 야구딘의 자존심 강하고 자유분방한 성격보다는 플루셴코의 자존심이 강하지만 고분고분한 성격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당연지사였다.

3.1.1. 1993-94 시즌

친선경기에서 8위, 1994 러시아선수권에서 5위에 올랐다. 1994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3.1.2. 1994-95 시즌

프라하 스케이트에서 동메달을 따고 1995 러시아선수권에서 5위를 기록했다.

3.1.3. 1995-96 시즌

1996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고 1996 러시아선수권에서 4위를 했다. 1996 유럽선수권에도 참가해 6위를 기록했다.

3.1.4. 1996-97 시즌

1996 스케이트 아메리카 동메달, 1996 보프로스트 컵 온 아이스 동메달, 1996 컵 오브 러시아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1996-97 챔피언 시리즈 파이널에 진출[9]해 5위를 기록했다. 1997 러시아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따며 첫 내셔널 포디움에 들었다. 1997 유럽선수권에서 5위, 1997 세계선수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3.1.5. 1997-98 시즌

1997 트로피 랄리크와 1997 컵 오브 러시아에서 모두 우승하며 1997-98 시리즈 파이널에 진출해 4위를 기록했다. 1998 러시아선수권에서는 일리야 쿨릭에 이어 은메달을 따고 1998 유럽선수권에서는 우승하며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그러나 첫 올림픽이였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는 감기로 인한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5위에 머물렀다. 1998 세계선수권에서는 가까스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훗날 야구딘의 자서전에 의하면 같은 코치 제자인 플루셴코가 미쉰의 총애를 받는 받면 자신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 야구딘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미신의 쌀쌀맞은 태도[10]에 그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울면서 새로운 코치인 타티아나 타라소바에게로 떠났다.

3.2. 타티아나 타라소바 코치 시절

타티아나 타라소바는 이미 코칭을 통해 러시아에 8개의 금메달을 안긴 유명 코치였다. 그녀가 야구딘의 코치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침 그녀가 지도하던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일리야 쿨릭이 은퇴를 하면서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개구쟁이 성격인 데다 과거 그녀 스스로 '날아다니는 의자(Flying Stool)' 라고 평했을 만큼 점프만 잘했지 예술성은 한참 모자랐던 야구딘을 맡아서 타여사는 미신이 했던 점프 및 기술만을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전통적 러시아식 지도법이 아니라 전반적인 프로그램의 흐름을 훈련하면서 그 안에서 기술을 연습하는 미국식 지도법으로 야구딘에게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새로운 안목을 열어줬다. 야구딘이 본격적으로 레전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타라소바와 함께 1998년 미국으로 떠난 이후부터이다. 야구딘이 피겨계에 가져온 센세이션, 즉 예술성과 프로그램 전체의 완성도를 강조하는 스케이팅 스킬, 그리고 풋워크와 트랜지션 등의 전반적인 스케이팅 스킬이 중요한 평가요소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변화는 모두 이 시기 타라소바의 코칭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야구딘의 전성기를 함께 하면서 타라소바와 야구딘은 사제 관계를 넘어 모자지간으로 비유되는 매우 깊은 유대 관계를 맺게 된다.[11]

그러나 타라소바의 코칭이 야구딘에게 이득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러시아에서 전통적인 러시아식 코칭을 고집하던 미신이 러시아 빙상연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반면 미국에서 미국식 코칭을 하던 타라소바와 연맹은 관계가 좋지 못했다. 그 탓에 야구딘이 미신을 떠나 타라소바와 함께 훈련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 빙상연맹은 야구딘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12]

3.2.1. 1998-99 시즌

1998 스케이트 아메리카, 1998 보프로스트 컵 온 아이스, 1998 트로피 랄리크에서 모두 우승하며 1998-99 그랑프리 파이널에 진출[13]해 우승했다. 1999 러시아선수권에서는 예브게니 플루셴코에 밀려 은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1999 유럽선수권1999 세계선수권에서는 다시 우승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탈환했다.

