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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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戦国時代(せんごくじだい)

(센고쿠지다이)

한국어 : 전국시대

에도 시대 말기 화가 우타가와 요시토라(歌川芳虎)가 그린 작품집인 <道外武者御代の若餅> 중의 한 그림. '오다가 쌀을 찧고, 하시바가 반죽한 천하라는 떡. 앉은 채로 먹은 건 도쿠가와(織田がつき、羽柴がこねし天下餅、すわりしままに食うは徳川)'라는 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1]

1. 개요
2. 명칭 문제
3. 전국시대의 시작과 끝
4. 특징
5. 대중적 인식
5.1. 일본
5.2. 한국
6. 기타
7. 전국시대의 인물
8. 관련 문서 / 인물 묶음
9. 역사적 사건
10. 대중 문화 속의 전국시대
10.1. 전국시대를 다룬 작품

토크멘터리 전쟁史 - 일본 전국시대 통일전쟁 - 전반부1,2

1. 개요

일본무로마치 막부 말기의 혼란기로, 전쟁이 끊이지 않아 전국시대라 불린다. 덴노의 권위가 땅끝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오닌의 난으로 인해 쇼군막부의 권위마저 땅끝으로 떨어지자, 지방의 다이묘들과 사무라이들이 내가 최고가 되겠다고 들고 일어나 치고 박으며, 어제의 부하가 오늘의 적이 되는 하극상이 비일비재하던 시대였다.

이렇게 하극상으로 새로이 나타난 다이묘뿐 아니라 기존의 슈고 다이묘 중 살아남은 다이묘 혹은 이런 다이묘들이 서로 싸우다 몰락한 틈을 타 스스로 다이묘로 성장한 옛 소규모 호족 등 이 시대의 다이묘들은 막부나 조정의 권위는 빌릴지라도 이들의 대리 지배자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법령을 제정하는 등, 독립적인 특성이 더욱 강해졌다. 역사가들은 이들을 전국 다이묘라고 불러 이전의 슈고 다이묘 등과 구별한다.

혼돈의 카오스 전국시대를 대충 정리하고서 통일을 목전에 두었던 사람이 오다 노부나가, 그의 사후 일본을 거의 통일한 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두 사람의 시대는 특별히 아즈치-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 또는 쇼쿠호 시대(織豊時代)로도 아울러서 칭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을 완전 통일한 장본인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2. 명칭 문제

다른 시대명이 지명 등의 고유 명사에서 유래한 것과는 달리 남북조시대와 전국시대는 일반 명사에서 뜻을 따온 명사이므로 표준어 대사전에도 전국시대로 실려 있으며 학계에서도 통용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남북조, 전국시대와 구분하는 의미, 또는 헤이안, 무로마치 등 일본어 발음으로 된 다른 시대 명칭과 형평성을 맞추는 의미에서 난보쿠초, 센고쿠로 쓰는 경우도 있다. 영어 명칭은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명과 마찬가지로 번역한 Warring states period와 일본어를 음역한 Sengoku period를 같이 쓴다.

3. 전국시대의 시작과 끝

시작과 끝에 여러 이설이 있다. 시작은 1467년의 오닌의 난부터라는 설과 1493년에 일어난 메이오의 정변의 두 설이 대립하고 있고, 여기에 호조 소운이 호조 가를 세운 1488년으로 잡는 사람도 있다. 종결 시점에 대해서는 더 많은 설이 있는데 1573년 오다 노부나가무로마치 막부를 축출한 때까지라는 게 정설이긴 하지만,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도 전국시대의 범주에 넣는 쪽도 있어서 오다와라 전투(1590년),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 에도 막부 성립(1603년), 오사카 전투(1615년)[2]까지라는 설이 있다. 아예 노부나가가 상경한 1568년을 전국시대의 끝으로 보는 설도 있다. 또는 임진왜란이 끝난 1598년을 전국시대의 끝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1641년 시마바라의 난 종결을 끝으로 잡는 것.

