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인시대

SBS 월화 드라마

여인천하

야인시대

왕의 여자

SBS 대하드라마 {{{#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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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시대}}}}}} (2002)
野人時代

Rustic Period
[1]

국내등급

15세 이상 시청가[2]

방송 시간

월요일, 화요일 오후 10시 ~ 11시 10분

방송 기간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일

방송 횟수

124화

채널

장르

시대극

제작사

SBS프로덕션[3]

기획

차성모

제작지휘

이현석

프로듀서

김형욱

연출

장형일

극본

이환경

해설

이강식

출연

김영철, 안재모, 이창훈, 정동환

링크

다시 보기 야인시대 마이너 갤러리

1. 개요
2. 내용
4. 후폭풍
6. 잘못 알려진 것
7. 관련 매체
7.1. OST
7.3. 게임
8. 기타 얘깃거리
9. 인터넷에서
10. 관련 문서
10.1. 등장인물 목록
10.2. 작중 사건사고
10.3. 참고 문서
10.4. 외부 링크

1. 개요

왼쪽부터 구마적 , 미와 경부 , 쌍칼 , 김두한 ( 김영철 / 안재모 ), 신마적 , 최동열 .

대한민국 역대 최고 인기 드라마 중 하나로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작품이자 전 국민을 안방에 앉혔던 전설적인 드라마. 그리고 현재는 대한민국 합성요소의 대표주자로서 다른 의미로 인기를 지속하는 드라마.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바로 가 몸 바쳐 살아왔던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 내레이션

SBS에서 2002년부터 방송되었던 근대 사극/대하드라마. 일제강점기 1924년부터 광복 이후 대한민국1972년까지의 혼란한 사회를 살다 간 실존인물 김두한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극본은 이환경 작가, 연출은 장형일 감독. 2002년 7월 29일 ~ 2003년 9월 30일까지 총 124화에 걸쳐서 방송되었다.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드라마. 시청률이 최고 51.8%, 평균 30%대나 되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으며, 방영 동안은 물론 방영 후에도 부천시 상동 야인시대 세트장은 관광지가 되기도 하였다.[4] 당시 어른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물론이고 본방사수를 하려는 중고딩들이 집단으로 야간자율학습을 튀는 바람에 월,화요일에는 감독하는 선생님을 충원하기도 했고 학용품은 물론 각종 게임에선 학생들을 겨냥한 야인시대 상품(대부분 코트, 중절모 코스튬)을 팔기도 했다. 동시에 수많은 합성에 써먹기 좋은 요소가 노다지로 들어있는 작품이라 과거 디시인사이드의 인터넷 문화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합필갤이 주도했던 영상합성 문화의 뿌리가 되는 작품이다.[5][6]

그 인지도와 인기는 종영한지 15년이 지났는데도 대단한 수준으로, 당장 나무위키에 개설된 관련 개별 문서의 숫자와 양만 보아도 이 야인시대를 능가하는 드라마는 없다고 할 정도다. 내가 고자라니, 사딸라 등의 명단어 명대사가 여전히 인터넷 유행어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고 현재 2018년에도 계속해서 패러디물이 만들어지고 있으니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라 불리울만 하다.

본디 초반부엔 안재모의 액션활극이 중심이 되어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매일 악당의 부하, 두목을 쓰러뜨리는 김두한의 모습이 마치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 같은 특촬물스러웠는지 본래 사극 시청자층과는 거리가 먼 어린이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필살기는 김좌진 장군의 회상. 2003년 당시 겨우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도 "나는 김두한이다! 나는 시라소니다!" 하고 다녔었다. 이들은 2018년 기준 22, 23세[7]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에는 1부가 2부보다 훨씬 인기가 있어서 시청률은 1부가 훨씬 높았다.

2부에서는 김영철이 김두한을 연기했다. 시점으로는 광복 직후부터, 이때 뒤돌아보는 신에서 충격받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왜냐하면 광복 당시 김두한의 실제 나이는 28세였는데 야인시대가 1부에서 2부로 넘어갈 무렵의 안재모는 25세, 김영철은 51세였기 때문. 게다가, 장년기의 정진영(차광수), 개코(성동일)[8], 이정재(김영호)[9] 등을 맡은 배우들은 당시 30대 후반이라 당시 큰 위화감이 없었던 것도 시청자들이 받은 큰 충격에 한 몫했다. 2부 개시와 동시에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김두한이 아직 젊었던 시기인 미군정기에서 한국전쟁까지는 안재모가 계속 연기하다가 1954년 정도를 기점으로 해서[10] 김영철로 바뀌는 것이 시청자들에게는 좀 더 쉽게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하지만 야인시대 1부와 2부는 애초 기획부터 시대 배경, 등장 인물[11], 극의 방향점과 분위기 등 많은 부분에서 너무나도 다르게 설정되었기 때문에[12] 김영철의 비중을 줄이면서까지 안재모를 해방 이후의 배역으로 내세우기가 애매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많이들 바뀌는데 주인공이 안 바뀌기도 좀 그러니…1부와 2부는 같은 이름의 다른 드라마라는 말도 아마 연기자의 무게감 차이 때문일지도. 그래도 몇 년 후라는 이야기도 없이 그 시점에서 갑자기 나이를 먹고 배우가 바뀌어버리면 어색할 수 밖에 없는 점은 어쩔 수 없긴 하다.

