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학

한국프로농구 현재 감독

추일승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

이상민
(서울 삼성 썬더스)

조동현
(부산 kt 소닉붐)

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유재학
(울산 모비스 피버스)

김승기
(안양 KGC인삼공사)

김영만
(원주 동부 프로미)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김 진
(창원 LG 세이커스)

추승균
(전주 KCC 이지스)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감독

유재학(兪載學)

생년월일

1963년 3월 20일(만 55살)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상명초 - 용산중 - 경복고 - 연세대

포지션

포인트 가드

신체사이즈

180Cm, 80Kg

실업입단

1986년 기아자동차 농구단 입단

소속팀

기아자동차 (1986~1991)

국가대표팀

1985 쿠알라룸푸르 ABC[1]
1987 방콕 ABC
1988 서울 올림픽

지도자

연세대학교 코치 (1993~1997)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 코치 (1997~1998)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신세기 빅스/SK 빅스/전자랜드 블랙슬래머 감독 (1998~2004)
울산 모비스 피버스/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감독 (2004~)

수상내역

<선수>
농구대잔치 MVP 1회 (1989)
농구대잔치 Best 5 2회 (1988,1989)
농구대잔치 어시스트상 3회 (1987~1989)
FIBA ABC 준우승 2회 (1985,1987)
<감독>
KBL 정규리그 우승 5회 (2006, 2007, 2009, 2010, 2015)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5회 (2007, 2010, 2013-2015)
KBL 감독상 4회 (2006, 2007, 2009, 2015)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은메달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3 FIBA ABC 3위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7

2010

2013

2014

2015

1988~1989 농구대잔치 MVP

김현준
(삼성전자)

유재학
(기아산업)

한기범
(기아산업)

2005~2006, 2006~2007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전창진
(원주 TG삼보)

유재학
(울산 모비스)

전창진
(원주 동부)

2008~2009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전창진
(원주 동부)

유재학
(울산 모비스)

전창진
(부산 kt)

2014~2015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김 진
(창원 LG)

유재학
(울산 모비스)

추승균
(전주 KCC)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신세기 빅스/SK 빅스/전자랜드 블랙슬래머 역대 감독

최종규
(1997~1998)

유재학
(1998~2004)

박수교
(2004~2005)

울산 모비스 피버스/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역대 감독

장일(대행)[2]
(2003~2004)

유재학
(2004~ )

1. 개요
2. 선수 시절
3. 감독 생활
3.1. 감독 스타일
4. 논란 및 비판
5. 이야깃거리
5.1. 신인 드래프트에서
5.3. 전준범 데이의 피해자(?)
5.4. 기록원 퇴장 사건

1. 개요

만수(萬手)

KBL 최초의 600승 감독[3]

KBL 역사상 단일 구단 최장수 감독[4]

대한민국의 농구인. 선수 시절에는 대한민국 농구를 대표하는 천재 포인트 가드였고, 은퇴한 후에는 지도자로서 KBL을 대표하는 명장으로 자리잡은 인물이자, 2016년 KBL 통산 승수 1위에 빛나는 감독이며 황버럭, 강희대제, 코재, 매지코 킴까지 당했던 타어강에도 작살나지 않은 최고의 명장. 그야말로 명선수는 명감독이 될 수 없다의 훌륭한 반례라고 할 만 하다.

별명은 현역 시절에는 코트의 여우[5], 감독 시절에는 만 가지의 수를 가지고 있다 해서 만수, 최근에는 민국이를 닮았다고 해서 민국이도 추가되었다.민국이 닮았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다.

2. 선수 시절

상명국민학교[6] 3학년 때 처음 농구에 입문했다. 농구를 좋아하던 유재학이 매일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튀기고 노는 것을 보고서 농구부에서 그를 농구로 입문시킨 것이었다. 이 때 같이 들어간 친구가 지금도 절친한 벗인 전창진이다. 상명국민학교 때부터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상명국민학교를 소년체전 3연패의 위업을 달성시켰다. 소년체전은 5학년부터 참가가 가능한데, 유재학의 재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4학년인 그를 5학년으로 속여서 출전시켰다고 한다.

