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십육국시대

중국의 역사 中国历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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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齊)

양(梁)
한(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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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北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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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8 ~ 907

당(唐)
무주(武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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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위진남북조시대/육조시대

서진

오호십육국

북조 북위

동진

남조 송(유송)


▲북방에 표기한 여러 국가들이 오호십육국이다.

1. 개요
2. 평가
3. 한국사와의 관련
4. 오호십육국의 역대 군주
4.1. 전량(前涼)의 군주
4.2. 전조(前趙)의 군주
4.3. 성한(成漢)의 군주
4.4. 후조(後趙)의 군주
4.5. 전연(前燕)의 군주
4.6. 전진(前秦)의 군주
4.7. 후연(後燕)의 군주
4.8. 후진(後秦)의 군주
4.9. 서진(西秦)의 군주
4.10. 후량(後涼)의 군주
4.11. 남량(南涼)의 군주
4.12. 북량(北涼)의 군주
4.13. 남연(南燕)의 군주
4.14. 서량(西涼)의 군주
4.15. 북하(北夏)의 군주
4.16. 북연(北燕)의 군주
5. 16국 이외
6. 기타 창작물에서

1. 개요

五胡十六國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Sixteen Kingdoms [1]

중국의 역사 시대 중 하나로 크게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속한다. 오호는 흉노, 선비, , , 등의 다섯 이상의 오랑캐들을 뜻하고 십육국은 이들이 여러 나라를 세웠음을 뜻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16국 중 전량, 서량, 북연은 한족 왕조에 속하며 나머지 13국이 이들 다섯 민족이 세운 국가다.[2]

사실 '16국'은 이 가운데서도 어느 만큼 지속하고, 영향력이 있었던 상대적으로 큰 나라만 넣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세운 나라는 16개국을 훨씬 넘는데, 선비족의 대(代)나라와 나중에 이를 부흥시켜 이어진 북위(北魏)는 16국에 안 넣고, 십육국에 안 끼워넣는 단명한 왕조도 아주 많다.

오호십육국시대의 시작은 보통 유연(劉淵)이 뒷날 전조로 바뀌는 한(漢)을 건국한 304년, 끝은 북위(北魏)가 화북을 통일해 북조가 나타나는 439년으로 본다. 이 시기 중원(화북)은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고, 한때 전진(前秦)이 화북을 통일도 했으나 비수대전의 패배 /병크/삽질 로 다시 난장판이었다. 단 1년도 못넘긴 왕조가 있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걸 기점으로 16국 시대를 전기와 후기로 나누기도 한다.

2. 평가

이 시기의 특징으로는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혼란기로, 이때 흥망성쇠한 나라들의 이름은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드니 고우영이 만화 십팔사략 집필 당시 자문을 구했던 중국 쓰촨 대학 역사 교수조차 "일일이 파고들 것 없이 이건 그냥 넘어가라"고 했을 정도. 그래도 정 알고 싶은 분들은 자치통감이나 진서를 읽어보면 좋다.

정말 많은 영웅들과(대표적인 예가 석륵) 많이도 세워진 국가들, 그리고 넘쳐나는 막장 군주들이 있는 시대. 삼국시대처럼 잦은 전쟁으로 중원의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많은 종족들이 강제 이주도 겪었다. 이게 다 서진 시대의 팔왕의 난 탓이다. 기껏 통일하고서 일어난 내분으로 영가의 난이라 대표하는 이민족의 침입과 막장스런 내정 때문에 중국은 수나라(隋)가 성립한 뒤에야 다시 통일 왕조를 이뤘다. 너무 혼돈적이라 학생들에게는 잘 가르치지는 않지만 사실 중요성도 상당하다. 왜냐하면 과거 후한 시대부터 이민족들은 꾸준히 중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었고 서진 시대에 이르면 "관중 인구 절반은 이민족"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사실 한나라 시대부터 한족과 중화 사상의 원형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 순간부터 바로 중국 대륙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을 한족이라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고 한족들도 자국에 사는 사람들이 전부 한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혈통 문제만이 아니라 언어적 문제 같은 점들도 있었다. 사실 명나라 시기까지 북족 같은 이민족 백성들도 기록에서 확인이 된다.[3] 애초에 한나라 시대에 정복된 남방 영토나 이전 시대의 초나라[4]만 봐도 월계 민족이나 묘족들이 상당히 있었고 한족의 개조라 할 수 있는 한 고조 유방도 초나라에서 출발한 집단 중 하나로 한나라를 세우고 한족의 근원이 되었음을 사서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신화 시대까지 가면 고대 중국 국가들을 민족, 혈통적으로도 연결을 할 수도 있으나 신화 시대 이야기는 고대 중국의 학자들도 사실이라 믿지 않았다. 사마천도 삼황의 존재를 허구로 단정했다. 애초에 한족이나 중화 사상도 혈통적 집합이라기보다 문물이나 문화적 요소가 강했기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중화를 받아들이고 기준만 맞으면 한족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보니 예나 지금이나 무슨 이상한 기준(무슨 고대 족보 같은 것들)을 만들어서 혈통적으로 자기들이 순수 한족이라고 주장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으나 한족 내에서도 대부분 이상한 놈들 취급한다.

