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이


Baby V.O.X

멤버

이전 멤버

김이지

이희진

심은진

간미연

윤은혜

차유미

정현전

정시운

이가이

이름

이가이

본명

이희정(李熙正)

출생

1968년 7월 19일 (52세)

신체

162cm, 41kg[1]

데뷔

세또래 1집 그대를 사랑해

경력

1988-1989년 그룹 세또래 멤버

1991년 여성 듀오 탐탐 멤버

1993년~1994년 솔로 가수 활동

1998년~1999년 베이비복스 2집 멤버

학력

홍릉초등학교

동대문여자중학교

안양예술고등학교

포지션

서브보컬

1. 소개
2. 데뷔와 세또래 시절 (1988~1989)
3. 여성 댄스 듀오 탐탐 시절 (1991)
4. 솔로 가수 이지수로 데뷔하다 (1993~1994)
5. 베이비복스 시절 (1998~1999)
6. 나이 탄로 사건 및 베이비복스 탈퇴, 그리고 잠적
7. 평가
7.1. 반론
8. 앨범
8.1. 세또래 1집 (1988)
8.2. 세또래 2집 (1989)
8.3. 탐탐 1집 (1991)
8.4. 이지수 1집 (1993)
8.5. 이지수 2집 (1994)
8.6. 베이비복스 2집 (1998)

1. 소개

대한민국의 전직 가수이자 1세대 아이돌 중 최상위권 걸그룹이였던 베이비복스의 전 멤버. 당시에는 1978년생으로 활동했다.

본명은 이희정이며 정체는 1980년대의 한국 가요계의 시조격 걸그룹인 세또래의 멤버 이희정이랑 동일인물이다. 원래는 1968년생이며 데뷔만 무려 4번 한 연예계의 고무줄 나이를 비판할 때 제일 먼저 처음으로 언급되는 인물.

2. 데뷔와 세또래 시절 (1988~1989)

1988년 일본의 걸그룹 소녀대를 벤치마케팅하여 당시에는 없었던 최초의 현대식 아이돌형 걸그룹인 세또래의 멤버로 데뷔했다.

하지만 당시 가요시장이 걸그룹이 활동하기 어려웠던 시기였던지라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남학생들의 인기는 얻었지만 여자들에게는 큰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다.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김완선이 밝힌 바로 당시 세또래가 소방차와 합동 무대 이후 세또래의 안티들에 의해 밴이 전파되는 사고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김완선도 비슷한 사건을 겪었다. 이후 1989년 2집 요리조리 이리저리를 발매했다.

방송 출연도 꽤나 많이 했었고 회사의 푸시 역시 나쁘지 않았으나,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이들의 등장은 꽤나 강렬해서 아직까지도 40대 이상 세대들은 세또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결국 2집 활동을 끝으로 멤버 김정임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그룹이 자연스럽게 해체가 되었다.

3. 여성 댄스 듀오 탐탐 시절 (1991)

세또래 해체 후 1991년, 같은 세또래 멤버였던 우윤아와 함께 시티뮤직으로 소속사를 옮기고 그 전과는 다른 성숙하고 여성스러운 컨셉을 내세워 이희정과 우윤아[2]는 이지수, 강현지로 예명을 바꾸고 여성 댄스 듀오 탐탐으로 활동했으나 역시 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우윤아가 팀을 탈퇴함으로서 탐탐 역시 해체되었다.

앨범 링크

4. 솔로 가수 이지수로 데뷔하다 (1993~1994)

이희정의 재능을 아까워했던 언더그라운드 제작자 윤등룡이 자신의 소속사 등룡기획[3]으로 캐스팅 해서 탐탐 시절 사용했던 이지수라는 예명 그대로 1993년 1집 앨범 '날 잊었을 그대에게'를 발매했다.링크 뮤직비디오 참고로, 수록곡 중에 강수지가 작사한 곡이 있다. 1994년 2집 '너를 보내며...'를 발매했지만 솔로 데뷔 역시 인기를 끌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영상링크

여담으로 솔로 가수 이지수로 활동할 당시에는 나이를 1969년 2월 20일생으로 속였었다. 1993년 솔로 데뷔 당시, 토토즐에 출연해 공개된 주민등록증 사진이 그 증거이다. 당시 미스 토토라는 코너에서 20여 명의 여성 연예인이 등장했고 그 중 하나가 이가이였다. 이 당시에는 여자가수들이 1살에서 2살 정도 낮춰서 프로필을 기재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이가이의 경우는 실제 나이인 1968년에서 한살을 줄인 것을 의식, 빠른 년생으로 바꾸는 치밀함을 보였다. 다만 이 당시의 인지도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조용히 묻혔다.

