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

  • 과거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중국에서는 가짜 나라란 의미를 담아 '위만(僞滿)'이라 부른다.

왕호

위만왕(衛滿王)

성씨

위(衛)

만(滿)

생몰년

? ~ ?

재위 기간

기원전 194년 ~ ?

1. 개요
2. 설명
3. 위만의 정체성
4. 중국에서 바라보는 위만
5. 근대 이전의 위만 인식
6. 대중문화에서의 위만

1. 개요

중국 전한 때의 장수이자, 위만조선의 초대 국왕. 기록상으로 전해지는 한반도 최초의 군사정변 주동자.

전한의 연왕 노관 휘하에 있다가 노관이 반란에 실패해 흉노로 망명하자 위만(衛滿)은 고조선으로 망명하며 서북 땅을 지키다 준왕을 몰아내고 위만 조선 시대를 개막했다.[1]

위만의 성씨가 기록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었는데, 잠부론과 삼국유사에서는 성씨가 衛(지킬 위)가 아닌 魏(나라 이름 위)로 기록되어 있다.

2. 설명

기원전 195년경, 전한(前漢)의 연왕(燕王) 노관(盧綰)이 모반하여 흉노로 달아나자 위만은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위만은 준왕에게 서쪽의 번병(藩屛)이 되기를 청하였고 준왕은 이에 위만을 박사(博士)로 삼아 100리의 땅을 주고 서쪽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위만은 서쪽 변방을 지키면서 의 망명한 무리들을 규합하여 계속 세력을 키웠으며 기원전 194년 무렵에 반란을 일으켜 준왕을 남쪽으로 쫓아내 스스로 조선이 되었고 위만 조선을 열었다.

위만은 진번(眞番)과 임둔(臨屯) 등 주변의 작은 집단들을 침략하여 복속시켜 고조선의 영토를 크게 넓혀 현재의 북한에 해당하는 수준의 영역을 조선의 이름 아래 복속시켜 전성기를 열게 된다. 이후 위만 조선은 전한과 남쪽의 진(辰)의 사이에서 교통을 막고 직접적인 교역 내지 조공을 방해하였다. 이로 인해 기원전 128년 위만 조선 근방에 창해군을 설치한 후 폐지하고 결국 손자 대에 멸망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만과 위만조선의 등장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고대 한국의 선진 정치 집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3. 위만의 정체성

위만이 조선 사람이었다는 설도 있기는 하지만, 그 증거라는 게 상투를 틀었다는 기록 한 줄 뿐이다. 정확히는 상투를 틀고, 오랑캐의 옷을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기록이니 여기서 오랑캐라 함은 '한국의 복식'을 가리키는 것. 때문에 망명할 때 조선에서 안 받아줄 것을 우려해서 일부러 조선의 복장을 입었다는 견해도 있다.

사기를 보면 기자위만이나 모두 중국에서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저 '상투'를 틀었다는 한 줄 덕에 국사책에서 삭제되는 일은 면했고, 과거에는 연나라 출신의 조선인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이병도) 이후 현재에 들어서는 위만을 조선인으로 보는 의견은 공식 학계에선 많이 수그러든 편이다. 다만 중국 유이민 세력 출신이나 이전부터 고조선의 문화에 영향을 받은 형태가 아닌가 하고 추정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결론적으로는 위만 조선이 고조선의 국가 정체성을 계승, 유지했고 연나라 출신의 지배층과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의 연합 정권 성격이 강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위만의 국적 문제는 위만 조선 정권의 정체성과는 직결되지 않는다.

위만은 준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국호를 유지했고 그 전부터 존재하던 정치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고 왕검성을 그대로 수도로 둠으로써 기존의 국가 정체성을 그대로 계승 및 유지했으므로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 보는 시각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애당초 민족적 요소는 기원전 시대에 고려할 바가 전혀 아니다.

위만은 국가와 왕조가 별개의 개념이었던 유럽에서는 그리 신기하지는 않은 인물이나, 왕조와 국가가 동일하게 여겨진 동아시아에서는 매우 특이한 사례로 정복왕 노르망디 공 윌리엄이 떠오르게 만든다. 윌리엄 이후의 영국프랑스의 관계만 봐도 위만이 연나라 출신이었단 이유로 위만 조선을 중국 지방 정부 취급하는 게 참 어거지란 걸 알 수 있다. 물론 영국 왕은 프랑스 내에서는 프랑스 봉신 행세=계승권을 주장했지만.. 만약에 위만 조선을 중국의 지방 정부로 친다면 싱가포르, 필리핀, 태국을 비롯하여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 내지 그 일부는 중국의 속국이 되는 셈이다. 이런 황당한 논리의 문제에 대해서는 위만조선 항목에서도 추가로 지적하고 있다.

위만의 등장은 외래의 강대한 세력에 의해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과 떨어져 있던 조선이 한대 확장에 의해 직접적 교류가 생기고 동북아시아 역사에 편입되었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위만은 고조선으로 귀화연나라 출신의 사람일 뿐이다.

4. 중국에서 바라보는 위만

사서에선 그가 연(燕)나라 태생으로 연왕 노관의 부하였다고 전하고 있으며, 중국의 어용 사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삼아 위만이 중국인이었으며 위만 조선은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 주장하고 있다.

古代卫氏朝鲜的建立者.