절친인 전창진과 함께

용산중학교에 들어갈 때, 워낙 실력이 좋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농구를 못 하게 될 뻔했다. 결국 용산중 관계자가 아버지가 내건 조건을 수락하고 농구를 다시하게 되었는데, 그 조건은 체벌 금지, 공부 시간 보장이었다. 그래서 유재학은 맞지도 않고, 남들 훈련할 때 나가서 공부도 했다. 그럼 선배들이 싫어했겠지만 유재학이 나가면 이기는데 싫어할 수는 없었다. 중학교 때, 전국대회 39연승을 하면서 중학농구를 씹어먹었다.

그리고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야 했는데, 정상적인 경로라면 용산고등학교로 가야 했지만,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뛰고 싶었고, 또 만난 사람들과 계속 농구를 해야 한다는 지겨움 때문에 선배들이 거의 없던 경복고등학교 진학을 우겨서 결국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경복고에 가서는 또 다시 경복고를 이끌고 고교 대회를 모조리 제패하면서 당시 흔들렸던 경복고 농구를 완전히 재건시켰다.

이제 대학에 갈 때가 되자, 이 천재 가드의 진로는 경복고의 후원자였던 고려대학교였다. 하지만 유재학은 "난 어릴 때부터 연세대의 파란색 유니폼이 맘에 들었다능."이러면서 고교 졸업과 동시에 군 입대도 불사하며 연세대학교 입학을 고집한 끝에 갈 수 있었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겠지?! 그리고 연세대는 유재학의 입학과 함께 날개를 달았다. 이 때도 역시 유재학은 천재 가드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대학도 졸업할 때가 되자 실업팀으로 가게 되었는데, 당시 막 창단한 기아자동차로 진로가 결정되었다. 농구대잔치의 끝물까지 이어진 신생팀에 대한 특혜로, 기아자동차는 그해 한 대학교의 졸업생 전부와 다른 대학의 졸업생 2명을 우선지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선택은 중앙대의 졸업생 전부와 연세대 졸업생 중 유재학, 정덕화였다. 처음에는 아무래도 호흡이 맞지 않았지만, 당시 1급 선수들을 다 모았던 기아자동차가 농구대잔치의 주역이 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87-88 시즌 준우승을 시작으로, 1988-89 시즌에는 마침내 농구대잔치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즌의 MVP에 올랐다.

그런데 이 거칠것 없던 천재 가드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상이었다. 무릎을 다치면서 고생하기 시작한 것. 당시 스포츠 의학의 개념이 없던 대한민국에서는 일단 경기가 중요하다고 스테로이드 주사(일명 대포주사. 데포메드롤)를 맞춰서 임시로 뛰게 했다. 그리고 2차례 무릎 수술을 대한민국에서 받았는데,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무릎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일본에 건너가 다시 수술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한국에서 받았던 두 차례 수술은 한 마디로 엉뚱한 곳을 잘라낸 오진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다시 받은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유재학을 괴롭히던 무릎 통증도 멎게 된다. 하지만 이 때 유재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데, 일본 병원에서 짜준 재활 프로그램을 끝까지 이행하지 않고 조기에 종결시킨 것. 통증이 사라지자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조기 복귀하면서 아픈 무릎이 다시 탈이 나고 말았다. 여기에 당시 기아자동차의 연세대와 중앙대 출신 선수들 간의 갈등과 그로 인한 그의 평생의 스승인 방열 감독의 퇴진, 그리고 아픈 무릎 상태와 그의 빈 자리를 차지하던 후배 강모 씨의 존재는 결국 유재학의 조기 은퇴를 가져왔다. 결국 유재학은 28세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모교 연세대학교의 코치로 부임했다.

3. 감독 생활

스타플레이어로 명성이 높아서 그런지, 연세대학교는 유재학을 정식으로 교직원에 임명해 주며 신분을 보장해 줬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대우와는 상관없이 의외로 이 시절은 고달팠던 듯한데 천재 가드이자 스타선수에서 초보 코치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했기 때문. 그렇게 연세대에서 4년을 코치로 일하다가 연세대학교를 연고 학교로 하여 새로 창단되는 대우증권 팀의 코치로 들어갔다.