5. 베이비복스 시절 (1998~1999)

1997년 베이비복스 1기 멤버로 합류해 데뷔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무산되어 빈자리에 김이지가 합류하게 된다.

1997년 말 베이비복스의 1집 실패로 먼저 탈퇴했던 차유미의 자리에 간미연이 합류한 후 정시운과 정현전마저 탈퇴해버리고 빈자리에 이가이라는 예명으로 심은진과 함께 새 멤버로 합류하였다.[4] 당시 윤등룡 대표는 2집 앨범을 걸밴드 컨셉으로 구상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보컬과 키보드를 맡을 멤버가 필요했는데, 이미 가수 활동 경력도 있는 이가이는 이에 걸맞은 정말 적합한 멤버였다.[5] 당시 솔로앨범까지 냈었고 작곡도 할 줄 알았던 멤버였고, 음색도 괜찮았다.

하지만 합류 당시 그녀의 나이는 무려 31살(...)이었으며 10살을 줄인(!) 1978년생(21살)으로 활동하게 된다. 뼈를 깎는 연습[6] 끝에 드디어 이가이는 1998년 베이비복스 2집으로 화려하게 데뷔하는 데 성공했다. 다른 멤버들과 다름 없이 예쁜 외모였지만, 올드한 분위기 때문에 활동 초반 <야야야> 뮤직비디오 촬영 당시부터 색안경을 쓰고, 방송에서 조차도 색안경을 쓰고 무대에 서는 모습이 많았다. 하지만 색안경을 써도 나이 들어보이는 얼굴은 가릴 수가 없었다는 게 당시 대중들의 반응이었다.

<야야야> 활동 후반쯤 부터 색안경을 조금씩 벗기 시작하더니, 후속곡 <Change> 활동부터는 색안경이 아닌 비니를 쓰고 활동을 시작했는데 문제는 이 때부터였다. <야야야> 때에 비해 급격히 격렬해진 안무를 겨우겨우 따라가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보여 그녀의 부족한 춤 실력과 나이에 대한 의심이 점점 도마 위로 올라오게 된 것. <야야야> 활동 시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안무를 잘 따라갔으나, <Change> 첫 방송부터 안무를 완전히 잊어버려 무대를 망쳐버릴 뻔한 것이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지는 춤 실력과 남발되는 안무 실수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다. 그 후의 <Change> 무대들을 보면 안무를 안 틀린 무대를 찾는 게 힘들 정도로 계속해서 실수를 해 그녀에 대한 팬들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그렇게 말도 많았던 베이비복스 2집 활동이 마무리 되어 갔다.

다만 이에 대한 반박은 있는데, 오히려 저 <야야야> 때 썼던 색안경하고 비니 때문에 더 내츄럴하고 이질감이 없었다는 주장이다. <Change> 활동 때에 안경 벗고 비니까지 벗었던 버전이 존재하는데 춤이야 그렇다 쳐도, 비니까지 벗어보이니 나름 괜찮았다고 한다.[7] 사실 다른 멤버들은 완전 맨얼굴인데, 혼자 비니를 썼으니 더 눈에 띄었을 수 밖에...

이 때 팬들에게는 별명이 이모였다고 한다.

6. 나이 탄로 사건 및 베이비복스 탈퇴, 그리고 잠적

2집 활동이 끝난 후 1999년 1월, 그녀의 실제 나이가 결국 탄로났다.

그녀의 등장 시점부터 의심하고 있던 한 팬이 세또래 멤버 이희정과 생일, 학력, 생김새 등을 대조해 여러가지가 일치한다는 점에서 실제 나이를 속이고 연예 활동을 하고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모 방송에서 자신보다 11살이나 어린 79년생인 축구선수 이동국에게 오빠라고 부르며 애교부리는 모습까지 포착됐고, PC통신에 이가이가 나이를 속이고 활동한다는 장문의 게시글까지 올라오면서, 그녀의 정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결국 PC통신으로 시작해 신문 보도로 나오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문제의 방송. 1분 45초부터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DR뮤직은 결국 PC통신 팬클럽에 사과문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열어공식 입장을 밝힌다. "이가이는 1988년 데뷔한 세또래 멤버였던 이희정이 맞으며, 실제 출생년도인 1968년생에서 10살을 낮춘 1978년생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한다. 솔직히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처럼 활동했다는게 더 흠좀무하다 소속사는 맏언니로서 팀을 이끌 리더 역할을 할 멤버가 필요했고, 아버지의 병간호로 인한 병원비를 벌기 위해 활동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이가이는 눈물의 기자회견을 끝으로 베이비복스에서 탈퇴했다.[8] 다만 힘든 트레이닝 시절부터 어린 멤버들이 믿고 따르던 멤버가 맏언니 이가이라고 밝힌 적이 있어서 이가이를 그리워하는 팬들도 있다. 2집 활동 당시엔 아버지 병간호와 본인의 통원치료 때문에[9] 그 후 연예계에서 종적을 완전히 감춘 뒤 20년이나 지난 현 시점에서 그녀의 근황은 어디를 찾아봐도 알 수 없다.

