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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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대표이사 사장

제16대
최문순

제17대
엄기영

제18대
김재철

1. 개요
2. 기자
4. MBC 사장
5. 사장직 사퇴 이후
6. 논란
7. 선거이력

출생

1951년 8월 5일, 강원도 인제군

신체

174cm, 63kg, O형

학력

춘천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1] 사회학과

경력

1974년 MBC 입사
MBC 보도제작국장(1998.03~1999.03)
MBC 보도국장(1999.03~2000.02)
MBC 보도본부장(2000.03~2002.02)
MBC 특임이사(2002.03~2008.02)
MBC 사장(2008.02~2010.02)
한국방송협회 회장(2008.02~2009.03)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2012.04~2014.09)

종교

개신교

문화방송의 前 기자이자 사장.

1. 개요

뉴스데스크의 전설적인 앵커로 현재까지 대한민국 최장수 앵커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가 뉴스데스크 앵커로 재임한 기간은 장장 13년 2개월(1989년 10월 9일 ~ 1996년 11월 8일 / 2002년 1월 1일 ~ 2008년 2월 1일)로 뉴스데스크를 가장 오래 지켜온 앵커다. 2010년 MBC 리서치에서도 뉴스데스크 하면 가장 떠오르는 남자 앵커로 70%가 그를 뽑았을 정도다. 말단 기자로 시작하여 MBC의 메인 뉴스 앵커,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거쳐 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기도 하다.[2][3] 강원도 출신으로 춘천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후 1974년에 MBC에 입사했다.

2. 기자

기자생활에서 꽤 파란이 많은데, 1977년에는 설악산을 취재하고 김포공항으로 복귀하다가 경비행기 추락사고로 거의 죽다 살아나기도 했다.[4] 1980년대 후반에는 파리 특파원을 역임하며 뉴스 마무리를 항상 세느강변에서 하여 화제를 모았다.[5] 이때 흩날리는 머리에 바바리코트 차림이었기에, 기자의 로망으로 불리며 기자 지망생들의 선망을 얻기도 했다.

3. 뉴스데스크 앵커


평일 남성 앵커

추성춘/차인태

엄기영

이인용

권재홍

엄기영

김성수

1989년 10월 당시의 진행 모습.

1991년 4월 이후 진행 모습.

2007년 당시의 진행 모습.

2008년 2월 1일 마지막 진행 모습.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유명했던 멘트.

1989년 10월에 추성춘 앵커(논설위원)의 후임으로 38세의 나이로 뉴스데스크의 앵커로 발탁[6]된 이후, 1996년 11월까지 7년가량의 긴 기간동안 진행을 맡았다.[7] 이후 파트너 김은주 앵커와 함께 앵커직에서 물러났다.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을 역임하다가[8] 2002년 1월 1일부터 다시 앵커를 맡아 2008년 2월 1일까지 6년가량 계속 뉴스데스크의 앵커 자리를 지켜왔다. 동시에 MBC 사장이 되기 전까지 특임이사 자리도 겸했었고, 2007년부터는 아예 부사장 대우를 받았다. 부사장이 직접 전해주는 뉴스. 손석희? 2008년 2월 1일, 엄기영 앵커의 마지막 날엔 뉴스데스크에서 고별 뉴스를 마련해줬다.2008.2.1 클로징 멘트 유튜브

최일구 앵커만큼은 아니지만 클로징 멘트로 종종 이슈가 되는 말을 자주 했다. 최일구 앵커보다는 훈계적인 성격이 더 강하긴 했지만 이전 앵커들은 "뉴스 마치겠습니다." 같은 간단한 멘트로 끝마치다 보니 더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유명한 유행어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였다. 이 말을 박명수를 비롯하여 여러 개그맨들이 엄기영 앵커의 성대모사를 할 때 사용했다.