다만 골수팬들 사이에선 2부가 더 재밌다는 의견도 많다. 또 당시 학생이었던 사람들이 성장하고 나서 '어렸을때는 잘 몰랐는데 정치싸움이 주먹싸움보다 훨씬 치열하다는 걸 알고 나서 2부를 재평가하게 됐다.' 라는 의견이 자연스레 많아진 것도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이야깃거리나 합성 패러디물 등으로 이 드라마의 생명력을 유지해 온 데는 2부의 공이 훨씬 크며 인지도도 역전된 상태이다. 드라마로서 전무후무한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2. 내용

요약하자면 1회~8회는 아역 김두한이 등장하는 시기, 9회~50회는 일제시대 하 청년 김두한(안재모)의 일본에 대한 저항, 51~75회까지는 미군정 하 해방 직후 절친이던 김두한과 정진영의 이념 대립, 76~90회까지는 이념 대립에 따른 좌우익 싸움과 6.25 전쟁, 90회 이후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김두한의 정치인생과 명동 VS 자유당의 힘을 업은 동대문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100회정도를 지나면서 사실상 극중 중요한 일은 거의 다 동대문의 이정재, 임화수, 유지광과 이기붕, 곽영주 위주로 나온다. 김두한은 자유당과 이정재의 동대문파가 난동을 부리면 신문으로 그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무슨소리야 하고 탄식하는 역 정도.

2부는 1부의 화려한 액션 느낌은 많이 퇴색되고 정치적인 싸움이 중심이 되기 시작하는 바람에 인기가 반토막으로 떨어졌다. 특히, 2부 파트 중 대부분은 정진영과 김두한-자유당, 이정재와 김두한, 명동파의 파벌 싸움을 묘사하는 데 할애되어 있어서 화려한 액션의 재미는 반감되고 애초에 그 시대가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였기에 비장함과 무거운 분위기가 다소 루즈함이 느껴졌던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부에서 한때 40~50%대의 높은 시청률을 거둬서 인기가 하락했어도, 평균 20~25% 정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하긴 했다. 장년층들에게 나름 추억물 드라마로도 인기가 있었던 듯 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2부가 1부보다 내용면에서 고평가받는다. 내가 고자라니 소스를 논외로 치더라도. 2부도 인기가 아주 바닥까지 떨어졌던 건 아니다. 당장 위 문단에서부터 어린이들이 흉내냈던 인물이 김두한과 시라소니였는데 시라소니는 2부에 등장한 인물이었다.

사실 새드 엔딩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김두한은 첫 회에 나온 국회 오물 투척사건 이후 옥고를 치르면서 몸이 매우 쇠약해졌다. 때가 때인지라 김두한은 중정에 끌려가서 수난을 당했다. 이종석 교수가 어느 강연회에서 말한 걸 옮기자면 희대의 협객도 중정에 끌려간 후 흐물흐물해져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정치에 입문하면서 해산하였던 우미관패 사람들은 김두한이 따로 지원을 해줄 형편이 못 되어 사회의 최하류계층으로 떨어저 병사(신영균[13]), 알콜중독으로 인한 병(김관철[14], 홍만길[15])과 정신병원(휘발유[16], 아구), 자살(갈치), 이민(김영태), 군부에 의한 체포 및 재판(김삼수[17])등 좋지 않은 결말을 맞게 된다.[18] 또한 김두한 역시 이후 사기를 당하게 되어 처지가 곤란해지고 고혈압과 심근 경색이 악화되어 길거리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우미관패들 중에서 작 중 기준이 아닌 실존인물을 기준으로 천수를 누린 인물은 사망연도가 1987년~1999년으로 추정되는 신영균[19], 2010년의 김영태[20] 두 사람이 전부이다.[21]

그의 장례식에 참여한 최동열 기자는 김두한이 활약했던 시기를 되짚어보며 그것이 바로 야인시대라는 말과 함께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참고로 최동열 기자는 작가의 극중 개입용 캐릭터로, 김두한보다는 20살 남짓 많다. 흔히 김두한보다 30~40살 정도 많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동환씨가 최동열의 학생시절부터 연기를 하다보니 생긴 오해이다. 실존 인물이었다고 해도, 70대 중후반정도였을 것이다. (사망 당시 김두한은 향년 55세)

3. 비판

비록, 50%이라는 전설적인 시청률을 달성한 드라마이지만, 역사적 고증이나 조폭 미화에 대한 비판에서는 피할 수 없었다.

