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 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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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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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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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1902년

1903년

1904년

1905년

장 앙리 뒤낭
프레데리크 파시

엘리 뒤코묑
샤를 알베르 고바

윌리엄 크리머

국제법학회

베르타 폰 주트너

1906년

1907년

1908년

1909년

1910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에르네스토 모네타
루이 르노

클라스 아르놀드손
프레드리크 바예르

데스투르넬 드 콩스탕
오귀스트 베르나르트

국제평화국

1911년

1912년

1913년

1914년

1915년

토비아스 아서르
알프레트 프리트

일라이휴 루트

앙리 라퐁텐

수상자 없음

1916년

1917년

1918년

1919년

1920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수상자 없음

우드로 윌슨

레옹 부르주아

1921년

1922년

1923년

1924년

1925년

칼 브란팅
크리스티안 랑에

프리드쇼프 난센

수상자 없음

오스틴 체임벌린
찰스 도스

1926년

1927년

1928년

1929년

1930년

아리스티드 브리앙
구스타프 슈트레제만

페르디낭 뷔송
루트비히 크비데

수상자 없음

프랭크 켈로그

나탄 쇠데르블룸

1931년

1932년

1933년

1934년

1935년

제인 애덤스
니컬러스 머리 버틀러

수상자 없음

노먼 에인절

아서 헨더슨

카를 폰 오시에츠키

1936년

1937년

1938년

1939년

1940년

카를로스 사베드라 라마스

로버트 개스코인 세실

난센국제난민 사무국

수상자 없음

1941년

1942년

1943년

1944년

1945년

수상자 없음

국제적십자사

코델 헐

1946년

1947년

1948년

1949년

1950년

에밀리 그린 볼치
존 모트

미국 퀘이커 봉사위원회
영국 퀘이커 봉사협회

수상자 없음

보이드 오어

랠프 번치

1951년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레옹 주오

알베르트 슈바이처

조지 C. 마셜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

수상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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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수상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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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니크 조르주 피르

필립 노엘 베이커

앨버트 루툴리

1961년

1962년

1963년

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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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그 함마르셸드

라이너스 폴링

국제적십자사

마틴 루터 킹

국제연합아동기금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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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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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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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978년

197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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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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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뮈르달
알폰소 가르시아

레흐 바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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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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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아웅산수지

리고베르타 멘추

넬슨 만델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이츠하크 라빈
시몬 페레스
야세르 아라파트

조지프 로트블랫
퍼그워시 회의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카를루스 벨루
조제 하무스 오르타

지뢰금지국제운동
조디 윌리엄스

존 흄
데이비드 트림블

국경 없는 의사회

김대중

2001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국제연합
코피 아난

지미 카터

시린 에바디

왕가리 마타이

국제원자력기구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그라민 은행
무함마드 유누스

앨 고어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

마르티 아흐티사리

버락 오바마

류샤오보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엘런 존슨 설리프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

유럽 연합

화학무기 금지기구

말랄라 유사프자이
카일라시 사티아르티

튀니지 국민4자대화기구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후안 마누엘 산토스

핵무기 폐기 국제운동

드니 무퀘게
나디아 무라드

}}}

2000년 [1]

1993년[2]

2010년대의 모습. 어? 음?

(...)

앨버트 아널드 고어 주니어(Albert Arnold Gore, Jr).

1. 소개
2. 일생
2.1. 연방 하원/상원 의원
2.3. 2000년 대통령 선거 출마와 패배
2.3.1. 대통령 선거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들
3. 기타
3.1. 대중매체에서

1. 소개

왕년의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 앨 고어입니다.”

(좌중 폭소) “저로선 그 사실이 특별히 우습진 않습니다만."

- 불편한 진실에서의 첫 마디. 뭐 뒷말도 농담으로 한것이다.

"That's a no-brainer. Of course it's a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that's why it's a covert action. The guy is a terrorist. Go grab his ass.”

"머리 아프게 논쟁할 사안이 아닌데요. 물론 이 작전은 국제법 위반입니다. 그래서 비밀 작전을 하는 것 아닙니까? 그 녀석은 테러리스트입니다. 가서 체포하세요."

