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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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명단
2.1. 을사오적
2.2. 을사삼흉
3. 조약의 반대자
4. 뒷이야기
4.1. 이들이 없었다면?
5. 패러디
6. 관련 문서

1. 개요

줄여서 '오적(五賊)'이라고 부른다. 대한제국 말기, 일제의 한국 침략과정에서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할 당시 한국측 대신 가운데 조약에 찬성하여 서명한 다섯 친일파 매국노. 을사늑약은 이들을 통해 조선과 일본간에 공식적으로 처리되었고 국제사회가 일제의 조선 지배를 합법적으로 보게 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2. 명단

2.1. 을사오적[3]

이름

직위

사진

박제순
(朴齊純)

외부대신[4]

이지용
(李址鎔)

내부대신[5]

이근택
(李根澤)

군부대신[6]

이완용
(李完用)

학부대신[7]

권중현[8]
(權重顯)

농상공부대신[9]

매국노를 대표하는 집단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지녔다. 매국노 하면 을사오적, 을사오적 하면 매국노가 떠올려질 정도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많고 많은 매국노가 기록된 친일인명사전에서도 맨 첫 장을 장식한 인물들이다.

2.2. 을사삼흉[10]

이름

직위

사진

이재극
(李載克)

궁내부대신[11]

이하영
(李夏榮)

법부대신[12]

민영기
(閔泳綺)

탁지부대신[13]

추가로 을사3흉, 고종을 협박했던 궁내대신 이재극,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이토는 이를 찬성으로 취급했다. 이토의 추궁에도 무조건 반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찬성으로 취급한 것이다. 이후 조약 체결 이후에는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법부대신 이하영, 반대했지만[14] 경술국치 이후로 훈장작위(남작)를 받고 친일파로 살았던 탁지대신 민영기#도 모두 잊지 말자. 심지어 한규설은 연금된 뒤, 연금이 풀린 뒤 오적을 모두 해임시켰으나 자신이 해임되고 말았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이완용밖에 모른다. 이것만으로도 이완용이 얼마나 매국노 짓을 많이 했는지 알 수 있다. 이완용 혼자 을사오적의 대표격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 넷은 사실상 들러리 포지션이다. 그래서 일반인에게는 거의 잊혀졌다. 오히려 정미칠적에 포함된 송병준이 일진회로 인해 더 유명하다. 심지어 이완용을 제외한 을사오적이 얼마나 존재감이 없는가 하면, 송병준이용구를 을사오적의 일원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3. 조약의 반대자

이름

직위

사진

한규설
(韓圭卨)

참정대신[15]

이러한 상황에서 위에 을사오적이나 을사삼흉과는 다르게 끝까지 확실히 반대의 의견을 피력한 인물은 당신 참정대신 한규설이었다.

한규설은 을사조약 체결 시에 지속적으로 반대 의견을 피력하였고 체결 이후 외부적 압력으로 인해[16] 참정대신에서 해임되었다.

4. 뒷이야기

외무대신인만큼 박제순은 원래 "외교권은 안 된다"라고 하던 자인데, 당일에는 겁먹고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는 을사조약에 도장을 찍어줬다. (외무대신인 만큼 조약의 대표였다. 이 조약이 황제의 명의가 아닌 외무대신과 이토의 명의로 나온 것을 주목하자.)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바로 교섭(交涉)이니 찬성과 반대가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현재 외무대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외교권(外交權)이 넘어가는 것을 어찌 감히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합방 때 똑같은 짓을 한다. 반대하다가 결국에 끝에는 찬성, 그리고 경술국적 등극. 권중현도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황실의 존엄 및 안녕이 포함되면 상관 없다는 식의 말로 결국 찬성. 이지용의 경우에는 일본을 철석같이 믿던 자인데, 도박중독자가 돼서 죽을 때는 "일본에게 속았다"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다만 외교 한가지만 이웃 나라에 맡긴 것이고, 부강해지면 되찾을 수 있다" 면서 보호국이 되는 것을 실컷 우겼다니...

일각에서는 군부대신 이근택의 경우 고종의 충복이나 다름이 없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고종의 밀명으로 친일파에 든 것이 아니냐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근택은 훨씬 전에도 궁정 쿠데타도 기획한 전도 있다. # 사실 근왕파였던 것으로만 따지면 이완용도 측근이었다.