하기야 엄기영 앵커가 앵커직에 있던 때(1989년 10월 ~ 1996년 11월)는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를 시작으로 아시아나항공 733편 추락 사고,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성수대교 붕괴사고에 이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까지 터지는 등 대형 사건들이 워낙 많이 일어났던 때인지라 저런 말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계속되는 대형사고 때문에 못 참았는지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 당시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계속 되어야만 합니까?" 로 뉴스를 시작한 적이 있다. 지금봐도 그 멘트는 후덜덜하다.[9] # 하지만 이로부터 불과 두 달이 지나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2002 월드컵 때는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당시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4강에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낸 뉴스를 보도해서인지 여태까지에 비해서 늘 밝은 표정이었는데 대회 진행에 따라 한국 대표팀이 계속 승리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갈수록 더욱 그런 표정을 지으며 뉴스를 보도했다. #

하지만 그의 앵커 생활에도 흑역사가 있는데, 2007년 7월 26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에 관한 뉴스를 전해주다 화면이 특파원 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의식적으로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이 엄 앵커를 비판하고 옹호하는 싸움이 일어났는데, 결국 엄 앵커가 이에 대해 사과했다. #

4. MBC 사장

2008년 MBC의 사장이 되었다.[10] 그리고 2009년까지는 한국방송협회 회장도 겸직하였다.

그는 사장직에 있었을 당시 집권당과 정부의 심각한 공정방송 훼손에 저항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 PD수첩에서 광우병 논란에 대해 다룬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당 쪽에서 계속해서 MBC의 최대주주이자 사실상 MBC 사장과 임원의 임명권을 쥐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를 친정부 측 인사로 채우고 엄기영 사장과 MBC를 압박하면서 서로의 갈등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11]. 심지어 극우단체까지도 MBC를 '좌파 선동방송'이라며 항의시위까지 하고 보수 네티즌까지 덩달아 '좌비씨'라고 욕을 해댔다.

그런데 갑자기 2010년 초에 임기를 마치지 못한 채 갑자기 MBC 사장직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 사퇴한 이유에 대해서는 뉴MBC플랜이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책임이라고 알려졌다. # 그리고 MBC의 암흑기가 시작 그의 사퇴를 시작으로 많은 아나운서, 기자들[12]도 파업 등으로 줄줄이 사퇴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 시기부터는 마음 고생 탓인지 머리 염색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지 백발 스타일이 계속되고 있다.

이 때문에 MBC와 사이가 멀어져서 MBC에선 그를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으나 의외로 뉴스데스크 40주년 특집에 참석했다. 그에겐 뉴스데스크가 특별한 존재니 이 자리만큼은 참석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5. 사장직 사퇴 이후

그 이후로는 한나라당으로부터 계속 강원도지사 출마를 요청받았으나 거부해왔다. 하지만 이광재 강원도지사가 물러나게 될 경우에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2011년 3월 2일, 한나라당 후보로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사실 엄기영은 춘천 출신으로, 평소에 고향 강원도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의견을 MBC 재직 시절부터 주변에 자주 피력했고, 퇴임 이후에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추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이 시기에 평창 유치 홍보를 위해서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KBS에 나오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나 뭐라나.

2011년 3월 1일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강원도지사에 출마할 것을 선언했다.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참조. 같은 MBC 사장 출신의 최문순[13]과 대결해 주목을 받았지만 강릉의 한 펜션에서 불법적으로 전화 홍보원 30여 명을 동원해 불법 선거운동을 하다 적발되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후진국형 참사가 계속 되어야만 합니까? 엄기영은 선거운동원들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팬션과 휴대폰을 자신이 마련해준 걸 보면 믿기 어렵다는 주장이 많았다. 결국 춘천고등학교 후배인 최문순에게 득표수가 밀려서 낙선하였다.

낙선 이후 2012년 바뀐 당명인 새누리당과 후신인 자유한국당의 이름으로 남긴 정치 행적이 없는 것으로 보면 강원도지사 낙선 이후 한나라당에서 탈당했거나 새누리당에 가입만 되어있을 뿐이고 정치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김문수 前 경기도지사에 의해 경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맡았으나 2014년 7월 8일에 사표를 제출하였고 그 이후로는 방송계와 정치계에서 모두 물러난 상태로, 이제 2008년 마지막 뉴스데스크 클로징에서 말한 것처럼 진정한 모니터 밖의 일반인이 되었다.