3.2.2. 1999-00 시즌

1999 스케이트 아메리카, 1999 스케이트 캐나다, 1999 트로피 랄리크에서 모두 우승해 파이널 진출[14]할 수 있있지만 무릎 부상으로 인해 기권했다. 2000 러시아선수권과 2000 유럽선수권에서는 예브게니 플루셴코에 이어 은메달을 획득했다. 2000 세계선수권에서는 우승하였다.

3.2.3. 2000-01 시즌

2000 스케이트 아메리카 은메달, 2000 스케이트 캐나다 금메달, 2000 트로피 랄리크 금메달을 획득한 후 파이널에 진출했다.[15] 2001-02 그랑프리 파이널을 앞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타라소바의 '몸을 조심하라' 는 충고를 뒤로 한 채 까불다 테니스를 치다가 공을 밟고 넘어져서 오른쪽 발목에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으로 인해 파이널, 2001 러시아선수권, 2001 유럽선수권 우승은 전부 플루셴코가 가져갔다.

2001 유럽선수권

2001 세계선수권

2001 세계선수권 직전에는 심한 근육손상과 인대염좌로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 되었다. 코치와 의사 모두가 출전 포기를 권유하는 마당에 '타이틀을 거저 내줄 수는 없다' 며 출전을 감행, 진통제 3방을 맞고 출전한 첫 날의 쇼트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수행할 가능성이 없다고 모두가 의심하는 가운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쇼트 프로그램인 'The Revolutionary Etude' 에서 쿼드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과 트리플 악셀, 트리플 러츠를 모두 성공시키는 것은 물론 넘사벽 수준의 풋워크와 물 흐르듯 끊임 없는 완성도로 전설에 남는 프로그램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부상의 탓으로 첫 쿼드러플 컴비네이션의 높이가 낮았던 관계로 플루셴코에 이어서 쇼트 순위 2위를 차지. 1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시작한 프리 프로그램 '글래디에이터' 에서는 진통제 7방을 맞고 감각이 없어진 발을 끌고 나와 겨우겨우 쿼드러플-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을 랜딩하였으나 이후 한 번의 손 짚음과 한 번의 넘어짐으로 인해 결국 우승을 처음으로 플루셴코에게 내어주게 된다. 연기 도중 이미 패배가 확정되었음을 감지한 이후에도 야구딘은 마지막 스트레이트 라인 스텝 시퀀스를 전율이 흐를 만큼 멋지게 성공시켜 기립박수를 받아내었다.

3.2.4. 2001-02 시즌

사실 야구딘은 2001 세계선수권의 패배 이후로 슬럼프에 빠져서 충동적으로 스케이팅을 그만 둘 생각을 했었으나 타여사의 독려와 정신과 상담에 이르는 초강수 덕택에 부활에 성공한다. 2001 스케이트 캐나다와 2001 트로피 랄리크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파이널에 진출했다.

2002 유럽선수권

새 프로그램인 '윈터' 와 '맨 오브 더 아이언 마스크(이하 아이언 마스크)' 로 2개 그랑프리 시리즈 우승 및 2001-02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유럽선수권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러나 러시아 연맹과의 관계는 계속 최악이어서[16] 이를 이용하여 서유럽의 모 국가에서 야구딘에게 자국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은 물론 고위 정치인과 체육계 장관을 파견하여 귀화 출전할 것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야구딘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야구딘이 모든 프로그램을 클린한 반면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플루셴코가 쇼트에서 넘어지면서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한다. NBC에서 방송된 경기 영상을 보면 쇼트 프로그램인 '윈터' 의 시작 전 링크에 들어서서 마음을 가다듬는 야구딘을 미신 코치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딱히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냐! 아무튼 이때의 프로그램인 '윈터' 와 '아이언 마스크' 는 야구딘을 대표하는 연기가 되었으며 전세계 피겨팬들에게서 가히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윈터에서는 눈 내린 자작나무 숲을 형상화한 의상과 스케이트날로 빙면을 갈아 눈을 만들어 뿌리는 연출, 겨울날의 즐거움과 여러가지 모습들을 표현한 안무, 얼음이 튀어오르는 정열의 토스텝을 선보였다. 아이언 마스크에서는 갇힘과 고난, 극복과 자유를 상징하는 마임 연기에 펜싱 스텝, 4-3-2 컴비네이션 등 완벽한 테크닉으로 대중성과 예술성, 기술성 모두를 전인미답의 경지 너머로 끌어올린 것이다. 특히 야구딘이 훈련을 받던 미국캐나다 등 북미에서의 인기는 자국 선수들을 능가할 정도였다. 반면 미국에서 훈련받았다는 점에서 얻어진 일종의 배신자 기믹으로 인해 러시아에서의 인기는 플루셴코에 미치지 못했다.

