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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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사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몽타주

2019년에 공개된 모습

}}}

이름

이춘재(李春在)[1]

출생

1963년 1월 (57세),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2]#

학력

삼일공업고등학교 졸업

신체

170cm, O형

범죄 유형

연쇄살인, 강간, 강도예비

1. 개요
2. 생애
5. 사건 목록
6. 이춘재 행적과 비교해본 사건 시간표
7. 영화 살인의 추억이 범인을 맞혔다?

1. 개요

대한민국의 강간/연쇄살인범. 1994년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 후에 살해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3] 범죄자이며, 1980~90년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다. 그가 검거된 이후 이 사건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름이 바뀐다.

DNA 분석기술 발달에 힘입어 2019년에 용의자로 특정되었는데, 그동안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총 10차에 이르렀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졌으나, 10차의 사건이 동일범의 소행인지 정확히 확인되지 못했고, 8차 사건은 모방범으로 부정확하게 수사가 종결 나는 등. 당시 대한민국 과학 수사의 기술적 한계로 인해 미제 사건으로 분류되었었다. 그러나 2019년 10월 1일 모방범으로 확정되었던 8차 사건을 포함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차 모두 이춘재 본인이 저질렀다고 자백하였으며, 그 외 5건의 살인 사건을 자백. 총 16건[4]의 연쇄 살인과 30여 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경찰에 자백했다. 현재 이춘재가 자백한 범죄 사건들에 대해서는 진위를 확인 중이다.

현재 화성 연쇄살인 사건 10건 중 이춘재의 DNA가 발견된 사건은 5건(3차, 4차, 5차, 7차, 9차)이다. 그 외 검사했으나 발견되지 않은 사건은 2건(2차, 10차), 증거물 부족 등의 이유로 검사가 불가능한 사건은 2건(1차, 6차), 유일하게 유력한 용의자가 잡힌 사건으로 알려졌으나, 후에 본인이 자백하여 재심 중인 사건이 1건(8차)이다.

2. 생애

이춘재는 1963년 1월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5]에서 태어나 30년간을 근방에서 살았다. 수원시 소재 S고등학교에 입학. 1983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1983년 중순 군에 입대한 이춘재는 1986년 1월 23일 제대했다.[6] 그리고 화성군의 전기부품회사에 근무했다.

1990년 초여름경에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본사를 두고 있는 모 건설주식회사(건설하도급업체)에 들어가 포크레인 기사를 따라다니다가 운전을 배워 면허없이 포크레인 기사로 공사현장을 따라다녔다.[7]

1991년을 전후한 즈음에는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8]의 한 골재회사에서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으며, 그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1992년 4월에 결혼했다. 회사가 이후 망하자 아내가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책임졌다고 한다.[9]

이후 그는 처제를 성폭행한 후 살해했지만, 경찰이 각고의 노력 끝에 이춘재의 집에서 처제의 혈흔을 발견해냈고, 결국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이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청주 처제 살인사건 항목 참고.

현재 수원구치소에 수감중이다.