2년 후인 2001년에 박준형의 사례로 이와 같은 일이 한번 더 발생했으나 박준형의 경우 되려 god의 팬들이 박준형을 감싸안았다. 게다가 나머지 멤버들인 데니안, 손호영, 윤계상, 김태우는 박준형의 방출이 확정되자 숙소에서 짐보따리를 싸서 야반도주해버렸고 박준형의 방출을 취소해서야 비로소 이들 넷이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god 활동을 했을 정도였다. god 자체가 팬덤과 멤버들 간에 의리가 어마어마했다. 박준형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결말인데 이가이와 박준형의 실제 나이도 고작 1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또 더 먼 훗날에는 가희까지 등장했는데, 이 때 애프터스쿨 팬덤에서는 아예 거론 조차 안했으며 셋 모두 30살에 아이돌 활동을 한 것이다. 반대로 10년 뒤에는 민티라는 래퍼한테 비슷한 케이스가 터졌는데, 이때는 욕을 좀 먹었다. 20대 후반의 나이에 고등래퍼에 지원하다 걸렸기 때문.[10]

사실 이건 나이가 당사자의 이미지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어느정도냐에 따라 갈리는 문제다. 만약 박준형이 10대 아이돌 그룹에 데뷔하여 막 어린척, 귀여운척 하며 "누나~" 하며 애교를 부렸는데 알고보니 30살이었다면 멘붕에 빠졌을 수 있으나, 당시 god 자체가 그다지 어린 나이의 아이돌이 아니었고 좀 성숙하고 파워풀한 이미지였던 데다가 박준형 역시 꽤나 터프한 이미지였고 그 독특한 이미지로 팬들에게 어필하다보니 나이를 속였단 게 밝혀져도 팬들이 딱히 문제삼지 않았다. 가희 역시 독특한 캐릭터와 강한 맏언니 이미지로 팬덤을 만들었기에 나이에 그다지 관심이 없고 오히려 나이 많아도 당당한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팬들도 많았다. 오히려 성숙미와 리더십과 파워풀한 춤실력으로 팬덤 내에서는 찬사를 받았었다.

애프터스쿨의 경우도 컨셉 자체가 청순 따위 완전히 배제해버리고 오로지 섹시 하나에만 몰빵했기 때문에 가희의 나이가 많든지 말든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유이, 나나 등 키 170cm를 넘어가는 멤버들이 과반수일 정도로 엄청난 장신돌이기까지 했다. 특히 극단적으로 각선미를 강조한 덕분에 유이는 꿀벅지로 유명해졌다. 적어도 애프터스쿨은 자신들의 방향성을 제대로 잡았고 그렇게 히트를 쳐서 팬들의 허를 찔러서 또 대박이 난 건 넘어가자. 명실공히 네임드 걸그룹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베이비복스 자체는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를 어필하는 그룹이었다. 멤버들이 다 어리고 멤버 소개영상만 봐도 어린 나이니까 소화가능한 귀여움과 애교를 적극 내세우며 팬들에게 어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이가이도 양갈래머리 등 소녀이미지를 한껏 강조했었는데, 당시 이가이가 다른 멤버들에 비해 그다지 두드러지거나 인기있는 멤버가 아니었고, 오히려 춤을 자주 틀리며 전체적인 안무를 망치는 등의 행위로 다른 멤버 팬들에게 따갑게 눈총을 받고 있던 상태에서 나이를 속인게 들통난 것이니 다른 멤버 팬들에게 집단 다굴당한 면이 있다.

이게 되게 뭐한 느낌인게 2015년으로 따지자면 DSP미디어에서 무려 이효리카라의 멤버로 발탁한 것 같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린아레드벨벳의 멤버로 발탁하는 같은 극심한 이질감이다. 참고로 이것은 아주 적절한 비교인게 이효리(1979년생)는 카라의 최연소자인 강지영(빠른 1994년생)이랑 빠른 15년 차이, 린아(1984년생)과 레드벨벳의 최연소자인 예리(1999년생) 역시 15년 차이인데 이가이(1968년생)와 그녀가 나간 바로 후에 들어온 베이비복스의 최연소자 윤은혜(1984년생)의 나이차가 그것을 능가하는 16년이다. 즉, 박준형은 '옥의 티'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가이는 '설상가상' 느낌이었던 지라 더 까였던 면이 있다. 마치 평소 호감을 가진 상대가 실수하면 봐줄 수 있지만, 평소 벼르고 있던 상대가 실수하면 '너 잘 걸렸다'라는 식으로 작정하고 까는 그런 상황과 흡사한 면이 있었다. 박준형은 자체 팬덤도 탄탄했기에 적극 쉴드쳤으나, 이가이는 팬덤 자체가 없다보니 쉴드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결국 다 돈벌자고 하는 짓인데 만약 팬덤이 탈퇴반대를 적극 청원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면 여전히 상품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잠시 자숙시킨 뒤에 컴백시킬 수도 있었으나, 그다지 팬덤도 없고 비판여론만 있다보니[11] 컴백시키거나 계속 데리고 있어야할 이유도 없었다. 만약 이가이가 자체 팬덤도 탄탄하고 인기가 많았다면 아마 어떤 식으로든 컴백시켰을 것이다.

