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츠키 노부히로

和月伸宏

1. 개요
2. 경력
3. 이것저것
3.1. 인맥
3.2. 취미
3.3. 점프 작가 사진 종료 루머
3.4. 아동포르노 소지기소
4. 작화
5. 특징
6. 작품목록

1. 개요

1970년 5월 26일생. 도쿄 도에서 태어나, 니가타 현에서 자랐다. 와츠키 노부히로는 필명이며 본명은 니시와키 노부히로. 부인은 소설가 쿠로사키 카오루.[1]

주로 소년점프에 연재를 했다. 《무장연금》부터 사용하고 있는 오너캐돼지.

2. 경력

오바타 타케시 문하 출신. 17세에 단편 '티쳐 폰' 으로 데즈카상 가작을 수상하며 데뷔, 이후 오바타 타케시, 타카하시 요이치, 우메자와 하루토 등 여러 작가의 문하를 거쳤으며 7년간의 문하생활 후 24세에 첫 연재작 《바람의 검심》을 내놓았고, 소위 점프 암흑기를 지탱하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바람의 검심》후반부부터 점차 삐걱거리기 시작하여, 연재 종료 때에는 평가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첫째는 그림의 악화. 교토편에서 절정에 달했던 작화력이 인벌편 중반부터 무너져내렸다. 와츠키 특유의 날카로운 그림체오다 에이이치로풍의 동글동글한 신작으로 바뀌고 말았다.[2] 둘째는 캐릭터의 약화. 시시오 마코토, 세타 소지로와 같은 매력적인 적캐릭터들이 사라지고 이누이 반진, 오토와 효코 등의 3류 악당들이 등장하면서 스토리의 질이 급격히 떨어졌다. 실제로 캐릭터 인기투표에서 인벌편 인물은 하나도 포함되지 못했다.

《바람의 검심》연재종료이후, 《건 블레이즈 웨스트》를 발표했지만 부진 끝에 6개월 만에 연재종료를 맞고, 본인이 암흑기에 빠져버렸다(...). 또한 후속작들이 차례로 조기 종료를 맞으며 커리어에 타격이 온 상태. 다행히 《엠바밍》 이후로는 그럭저럭 안정세에 접어들었었다.

잠시, 공백기를 거치고 내놓은 무장연금》으로 인해 변태각성하고 말았다. 《무장연금》은 비록 여러가지 상황상 장기연재로 이어지지 못하였으나 그럭저럭 소소한 인기를 얻었던 작품으로 연재 종료 후 애니메이션화가 되거나 게임화가 되는 등 중간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다.

한때, 점프계열월간잡지 점프스퀘어에서 《엠바밍 -THE ANOTHER TALE OF FRANKENSTEIN-》을 그리고 있다. 창간호의 표지를 장식하는 등 SQ의 기대작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2012년에는 《엠바밍》을 잠시 휴재하고,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 개봉을 기념한 단기집중연재로 바람의 검심 키네마 편을 발표. 2013년에는 《엠바밍》의 연재재개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3. 이것저것

미국에서 만화 관련 업무로 사람이 왔을 때 와츠키 노부히로가 그림 그리는 것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또한, 작품마다 설정집등, 별도의 루트가 아닌 단행본그자체에 풍부한 분량의 작품 외 텍스트를 수록함으로서 이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데에 큰 힘을 기울이는 저자로도 알려져 있는데, 작품이 부진할 때는 오히려 이 점이 종종 공격을 받는 빌미가 되기도 했으나(예를 들면 '작가가 작품으로 말해야지 입만 살았다', 또는 '굳이 밝히지 않았으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을 일로 엉뚱한 트집을 잡히는' 식[3]으로) 어찌 되었건 흥미로울 만큼 열린 마인드를 지니고 있는 만화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바람의 검심 캐릭터는 마키마치 미사오, 사도지마 호우지, 우도 진에(...)

미국 만화의 슈퍼히어로물에서 이런 식의 '설명', '해설'이 달린 경우가 꽤 많은데, 여기에서 영향을 받은듯 하기도 하다.

무장연금을 통해서 완벽한 죠죠러임을 인증했다.

3.1. 인맥

비록 현재 작품 활동이 성과면에서 부진하기는 하지만 과거 이 사람 밑에서 어시스던트를 거쳐간 후배 만화가들 중 인기 작가가 여럿 배출된 것으로도 유명.