어쨌든 일반적인 일본 학계의 통설은 1573년(무로마치 막부의 교토 축출)[3]을 끝으로 보고 있고, 보통 노부나가가 입경한 1568년부터 에도 막부가 성립하는 1603년까지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기거하던 성 이름을 따서 아즈치-모모야마 시대(安土桃山時代)라고 부르며 다른 말로 오다(田)-도요토미(臣) 시대라는 의미를 담은 쇼쿠호 시대(織豊時代)라고 부른다.[4]

덧붙여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는 노부나가와 히데요시가 기거한 성 이름을 따서 부른다고 알려졌는데, 모모야마는 히데요시가 말년에 기거한 '후시미(伏見) 성'의 부지를 일컫는다. 모모야마라는 이름은 후시미 성이 폐성된 후 후시미 성 부지에 복숭아나무(桃)가 심어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문제는 이 이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도 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그래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모모야마' 대신 '후시미 시대'나 '오사카 시대'가 좀더 적절하며 '아즈치 모모야마'라는 명칭은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여전히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라는 표현이 많이 쓰이지만[5], 위 사실을 고려해 이를 대신하는 단어를 쓸 경우 '쇼쿠호 시대'라는 표현도 쓰이며, 기타 의견으로 히데요시가 건축한 오사카 성을 대신 넣어서 '아즈치 오사카 시대', 혹은 아예 쇼쿠호 시대 무렵에 쓰인 연호인 텐쇼(天正: 1574년~1592년)를 따서 '텐쇼 시대(天正時代)'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는 정치사적 구분이고, 문화사적 구분으로는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하는 1615년까지 '아즈치 모모야마'라는 명칭이 일반적이며 이 무렵의 문화를 가리키는 '모모야마 문화(桃山文化)'라는 표현이 쓰인다. 한국의 세계사 교육 과정에서도 이 시대를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로 표기하고 있다.

4. 특징

전국시대는 이 영주-무사-농민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전국의 영주들이 가장 신경쓰는 게 바로 부국 강병책으로, 먼저 농업 생산량을 극대화시켜야만 병사의 수를 늘릴 수 있었다. 그래서 영주들은 저수지와 개간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 일본의 농지는 오닌의 난 이전보다 약 1.8배로 증가하게 되었다. 또한 고쿠 단위로 쪼개진 행정 영역은 통치를 보다 정교하게 만들었으며, 각 영주들은 검지[6]를 실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다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지자무라이들과 토호들을 전부 가신단으로 편입시키고 연공을 일원화시킨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로 전국시대가 끝난 후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늘어 일본 전체의 석고는 1,800만 석, 다이코 검지 때는 2,100만 석까지 늘어나게 된다.

즉 토호들의 과도한 수탈을 방지하는 한편, 수취를 하나로 통일하여 대영주가 아닌 이상 영주들은 무사들에게 농민들에게 일원적으로 받아낸 을 녹봉으로 지급하였고, 무사들을 성하 마을인 조카마치에 거주하게 함으로써 소집과 감시를 편하게 하였다. 봉록을 받는 무사들은 전쟁의 빠른 소집과 감시를 위해 성하 마을에 살게 되고, 이런 거대한 소비 집단을 위해 직인, 상인들이 대규모로 마을에 살게 된다. 이로써 영주들은 농민과 무사 상공업자들을 효율적으로 동원할수 있게 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이르러 전국 단위로 총동원 체제가 가능하게 되었다.

당연히 중간 단계가 생략된 연공의 일원화, 즉 조세의 일원화는 농민들에게 가중되는 부담이 줄어들게 했는데 이들 농민으로 하여금 공동의 운명체라고 느끼게 하는게 중요했다고 여겼다. 만약 민심이 이반해버리면 다른 영주가 침공했을 경우 살아남기 힘들어지니까[7]. 어찌 보면 이후 에도 시대의 기반을 닦고 지역별 색채를 강화시킨게 이 시기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 일본 각 지역에서 지역의 상징으로 유명한 인물들 가운데는 이 시기 다이묘들이 많다.

