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로이드 웨버

The Right Honourabl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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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앤드루 로이드 웨버 (Andrew Lloyd Webber)[4]

국적

영국

출생

1948년 3월 22일 잉글랜드 런던

작위

시드몬턴 남작[5]

학력

왕립음악대학(RCM)

직업

뮤지컬 작곡가

배우자

사라 휴길(1971~1983)
사라 브라이트만(1984~1990)
매들린 거든(1991~)

정당

보수당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이름

앤드루 로이드 웨버 경
SIR ANDREW LLOYD WEBBER
[6]

분야

연극

입성날짜

1993년 2월 26일

위치

6235 Hollywood Blvd.

1. 개요
2. 작품 성향
2.1. 음악적 절충주의
2.2. 메가 뮤지컬(mega musical)
3. 작품 활동
3.1. 전성기
3.2. 전성기 이후
4. 주요 작품
5. 수상
5.1. 서훈
6. 트리비아

1. 개요

영국을 대표하는 뮤지컬 작곡가 겸 제작자.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했고 작곡에도 관심을 보였다.[7] 웨스트민스터 대학을 졸업한 후 영국 런던의 왕립음악대학(Royal College of Music)에 편입해서 본격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친구인 팀 라이스를 만나 소규모의 음악극을 만든다. 이들 가운데 성경에서 소재를 얻은 두 번째 작품이었던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웨버는 이후 본격적으로 뮤지컬 작곡에 뛰어들기 시작한다.

전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오페라의 유령, 캣츠, 에비타 등의 작품을 작곡했다. 이 사람의 뮤지컬이 너무나 유명한 나머지 뮤지컬의 수록곡들 중 몇 개는 아예 스탠다드 팝으로 분류될 정도. 대표적으로 캣츠의 <Memory>, 에비타의 <Don't Cry For Me Argentina>, 오페라의 유령의 <The Phantom Of The Opera>등이 있으며, 이 곡들은 발표 당시에 싱글컷되어 실제로 음악 차트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2. 작품 성향

2.1. 음악적 절충주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음악적 특성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섞여있는 음악적 절충주의(eclecticism)이다. 이전까지의 뮤지컬들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긴 했어도 기본적으로는 클래식 기반이었던데 반해, 그는 재즈, , 록 음악, 라틴 등 수많은 장르를 클래시컬한 음악과 함께 사용했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은 작품 전체적으로 오페라에 가까운 음악을 택했지만 정작 동명 주제가인 '오페라의 유령'은 하드록(Hard Rock) 스타일로 되어 있다. 에비타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답게 탱고, 룸바 등 다양한 라틴 음악이 록, 팝, 클래식, 심지어 라틴 성가와 함께 섞여 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캣츠 등 다른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음악장르들을 무리없이 엮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역시 그의 천부적인 멜로디 감각. 듣자마자 귀에 감기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또한 작품의 테마 멜로디를 잡아놓고 극의 다양한 부분에서 가사를 바꾸며 멜로디를 반복하는 'reprise'를 많이 활용하기도 했다. 즉 팝에 가까운 단순하고 귀에 감기는 멜로디를, 다양한 장르의 형태로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작품의 특징.[8][9] 앤드루 로이드 웨버 스스로 음악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에비타라고 밝히기도 했다.

2.2. 메가 뮤지컬(mega musical)