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착하고 조용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춘재를 "착하고 대답도 잘하고 성품도 좋은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동창들 역시 이춘재를 "매우 착한 친구"로 기억하고 있었으며, "싹싹하고 인사성도 밝은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부모와 남동생 역시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으며,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이 때문에 가족들은 이춘재가 저지른 처제 살인사건도 '우발적으로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처가와도 평소 원만한 관계였으며, 처가가 있는 청주시로 버스를 타고 가 농사를 하는 장인어른의 일손을 거들고, 처제들이 이 씨의 집에 반찬을 들고 찾아가는 등, 친족 간의 교류도 원활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판기록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청주 처제 살인사건 당시 재판 기록에 따르면, 그는 2살배기 아들을 멍들 정도로 폭행하고,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아내가 하혈할 정도로 마구 폭행했다고 한다. 당시 아내의 증언에 따르면, 이 씨에게 심한 성도착증도 있었으며, 아내를 강간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내가 훗날 울면서 이 사실을 형사에게 알렸을 정도였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는 1993년 12월 집을 나갔으며, 이 씨는 아내에게 협박 전화를 걸고 동서에게 "아내와 이혼은 하겠지만 다른 남자와 재혼할수 없게 문신을 새기겠다.[10]"는 말도 했다고 한다. 처제 살인사건 당시 재판 판결을 보면, '한번 화나면 부모가 말리지 못할 정도로 포악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점들은 가족들이나 지인들의 진술과는 정반대 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가 교도소에 수감된 이후 말썽 한번 안 부리고 모범수로 지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위계질서에 철저히 순응하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자신보다 명백히 위이거나 동등한 지위인 가족들과 지인, 그리고 교도소 내 간수들 앞에서는 얌전히 지냈지만, 자신보다 명백히 아래로 규정된 사람에게는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게 대했다는 것.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모습을 단순히 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 정도로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경찰 관계자들이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지목한 점은, 이춘재는 범행 후에도 태연했으며, 잡힐 때마다 끝까지 혐의를 부인했다는 점이다. 처제의 시체를 유기한 다음 날 장인어른을 찾아가 "도와드릴 일 없냐"는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실종신고를 냈으며, 조사 과정에서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다 혈액이 발견되고 범행을 자백했으나, 이후에 다시 "경찰관들이 고문해서 어쩔 수 없이 한 허위자백"이라고 말을 바꿔 재판을 3심까지 끌고 갔다. 강도 혐의로 체포됐을 당시에도 이춘재는 흉기와 목장갑을 들고 집안에 침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낯선 남자가 나를 갑자기 폭행했고 이 때문에 집에 우연히 들어갔지 강도질하려고 들어가지 않았다." 하고 억지스런 주장을 했다.[11] 성폭행 또는 성폭행 결합 살인 범행을 저질러왔던 이춘재에게 단순 강도는 이질적 범행이기에 이것도 원래는 성폭행 목적의 주거침입이었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3.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2019년 9월 18일 경찰은 청주시에서 1994년에 처제를 강간 후 살해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라고 발표했다. 조사 결과 5차(1987년), 7차(1988년), 9차(1990년) 사건 증거물에서 나온 DNA가 이춘재의 것과 동일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구체적인 신상 공개를 하지 않았지만, 1994년 청주에서 위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1명뿐이라 언론을 통해 그 실명과 정보가 공개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0월 1일 자백을 하면서, 무려 30년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졌다. 그가 자백을 했던 시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에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이춘재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그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건이 밝혀지기 전에 이미 다른 살인사건으로 무기징역에 처해졌던 만큼 영원히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의 처벌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2019년 10월 14일 기준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경찰이 입건을 검토하여 향후 정식적으로 신상 공개를 검토 중에 있다.

자세한 것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문서 참조.

4. 연쇄살인 이외의 사건들

  자세한 내용은 이춘재/연쇄살인 외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사건 목록

<rowcolor=#EEE,#111> 구분

일시

피해자 및 정황

죄목

기타

1

1986년 9월 15일
06:20(추정)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풀밭에서 이모 씨(72)가 귀가하다 피살

살인

화성 연쇄살인
1차 사건

2

1986년 10월 20일
22:00(추정)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박모 씨(26)가 집으로 돌아가려 버스를 타러 가다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2차 사건

3

1986년 12월 12일
23:00(추정)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축대에서 권모 씨(25)가 귀가 중에 집 앞에서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3차 사건

4

1986년 12월 14일
23:00(추정)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 논둑에서 이모 씨(22)가 버스에서 내린 뒤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4차 사건

5

1987년 1월 10일
20:50(추정)

화성시 태안읍 황계리 논에서 홍모 양(18)이 버스에서 내려 귀가 중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5차 사건

6

1987년 5월 2일
23:00(추정)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야산에서 박모 씨(29)가 남편의 (우산 소지)마중 가다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6차 사건

7

1987년 12월 24일

수원시 팔달구 화서역 인근에서 김모 양(18)이 피살

살인
성폭행

8

1988년 9월 7일
21:30(추정)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안모 씨(54)가 버스에서 내려 귀가 중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7차 사건

9

1988년 9월 16일
02:00(추정)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주택에서 박모 양(13)이 자신의 방에서 잠을 자다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윤모 씨(당시 22세)가 검거되었으나 이춘재의 자백 이후 재검증 중

10

1989년 7월 7일

화성시 태안읍에서 김모 양(9)이 실종

살인
성폭행[12]

11

1989년 9월 26일

이춘재가 수원시 권선구의 주택에 흉기를 소지하고 침입했다가 검거됨.

강도예비

구속되었다가 4월 19일 열린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감형후 풀려남.

