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한국 산악계의 영원한 전설이자 대장

1960년 9월 14일생. 대한민국산악인.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이지만 3살 때 경기도 의정부시로 이사하면서 그곳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2001년아시아 최초이자 세계 8번째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완등하였다. 그리고 다른 8,000m급 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등정하여 세계 최초로 16좌 등정에 성공한 대한민국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다만 엄홍길의 시샤팡마 등정은 1993년에 이루어졌으나 등정 실패 의혹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에 논란을 불러왔으나,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의 국제 공인 기록인 2001년의 재등정을 인정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산악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로서, 16좌 등정 이후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16좌의 마지막 고비였던 로체샤르 등정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산악인으로서의 삶과 도전 정신 등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며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평소에 무릎팍도사를 보지 않던 사람들도 '엄홍길이 나오니까 한 번 볼까'해서 본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간 수많은 강연과 방송 출연을 해왔지만 무릎팍도사라는 예능 프로에 나오게 된 이유는, 산에 관련된 에피소드나 인생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이라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로체샤르가 지금까지 오른 산 중에 제일 힘들었다고 말하며, 다른 산은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고 정이 가는데, 로체샤르만큼은 정나미가 떨어진다고(...) 로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엄홍길 대장이 오른 루트가 수직 빙벽이 3,500m로 꽂혀있는 로체샤르이다.

대한민국 해군 출신, 그것도 UDT 출신이라는 이색적인 경력으로도 화제가 된 산악인. 산에 오르던 그는 넓은 바다를 경험해보고 싶어서 해군에 수병으로 입대했으며, 갑판병이 되어 함정 근무를 하다가, 막상 배를 타기만 하는게 지루하게 느껴져 UDT에 지원하게 되었다. UDT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경험한 군생활이 훗날 히말라야를 오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군 시절 경주 감포에서 독도까지 5박 6일동안 수영해서 가기도 했다고 한다(...) 최종 계급은 병장.

산악인으로서 그의 마인드는, 산을 오를 때에 산이 잠시 정상을 빌려주는 것일 뿐 산을 정복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산이 허락해 주지 않으면 자기가 아무리 경험이 많은 산악인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흔히들 신의 영역이라 부르는 8,000m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을 낮추고 겸허한 자세로 산을 오르게 된다고 한다.[1]

더불어 산에 오르다보니 언제라도 죽을 각오를 해서 2013년 3월 4일 TV에 나와 미리 쓴 유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후배이던 故 박영석(1963~2011), 박무택[2], 장민[3] 같은 등산가들이나 친하게 지내던 셰르파들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걸 하도 많이 봤으며, 자신도 죽을 고비를 많이 겪다보니 이런 유서 작성은 당연했을 것이다.

아이스 에이지 2에서 딱정벌레 아빠 역으로 더빙을 맡기도 했다. 참고로 여기에 조오련, 하일성 같은 다른 스포츠 분야 전문가들도 같이 더빙을 맡았다.

16좌를 제패한 이후에는 8,000m 고산에는 오르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엄홍길 재단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모든 것을 베풀며 살 것을 다짐했다고 하며, 네팔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

그의 책을 보면 요즘 기후 변화(지구 온난화)가 에베레스트나 히말라야에서도 뼈 저리게 알 수 있을 정도라는 걱정이 나온다. 1980년대만 해도 히말라야의 산들은 날씨가 나빠도 사흘 정도만 마을에서 쉬면 날씨가 좋아졌지만, 2000년대에 와선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고 산 곳곳에 눈이 많이 녹은 게 갈수록 늘고 있다면서, 산마을에서도 차와 첨단장비로 편하게 지내고, 갈수록 자연이 오염되고 있는데 머지않아 히말라야 산들에 눈이 남아있긴 할까 걱정이 된다고 회고했다.

2015년 네팔 대지진 때, 지인들과 함께 네팔에 구호 활동을 위한 자원 봉사를 하러 갔다. 네팔에 대하여 애정이 각별하다고 밝혔는데 그럴 만한 게 네팔에 초등학교도 세워주고 친구들도[4] 많다고 했다. 후배 산악인들에게 네팔 사람들을 무시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고 엄격한 충고를 할 정도로 네팔은 제2의 조국이라고 누누히 강조했던 만큼 이 지진 여파가 남일이 아니었으리라.

2015년 12월 16일 개봉한 히말라야에서 황정민이 연기했다.

2016년에는 바둑기사 조훈현 九단과 엄홍길 대장에게 새누리당에서 비례대표를 제안하였다는 기사가 등장하였다. 처음 보도된 당시에는 엄홍길 대장이 입당을 고려하는 중이라는 기사가 났었으나 후에 엄홍길 대장이 지인에게 입당제의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완곡한 거절의 의사로 생각해보겠다고 말을 했는데 이를 언론에 보도해서 당황스럽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또한 "지금은 정치에 생각이 없다. 히말라야와의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한다[5]"며 입당을 확실하게 거절한다는 내용으로 다시 인터뷰한 기사가 올라오면서 정치계 진출 소동이 일단락 되었다.#[6]

같은해 2월에는 기아자동차 모하비의 광고모델로 출연하셨다.


  1. [1] 사실 이건 어느 산악인이나 마찬가자다. 한국의 또 다른 유명 산악인인 박영석도 그의 자서전에서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2. [2] 2004년 에베레스트 정상등정 직후 하산길에서 사망. 위의 로체샤르 에피소드에서 엄홍길과 함께 했던 후배이다. 엄홍길이 2005년 휴먼원정대를 조직하여 시신을 찾아 내려오려 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으로 인해 시신을 밑으로 운구하지는 못하고 양지바른 곳에 직접 돌무덤을 만들어줬다. 이 일은 2015년에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로 영화화 되었다.
  3. [3] 선배 박무택과 같이 하산 도중 설맹으로 앞을 볼 수 없게 된 박무택이 먼저 내려보냈으나 실종되었다.
  4. [4] 단짝이던 네팔인 셰르파가 사고로 죽은 뒤 유족들에게 지금까지도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미망인과 아이들도 엄홍길을 친척 아저씨라고 친근하게 부를 정도라고. 아들은 이젠 고교생이 되었는데 학비도 엄홍길이 맡고 있다고.
  5. [5] 히말라야 지역에 학교를 짓는 자선사업을 의미한다.
  6. [6] 그리고는 더불어민주당 강남 을 지역구에 출마한 전현희 후보의 지원유세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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