덤으로 여러 불교 종파들도 승병으로 군사력을 구축해 패권 다툼에 끼어 들었다. 정토진종의 혼간지(本願寺, 잇코잇키), 진언종의 네고로지(根来寺), 천태종의 엔랴쿠지(延暦寺) 등등. 보통 한국에서는 승병을 ‘나라를 위해 무기를 든 스님들’[8] 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 전국시대의 승병은 한국의 후삼국시대 때처럼 거의 무장 조직과 다를 바 없다. 자체를 거점으로 삼고 주변 마을, 적대 교파 약탈은 기본이고, 낭인들을 매수하여 머리만 깎아놓고 용병 조직처럼 움직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종교에 힘입어 잇키를 일으켜 영주를 내치고 영지를 차지해 거대한 교단 영지를 세워 대영주랑 맞짱뜨기도 하였다. 당시 일본의 사원은 단순한 종교단체가 아니라 막대한 토지를 보유하고 서양의 대주교, 주교들처럼 사실상 독자적인 영지를 가진 세속적인 군사세력이었던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괜히 불교를 깨부시고 다닌게 아니다.

5. 대중적 인식

5.1. 일본

일본에서 이 시대 인물 중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졌으며 3살 아이부터 80살 먹은 노인까지 알 정도로 유명한 사람은 소위 '3대 천하인'이라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 셋뿐이다. 거기에 다케다 신겐, 우에스기 겐신이나 혼노지의 변을 일으킨 아케치 미츠히데, 그리고 막대한 은혜를 베풀어줬던 주인을 배신한 사이토 도산[9] 정도가 유명한 편이고 만화나 게임 같은 전국시대 매체에서 그렇게 띄워주는 무장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기껏해야 자기 지역 출신 무장이나 자기 지역 영주를 지냈던 무장들을 "아, 그런 사람도 있었지"라는 식으로 아는 정도. 일본에서도 이 시대 관련 역사는 관심 있는 사람이나 파는 분야라고 한다.

대개의 개괄서에서도 이 3대 천하인이 주요 인물로 나온다.[10] 일부 전국 팬들이 이걸 가지고 '다케다 신겐은? 우에스기 겐신은?'이란 식으로 물고 넘어지기도 했는데, 사실 개관적인 역사만 파악하려 한다면 이 시대는 노부나가, 히데요시, 이에야스 이들의 업적만 알아도 충분하다. 시대 전체적으로 따진다고 해도 다케다 신겐이나 우에스기 겐신 등 3대 천하인 외 유명인은 대개 3대 천하인과 같은 시대 사람이라 밀릴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는 차라리 앞서 말한 호소카와 가쓰모토 · 야마나 소젠이나, 전국시대 중기에 중앙 정부를 좌지우지한 호소카와 정권 사람들이 더 중요한 편.

한국의 전국시대 팬 중 일부는 일본인이라면 이 시대 무장들에 대해 빠삭한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정작 일본인들은 한국의 전국 팬들의 생각보다 전국 무장들에 대해 빠삭한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11]

5.2. 한국

한국사로 치면 대략 조선왕조 초기 ~ 중기와 겹친다. 조선 시대의 국왕 시기로 치면 조선 세조 치세 말년부터 선조 치세 중엽까지가 해당된다. 한국사와 전국시대의 접점이 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왜구(정확히는 후기 왜구). 사실 임진왜란 이전까지 양국 통교가 적극적이지는 않았으니 접점이 많진 않지만. 한편 중앙 정부가 사실상 붕괴하고 각 지방 세력들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축하고 들고 일어난 사회적 분위기의 유사함을 따지면 우리나라는 남북국시대 말부터 후삼국시대가, 중국으로 치면 오대십국시대가 가장 유사하다.

저 시대 조선인들은 일본에 대한 인식이 이후에 비해서도[12] 굉장히 안 좋았다. 왜구가 가장 심각한 요인이기도 했고, 그 다음으로 수시로 신하가 주군을 상대로 반역을 하거나 심하면 시역도 하기도 하고,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도 비슷하게 찬탈하는 등 도덕적인 측면에서 인식이 영 막장인 난세였기 때문이다.[13]

한국의 전국시대 팬들은 소설 대망을 통해 입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귀무자 시리즈를 접하면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으며, 진삼국무쌍 시리즈를 접하고 나서 전국무쌍 시리즈로 와서 전국시대를 파보는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14] 그래서인지 전국시대 인물들을 삼국지에 대입하려는 움직임이 자주 보이는 편이고 그나마 소설 대망도 '일본판 삼국지' 정도로 알고 읽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쨌든 전국시대에 입문하는 한국인들은 삼국지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대부분. 하지만, 한국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전국시대에 대해 어찌 보면 민감한 시선도 있는 편이고,[15] 더더욱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6. 기타