- 테러리스트 용의자의 송환을 두고서[3]

잔인한걸 좋아하는 사람

미국의 정치인. 1948년 3월 31일생. (클린턴보다 2살이 어리다.) 미국의 45대 부통령으로 빌 클린턴대통령이던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부통령으로 활동했다.

2. 일생

2.1. 연방 하원/상원 의원

증조할아버지 시절부터 내려오는 정치 명문가, 재력가 가문 출신으로 어린 시절 워싱턴 D.C.의 최고급 호텔에서 생활하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치활동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성장하였다. 이후 가문의 정치기반을 이어받아 테네시주 연방하원의원 4선(8년), 연방상원의원 재선 뒤에 겨우 45세의 나이에 부통령이 되었다.

2.2. 부통령

부통령 재직시에는 환경과 IT산업, 통신정책 등을 전담하면서 실세 부통령으로 활약했다.[4]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부통령이 되기 전은 물론이고 부통령이 된 후에도 미국의 IT 산업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고어의 아버지는 테네시주 연방상원의원으로 30여년간 재직하며 특히 1956년 고속도로 건설지원법의 업적을 남겼는데, 이거에 힌트를 얻어서 고어는 '정보고속도로'(Informaion Highway)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IT산업을 지원하였다.

한마디로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전형이라 할 만한 인물이라는 평도 있다. 다만 전형적인 테크노크라트는 특정 분야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5] 관료를 맡는 탈이념적 전문가를 말한다. 앨 고어는 청년기부터 특정 정당 소속의 정치가로 자라온 사람이다. 또한 특정 분야에서 학위나 전문자격을 획득한 스페셜리스트 자격을 기반으로 활동한 사람이 아니라[6] 국정 전반을 다루어 온 제너럴리스트이기에 테크노크라트는 아니고 정치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칼 세이건과도 친했다.

클린턴도 그랬지만 고어도 엄청난 달변가였으며, 1992년 대선 당시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지명된 뒤 빌빌거리던 클린턴의 지지도가 급상승하고 더 나아가 "차라리 고어가 대통령 후보였다면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이래저래 유망한 대통령감이었다.

2.3. 2000년 대통령 선거 출마와 패배

그리하여 2000년 대통령 선거에 당당히 출마했고 두 살 많은 조지 W. 부시(당시 텍사스 주지사)와의 대결에서 전체 득표수 5100만표(48.4%)로 약 50만표(0.5%) 남짓 앞섰지만 정작 선거인단 숫자에서는 271대267로 밀려 대통령 당선에 실패했다. 패배한 고어 본인은 폭삭 늙었다. 단순히 깨끗하게 진게 아니라 무효표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미국은 각 지역별로 투표용지도, 개표방식도, 선거관리 원칙도 제각각이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곳은 선거인단수가 세번째(25명)로 많고 정치적 성향이 극명하게 갈리는 플로리다 주였는데[7], 표차가 불과 1700 혹은 900여표밖에 안 나는 상황이라 무효표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졌다. 플로리다 주의 많은 지역, 특히 흑인이 밀집한 민주당 우세지구에서 알아보기 힘든 투표용지에 개표 기계의 오류와 선관위의 행정미숙으로 엄청난 무효표가 발생했다. 플로리다의 팜비치 카운티가 대표적이었다.

2.3.1. 대통령 선거 패배 원인에 대한 분석들

원인은 크게 네가지였다.

  • 첫째로 투표 용지가 복잡하게 제작되어 고어와 다른 군소 후보 팻 뷰캐넌을 혼동한 사람이 많았다. 즉 투표지 순서와 천공카드로 구멍을 내야하는 위치가 부시만 같았고, 나머지의 순서는 달랐다. 중앙에 일렬로 천공칸이 있고 좌우로 후보들을 나열했는데, 후보들은 왼쪽열부터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가므로 왼쪽열 두번째에 위치한 2번 후보인 고어가 천공칸에서는 세번째 칸에, 오른쪽열 첫번째에 위치한 듣보잡 7번 후보 뷰캐넌[8]이 천공칸에서는 두번째 칸에 위치했다.[9] 때문에 기표방식을 착각한 노년층 고어 지지자들이 뷰캐넌에게 투표하였고, 투표 종료 직후부터 자신들이 실수 했다는 걸 알아챈 유권자들이 선관위 앞에서 재투표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 둘째로는 고어에 기표한 용지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채 무효표로 처리된 경우가 많았다. 사실 이건 후보를 떠나서 선거개표시스템의 전반적인 문제였다.
  • 셋째로는 백인 경찰들이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투표를 방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조지 부시의 동생인 젭 부시.[10]
  • 넷째로는 소비자보호운동으로 유명한 랄프 네이더가 진보/좌파 그룹의 추대를 받아서 녹색당 후보로 출마해서 9만여표를 가져갔는데, 만약 그가 출마하지 않았을 경우 부시보다는 고어에 투표한 사람이 많았을 것이라고 한다. 네이더의 웹사이트에서는 자신의 지지자들 중 25%가 부시를, 38%가 고어를 뽑았을 것이라고 한다. 링크 랄프 네이더의 정치성향과 지지조직을 감안한다면 네이더 지지자의 상당수는 기권하거나 앨 고어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다.[11]