2002 세계선수권

게다가 이 프로그램들에 대한 어느 섬나라의 반응은 절대적이어서 올림픽이 끝나고 2002 세계선수권에서 야구딘은 프리 프로그램이 끝나고 산더미 같은 꽃의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어느 코 큰 키 작은 놈들이 애들을 맡기기 시작했다.[17]

3.2.5. 2002-03 시즌

2003년, 만 23세의 한창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은퇴를 하게 된 배경에는 고관절 부상 문제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좋지 못했던 데다가 수 년간 4회전 점프와 트리플 악셀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온 고관절이 완전히 망가져서 더 이상 국제대회 출전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18] 2002 스케이트 아메리카 쇼트 프로그램에서 선두를 달렸지만 결국 고관절 문제로 프리 스케이팅을 기권했다. 대회들을 모두 스킵하고 치료에 전념했지만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3.2.6. 2003-04 시즌

2003 스케이트 캐나다에 초대되었을 때 아마추어 경기에서의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식에서의 'Memorial' 과 함께 스케이트 아메리카 쇼트 프로그램에서 최고가 된 연기 '레이싱' 이 공식 아마추어 경기에서 그의 마지막 연기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하게 된 야구딘은 프로 전향 이후 컴페티션에 대한 갈증으로 인해 인공 고관절 교체수술을 감행, 티타늄제 고관절을 심고 터미네이터가 되어 돌아왔지만 아쉽게도 전과 같은 점프는 무리라서 현역 복귀에는 실패하였다. 이후 부동산 사업을 경영하여 성공을 거두는 한 편으로 각종 아이스쇼에 꾸준히 참가하여 좋은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는 매년 현대카드 슈퍼매치를 비롯한 각종 아이스쇼를 통해 자주 방문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카니스탄의 피겨 애호가이신 그분의 초청으로 납북 방북, 구글 어스를 보면 평양에서 찾을 수 있다고도 [[http://news.msn.co.kr/article/read.html?cate_code=1110&article_id=201002210903241004|한다.]]

부상의 결과 그의 시니어 국제대회 출전 기록은 5시즌에 걸친 짧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은퇴 이전까지 쌓아놓은 업적만으로도 야구딘은 보는 이로 하여금 '우리는 이날 이때까지 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왔던가!' 라는 자책을 하게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4. 라이벌 예브게니 플루셴코

야구딘은 같은 러시아 출신의 '황제' 라 불리는 예브게니 플루셴코와 전성기 내내 라이벌 관계로 유명했다. 전성기 동안 플루셴코와 계속 불꽃 튀는 라이벌리를 이루는 가운데에서도 야구딘이 시니어로 활동하기 시작한 바로 다음 시즌인 1997-98 시즌부터 은퇴 직전의 2001-02 시즌까지의 다섯 시즌 가운데 야구딘이 발목 부상으로 인해서 고전했던 2000-01 시즌을 제외하고 세계선수권 우승은 모두 야구딘의 것이었으며 올림픽 금메달 또한 그의 것이었다. 아무튼 야구딘과 플루셴코는 금메달=승리, 은메달=패배가 되는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였고, 이 두 사람이 경쟁하던 다섯 시즌 동안 둘이 참가한 모든 경기의 우승과 준우승을 둘이서 나눠먹었다.[19]

그러나 워낙 서로 스타일이 달랐던 데다가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그리고 2010년에 다시 복귀해서 은메달을 따는 등 플루셴코가 보여준 긴 커리어와 독보적 위치를 고려한다면 여러 모로 난형난제이다. 이 두 사람이 경쟁하는 동안 쿼드러플 점프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팡팡 뛰어댄 탓에 팬들의 기술적 눈높이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수직상승하였고 이들을 본 피겨 팬들은 남자 싱글이라면 쿼드러플 점프는 당연히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탓에 이후의 남자 스케이터들을 도탄에 빠뜨렸다.

