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상 해전

1. 개요
2. 배경
3. 양측의 전력
3.1. 영국군
3.2. 프랑스군
4. 전투 경과
5. 결과

1. 개요

미국 독립 전쟁 시기인 1778년 7월 27일 영국 해군과 프랑스 해군이 웨상 섬에서 160km 떨어진 비스케이 만에서 맞붙은 전투. 프랑스군이 미국 독립 전쟁에서 처음으로 영국과 맞붙은 해전이다.

2. 배경

프랑스는 1777년경부터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북미 식민지 주민들에게 비밀리에 물자 및 자금 지원을 해줬다. 그러다가 1777년 10월 대륙군이 새러토가 전투에서 영국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히자, 프랑스 정부는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1778년 2월, 프랑스는 공식적으로 미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대륙군에 공공연하게 무기를 공급했고 3월 28일엔 영국에 선전포고했다. 이렇게 해서 전쟁에 뛰어들은 프랑스는 먼저 대서양 항로를 통제하기 위한 해상 작전을 개시했다.

당시 프랑스는 지중해에 함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브레스트에 본부를 둔 두번째 함대는 대서양과 영국 해협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영국 해군은 브레스트를 봉쇄해 프랑스 함대가 영국 상선에 대해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지중해의 프랑스 해군이 지중해를 빠져나와 아메리카로 향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영국 해군은 이들을 추격하려면 체널 제도에서 브레스트 항을 감시하고 있던 함대 중 일부를 차출해야 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와 영국 해군은 브레스트 안팎에서 수적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프랑스 해군의 탈출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당시 체널 제도의 영국 해군 지휘관은 어거스트 케펠 제독이었다. 케펠은 그 시대의 많은 장교들처럼 의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에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속한 휘그당은 조지 3세에 의해 권력에서 배제되어 있었고, 자연히 케펠 제독과 '왕의 친구들'을 자처한 토리당 간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해군부 장관 샌드위치 경은 휘그당으로부터 "어떤 악행도 거리낌없이 저지를 수 있는 자"라는 혹평을 받았으며, 케펠 역시 자신이 패한다면 샌드위치 경이 매우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케펠의 부하들 중 하나인 휴 팔리서 경은 해군 위원회 위원으로서 토리당의 정책이 해군에 반영되는 걸 앞장서왔기에 케펠로부터 불신을 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렵게나마 함대를 갖춘 케펠은 6월 12일 20척의 전열함과 3척의 프리깃 함으로 구성된 함대를 출격시켰다. 며칠 후 체널 제도에 도착한 케펠은 함선을 더 끌어모으면서 적의 동태를 살폈다. 7월 9일 도르빌리에 백작 루이 굴로트가 이끄는 프랑스 함대가 브레스트에서 출항했고, 케펠은 7월 9일 스피트헤드에서 출발했다. 케펠의 함대는 7월 23일 12시 직후에 웨상 섬 서쪽에서 프랑스 함대를 목격했다. 그는 즉시 전함을 일렬로 정렬시키고 추격에 나섰다. 19시경, 프랑스 함대는 돌연 영국을 향해 항해하기 시작했다. 케펠은 밤에 교전하기를 원치 않아 함대를 철수시켰다. 다음날 아침, 도르빌리에 백작은 다시 방향을 바꿔 대서양으로 향했고, 케펠은 그런 적을 열심히 추격했다.

7월 27일 6시, 케펠은 팔리서 휘하 전열함 10척에겐 순풍을 타고 따라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9시 경, 바람을 타고 대서양으로 나아가고 있던 프랑스 함대는 돌연 바람이 바뀌면서 더이상 달아나기 어려워졌다. 그로부터 2시간 후, 영국 함대 선두 함선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도르빌리에 백작은 전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전 함대에 전투 대형을 갖출 것을 지시했다. 이리하여 미국 독립 전쟁 시기 프랑스와 영국의 첫번째 해전의 막이 올랐다.