이미 연세대 코치 시절에 지도자로서 공부도 충실히 했고, 현역 시절 워낙 뛰어난 포인트가드였던 유재학은 곧바로 사실상의 감독 역할을 했다. 최종규 감독의 지원 아래 훈련 지도나 전술을 관장하기 시작한 것. 그렇게 2년을 또 다시 감독 수업을 받다가 마침내 1998-1999 시즌, 34세의 나이에 정식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모기업이 신세기통신으로, SK텔레콤(신세기와 합병)으로, 전자랜드로 바뀌는 와중에도 감독직을 계속 지켰다. 그런데 인천에서의 세월은 엄밀히 말하면 성공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다. 6강 PO에는 종종 들었지만, 4강 PO에는 든 것은 딱 한 번뿐이었고 꼴찌도 한 차례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인천 팀은 유재학이 떠난 후 더 막장으로 흐르면서 유재학이 명장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는 했다. 후술할 "유재학 다음은 유도훈"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

2004년 충격적인 뉴스가 나오는데, 당시 전자랜드와의 계약이 만료된 유재학을 울산 모비스가 2억 3천만원의 연봉을 주고 감독으로 영입했다는 것. 전자랜드 시절에 4강 이상의 경력이 거의 없었던 그가 일약 감독 최고 연봉자가 되자 오버페이라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재학은 이를 실력으로 잠재웠다. 박수교-최희암을 거치면서 막장이 되어 버렸던 모비스를 단숨에 재건한 것이다. 그리고 박수교-최희암은 유재학이 떠난 전자랜드를 차례로 맡으면서 맞트레이드? 전자랜드를 개그랜드로 만들었다.(...) 그리고 박종천 때 또 한 번 개그랜드를 찍은 후 2010년에 취임한 유도훈 감독이 다잡았다. 그래서 전자랜드 팬들은 유재학 다음 감독이 유도훈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첫 시즌은 쉬어간 후, 2005-06 시즌에 크리스 윌리엄스양동근을 앞세워 정규시즌 1위라는 이변을 연출했다. 5라운드까지는 삼성, 동부는 27승 18패, 모비스가 28승 17패로 전자랜드 빼고 역대급 평준화가 이루어진 시즌이었는데 6라운드에서 8승 1패를 하면서 삼성과 공동 1위 상황에서 삼성을 밀어내고 남은 6경기를 모두 이겼다. 참고로 모비스는 6연승 이전에 최다연승이 겨우 4였는데도 1위를 기록했었다. 비록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간발의 차로 4게임을 모두 지면서 시즌을 끝냈지만, 모비스의 변화는 모두가 주목했다.[7] 그리고 2006-07 시즌에 다시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고, 이번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패하지 않고, KTF와의 접전 끝에 4승 3패로 첫 통합 우승에 성공했다. 인정은 잘 안 해도 어쨌든 KBL 공식 기록 상으로 모비스의 10년만의 우승이었다.[8]

양동근의 군 입대와 외국인 선수 제도 변경으로 인한 크리스 윌리엄스의 이탈, 그리고 대체 외국인 선수 선발 실패로 2007-08 시즌에는 6강 PO에 들지 못하며 실패하는가 싶었지만,[9] 2008-09 시즌에 주목받지 못하던 김현중, 함지훈 같은 선수들을 조련하며 정규시즌 1위라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2005-06 시즌에 자신들의 발목을 잡았던 안준호 감독의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지며 정규시즌 1위팀이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오르지 못하는 흑역사가 되고 말았다.

절치부심한 유재학은 2009-10 시즌에 다시금 전력을 재정비하며, KT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정규시즌 1위를 지키고,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전주 KCC 이지스를 누르고 2번째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이 때의 우승으로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그러나 함지훈의 입대로 2010-11 시즌은 8위에 그쳤지만, 2011-12 시즌은 막판 11승 1패 를 하며 5위를 기록하였고 KCC를 3:0으로 박살내면서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록했다. 2012-13 시즌에는 서울 SK 나이츠에 가려서 그렇지 41승의 성적으로(막판 13연승) 정규시즌 준우승을 차지했고, 4강 플레이오프에서 전자랜드를 3대 0으로, 챔피언결정전에서 정규시즌 1위 SK의 드랍 존을 완벽하게 박살내면서 4:0의 전적을 기록하며 KBL 역사상 2번째로 전승우승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2013년 아시아 농구선수권 대회에서 만가지 수를 맘껏 펼치면서 국대를 4강까지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당초 입상에 비관적인 의견이 많았으나 경기마다 절묘한 작전과 엔트리 선수들을 전원 적절히 기용해 다른 나라들을 경악하게 만들며 승승장구. 4강에서 홈팀 필리핀에게 패했으나 3·4위전에서 대만을 꺾고 3위에 입상하며 대한민국을 16년만에 세계선수권 대회로 이끌었다.