미신 아래에서 동문수학하던 시절부터 야구딘과 플루셴코는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의식하는 라이벌이되 관계는 좋지 않았던 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야구딘의 은퇴 이후 보이는 모습을 보면 전보다 많이 좋아진 듯하다.

이들의 일부 극렬한 팬들 사이에서는 상대방을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였으나 라이벌 관계가 성립된 가운데 상대방을 깎아내려봤자 제 얼굴에 침 뱉기. 따라서 두 선수의 팬들 또한 상대방 선수를 인정한다. 그런 면에서 보아도 진정한 라이벌이다.

5. 프로그램

시즌

쇼트(SP)

프리(FS)

갈라(EX)

2002-2003

Racing
by Safri Duo

The Man in the Iron Mask
by Nick Glennie-Smith

Born to Be Wild
by Steppenwolf

Memorial
by Michael Nyman

2001-2002

Winter
by Bond

Overcome
(From Ancient Lands)
by Ronan Hardiman

The Man in the Iron Mask
by Nick Glennie-Smith

2000-2001

The Revolutionary Etude
by Frédéric Chopin

Gladiator
by Hans Zimmer

Gladiator
by Hans Zimmer

Stand by Me
by Ben E. King

My Baby You
by Marc Anthony

We Are the Champions
by Queen

1999-2000

Nutrocker
by Emerson, Lake & Palmer

Broken Arrow
by Hans Zimmer

Come Fly with Me
by Barry Manilow

Tosca
by Giacomo Puccini

September Morn
by Neil Diamond

1998-1999

Circus
(From The Revisionist's Tale)
by Alfred Schnittke

Lawrence of Arabia
by Maurice Jarre

Here Comes the Big Parade
by Harry Connick, Jr.

The Prince of Rose

1997-1998

Ziganotchka

Troika, or Snowstorm
by Georgy Sviridov

Play it Again Sachmo
by Louis Armstrong

Mack the Knife
(From The Threepenny Opera)
by Kurt Weill

1996-1997

Ruslan and Lyudmila
by Mikhail Glinka

Carmen
by Georges Bizet

One Banana[20]