그의 또 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대극장에서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 크고 아름다운 무대를 동원하는 메가 뮤지컬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웨버의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히트작으로서 웨스트엔드의 장기 공연 랭킹 상위에 드는 기차 경주 이야기인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를 예로 들면, 관객석 사이에 깔린 트랙에서 스케이트 탄 배우들의 경주가 벌어지는 사상 초유의 연출이 백미인데, 관객석 숫자를 팍팍 줄여가며 유지비용 많이 잡아먹는 트랙을 깔아도 수지타산이 맞는 웨스트엔드 극장은 2500석 규모의 아폴로 빅토리아 시어터[10] 뿐이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 진출했을 때 토니 분장상을 받는등 평가가 괜찮았고 관객도 많이 들어왔지만 장기적으로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극장이 브로드웨이에 없어서 꼴랑 2년도 못 버티고 막을 내렸다.공연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브로드웨이 극장 사이즈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는 말.(...)[11] 작품 역시 대단위의 합창과 'sung-through'[12] 방식의 거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70, 80년대 브로드웨이 뮤지컬계가 주춤하던 당시 이런 화려한 볼거리와 웅장한 음악을 앞세운 웨버의 메가 뮤지컬이 인기를 끌면서 요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뮤지컬의 화려한 모습이 갖춰졌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형태는 전통적인 뮤지컬 팬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싸구려 팝 음악의 멜로디에 그럴듯한 클래식 편곡만 덧붙여서 얄팍하게 팔아먹는 장사꾼'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웨버의 작품들이 공유하는 특징이 팝에 가까운 아름다운 멜로디 + 클래식적인 편곡과 대형 무대가 주는 고상한 느낌이기 때문. 진짜 오페라는 졸립게 느껴지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고상한 공연을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심리를 캐치한 것. 말하자면 팝페라에 가깝다고 할까.

3. 작품 활동

3.1. 전성기

70년대부터 뮤덕들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제목만 들어도 쉽게 알만한 대형 뮤지컬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70년대에는 웨버와 팀 라이스[13]를 본격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 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시작으로 에비타 등의 파격적인 형식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작품들을, 팀 라이스와 결별한 80년대에는 캣츠,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 오페라의 유령 등 대규모의 작품들을 작곡하여 대스타가 되었다. 이때까지 그가 제작한 작품들은 모두 히트를 치며 영미권 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국가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Any dream will do의 효과를 완성하며 뮤비를 찍기도 했다. 원본은 사라졌지만 Jason Donovan이 다시 리메이크하여 불렀다. 이러한 공로를 바탕으로 1992년 영국 왕실에서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3.2. 전성기 이후

하지만 오페라의 유령 이후 웨버가 발표한 작품들은 대체로 내리막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Aspect of Love, 동명의 명작 영화를 원작으로 한 선셋 대로, Whistle down the Wind, 뷰티풀 게임, 우먼 인 화이트 등을 발표 했지만 모두 이전과 같은 큰 흥행에는 실패했다. 선셋 대로 같은 경우도 흥행 실패에 다른 요인이 있기는 했으며[14] 모두 음악 자체의 퀄리티는 나쁘지 않다는 평이지만 7, 80년대 누렸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는 듯.

원래 작곡가로서 이름을 떨치면서 캐머런 매킨토시 등 다른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21세기부터는 작곡보다는 직접 프로듀싱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시에 간간히 맨해튼의 유령을 바탕으로 했다는 오페라의 유령의 후속작 소식이 들려오다 말다 하는 바람에 팬들을 혼란에 몰아넣기도 했는데, 2010년 결국 신작인 러브 네버 다이즈를 발표하게 된다. 뮤지컬에 대한 많은 논란과 평가는 해당 항목들을 참조. 웨버는 결국 '러브 네버 다이즈'를 오페라의 유령과 별개의 작품이라고 인정한 상태다. 아니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들었냐고

'오페라의 유령'이 뮤지컬 작곡가로서의 웨버의 최고 절정기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프로듀싱 분야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생일파티 콘서트를 카네기 홀에서 열기도 하는 등(...) 아직도 앤드루 로이드 웨버라는 이름값은 건재해 보인다. 참고로 얼마전 환갑잔치는 하이드 파크에서 했다.