이 오호십육국 혼란기를 겪으며 상당한 숫자의 이민족들이 열심히 한족으로 전향을 하여 상당한 숫자의 이민족들이 중화에 동화되어 사라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다.[5]

3. 한국사와의 관련

오늘날 현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삼국시대의 구도가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완료된다.

후한의 붕괴-위, 촉, 오 삼국의 대립-서진의 붕괴로 이어지는 콤보는, 군현에 의해 통치되는 한반도 서북 지역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고구려가 이 지역을 틈틈이 털기는 하였지만, 이 지역이 결정적으로 몰락한건 오호 십육국 시대다. 그리고 4세기 초에 고구려 미천왕대방군낙랑군을 지도에서 지워버린다.

그리고 고구려의 침략때 백제가 대방을 돕는 과정에서, 양국은 처음으로 직접적인 군사적 충돌을 하게된다. 낙랑과 대방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 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고구려와 백제가 대립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 근초고왕과의 싸움에서 전사하게 된다.

한편 대방과 낙랑의 몰락은, 진한 지역에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본래 진한은 경주의 도시 국가 사로국을 맹주로 하는 소국 연맹체였으나, 사로국은 진한의 구조를 '서라벌'을 도읍으로 하는 영역 국가 신라로 재편시킨다. 이 재편이 완료된 것은 내물 마립간 시기로 추정되고 있다.

마립간 항목에서 보듯이, 이사금(연장자)이 군장 사회의 우두머리에 알맞은 칭호인 반면에 마립간(간干들의 우두머리)은 영역 국가의 군주에 어울리는 칭호다. 그리고 마립간 시기에 영역 국가로 전환한 신라는, 기존과는 달리 한 씨족(김씨)이 독점적으로 군주를 배출하는 본격적인 왕조국가로 발전한다.

그리고 변한 지역에서도 변화가 발생한다. 중원의 혼란과 낙랑 및 대방의 몰락은 그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부를 축적하던 구야국에 경제적 타격을 준다.

즉 이 시기에 낙랑 및 대방에서 중국 군현이 사라지고, 고구려와 백제가 처음으로 직접적인 군사적 대립을 하게 되고, 도시 국가 사로국이 영역국가 신라로 전환하고, 구야국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이다.

또한 고구려는 북중국의 이민족들은 고구려와도 당연히 충돌하였다. 선비족의 모용씨가 세운 전연(前燕)이 강성하면서 고구려고국원왕이 어머니와 부인을 볼모로 빼앗기고[6] 아버지인 미천왕의 능이 파헤쳐지고 수도였던 환도성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다. 간신히 전진(前秦)이 이들을 병합하면서 살 만하자 앞서 언급했듯 대방 및 낙랑 지역에서 남쪽의 백제와 충돌했는데 당시 백제의 태자였던 근구수왕에게 역관광을 겪더니, 끝내 평양에서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얼마 뒤 전진이 붕괴하자 다시 후연이 나타났으나 이번엔 복수혈전을 다짐한 광개토대왕에게 충분히 발려버리고, 이후 요동을 완벽하게 장악한 고구려는 강성하면서 남북조시대 내내 그 세력을 떨친다. 이때 신라 사신이 고구려 사신의 덤으로 가서 전진에게 "우리도 있어염~~" 하고 왔다.