사실 셋째 문제는 명확하게 해명이 되지 않았으며, 넷째는 이미 벌어진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첫째와 둘째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수의 무효표들이었다. 당장 팜비치에서만 만3천표가 무효 처리되었는데, 이게 제대로 판정된다면 팜비치뿐 아니라 플로리다주의 선거결과가 뒤집히고, 승자독식제의 선거인단 투표인 미국 대선 방식으로 대선 승자가 바뀌는 것이다.

결국 고어 지지자들의 청원과 플로리다 주법원에 의해 시작된 수작업 재개표 결과 일부 선거구에서만 재개표를 했는데도 표차가 300여표 이내로 줄어들었다. 플로리다 전역에서 수동 재검표를 하면 표차가 역전되어 고어의 승리라는 대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시측에서 계속 소송을 한 끝에 주법원과 연방법원의 관할권 논란, 각 주의 자치권 논란, 보수언론의 추측성 물타기 기사, 젭 부시 주지사의 영향력, 조직적 부정선거 논란 등 온갖 문제가 꼬이면서 결국 연방대법원 판결로 전면 재검표가 중단되고 조지 부시의 승리가 선언된다.

이게 정말 문제가 되는 점인데, 미국의 헌법상 선거 관련 소송은 해당 주의 법원이 관할권을 갖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처음 플로리다 주에서 문제가 터졌을 때 앨 고어와 민주당 측은 플로리다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그런데 선거 소송 관할권이 해당 주 법원에 있음을 알고도 부시와 공화당이 연방대법원에 이를 제소했고, 연방대법원은 부시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남북전쟁 때처럼 연방 vs 주의 알력 다툼이 생길 것 같으니까 앨 고어가 양보했는데....결과는 망했어요.

한국 판사들은 정당가입도 금지되며 비교적 엄정한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데 반해, 미국의 판사들은 뚜렷하게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12] 애초에 임명과정부터 어느 당 소속인지, 주요사안에 대해서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당파성을 심하게 따진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이든 주대법원이든 판사들의 당적이 외부로 드러나 있으므로 어떠한 문제에 대해 제소하면 이길 것 같다/아니다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플로리다 주 대법원에서 패소한 공화당 측은 연방대법원이 공화당을 지지하는 대법관(캐스팅 보터였던 중도성향의 오코너는 심지어 공화당 정치인 출신 인사였다.)들로 채워진 걸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푸라기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연방대법원에 제소한 것인데, 연방대법원은 관할권이 없음에도 이런 막장 판결을 내린 것이다.

플로리다 개표의 최종 결과는 무려 291만 2790 대 291만 2253 표, 고작 0.0090%(537명) 차이.팜비치 카운티에서만 처리된 무효표만 1만 3천명이었다나. 여기에 미국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가 플로리다에서 거둔 득표가 9만여표이다... 그래서 고어가 폭삭 늙었군 참고로 고어가 이긴 뉴멕시코에서의 격차는 366표였지만 퍼센트 차로는 0.06%였다.