중국사에서 실제 비중에 비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삼국시대와 비교하면, 삼국시대는 조조 · 유비 · 손권이 활약하는 초기의 비중이 크고 이들이 다 죽은 후의 중후기의 관심도가 떨어진다면 이 전국시대는 반대로 초중기의 관심도가 떨어지고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활약하는 말기의 관심도가 높다. 삼국시대의 끝은 제대로 결실을 맺지 못하고 더 혼란한 오호십육국시대/남북조시대로 이어졌지만 일본 전국시대의 끝은 에도 시대라는 결실을 맺었던 게 아마 그 이유가 될듯. 한국의 후삼국 시대의 경우 완벽하게 신라와 고려 사이 교체기인 데다가 중국 일본보다는 기간이 짧고 명확하다. 정작 국내에서 관심을 잘 가져주지는 않는 듣보잡인 듯. 당연하지만 3가지 전국시대 중 가장 인지도가 낮다.

삼국지 같은 경우는 정사에 대한 토론도 많이 이루어지고 오히려 연의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그건 연의의 내용이고 정사에서는 이러이러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진 데 반해 한국의 일본 전국시대 팬덤은 주로 야마오카 소하치나 시바 료타로, 이자와 모토히코 등 한국에 소개된 전국시대 관련 소설을 가지고 그대로 이 시대의 역사를 논하는 경우가 많은 경향이 있다. 특히 이 작가들의 소설도 나온 지 오래 된 작품들이 많아서 이후 이루어진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반영되지 않고 이미 근거가 빈약한 설로 밝혀진 이야기들이 그대로 나도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실 한국어로 번역된 전국시대를 역사적으로 깊이 다룬 서적이 거의 없고 대부분 일본사 개설서에나 나오는 정도라서 일본어나 한자를 잘 모르면 깊이 파고 들어가기가 어렵다. 일본어를 아는 사람들은 일본 위키피디아 등지에서 자료를 검색해서 번역하여 이 시대를 파악하기도 하고, 내공이 깊은 사람들은 이 시대 관련 원서들을 구매해서 읽기도 한다.

7. 전국시대의 인물

전국시대(일본)/인물 문서 참고.

8. 관련 문서 / 인물 묶음

여기에 나온 인물 묶음, 특히 사천왕이니 24장이니 하는 것들은 당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후대에 창작된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구는 사천왕에 들어가지 못하니 듣보잡', '누구는 왜 사천왕에 못들어가?' 란 식으로 크게 얽메이지는 말 것.

특히 전국 과대사천왕이란 단어는 2ch의 전국시대 게시판에서 나온 말이다.