12

1990년 11월 15일
18:30(추정)

화성시 태안읍 병점리 야산에서 김모 양(14)이 귀가 중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9차 사건

13

1991년 1월 21일

청주시 가경동 택지조성공사 현장에서 박모 양(17)이 피살.

살인
성폭행

박모 군(19)이 용의자로 체포되었으나 증거부족으로 무죄판결.

14

1991년 4월 3일
21:00(추정)

화성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권모 씨(69)가 버스에서 내려 귀가 중 피살

살인
성폭행

화성 연쇄살인
10차 사건

15

1992년 6월 24일

청주시 복대동에서 가정주부 이모 씨(28)가 피살.

살인
성폭행

16

1994년 1월 13일

청주시 복대동에서 이춘재의 처제 이모 씨(19)가 피살

살인
성폭행

이춘재의 자택에서 피해자의 혈액이 발견되어 구속되었으며, 이후 무기징역 선고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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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춘재가 저지른 것이 확정된 사건 / {{{#!wiki style="margin:-10px 0 -6px;display:inline-flex;"

 

}}}: DNA 등의 유력한 증거가 발견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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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춘재 행적과 비교해본 사건 시간표

<rowcolor=#EEE,#111>날짜

사건

이춘재 행적 및 관련성

1983년 중순

-

군 입대. 대략 20세

1986년

1월

-

군 전역. 대략 23세

2월 8일

화성군 태안읍 일대 연쇄 강간 사건

1차, 발생 장소: 진안리.[13]

이춘재 진안리 거주

3월 20일

2차

-

4월 3일

3차

-

4월 25일

4차

-

5월 8일

5차

-

5월 14일

6차

-

7월

7차

-

9월 15일

1차 살인
피해자가 저항한 흔적이 있음. 프로파일러 펫 브라운 박사는 현장 자료를 보고 "이 사건은 살인 경험이 없던 강간범이 벌인 첫 살인 사건이다"라고 분석했다.

이춘재가 다니던 전기부품회사 출퇴근길 근처

10월 20일

2차 살인

이춘재가 다니던 전기부품회사 출퇴근 길 근처

11월 30일

범행 미수 생존자 발생. 진안리. 이때 당시 피해자가 거름통에 빠지자 범인이 더럽다며 도망감.[14]

이춘재 진안리 거주

12월 12일

3차 살인

피해자가 다니던 회사가 이춘재가 다니던 전기부품회사 옆이었음.
이춘재 DNA 확인.

12월 14일

4차 살인

피해자가 다니던 섬유회사(지금은 레미콘 회사)가 이춘재가 다니던 전기부품회사 옆이었음. 이춘재 DNA 확인.

1987년

1월 10일

5차 살인

이춘재 DNA 확인.

5차 사건 이후

언론의 보도로 국민적 주목을 받고 대대적인 수사진이 꾸려짐.[15]

-

5월 2일

6차 살인

이춘재 집 근처

7월

-

1986년 8월 발생한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가 이춘재라는 주민의 제보를 받아 이춘재 조사 받음

12월 24일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
수원시 화서역 여고생 김모 피살.[16][17]

이춘재는 수원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했음.

1988년 이후

1988년 9월 7일

7차 살인
용의자가 수원행 막차 버스를 탐. 버스 기사였던 강원식은 범인의 얼굴에 대해 "눈은 옆을 쪽 째지고 눈썹은 범 눈썹으로 해서 진했고 얼굴은 좀 길고 코가 좀 크고"라고 증언.[18]

25세 정도로 추정.
이춘재 DNA 확인.
과거 수원 S고등학교를 다녔음.

1988년 9월 16일

8차 살인
진안리 피해자 집안.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에서 티타늄 검출. 경찰은 모방 범죄라며 주민 윤 씨를 범인으로 체포[19], 윤 씨는 범행을 부인

티타늄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검출될 가능성이 있다. 이춘재도 전기부품회사 공장에서 일했다.
사건 발생 장소인 진안리에 이춘재 거주.

1989년 7월 3일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여고생 살인사건. 오목천동 601번지 농수로에서 발견.#

이춘재 집에서 약 6km 거리

1989년 9월 26일

-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강도예비 및 폭력 사건으로 구금

1990년 4월 19일

-

이춘재 풀려남

1990년 11월 15일

9차 살인[20]
피해자 김모(14)

이춘재 DNA 확인.