야인시대/비판 항목 참조

4. 후폭풍

2003년 12월 개최된 제 16회 한국방송작가상[22] 드라마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으나 역사 왜곡, 폭력 미화 등의 이유 뿐 아니라 작가가 심사위원으로 임명된 점, "한번 작가상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 탓인지 탈락했으며 야인시대 외에도 MBC 내 인생의 콩깍지 KBS 1TV 노란 손수건 MBC 특집극 제비꽃, SBS 특집극 그대는 이 세상, 도토리묵이 최종 후보에 올랐지만 만화적인 설정과 캐릭터가 극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린 내 인생의 콩깍지, 출세 밖에 모르는 남자가 여자를 버리는 내용과 배신한 남자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등의 구태의연한 설정의 노란 손수건, 숙성도 미흡한 제비꽃[23] 및 그대는 이 세상 및 도토리묵 등의 이유 탓인지 모두 탈락했고 결국 그 해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없었다. '그대는 이 세상'의 작가 이금림씨는 KBS 2TV '푸른 안개'가 한국방송작가상 14회 드라마 부문 후보에 올랐으나 "한번 작가상[24]을 받은 사람은 다시 받을 수 없다"는 규정 탓인지 결국 탈락했고 우여곡절 끝에 그 해 드라마 부문 수상작은 '야인시대'의 작가 이환경씨가 쓴 KBS 1TV 태조 왕건으로 낙착됐다.

5. 최강자 논쟁

해당 문서 참조.

6. 잘못 알려진 것

구마적, 마루오까, 김영태, 박인애 등 실제인물 사진이라며 인터넷에 유포되기도 했는데 잘못 알려진 내용은 아래와 같다.

실제 김두한의 정신적 지주는 부친 김좌진이다. 마루오까라는 인물 사진은 한호산이며 첫사랑이라는 인물사진은 본처 이재희다. 구마적이라는 인물 사진은 이원조이며 박정희와 찍은 사진을 비롯해 권력과 손잡았다는 사진은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수여 뒤에 박정희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찍은 기념사진이다. 마지막으로 부인과 함께 찍었다는 김영태의 사진은 1944년 부인과 함께 찍은 최영의다.

7. 관련 매체

7.1. OST

강성이 부른 주제가(야인)는 청년 파트에서 싸움할 때 자주 흐르던 곡이라 그런지 이후 각종 매체에서 싸움하는 장면이 나오면 이 노래가 나오기도 했다. 초반에는 가사가 없는 연주곡만 나왔다. 김두한이 한창 세력을 키우던 도중 술에 취해 구마적의 부하들에게 털릴 때도 이 노래가 나오는데 주인공 일행이 얻어맞는 장면에서 주제가가 나오니 기분이 묘하다. 보통 그런 분위기의 장면에서는 돔바슬레의 'odysseus' 가 나왔다.[25][26] 참고로 '야인'은 한 회차당 절대로 두 번 이상 나오지 않으며, 김두한 외의 다른 인물의 결투 장면에선 나오지 않는다. 이 때는 2대 주제가라 봐도 되는 영웅주의나 전술한 'odysseus'[27]가 나온다.

2부에서는 나 사나이다가 주제가로 바뀌었으며, 굳이 김두한 결투 장면이 아니더라도 결투장면에선 어지간해선 나오며 야인과는 달리 한 회차당 몇 번이고 나온다. 차이점이라면 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 후반부에는 거의 연주곡만 나온다.

이외에도 같은 주제를 바탕으로 변주된 여러 테마들이 있었지만, 음악에 참여한 작곡가들이 자료가 담긴 하드디스크를 분실하며 아쉽게도 시리즈 사운드트랙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음악감독 이혁준 본인이 2013년 사비를 털어서 미발표곡들이 담긴 사운드트랙 앨범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저작권료를 얼마 받지도 못했고, 야인시대 음악들은 알아도 작곡가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게 아쉬운 부분.

7.2. 학습만화

특이하게도 학습만화로도 나왔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딴판에 생략에 알 수 없는 일 투성이. 전형적 양산형 학습만화에 가깝다.

7.3. 게임

게임 리뷰

2003년에 드라마 1부를 바탕으로 제작된 PC 패키지 게임. 제작사는 아트록스로 악명 높은 조이맥스.

드라마와는 좀 다르게 젊은 시절의 시라소니도 등장한다. 그 시절은 하얀마음 백구가 대박이 난 이후 아동용 벨트스크롤 액션게임 장르 붐이 일었던 시기인데, 이것역시 그러한 유행에 편승하여 양산된 게임으로, 출시 전부터 "시대에 역행한다" [32]며 많이 까였고 출시 후에도 절대 부족한 게임성 등으로 여러 혹평을 받으며 흑역사가 되었다. 게다가 게임 내에 나오는 캐릭터의 스프라이트 그래픽 등을 다른 일본 액션 게임에서 그대로 따오는 등 표절 행태까지 보여 더더욱 질타를 받았다. 특히 김두한은 아예 복장, 기술 등 대놓고 로버트 가르시아이다.[33]

