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FC

2016 메이지 야스다 J1리그

가시마
(Kashima)

가시와
(Kashiwa)

가와사키
(Kawasaki)

감바 오사카
(Gamba Osaka)

고베
(Kobe)

고후
(Kofu)

나고야
(Nagoya)

니가타
(Niigata)

도스
(Tosu)

FC 도쿄
(FC Tokyo)

센다이
(Sendai)

쇼난
(Shonan)

오미야
(Omiya)

요코하마 FM
(Yokohama FM)

우라와
(Urawa)

이와타
(Iwata)

후쿠오카
(Fukuoka)

히로시마
(Hiroshima)

요코하마 FC

요코하마 FC
(축구)

YFCMD
(축구)

요코하마 FC

Yokohama FC

정식 명칭

横浜FC

라이센스

J1

창단

1999년

리그

J1리그

구단 형태

시민구단

연고지

가나가와요코하마시

홈구장

닛파츠 미츠자와 구기장
(15,046명 수용)

회장

오쿠데라 야스히코[1]

감독

시모타이라 타카히로

킷 스폰서

Soccer Junky

애칭

Fulie

라이벌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홈페이지

http://www.yokohamafc.com

1. 개요
2. 탄생
3. 성적
4. 시민구단
5. 관련 선수

1. 개요

요코하마 FC는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를 연고로 하는 J리그 축구팀이다.

눈물이 절로 흐르는 팀

2. 탄생

원래 요코하마를 연고지로 하고 있는 축구팀은 2개였다. 하나는 요코하마 마리노스, 다른 하나는 요코하마 플뤼겔스. 마리노스는 닛산자동차가 후원하는 팀이였고 플뤼겔스는 ANA사토 공업이 공동으로 후원하는 팀이었다.

그런데 1998년, 요코하마 플뤼겔스는 후원사였던 사토 공업과 ANA이 경영문제로 스폰서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재정 위기가 찾아왔고, 결국 이해 10월 29일에 시즌 종료 후 같은 요코하마 연고의 요코하마 마리노스와 합병(플뤼겔스가 마리노스에 흡수합병)할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발표를 하게 된다. 이에 플뤼겔스 팬들은 합병 반대를 외치며 구단 존속을 호소했으며, 플뤼겔스 선수단은 '매 경기가 마지막 경기'라는 각오를 다지며 이후 잔여 시즌 공식전과 천황배 시합을 포함한 남은 9경기에서 전승하는 쾌거를 보였다. 플뤼겔스는 1999년 1월 1일, 새해 첫날에 열린 시미즈 에스펄스와의 제78회 천황배 결승전에서 2-1로 승리하면서 9연승과 동시에 2번째 천황배 우승을 달성했지만 이미 이전인 1998년 12월에 합병이 정식 확정된 후였기에 결국 이 천황배 결승전이 마지막 경기가 되었고, 그와 동시에 이해 천황배 우승이 마지막 기쁨이 되어버렸다. 결국 플뤼겔스는 1998년 천황배 대회를 끝으로 1999년 2월 요코하마 마리노스에게 정식으로 흡수합병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2] 플뤼겔스가 마리노스에 흡수합병이 되면서 결국 마리노스가 요코하마의 유일한 프로축구 팀이 되었고 요코하마 'F.' 마리노스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여기서 F가 바로 플뤼겔스를 뜻하는 이니셜이다.

그러나 플뤼겔스의 팬들은 도저히 이 사실을 납득할 수 없었다. 'F'라는 글자 하나에 만족할 수 없었던 플뤼겔스 팬들은 1999년 소시오제도[3]를 통해 플뤼겔스의 전통을 잇는 요코하마 FC를 창단하게 된다.

엠블럼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비상하는 새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플뤼겔(Flügel)이 독일어로 '날개'를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 팀컬러도 플뤼겔스의 팀컬러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홈구장도 플뤼겔스가 쓰던 닛파츠 미츠자와 구기장을 똑같이 사용하고 있다. 위에 나와있듯 플뤼겔스의 전통을 구단명과 역사를 제외하고 고스란히 계승한, 사실상 플뤼겔스의 재창단이나 마찬가지인 셈.

등번호 12번은 서포터 번호로 영구결번이다.