2017년 8월 코엑스몰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공범자들의 시사회에 참석하였다. # 엄기영 사장이 한나라당 입당(...)이라는 삽질을 해서 별로 동정받지 못하지만 MB정부 방송장악의 두 번째 피해자가 바로 엄기영 사장이다.[14]

6. 논란

그의 한나라당 입당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되었는데, MBC 사장 시절만 해도 이명박 정권과 사사건건 대립하면서 MBC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과 최문순 의원(비례)이 후보 양보론까지 꺼내가며 영입하려 했을 정도였으나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최문순에게 패하며 정치적으로는 안습한 행보를 가게 되었다.

혹자는 그가 X맨 역할로 한나라당에 들어가서 고의적으로 토론을 망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강원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앵커 출신이라는 점이 무색한 정도를 넘어서 아예 횡설수설로 일관해버리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오죽했으면, 최문순 후보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말을 역으로 날렸을 정도였다. 특히 MBC 사장 자리에서 반강제적으로 사퇴한 것까지 더해 MBC와의 끝을 안 좋게 한 한나라당과 정권에게 빅엿을 먹이려는 의도를 가졌을 거라는 추측도 있긴 한데 진실은 저 너머에.

반면에 그가 원래부터 한나라당 성향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MBC 사장 역임 시절 MBC 노조원들이 미디어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파업을 두 차례 강행했으나 열흘을 못 넘겨 철회된 바 있고, 민주당 영입설이 돌 당시 그의 측근들이 그가 한나라당 성향이라 반박했던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또한 1992년과 1996년에 MBC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다른 앵커들(예를 들면 손석희, 백지연 등)과 직원들이[15] 제작거부에 동참하거나 간접적으로 리본을 다는 식으로 파업에 참여할 때 땜빵 방송을 맡았으며 덕택에 20년 뉴스 보기에서도 MBC 파업기간 당시의 뉴스데스크 방송일자를 검색해보면 엄기영 앵커가 혼자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엄기영은 이 당시에 이미 간부급인 부장이 되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노조원 지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성향이 사실이라면 방송에서 자기 성향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므로 방송인으로서는 상당히 훌륭했다고 볼 수 있겠다.[16] TV조선의 같은 종씨 쓰는 사람과는 다르다 사람의 정치 성향을 무조건 민주당과 한나라당 계열로 나누긴 어려운 만큼, 이 논의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다.

또한 보수세가 강한 강원도이기 때문에 당선을 위해선 우선 당적을 한나라당으로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친이계가 아닌) 바른정당 포지션으로도 볼 수 있다.

위의 여러 가지 추측은 2017년 9월 19일 미디어오늘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모두 해소되었다. 우선 MBC 장악에 국정원까지 동원됐다는 사실은 본인도 몰랐으며, 그 시절 끝까지 버티지 않고 사임한 것은 나름대로 '관용'을 찾고자 했다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자신이 물러날 테니 이쯤에서 멈춰 달라는 의미였던 듯. 그러나 실상은... 김재철이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했으며 이후 사장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뒷골이 땡겼으면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으나, 2011년 강원도지사 출마 관련해서는 자신은 좌우 성향이 없고, 민주당에 들어가면 오히려 MBC에 부담(MBC=민주당 방송사라는 이미지 확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당시에 한나라당이었던 자신을 강원도지사로 선택했으면 강원도가 지금보다 더 순조로웠을 것이라 말해 X맨설은 자연스럽게 부정되었다. 즉, 그의 강원도지사 출마는 모든 것이 진심이었고 그 '토론 실력'도(...) 모두 진짜였던 셈이다. [17]

오히려 위의 서술처럼 어느 포지션으로 볼 것이냐보다는, 이념이나 성향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원만한 포용, 조화 그리고 그가 2번의 마지막 클로징 멘트 # ##에서 말했듯 '인간다움'을 그가 더 중시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그리고 세상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삭막했다.