2013-14 시즌에도 모비스의 상승세는 여전해서 정규시즌 17연승이란 대기록을 세웠고, 양동근과 김시래의 공백을 당시 무명이던 이대성이 잘 메우면서 괜찮은 성적을 기록하였지만, 시즌 마지막 LG전을 놓치면서 다시 2위가 되었다. 그러나 2013-14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LG를 상대로 4승 2패로 우승, 역대 2번째로 2년 연속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감독 개인 통산 4회 우승을 달성하며 최다 우승 감독이 되었다.

시즌 후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다시 맡았는데 2014 FIBA 농구 월드컵 스페인에서는 리투아니아 등 세계적인 강호에게 연달아 털렸다. "세계의 벽을 실감했다.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새로운 것을 느끼고 경험했다. 충격적일 정도"라고 인터뷰했다.## 본인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던 듯.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는 이란을 꺾고 남녀 동반 금메달을 차지하며 4년 전의 아쉬움을 씻어낼 수 있었다.

2014-15 시즌은 서울 SK 나이츠, 원주 동부 프로미와 마지막 접전 끝에 5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고, 시즌 종료 후 모비스와 5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플레이오프 4강에서 창원 LG 세이커스를 3승 2패로 눌렀고 결승에서는 원주 동부를 맞아 4경기를 연속으로 이기며 3연패의 업적을 쌓았다.

여담으로 대우, 빅스, 전자랜드 시절을 포함하여 플레이오프에서 유재학 감독을 이긴 팀은 100% 확률로 다음 라운드에서 탈락한다는 징크스가 있다.[10] 과연 2015-16 시즌 오리온스가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지... 여부가 관심이었는데 오리온은 챔프전에서 KCC를 4승 2패로 무난하게 발라버리며 징크스를 깨버렸다. 또한 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에서 패배시 100%확률로 탈락한다는 징크스도 있다. 2015-16 시즌 역시 오리온스에 3연패를 당하며 무려 10년만에 스윕패로 탈락

2016-17 시즌을 앞두고 진행된 드래프트에선 전년도 정규리그 2위, 승률 1위를 찍고도 변경된 제도[11] 덕에 로터리픽 추첨에 참여하여 무려 1픽을 뽑아버렸다! 역대급 대어인 이종현을 잡을 수 있게 된 것. 유재학 감독은 팀 우승, 국대감독 우승때보다 더욱 더 큰 제스처를 보이며 기쁨을 나타냈다.[12]

그리고 2016년 12월 17일[13] 부산 kt전을 승리하면서 단일팀 400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

2018년 3월3일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97대93으로 팀이 승리하면서 KBL 최초로 600승 감독이란 타이틀을 얻는데 성공한다. 1000승하려면 15년 더해야 한다. 그것도 14년간 모비스 한팀에서 450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였다. 통산 600승까지 연도별 기록과 구단별 상대전적