1995-1996

The Nutcracker
by Pyotr Ilyich Tchaikovsky

Gaîté Parisienne
by Jacques Offenbach

-

1994-1995

Toccata and Fugue in D minor
by Johann Sebastian Bach

Hussar Medley

1993-1994

-

Concierto de Aranjuez
by Joaquín Rodrigo

6. 커리어

올림픽

금메달

2002 솔트레이크시티

남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8 미니애폴리스

남자 싱글

금메달

1999 헬싱키

남자 싱글

금메달

2000 니스

남자 싱글

금메달

2002 나가노

남자 싱글

은메달

2001 밴쿠버

남자 싱글

동메달

1997 로잔

남자 싱글

유럽선수권

금메달

1998 밀라노

남자 싱글

금메달

1999 프라하

남자 싱글

금메달

2002 로잔

남자 싱글

은메달

2001 브라티슬라바

남자 싱글

그랑프리 파이널

금메달

1998-99 상트페레르부르크

남자 싱글

금메달

2001-02 키치너

남자 싱글

은메달

2000-01 도쿄

남자 싱글

주니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1996 브리즈번

남자 싱글


국제대회:시니어

대회

93–94

94–95

95–96

96–97

97–98

98–99

99–00

00–01

01–02

02–03

올림픽

5th

1st

세계선수권

3rd

1st

1st

1st

2nd

1st

유럽선수권

6th

5th

1st

1st

2nd

2nd

1st

GP 파이널

5th

4th

1st

2nd

1st

GP 스케이트 캐나다

1st

1st

1st

GP 트로피 랄리크

1st

1st

1st

1st

1st

GP 컵 오브 러시아

2nd

1st

GP 보프로스트 컵 온 아이스

3rd

1st

GP 스케이트 아메리카

3rd

1st

1st

2nd

WD

프라하 스케이트

3rd

친선경기

8th

3rd

국제대회:주니어, 노비스

주니어 세계선수권

4th

1st

국내대회

러시아선수권

5th

5th

4th

3rd

2nd

2nd

2nd

2nd

GP=그랑프리 시리즈, WD=기권

7. 기타

  • 어린 시절 좋아하는 스케이터로 브라이언 오서, 엘비스 스토이코, 커트 브라우닝을 언급했다했다. 야구딘은 오서와 브라우닝에게서 예술성과 풋워크를, 스토이코에게서 힘을 강점으로 꼽았다. 훗날 야구딘은 이 모든 것을 갖게 되었다. 야구딘 스스로는 스케이팅 스킬을 더욱 연마해야 한다고 밝혔는데 야구딘이 스케이팅 스킬을 갈고 닦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여자 싱글 부문의 우승 후보로 김연아를 지목하였다. 다른 부문에 대한 예상이 모두 빗나가서 야펠레가 될 뻔했는데 다행히 이건 맞았다. 아무튼 김연아에 대한 우수한 평가로 인해 김연아 팬들에게서 이모저모 호감도 수직상승 중이다.
  • 역대 남자 피겨선수 중에서도 미남 피겨선수를 꼽을때 잘 등장한다.
  • 2006년 현대카드 슈퍼매치 때 김연아가 팬이 선물로 보낸 멸치 상자를 출연자 대기실에 놔두고 인터뷰를 하러 나갔는데 이런 사정을 몰랐던 야구딘은 멸치가 요기잉눼? 이 상자를 열어 다른 선수들과 나눠먹었다. 후에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야구딘 멸치 사건' 이라 불렸다.
  • 프로그램 수행 도중 점프 랜딩 실수로 발생한 스텝아웃을 교묘하게 하프룹인 척 속이면서 시퀀스 연결 점프를 붙여 랜딩에 성공한다거나 안무 도중 꽈당 넘어져놓고서는 마치 안무의 부분인 척 능청스레 넘어간다거나 하는 걸 보면 잔머리가 비상함에 분명하다.
  • 러시아에서는 '나프롤롬', 일본에서는 'Overcome' 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출간한 바가 있다.

  • 2008년 6월 2일, 야구딘의 포르쉐가 도난당했다. 그의 세계선수권 메달 중 하나도 차와 함께 도난당해서 현재까지 행방불명이라고 한다.
  • 2009년 11월 20일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페어 금메달리스트인 타티아나 토트미아니나와의 사이에서 딸 리자를 얻었다.
  • 2018년 7월 19일 2014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피겨 동메달리스트이자 카자흐스탄의 피겨 선수 데니스 텐이 괴한의 습격을 받고 피살되자 피겨계 관련 인사들 중 누구보다도 분개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자신의 SNS에 추모 인사를 올린 이들과 달리 야구딘은 아예 크게 울먹이는 목소리로 데니스 텐에 대한 추모 메세지를 길게 동영상으로 남기는가 하면, 자신이 진행하던 TV프로나 아이스쇼 등에도 지속적으로 텐에 대해 추모해달라고 피겨팬들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야구딘과 텐 둘다 타라소바 휘하의 있던 제자들이다보니 텐 생전에 야구딘과 친밀한 사이였던 듯 하다.