원피스》의 오다 에이이치로라든가 《샤먼킹》의 타케이 히로유키, 《미스터 풀스윙》의 스즈키 신야 등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일명 와츠키 라인으로 불리며 소년 점프 연재 뒤의 작가 후기에서 서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다만 본인은 흔히 말하는 '스승'과 '제자'라는 형식 대신, 단순히 스타트하는 시점이 달랐을 뿐 모두 다 같은 업계의 '동료'라는 마인드를 갖고 이들을 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본인의 어시 출신인 타케이 히로유키에게 타케이 선생이라고 했다.[4] 물론 오바타 타케시 등 자신이 신세를 진 선배들에 대해서는 깍듯이 '스승'으로 받들고 있지만.

여러 작가의 문하를 두루 거쳤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오바타에 대한 존경이 각별하여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품에는 항상 "오바타 타케시 스승님의 작품 전부"라고 꼽을 정도. 고등학교 시절 구입한 점프에서 오바타가 신인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잘 그린다, 꼭 저 사람 밑에서 만화를 배우고 싶다"고 여긴 것이 인연의 시작으로, 편집자와의 미팅에서 오바타의 어시스턴트를 강력히 희망했다고. 참고로 1969년생인 오바타와 겨우 1살 차이이며, 데뷔는 2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히트작은 와츠키가 훨씬 먼저 내놓았다. 오바타가 1998년작 《히카루의 바둑》으로 첫 히트작을 내놓은 데 비해 와츠키는 첫 데뷔작이자 메가히트작인 《바람의 검심》이 1994년. 이쯤되면 동시대 작가이자 형동생 하는 동기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오바타를 깍듯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3.2. 취미

SNK 격투게임의 팬. 특히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팬이며, 사무라이 스피리츠 제로에서 신 캐릭터들의 디자인을 맡기도 했으며 《바람의 검심》에서도 작중에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오마주가 간간이 등장한다(예: 시시오 마코토의 홍련완[5]). 그래서 SNK에서도 굉장히 찬사해서 십본도를 모티브로 해서 NESTS를 만들었고 월화의 검사 시리즈는 역으로 바람의 검심의 오마주성이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편. 또한 자타가 좋아하는 아메코미 덕후로 마블 코믹스 작품들을 좋아해서 그쪽 캐릭터들과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다. 당시가 아메리칸 코믹스의 정식 출간은 커녕 정보도 구하기 힘들었던 1980년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쪽의 선구자 격.

본인이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이시카와 켄의 《겟타로보》 등을 꼽고 있다. 피규어 수집 또한 취미로 장식장이 어마어마하다고.

애향심이 강한지 《바람의 검심》 등장인물 중 몇몇의 이름은 니가타 현에 있는 도시들 이름에서 따왔다(ex. 묘진 야히코, 산죠 츠바메 등).

3.3. 점프 작가 사진 종료 루머

1980~1990년대 소년 점프에선 매년 신년호마다 연재 작가들의 사진을 모아서 표지를 장식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것이 점프 암흑기를 기점으로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와츠키 때문이라는 루머가 있다. 왜냐하면 너무 못생겨서 독자들의 환상을 깨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까지 못생기진 않았지만, 연재하는 작품에 비해서 어울리지 않는 외모인 것은 사실. 그러나 한 때 작가의 자기 비하 드립이 좀 강했던 것과 부합되어서 곧이곧대로 믿은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나름대로 신빙성 있게 퍼지기도 했다.

제멋대로 카이조》나 은혼/애니메이션 126화 등에서 이 루머가 개그로 언급되기도 한다.

어쨌든 젊을 때는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을 정도로 못 생긴 얼굴이었으나 이후 살이 빠지고 본인의 꾸준한 관리를 통해 어지간한 중년 연예인 뺨치는 미중년이 되었다. 아내가 평소에 우리 남편이 너무 잘생겼다고 자랑 트윗을 올릴 정도.

3.4. 아동포르노 소지기소

2017년 11월 21일, 대량의 아동 포르노 DVD를 소지한 것이 발각되어 단순 소지 혐의로 서류송치되었다. 혼네와 로리다!![6]

다른 아동포르노사건을 수색하던중, 우연히 와츠키의 아동포르노 DVD구입흔적을 발견해 경찰이 수색한 결과, 100장 이상의 10대초반소녀의 DVD를 발견해 입건되었다. 결국 본인이 혐의를 인정했고, "초등학생에서 중2 정도까지의 여자아이를 좋아했다."고 진술하였다고 한다.

이 사건의 여파로 바람의 검심 실사영화 4편의 제작은 요원해졌으며, 2017년 10월부터 연재하던 바람의 검심 홋카이도편도 3화만에 휴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태가 심각하긴 한데 슈에이 사가 연중 말고는 별다른 조치를 공언하지 않고 있어서[7]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는 생각 외로 빨리 복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기사에도 나와 있듯이 슈에이 사는 사고를 친 작가나 편집자에 대해서 타사보다 많이 관용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실 관용적이지 않더라도 누계부수 5천만부가 넘고 자사 역대 10위권 안에 드는 아직도 수익이 어지간한 현역 작품 이상으로 나오는 초메가히트작을 포기하기엔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하고. 결론은 소지만 했을 뿐이지 저지른 건 아니라서 이렇게 끝났다고 한다.