9. 역사적 사건

  • 1467년~1477년 오닌의 난
  • 1478년 제1차 모리 지로의 난
  • 1489년 제2차 모리 지로의 난
  • 1493년 메이오의 정변
  • 1498년 메이오 대지진
  • 1504년 타치카와노하라 전투
  • 1506년 에이쇼의 난
  • 1509년 카타카쿠하라 전투, 뇨이가타케 전투
  • 1514년 타케하야시 전투
  • 1520년 토지인 전투
  • 1523년 닝보의 난
  • 1527년 카츠라카와라 전투
  • 1536년 하나쿠라의 난, 텐분훗케의 난, 제1차 카토우의 난
  • 1542년 텐분의 난
  • 1545년 제2차 카토우의 난
  • 1546년 카와고에 성 전투
  • 1549년 에구치 전투
  • 1550년 니카이쿠즈레의 변, 다이와이지의 변
  • 1553년 카와나카지마 전투
  • 1555년 이츠쿠시마 전투
  •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
  • 1563년 유도코로구치 전투
  • 1565년 에이로쿠의 변
  • 1567년 도다이지 대불전 전투
  • 1569년 엣소 동맹, 아시야 성 전투, 테이츄 전투, 아제이 성 전투
  • 1570년 아네가와 전투, 노다 성 전투, 후쿠시마 성 전투
  • 1571년 겐키의 법란
  • 1572년 미카타가하라 전투, 키자키바라 전투
  • 1573년 오타니 성 전투
  • 1575년 나가시노 전투
  • 1577년 테도리카와 전투, 시기야마 성 전투
  • 1578년 오다테의 난, 미미카와 전투
  • 1580년 미키 성 전투
  • 1581년 타카텐진 성 전투
  • 1582년 혼노지의 변, 야마자키 전투, 빗츄 타카마츠 성 전투, 키요스 회의
  • 1583년 시즈가타케 전투
  • 1584년 코마키 나카쿠테 전투
  • 1585년 텐쇼 지진
  • 1586년 이와야 성 전투
  • 1587년 큐슈 정벌, 파트레이 추방령
  • 1590년 오다와라 정벌(오다와라성 전투, 오시성 전투)
  • 1592년 분로쿠의 역(임진왜란), 타이코 켄지
  • 1596년 케이쵸 이요 지진, 케이쵸 후시미 지진, 산 페리페 호 사건, 26성인 순교 사건
  • 1597년 케이쵸의 역(정유재란)
  • 1600년 아이즈 정벌, 후시미 성 전투, 세키가하라 전투
  • 1604년 케이쵸 대지진
  • 1609년 시마즈 침입 사건
  • 1611년 케이쵸 산라쿠 지진
  • 1614년 호코지 종명 사건
  • 1614~1615년 오사카 전투(오사카 겨울의 진, 오사카 여름의 진)
  • 1615년 잇코쿠이치조레이(일국일성령), 부케쇼핫토(무가제법도), 겐나 엔부

10. 대중 문화 속의 전국시대

일본사에 있어 겐페이 전쟁, 메이지 유신과 함께 가장 역동적인 시대였기 때문에 사극이나 만화, 게임의 소재로 자주 쓰인다. 특히 카드가 주로 등장하는 소셜 게임 장르에선 중국에 삼국지가 있다면 일본에는 전국시대가 있다 함께 내세울 정도로 단골 메뉴.

10.1. 전국시대를 다룬 작품

10.2. NHK 대하드라마

NHK는 대하 드라마를 1963년부터 제작하였다. NHK가 매년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대하 드라마를 제작하지는 않지만 꽤 자주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제작하는 편이다. 80년대처럼 시청률이 미친듯이 높게 나오지는 않지만 최근에도 15~20% 정도는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굵직굵직한 다이묘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2000년대 들어와서는 그런 다이묘들의 가신이나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야기가 많은 편이다. 그야말로 일본 사극의 최고 떡밥


