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트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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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프리카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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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트레아국
티그리냐어: ሃገረ ኤርትራ
영어: State of Eritrea
아랍어: دولة إرتريا

국기

국장

면적

117,600km2[1]

인구

5,158,045명

수도

아스마라

최대도시

케렌, 마사와

국가

에리트레아, 에리트레아, 에리트레아
티그리냐어: ኤርትራ ኤርትራ ኤርትራ

공용어

티그리냐어, 아랍어, 영어[2], 토착어[3]

정부 형태

임시정부, 대통령 중심제, 공화국

화폐단위

에리트레아 낙파 (Nfk)
ISO 4217 : ERN

대통령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외교장관

오스만 살리 모하네드

민족구성

티그리냐족, 티그레족, 아파르족, 사호족, 쿠나마족

종교

오리엔트 정교회, 이슬람교(수니파)
개신교, 가톨릭, 원시종교

UN가입년도

1993년 5월 28일

남북수교현황

대한민국: 1993년 5월 24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993년 5월 25일

교민 수

0명

여행경보

여행자제 [4]

철수권고 [5]

에리트레아 위치

1. 개요
2. 상징
2.1. 국가
3. 역사
4. 정치
5. 행정
6. 경제
7. 군사
8. 문화
9. 외교 관계
9.1. 에티오피아와의 관계
9.2. 대한민국과의 관계
10. 기타

1. 개요

아프리카 홍해 연안에 위치해 있는, 1993년 건국된 국가. 수도는 아스마라. 전체 종족 구성에서 티그라이족(티그리냐)이 55%로 압도적인 우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30%에 이르는 티그레족을 포함한 기타 민족도 포함되어 있다. 티그레족은 에티오피아에서는 2004년 기준 인구의 약 5%를 차지한다.

독재 정치와 인권 탄압 행위로 인해 아프리카의 북한이라고 불린다.

2. 상징

2.1. 국가

3. 역사

에리트레아는 4세기에서 6세기 동안 번영한 고대 악숨 왕국의 주요 항구가 있던 지역이다. 950년경에 에리트레아는 초기 에티오피아 왕국과 연합을 이룬 자치국이었다가 16세기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7세기 부터 19세기에 에리트레아의 통치권을 놓고서 에티오피아, 오스만 제국, 티크라이 왕국, 이집트, 이탈리아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홍해의 소유권도 이탈리아의 소유가 되었다. 당시 수도 아스마라 주민의 절반이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기지로 사용되었던 에리트레아는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 6개 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가, 1941년부터는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러다가 에리트레아는 1952년 경에 에티오피아의 1개 주로 병합되었다. 1962년 11월 14일 에티오피아가 에리트레아를 합병하자 이슬람 중심의 에리트레아 해방전선(ELF)과 기독교도 중심의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 Eritrean People's Liberation Front) 등은 민족주의 분리운동 독립 전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ELF의 조직원들이 1977∼1978년, 1985년에 대거 에리트레아 해방전선-인민해방군(ELF-PLF)이나 EPLF에 합류함으로써 ELF의 군사조직은 와해되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ELF-PLF도 EPLF로 거의 흡수되었다. 한편 이들 분리주의 저항 단체들은 수단중국, 소말리아,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리비아 등 각국의 군사,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에티오피아군과의 전쟁을 이어갔다.

1980년 AKM 소총과 56식 소총을 들고 에티오피아군과 교전하는 에리트레아 인민해방전선(EPLF) 게릴라 병사들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폐위와 멩기스투 정권이 붕괴되고, 에티오피아 반란 연합세력이 아디스아바바를 점령하는 등의 혼란을 틈타 EPLF는 1991년 5월 수도 아스마라를 탈환한 뒤 에리트레아 독립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1993년 5월 24일 독립을 선포하였다. 4년 이내에 새 헌법을 제정해야 하는 국회는 1993년 6월 초대 대통령으로 EPLF의 사무총장인 이사야스 아페워키를 선출했다. EPLF는 1994년 유일 합법정당인 민주정의인민전선(PFDJ, People's Front for Democracy and Justice)으로 개편되었다.