3.1. 감독 스타일

개인보다 팀을 중요시하는 팀 시스템의 철학을 가지고 있다. 팀 내 자체적인 규율도 엄격한 편이며 이를 어기는 선수는 국내선수고 외국선수고 구분없이 얄짤없게 처리한다. 대표적으로 로드 벤슨이 2014-15 시즌에 옵션 문제로 태업을 한다는 연락을 받자마자[14] 로드 벤슨을 바로 퇴출 시키고 대체 외국인 선수아이라 클라크를 영입했다. 이러한 팀의 분위기가 근 10년째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에 튀는 성향의 선수들이 처음에 입단하면 약간의 마찰도 있지만, 결국은 전부 적응한다. 훈련시간은 짧지만 고강도로 집중력 있게 진행하는 편이다. 팬들에게 욕을 많이 먹는 국내농구 특유의 산악훈련에 매우 비판적이다. 산을 뛰는 시간에 차라리 코트를 뛰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다양한 전략과 상황에 맞춰서 전략을 짜는 것 때문에 붙여진 별명은 만수(萬手), 즉 '만가지 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만수와는 절대 관련 없다. 그러고 보니 이만수는... 그만큼 전략이 다양하고, 모비스의 특유의 끈끈한 조직력을 만드는 데 유재학 감독의 역할은 크다. 김성근 : 야구는 감독이 한다유재학 : 농구도 감독이 한다[15]

또한 유재학 감독은 학연을 잘 안 본다. 의리? 그런 거 없다 상술된 학창 시절 때만 놓고 보더라도 용산중-용산고 라인이나 경복고-고려대 라인을 거부한 것부터 보면 벌써부터 학연과 관련된 얘기는 쑥 들어간다. 유 감독과 10년간 호흡을 맞췄던 임근배 코치는 경희대학교 출신으로 유재학과는 학연이나 일면식이 원래는 없었다.[16] 선수들도 마찬가지라서 특별히 명문대를 선호하는 편도 아니다. 드래프트에서 상명대, 조선대, 목포대와 같은 비주류 대학 선수들을 선택하는데에 거침없는 편.

유기적인 공격과 수비를 지향하다보니 선수들 한 두 명이 교체되거나 부상당하더라도 전력 누수가 없게 2진급 선수들의 기량 향상에도 상당히 비중을 두는 듯 하다. 비시즌에 패스나 드리블 훈련 시키는 것은 유명하고 스텝백 3점까지 연습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팀이 오랫동안 상위권에 머물다 보니 드래프트에서 하위픽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관계로, 강제로라도 선수들의 기량을 올려야 지향하는 농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인 듯 하다. 아무리 하위픽 선수들을 선발한다고 해도 명색이 프로인데 그런 기본기조차 갖추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인 게 국내 아마농구의 현실이라는 게 더 문제다.

다만 2016-17 시즌부터 부각되는 단점이라고 한다면 주전들의 체력관리이다. 팀 순위 측면으로만 보면 크게 문제가 없어보이지만, 이전부터 양동근의 출장시간이 어마어마해 김종근, 김수찬으로 비견되는 백업 가드진의 성장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여, 말그대로 개막장이 되어버릴뻔했다. 그나마 중위권 순위 싸움을 할 수 있었던 것도 함지훈과 찰스 로드, 마커스 블레이클리가 멱살을 잡고 끌어줬기에 망정이지 물론 이것은 동부, 전랜의 삽질이 훨씬 더 크긴 했다 이지원, 박구영, 김수찬의 가드진은 말그대로 처참함 그 자체였다.

이후 양동근과 이종현이 복귀하긴 했지만 양동근은 부상 후유증과 노쇠화로 인해 득점력의 기복과 대인 수비 약화 등의 단점이 생겨났으며, 아직 프로 경기 체력은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종현이 풀타임으로 내내 혹사당하는 와중에도 팀컬러를 해친다는 이유로 전반기에 팀을 먹여살려준 찰스 로드를 버린 결과 이종현은 스탯이 점차 까이게 되어 시즌 블록 기록도 데이비드 사이먼에게 1위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4강 PO에서도 안양 KGC에게 3연패로 스윕을 당해 최근 2년간 4강 PO 6연패라는, 평소 이미지에 걸맞지 않은 단기전 성적을 보여주고 말았다. 함지훈도 미칠듯한 혹사로 인해 스탯이 점점 까이고 있는걸 생각하면 팀 전력의 꾸준한 유지를 위해선 신인 육성과 기용을 충실히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근 몇 년간 KBL 전체에서 포워드 특히 3번 포지션에 대한 기근이 상당히 심해졌고, 모비스는 송창용천대현타팀으로 보내버렸기 때문에 군입대가 머지않은 전준범 외에는 대안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 이러다보니 양동근의 경기력 저하와 이종현, 이대성의 성장이 더딜 경우 암흑기까진 아니더라도 정체기를 겪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7-18시즌에는 그래도 양동근을 체력관리 해주는 모습 보이고있다. 달라지고있는게 그래도다행..올시즌도 그랬다면 상상하기싫다(...) 체력관리 할 수 있었던건 이적생덕분이지 없었으면.... 혹사는ing다...