까일 만한 요소에 대해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부족한 게임성 - 들 수 있는 무기가 없다. 작중에서도 가미소리 패거리와의 결투 빼고 든 적이 없지만서도. 아이템도 별로 없었다.
  • 캐릭터 표절 - 위의 각주 참고.
  • 뜬금없는 스토리 - 어디가 습격을 받았다→거기로 간다→공격한다. 끝. 중간에 이벤트 영상 그런 거 없다.
  • 패치가 패치가 아니다 - 패치라고 했더니 기껏 미와가 나오는 스테이지 하나 추가해 놓았다. 게다가 미와 경부의 캐릭터나 공격에 대한 디자인이 장난 수준이다. 권총을 쏘는데 페이크 공격으로 태극기가 나온다든지 고개 돌리고 주먹을 휘두르거나 물건을 던져댄다든지… 이거 80년대 게임 아니다. 거기다가 이 패치 파일에는 웜 바이러스도 감염되어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호쾌한 멜로디의 하드락을 중심으로 한 배경음악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잠뿌리의 리뷰에서도 배경음악에만큼은 '돼지 목에 진주' 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 이 배경음악들은 Studio EIM이라는 업체에서 제작했는데 이 업체는 이후 국내 굴지의 게임 음악 업체가 된다. 문서 참고.

영문판 위키피디아에는 드라마 항목 대신 이 항목만 작성되있고 영어로 검색하면 구글 이미지 검색에도 드라마 관련 사진보다 게임 스크린샷이 더 많이 뜨는 등 드라마 야인시대의 인지도가 전무한 외국에서는 오히려 게임을 아는 사람이 더 많다. 하지만 이후 2016년 5월 12일에 드라마 항목도 만들어졌다.

차라리 김두한과 주먹패들 자체를 다룬 게임을 하려면 본작보다는 1990년대에 FE사에서 제작한 야화1을 하는게 훨씬 낫다. 게임 난이도가 높다고 알려져있으며 이쪽은 경영적인 요소가 많지만 전투 역시 벨트스크롤로 진행된다.

그 외에 겜티즌[34]이라는 사이트에서 만든 플래시 게임이 있다.

8. 기타 얘깃거리

2004년 몽골에서도 방송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김두한 역을 연기했던 배우 안재모는 몽골 나차긴 바가반디 대통령으로부터 국빈 초청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몽골김두한이라는 이름의 식당까지 있다고. 일본 KNTV에서도 인기리에 방송되었다. 북한에서도 중후반부의 반공성에도 불구하고 몰래 보던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35]

하지만 안재모는 이후 일본에서 가수로 활동하려고 5년 동안 준비했으나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계약 기간 10년 동안 활동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진출하려고 했던 일본은 물론 야인시대로 올라간 인지도가 잊힌 이름이 되어버렸다. 일본에서 앨범도 내고 가수로도 활동하려고 했건만…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2014년에서야 정도전에 이방원 역으로 출연하면서 재기의 불씨를 틔웠다. 또한 메인 OST를 부른 가수 강성은 원 히트 원더로만 기억되면서 배우로 전향, 간간이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네이버 지식인드래곤볼 다음가는 VS놀이로 미와 Vs 왕눈이, 박인애 Vs 설향, 와싱턴 Vs 눈물의 곡절(차민섭) 등등 별별 해괴한 질문이 올라오기도 한다. 심지어 원노인 Vs 최동열[36] 도 존재한다. 이런 장난성 질문을 제외한 vs 질문놀이들은 종영한지 10년이 넘은 2014년에도 수시로 올라온다! 심지어는 5년 전 글에서 키배를 뜨기도 한다. 지식인 문서에도 있는 8년 키배는 이미 전설.

또한, 지식인을 잘 검색해보다 보면 원래 없는 내용을 있다고 주장하는 유저들도 가끔 있다 예를 들면 극중 나온 고대생 습격 사건에서 김두한과 함께 일하던 학생인 이찬오가 동대문패와 싸워서 이겼다고 하거나 맹수파라는 없는 조직을 만들어내는 등.

부작용이라면 사실 드라마상 각색된 건달들의 일화를 실제인 것인 양 믿는 바람에 그들의 미화되거나 영웅화된 내용을 고대로 믿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 그 때문인지, 이제는 시시해서인지 이 이후로는 조폭미화물들이 줄줄이 퇴짜신세가 되었다.

드라마 방영 당시 전국의 각급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 가 유행한 적이 있다. 룰은 가지각색이지만 대표적으로 여러명이 빙 둘러싸고 극중의 싸움 장면을 재현하거나, 단체로 패싸움 시늉을 하는 심플한 것이다. 가끔씩 신문지를 말아 일본도라 하며 혼마찌 패거리를 흉내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싸우는 시늉하면서 노는 거라면 모를까 2003년 광주에서 중학생 15명이 드라마를 모방하여 패싸움한 사건이 일어났다.

BGM이 왠지 묘한 장면들이 몇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이승만의 3선 출마 결의와 선언 장면은 엄연한 자유당과 이승만의 독재를 담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는 배경음은 희망찬 느낌이 강하다. 자유당 당원들이 이승만에게 대통령 출마를 설득하느라 온갖 수를 다 쓰다가 이승만이 '그래, 그럼 출마할 수밖에' 라고 결정하자 자유당 당원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는 장면이어서인데, 사실 이 드라마에서 자유당은 악역이기 때문에 배경음이 좀 묘하긴 하다.

