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 윤

이름

자니 윤 (Johnny Yune)

본명

윤종승 (尹宗承)

국적

미국, 대한민국

출생

1936년 10월 22일 (81세)

출생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면 금석리

배우자

줄리아 윤 (1999~2009)[1]

종교

개신교

최종 학력

웨슬리언 대학교 성악 학사

데뷔

1959년

1. 개요
2. 생애
2.1. 흑역사
3. 필모그래피

1. 개요

대한민국MC. 미국에서 종교개신교이다. 미국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약했으며, 1989-1990년에 '자니윤쇼'로 한국 방송 전체에서 최고 MC로 대접 받기도 했다.

본명은 윤종승. 미국식 이름은 'Johnny Yune'이다. 국적회복을 통해 현재 미국과 한국 복수국적자이다.

2. 생애

1936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으로, 이주일보다 4살이 많은 고참급 MC이다. 원래 1959년에 대한민국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한 후 한동안 MC생활을 하다가 1962년에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그냥 미국에 눌러앉아 MC로 활약했다.

무명 생활을 좀 보내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알게 된 유명한 MC인 자니 카슨의 제의로 아시아인 최초로《투나잇 쇼》에 출연해 총 34번을 출연하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제일 처음 출연은 간단하게 스탠딩업 코메디만 하려고 했는데, 다음 출연인 대배우 찰턴 헤스턴이 갑자기 사라져서 대타로 20분 가까이 자니 카슨하고 시간을 끌어야 했다고. 나중에는 시간 끌려고, 어머니가 부르셔서 부를 줄 안다는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까지 불렀다. 한국에서 배워서 그런지 중간 부분은 한국어로 부르기도. 이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잘 대처한 자니윤을 자니 카슨은 매우 마음에 들어 해서 무조건 한 달에 한번씩은 자니윤을 초청하라고 피디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투나잇쇼 같은 유명쇼에 무려 20분 가까이나 게스트로 나온 것은 자니 윤으로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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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분부터 35분까지. 뒷부분은 마지막 시간끌기용으로서 자니윤이 노래부르는데 상당한 실력이다. 위아래 영상 보면 알듯이 문선명 조크에 일가견이 있다 중간에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TV가 당신을 봅니다" 하는 러시아식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 이후 명성을 얻자 NBC 방송국에서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89년에 귀국하여 조영남을 보조 MC로 두고 자신이 메인 MC가 된 '자니윤 쇼'를 진행했는데 이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2]이 인기로 인해 자니 윤은 한국에서도 스타덤에 올랐고 광고를 여러개 찍었다. [3] 자니윤 쇼로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의 나이가 이미 50대 중반이었다. 쟈나윤 쇼는 미국의 자니 카슨 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 형식을 그대로 들여온 토크쇼로, 진행자의 이름을 내걸고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본격적인 토크쇼로는 국내 최초로 보아도 된다.

현재 한국 국적을 회복이중국적상태에 있다.

그가 '자니'라는 애칭을 사용한 것은 미국에 건너갔는데 본명인 '종승'이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였기 때문에 발음하기 쉬운 비슷한 이름인 자니를 사용하게 되었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었다. 이 과정에서 적절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2016년 말 유진룡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의해 폭로되었다(자세한 것은 유진룡 문서로). 어쨌든 낙하산 인사 논란을 빚었을 당시 국정감사에 출석하여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밝힌 것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2016년 4월 13일 오전, 뇌출혈병원입원했다. 2017년 12월 말에 한국에서 보도된 바에 의하면, 현재 심각한 치매 상태이며 미국 캘리포니아 헌팅턴 요양원에서 홀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치매의 영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자니 카슨쇼는 기억한다는 걸 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만은 기억하는 듯 보인다. # 최근에는 다소 증세가 호전되어 거동은 힘들지만 외출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이혼한 전 부인이 거동을 도와준다고. 그런데 이 언론 보도 때문에 전 부인 줄리아 리가 '남편이 치매에 걸리자 버렸다'는 대중의 비난을 받자 이를 억울해하며 반박 인터뷰를 내놓았다. 주요 골자는 이혼은 7년 전인 2010년에 했으며, 그 이후의 방송에서 부부인 것처럼 출연한 이유는 자니 윤의 요청 때문이었다고 한다.