公元前二世纪初,辽东局势动荡,燕人卫满率千余人叛西汉入箕子朝鲜, 箕子朝鲜准王任命其为博士, 将其国西部封地百余里与卫满. 公元前194年卫满联合箕子朝鲜的部分反对国君的势力进攻国都王俭城,准王自海路亡命于半岛南部的马韩地区,卫满即位后,卫满统一了箕子朝鲜,并将势力扩展到了鸭绿江以南地区.设立了裨王、相、大臣、将军等官职,完善了古朝鲜的政治体制。

고대 위씨 조선의 건국자

기원전 2세기 초 요동에 세를 가지고 활동하였던 연나라인 위만은 약 천여 명을 이끌고 기자 조선에 입성한다. 기자 조선의 준왕이 그를 박사에 임명, 나라의 서부 백여리를 위만에게 봉한다. 기원전 194년 위만은 기자 조선과의 연합을 반대하여 왕도 왕검성으로 진공, 준왕은 바다를 통하여 반도 남부의 마한 지역으로 망명한다.

卫满即位后,积极建立国家,并输入中原文化,使国家愈来愈强盛。汉武帝有感卫满朝鲜对汉朝的威胁愈来愈大,决定在公元前109年起兵远征朝鲜半岛。公元前108年,卫满朝鲜被灭,汉武帝把卫满朝鲜的国土分为四郡,分别为:乐浪郡、玄菟郡、真番郡、临屯郡,合称为“汉四郡”。

위만이 즉위 후, 위만은 기자 조선을 통일하고, 그 세력은 압록강 이남 지역에 도달하였다. 비왕, 상, 대신, 장군 등 관직을 설립하고, 고조선의 정치 체제를 완성하였다. 위만 즉위 후 적극적으로 국가를 건립하며 중화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국가는 점차 강력하게 되어갔다. 한 무제는 위만 조선이 점차 강해지는 것이 한조에 위협된다고 생각하고는(혹은 유감을 가지고), 기원전 109년 병사를 일으켜 조선 반도에 원정을 결정한다. 108년 위만 조선을 파멸했고 한 무제는 위만 조선의 국토를 4군으로 분할하였다, 분별은 낙랑군, 현도군, 진번군, 임둔군, 일명 한사군이다.

古朝鲜即箕子朝鲜和卫满朝鲜的合称。箕子朝鲜乃殷商遗裔在朝鲜半岛上所建地方政权,臣于周,后又臣于秦,为周秦海外之属国。箕子朝鲜为卫氏朝鲜所取代,卫氏朝鲜为汉之“外臣”、属国。汉武帝伐朝鲜,裂其地为四郡,为汉的边疆辖区。有了箕子朝鲜,方有卫氏朝鲜,方有汉之四郡,方有高句丽史、渤海史,从而构成了东北古史、东北民族与疆域史的基本系列,而箕子朝鲜是为中国东北史之开端。

고조선, 즉 기자 조선과 위만 조선을 이르는 이름. 기자 조선처럼 은나라의 후예(혹은 후손)로 조선 반도에 세워진 지방 정권이다. 주나라의 신하국 또한 진나라의 신하국, 즉 주 - 진나라의 해외 속국이다. 기자 조선처럼 위씨 조선 역시 이어받아(신하국), 위씨 조선은 한나라의 외신, 속국이다. 한 무제가 조선을 벌하고, 그 땅을 4군으로 분열시켰으며, 한나라의 해구 변경이 된다. 기자조선, 위씨조선, 한나라의 사군, 고구려 역사, 발해 역사, 모두 동북 고사로부터 구성된다. 동북미족의 강역사의 기초 계통이며, 또한 기자 조선은 중국 동북 역사, 동북 민족의 강역 역사의 기초 계열이며 기자 조선은 중국 동북사의 시작이다.

출처: 중국 바이두 백과 위만.(2012년 6월 24일자)

이를 보면 위만과 그의 위만 조선을 기자 조선과 함께 중국의 속국이자 중국 동북고사의 시작점으로 칭하고 있으며, 중국의 역사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 조선 공정일 뿐이다.

5. 근대 이전의 위만 인식

조선 시대 때, 조선단군기자에 대한 제사는 지냈으나 위만에 대한 제사는 지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찬탈자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경우 일단 형식 자체는 고려의 왕위를 양위받은 이성계가 나라 이름을 바꾼 것이었다. 물론 형식으로 '양위' 어쩌고 하는 그런 걸로 수식하는 거지, 본질은 역사에서 수두룩했던 왕위 찬탈과 별 다를 바 없었지만. 어찌 보면 쿠테타를 일으키고 고조선을 발전시킨 모습이 이성계의 조선과 비슷하다.

6. 대중문화에서의 위만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되었던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6부의 주인공이다. 조선의 부족에서 태어나 한나라로 넘어가 연왕 노관 휘하의 무사가 되었다. 각성하면 목 뒤에 별모양 반점이 생긴다. 결국 여후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치우 창법 13초식 '동귀어진'을 펼치지만 동료들이 여후에게 잡히자 인질 교환 조건으로 자신의 눈 한쪽을 스스로 떼어내고 풀려나 조선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이야기가 끝난다.


  1. [1] 원래 고조선이라는 단어는 일연삼국유사에서 위만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고조선이란 말을 쓴 거지만, 일연이 생존했던 고려 시대 이전과는 다르게 조선 시대 이후에는 이성계가 세운 근세 조선 왕조와 구분하기 위해 고조선의 의미가 위만 조선까지 포함하도록 변화하였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sta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