한국의 삼국 시대를 연구하려면 이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이 시대의 개판이었던 중국 북부 상황 때문에 상당히 많은 유민들의 이민(양쯔강 이남 개발이 본격화 된다.)이 있었고, 육로로 연결된 한국에도 많은 유민들이 때로는 침략의 형태로 때로는 이민의 형태로 넘어왔다. 그래서 한국의 역덕후라면 이 복잡한 시대도 알고 들어가야 한다. 한편 최근 서양과 중국의 역사학계가 이 시대 연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런 연구를 통해 한국사와의 연결 고리인 당대 고구려삼국시대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이뤄지길 희망하는 학도들이 많다.

4. 오호십육국의 역대 군주

사실 북방 '오랑캐' 왕조의 군주들은 생전에 황제 칭호 대신 천왕 천황이 아니다. 칭호를 썼다가 사후에 시호를 올릴 때 황제라고 하거나, 치세 중에 천왕과 황제를 번갈아가며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런 경우 편의상 '황제'로 통일해서 정리한다. 상세한 내용은 천왕 문서를 참고할 것. 단, 천왕이 아닌 제후 '왕'은 왕으로 표기한다.

4.1. 전량(前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태조(太祖)

무왕(武王)

장궤(張軌)

-

301년 ~ 314년

건릉(建陵)

2대

고조(高祖)

명왕(明王)

장식(張寔)

영안(永安) 314년 ~ 320년

314년 ~ 320년

영릉(寧陵)

3대

태종(太宗)

성왕(成王)

장무(張茂)

영원(永元) 320년 ~ 324년

320년 ~ 324년

평릉(平陵)

4대

세조(世祖)

문왕(文王)

장준(張駿)

태원(太元) 324년 ~ 346년

324년 ~ 346년

대릉(大陵)

5대

세종(世宗)

환왕(桓王)

장중화(張重華)

영락(永樂) 346년 ~ 353년

346년 ~ 353년

현릉(顯陵)

6대

-

애공(哀公)

장요령(張耀靈)

-

353년

-

7대

-

위왕(威王)

장조(張祚)

화평(和平) 354년 ~ 355년

354년 ~ 355년

민릉(愍陵)

8대

-

충왕(沖王)

장현정(張玄靚)

태시(太始) 355년 ~ 363년

355년 ~ 363년

평릉(平陵)

9대

-

도공(悼公)

장천석(張天錫)

태청(太淸) 363년 ~ 376년

363년 ~ 376년

-

4.2. 전조(前趙)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

한왕(漢王)

유연(劉淵)

원희(元熙) 304년 ~ 308년

304년 ~ 308년

영광릉(永光陵)

1대

고조(高祖)
태조(太祖)[7]

광문황제(光文皇帝)

유연(劉淵)

영봉(永鳳) 308년 ~ 309년
하서(河瑞) 309년 ~ 310년

308년 ~ 310년

영광릉(永光陵)

2대

-

폐제(廢帝)

유화(劉和)

-

310년

-

3대

열종(烈宗)

소무황제(昭武皇帝)

유총(劉聡)

광흥(光興) 310년 ~ 311년
가평(嘉平) 311년 ~ 315년
건원(建元) 315년 ~ 316년
인가(麟嘉) 316년 ~ 318년

310년 ~ 318년

선광릉(宣光陵)

4대

-

효은황제(孝隱皇帝)

유찬(劉粲)

한창(漢昌) 318년

318년

-

5대

-

-

유요(劉曜)

광초(光初) 318년 ~ 329년

318년 ~ 328년

-

6대

-

-

유희(劉煕)

-

328년 ~ 329년

-

  • 유요가 319에 국호를 한(漢)에서 조(趙)로 바꿈.

4.3. 성한(成漢)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시조(始祖)

경황제(景皇帝)

이특(李特)

건초(建初) 303년 ~ 304년

303년

-

-

-

진문왕(秦文王)

이류(李流)

-

303년 ~ 304년

-

-

-

성도왕(成都王)

이웅(李雄)

건흥(建興) 304년 ~ 306년

304년 ~ 306년

안도릉(安都陵)

1대

태종(太宗)

무황제(武皇帝)

이웅(李雄)

안평(晏平) 306년 ~ 310년
옥형(玉衡) 311년 ~ 334년

306년 ~ 334년

-

2대

-

애황제(哀皇帝)

이반(李班)

-

334년

-

3대

-

폐제(廢帝)
유공(幽公)

이기(李期)

옥항(玉恒) 335년 ~ 338년

334년 ~ 338년

-

4대

중종(中宗)

소문황제(昭文皇帝)

이수(李壽)

한흥(漢興) 338년 ~ 343년

338년 ~ 343년

안창릉(安昌陵)

5대

-

-

이세(李勢)

태화(太和) 344년 ~ 346년
가녕(嘉寧) 346년 ~ 347년

343년 ~ 347년

-

  • 소문제가 국호를 성(成)에서 한(漢)으로 바꿈.