이후 이가이의 빈자리를 대신해 윤은혜가 합류했고 윤은혜가 리드 싱어 자리를 잘 소화하면서 결국 이가이는 2집 이후에 완전히 묻혀버렸다. 시대를 잘못 만난 보컬리스트였는데 원조 베이비복스를 아는 사람들은 이 당시 원년 멤버도 윤은혜 못지 않게 출중한 실력을 가졌다고 회상하곤 한다.

그 뒤 베이비복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줄줄이 히트곡을 내고 승승장구하면서, 결국 이 사건은 베이비복스 팬들에게 조차 거의 잊혀진 사실로 남게 되었다.

7. 평가

연예계의 고무줄 나이를 비판할 때 제일 첫머리로 언급되는 인물이지만, 한편으론 초창기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라고도 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은 막 아이돌 가수들이 태동하던 시기여서 팬층의 연령대가 어린 10대다 보니까 아이돌들도 그와 비슷한 연령대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그런 풍토 속에서 가요계에서 이미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이렇다할 실적이 없었던 이가이는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자의든 타의든 나이를 속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전에 비록 폭망의 연속이긴 했으나 꽤 오랫동안 가수 활동을 했던 경력들이 들통 나고 그녀의 실제 나이가 까발려지면서 쓸쓸하게 가요계에서 방출된 비운의 여가수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라고 하기엔 아이돌 자체가 10대랑 비슷한 또래로서 10대의 문화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는 포지션이므로 굳이 30대의 나이에 10대 후반~20대 초반이 모인 아이돌 그룹에 나이를 속이면서까지 들어간 것 자체가 잘못 됐다고 볼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가수의 한 분야일 뿐 아이돌 그룹이 전부는 아니므로 30대라고 해서 가수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30대에 나이를 속이고 어린 친구들에게 꼽사리 껴야만 했는지는 지금도 미스테리.

특히 아이돌은 어린 나이를 무기로 하는 가수들인데 서너살 정도 속인 것도 아니고 무려 30대가 어린 친구들 곁에서 어린 척을 하고 다녔다는게 도덕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흠좀무한 사안이기에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외모적으로는 놀랍지 않았는데 이가이는 본나이보다도 나이 들어 보인다는 반응이 많아서 당시에도 용감한 이모라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30대에 접어든 아이돌 중 여전히 여신급의 외모를 자랑하여 20대 아이돌에게 꿀리지 않는 경우를 고려해보면, 이가이는 당시 31살이라 잘만 꾸미면 묻어갈 수도 있었는데 마치 낭중지추(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유난히 눈에 띄었다(...).

충격과 공포의 1998년 이가이 영상이다.(맨 왼쪽) 도덕적 논란을 떠나서 30대의 나이에 어린 친구들 틈에 껴서 귀여운 몸짓과 말투를 한다는게 흠좀무하다는 반응이 많다. 유튜브 영상 댓글 중 압권은 "그냥 서 있는것만 봐도 나이든 몸짓이 보이네".

7.1. 반론

이 것은 아이돌문화가 극심하던 2000년대까지의 얘기고, 2000년대 중반 이후 브라운아이드걸스, 애프터스쿨처럼 평균 연령이 높거나, 나이 많은 멤버가 속한 그룹들도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고, 2010년대 후반에는 아예 평균 나이가 30대인 언니쓰 같은 프로젝트 그룹도 나오게 되면서, 당시 아이돌 문화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게 기정사실화 되었다. 하이텔에서 이가이의 신상이 올라가자마자, 나우누리에 있었던 베이비복스 안티들은 베이비복스를 엄청나게 극딜했다고 한다.

