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영락교회

한글명칭

영락교회

영문명칭

Youngnak Presbyterian Church

한문명칭

永樂敎會

설립일

1945년 12월 2일 [1]

소속국가

대한민국

소속교단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장로교)

초대목사

故 한경직

원로목사

이철신

위임목사

김운성

표어

생명을 낳아 기르는 교회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수표로 33 (저동1가)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현황
3. 참고문헌
4. 건물
4.1. 본당
4.1.1. 벧엘관
4.1.2. 엘림관
4.2. 50주년 기념관
4.2.1. 베다니홀
4.3. 교육관
4.4. 봉사관
4.5. 선교관
4.6. 한경직 목사 기념관

1. 개요

서울특별시 중구에 자리한 장로회 소속 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을 대표하는 대형교회 중 하나이다.

영락교회는 1945년 12월 2일 공산주의의 박해를 피해 월남한 27명의 성도들이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모여 창립예배를 드렸다. 교회이름은 베다니전도교회라 하고 일본천리교 경성분소의 신전을 개조하여 예배장소로 사용하였다.

북한 서북지방의 피난민교인들이 몰려들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교회는 서울 최대의 교회가 되었고 1950년 6월에 교인 3,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건축하는 한편, 교회당 주위의 빈터에 천막을 쳐 집이 없는 피난민들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영락교회는 신탁통치반대운동, 반공운동[2]에 앞장섰으며, 피난민구제와 전도사업, 개척교회 설립, 농아전도, 해외선교사파송, 교육사업 및 사회복지사업에도 힘써 왔다.

역대 담임목사로는 1대 한경직 목사(韓景職, 1945 ~ 1973), 동사목사 강신명(姜信明, 1947∼1955), 2대 박조준 목사(朴朝駿, 1973∼1984), 3대 김윤국 목사(金潤國, 1985∼1988), 4대 임영수 목사(林永樹, 1988∼1997), 5대 이철신 목사(李哲信, 1997∼2018), 6대 김운성 목사(金雲聖, 2018 ~ )다.

드라마 야인시대 123화에서 개신교에 귀의한 시라소니가 김두한의 비서 정대발을 만나는 장면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이성순(시라소니)은 실제로 말년에 개신교에 귀의해서 영락교회에 다녔다.

일제 때 폐교된 숭실전문학교(현 숭실대학교의 전신)가 1954년 숭실대학이란 이름으로 남한에서 다시 개교하였을 때, 영락교회 내의 가건물들을 학교로 이용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한경직 목사가 숭실대 1대 총장을 맡았다. 숭실대는 1957년 현 위치인 상도동으로 이전하였다.

2. 현황

2013년 현재 2만여명의 교인이 있다. 사회사업기관으로는 영락보린원, 영락경로원, 영락노인전문요양원, 영락모자원, 어린이집, 영락애니아집 등이 있으며, 교육기관으로는 영락유치원, 영락중학교, 영락고등학교, 영락 유헬스고등학교, 대광초등학교, 대광중학교, 대광고등학교, 보성여자중학교, 보성여자고등학교 등이 있다.

이북 실향민 출신들이 세운 교회이기 때문에 이북 출신들의 커뮤니티 형성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다.

신도의 노령화가 심하고, 장로교 특유의 권위주의적인 성격이 강한 교회. 90년대에는 통기타 들고 들어가면 '사탄의 문물을 들고 들어오냐' 면서 화를 내던 장로들이 존재했을 정도였는데 이게 2010년 후반이 된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다. 물론 저 정도는 아니지만, 대체로 젊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전도에는 큰 관심이 없는 교회다.

일례로 노방전도, 흔히 기독교하면 떠올리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며 길거리를 도는 전도에 대해 청년층 신도들은 굉장히 거부감이 심했다. 거의 100 이면 100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을 정도. 하지만 대부분의 장로들과 노년층 신도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으며,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청년 신도들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토달지 말고 순종해라' 라면서 고함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청년 신도들은 '노방전도가 정말 전도를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이렇게 힘들게 전도를 하는 나는 고귀한 신도고 주님이 인정해 주실거야' 라는 마인드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복음을 알리고 싶은 게 진심이라면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 아닌가. 고행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게 기독교의 주된 가르침인데, 이렇게 되면 노방전도는 그냥 고행을 하는 게 아닌가?' 라는 불만을 표했었다.