훗날 오코널 등 재개표를 중단하는데 찬성한 일부 공화당(미국) 성향의 판사들조차 부시의 막장 임기를 보면서 차마 자신이 공화당 지지자이고, 이 판단이 법적으로는 옳은 판단이라고는 생각하는데는 변화가 없지만 자신의 판단이 이런 막장을 불렀다는 것에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HBO가 이 기막힌 이야기를 2008년 TV영화로 제작해서《리카운트(Recount)》라는 제목으로 공개하였다. 실제 플로리다주의 재검표를 주도했던 민주당 선거대책팀장 론 클레인[13] 역할을 케빈 스페이시가 맡아서 이 막장드라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외국인들은 이해하기 힘든 연방과 주정부의 사법관할과 자치권논란, 선거구마다 제각각인 선거법과 엉망진창인 선거관리, 명백한 민의의 왜곡을 제도에 따라야 한다면서 순응하는 정치인들, 이런 사례가 불거졌는데도 전혀 변화가 없는 미국의 선거법 등등... 미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이란 환상을 한방에 날려준다. 고어 스스로가 별로 대통령이 되고 싶지 않았던걸까..

대선 결과가 부시의 승리로 끝이 난데에는 민주당 주류의 자포자기도 한 몫한다. 실제 끝까지 가보자는 민주당 선거운동원들을 주저앉힌건 고어와 민주당 상원의원들이다. 플로리다주 팜비치를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개표 첫날 부터 문제가 발생해서 집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고어는 성급하게 부시한테 선거결과에 승복한다는 전화를 걸었다가 다시 몇분뒤에 이를 취소하는 등 우왕좌왕했으며, 나중에는 오히려 실무자들의 재개표 움직임을 저지하고 나선다.

또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투표 방해 행위 의혹에 흑인 하원의원들은 집단 반발하였다. 하지만 연방의회에서 선거결과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선 상원의원의 동의가 필요한데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모조리 거부한다. 그리고 당시에는 버락 오바마 같은 흑인상원의원이 없었다.[14]

이 시점에서 앨 고어는 정치인생은 여기서 (즉, 대선마저도) 끝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여기서 불복하고 대규모 재검표 운동을 지지한다면 그나마의 신망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한 것.

때문에 2004년 대통령 선거의 리턴매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정작 고어 본인은 고심 끝에 2002년 12월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미국은 끝내 수렁에 빠졌다. 실제로 웬만하면 재선이 뜨는 미국 현실을 고려하기도 하고, 불복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어서..[15]

대선패배는 그의 지루한 이미지 때문이란 평가도 있다. 4대에 걸친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엄청난 재벌인데다가[16],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전형적인 동부 엘리트범생이라 대중들이 전혀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편해 한다는 것. 반면에 부시는 야구 좋아하고 약간 촌티나는 텍사스 카우보이 이미지로 대중들이 옆집 아저씨 마냥 친근해 했다는 것이다.[17] 2002년에 있었던 출마 포기도 이런 이미지 때문에 또 질게 뻔해서라는 말도 있을 정도니.. 그런데 아이러니한건 사실 부시도 석유 백만장자이자 아버지가 대통령이었던 정치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

힐러리vs트럼프?

3. 기타

존 케리와 같이 월남 참전 경험이 있다. 그는 1969년 입대해서 1971년에 공병 여단 소속으로 파병되었다. 당시 고어의 아버지가 테네시주 상원의원 재선을 노리고 있었는데 병역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아버지를 돕기 위해 하버드 졸업 직후 사병으로 입대했다. 근데 고어의 아버지는 1970년 재선에 실패했다.(...)베트남 가는 비행기안에서 심정이 어땠을까

2006년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을 출판하고 다큐멘터리로 제작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18] "불편한 진실"은 2007년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 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반면에 다큐에선 지구환경을 위해서 자원을 절약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정작 본인은 방 수십 개짜리 대저택에서 전기료만 수십만 달러씩 내는 초호화판 생활을 하는 게 알려지면서 전형적인 리무진리버럴이라고 까이기도 했다.

의원 시절부터 인터넷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인터뷰를 한 것이 내가 인터넷을 발명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와전되어 이에 대한 다양한 조롱과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다.[19]문명 4』에서 잘 보면 프로젝트 '인터넷' 아이콘에 그의 얼굴이 대놓고 새겨져 있다. 덤으로 애플의 이사회 멤버중 한 명이자[20] 구글의 상임고문이며,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 EA 등의 창업기에 투자해 막대한 수익을 낸 벤처 케피탈 기업 KPCB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2010년 6월에 아내 티퍼 고어(아직도 성은 고어다)와 이혼했다. 아내가 부부싸움 중 "난 지구온난화 같은 건 믿지 않아" 라고 하자 이혼했다는 개드립 유머가 존재한다. 사실 고어 부부는 (적어도 외적으로는) 금슬이 좋았던 터라 화이트 게이트(르윈스키 사건)에도 이혼하지 않았던 빌 클린턴힐러리 클린턴 부부와 비교되었다.