베이비복스는 데뷔 때 난해한 컨셉 때문에 워낙에나 팬 보다 안티가 많았었고, 2집 활동으로 이미지를 개선한 후, 3집부터는 밴드로 구성해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었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AOA의 데뷔 초 컨셉과 원더걸스 최근 컨셉인 그 한스밴드 같은 걸밴드 컨셉이다. 굳이 2집 때만 그런 건 아니고, 활동 내내 베이비복스는 안티가 많았다. 그 증거로 7~8년 뒤에 윤은혜가 X맨에 나와서, 소녀장사 이미지를 굳혀 X맨에 거의 고정출연하고 김종국과 러브라인도 가지게 되면서 이미지 개선을 해나갔던 것을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였다. 이가이가 탈퇴하고, 대신 들어온 윤은혜는 베이비복스의 평균 연령대보다 어렸는데, 이 문제 제기로 인해, 밴드 컨셉은 아예 갈아 엎어버렸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베이비복스가 그 이후로 전화위복이 된 건 함정

그 당시 2집 컨셉이 워낙 이가이에게 안 어울렸기 때문에, 문제였던 거지, 폭삭 늙어보이던 외모 때문에 믿기지는 않겠으나, 세또래 당시에는 꽤 어려보였던 멤버였다. 근데 우윤아가 미친 외모를 자랑해서 또 묻혀버렸지 당시의 이가이는 그저 춤 실력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부족했을 뿐이였다. 아무래도 멤버들이 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한들, 방송경력이 긴 멤버가 없었는데, 피아노 연주 실력이 가장 출중했다고 한다.

사실 이가이는 베이비복스로 애초부터 낙점되어 있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빠졌기 때문이지, 단순히 나이 속이고, 걸그룹에 합류하려고 했다던 소속사의 언플은 윤등룡이 이가이의 솔로 앨범을 두 장이나 발매한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개소리고, 이 당시 멤버들이 너무나 어렸었기 때문으로 설명할 수가 있다.[12] 1집에서 리더 역할을 했던 멤버가 정현전이였는데, 1집이 끝나고 탈퇴를 하는 바람에, 소속사의 공식 입장에서는 중심을 잡아줄 리더 역할을 할 멤버가 필요했었다고 한다.[13]

이런 역할과 유사했던 인물이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god 박준형이다. 그는 이가이와 1살차이 나는 69년생이다. 그리고 박준형도 초창기에는 나이를 74년생으로 속이고 활동했었다. 그러다 실제 나이가 밝혀진 것도 비슷하다. 그룹 데뷔 전 개인활동도 어느정도 했었다. 다만 당시 god의 컨셉은 수더분한 동네청년 같은 친숙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활동했고 IMF 직후의 어려운 사회 분위기와 맞는 멤버들과 같이 동고동락하며 쌓은 고생담을 이야기하면서 그룹 전체의 긍정적 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거기에 한국어가 미숙한 재미교포 출신의 춤꾼이라는 점도 당시에는 해외 출신에 대한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지금보다 더 있었기에 대중에게 나이를 속이며 활동한 부분을 기만으로 보는 것보다는 한국 연예계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일로서 참작될 여지 있다고 받아들여졌다. 또한 god의 육아일기라는 육아예능을 통해 팀의 맏형으로서 리더쉽과 정신적 지주라는 점을 노출하면서 박준형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희석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를 볼 때 기획사의 잘못된 기획력을 바탕으로 나온 컨셉으로 자신의 단점은 부각되었고 멤버교체와 컨셉의 변화로 탄탄하지 않았던 당시의 팬덤과 인기에 대중을 속였다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개인적 역량을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한 점이 상당히 아쉽게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가이가 이지수로 활동할 시절에 냈던 솔로 앨범인 이지수 1집, 2집을 제작한 사람이 탐탐의 당시 매니저였던 윤등룡이였다. 다시 말해, DR뮤직 초창기에 데뷔했었던 이지수[14]가 바로 이가이였던 셈. 따라서, 애초부터 "나이 속이고 소속사를 들어왔으며, 멤버들도 이가이 나이를 전혀 몰랐다."는 식의 팬들의 주장은 개소리다. 최소 5년 이상 함께 해왔던 사람이 이가이의 나이를 모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 78년생이 93년에 데뷔한 거면, 만 15세에 데뷔했다는 소리가 되잖아 물론 만 14세에 데뷔한 아이돌만 13세에 데뷔한 아이돌도 실제로 존재한다

게다가 그 당시 베이비복스 1집 앨범 EQUALIZEHER의 실패로, 소속사의 자금난 등등으로 정산 자체가 안 되었었다. 2집은 자칫하면 베이비복스의 마지막 앨범이 될 수 있었을 정도로 멤버들의 식비는 꼴랑 1주일에 10,000원이였을 정도로 최악의 활동 사정이였다.[15]

문제는 과거활동 전력이였다. 세또래는 그나마 어렸을 때니까 가능하다만, 그렇게 출중한 춤 실력을 자랑하지는 않았었으며, 건강 문제로 활동을 장기간 쉬었던 적이 있던 이가이로선, 베이비복스의 칼군무 등을 소화할 능력이 부족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2집 타이틀곡 <야야야>나 후속곡 <Change> 때 불거진 안무 부족 어찌 보면 이가이에게는 당연히 치명타를 가져왔을 터. 그런데 상기에도 언급됐듯이, 세또래 시절에 백덤블링도 했던 사람이 안무가 부족하다는 건 아마도 나이를 먹어서 기량 하락이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거기다가 탐탐 해체 뒤에는 계속 발라드만 했었으니...