그 외에도 청장년 신도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는 이 교회의 꾸준한 전통. 반대로 노년층 신도들의 우대에는 매우 큰 관심을 쏟고 있다. 당장 헌금줄이다보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 본예배 설교 역시 청장년 신도들에게 적의를 드러내거나 이들을 깔보고, 노년층을 상대적으로 높이는 설교가 많다.

때문에 많은 청장년 신도들이 교회를 떠났으며 떠나고 있다. 아무래도 전통이 있는 교회고 이북 실향민 커뮤니티 형성에 큰 몫을 하고 있다보니 대대로 주욱 다니는 신도도 많지만, 20대~30대가 모여있는 대학부와 청년부의 예배 출석 인원은 둘 다 합쳐 천 명 남짓이다. 물론 해당 예배 안 가고 본 예배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20년, 혹은 30년 후 신도의 급감이 필연적인 운명인 교회라는 이야기이다.

또한 한경직 목사를 거의 사위일체 (...) 수준으로 떠받들어 모시는데, '그분께도 공과 과가 있지 않을까요' 라는 온건한 비판마저도 천인공노할 신성모독으로 받아들인다. 거의 한경직이라는 또 하나의 하나님을 만들어 신격화시키고 모시는 수준. 일단 가장 큰 문제는 한경직이라는 개인이 아무리 선인이어도 일개 인간을 이 정도 수준으로 신격화하여 모신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교리에 어긋나는 일이며, 또 다른 문제는 한경직이라는 인물이 결코 완벽한 선인이 아닌 잘못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청년 신도들이 영락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한경직의 잘못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교인이나 장로들이 완벽한 성인으로 치장한 한경직이 국가 조찬 기도회와 서북청년단 관련해서 명백한 잘못이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수준. 물론 기독교에서 말하듯 '완벽한 인간은 없다' 는 변명도 가능한데 그런 변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 교회는 한경직을 신성화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한경직을 변호하려면 전두환 혹은 서북청년단에 대해서도 '잘못이 아니다' 라는 스탠스를 취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교회가 전체적으로 매우 보수적이고 극우에 가까운 사람들이 많다. 때문에 활발히 활동하는 청장년 신도 중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점점 지쳐가는 사람이 많다.

3. 참고문헌

『영락교회50년사』(영락교회, 1998)

『영락교회부흥사』(최종고, 한국문학사, 1974)

영락교회 요람 (영락교회, 2017)

영락교회 홈페이지 (http://www.youngnak.net/)

4. 건물

4.1. 본당

1945년 12월 첫 주일 한경직 목사를 중심하여 27명의 북한 피난민이 베다니전도교회로 시작, 베들레헴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장소가 급증하는 교우들을 수용할 수 없어 1947년 6월 1일 대형 천막을 설치하여 천막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교회 신축을 준비, 1949년 3월 24일 본당 신축기공을 하고 지금의 본당에서 1950년 6월 4일 첫 예배를 드렸다. 1978년 5월 십자형으로 증축하여 약 2,500여 명의 수용이 가능하며 2001년 10월 개·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총 970평의 석조건물 본당에는 예배실 외에 시무장로실, 기도실, 방송실, 녹음실, 헌금계수실, 기계실, 인쇄실이 있다.

현대적인 고층빌딩에 둘러싸인 중세 유럽의 성(castle)같아서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상당히 신비하고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래서 가끔 화보촬영이나 출사를 나온 작가들을 종종 볼 수 있고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가기도 한다.

4.1.1. 벧엘관

본당 지하에 자리한 기도실은 500석 규모로 지어졌으며,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통일한국을 위한 기도, 교회를 위한 기도, 개인문제의 기도등을 주로 하며 개인 기도실과 집단 기도실로 설계되있다. 중보 기도실로 기도 제목을 적어 내면 접수가 된다.