또한 본격연예 한밤 2017년 12월 26일 방송분에서도 줄리아 리가 직접 인터뷰를 했는데, 위의 반박 인터뷰를 다시 말함과 동시에 '이혼하면서 자니 윤의 대저택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빼앗았다'는 소문에 대해 '원래 본인 재산이었다'라며 이혼 서류에도 명시된 두 사람의 개인 재산 목록을 증거로 제시했고, 현재 한국에 있는 이유는 '목 디스크 치료를 위해 일시적으로 귀국한 상태'이며, '치료를 하고 나면 다시 미국으로 가서 자니 윤을 간호하겠다고 밝혔다. 그 외에도 취재진이 직접 자니 윤을 찾아가 인터뷰 해본 결과, 말이 어눌한 것과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본인의 과거에 대해서 아주 기억 못한다는 것은 과장된 보도였음이 밝혀졌다.[4] 또한 '자니 카슨 쇼에 출연하지 않았나' 묻자 "(자니) 카슨이 와야 하는 거지 뭐"라고 대답하고, '자니 윤 쇼에 많은 게스트들이 출연했다'라고 묻자 이번에는 "안나오면 나한테 맞는 거야"라고 대답하는 등 특유의 농담은 여전하다는 것도 방송되었다.

로빈 윌리엄스와 대학 동창생이라는 루머가 있지만, 사실과 다르다. 로빈 윌리엄스는 클레어몬트(Claremont) 대학에서 정치과학을 공부하고 이후 줄리어드에서 수학하였다. 자니 윤은 성동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웨슬리언 대학교 성악과를 나와서 바로 파트 타임 가수로 뛰어들기에 양자의 접점이 없다. 사는 지역부터가 달랐으며 자니윤이 유학한 곳은 코네티컷이고 로빈 윌리엄스가 당시에 살던 곳은 시카고와 디트로이트였따. 사실 자니 윤은 1936년 생, 로빈 윌리엄스는 1951년 생이다. 로빈 윌리엄스가 대학에 들어간 시기는 1969년으로 이미 자니 윤은 데뷔한지도 몇년이나 지난 뒤였다. 둘 모두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라는 점에서 와전된 말인 듯.

2.1. 흑역사

1989년 경기도 성남의 모 골프장에서 캐디에게 골프채를 휘둘러 부상을 입힌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1992년 법원에서는 피해자 캐디에게 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기사

그런데 이 사건이 28년 후인 2017년에 이재명 성남 시장에 의해 다시 거론되었다. 당시 피해자 캐디의 변호사가 이재명이었기 때문. 기사

3. 필모그래피

미국에서 활약할 당시 영화에도 여럿 나왔으나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했다. 주연으로 나온 영화 'They Call Me Bruce?'는 저예산으로 찍어 개봉 당시 흑자를 보긴 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전형적인 3류 영화에 불과하다.

무명 시절 어느 영화에서 원시인 엑스트라로 나와 우워어어!! 고함을 외치는 대사만 하고 퇴장하는 배역을 맡기도 했다. 그밖에 미국에서 찍은 한국영화 '햄버거 쟈니'라는 영화는 흥행이나 평에서 망했다. 성룡이 엑스트라를 겨우 벗어난 수준으로 나온 미국 영화 캐논볼에서는 성룡을 인터뷰하는 TV속 화면으로 나와 몇 마디하기도 했다.


  1. [1] 18세 연하로 알려졌으며 현재는 엄연히 이혼한 상태의 전 부인이지만 현재 요양원에 있는 자니윤을 위해서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2. [2] 백밴드는 송골매였다.
  3. [3] 세제 "하모니"를 광고한 적이 있는데, "하모니 알아요?" 하는 광고의 대사가 "하문이 알아요?"로 들리는 바람에 당시 인기가 높던 그룹 출신 미남 가수 조하문이 쟈니윤 아들이라는 헛소문이 돌기까지 하였다.
  4. [4] 자니 윤 쇼 출연 게스트 중 기억 나는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자 강호동, 신성일 등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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