2018년 2월 28일 도쿄간이재판소는 와츠키에게 벌금 20만엔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후 별탈없이 2018년 4월부터, 몇달동안의 자숙이후에 바로 연재를 재개한데다 처벌도 벌금형에 그쳤다. 초범인 점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지만, 100장이라는 상당한 분량이기에, 서양이였다면 충분히 징역형까지도 나올수 있었다.

사건 이후로 바람의 검심 캐릭터 상품이나 게임 등은 예정 그대로 전부 발매되었고 연재도 재개되었으며 심지어 실사 영화판도 신작이 2020년 개봉 예정이다. 이런 일이 있었나 급으로 아무 일도 없었단 듯이 작품 전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당연히 서양에선 저런 작가가 왜 사회 퇴출이 안 되고 아직까지 일하고 있느냐며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법률이 그만큼 아동 포르노를 보는 것을 심각한 죄로 인식 안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후 신문에 해당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의 직업을 정리한 기사가 신문에 났는데, 그냥 만화가라고만 적어도 모두가 알아봤을 것을 구체적으로 인기 만화 「바람의 검심」 작가라고 만화 제목까지 구체적으로 적어서 확인사살을 해버렸다. #

4. 작화

처음부터 그다지 작화가 뛰어난 작가는 아니었지만, 《바람의 검심》 교토편에서는 경력이 쌓였는지 상당히 준수한 수준에 올랐었다. 그러나 인벌편에서는 급격히 작화 수준이 하락하더니, 후반부에서는 상당히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다.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수퍼어시 오다가 쿄토편까지 그리고 자기 만화 그리러 나갔다는 얘깁니다

사실 작화 수준이 처참해졌다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악평이고, 단행본의 FREE TALK에서도 언급하듯이 계속해서 작화를 바꾸어나가는 과정이었다.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선도 적게 쓰이고, 중반보다 훨씬 둥글둥글한 느낌을 주는데 이게 작품의 성격과 미스매치되는 면이 있어서...교토편의 날카로운 작화를 선호하는 팬들에게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셈.

《엠바밍》 연재 시에는 그럭저럭 준수하고 매력적인 작화다. 그러나 색칠 방식이 매우 많이 바뀌었다. 《엠바밍》에서 언급된 바를 따르면 미국 만화적인 채색을 연구해서 실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 톤을 많이 안쓰는 편이였던 작가이기도 했다.이 스크린톤 기피 증상(??)은 건 블레이즈 웨스트에서 극단적으로 두드러져서 거의 이와하라 유지 수준으로[8] 스크린톤을 쓰지 않다가 무장연금을 거쳐 엠바밍에 와서는 그시절에 비하면 사용빈도가 대폭 늘어난 편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예전에 비해서 많이 늘었다 수준이지 여전히 펜선이 메인이고 톤은 보조라는 느낌이 강한 방식의 스크린톤 사용법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작화는 바람의 검심 연재 때와 엄청난 갭을 보여주는데 어찌보면 지금 현재가 본인의 개성을 잘 살렸다고 볼 수 있지만 너무나도 날카로운 펜 라인과 액션씬 작화들은 대부분 진공효과 표시를 과도하게 쓰기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이다. 객관적으로 잘 그리는 작가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본인의 개성이 많이 담긴 그림체라고 할 수 있다.

5. 특징

대표작인 바람의 검심 교토편에서 일본이 폭주한다고 말하며 약육강식의 세계를 부정하는 등, 좌익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 한국인들 보기에야 굳이 좌우익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인식이겠지만 공교육에서 대놓고 대동아 공영권에 관한 교육을 받는 일본 입장에선 대단히 특이한 사례이다. 특히 대표작이 다루는 소재가 일본 대중적 역사 인식으론 상당히 평면적인 영광의 시대로 기억되는 메이지 시기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9] 비단 와츠키 본인 뿐만 아니라 샤먼킹타케이 히로유키도 작중에서[10] 2차대전기에 죽은 소녀 지박령의 입을 통해 생각없이 유행을 따라가다 전쟁을 일으켰다 말하고,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치로도 그렇고 와츠키 사단 전반이 종종 논란이 되는 일본 크리에이터들의 역사 인식 관련으론 확실히 반성적이고 자국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는 편이다.