4.1.2. 엘림관

엘림관은 본당으로 올라오는 계단옆 본당 마당 지하에 위치한 공간으로 베다니광장과도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2005년 6월에 준공하여 연면적은 105평이다. 1층에는 안수집사실, 2층에는 서무부, 예산위원회, 시설관리부, 감사위원회 등이 사용한다.

4.2. 50주년 기념관

교회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성을 담은 50주년 기념관이 착공한지 4년만인 1997년 11월 2일 입당했다. 지하 5층 지상 8층의 규모로 대지 2,300평에 건평은 10,225평이며(선교관, 목양관 포함), 활용공간은 1만여명이 수용 가능하다. 특히 지하 1,2,3층에 걸친 베다니홀은 1,500석 규모로 최신음향 시설과 조명이 설치되어 각종 공연 및 연주회, 젊은이예배, 주일예배 부속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 2층에 위치한 드림홀은 700석 규모로 고등부, 대학부의 예배공간 및 각종 행사의 진행이 가능한 복합공간으로 사용된다. 2층은 유치부, 3층은 유년부, 4층은 중등부의 교육공간으로 사용되며,  5~8층에는 당회실, 교육부 산하 각급 교회학교 사무실 북한선교센터 등이 있다. 50주년 기념관 장소사용은 총무팀과 교육부에, 시설장비 사용에 관한 문의는 본 교회 시설관리팀에서 상담한다. 주일에는 1층에서 남·녀선교회비, 은퇴제직상조회비 접수 및 사회복지기관, 영락여자신학원 등 여러가지 후원회비를 접수하고 있다.

4.2.1. 베다니홀

베다니홀은 50주년기념관 지하 1,2,3층에 걸쳐있으며, 1,500석 규모이다, 각종 공연 및 연주회, 젊은이예배, 주일예배 부속실 등으로 사용한다.

4.3. 교육관

교육용 4층 석조 건물로 1957년 완공되었고 지난 2000년과 2001년에 내부 보수공사를 하였다. 현재 원로·은퇴장로실, 은퇴제직상조회 사무실, 1층은 사랑부·영락주간보호센터, 2·3층은 음악부 찬양대 연습실, 4층은 소년부 예배실로 사용한다.

4.4. 봉사관

정문에 들어서서 오른쪽 5층 건물이 봉사관이다. 본당으로 처음 사용하던 베들레헴 성전이 서 있던 곳이며 1973년 봉사관을 이곳에 세웠다. 현재 담임목사실을 비롯한 교역자실, 행정처,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목양부, 상담부, 선교부, 홍보출판부, 영락공원묘원, IT미디어부 등 사무실이 집중되어 있다. 4,5층은 성경공부반, 남선교회 모임, 외국이주자예배 등의 장소로 사용한다. 1층에는 교회 행정사무 및 교우들의 민원업무를 처리하는 행정처 사무실이 자리잡고 있으며, 건물 현관 입구에는 새가족부 등록처, 의료봉사실, 교회안내데스크가 설치되어 있다. 지하에는 예배실, 경조부, 은퇴안수집사실, 기계실이 있다.

4.5. 선교관

선교관은 예식을 위한 독립 건물로 400석, 장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외관과 내부가 꽤 아름다워서 신도들의 결혼식장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4.6. 한경직 목사 기념관

1975년 교회창립 30주년을 맞아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의 한경직목사기념관으로 세워진 건물로서 2011년에 5층으로 증축하였다. 지하는 교직원 식당 겸 강의실, 1층은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와 영락교회유지재단, 2층은 한경직목사 전시실, 3층과 4층은 도서관, 5층은 교회역사자료실과 영락공원묘원 사무실, 서울성서신학원이 위치해 있다.


  1. [1] 한경직 목사가 베다니 전도 교회(영락교회의 옛 이름)를 세운 것이 시초이다.
  2. [2] 대표적으로 연관된 단체가 그 악명높은 서북청년단이다. 자세한 것은 한경직 목사 항목과 해당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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