(과거) 고어 부인은 부통령 부인이던 시절에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음악 몰아내기"라는 시민운동을 하면서 CD에 19금 딱지 붙이기를 주도했는데, 정작 가수들이 노이즈 마케팅을 위해서 열렬하게 19금을 붙여달라고 요구했다는 안습한 후일담이 있다. 고어가 민주당 내 보수 성향인 것 까지 겹쳐져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자신들의 곡에서 고어의 실명을 언급하며 디스를 날리기도.

영화 러브 스토리의 작가 에릭 시걸(Erich Segal)은 영화배우 토미 리 존스와 앨 고어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 올리버를 구상했다고 한다.[21] 공교롭게도, 재미있는 사실은 토미 리 존스의 데뷔작도 영화 러브 스토리라는 것이다. 주인공의 룸메이트로 등장하는데 그의 20대 시절을 볼 수 있다.

3.1. 대중매체에서

2009년 11월에 NBC가 그린위크라고 해서 사내 에너지절약 및 환경보호 주간이 있었는데 SNL30 Rock에 게스트 출연을 했다. 두 프로그램에서 다 연기를 익살스럽게 매우 잘 해서 호평을 받았다. 관련 사진

사실 2006년에도 SNL에 출연한 적 있었는데, 주제는 앨 고어가 대통령이 된 평행우주 였다(물론 2006년에도 재선했다고 한다). 오오오. 순도 100%의 드립인지라 마이클 무어가 대법관(…)이다. 차마 조지 클루니를 대법관으로 만들 수는 없었단다. 설정들이 아주 기가막히다.

참고로 부시는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주로 돌아가서 "도청만 하면 스테로이드 복용 문제는 해결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설정.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서는 암살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성전기사단의 투표조작 등의 온갖 사보타주를 당해서 실패했다고 한다.

사우스 파크에서도 등장. 지구온난화는 맨베어피그[22] 때문이라며 맨베어피그를 죽이기 위해 별의 별 병신짓을 한다. 상상의 나라 에피소드에서도 병신같이 나와서 맨베어피그를 죽이기 위해서 핵폭탄을 날려 상상의 나라를 파괴시킨다(다행히 버터스가 다 재건시켰다). 뭐 사우스파크는 모두까기만화니까 본인도 직접 에피소드를 봤고, 웃기는 소리(ridiculous)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우스 파크: 진리의 막대에도 등장. 역시 취급이 안습한데, 맨베어피그를 찾으라고 퀘스트를 주다가 페이스북 메시지 난사를 하고[23], 결국 짜증나서 친구 끊기를 시도하다가 싸운다.(...) 앨 고어의 비밀 방엔 촬영 무대가 있고(...) 나중엔 맨베어피그 분장을 한 채 보스로 등장한다.

퓨처라마에서도 카메오로 등장한다. 달의 초대 황제라고.. 그리고 해리 포터와 지구의 균형이 그의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극장판 (OVA)에서 데스 스타를 파괴하는?! 갓고어

SCP 재단SCP-4444에서는 2000년 대선 직전 외계 생명체의 숙주가 되면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품게 된 것으로 나오고, 현직 부통령인 공인을 어떻게 격리할지 모색하기 위해 재단과 FBI가 협력하게 된다. 그리고 나온 해결책이 바로 브라이트 박사마침 뇌사상태에 빠진 공화당 대통령 후보에게 빙의시키는 것(...)