방영 당시 서대문 개고기 김이라는 단역 배우의 NG 퍼레이드가 화제였다. NG가 계속될 때마다 나오는 이원종의 반응도 백미.

정동환씨는 극중 최동열 기자로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의 안재모를 취재했는데, 재미있게도 2010년 방영된 KBS드라마 자유인 이회영에서는 안재모정동환의 배역이 바뀌어서 안재모가 기자로, 정동환이 인터뷰이(interviewee)로 나오게 되었다.

총기 고증에 오류가 있다. 극중에 베레타 92 모델이 등장하는데 이 권총이 처음 공개된 시기가 김두한이 사망하던 1972년이라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1930~60년대)과는 맞지 않다. 뭐 지나가는 장면에 잠깐씩 나왔던 데다 총덕들이 아니면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부분이기에 대부분은 잘 모를 것이다. 6.25 전쟁과 김동진을 습격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김두한이 원노인과 함께 아버지 김좌진 장군을 만나러 가던 도중 마적에게 쫒길 때에도 마적들이 당시(1920-30년대)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MP40 기관단총을 들고 등장한다.

2부 들어선 아무래도 정치적인 사건들이 주로 등장하므로 나레이션이 계속 등장하여 여러 사건을 해설하거나, 사건에 대한 여러 역사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걸 설명해주기도 하는데, 나레이션의 십중팔구는 '그랬다' 로 시작하여 '○○했던 것이었다', '○○했다고 한다' 로 끝난다.

성우들이 일부 출연하기도 했는데 제일 강렬했던 것은 일본 총독 미나미 지로를 맡았던 오세홍과 젊은 시절 김영삼을 맡았던 정명준. 그리고 훗날 반란군 때려잡는 장군으로 열연했던 김기현(박인애의 친일파 아버지)과 서윤석(공산단 사상검증관), 이주창(공산당으로 위장한 김기홍과 동석한 사람) 또한 출연하였다. 특히 미나미 지로를 더빙한 오세홍은 후덜덜 그 자체. 사실 목소리 출연인데, 실사 배우와 전혀 다르게 생겼음에도 직접 출연했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 퍼진 오해인 듯..오세홍성우 출연영상1오세홍성우 출연영상2 참고로 두 번째 영상 후반에 김기현의 출연분량도 있다.

이 작품의 외주제작사인 SBS 프로덕션은 작가 이환경이 쓴 KBS 1TV 용의 눈물이 끝난 뒤 이환경을 1999년 스카우트하여 KBS 1TV 대하사극과 경쟁하기 위해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로 편성할 예정이었으나 이환경과 KBS와의 관계가 끝나지 않자 무산됐다.[37] 이후, <야인시대>는 뒷날 사극 여인천하 후속으로 편성될 예정이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여인천하>가 SBS 자체제작이었던 것과 달리 <야인시대>는 SBS 프로덕션 외주제작이었다.

하지만, <야인시대> 외주제작사인 SBS 프로덕션 측은 이 작품이 100회나 되는 긴 드라마인 데 이어 MBC, KBS의 미니시리즈와 맞붙게 될 경우 편성상 불리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주말 특별기획드라마로 되돌렸지만 당시 이환경 작가가 집필하고 있었던 KBS 1TV 대하사극 제국의 아침과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어 한 작가의 드라마가 다른 채널을 통해 동시 방영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이유 탓인지 <여인천하> 후속 월화드라마로 기획된 미니시리즈 라이벌과 편성을 맞바꿨다.

잘 찾아보면 마찬가지로 이환경이 작가를 맡은 태조 왕건에서 출현했던 배우들이 가끔(이라기엔 정말 많이) 눈에 띈다. 왕건 초반부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주를 이루는데 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은 말할 것도 없고 이석재 역의 손호균 씨는 기훤의 부하장수 역으로, 염동진 역의 이대로 씨는 도선대사 역으로, 이억일 역의 이광기 씨는 신검 태자 역으로, 단게 경무국장 역과 유지광의 절간 스승 역의 기정수 씨는 후백제의 파달 장군 역으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잘 찾아보면 단역으로 몇몇 사람들이 나오므로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38]

촬영지였던 부천시 야인시대 세트장은 야인시대 방영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유명 관광시설이 되었으나, 드라마 종영과 세트장 노후화, 화재 등으로 인해 2012년 3월을 끝으로 철거되어 캠프장으로 조성되었고, 당시 촬영 세트장 일부였던 전차와 종각, 혼마치 입구 간판 정도만 흔적으로 남아있다.

토이스타가 2004년 신제품 출시기념 이벤트로 셋트장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진행하였다.

정영숙, 고두심, 전미선 바로 이 세명은 당시 동시기에 방영됐던 어떤 임모 작가가 탄생시킨 모 M사 레전설격의 복수극 드라마에 역시 같이 출연한다.

광복 이전의 일제편은 고화질. 그리고 8.15 그 직후부턴 역시 저화질로 시청을 해야 제맛이라 카더라-?