15년차인데 성공한 외국인 선수를 다섯손가락(알버트 화이트, 크리스 윌리엄스, 브라이언 던스톤, 리카르도 라틀리프)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용병을 고르는 안목이 좋지 않다. 유재학의 용병선발 잔혹사 3연패를 달성했던 시즌에는 1인 출전 제도를 바탕으로 한번 잘 뽑은 외국인 선수를 계속 재계약하며 성적을 냈기에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2015-16 시즌부터 다시 2인 출전으로 제도가 바뀌고 국내선수 구성은 나쁘지 않은데 팀 성적은 정체되는 현상이 나타나자 모비스 팬들 사이에서 외국인 선수 고르는 안목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중이다.

4. 논란 및 비판

2014년 2월 16일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과의 경기 작전타임 도중 함지훈에게 한 언행이 논란이 되었다. 과격하게 말하면서 입에 테이프를 붙이라고 강요했는데 영상에서 보이다시피 한 선수의 인격을 완전히 짓밟은 쉴드가 불가능한 짓. 이는 중계화면으로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기사 선수 표정을 보면 진짜 이걸 해야하나 하고 붙이는 시늉만 하고 끝내려다가 감독의 욕설 섞인 명령에 고개 숙이고 대충 입에 테이프를 붙인다. 다른 선수들 표정도 다들 나빠졌다.

참고로 당사자인 함지훈은 “신경도 안 썼는데… 테이핑 논란이 더 황당해” 라고 인터뷰 하였고 유재학 감독도 ‘함지훈 테이프’ 인격모독 논란…유재학 감독 “내 잘못이다” 라고 사과 인터뷰를 하였다.

단, 이 일은 모비스 팬들이나 일부 농구 기자들에게는 그냥 별 일 아닌 걸로 치부되고 있는데, 함지훈과 유재학 감독의 평소 관계는 톰과 제리와 같다고(...) 관련 일화중 하나로 함지훈이 연습을 설렁설렁 하다가 화가 난 유재학 감독이 쌍욕과 함께 "그렇게 할려면 기어다녀라"라고 했는데 진짜 기어다니면서 훈련했다. 정작 함지훈은 그 연습이 끝나고 기자들에게 "기어다니니까 너무 편하던데요"라고 얘기해서 이걸 들은 유재학 감독이 뒷목을 잡았다고(...). 워낙 이런 에피소드가 하도 많아서 해당 팀 팬들은 이번에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해당 팬들은 그러려니 해도, 기자들이나 타 팀 팬들은 물론 현대인의 상식선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잘못임은 분명하다. 팟캐스트나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는 기자들의 발언만 들어도 이 사건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별 일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기자는 없다. 초등학생에게 비슷한 짓을 했어도 엄청난 비판을 들을텐데, 해당 선수는 한 가정의 가장에 자식까지 있는 30대의 성인 남성이다. 오히려 별 일 아니라고 묻고 지나가려는 팬이나 당사자들의 태도가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감이 있음을 숙지해야 할 것이다.

2015년 4월 2일. 유재학 감독과 본부 기록원석 사이에서 설전이 붙었고, 이 때 화가난 기록원이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경기장을 떠나버린 것. 유감독 말에 의하면 평소 경기에서는 통상 본부석 쪽에 상대방에게 골을 허용하고 나면 바로 작전 타임을 달라고 요청했고 본부석도 이를 받아들여 경기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요청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 도중 상대팀인 동부는 평소대로 미리 작전 타임을 요청한 장면을 봤고, 그래서 항의 했다고 한다. 이후 기록원은 금방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2015년 12월 5일. 부산 kt 소닉붐과의 경기 작전타임 도중에는 김수찬에게 꿀밤을 놓아서 논란이 되었다. 결국 KBL은 유재학 감독에게 벌금 300만원을 부과하였다. 월간 농구잡지 점프볼의 편집장인 손대범은 네이버라디오 파울아웃에서 이 일에 관해 "유재학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지만, 그 행동은 정말 품위 없었다."며 독하게 말하기도.