친애하는 동포 여러분

생명이 꺼져가는 마지막 소멸의 기점에서 역사의 증언을 남기고자 이 글을 남깁니다

역사란 흑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회색과 회색의 혼돈으로 저는 시대와 마주하여 그 시대를 극복하고자 부단히 애썼습니다

왕조를 섬기고 백성을 위함이 일국의 재상으로서 달성 도달해야할 최종 과업인 즉 본인은 그 숙명을 전력으로 짊어졌습니다

시대와 정세가 한국의 자존독립을 미몽으로 만들고 가느다란 빛 한줄기 마저 비춰주지 않을 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촌로로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하루에도 수백번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신민의 복리증진과 왕조의 존엄을 못본척하는 것이 어찌 일국 총리대신으로서의 올바른 처신이 되겠나이까

몸에 맞지 않은 옷이었으나 입어야했고 하기 싫은 일이었으나 했어야했습니다

그들의 영악한 주둥에 대가리를 들이밀고서라도 나라의 발전과 식산흥업, 공업의 발달, 정세의 안정을 꾀하고 문명 개화 통치의 길로 나아가게 함이 맞다고, 그리할 수밖에 없다고 이 외줄타기같은 국제열강의 무리앞에서 저는 황제의 윤허를 얻어 합방을 할 수 밖에 없었나이다

그 후 수십년 이 조선 땅에 철마가 달리고 서구의 이코노미라고 하는 경세제민의 부흥이 이 땅을 채우며 조선인을 더 똑똑하게 더 강하게 세계인으로서 설 수 있게 하였나이다

그러나 그 모든 문명개화를 뒤로하고 결국 나는 매국노요 망국의 재상으로 내 무덤에 침이 뱉어질 운명이나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사랑하는 조선 동포여, 이 매국노의 무덤에 침을 뱉고 조선의 앞길을 밝혀준다면 저승에서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추겠습니다

ㅡ 일한 금단의 역사 禁断の歴史 301p 이완용의 유언

4.1. 이들이 없었다면?

사실 이들에게도 변명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애초에 저 을사오적이라는 이들 가운데 뚜렷하게 찬성을 표현한 이는 없다. 그 이완용조차도 "저는 황제 폐하께 이러저러하게 말씀을 올렸습니다만 찬성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라고 했었고, 박제순은 어쨌든 절대 반대한다는 표현을 했으며, 그 외에도 대부분 "저는 조선의 대신인데 어찌 조선의 권리를 넘기는 일을 찬성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식으로 돌려서 어정쩡하게 표현했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그 말을 듣고 "음...그럼 찬성이라고 볼 수 있겠군요."식으로 찬성표로 만든 것이다.

이들이 만약 목숨을 걸고 똘똘 뭉쳐 결사반대했다면? 일본은 아마 이들을 모두 해고시키고 일본인을 앉혀서라도 을사조약을 체결해냈을 것이다. 즉, 이미 사실상 모든 요소를 일본에게 빼앗긴 채 무능해질 대로 무능해진 대한제국 정부, 그리고 비상시국에 적합한 군주가 아니었던 무르고 우유부단한 황제, 개혁의 기회를 잡지 못하게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던 지나친 유교 사상 삼박자의 잘못이 거듭된 끝에 저 을사오적이라는 거대한 상징적 인물들로 터진 것이므로, 을사오적이 멀쩡한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저들만 탓하는 것 역시 비논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대한제국의 대신으로서 결사반대해서 해고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논점은 저들이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저들만의 잘못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은 아니라는 것.

5. 패러디

6. 관련 문서


  1. [1] 을사오적 (위쪽 왼쪽부터) 이완용, 박제순, (아래쪽 왼쪽부터) 이지용, 권중현, 이근택
  2. [2] 을사삼흉 (왼쪽 위부터) 이하영, 이재극, 민영기
  3. [3] 을사년 5인의 적. 을사조약의 체결에 가담한 5명의 주요 친일파 인물들을 말한다.
  4. [4] 오늘날의 외교부장관.
  5. [5] 오늘날의 행정안전부장관.
  6. [6] 오늘날의 국방부장관.
  7. [7] 오늘날의 교육부장관.
  8. [8] 아이러니하게도 이 자의 조상이 권율이순신이다. 부모가 각각 권율과 이순신의 9대손이다.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두 조상의 유전자가 만나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9. [9] 오늘날의 농림수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
  10. [10] 을사년 세명의 흉악한 무리.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다.
  11. [11] 오늘날의 대통령비서실장
  12. [12] 오늘날의 법무부장관
  13. [13] 오늘날의 기획재정부장관
  14. [14] "나는 반대입니다." 이토 : 정말로 반대입니까? "그렇습니다."
  15. [15] 오늘날의 부총리국무총리 직무대행
  16. [16]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규설이 엄귀비의 처소를 방문하고 돌아가다가 졸도하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이를 이유로 해임되었다.
  17. [17] 터키 대통령과 찍은 사진으로 인해 아예 역적 취급을 당했다.
  18. [18] 주장으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과 골키퍼가 골문을 비우고 나와서 손흥민에게 빈집털이를 허용 한 것이 문제가 돼서 역적 취급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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