에리트레아가 독립하면서 에티오피아는 내륙국이 되었고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는 항구 사용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결국 항구를 차지하고자 에티오피아와 1998년~2000년까지 이사야스 아페워키의 지도 하에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이 전쟁에서 에리트레아는 혼란에 빠진 에티오피아를 상대로 크게 선전했지만 결국 스케일에서 밀려 전쟁 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수준에서 전쟁을 끝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에티오피아 전쟁 당시, 이스라엘미국의 지원을 받은 에티오피아에게 밀리면서 안 그래도 열세였던 공군 전투기 다수를 상실하면서 패색이 짙었으나, 반대로 러시아아랍 동맹의 지지 및 에티오피아 내부 여론의 반발을 잘 활용하여[6] 외교적으로 영토를 잃지 않고 유엔의 중재로 2000년 12월 종전하였다. 이후 유엔 평화유지군은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의 국경지대에 폭 25Km의 임시안전지대(TSZ)를 설치하고 양측을 감시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와의 국경 분쟁이 벌어진 이후 2003년 3월 국경위원회(EEBC, Eritrea-Ethiopia Boundary Commission)가 양국간 국경의 소도시인 바드메(Badme)를 에리트레아 영토라고 결정하자, 에티오피아는 수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면서 양국간 국경 획정 작업이 중단되었으며, 양국 간의 대화는 끝나고 말았다. 2005년 10월에도 국경에 분쟁이 해결되지 않고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에티오피아는 TSZ에서 유엔 평화유지군의 공중 정찰을 금지시켰고 또다시 국경지역에는 군사적 긴장 상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군사적 긴장 상태로 인해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의 국경 분쟁으로 재정 수입은 감소하고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여 오랜시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으며, 10만명에 달하는 수단 국경지대의 난민과 7만 5천명의 에티오피아 추방 난민은 에리트레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04년 4월에 에리트레아 내에서의 인권 상황이 악화되었고, 다당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프리카 성장촉진법(AGOA, Africa Growth Opportunity Act) 수혜 대상국에서 에리트레아를 제외시켰고 현재까지도 에리트레아인들은 하루하루를 독재와 가난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2018년 9월 30일에 에리트레아는 유엔 제재를 해제해달라고 요청했다.#

4. 정치

수도 아스마라의 모습.

에리트레아의 독재자 아페워키민주정의인민전선(PFDJ) 일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다당제 도입을 계속 연기하고 있으며, 2001년 12월 실시하기로 약속했던 국회의원 선거도 무기한 연기하였다. 따라서 국회를 통해 간선으로 선출되는 대통령 선거도 계속 미루어지고 있어 집권층 내부에서도 민주주의 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에리트레아는 2001년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모든 민영 언론사를 폐쇄하고 다수의 언론인을 체포했다. 이러한 이유로 언론자유지수에서 북한을 누르고 최하위를 기록했다.[7] 2001년 모든 민영 언론사가 폐쇄되었다. 독립운동 때 에리트레아는 정당 수립을 요구했으나 정작 지금은 민주정의인민전선 1당. 정확히는 이사야스 아페워키 독재자 한 명이 통치하는 1인 독재 국가이다. 선거1997년, 2003년, 2004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없다. 유엔인권보고서에서는 에리트레아 정권이 전체주의적인 감시통제망을 가동함으로써 "아무도, 심지어는 가족도 못 믿는" 사회가 됐다고 지적했다.

에리트레아의 정부형태는 대통령 중심제로 1993년 4월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 실시후 구성된 과도정권이 집권하고 있는데, 에리트레아 의회는 150석 정원의 단원제 국회를 채택하고 있으며 PFDJ가 유일한 정당이다. 현재 에리트레아의 문맹율은 41%에 달하며 평균 수명은 52세(남 51세, 여 53세)이다.

한비야가 자신의 여행서에서 얼굴도 잘생기고 엘리트인데 덕망도 있다고 그토록 칭찬에 마지않았던 에리트리아의 지도자씨가 바로 이 인물이다. 그야말로 한비야의 흑역사. 물론 1990년대 중반에 한비야가 여행할 시기에는 에티오피아와 독립 전쟁으로 죽어라 싸우던 터에 독재를 강화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좋게 봐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8] 현재 20년 넘게 집권 중. 다만 주변국에 의도적으로 해를 끼친다거나[9] 하지는 않는 듯하다.