이후, 베이비복스는 잘 나가긴 했으나, 여전히 안티 세력들에게 두들겨 맞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았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사건 중 하나인 디바DJ DOC의 멤버 이하늘간미연을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에게 폭언을 했던 사건들을 생각해본다면, 차라리 팀의 객원 멤버로 남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최근 근황으로는 부산에서 바를 운영하는 중인데,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고 한다.

8. 앨범

8.1. 세또래 1집 (1988)

세또래 1집

1988. 06. / 한국음반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그대를 사랑해

03:06

이건우

김정택

김정택

2

우린 아직 어린가요

03:28

이건우

김정택

김정택

3

어떻게 잊을까

03:09

이건우

김정택

김정택

4

난 잊을 수 있어 (Over And Over)[16]

03:20

한여임

Poul Chaman[17]

김정택

5

그대 여기에 (경음악)

03:04

-

김정택

김정택

6

그대 여기에

03:39

이수연

김정택

김정택

7

그대의 전화

03:28

임은희

김정택

김정택

8

행복해[18]

03:30

조영남

Mitchell Green and Catlin

김정택

9

숙녀처럼[19]

03:19

이건우

B.SteinBerg

김정택

10

건전가요 (너와 내가)

02:00

-

-

-

타이틀곡 '그대를 사랑해'는 전형적인 틴팝 장르의 곡으로 세또래의 데뷔곡.

이 앨범에는 총 3곡의 팝송 커버가 수록되어 있는데, 훗날 원더걸스의 'Tell Me'로 UCC 열풍을 이어갈 수 있게 해 준 원곡 'Two of Hearts'를 커버한 '행복해', 마돈나를 스타덤에 오르게 해 준 'Like A Virgin' 커버곡 '숙녀처럼', 그리고 '난 잊을 수 있어'.

동료가수였던 높은음자리의 여성보컬 임은희가 '그대의 전화'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프로듀서는 오병화, 편곡 및 음악 프로듀서는 김정택.

8.2. 세또래 2집 (1989)

SAETORAE 2

1989. 03. / 한국음반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요리 저리 이리 저리

02:20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2

시간이 흐르면

03:27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3

충격이었어

03:52

송재준

송재준

송재준

4

그대 나의 곁으로

03:55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5

생일 축하합니다

03:49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6

이 밤 가득히

03:16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7

어느 날 우연히

02:50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8

떠나는 거리에서

04:09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9

사랑하는 세상

02:52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10

사랑해요

02:59

이정각

김정택

김정택

1집에서 커버곡이 3곡 들어간 것에 비해, 2집에서는 모든 곡을 창작곡으로 채웠다. 타이틀곡은 '그대를 사랑해'를 만든 김정택이 작곡하였고, '그대를 사랑해'보다 짧은 활동을 하고 들어갔다. 이 앨범의 특징은, 훗날 작곡가이자 가수로 활약했던 송재준과 안진우의 초창기 작품이 들어있는 것인데 두 사람의 이후 음악적인 세계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어 중요한 앨범이다.

8.3. 탐탐 1집 (1991)

For A Wonderful Time With TAM TAM

1991. 04. / 시티뮤직, 도레미레코드사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얘기하지 그랬어

03:54

김창남

김창남

유영선

2

내가 선택한 고독

03:41

이건우

김창남

유영선

3

추워

03:36

김창남

김창남

유영선

4

하지만

03:21

이지연

김창남

유영선

5

얘기하지 그랬어 (반주용)

03:54

-

김창남

유영선

6

난 참 바보야

03:40

이건우

김창남

유영선

7

나의 사랑이야기

03:45

지평권

지평권

유영선

8

그렇게 그렇게

03:11

김창남

허건웅

유영선

9

숙녀

03:30

이건우

김창남

유영선

10

울지 마 바보야

03:05

김창남

김창남

유영선

김정임이 이민을 가는 바람에 세또래의 남은 두 멤버가 소속사를 옮기고 발매한 앨범. 탐탐이라는 팀 이름과 멤버들의 다른 이름에도 세또래 팬들은 대부분 탐탐의 멤버가 세또래 멤버임을 알았다고 한다. 도시아이들 멤버이자 작곡가와 키보디스트로 활약했던 故 김창남의 소속사 시티뮤직에서 발매한 만큼 김창남의 프로듀싱이 빛나는 앨범이다. 숙녀 컨셉, 인도 여인 컨셉 등등 다양한 컨셉을 무대에서 소화했으나 별 재미를 못 봤다. 편곡은 유영선이 모두 도맡아했으며, 이지연 3집 수록곡 '하지만'의 리바이벌 곡과 드라마와 영화 음악감독으로 훗날 유명해지는, '창가의 이별'의 신인가수 지평권이 준 곡도 있다.