9. 인터넷에서

문제가 많은 대성공한 조폭미화물로 남을 뻔했으나 합성소스로 재발굴되어 새로운 명성을 잇게 된 불후의 명작.[39]

한동안 맹위를 떨치던 조폭미화물이 사장되고, 야인시대 역시 '그 때 그 드라마'로 잊히는 듯 했다. 그러나 종영된 지 몇년 후 디씨인사이드에서 심영내가 고자라니 소스가 발굴되는 바람에 과거의 명작 드라마들보다 더한 인지도를 얻는 것에 성공하였다. 이런 이유로 청년 시절 안재모 파트보다 중년 시절 김영철 등장 파트가 더욱 유명해졌다.[40]

물론 심영 소스도 밀어주던 합필갤이 망해가는 상황이라, 합필갤과 더불어 오래 못 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유튜브로 활동 무대를 옮긴 영상 제작자들의 힘으로 인해 생존에 성공하고야 만다. 오히려 디시에서 유튜브라는 양지로 나오는 과정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인 요소나 디씨 내수용 험한 밈들이 대부분 필터링되면서 심영이나 놀려먹다 사라질 수도 있었던 합성물이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제작자들이 본격적으로 영상만으로 개그를 짜려는 연구를 하면서 심영 역시 다양한 이미지, 음원 편집으로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초창기에는 내가 고자라니의 장면만 쓰이면서 여타 극중 인물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64화, 65화, 넓게 잡아도 62~65화까지의 소스만 활용했다. 그러다가 심영물이 계속 만들어지면서 음원의 요소보다는 극의 상황을 비틀어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스토리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범위를 넓혀나가다 청년 시절의 김두한과 87화의 '중공군이라고?! 어림도 없다! 암! 아아아아암!!!'하는 장면, 그리고 84화의 장면까지 쓰이는 등[41] 야인시대라는 드라마 자체가 전체적으로 소스화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시금 재조명된 사딸라의 협상장면과 김두한 역을 맡은 김영철분의 다른 배역인 궁예도 만만찮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어서 야인시대 소스에 더욱 탄탄한 효과를 주어 인기를 올리는데 한몫했다. 이게 발전해서 야인시대 배우분들이 출연한 타 작품의 소스[42]나레이션 조교[43]와 대화까지 활용하는 등 그 범위를 한계까지 확장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발견으로 야인시대에서 가려졌던 등장인물들의 색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로 떼쟁이 이승만, 안습한 시라소니[44] 등의 새로운 소스들이 재발굴 되는 중이다. 보통의 유행어나 필수요소들이 길어도 1~2년정도 흥하는데 반해 야인시대는 2008년 즈음에 발굴되어 10년이 넘게 관련 합성물이 제작되고 있다. 물론 중간에 심영 배역을 맡으신 김영인분의 언급으로[45] 약간의 정체기가 있었지만 얼마 뒤 디씨 인터뷰에서 대범하게 넘어가셨고 합성물을 직접 허락하시면서 다행히 지속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앞으로 수년 정도는 롱런할 것으로 보이는데, 2018년 12월 기준으로 4년만 더 버텨도 야인시대 방영 후 약 20년이 되며, 이는 야인시대를 방영 당시에 본방으로 재미있게 보던 사람이 있으면, 현재는 그 사람의 자식이 유튜브에 업로드되어 있는 야인시대 합성물을 보면서 낄낄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야인시대/필수요소 참고.

10. 관련 문서

10.1. 등장인물 목록

10.2. 작중 사건사고

※ 연도순으로 작성하였다.

