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상형문자

음소문자의 계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11px;margin-top:-6px;margin-bottom:-7px"

※ 오른쪽 문자는 왼쪽 문자에서 파생된 것이다.
>>>    >>>

이집트 상형문자
기원전 32세기

신관문자
기원전 32세기

민중문자
기원전 7세기

메로이트 문자
기원전 3세기

원시 시나이 문자
기원전 19세기

우가리트 문자
기원전 15세기

페니키아 문자
기원전 12세기

고대 히브리 문자
기원전 10세기

사마리아 문자
기원전 6세기

아람 문자
기원전 8세기

카로슈티 문자
기원전 4세기

브라흐미 문자
기원전 4세기

바티포루 문자
1세기

칸나다 문자
5세기

텔루구 문자
10세기

그란타 문자
6세기

싱할라 문자
9세기

말라얄람 문자
11세기

타밀 문자
7세기

크메르 문자
7세기

태국 문자
13세기

라오 문자
14세기

티베트 문자
7세기

카위 문자
8세기

발리 문자
11세기

자바 문자
13세기

버마 문자
10세기

데바나가리 문자
10세기

모디 문자
13세기

구자라트 문자
1592년

캐나다 원주민 문자
1840년

동부 나가리 문자
10세기

오리야 문자
13세기

자와 문자
13세기

타나 문자
18세기

팔라비 문자
기원전 3세기

아베스타 문자
4세기

히브리 문자
기원전 3세기

팔미라 문자
기원전 2세기

시리아 문자
기원전 2세기

나바테아 문자
기원전 2세기

아랍 문자
4세기

페르시아 문자
9세기

자위 문자
14세기

타나 문자
18세기

응코 문자
1949년

소그드 문자
기원전 2세기

돌궐 문자
6세기

로바시 문자
650년

위구르 문자
8세기

몽골 문자
1204년

만주 문자
1599년

만다야 문자
2세기

그리스 문자
기원전 8세기

에트루리아 문자
기원전 8세기

라틴 문자
기원전 7세기

룬 문자
2세기

오감 문자
4세기

콥트 문자
3세기

고트 문자
3세기

아르메니아 문자
405년

조지아 문자
430년

글라골 문자
862년

키릴 문자
940년

아부르 문자
1372년

고대 히스파니아 문자
기원전 7세기

티피나그 문자
기원전 3세기

남아랍 문자
기원전 9세기

그으즈 문자
기원전 5세기

한글
1443년

주음부호
1913년

>>>    >>>

}}}}}}

한자

-象形文字

영어

Hieroglyph

1. 소개
2. 변화 과정
3. 신관문자와 민중문자
4. 문자의 종말
5. 기타

1. 소개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사용된 문자를 이르며, 상형문자로 분류된다. 기원전 3000년대 초반에 발생하여 기원전 2700년대에 문장을 표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상형문자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림문자 + 표의문자 + (자음만 있는 불완전한) 표음문자로 변형된다.

가장 이른 예시로 아비도스의 무덤에서 기원전 33세기경에 기록된 상형문자가 발견되었다. 이전까지 이집트 상형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의 영향 아래 만들어졌다는 설이 강했는데 기원전 33세기의 이집트 상형문자가 동시기의 쐐기문자보다 형태가 더 발전된 문자체계였음이 밝혀져 오히려 쐐기문자가 이집트 문자보다 더 오래되었는지 여부조차 불분명해졌다.

문자체계가 갖추어진 후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상형문자로 기록된 가장 최근의 비문은 서력기원 394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거의 3500여 년 가까이 쓰였으니 가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오랫동안 쓰였던 문자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자는 고대 이집트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이 고대 이집트어의 후예가 중세까지 쓰던 콥트어이다. 현재는 아랍어로 대체되어 사어가 되었고, 이집트 아랍어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제외하면 실생활에서는 당연히 쓰이지 않는다.[1] 다만 학자들과 학부생들을 중심으로 수요는 있는 편. 한편으로 이집트 상형문자가 표음성을 갖게 되고 유럽과 중동 각지로 전파되면서 그 지역의 고유 문자가 되었기에 거의 대부분의 표음문자는 이집트 상형문자를 먼 기원으로 둔다. 이집트 상형문자가 기원이 아닌 표음문자는 가나, 한글, 주음부호 등 정말 몇 없다.