요코하마 FC 영구결번

No.12 서포터

3. 성적

요코하마 FC는 창단 당시에 전용구장도 없어 요코하마 시가 허락하는 시간에만 연습을 할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4] 출범 첫 해인 1999년 JFL에 참가하여 우승을 달성하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이듬해인 2000년에 다시 1위를 차지하며 J2리그로 승격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2001년에도 다시 한번 JFL 우승을 차지하며 창단 2년 만에 J2리그로 승격하게 된다. J2리그로 승격된 이후 한동안 들죽날죽 성적을 유지하다 2007년 드디어 꿈에 그리던 J리그로 승격을 하게 된다. 승격 첫 해에 F마리노스와의 첫 경기인 2라운드에서 1-0으로 승리하며 팬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게 된다.

그러나 기쁨은 거기까지만이었고 현실은 안습 그 자체. 어쩔수 없는 부분이지만, 승격팀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고 결국 2007년 J리그 꼴찌가 되어 다시 J2리그로 강등된다. 이후 2009년까지 J2리그에서 머물고 있다. 2012년에는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준플레이오프에서 제프 유나이티드 이치하라 지바에게 0:4로 대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

2018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면서 오랜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원래는 6위팀과 경기를 치루고 플레이오프 결승전을 치룬 뒤에 J1의 16위팀과 경기를 또 치뤄야했지만 4위를 차지한 마치다가 J1라이센스가 없는 관계로 5위 오미야 아르디자와 6위 도쿄 베르디의 맞대결 승자와 경기를 치루면 된다. 그리고 오미야를 꺾고 올라온 도쿄 베르디와 맞붙게 되었는데 95분 추가시간에 1골을 허용하여 패배하고 승격은 물건너가게 된다.

2019년 오미야와 치열한 2위경쟁을 펼쳤다. 결국 마지막 라운드에서 13년 만에 승격에 성공한다.

2020년 J1리그 1라운드 상대는 전년도 천황배 우승팀 비셀 고베인데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4. 시민구단

FM의 제작사 SI가 후원하는 AFC 윔블던, 과거 부천 SK의 서포터즈인 헤르메스가 창단한 부천 FC 1995 모두 구단이 팬을 떠나자 팬들이 직접 팀을 만든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팀들의 선배격인 팀이 바로 요코하마 FC. 부천 FC 1995의 초기 롤모델이기도 했다.[5]

기업팀과 달리 자금력에서 뒤쳐지는건 사실. 하지만 팬들의 열정만은 J리그 어느 팀도 부럽지 않았으나 2005년 이후 피트 엔터테인먼트의 연결회사로 되어 있는 상태. 초기에는 일본에서 최초로 일반 개인멤버에 의한 출자를 시도한 점이 신선했으나, J리그 참가 초기부터 오쿠데라 등의 경영진과 소시오가 법정공방을 주고받고 결국 소시오 또한 후원회 성격으로 바뀐 지 오래이다.

관중 수는 처참한 편이다. 같은 도시에 1부 리그 강팀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라는 존재도 있고 워낙 2부 리그에 오래 있다보니 새로 유입되는 팬도 별로 없는 상황.[6]

5. 관련 선수

일본의 축구 영웅이자 살아있는 전설 미우라 카즈요시현역으로 뛰고 있으며,[8] 북한 대표팀에서 뛰었던 재일 조선인 안영학이 이 팀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한국 선수로는 최성용, 오범석, 안효연, 박성호, 조영철, 배승진 등이 소속이었다.


  1. [1] 차범근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했던 당시 같은 아시아 선수로 출전하던 그 오쿠데라가 맞다. 현재 요코하마의 구단주 겸 스포츠 디렉터도 맡고 있다.
  2. [2] 당시 천황배 우승을 했음에도 플뤼겔스 응원석은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되었다. 비록 우승을 했어도 팀이 사라지는 것이 이미 확정되어 버렸기에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현실에 슬픔을 감추지 못한 것.
  3. [3] 시민주주 50% 이상 보유
  4. [4] 현재도 별반 달라진 건 없다.
  5. [5] 그런데 정확하게 정리하자면 부천 1995과 AFC 윔블던의 창단이 된 원인은 요코하마 FC의 그것과는 다르다. 윔블던과 부천은 전에 응원하던 연고 팀이 야반도주 해버리는 바람에 팬들이 만든 구단이다. 반면 요코하마 FC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플뤼겔스는 단순히 전일본공수가 스폰서십을 포기하면서 해체된 게 원인이었다.
  6. [6] 3부 리그에서 같은 경기장을 쓰는 YSCC 요코하마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평균 관중 수는 J리그 전체를 통틀어 꼴찌 수준.
  7. [7] 류츠케이자이대학에서 임대.
  8. [8] 이 선수의 현역 여부를 왜 강조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 참조.

최종 확인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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