사실 뮤지컬 업계는 두개 성공한 창작자도 손에 꼽는 피튀기는 경쟁 세계이다. 특히 최근에 경우에는 특히 그런데, 스티븐 손드하임, 앨런 제이 러너 같은 뮤지컬의 전성기 시절도 아닌[15] 최근까지 대성공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메인 씬에서 버티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한 예를 들자면, 초기작을 오히려 웨버보다 주도했던 동료인 팀 라이스는 ALW가 캣츠를 쓰던 시기 갈라서고 매우 공들여 만든 체스(뮤지컬)이 시원하게 망한 후[16]로 다시는 스스로 제작한 뮤지컬이 브로드웨이에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자기 마음대로 뮤지컬을 올리고, 손익분기점은 대충 맞추는 나름 행복한 노후생활이다.

4. 주요 작품

5. 수상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 수상작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제69회
(1997년)

Colors of the Wind
앨런 멩컨
(포카혼타스)

You Must Love Me
앤드루 로이드 웨버
(에비타)

My Heart Will Go On
제임스 호너
(타이타닉)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주제가상 수상작

제52회
(1995년)

제53회
(1996년)

제54회
(1997년)

Colors of the Wind
앨런 멩컨
(포카혼타스)

You Must Love Me
앤드루 로이드 웨버
(에비타)

My Heart Will Go On
제임스 호너
(타이타닉)

  • 1986년 - 고전음악 최고작품상(Best Classical Contemporary Composition)
  • 1995년 - 작곡가 명예의 전당 헌액
  • 2006년 - 미국 존 F. 케네디 센터 주관 공연예술 평생공로상(Kennedy Center Honors)

5.1. 서훈

  • 1992년 - 기사작위(Knight Bachelor) 서임
  • 1997년 - 귀족원(상원) 의원, 남작작위(Baron Lloyd-Webber of Sydmonton) 서임

6. 트리비아

'캣츠'에 출연하던 사라 브라이트만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브라이트먼과 웨버 모두 이미 결혼해 있던 상태였는데도... 이후 브라이트만은 웨버의 신작이던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 다에 역을 통해 유명세를 얻는데 성공하지만, 둘은 결국 다시 이혼하게 된다. 당시 이 부부는 뉴욕의 트럼프 월드 타워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건물에 스티븐 스필버그 부부와 도널드 트럼프 부부도 살았었고 공교롭게도 세 커플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이혼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떠들썩하게 진행되는 동안 종종 서로가 어색하게 마주쳐 지나가는 상황이 빈번했다고 한다. 둘이 이혼할 즈음 오페라의 유령을 뮤지컬 영화로 제작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중이었는데, 본격적인 착수 직전에 이혼 때문에 영화화는 당시에는 엎어지고 말았다.[17] 그래도 브라이트만은 웨버의 생일 콘서트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페라의 유령 25주년 공연에서도 등장했는데, 웨버가 직접 '나의 음악의 천사'라고 소개했다. 현재는 새 부인과 다시 결혼하여 슬하에 두 명의 자녀가 있다.

새로 기획한 작품의 주요 배역을 TV에서 진행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뽑기도 한다. 2006년 BBC와 함께 처음 기획한 사운드 오브 뮤직 마리아역 오디션 프로그램인 <How Do You Solve a Problem like Maria?>에서 재미가 들렸는지 2007년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의 요셉 역을 <Any Dream Will Do>로 뽑고 2008년에는 자기 회사 뮤지컬이 아닌 올리버!의 낸시/올리버 역 오디션인 <I'd Do Anything>도 진행했다.[18] 2009년에는 좀 쉬어가나 했더니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 영국 대표로 참가한 Jade Ewen의 노래를 작곡하고 무대에까지 같이 올라 손수 피아노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2010년에는 오즈의 마법사[19]의 도로시 역을 뽑는 <Over the Rainbow>를 진행했다. 2012년에는 BBC가 아니라 ITV에서[20]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예수 배역을 걸고 <Superstar>라는 제목으로 오디션을 진행했다. 기존에 진행하던 1주일 1회 생방송 방식이 아니라 하루에 1회 생방송이라는 엄청나게 타이트한 스케쥴로 진행되었고 우승자인 벤 포스터가 이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레나 투어[21]의 예수로 발탁되었다. 다만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너무 공연 홍보 목적이 뻔히 보이는게 아니냐며 까는 의견도 있으며, 일리가 없지도 않다. 그래도 이 연작 시리즈를 계기로 여러 스타들이 발굴되어 오디션을 실시한 작품 뿐만 아니라 레 미제라블(뮤지컬), 위키드 등의 여러 기타 흥행작들에도 출연하게 된 점은 신인 혹은 무명배우의 발굴이라는 점에서 의미있는 성과.