KBL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이 은퇴후 인터뷰에서 작심하고 유재학 감독을 비판했다.

5. 이야깃거리

5.1. 신인 드래프트에서

후배 사랑, 신인 육성, 기회 창출의 세 가지를 모두 실천하는 대인배이자, 신인 드래프트 취업의 아이콘

매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권을 거의 모두 써가며 선수를 뽑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보통 최대어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3, 4라운드에서는 아예 지명을 하지 않는 구단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후배들이 기회를 많이 얻으면 좋죠." 라는 이유로 끝까지 지명하며, 심지어 2017년 드래프트에서는 추가 지명까지 하여 사상 최초로 5라운드 지명이 벌어졌다. 이렇다보니 1순위 최대어로 뽑히는 선수가 아니여도 그의 품에서 스타로 성장한 선수들도 많다. 대표적인 예가 함지훈전준범, 이대성 등이다. 이러한 유재학의 후배 사랑과 선수 육성에 힘쓰는 모습은 타 구단 팬들도 인정하는 모습이다.

5.2. 모래반지 빵야빵야

2007-08 시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움짤인 일명 모래반지 빵야빵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다만, 이 움짤은 표명일 선수의 장면과 유재학 감독의 표정을 합성한 것이며, 실제로 표명일 선수가 유재학 감독에게 그렇게 말한 건 아니다.

그후 근 7년만에(...) 위에 버금갈 만한 움짤을 창조해냈다.

5.3. 전준범 데이의 피해자(?)

유재학 : 야 이 병X아!!

조동현 : 아 진짜 ㅆ~~!!

뭘 잘했다고!! 어휴 저걸 그냥... 뭐 이 ㅆ!

위의 짤방과는 대조되는 조동현 코치의 표정이 압권

방송영상으로 보기 캐스터의 탄식이 정말 인상깊다. A↗↗↗↗↗ㅏㅏㅏㅏ↘↘↘↘↘↘

2014년 12월 17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SK 나이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89:86으로 앞서 있던 모비스. 1초 남기고 골밑에서 헤인즈가 공을 잡고 2점슛을 쏘는 순간 모비스의 전준범이 쓸데없는 반칙을 하는 바람에 애런 헤인즈에게 슈팅 득점을 허용하면서 바스켓카운트까지 줘버렸다. 이 자유투까지 들어가면 동점이 되는 상황. 그냥 나눠도 1점차 리드로 승리 확정 되는데 2+1점을 주어서 동점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SK와 한창 선두권에서 순위 다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경기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했고, 4쿼터 내내 역전과 재역전이 반복되며 엎치락뒤치락하던 상황이라 한창 신경이 곤두서있던 차에 이런 병크가 터지자 열이 제대로 뻗친 유재학 감독은 전준범에게 "야 이 병X아!!"라고 소리쳤고, 이 화면이 그대로 SBS 스포츠 중계방송을 타버렸다. 하지만 누구도 유재학을 비난하지 않았다는 거 바로 위의 함지훈 테이프 사건부터 시작해서 농구팬이나 일반인한테 비호감적 이미지를 사 버렸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유재학 감독이 욕을 먹었겠지만 이날 전준범이 저지른 짓거리가 너무 황당해서 "얼마나 못했으면 저랬을까?"라면서 다들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애런 헤인즈가 그 와중에 자유투를 넣지 못하면서(...) 최종 스코어는 89:88, 모비스의 승리로 경기가 마무리 되었다. 해설 : 전준범 선수는 살았네요[17] 아까까지 주먹을 불끈 쥐고 있던 SK 문경은 감독은 경기 종료 후 되레 뻘쭘한 자세로 유재학 감독과 악수를 나누었고, 벤치로 들어오는 전준범에게 유재학 감독은 한 대 때리려는 기세로 달려들었다. 저 때 전준범은 유재학 감독에게 하트를 날리고 있었다고 한다.