  1. [1] 료샤, 알료샤는 알렉세이의 러시아식 애칭.
  2. [2] 그의 최종보스 타이틀을 후에 이어받은 스케이터들은 예브게니 플루셴코하뉴 유즈루다.
  3. [3] 심지어는 다음과 같은 일화도 있다. 2000 세계선수권 전에 야구딘은 하느님에게 "이 시합에 우승시켜 주시옵소서" 라고 빌고는 그 날은 맑아서 "만약 기도가 들리시면 계시를 내려주소서. 비를 내려주시옵소서" 라고 빌었다. 그랬더니 5분도 지나지 않아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큰 비가 내렸다고 한다.
  4. [4] 어머니가 교육에 힘쓴 까닭은 부상으로 인해 스케이터의 생명이 끝날 경우를 대비해서였다고 한다.
  5. [5] 이 시기 이후 러시아의 스포츠 국가지원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피겨 스케이팅은 더 이상 모두가 저렴하게 배울 수 있는 운동이 아니게 되었다. 야구딘-플루셴코 이후 러시아에서 이렇다 할 월드 클래스의 남자 싱글 선수가 등장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와 같은 저변축소에 있다.
  6. [6] 마이오로프가 미쉰에게 야구딘을 맡긴 것은 스케이터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이던 야구딘에 대한 개인 지도가 필요했기 때문인데 막상 돌아온 것은 학원 수업이다. 참고로 트리플 악셀은 이 시기에 습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7. [7] 플루셴코가 미쉰의 코치를 받던 어린 시절 선배 스케이터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야구딘도 그 선배 중 하나이다.
  8.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프에 있어서 지도 능력만큼은 탁월하다. 점프로서 역대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야구딘과 플루셴코 모두 그의 휘하에서 고난이도 점프를 습득했다. 참고로 점프의 안정성에 대한 그의 '필요할 때 한 번의 점프를 정확하게 하는' 이라고 하는 미쉰에게 받은 모토는 전성기 내내 야구딘이 몸으로 보여주었다.
  9. [9] 당시에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세번까지 출전할 수 있었고, 이 경우엔 상위 두 대회의 성적으로 파이널 진출 여부를 가렸다.
  10. [10] 이때 미쉰은 플루셴코가 우승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11. [11] 야구딘에 따르면 타라소바 코치는 그에게 어미새 같았다. 그리고 자유분방한 성격 자체는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야구딘은 타라소바의 말을 잘 따랐다. 어느 정도냐면 타라소바의 언니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온 제자는 야구딘이 유일했다고 한다.
  12. [12] 미신 밑에 있던 17세까지는 타라소바 휘하에 있던 3살 위의 일리야 쿨릭을 이기지 못했는데 실력면에서 볼 때 이는 전성기의 쿨릭이 시니어에 들어서서 점프가 완성되어버린 반면 어린 야구딘은 점프가 불안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3. [13] 당시에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세번까지 출전할 수 있었고, 이 경우엔 상위 두 대회의 성적으로 파이널 진출 여부를 가렸다.
  14. [14] 당시에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세번까지 출전할 수 있었고, 이 경우엔 상위 두 대회의 성적으로 파이널 진출 여부를 가렸다.
  15. [15] 당시에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세번까지 출전할 수 있었고, 이 경우엔 상위 두 대회의 성적으로 파이널 진출 여부를 가렸다.
  16. [16] 야구딘이 타국 심판에게 들은 거에 의하면 야구딘이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하자 러시아 연맹 사람들이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연맹의 특기는 팀킬?
  17. [17] 일본 빙상연맹이 옆집 애를 위시한 주요 선수들의 코치로 당시 야구딘의 제 1코치인 타라소바와 제 2코치인 알렉세이 모로조프를 전격 발탁, 러시아 배우기에 나선 것도 이때의 야구딘 빠순질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 [18] 치료 약물계의 최종장이라 할 수 있는 코티졸=부신피질호르몬 주사가 전혀 듣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평소에 트리플 악셀과 4-3-2 컴비네이션 같은 슈퍼 테크닉을 구사하는 주제에 쿼드 악셀, 4-3-3 따위의 인간학대적 기술들을 연습하고 있었다.
  19. [19] 야구딘의 주장에 따라 미신 파벌에 대한 러시아 연맹의 편파판정이었다는 러시아선수권을 제외하고 플루셴코의 15살 때의 승부를 포함하여 국제대회인 유럽선수권, 세계선수권, 동계올림픽에서의 전적을 비교하면 8승 3패로 야구딘이 우위에 있다.
  20. [20] 이건 미묘하게 괴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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