7.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당선여부

비고

2011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강원도지사)[18]

한나라당

267,538 (46.6%)

낙선 (2위)


  1. [1] 문리과대학이 사회과학대학으로 개편된 것은 1975년으로 이는 엄기영 졸업 이후이다.
  2. [2] 몰론 그런 식으로 사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엄기영 이외에도 몇 명 있는데, 대표적으로 엄기영 다음 사장인 김재철 역시 보도국 기자 출신. 다만 김재철은 뉴스 앵커를 하지는 않았고 또한 엄기영처럼 MBC 기자들을 통솔하는 보도국장이나 보도본부장엔 오르지 못했다. 김재철은 굳이 말하자면 100분 토론이나, 시사메거진 2580 등을 담당하는 시사제작국 국장과 지역 MBC 사장(울산, 충주) 출신이다.
  3. [3] 또 다른 예시로는 김장겸이 있는데, 이 사람 역시 보도국장 → 보도본부장 테크를 탄 바 있다. 단, 김재철과 마찬가지로 앵커 경력은 없다.
  4. [4] 하지만 본인도 2개월간 식물인간이었다고 했다. 이때 비행기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사망하였다.
  5. [5] 마무리 멘트인 "파리에서 MBC 뉴스 엄 기영입니다"라는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저 말을 할 때의 포인트는 "엄" 과 "기영"을 끊어서 읽어주는 것.
  6. [6] 이득렬 앵커 이후 2년간 강성구 논설주간과 추성춘 논설위원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백지연 아나운서는 계속 자리를 지켰다.
  7. [7] 앵커자리와 편집부장 겸임
  8. [8] 그 사이 뉴스데스크는 이인용 앵커와 권재홍 앵커를 거쳤다.
  9. [9] 참고로 사고현장에 파견된 기자는 어느 정도 유명한 인물인데, 나중에 MBC를 퇴사하고 정치인이 된 정동영이다
  10. [10] 2008년 2월에 임명되었기에 한나라당과 방문진이 임명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직 참여정부 체제인 2월 중순에 승진한 것이므로 열린우리당과 방문진이 임명했다고 볼 수 있다.
  11. [11] 우리나라 공영방송의 지분 구조가 좀 골때리는데, 공식적으로 MBC의 최대주주는 특수법인 방송문화진흥회(약칭 방문진)이며 이 방문진의 이사장과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임명한다. 그런데 방통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방통위원은 국회의석 비율에 따라서 추천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이 공영방송에 개입할 수 있다. KBS도 마찬가지로 이사회 의원의 대다수를 정부 여당과 청와대에서 추천한 인물이 맡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역시 개입이 가능하다.
  12. [12] 김주하, 박혜진, 오상진, 최윤영, 문지애, 서현진 등 20명 가까이 떠났다.
  13. [13] 최문순은 엄기영보다 사장은 먼저 맡았지만 엄기영보다 나이가 5살 어리며 춘천고등학교와 MBC 입사후배이다.(엄기영은 1974년 입사, 최문순은 1984년 입사.)
  14. [14] 첫 번째는 2008년 9월 강제로 불법 해임당한 정연주 KBS사장이다. 이후 KBS도 암흑기에 접어든다
  15. [15] 그토록 욕을 먹는 김재철이나 후에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직을 역임하게 된 한선교도 의외로 파업에 동참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수구화 되었지만. #.
  16. [16] 다만 김대중 - 노무현 정권 당시 이 선거에서 참패했을 때 매우 무거운 표정을 하는가 하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구조사 때 민주노동당이 10석 내외를 얻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아 대단합니다."'라는 멘트를 내뱉는 등 다소 중립성이 결여된 모습도 분명 있었고 솔직히 대단하긴 했지? 심지어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때는 노무현 후보가 앞서나가기 시작하자 약간의 미소를 띤 표정으로 진행하는 등의 모습이 있었다. 2017년 8월에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사를 다룬 영화 공범자들의 시사회에 참석한 것 등에서 일각에서 엄기영이 친 민주당 성향이라고 주장하는 계기도 있긴 했다.
  17. [17] 이용마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정치부장 시절에도 시종일관 차장에게 끌려다니기 일수였고, 회의 때도 상당히 조용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말잘하는 진보언론인과 정반대였다고. 이용마기자는 사장 자리만을 평생 쫓아 온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18. [18] 전임자 이광재 도지사직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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