이집트 제1왕조의 파라오인 호르 아하의 이름이 적힌 도편. 이 시절에 이미 이집트 상형문자의 초창기 형태가 드러난다. 참고로 이 사람은 대략 기원전 31세기 인물이다.

흔히 '히에로글리프'라고도 하며, 이는 그리스어로 '신성한 글귀'라는 뜻의 'τὰ ἱερογλυφικὰ γράμματα'(타 히에로글리피카 그람마타)에서 비롯된 단어이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자신들의 문자를 md nchr(메두 네체르 = 신성한 글귀)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 때문에 히에로글리프를 '신성문자'로 번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문자의 해독과 관련된 이야기는 로제타 석 문서 참고.

2. 변화 과정

사용된 기간이 매우 오래된 탓에 시대에 따른 변화 정도가 큰 편으로, 대체적으로 시대가 갈수록 자형이 점차 단순해지고, 글자수는 더 많아지는 양상을 띈다. 이 때문에 후기의 히에로글리프는 그림을 그대로 문자로 만든 상형문자보다는 기호화된 표의 문자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이며, 표음 문자로서의 기능 또한 가지고 있는 복잡한 체계를 가지게 된다. 순수 상형문자에서 시작한 한자의 변천과정과 유사하다. 그리고 표음자와 표의자를 상하좌우 빽빽이 겹쳐놓은 구조 역시 한자와 비슷할 뿐더러, 파피루스에 갈겨써놓은 신관문자를 보면 모양조차도 흡사 한자의 초서체처럼 생겼다.

가령 이집트어로 '가르치다'라는 뜻의 동사는 오리모양의 글자와 발 모양의 글자, 이집트독수리 모양의 글자 그리고 매를 들고있는 남자의 그림으로 표기되는데, 여기서 오리모양의 글자는 s, 발모양의 글자는 b, 이집트독수리 모양의 글자는 A[2]의 음가를 나타내는 발음기호이며, 맨끝에 매를 들고있는 남자의 모양이 바로 sbA의 뜻이 무엇인지 한정시켜주는 한정사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격언 중에 학생의 귀는 등에 있다. 때려서 귀를 열어주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매를 든 남자는 바로 선생을 묘사한 것.

그런데 이집트 문자는 모음을 전혀 표기하지 않을 뿐더러, 이집트어는 문법에 따라 모음이 바뀌는 굴절어이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원 발음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따로 참조할 만한 단서가 없는 이상 학계의 발음 관행에 따라 읽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편의상 문자 '이집트독수리⟨A⟩ˈ와 '앞팔⟨a⟩ˈ, '갈대 하나⟨j⟩'는 /aː/로, '메추라기⟨w⟩'는 /uː/로, '갈대 한쌍⟨y⟩'은 /iː/로 읽고, 이외의 자음들 사이에는 /ɛ/를 붙여 읽는다. 예컨대 상술한 ⟨sbA⟩를 /sɛbaː/(세바)로 읽는 식. 당연히 당대에 실제로 사용되었을 발음과는 차이가 있다.[3] 실제 발음은 다른 주변국의 기록에 나오는 이집트 인명, 지명 등을 대조하여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아카드어 비문과 점토판은 숫자도 많은 편인데다 그 언어부터가 신왕국 시기까지 국제어로 널리 쓰였고, 무엇보다 아카드어 표기에 사용된 쐐기문자의 표음자들은 음절문자라 모음까지 알 수 있었으므로 청동기시대 이집트어 재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어콥트어 문헌도 큰 역할을 했다. 현대인들에게도 친숙한 세트(그리스:Σήθ, 콥트:Ⲥⲏⲧ), 토트(그리스:Θώθ, 콥트:Ⲑⲱⲟⲩⲧ) 등 이름이 바로 여기에 나오는 표기를 따른 것이다. 그 외에 파라오(Φαραώ)란 단어도 70인역 성경의 그리스어 표기에서 비롯된 발음이다.