4.4. 후조(後趙)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

조왕(趙王)

석륵(石勒)

태화(太和) 328년 ~ 330년

319년 ~ 329년

고평릉(高平陵)

1대

고조(高祖)

명황제(明皇帝)

석륵(石勒)

건평(建平) 330년 ~ 333년

330년 ~ 333년

고평릉(高平陵)

2대

-

해양왕(海陽王)

석홍(石弘)

연희(延熙) 334년

333년 ~ 334년

-

3대

태조(太祖)

무황제(武皇帝)

석호(石虎)

건무(建武) 335년 ~ 348년
태녕(太寧) 349년

334년 ~ 349년

현원릉(顯原陵)

4대

-

초왕(譙王)

석세(石世)

-

349년

-

5대

-

팽성왕(彭城王)

석준(石遵)

-

349년

-

6대

-

의양왕(義陽王)

석감(石鑒)

청룡(靑龍) 350년

349년 ~ 350년

-

7대

-

신흥왕(新興王)

석지(石祗)

영녕(永寧) 350년 ~ 351년

350년 ~ 351년

-

4.5. 전연(前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고조(高祖)

선무황제(宣武皇帝) [8]

모용외(慕容廆)

-

-

-

1대

태조(太祖)

문명황제(文明皇帝) [9]

모용황(慕容皝)

-

337년 ~ 348년

용평릉(龍平陵)

2대

열조(烈祖)

경소황제(景昭皇帝)

모용준(慕容儁)

원새(元璽) 352년 ~ 357년
광수(光壽) 357년 ~ 360년

348년 ~ 360년

용릉(龍陵)

3대

-

유제(幽帝) [10]

모용위(慕容暐)

건희(建熙) 360년 ~ 370년

360년 ~ 370년

-

4.6. 전진(前秦)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태조(太祖)

무혜황제(武惠皇帝) [11]

부홍(苻洪)

-

350년

-

1대

고조(高祖)

경명황제(景明皇帝)

부건(苻健)

황시(皇始) 351년 ~ 355년

350년 ~ 355년

-

2대

-

여왕(厲王)

부생(苻生)

수광(壽光)355년 ~ 357년

355년 ~ 357년

-

3대

세조(世祖)

선소황제(宣昭皇帝)

부견(苻堅)

영흥(永興) 357년 ~ 359년
감로(甘露) 359년 ~ 364년
건원(建元) 365년 ~ 385년

357년 ~ 385년

-

4대

-

애평황제(哀平皇帝)

부비(苻丕)

태안(太安) 385년 ~ 386년

385년 ~ 386년

-

5대

태종(太宗)

고황제(高皇帝)

부등(苻登)

태초(太初) 386년 ~ 394년

386년 ~ 394년

-

6대

-

-

부숭(苻崇)

연초(延初) 394년

394년

-

4.7. 후연(後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

연왕(燕王)

모용수(慕容垂)

연원(燕元) 384년 ~ 386년

384년 ~ 386년

선평릉(宣平陵)

1대

세조(世祖)

성무황제(成武皇帝)

모용수(慕容垂)

건흥(建興) 386년 ~ 396년

386년 ~ 396년

선평릉(宣平陵)

2대

열종(烈宗)

혜민황제(惠愍皇帝)

모용보(慕容寶)

영강(永康) 396년 ~ 398년

396년 ~ 398년

-

3대

-

창려왕(昌黎王)

난한(蘭汗)

청룡(靑龍) 398년

398년

-

4대

중종(中宗)

소무황제(昭武皇帝)

모용성(慕容盛)

건평(建平) 398년
장락(長樂) 399년 ~ 401년

398년 ~ 401년

흥평릉(興平陵)

5대

-

소문황제(昭文皇帝)

모용희(慕容熙)