앨범 커버와는 별개로, 속지의 컨셉 사진으로 홍보를 했으면 탐탐이 더 떴을 지 모를 만큼 소속사의 홍보가 아쉽다.

8.4. 이지수 1집 (1993)

날 잊었을 그대에게

1993. 03. / DR뮤직, 아세아레코드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날 잊었을 그대에게

03:38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2

날 기억해 줘

04:14

함경문

정성헌

정성헌

3

다시 만날꺼야[20]

03:36

함경문

정성헌

김효국

4

처음 본 그대 눈물

04:07

강은경

이희정

김효국

5

말해 줄 꺼야[21]

03:55

정성헌

정성헌

정성헌

6

너를 사랑해

04:17

김효국

김효국

김효국

7

그대는 두려워하지만

03:53

강은경

이희정

김효국

8

마음의 선물

03:50

함경문

정성헌

김효국

탐탐의 실패 이후 이지수는 당시 빛과 소금, 김태욱 등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를 매니지먼트하고 있던 윤등룡에게 픽업되어, DR뮤직[22]에서 솔로 앨범을 2장 발매하게 되었다. 세또래에서의 인연으로 솔로앨범의 타이틀곡을 안진우가 맡아주었으며, 그룹 11월의 키보디스트 김효국과 솔로가수/작곡가로 여러 가수들에게 인정받고 있던 정성헌과 그의 파트너인 작사가 함경문, 그리고 나중에 유명 히트곡 작사가로 유명해지는 작사가 강은경이 곡에 참여하였다.

이지수는 여기서 두 곡의 자작곡을 선보이며 싱어송라이터의 기질을 뽐내는데,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특기였던 피아노와 작곡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이희정'이라는 본명으로 앨범에 수록하였다.

8.5. 이지수 2집 (1994)

[23]

너를 보내며...

1994. / DR뮤직, 아세아레코드

트랙

제목

작사

작곡

편곡

1

너를 보내며

04:26

강수지

박청귀

박청귀

2

이제는 지울래

-

장대성

이희정

박청귀

3

나는 못 속여

-

장대성

이희정

박청귀

4

너를 보내며 (연주곡)

04:26

-

박청귀

박청귀

5

너를 사랑해

04:17

김효국

김효국

김효국

6

날 잊었을 그대에게

03:38

안진우

안진우

안진우

7

날 기억해 줘

04:14

함경문

정성헌

정성헌

8

다시 만날 거야

03:36

함경문

정성헌

김효국

타이틀곡은 '너를 보내며'였고 동료가수 강수지가 오랜 인연으로 작사가로 참여하였다. 강수지는 친한 동료 연예인이 아니면 가사를 잘 안 주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었다.[24] 이 앨범에도 역시 이지수의 자작곡 2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훗날 유명 아이돌들의 노래에 예쁜 가사로 인기를 얻은 작사가 장대성의 2작품도 주목할 만 하다. 신곡 모두를 기타리스트 박청귀(아라이)가 편곡하였다. 뒷면의 4곡은 모두 1집에서 발표했던 곡들이었다. 타이틀곡으로는 댄스팀 마이미를 결성해서 짧은 활동을 했다.

8.6. 베이비복스 2집 (1998)