야인시대의 중요 사건/사고

부민관 폭탄의거 사건

중앙극장 습격 사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단성사 저격 사건

황금마차 습격사건

장충단집회 방해 사건

충정로 도끼 사건

고대생 습격 사건

국회 오물 투척사건

10.3. 참고 문서

10.4. 외부 링크


  1. [1] 일단 SBS의 공식 영문 제목은 이렇게 되어있는데, 외국에서 더 유명한 게임판 야인시대는 'Age of Wanderers'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또 Rustic에 '거친, 투박한'이란 의미도 있어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목가적인, 시골의, 소박한'이라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는 점. 격동의 시대 속에서 싸워나가는 인물을 그린 드라마라고는 연상되지 않는 생뚱맞은 느낌의 제목이다. 외국의 한국 드라마 팬들은 아예 그냥 'Yainsidae'로 부르기도 한다.
  2. [2] 2002년방송 프로그램의 등급 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이 일부 개정됨에 따라 21화부터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영하였다. 종영 이후 유료방송 등에서 재방송을 했을 때는 20화 이전 방송분도 15세 이상 시청가로 소급 분류하였다.
  3. [3] 제작사업 부문은 SBS Plus(당시 SBS 드라마 플러스)로 합병되었으며 유통 및 기타사업부문은 SBSi와 합병하여 SBS콘텐츠허브가 되었다.
  4. [4] 야인시대 세트장은 드라마 종영과 세트장 노후화, 화재 등으로 인해 2014년 1월을 끝으로 철거되어 캠프장으로 조성되었다. 다만 캠핑장이 되고 나서도 '야인시대' 라는 명칭은 유지. 즉 야인시대 캠핑장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당시 촬영 세트장 일부였던 전차와 종각, 혼마치 입구 간판 마저도 2016년에 모두 철거되었으며 2017년 기준 해당부지는 농지로 사용중이다. 토이스타에서 신제품 홍보이벤트로 2005년도에 이곳에서 서바이벌게임을 개최해 당시 서바이벌 게임 유저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5. [5] 그 전까지는 영상이 아닌 짤방합성 문화가 대부분이었다.
  6. [6] 다만 내가 고자라니의 떡밥이 식으면서 합필갤은 급격히 몰락하게 되는데 영상 제작자들은 활동무대를 유투브로 옮기면서 다시 야인시대 합성물 흥행에 불을 지피게 된다. 자세한 사항은 후술.
  7. [7] 당시 많은 전국 사립초등학교에서 자체 내에서 교복으로 팔던 겨울 코트들이 단종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주조연출들이 입던 코트들 때문.
  8. [8] 이 둘은 외모로썬 너무나 청년기와 장년기의 위화감이 없었다. 개코는 그냥 그대로 늙은 것 같았다. 다만 정진영의 경우 외모의 변화는 자연스러우나 열렬한 공산주의자로써의 모습이 부각되어 성격은 많이 변했다.
  9. [9] 이정재는 위화감이 좀 있었다. 외모의 차이도 그렇고 1부의 이정재가 과묵하고 카리스마적인 모습만 나왔다면 2부 초반의 이정재는 털털한 동네 형같은 느낌이었기 때문. 물론 6.25 이후 동대문을 중심으로 조직을 만든 뒤부터는 보스의 카리스마가 제대로 터졌다.
  10. [10] 1954년은 실제 역사에서 김두한이 37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해이다. 37세면 방영 당시 기준으로 안재모와 김영철의 딱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연령대이며, 마침 김두한의 직업이 주먹패에서 정치인으로 바뀌기도 했고 시대상 또한 한국전쟁 직후인 만큼 배우를 변경하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을 것이다.
  11. [11] 물론 1부에서 이어져 2부에도 출연한 배우나 캐릭터들이 있긴 했지만 극 전체로 보면 소수나 다름없다.
  12. [12] 1부는 일제 강점기이며 일본인들과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나왔고 김두한이 주먹패 오야붕이 되는 과정 및 주먹으로 일제에 항거한다는 것이 주제였다면, 2부는 해방 이후 정치인들이 많이 나오고 김두한이 정치에 발을 들이면서 공산당과 독재에 맞선다는 내용이다.
  13. [13] 실제로는 1987년에 경향신문에 우익단체 활동 관련 증언을 한 것을 볼 때 1990년대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오히려 김두한보다도 훨씬 오래살았다. 다시 말하면 신영균이 병사했다는 것은 야인시대에서 각색된 것.
  14. [14] 위가 녹았다고 언급하는 걸 보니 위궤양으로 추정됨.
  15. [15] 간에 혹이 생겼다고 언급하는 걸 보니 간경화로 추정됨
  16. [16] 이후 김두한의 장례식장에 멀쩡한 모습으로 참여했으므로 제외.
  17. [17] 김삼수는 우미관패 중에서 유일하게 이정재가 이끄는 동대문파를 중심으로 통합한 삼우회의 구성조직 중 하나이며 최창수가 이끄는 서대문파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5.16 정변을 일으킨 군부에 의해 이정재, 임화수, 신정식등 삼우회의 대부분의 구성원들과 함께 군부에 의해 기소돼서 재판을 받은 인물이다. 다만 김삼수가 우미관 해체이후 삼우회에 투신한 것은 드라마판의 기준인데다가 5.16 군사정변 당시에 이정재와 함께 사형당한 것은 작품 외적의 시점에서의 추정일 뿐 원작 소설에서는김두한의 장례식에 참여하는 등 김두한을 배신하지 않았다.
  18. [18]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 당시까지 포함하면 김무옥은 좌익과의 총격전 중에 사망했고, 개코는 여공들에 의해 강간 누명을 쓰고 김두한으로부터 자결을 종용받다가 김두한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맞게 되었고, 정진영은 좌익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혀 대한민청 본부에서 김두한에게 총(사실 빈총이었다.)을 겨누며 같이 죽자며 김두한을 자신의 길동무로 삼으려다가 김두한에 의해 사살되었고, 문영철은 6.25전쟁에서 전투 중 사망했다.