2014년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향한 난민의 18%가 에리트레아 출신이었다. 내전과 이슬람국가(IS)의 학대에 시달리는 시리아(31%)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시리아·소말리아·아프가니스탄 등 난민 수 상위권 국가들은 모두 내전을 겪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에리트레아는 예외다. 유럽에 들어온 난민들 중 에리트레아 국민들은 매달 약 5천명이 국경에서 발각되는 즉시 사살되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 수단이나 에티오피아로, 멀리는 리비아를 통해 유럽으로 탈출하고 있다. 지난 10월 현재 수단과 에티오피아에 거주하는 에리트레아 난민만 20만명. 이들을 포함해 에리트레아를 탈출한 난민은 총 35만7천명으로 추산되는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현 에리트레아 총인구의 6~10%에 이르는 규모이다. 유럽에 정착한 이들은 단파라디오나 인터넷으로 모국에 반독재 방송을 보내거나 서방에 에리트레아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있다. 에리트레아 국내에는 아페워키 독재정권에 대항해 사막과 오지 산간 지대에서 활동하는 소규모의 반정부군 저항 게릴라 세력들도 존재하고 있다.

5. 행정

6. 경제

에리트레아 정권은 특히 2006년 한 공사장에서 노동자 한명이 숨진 것을 구실로 모든 민간 건설사들의 사업 인허가를 취소한 뒤 집권당과 군부가 운영하는 건설사들이 이들을 헐값에 인수토록 함으로써 현재 에리트레아에는 집권당과 군부소유 건설사들만 사업을 하고 있다. 유엔인권 보고서는 이들 건설사들이 에리트레아에 진출한 외국 건설사들에 징집 인력을 '대여'해주고 외국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가로채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계 기업들도 에리트레아에 진출해 있는것으로 추정된다.

7. 군사

에리트레아는 인구도 적고 경제적으로도 세계 최빈국이나 GDP의 20%를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다. 참고로 북한은 25%~30% 정도. 그럼에도 32만 명[10] 규모의 군대를 운용하고 있어 징집 가능 인구의 5분의 1 가량이 군인이다. 전체 인구 대비로 볼 때 북한 다음으로 현역[11] 병력이 많은 나라가 에리트레아이다. 참고로 에티오피아군은 현역 15~18만 명에 예비군은 거의 없다. 집권세력이 '건설과 국방'을 내세워 군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는 것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선군정치을 본뜬 것이다. '국가 봉사 프로그램'을 내세워 18세 이상 젊은 청년들을 모두 의무적으로 징집한 뒤 이들을 집권당과 군부소유 건설사의 공사장에 배치해 1주일에 6일, 하루에 12시간씩 사실상 강제노동에 동원하는 것도 북한과 유사하다.

허나 에티오피아군에 비해 실제 전력은 취약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에리트레아군은 전쟁을 준비한답시고 징병 기간을 10년이나 잡고 있지만 실제로는 병사들을 광산에서 노동시키는 등 소위 공짜 노동력으로만 써먹고 있기에 전투 효율이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에티오피아군은 에리트레아보다는 오히려 소말리아 지역의 군벌들을 더 두려워한다.

8. 문화

에리트레아의 전통 춤을 추는 여자들.

에리트레아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는데, 티그리냐 50%, 티그레 및 쿠나마 40%, 아파르 4%, 사호 3%, 기타 3%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리트레아 남부 고원지대에는 티그리냐어를 쓰는 기독교도, 북부 고원지대와 동부, 서부 구릉지대에는 티그레어를 쓰는 이슬람교도들이 살고 있으며, 티그리냐어를 쓰는 티그라이족은 남쪽 국경 티그라이의 에티오피아 지역주민들과 동일한 인종집단으로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티그레어를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들은 대부분 목축업을 하고 있다.

해안 사막평원에서는 사호어와 아파르어, 서부 평원지대에서는 베자어와 나일 제어를 사용한다. 해안과 수단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아랍어, 아스마라 주변 사람들은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이탈리아어를 쓰고 있다. 공용어는 티그리냐어와 아랍어인데, 티그리냐어도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셈어파, 즉 아랍어와 같은 어족 같은 어파에 속하는 친족 관계의 언어이다.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지만 다수파는 아니다. 다수 티그리냐 족이 에리트레아 정교회를 많이 믿으며 인구 50%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가톨릭이 12%를 차지해 기독교 인구가 총 62%이고 수니파 이슬람교도(티그레족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가 36%를 차지한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오순절교회복음주의 교회 신도들이 감금을 당할 정도로 개신교에 대한 종교적 박해가 심하며, 기독교 박해지역의 기독교인들이나 개신교 박해지역의 개신교 신자들을 지원하는 국제선교단체인 오픈도어(Opendoor)에서도 에리트레아를 개신교 박해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전 식민모국인 이탈리아의 흔적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고령층에 이탈리아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며 카페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다. 수도에는 한때 '작은 로마'라 불릴정도로 이탈리아인들이 많이 거주했는데 20세기 초 이들이 지은 아르데코 건축물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있다. 유럽의 보수적인 건축의 영향권밖에서 독특한 양식을 피워낸것이 높게 평가받았다.