웨버는 사실 뮤지컬만 작곡한건 아니다. 경악스럽게도 클래식 분야도 단 한곡 작곡했는데 레퀴엠 하나다. 초연부터 음반을 출반했는데 로린 마젤 지휘, 플라시도 도밍고, 사라 브라이트만 독창에 잉글리시 챔버 오케스트라라는 초호화 캐스팅인데, 사실 음악적 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고 웨버의 이름값으로 한거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평이다. 실제로 요즘은 거의 연주되지도 않고 ‘Pie Jesu(자비로우신 예수)’ 부분만 가끔 연주된다.

초기작인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이 2013년 한국에서 초연한다. '요셉 어메이징'이라는 제목으로 홍보하는 듯. 요셉 앤 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라고 할 순 없잖아 그래도 요셉과 놀라운 색동옷이라고 하면 되는걸...

참고로 웨버의 첫 번째 부인도 이름이 '사라'여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커튼콜에서 언급하는 사라는 첫 번째 부인이고, 오페라의 유령 커튼콜에서 언급하는 사라는 사라 브라이트만이다.

좀 의외의 사실로는, 문화, 예술계 셀럽으로는 드물게 정치적으로는 우익에 가까우며, 보수당 당원으로, 1997년에 일대귀족(남작) 작위를 받아 오랫동안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다가 2017년에 사임했다. 상원의원으로서는 별로 성실하지 않았지만(20년간 표결 참석 33회) 2015년에 세액공제 축소 법안이 보수당 주도로 상정되자 해외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몰고 귀국해 찬성표를 던져 약간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를 맞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1. [1] 남작 본인에 대한 경칭.
  2. [2] 나라에 따라 다르지만 영국 기준으로 보면, His/Her Royal Highness, His/Her Grace 등 별도의 칭호가 있는 왕족과 공작을 제외하면 이 칭호는 남작 이상의 작위가 있는 사람이나 백작의 정식 후계자에게만 허용된다. 기사의 Sir와도 구별된다.
  3. [3] 해석하면 로이드-웨버 경이 된다. 한글로 Lord와 Sir이 '경(卿)'으로 똑같이 해석되기 때문에, 이를 구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부 있다.
  4. [4] 원래 성은 하이픈 기호를 쓰지 않고 그냥 로이드 웨버이다. 하지만 남작칭호를 표기할 땐 하이픈 기호를 사용한다.
  5. [5] Baron Sydmonton in the County of Hampshire.
  6. [6]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서는 입성자의 이름을 표기할때 기사작위를 받은 영국인들(폴 매카트니, 엘튼 존, 앨프리드 히치콕, 엘리자베스 테일러 등)도 모두 이름만 표기한다. 하지만 왜인지 웨버와 팀 라이스만이 Sir을 표기해준다. 참고로 작위가 Lord인데 Sir로 표기된 이유는 웨버가 남작에 서임되기 전 기사인 상태로 입성했기 때문이다.
  7. [7] 웨버의 동생 줄리언 웨버 역시 첼로 연주자로 크게 성공했다.
  8. [8] 에를 들어 에비타의 히트곡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체가 에바를 고인드립하는 넘버인 "Oh, What a Circus"와 같은 멜로디다.
  9. [9] 오페라의 유령 역시 마찬가지인데, 메인테마 뿐 아니라 다른 멜로디도 작중 여러 곡, 여러 장면에서 재활용하는 정도가 너무 심해서 작곡가가 '날로 먹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10. [10] 수용인원 기준으로 웨스트엔드 최대규모 극장이다. 대관료도 섬나라의 혐오스러운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매우 비싸게 책정되는지라 흥행이 보장되는 작가의 신작이나 다른 극장에서 흥행이 검증된 걸작들만이 이곳에서의 장기공연을 추진할 수 있다.