광시(光始) 401년 ~ 406년
건시(建始) 407년

401년 ~ 407년

-

4.8. 후진(後秦)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시조(始祖)

경원제(景元帝) [12]

요익중(姚弋仲)

-

-

-

-

-

위무왕(魏武王) [13]

요양(姚襄)

-

-

-

-

-

진왕(秦王)

요장(姚萇)

백작(白雀) 384년 ~ 386년

384년 ~ 386년

원릉(原陵)

1대

태조(太祖)

무소황제(武昭皇帝)

요장(姚萇)

건초(建初) 386년 ~ 394년

386년 ~ 393년

원릉(原陵)

2대

고조(高祖)

문환황제(文桓皇帝)

요흥(姚興)

황초(皇初) 394년 ~ 399년
홍시(弘始) 399년 ~ 416년

394년 ~ 416년

우릉(偶陵)

3대

-

-

요홍(姚泓)

영화(永和) 416년 ~ 417년

416년 ~ 417년

-

4.9. 서진(西秦)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열조(烈祖)

선열왕(宣烈王)

걸복국인(乞伏國仁)

건의(建義) 385년 ~ 388년

385년 ~ 388년

-

2대

고조(高祖)

무원왕(武元王)

걸복건귀(乞伏乾歸)

태초(太初) 388년 ~ 400년
경시(更始) 409년 ~ 412년

388년 ~ 400년, 409년 ~ 412년[14]

원평릉(元平陵)

3대

태조(太祖)

문소왕(文昭王)

걸복치반(乞伏熾磐)

영강(永康) 412년 ~ 419년
건홍(建弘) 420년 ~ 428년

412년 ~ 428년

무평릉(武平陵)

4대

-

여무왕(厲武王)

걸복모말(乞伏暮末)

영홍(永弘) 428년 ~ 431년

428년 ~ 431년

-

4.10. 후량(後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

-

주천공(酒泉公)

여광(呂光)

태안(太安) 386년 ~ 389년

386년 ~ 389년

고릉(高陵)

-

-

삼하왕(三河王)

인가(麟嘉) 389년 ~ 396년

389년 ~ 396년

고릉(高陵)

1대

태조(太祖)

의무황제(懿武皇帝)

용비(龍飛) 396년 ~ 399년

396년 ~ 399년

고릉(高陵)

2대

-

은왕(隱王)

여소(呂紹)

-

399년

-

3대

-

영황제(靈皇帝)

여찬(呂纂)

함녕(咸寧) 399년 ~ 401년

399년 ~ 401년

백석릉(白石陵)

4대

-

-

여륭(呂隆)

신정(神鼎) 401년 ~ 403년

401년 ~ 403년

-

4.11. 남량(南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열조(烈祖)

무왕(武王)

독발오고(禿髪烏孤)

태초(太初) 397년 ~ 399년

397년 ~ 399년

-

2대

-

강왕(康王)

독발이녹고(禿髪利鹿孤)

건화(建和) 400년 ~ 402년

399년 ~ 402년

서평릉(西平陵)

3대

-

경왕(景王)

독발욕단(禿髪傉檀)

홍창(弘昌) 402년 ~ 404년
가평(嘉平) 408년 ~ 414년

402년 ~ 414년

-

4.12. 북량(北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

문왕(文王)

단업(段業)

신새(神璽) 397년 ~ 399년
천새(天璽) 399년 ~ 401년

397년 ~ 401년

-

2대

태조(太祖)

무선왕(武宣王)

저거몽손(沮渠蒙遜)

영안(永安) 401년 ~ 412년
현시(玄始) 412년 ~ 428년
승현(承玄) 428년 ~ 431년
의화(義和) 431년 ~ 433년

401년 ~ 433년

원릉(元陵)

3대

-

애왕(哀王)

저거목건(沮渠牧犍)

영화(永和) 433년 ~ 439년

433년 ~ 439년

-

4.13. 남연(南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세종(世宗)

헌무황제(獻武皇帝)

모용덕(慕容德)

건평(建平) 400년 ~ 405년

398년~ 405년

동양릉(東陽陵)

2대

-

-

모용초(慕容超)

태상(太上) 405년 ~ 410년

405년 ~ 410년

-

4.14. 서량(西涼)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태조

무소왕(武昭王)
흥성황제(興聖皇帝)[15]