3. 양측의 전력

3.1. 영국군

  • 지휘관: 어거스트 케펠 제독
  • 병력: 전열함 29척

3.2. 프랑스군

  • 지휘관: 도르빌리에 백작 루이 굴로트
  • 병력: 전열함 30척, 프리깃 2척

4. 전투 경과

7월 27일 오전 11시 20분, 전투가 시작되었다. 선두에 선 4척의 프랑스 전열함이 먼저 포격을 개시했고, 영국 함대는 적선을 확실히 맞출 수 있는 거리까지 진군할 때까지 포탄을 쏘지 말라는 케펠 제독의 명령에 따라 별다른 대응 없이 적을 향해 접근했다. 이후 케펠이 탑승한 혼 호는 대포 110문을 갖춘 브리타뉴 호와 교전한 후 여섯 척의 프랑스 전열함과 잇달아 교전했다. 이후 영국 함선들이 잇달아 전투에 뛰어들어 적과 포탄을 주고받았으나, 후방에 있던 휴 팔리서 휘하 10척은 후방에서 전투 대형을 형성하지 않고 느슨한 형태의 편대를 이룬 채 느긋하게 나아갔다가 적으로부터 갑작스런 포격을 받고 큰 피해를 입어서 전투 참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문에 전투에 참가한 영국 함대의 숫자는 19척에 불과했으므로 프랑스 함대가 적극적으로 공격했다면 적을 압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르빌리에 백작은 영국 함대의 뛰어난 항해술을 경계하고 있어서 전군에 함부로 적을 향해 돌격하지 않고 제 자리에서 대열을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이 떄문에 전투는 몇 시간 동안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볼 수 없을 만큼 팽팽하게 이어졌다.

14시경, 프랑스 전선들이 우현으로 남하하여 영국 함대를 바람이 가려지는 쪽으로 몰아가려 했다. 이에 케펠은 함대의 전투 대형을 재편성하기 위해 전 함대에게 후퇴 명령을 내렸다. 16시경, 케펠은 막 전장에 도착한 팔리서에게 자신과 합세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팔리서 휘하 함대는 본대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일렬로 늘어설 뿐 좀처럼 합류하지 않았다. 한편 도르빌리에 백작은 적이 물러서자 전 함대에게 대서양으로 나아가게 했다. 17시 경, 케펠은 팔리서에게 당장 본대와 합세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팔리서가 끝내 말을 듣지 않자, 케펠은 마침내 분노를 터트리고 19시에 팔리서에게 소속된 함선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팔리서의 지휘권을 박탈하며 당장 자신과 합세할 것을 명령했다. 이에 팔리서에게 속했던 배들이 잇달아 본대와 합세했지만, 그때쯤에는 이미 어둠이 깔려서 더이상 전투를 계속할 수 없었다.

프랑스 함대는 어둠을 틈타 적과 멀찍이 떨어졌고, 다음날 아침엔 영국 함대로부터 20마일 떨어진 거리까지 나아갔다. 케펠은 더이상 그들을 추격해봐야 소용없다고 판단하고 플리머스로 돌아와 배를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미국 독립전쟁 시기 영국과 프랑스의 첫번째 해전이 끝났다.

5. 결과

영국군은 웨상 해전에서 407명의 전사자와 789명의 부상자를 기록했고, 프랑스군은 126명의 전사자와 413명의 부상자를 기록했다. 전투 자체는 어느 쪽이 승리했다고 보기 어려웠지만, 전략상으로는 대서양으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 프랑스 해군이 이득을 챙겼다고 할 수 있다.

케펠은 웨상 해전 후 공식 보고에서는 팔리서를 칭찬했지만,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팔리서를 비난했고, 팔리서는 이에 맞서 케펠의 지시에 따라 순풍을 타고 느슨하게 행군했다가 적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며 케펠의 무능을 성토했다. 급기야 둘은 서로를 반역죄로 고발했고 이로 인해 둘 다 법정 구속되었다. 그러나 둘 중 하나를 처벌했다가는 휘그당이나 토리당이 격렬하게 반발할 게 불보듯 뻔했기에, 영국 정부는 정치 문제를 고려하여 둘 다 무죄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후로 두 번 다시 해군을 이끌지 못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루이 16세의 친척인 루이필리프 도를레앙은 웨상 전투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8월 2일 이른 아침에 베르사유 궁전으로 달려가 루이 16세를 깨운 뒤 아군이 영국 해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고 보고했다. 그는 웨상 전투에 참가한 장교들 중 한 명과 혈연 관계였기 때문에, 오페라에 참석했을 때 사람들에게 20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후 그는 자신의 정원에서 케펠 제독의 초상화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의기양양해 했지만, 얼마 후 웨상 전투가 그리 칭송할 만한 승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샀고 결국 해군에서 사임했다. 루이필리프는 불명예를 씻기 위해 이듬해에 영국 침공 작전에 참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루이 16세에게 거부당했다. 그 후 루이필리프는 루이 16세를 적대했고 프랑스 대혁명 때 루이 16세 재판에서 국왕의 처형에 찬성표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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