2015년 2월 13일 KCC전에서도 전준범이 또 기행짓을 하려 하자 또 갈구는 모습(...) 제발 그냥 나와 은근히 케미가 상당하다

5.4. 기록원 퇴장 사건

2015년 4월 2일, 유재학 감독과 본부 기록원석 사이에서 설전이 붙었고, 이 때 화가난 기록원이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경기장을 떠나버린 것. 유감독 말에 의하면 평소 경기에서는 통상 본부석 쪽에 상대방에게 골을 허용하고 나면 바로 작전 타임을 달라고 요청했고 본부석도 이를 받아들여 경기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미리 요청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 도중 상대팀인 동부는 평소대로 미리 작전 타임을 요청한 장면을 봤고, 그래서 항의 했다고 한다. https://youtu.be/1VNviLINnX0 이후 기록원은 금방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멀리 간건 아니었어 [18]


  1. [1] 연세대 4학년때 첫 선발
  2. [2] 전임자였던 최희암 감독의 중도 사임으로 감독 대행직 수행.
  3. [3] 2018년 3월 3일.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달성하였다. 이 날 경복고 동창들이 잠실까지 현수막 들고 찾아와서 축하해 주었다.
  4. [4] 2004년부터 진행 중인 기록. KBL의 그렉 포포비치. 그 다음이 대전 현대/전주 KCC의 감독이었던 신선우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
  5. [5] 외모 때문인지 다람쥐로 불리기도 했다.
  6. [6] 지금의 상명초등학교
  7. [7] 참고로 이 4패는 KBL 챔피언결정전 사상 첫 스윕패.
  8. [8] 울산 모비스가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첫 우승팀인 기아 엔터프라이즈를 명목상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9. [9] 꼴찌 오리온스가 워낙 막장이었던 덕분인지 14승40패, 11연패를 2번이나 하고도 꼴찌를 하지 않았다!
  10. [10] 2011-12 시즌 정규리그 44승을 찍은 동부조차 모비스에 승리한 후 인삼공사에 패배하여 준우승했다.
  11. [11] 창원 LG 세이커스가 역대급 탱킹을 벌이는 바람에 챔피언결정전에 가지 못한 팀까지 모두 로터리픽 추첨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심지어 8개팀 동일 확률로! 모비스는 2015-16 시즌 4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로터리픽 추첨 참여자격이 주어진 것.
  12. [12] LG가 탱킹을 벌인 해는 2013년이고, 이때 드래프트 이후 관련제도가 개정되어 벌써 3번째 드래프트였는데 앞의 두 드래프트에 비해 이번 드래프트가 역대급 선수들이 한 번에 등장한 해여서 화제가 된 면이 있다. 이번 드래프트 빅3인 이종현-최준용-강상재는 다른 해에 나오면 그냥 1순위로 뽑힐만한 재목들인데다가 그중에서도 이종현은 대학시절에 국가대표로 뽑혀 병역면제 혜택까지 받아놓은지라 가히 2002년 김주성 드래프트에 비견할만한 인재로 꼽혔기 때문.
  13. [13] 일명 "전준범 데이"로 유명한 날이다. 전준범은 이 날 3점슛 4개를 적중시키며 승리를 견인했다.
  14. [14] 당시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
  15. [15] 헌데 혹사의 상징이자 김성근의 커리어를 본인이 스스로 날려버리게 된 원인인 살려조로 대표되는 선수 혹사 측면에서 2015-16 시즌부터 유재학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6. [16] 임근배 코치가 사임한 이유는 유재학 감독과의 불화로 갈라선 것은 아니고, 기러기 아빠였던 임근배 코치가 미국에 건너간 아내의 건강이 좋지 않자,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본인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자진 사임했다.
  17. [17] 실제로 저렇게 말했다.
  18. [18] 사실 이 사건이 중요한건 이 경기가 챔피언결정전 3차전이었다는 것. 한 시즌의 챔피언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가 예비 기록원도 없어 해프닝 하나로 5분쯤이나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KBL의 불통과 무능을 보여준 평일 오후 5시 경기 사태(2차전)와 더불어 2015 KBL 파이널을 안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게 만든 사건이 되었다. 자세한 건 KBL 챔피언결정전 항목의 이모저모와 2014~2015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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