3. 신관문자와 민중문자

이집트 상형문자는 다른 문자들과 마찬가지로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가령 기원전 24세기경부터 문자를 기록하던 서기들은 공식기록이외에 정부문서나 행정업무를 위한 기록을 위해 기존의 복잡한 도형들을 간소화한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신관문자(Hieratic), 또는 승용(僧用)문자라고 부른다. 신관문자는 시대에 따라 점차 더 추상화되는 양상을 띠는데 가령 중왕국 시대의 신관문자와 신왕국시대의 신관문자만 하더라도 전문가조차 파악이 어려울 정도로 흘려쓴 것이 보인다. 이후 식자층이 좀 더 광범위하게 퍼져가면서 극도로 단순화된 글자체가 사용되는데 이것은 '민중문자(Demotic)'라고 부르며 이집트 상형문자의 최종진화형으로 여겨진다. 유명한 로제타 석에 기록된 문자도 그리스 문자와, 오래전부터 내려온 정체, 그리고 민중문자이다.

신관문자의 좋은 예시. 이집트 제18왕조 시절인 아멘호테프 1세 때(기원전 1514~1493년경) 글씨연습용 석판에 쓴 글귀로 중왕국시대의 문학작품인 <아메넴하트의 교훈>을 담고 있다. 본 텍스트는 제12왕조의 개창자 아메넴하트 1세가 아들 센우세레트 1세에게 써준 교훈서로, 쿠데타로 전왕을 죽이고 왕이 된 아메넴하트 1세의 사정을 반영하듯 '네 주변 부하들을 항상 철저하게 감시하라. 아무도 믿지 마라. 네 형제도, 알고지내는 친구들도,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말아라.'고 쓰였다.

이집트 제26왕조 시절에 민중문자로 기록된 계약서의 모습이다. 무슨 아랍문자마냥 극도로 추상화된 형태라서 원래 글자가 어땠는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되는데, 이 문서는 갑과 을의 상품거래 내용을 기록하고 있으며 상품의 양도일자와 대금 지불방법, 그리고 계약 당사자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4. 문자의 종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들어서자 이집트인들은 빠르게 그리스 문화에 물들기 시작하여 그리스 문자를 바탕으로 한 콥트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최후로 새겨진 이집트 상형문자 비문의 모습. 상형문자 자체가 쇠락하던 시기라 그런지 전성기에 비하면 글씨도 매우 조잡하고 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문구로는 이렇게 쓰여있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치세로부터 110년 (394년 8월 24일), 호루스의 아들 메룰 앞에서, 에스멧 아콤 (판독불가) 손에 의해 (판독불가) 에스멧의 아들이자 이시스 여신의 두번째 가는 예언자, 영원할지어다. 위대한 신이자 아바톤의 군주 메룰[4]이 말하다.