1991년 1월 26일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
가경동 택지공사 현장에서 발견.

이춘재는 정황상 이 시기에 이미 청주와 왕래가 잦았을 가능성이 있음. #

1991년 4월 3일

10차 살인

-

1991년 7월

-

이춘재 결혼.#
결혼 상대 여성은 청원군 부용면[21]에 있는 골재회사의 경리였음. 따라서 이춘재는 이전부터 청주에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보임. 이 시기를 전후로 이춘재는 그녀가 근무하는 골재회사에 포크레인 기사로 취직하는데, 취직이 먼저인지 여성과의 교제가 먼저인지는 확인 필요.

1992년

청주 미제 살인 사건.
시신은 땅에 묻혀있었음.
살해 시점은 정확치 않으나 1992년 1월경으로 추정.[22]

이춘재는 포크레인 기사로 일하고 있었음.

1992년 6월 24일

청주 복대동 가정주부 살인사건[23]

이춘재 청주 거주

1992년

청주 일대 연쇄 살인 사건 언론 보도.[24]

이춘재는 청주에서 살고 있었음.

1992년

-

이춘재 아들 태어남

1993년 4월

-

서류상 주소지를 화성에서 청주로 옮김. 하지만 실제 청주에 거주한 시기는 1990년~1991년으로 추정된다.#

1994년 1월

-

처제 살인, 체포 수감

7. 영화 살인의 추억이 범인을 맞혔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만든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작중 용의자로 지목된 박현규(박해일 분)의 신상이 전부 상상에 기반했음에도 실제 이춘재와 비슷한 점이 많아 주목을 받았다. 닮은 점들은 다음과 같다.

  • 작중 박현규의 주소는 진안1리. 실제 이춘재는 진안1리 출생.
  • '군대를 막 제대한 20대 초반의 청년'이라는 설정이 일치한다. 극중 서태윤 형사(김상경)가 박현규에게 "네가 군대 제대하고 이 동네 공장으로 온 뒤부터 여기서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난 셈이란 말이야"라고 말하는데 실제 이춘재가 전역해서 귀향한 직후 연쇄강간과 살인사건이 줄줄이 일어났다.
  • 언덕위에 사는 여자는 작중 범인이 본격적으로 살인을 시작하기 전 강간당했는데, 이춘재 역시 연쇄적으로 강간만 하다가 우발적으로 첫번째 살인[25]을 한 뒤로 연쇄살인을 시작했다.
  • 인근 공장에 다닌다. 이춘재는 화성 소재의 전기 부품 제조 회사에 다녔다. 작중 박현규는 레미콘 공장에 근무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춘재 회사 바로 옆에 레미콘 공장이 있었다. 다만 사건 당시에는 레미콘이 아니라 섬유산업 쪽 공장이었다.
  • 이춘재는 6차 사건 이후인 1987년 탐문과 행적조사 등을 통해 용의자로 지목되어 수사지휘부에 불려갔으나, 혈액형과 발자국이 달랐기 때문에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박현규가 수사대상에 오르고 제외되는 과정과 유사하다.

다만 진범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만든 영화다 보니, 영화에서 묘사한 박현규와 실제 이춘재와의 차이점도 당연히 상당수 있다. 차이점에 대해서는 살인의 추억 문서 참조.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에 의하면 박현규의 실제 모델이 된 사람은 이춘재가 아닌 다른 용의자였고, 199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살인의 추억> 문서의 해당 단락 참조. 영화 내에서도, 박현규가 처음 수사를 받을 때 "당신들이 죄 없는 사람들 족치고 다니는 거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 난 절대로 그렇게 안 당해" 라고 하는 부분을 보면 알 수 있다.