  1. [1] 이 글은 우타가와가 살았던 에도 시대 말기에 누군가가 적은 낙서 비슷한 글이라고 한다. 떡을 찧고 있는 사람이 오다 노부나가아케치 미츠히데(절구를 찧고 있는 사람이 노부나가고, 절구 안에 손을 넣고 있는 사람이 미츠히데다)이고 반죽하는 원숭이같이 생긴 사람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뭐 사실 일본 현지 관련 대하 드라마에서도 보면 오다 노부나가가 히데요시를 향해 "원숭이,"라고 부르는 장면이 보이긴 한다.), 오른쪽 위에 앉아서 혼자만 투구를 쓰고 뭘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2. [2] <도해 전국무장(圖解戰國武將)>의 저자인 이케가미 료타는 이 설을 채택하고 있다.
  3. [3] 이 해는 일본 전국시대에서 상당히 중요한 해다. 다케다 신겐 사망, 무로마치 막부교토 축출, 아자이-아사쿠라가가 멸망하면서 오다 노부나가의 긴키 지역 패권이 확립된 해.
  4. [4] 이건 학계에서 구분한 것이고, 대중적으로 전국시대를 접하는 이들에게는 특히 전국시대 전체를 알기 어려운 한국에서는 길게 잡아도 호조 소운 등 3효웅이 나타날 때부터 세키가하라 전투나 오사카 성 전투까지로 인식한다. 소설이든 만화든 게임이든 이 테두리 안에서 노니까.
  5. [5] 그래서 일본 위키피디아에서는 '쇼쿠호 시대'를 검색하면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로 리다이렉트된다.
  6. [6] 토지 측량과 생산력
  7. [7] 더구나 이것은 자신의 세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한 수단이었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하고도 예민한 문제였다.
  8. [8] 사실 한국사에서도 무신정권 시대에 최충헌, 최우 등 무신권력자들이 기존 왕실과 문벌귀족들이 후원하던 교종을 억압하고 선종을 키우는 과정에서 교종 사찰들의 군사력을 동원해 반란을 일으킨 사례가 많은것을 보면 고려시대까지는 사원이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고 많은 인력을 동원할수있는 일종의 호족과 같은 성격이 있었다고 볼 수있다.
  9. [9] 3대 효웅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냥 효웅이라고 하면 도산부터 떠올릴 정도.
  10. [10]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역사 편에서 이원복 교수도 마찬가지로 이 셋에다 오닌의 난의 원인인 아시카가 요시마사 일가와 양편의 실권자 호소카와 가쓰모토 · 야마나 소젠만 언급하고 3대 천하인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그림 중에 다케다 가의 문장 '마름모'와 같이 나오는 사람이 있는데 묘사를 보면 다케다 신겐 같지만 이름이 안 나온다.
  11. [11] 사실 한국의 경우도 후삼국 시대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궁예, 견훤, 왕건 이렇게 3명 정도 아는 수준이고, 임진왜란에 대해서도 이순신, 선조, 원균(…)본인이 유명해지고 싶은데 어려울 것 같으면 많이 무능해지도록 하자 정도나 알고 조금 더 아는 사람들도 권율, 김시민이나 곽재우, 사명당 정도로 유명한 의병들이나 신립, 김명원 정도 아는 수준이니 일본인들이 3대 천하인 빼고 잘 모르는 것과 별로 다를 것도 없다. 여하튼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12. [12] 여전히 오랑캐라고 까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좀 아는 부류들은 일본에서 서적을 수입해 보거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등 최소한 이전에 비해서는 나았다.
  13. [13] 당시 유교가 국가 통치의 이념이었던 조선에서, 특히 삼강오륜을 절대적으로 삼던 조선 사회에서 당시 일본의 이러한 행태는 '천한 것들'이나 일삼는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괜히 '군신유의'를 운운했던 게 아니다.
  14. [14] 특히 이 게임 시리즈 제작사인 코에이는 완벽하게는 아니어도 일단 고증은 철저하게 하는 회사로 유명하고 또 게임에서 등장하는 문장들 역시 실제 그 모습과 성격 그대로 구현하는 편이라 많은 참조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전국 바사라와 같은 허구투성이인 작품에서도 실제 모습을 바탕으로 이를 뒤틀려 해석하는 식이 대부분이다(단 그런 만큼 왜곡은 심하다.).
  15. [15] 전국시대의 대표 인물 중 하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그렇고,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등 임진왜란의 왜장들도 전부 전국시대 인물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몇 세기 전의 일이 지금까지 민감하게 여기는 이유는 비교적 최근 일인 일제강점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16. [16] 영걸전 시리즈 3편으로, 노부나가 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여러 전국시대물들과 달리 모리 모토나리가 주인공이다.
  17. [17] 영걸전 시리즈 4편. 말 그대로 오다 노부나가가 주인공이며 이미지는 노부나가의 야망 무장풍운록에서 가져왔다.
  18. [18] 이쪽은 거의 최소한의 모티브만 빌려온 특촬물.
  19. [19] 원작은 전국 무장 모에화 게임. 애니메이션은 타임슬립물로 배경이 현대다. 모에화된 무장들이 현대로 타임슬립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메인.
  20. [20] 국내로 넘어오면서 조선시대로 로컬라이징 되는 대참사를 맞이 했다.
  21. [21] 짱구는 못말려 10기 극장판으로 짱구네 가족이 전국시대로 타임슬립해서 겪는 일들을 그렸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치고 고증이 웬만한 사극 뺨칠 정도로 수준급이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22. [22] 1990년에 같은 원작을 기반으로 영화화도 된다.
  23. [23] 2009년에 토쿄 TV 계열에서 나카마 유키에를 주연으로 리메이크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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