작품(특히 캐릭터) 구상 단계에서 훌륭하다 못해 좀 지나쳐보일 정도로 정치적 올바름, 특히 소년만화가 독자인 소년들에게 끼칠 영향에 대해 고민하는 면모가 있다. 바람의 검심에서는 악역 캐릭터에게 '기형의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에 비뚤어졌다'는 설정을 붙이면서 '악역에게 이런 설정을 붙였다가 소년들에게 외모 등의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갖게 하지 않을지 걱정했다'고 하거나, 무장연금에서 선조의 잘못으로 유배간 일족의 이야기를 하면서 '소년들에게 연좌제가 옳다는 잘못된 인식을 주지 않을까 걱정했다'라는 식이다. 그런데 아동 포르노는 왜 보셨어요

6. 작품목록


  1. [1] 직업 특성상 남편의 시나리오에도 협력을 하고 있으며 《건 블레이즈 웨스트》 이후부터 단행본에 '스토리 협력' 명목으로 이름이 실리기 시작했다. 쿠로사키 카오루 명의로 《무장연금》의 소설판을 집필하기도 했다. 여담으로 무장연금 라디오에서 진행한 코너에서 유즈키 료카에게 "무장연금 1화 방영 당시 원작자인 와츠키 씨와 쿠로사키 씨는 무엇을 하며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있었을까요?"라는 퀴즈에 아이 만들기! 드립을 당한 적이 있다(...).
  2. [2] 재미있는 사실은 바로 오다 에이이치로가 와츠키 노부히로의 문하생이었다는 점이다.
  3. [3] 예를 들면 '이완보 3호의 디자인은 헐크의 영향을 받았다'라는 언급. 당시 이에 대해 '이게 무슨 헐크냐 에바 양산형인 거 다 아는데 살살 거짓말이나 하고'...라는 식의 비난 여론이 형성된 적이 있었는데, 실은 헐크의 배리에이션 중 하나인 '헐크 2099'였던 것. 그냥 애초에 아무 말도 안 했으면 안 먹어도 되었을 욕까지 먹었으니... 그저 애도를 표할 따름.
  4. [4] 무장연금 9권 후기에서.
  5. [5] 해당 캐릭터 문서에서도 언급되지만 카자마 카즈키를 오마주한 필살기이다.
  6. [6] 각 나라의 이중극점을 검증해 보기의 한국더빙판 시시오 마코토의 "내 두 번째 비검, 홍련완이다!"의 환청. 이 소재가 발굴된 뒤 아동 포르노 사건이 터졌기에 해당 몬데그린은 사실 예언이었던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
  7. [7] 사건 전에 발주가 들어가서 어쩔 수가 없었겠지만 타사의 소셜게임에 콜라보 이벤트로 나오는 바람의 검심 캐릭터들이 사건이 터진 뒤에도 그대로 나왔고 점프 행사에서도 일러스트에 켄신이 꼬박꼬박 들어가고 있다. 또한 단행본 판매중단, 회수 같은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8. [8] 과장이 아닌게 심심하면 아예 스크린톤을 안쓴 페이지가 나왔고 쓴 페이지가 나와봐야 한두곳 정도에만, 그것도 뭐 긁어내거나 겹쳐쓰는 식의 톤 사용 테크닉을 보여준게 아니라 명암용으로 한장 떡 붙인 정도 수준이였다.
  9. [9] 메이지 유신 이전에 일본은 딱히 전국민적으로 통합적 영광이란 집단적 경험을 할 중앙집권적 국가 자체가 없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라도 본격적인 쇼와 시대는 일본인들 본인들 기억하기에도 만성적인 경제난, 총력전의 기억, 억압적인 국가와 사회 분위기와 패전이라는 궤멸적인 결과 때문에 딱히 서민들이 살기 좋은 시대는 전혀 아니었고, 2010년 현재 진행형으로 진행되는 우경화 때문에 앞으로 어찌 될진 모르겠지만 바람의 검심이 유행했던 90년대의 관점에서 미디어 상으로 미화할만한 배경은 결코 못됬다. 반면 메이지 시절은 러일전쟁 승리의 영광을 구점으로 일본 대중이 전형적인 '영광의 시대'로 인식하는 시대적 배경이고, 소위 '메이지 낭만담'에 대한 환상은 심지어 군부와 전체주의에 비판적인 일본 지식인, 좌익 성향 인물들도 종종 본격 군국주의화 이전 일본의 정치적 근대성, 자유주의가 남아있던 시절이라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이런 일본 사회와 메이지 시대에 대한 기억은 도련님의 시대에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으니 같이 참고해서 볼만하다
  10. [10] 프리퀄인 샤먼킹 제로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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