  1. [1] 출처
  2. [2]경기도 화성시 진안동
  3. [3] 원래 1, 2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형이 과중하다는 이유로 대법원에서 파기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당연히 당시 대법원에서는 그가 연쇄살인범인지 알 수 없었고, 처제 1명을 살해한 살인범으로서 재판한 것이다. 당시 유가족들의 입장에서 이춘재의 형량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건 너무나도 억울한 일이었겠지만, 그 감형 덕분에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확실히 밝혀낼 수 있었다. 1990년대는 실제로 사형 집행을 하던 시절이므로, 이때 이춘재가 죽고 없어졌다면 다른 여러 사건의 진범은 영원히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4. [4] 처제 살해까지 포함하면 15건이다.
  5. [5]화성시 진안동. 대체로 '병점'이라고 부르는 지역이다.
  6. [6] 제1기갑여단에서 전차 조종수였다.
  7. [7] 그것이 알고싶다1185회에 등장한 이춘재의 경찰조서 내용
  8. [8] 현재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9. [9] 처제 살인 사건으로 조사 받을 때 경찰 조서에는 "1993년 3월말 경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부강농공단지현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현재까지 놀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10. [10] 배우자나 연인에게 심한 폭력을 가하는 범죄자들이 자신들의 소유•지배욕을 채우려는 방식 중 하나이다. 이영학은 아내의 몸 전체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문신으로 새겨넣으라고 하였다. 일본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마츠나가 후토시도 비슷했다.
  11. [11]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이 씨가 초범이었고 실제 피해자의 피해는 미미했다는 점에서 이 주장을 받아들여, 이춘재를 집행유예로 석방시켰다.
  12. [12] 다만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행 사실은 이춘재의 자백에만 근거한다.
  13. [13] 범죄 프로파일러인 펫 브라운 박사는 연쇄 강간 사건과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은 동일범이라며 "저에게 범인이 어디 사는지 지목하라고 한다면 처음 강간당한 여자가 사는 곳 근처라고 말하겠어요"라고 말함. 실제 이춘재는 사건 발생 장소인 태안읍 진안리에 살고 있었다.
  14. [14] 피해자는 정 아무개 씨. 당시 38세쯤. 발생 날짜가 11월 19일이라고도 한다. 이 이후 3차 사건부터 결박 + 재갈이 기본적으로 나온다는 걸 생각하면 당시 미수자가 도망간 후 그 다음부터 범행 대상자를 제압하기 위해서 결박 + 재갈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15. [15] 만약 이춘재가 범인이라면 6차에서 시신에 결박이 안 된 것도 여기서 설명이 된다. 즉, 6차에서도 범행의 수법이 같으면 경찰들이 자신이 범인인 걸 확실시할 수도 있으니까, 다른 수법으로 저질렀을 것.
  16. [16] 3, 4, 5차와 흡사하게 입엔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채로 발견되었기에 화성 사건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졌다. 물론 사건 범인은 다른 사람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형사도 있다. 관련 일요신문 기사 사실, 화서역은 연쇄살인이 벌어진 화성시 태안읍과 상당히 떨어져 있기에 이 형사의 증언도 타당성이 있지만, 이춘재가 수원시 소재 고교를 졸업했고, 수원에 빈번하게 갔음을 감안하면 이춘재의 범행일 가능성도 더러 있다.
  17. [17] 시신 발견 날짜는 88년 1월 4일. 부검 결과 피살자가 가출을 한 87년 12월 24일 밤부터 25일 새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18. [18] 몽타주 참고
  19. [19] 모발에서 티타늄이 나왔다는 것이 증거였다. 하지만 처음 범행을 자백한 윤 씨는 나중에 교도소에서 "나는 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춘재는 2019년 10월 4일, 모방 범죄로 결론지어진 8차 사건 이춘재 본인이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추후 조사 예정이라고 한다.
  20. [20]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강도예비 폭력 사건에 대한 분노 + 당시 등화관제로 목격자 부재 + 대상자가 20대 남성인 자신이 제압하기 쉬운 여중생이라는 3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제일 참혹한 비극이 되었다"고 추측했다.
  21. [21] 지금의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22. [22] 1992년 4월 23일 오전 8시 20분쯤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옛 청원군) 학천교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장에서 20대 여성이 숨져 있었음. 40㎝ 깊이 땅속에서 발견된 여성은 알몸이었고, 양손에는 스타킹이 묶여 있었다. 경찰은 여성이 숨진 지 3~4개월 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지만 피해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23. [23] 가정주부 이모(28) 씨 피살사건. 경찰은 당시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사건 현장에서 나갔다는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해 피해자와 남편 등 주변인을 중심으로 수사를 폈지만 끝내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24. [24] 당시 언론에서 "3개월 동안 살인사건 4건, 해결 기미 감감"이라는 기사가 나옴
  25. [25] 몸싸움을 한 흔적 등 계획적으로 살의를 품고 한 행동이 아니라고 판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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