  11. [11]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가 올랐던 브로드웨이 극장은 거시윈 시어터로, 거시윈 시어터의 1900석 전후의 좌석수는 브로드웨이 최대규모다. 이런 극장에서 공연했는데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거다.이런 작품을 만번 가까이 계속 공연하고 있는 독일은 대체 어떤 동네길래... 그리고 현재 거시윈/아폴로 빅토리아 두 극장에서는 모두 수년간 위키드 공연이 오르고 있다. 위키드 역시 연출 규모가 만만치 않은 작품이고 초절정 인기를 기반으로 두 극장을 굴리고 있다는걸 생각하면...
  12. [12]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뤄진 뮤지컬
  13. [13] 엘튼 존과 함께 작업한 아이다(뮤지컬)도 유명하다.
  14. [14]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확대+막대한 제작비용 문제와 주연을 맡은 글렌 클로즈와 제작진들간의 불화가 있었다.
  15. [15] 한때는 모든 영화가 뮤지컬 영화이던 시절도 있었다.
  16. [16] 웨스트엔드에서는 하필 ALW의 초월적인 흥행작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시기에 올라온지라 묻혔으며 흥행성적도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년간 적은 수익으로나마 버텼는데, 브로드웨이에서는 꼴랑 두 달만에 참혹하게 끝났다. 하기사 미국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를 소련 남자한테 뺏기는 내용인데 냉전시대 브로드웨이에서 평이 좋았을리가 없다(...) ALW의 뮤지컬 중 이런 참사를 빚었던 작품인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는 흥행부진보다는 "수익이 날 정도로 큰 극장이 브로드웨이에 없었다"는 뭔가 아스트랄하긴 해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나마도 2년 가까이 버텼다는 점에서 체스와는 비교가 안된다.
  17. [17] 결국 2004년 조엘 슈마허제라드 버틀러와 에미 로섬 등 전혀 다른 출연진을 기용하여 제작하게 된다.
  18. [18] 올리버!는 캐머런 매킨토시 측이 저작권을 갖고 있다. 당연히 이 프로그램에는 매킨토시도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다만 올리버!가 올라온 로열 드루리 레인 극장은 ALW 쪽 회사의 소유.
  19. [19] 잘 알려진 기존의 뮤지컬이 아닌 신작이다.
  20. [20] 2010년 <Over the Rainbow> 4월 24일 4주차 라이브 쇼를 앞두고 방송사고가 있었다. 닥터후 시즌5의 <The Time of Angels> 막판에 나오는, 다음 에피소드 <Flesh and Stone>과 연결되는 장면인 11대 닥터가 천정으로 총을 겨누는 매우 중요한 장면에 만화 캐릭터화된 그레이엄 노튼(쇼 진행자)의 모습을 포함한 광고 배너가 떴다.(보통은 예고편이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나 나오는게 정상이다) 때문에 해당 장면에서 완전히 빠져들고 있던 수많은 후비안들이 분기탱천했고(...) BBC는 가루가 되도록 까이다가 공개 사과를 해야 했다. 아무래도 이 영향으로 방송사를 BBC 대신 ITV로 옮긴 모양. 2010년까지 진행된 4개 시리즈에서 모두 진행자를 맡았던 그레이엄 노튼이 BBC 쪽 인물이기 때문에 진행자 역시 ITV 쪽인 아만다 홀든(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그 여성 심사위원이다)으로 교체되었다.
  21. [21] 영국 전역의 초대형 아레나 공연장을 순회하는 공연으로, 버밍엄에서의 공연은 DVD도 발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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