  1. [1] 조지 부시와의 대결시이다.
  2. [2] 부통령 취임시기
  3. [3] 보듯이, 이 사람 온건파는 절대 아니다. 오죽하면 9.11 테러 이전의 부시 정권은 고어보다도 고립주의적이고 국제법을 준수하려고 했다는 평가를 받는 정도이다! 테러리스트는 처단하고 국제법은 배척합니다. Gore-Tech 참고로 이게 왜 묻혔냐면 놓쳤다. 그렇지만 이 "놓쳐버렸습니다"에는 여러 뜻이 있을 수 있다.
  4. [4] 미국 역사상 부통령은 대부분 선거운동용일 뿐 실질적인 국정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해리 트루먼은 부통령 시절 핵무기개발 자체를 몰랐다. 고어나 딕 체니 같은 실세 부통령은 대단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애초에나무위키에 따로 항목이 있는 부통령 자체가 대단한 현상이다. 항목 참조.
  5. [5] 예를 들면 의사, 과학자, 경제학자
  6. [6] 물론 학위도 있다. 하버드 정치학 학사.
  7. [7] 당시 주지사가 부시 동생(젭 부시)인 것도 한몫 했다.
  8. [8] 투표용지 버프(?)를 받고도 최종 득표수는 17000여표, 0.3%에 그쳤다.
  9. [9] “2000 Florida Ballot”으로 검색해보면 그 괴랄한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후보들 이름 옆에 화살표가 있긴 했지만 당시 투표 결과를 보면(부시=고어=48.8%, 4위 뷰캐넌 0.3%)...
  10. [10] 이 사건으로 인해 흑인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표를 빼앗겼다고 울분을 토했다. 결국, 버락 오바마에게 몰표를 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11. [11] 자신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가 독자 출마대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온 이유도 랄프 네이더의 2000년 선거 결과 때문이다. 당시 랄프 네이더를 지지했던 진보/환경운동 그룹들도 이 선거의 나비효과에 식겁해서 이후 대부분 민주당에 참여하는 것으로 노선을 전환했다.
  12. [12] 사실 미국은 판사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의 정치적 자유가 상당히 넓게 보장되어있다. 일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업무시간이나 업무와 민감한 수준으로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항 이외에는 공무원들도 정치적인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하거나 관련 활동에 참여해도 큰 처벌을 받지않는다. 단 공직에서도 일부 분야는 그러한 자유가 제한되는데, 대표적인게 법조계와 정보기관계열이다. 하지만 미국 판사들의 정치적 성향이 상당히 노골적으로 공개되는 현실을 보면 알듯이 이러한 자유의 제한도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느슨한 수준이다.
  13. [13] 앨 고어 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이지만, 선거운동 도중 권력핵심에선 밀려나서 앨 고어와 만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14. [14] 자신들의 투표권을 도둑맞았다고 여긴 흑인 유권자들은 이 사태를 방치한 민주당의 백인 의원들에게도 반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나중의 오바마 열풍으로 나타난다.
  15. [15] 20세기 이후 이전 대통령선거에서 패한 후보가 바로 다음 대통령선거에 재출마한 경우는 1952, 1956년에 아이젠하워에게 연패한 애들레이 스티븐슨이 유일하다(스티븐슨은 1960년에도 재출마를 노렸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전에 이 자리에 있던 먼데일 얘기는 오류(198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당연히 현직 대통령인 카터).
  16. [16] 그는 방 수십개짜리 대저택에 살면서, 연방 상원의원 시절까지는 선거모금도 거의 하지 않을 정도로 재력가이다.
  17. [17] 한국에 비유하자면 2002년 대선에서의 이회창(전형적인 엘리트 이미지)-노무현(서민틱한 이미지) 대결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후보 성향은 뒤바뀌었지만..
  18. [18] 이것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음모론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우스 파크에서는 제대로 까였다. 관심 좀 받아보려고 있지도 않은 걸로 사람들을 위협한다고.....S10E06 참고
  19. [19] 이런 짤방이 좋은 예이다. 천지창조;; (...)
  20. [20] 아이폰 발표 당시에 시연용 폰에 슬라이드 쇼를 해야해서 발표회에 참석을 못했다며 아이폰 출시를 축하하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21. [21] 실제로, 위의 인물들은 모두 하버드 대학 출신이다.
  22. [22] 절대 3분의 1씩 모인게 아니라 인간, 반, 반돼지라고 한다. 이 맨베어피그가 Imaginationland 에피소드에서 잠깐 등장하는데, 어쩌며 앨 고어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존재일지도(...).
  23. [23] 다른 메시지들은 절대 삭제가 불가능하지만, 이 이벤트때 등장하는 메시지는 전부 삭제가 가능하다. 대우가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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