  자세한 내용은 BABY VOX II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1] 베이비복스 활동 당시 프로필 사이즈이며, 세또래 활동 당시 프로필에는 멤버 전원이 159cm의 같은 키라고 소개 되었었다. 연예인들의 신체 사이즈 조작은 지금도 흔히 있는 일이고, 실제 키는 150cm 후반이나 세또래 때 프로필 상의 159cm 정도로 추정된다. 나머지 베이비복스 멤버들이 170cm를 전후하는 장신들인 것을 감안하면 많이 대조된다.
  2. [2] 세또래로 데뷔 이전에 심형래 주연의 우뢰매에서 보미역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었다.
  3. [3] 참고로 이 회사가 베이비복스를 제작한 DR뮤직이다. 2010년대 들어서는 라니아의 소속사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4. [4] 솔로활동이 끝난 후에도 DR뮤직 소속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
  5. [5] 걸밴드 컨셉은 결국 무산 되고 정반대 노선인 틴팝으로 바꾸어버렸다.
  6. [6] 안무 연습을 하다가 큰 부상을 당해서 초기 멤버로 합류하지 못 했다고 한다. 사실 세또래 때는 백덤블링까지 했던 멤버였으니..
  7. [7] 비니가 나이를 들어보이게 한다는 건 이미 룰라가 보여줬다. 1집 후속곡 도중에 군대에 끌려간 신정환을 대신해 들어온 채리나는 고작 17살이였는데, 나이 들어보이게 하기 위해 비니와 선글라스(레옹에서 레옹이 쓰던 그 선글라스.)를 씌웠다고.
  8. [8] 눈물의 기자회견을 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실제 회견이 있었는지는 어디에도 자료가 확실하게 남아있지 않다.
  9. [9] 연습생 시절 부상을 입어 데뷔하지 못 한 멤버가 있었는데, 그 게 이가이라는 게 전설. 세또래 활동 당시 멤버들과 함께 뒤에서 백덤블링 같은 아크로바틱 댄스도 추던 사람이 갑자기 저렇게 못 춘 거라면 그 이유 밖에 없었다. 뭣보다 간미연이 후배였던 디바한테 욕 먹고 울었을 일도 없었을 거고.
  10. [10] 후술하겠지만 이가이처럼 어리고 귀여운.. 까지가 아니라 아예 미성년자 컨셉으로 로리타 이미지를 어필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민티는 데뷔 시점에서 이미 다른 걸그룹 제작까지 맡고 있었다. 문서 참고
  11. [11] 당시 베이비복스는 팬 빼고 다 안티라 할정도로 유독 안티팬이 많았던 그룹이었다.
  12. [12] 막내인 윤은혜의 지금 나이가 베이비복스로 활동하던 이가이의 당시 실제 나이와 비슷한 30대다.
  13. [13] 차유미가 1집 활동 후반부에, 부상 문제로 탈퇴하고 미국으로 돌아가자, 비어버린 메인보컬 부문은 간미연이 채웠고, 정시운이 나간 중성적인(보이시) 이미지와 랩과 댄스 부문은 심은진이 채웠으나, 문제는 이제 리더 역할을 할 멤버를 찾기가 굉장히 힘들었던 듯 하다. 그래서 베이비복스 초기 멤버로 낙점되어 있던 이가이는 건강 문제로 참여하지 못 하다가 2집에서야 합류하게 된 것.
  14. [14] DR뮤직의 초창기 이름은 웅산기획이였고, 이후 1992년 등룡기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전 문서에서는 이지수가 1대 가수라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룹 11월의 1집과 2집, 김태욱 1집과 2집, 라이브앨범 그리고 최백호 15집과 빛과 소금 3집, 라이브앨범이 윤등룡의 프로듀싱으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최백호와 빛과 소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기획사에서 새 앨범을 낸다. 베이비복스 1집 직전에 발매된 등룡기획 앨범은, 최수민의 '후회없는 이별', 최진경의 '샤랄랄라' 등이다. 따라서 정확하게 1대 가수는 그룹 11월이 맞다.
  15. [15] 멤버들이 연습생 때부터 하나 같이 이가이에게 상당한 의지를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가수 활동도 오래된 멤버가 들어온 걸 보면, 투투 활동을 하다가 영턱스클럽으로 영입된 임성은 같은 위치를 담당하고 있었던 듯. 다시 말해, 정산 문제로 DR뮤직은 욕을 많이 먹고 있었는데, 기획사에게 의견을 제시할만한 멤버가 이가이 한 명 뿐이였다는 사실도 있었을 것이다. 한현남처럼 풍운아 기질을 가진 멤버도 없다 하지만 이가이가 탈퇴하고 나서, 안 그래도 어렸던 나머지 멤버 보다 나이가 어린 윤은혜가 들어오면서, 안 그래도 열악한 사정에 기획사의 압박에 타 가수와의 갈등까지 더해지니 베이비복스의 기존 멤버들은 더 힘들었다고 한다. 여러모로, 안티가 너무 많아서 방출된 비운의 멤버인 셈.
  16. [16] 원곡 추가바람
  17. [17] Paul Chapman의 오타이다
  18. [18] Stacy Q의 Two of Hearts 커버곡. 해당 곡은 원더걸스의 'Tell Me' 샘플링으로 한 번 더 유명세를 탔다. 원곡 뿐만 아니라 세또래의 곡마저도.
  19. [19] 마돈나의 Like A Virgin 커버곡
  20. [20] 맞춤법으로는 '다시 만날 거야'가 맞다
  21. [21] 맞춤법으로는 '말해 줄 거야'가 맞다
  22. [22] 당시에는 등룡기획이라는 이름이었다. 당연히 소속사 대표이사인 윤등룡의 이름을 땄다.
  23. [23] 1집 앨범의 뒷자켓 사진을 재탕하였다.
  24. [24] 앨범을 들어보면 창법이 강수지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43.34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