  19. [19] 1987년 이후나 1990년대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사망 당시의 나이는 1987년을 기준으로 하면 연/만 나이 71세, 사망연도를 1999년으로 가정하면 연/만 나이 83세가 된다.
  20. [20]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사망했으며 당시 나이는 연/만 나이로 향년 90세이다.
  21. [21] 김관철의 경우 1987년에 신영균을 비롯하여 해방 당시 대한민청에서 활동했던 옛 동지들과 함께 찍은 사진등 증거자료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관철도 야인시대 작 중과 달리 1980년대 이후까지 여생을 보내다가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22. [22] 전년도 후반기부터의 내용 위주
  23. [23] 내용이 가정폭력 위주로 일관하는 점도 있었다.
  24. [24] 이금림 작가가 SBS '은실이'로 12회 드라마 부문 수상
  25. [25] 물론 원곡을 그대로 쓰지 않고 도입부 부분을 편곡했다.
  26. [26] 하야시의 처제인 나미꼬와 김두한의 첫 대면 장면에서도 카페 BGM으로 깔린다.
  27. [27] 전투씬에서는 김두한 Vs 구마적, 작두, 금강,마포패거리 김영태 Vs 왕발, 장충단 공원 결투, 문영철 Vs 오노 총 7번 깔리며 금강과의 맞짱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풀버전 곡이 깔렸다.
  28. [28] 청년기 후반 영웅주의가 많이 나왔지만 야인도 간간히 나왔다.
  29. [29] 참고로 가사없는 버젼은 이미 2화부터 나왔다.
  30. [30] 122회부터 마지막회(124회)까지는 예고를 방영하지 않았다.
  31. [31] 음을 올린 버전이 1부 최종화인 50회의 끝을 장식했고, 음을 낮춘 버전이 김두한이 길에서 쓰러져 최후를 맞는 최종화 마지막 장면에 쓰였다.
  32. [32] 반면에 1997년에 개발한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벨트스크롤 액션게임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명작으로 지금도 고전게임의 명가 중 하나로 대접받는다. 잘만 만든다면 시대를 역행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33. [33] 로버트 가르시아의 비연회전각이나 환영각 등을 김두한이 그대로 쓴다.
  34. [34] 당시 인티즌이라는 사이트의 게임 커뮤니티. 현재는 커뮤니티 부분을 드림위즈에 매각하고, 게임 부분(군주 온라인)은 그대로 남아 엔도어즈가 되었다.
  35. [35] 그런데 북한에서 《야인시대》를 보다가 간부에게 들켜 총살형을 당한 주민이 있었다는 소식이 보도된 바 있다.
  36. [36] 둘 다 김두한과는 우호적 관계의 인물이다. 원노인은 김두한의 은인이고 최동열은 김두한을 돕는 조언자 정도의 위치
  37. [37] 결국 SBS의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부활작은 유리구두가 됐다.
  38. [38] 당장 비중이 제법 있는 조연들 중 왕건의 의형제 3총사중 하나인 박술희 역의 김학철이 야인시대에선 조병옥 역을 맡았고, 신검 역의 이광기는 이정재의 보디가드 이억일 역, 견훤의 사위인 박영규 역의 임형주는 장택상 역으로 분했다. 이 외에도 왕건의 부인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거의 필수요소급으로 등장하는 왕식렴 역의 정국진씨는 야인시대에서 이만섭 역으로 나왔고, 후백제 신덕 역의 임병기씨는 야인시대에선 박헌영으로 분했다. 왕건의 세번째 충주부인역으로 나왔던 전미선이 여기선 김두한 생모로, 방장군 역을 맡은 방형주는 여기에서는 이영숙 밑의 고릴라역, 지방 호족으로 왕건에게 복속된 윤선 역의 함석훈이 황병관 역으로 나오는 등등..가끔이라고 하기엔 양 작품에 모두 출연한 연기자가 극의 비중을 떠나 정말 많다.
  39. [39] 물론 순수 네티즌들의 노력이 가미되었지만.
  40. [40] 사실 청년파트에 비해 중년 파트가 절반 이상을 차지해서 분량 면에서도 더 긴데다, 주먹깡패 시절보다는 국회의원도 해 본 광복 이후가 김두한 개인에게 있어 진짜 리즈 시절이다. 하지만 평균 시청률은 일제시대, 즉 '김두한의 청년파트'가 더 높다. 50%를 찍은 것도, 김두한이 신마적, 구마적과 싸울 때 뿐이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안재모의 청년 파트가 '한 물 간 그 때 그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41. [41] 물론 이전에도 국회 오물 투척사건 때문에 유명해진 '똥이나 쳐먹어 이 새X들아'는 쓰이기도했다.
  42. [42] 대표적으로 바리바리 짱에 출연한 김영인 씨의 장면이 있고, 위에서 서술한 김영철 분의 배역 중 하나인 궁예와도 자주 엮이며, 비주류로써 간혹 상하이조 역할의 조상기 씨가 출연한 골든 타임이나 뮤직비디오 등이 있다.
  43. [43] 특히 마지막화 김두한의 사망 장면에 나오는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쓰러졌다."라는 대사가 등장인물들의 처형용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44. [44] 원작에서는 주먹계 최강자 급이었지만, 야인시대 합성물에선 까불다가 총에 맞아 죽거나, 면박과 구박을 당하는 역으로 등장한다.
  45. [45] 충격을 좀 받으셨다고 한다.
  46. [46] 어린 김두한이 사건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나온다. 김두한은 나석주의 죽음을 목격하고 독립운동을 결심한 계기가 된다. 물론 현실은 결국 깡패의 길을 걷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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