9. 외교 관계

9.1. 에티오피아와의 관계

에티오피아와는 에티오피아의 영토였던 1970,80년대부터 전쟁을 치뤄 1993년에 분리독립하기도 했고 독립 이후에는 전면전까지 벌이는가 하면 국경분쟁을 겪고 있어서 갈등이 매우 심한 편이다. 2018년에 에티오피아의 새 총리는 에리트레아와의 국경분쟁을 끝내고 에리트레아와 화해하겠다고 밝혔지만, 에리트레아측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가 평화협정을 수용한다고 발표하자 에리트레아측도 긍정적인 신호를 나타내면서 국경분쟁도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8년 6월 26일에 에리트레아 대표단이 에티오피아를 20년만에 방문하면서 양국간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시작되고 있다.# 거기에다 에티오피아 총리는 에리트레아와의 항공편도 개설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20년만에 양국은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고 대사관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7월 17일 20년만에 종전 선언을 함으로써 분쟁국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에리트레아 대사관이 20년만에 에티오피아에 개설되었다.# 거기에다 에티오피아-에리트레아 노선망이 20년만에 재개설되었다.#

이로써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평화협정 체결로 두 나라의 오랜 갈등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9.2.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은 1993년에 수교했으며 북한도 동년에 수교하였다. 대한민국은 현재 주(駐) 수단 대사관이 에리트레아 대사관을 겸임하고 있다.

외교부의 소개 문서에 따르면, 현재 에리트레아 경유 항공은 없지만 가는 것 자체는 쉽다.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새벽 3시 40분(두바이의 항공편 대부분은 새벽에 출발한다)에 출발하는 플라이두바이 항공편이 직항운행하기도 하며, 카이로에서도 이집트항공이 직항운행한다. 당연히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외국인 입국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인 태도 견지"라고 한다. 여행금지국가는 아니지만 함부로 여행하면 위험하니 가지 않는게 좋다.

에리트레아는 정교회가톨릭을 제외한 개신교 선교를 박해하는 대표적인 종교탄압국가 중 하나인데, 마지막 한국인 교민이 개신교 선교를 하다가 2009년 8월에 추방되기도 했다. #

10. 기타

  • 소설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은 독일로 이주한 에리트레아 난민이 차별받는 광경을 다루고 있다.

  1. [1] 에티오피아와 영토, 국경 분쟁 중이라 면적이 오락가락한다.
  2. [2] 법적으로 공용어는 아니지만 국가 업무와 같은 것은 모두 영어로 한다.
  3. [3] 아파르어 등
  4. [4] 모든 지역
  5. [5] 에티오피아, 수단, 지부티 국경
  6. [6] 실제로 1990년대 말 이 전쟁을 다룬 국내 언론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내부에서는 "국민들은 굶어 죽는데 경제나 살릴 것이지 무슨 전쟁이냐" 며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전하고 있다.
  7. [7] 참고로 언론자유지수는 142점 만점인데 점수가 높을수록 언론자유도가 낮음을 의미한다. 이 조사에서 북한 최고 기록이 2012년 141점인데 에리트레아 최고 기록은 역시 2012년에 탄생. 무려 142점 만점!
  8. [8] 참고로 무솔리니후세인, 벤 알리, 카다피 같이 부정부패와 숙청,전쟁으로 나라를 망친 독재자들도 집권 초기에는 정상수준을 넘어서 꽤 높은 평가를 받았다.
  9. [9] 에티오피아와의 갈등은 에티오피아 전 독재자 멜레스 제나위가 압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10. [10] 이 가운데 20만 명은 현역이다.
  11. [11] 예비군까지 포함하면 순위가 조금 떨어진다. 그래도 상위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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