이고(李暠)

경자(庚子) 400년 ~ 404년
건초(建初) 405년 ~ 417년

400년 ~ 417년

건세릉(建世陵)

2대

-

-
,<후주(後主)>,

이흠(李歆)

가흥(嘉興) 417년 ~ 420년

417년 ~ 420년

-

3대

-

-

이순(李恂)

영건(永建) 420년 ~ 421년

420년 ~ 421년

-

4.15. 북하(北夏)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세조(世祖)

무열황제(武烈皇帝)

혁련발발(赫連勃勃)

용승(龍昇) 407년 ~ 413년
봉상(鳳祥) 413년 ~ 418년
창무(昌武) 418년 ~ 419년
진흥(眞興) 419년 ~ 425년

407년 ~ 425년

가평릉(嘉平陵)

2대

-

-

혁련창(赫連昌)

승광(承光) 425년 ~ 428년

425년 ~ 428년

-

3대

-

-

혁련정(赫連定)

승광(勝光) 428년 ~ 431년

428년 ~ 431년

-

4.16. 북연(北燕)의 군주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 기간

능호

1대

-

혜의황제(惠懿皇帝)

고운(高雲)

정시(正始) 407년 ~ 409년

407년 ~ 409년

-

2대

태조(太祖)

문성황제(文成皇帝)

풍발(馮跋)

태평(太平) 409년 ~ 430년

409년 ~ 430년

장곡릉(長谷陵)

3대

-

소성황제(昭成皇帝)

풍홍(馮弘)

태흥(太興) 431년 ~ 436년

430년 ~ 436년

-

5. 16국 이외

6. 기타 창작물에서

중국 5천년 역사의 최고 동인지시대가 있어 철저히 듣보잡(...). 후삼국지가 오호 십육국 시대의 초반기를 다루지만, 전조의 흉노족 유요는 촉한 북지왕 유심의 아들이고 후조의 갈족 석륵이 조운의 손자라는 괴작. 설사 괴작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취급은 삼국지 연의에 종속된 2차, 3차 창작 동인지 이다.(...) 저 요소 때문에 오나라의 멸망까지 다룬 스토리 플롯의 2차 창작물에서 우스갯소리로 이어서 5호 16국도 다뤄달라는 독자들의 개드립도 자주 보인다.(...) 국내에선 대표적인 케이스가 삼국전투기인데 실제 진나라의 막장화를 암시하면서 끝난 완결화 댓글 보면 진짜 저런 개드립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1. [1] EBS에서 제작한 영상으로 삼국 통일이 265년에 되었다는 오류가 있다. 실제로 삼국 통일은 280년이다. 또한 이 시기에 오나라가 베트남 남부를 장악했다는 지도는 과장된 것이다. 게다가 현재의 광서성, 베트남의 홍하 삼각주 지역은 사실상 산월족이나 베트남 여러 민족들의 반독립국 형태에 더 가까웠다.
  2. [2] 흔히 착각을 해서 부가적인 설명을 하자면 동진은 한족 왕조다. 서진이 세를 잃은 곳에서 다른 민족들과 한족들이 세운 나라들을 칭하는 명칭이 오호 십육국이다.
  3. [3] 명나라 시대에 사천과 운남 지방을 한족화시키기 위하여 인구를 이주시키기도 했다.
  4. [4] 실제로 남방의 이민족 국가였을 확률이 상당히 높다. 당시 양쯔강 이남은 밀림으로 뒤덮힌 이민족의 영역이고, 고고학적 연구 결과 초나라 유적이나 유물들은 초나라가 묘족의 나라로 출발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5. [5] 단, 동화 세탁 에 실패하고 학살을 당하여 사라진 민족이나 # 노예 혹은 농노화 되어 사라진 민족들도 있었다. 지못미.
  6. [6] 찾아온 뒤에도 당시 태자였던 소수림왕이 대신 볼모로 가야 했다.
  7. [7] 유요가 추증
  8. [8] 경소제 추증
  9. [9] 경소제 추증
  10. [10] 남연(南燕) 헌무제 추증
  11. [11] 경명제 추증
  12. [12] 무소제 추증.
  13. [13] 무소제 추증.
  14. [14] 400년 ~ 409년 사이 후진(後秦)에 복속
  15. [15] 당고조 추증
  16. [16]1년 왕조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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