그림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아무래도 기록자가 상형문자를 제대로 모르는지 아래에는 민중문자 비문도 있는데, 민중문자로는

나는 에스멧 아콤이며, 이시스 여신의 기록의 (판독불가) 집의 서기이자, 이시스 여신의 둘째가는 예언자이자 어머니가 에스웨레인 에스멧 하네카테의 아들이다. 나는 이 만둘리스[5]의 조각을 영원히 남기는데, 그는 나에게 언제나 자애로운 얼굴 (판독불가) 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오시리스의 탄신일 그의 (판독불가) 봉납축제에서, 110년

한편 이집트가 그리스의 문화권에 들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상형문자를 아는 이들의 수는 점차 줄게되었다. 애초부터 정통 글씨체를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신관들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고, 민중 문자는 로마 제국 통치기에는 콥트 문자에 밀려 거의 사라진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도를 탄압하기위해 사원들의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상형문자를 아는 이집트인은 더더욱 줄게 되었다. 결국 540년에 아스완의 필레 섬에 있던 마지막 사원인 이시스 신전이 폐쇄되면서 상형문자를 전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이후 불과 100년 후인데도 이슬람 제국이 이 땅을 정복했을 때에 이집트 상형문자는 깡그리 잊혀서 당대에 이미 악마의 주문이 새겨진 비밀의 문자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5. 기타

고대 이집트어로 '안녕하세요!'를 Iwy em hotep(이위 엠 호텝)이라고 한다. 뜻은 '평화 속에서'인데, 이 가운데 htp(호텝)은 한 글자로 제단 위에 놓여진 제물(빵)을 본땄다. 또한 고대 이집트어를 계승한 콥트어로는 인사를 ⲛⲟϥⲣⲓ(nofri)라고 하는데, 이건 고대 이집트어의 nefer에서 온 단어로 이 단어도 한글자로 표기하는데 시스트럼이라는 신을 위한 제사 때 흔들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 모양에서 가져왔다. 뜻은 '즐겁다', '좋다'는 뜻.

'호텝' 글자의 모습.

국내에서 가끔 이집트 관련 행사가 열리면 자기 이름의 이니셜을 상형문자로 그려주는 이벤트가 거의 포함되어 있다.

2009년 10월에 유니코드에 등록되었으며, U+13000 ~ U+1342F 영역으로 무려 1,072자. UTF-8로는 한 글자당 4바이트를 잡아먹는다.

음모론자들이나 호사가들은 상형문자 중 일부는 헬리콥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관련 항목 참조.

오션월드에 가면 곳곳에서 이집트 상형문자를 볼 수 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여기 컨셉이 이집트라 그렇다.

여담으로 남근처럼 생긴 문자가 있다. 유니코드 U+130B8인 𓂸

원체 오래되어 수천년동안 쓰여진 문자라 이집트 고대사를 밝히는데 중요한 열쇠가 되기도 하였다.오늘날 현대인들이 고대 이집트 역사를 알게 된 것도 다 이 문자로 남긴 기록 때문.


  1. [1] 하지만 콥트어와 그리스어의 영향을 받았고, 문법도 시간에 따라서 달라져서 표준아랍어와는 적지 않게 다르다.
  2. [2] 모음 /a/가 아니라 아랍어의 자음 '알리프' 같은 성문파열음 /ʔ/으로, 원래 구개수전동음 /ʀ/였던 음가가 민중 이집트어 시기인 기원전 9세기에 변형된 것이다. 한편 이 문자를 옮겨적을 때, 혼동을 막기 위해 A대신 ꜣ를 도입한 표기법을 쓰는 경우도 많다.
  3. [3] 가령 제 6왕조 왕의 이름 nTrj-kA-ra(또는 nṯrj-kꜣ-rꜥ)는 편의상 '네체리카라'로 읽지만, 그가 살던 기원전 22세기에는 '누츠리-쿠르-리우/nucˈɾij kuʀ ˈɾiːʕuw/라고 발음했으리라 추정한다. 제 18왕조의 DHwtj-ms(또는 ḏḥwtj-ms)은 관행대로라면 '제후티메스'가 되겠지만, 그가 살던 기원전 15세기에는 '타하우티-미사우/tʼaˈħawtij ˈmissaw/'라고 불렸던 듯하다.
  4. [4] 아래의 만둘리스와 동일한 신이다.
  5. [5] 호루스가 누비아식으로 변형된 태양신의 이름.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76.91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