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동명이인인 전 농구선수에 대한 내용은 정병국(농구) 문서를, 뻐꾸기 둥지의 남자주인공에 대한 내용은 정병국(뻐꾸기 둥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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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여주시·양평군)

선거구 개편
정병국[A]

제20대
정병국

현직


바른정당 대표

초대
정병국

대행
주호영

2대
이혜훈

대행
주호영

3대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양평군·가평군)

제15대
김길환

제16~18대
정병국

선거구 개편
정병국[2]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기 여주군·양평군·가평군)

선거구 개편
이범관[3]
정병국[4]

제19대
정병국

선거구 개편
정병국[5]
김영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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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병국(鄭柄國, Choung Byoung-gug)

출생일

1958년 2월 10일 (62세)

출생지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부리

본관

봉화 정씨

신체

173cm

학력

서라벌고등학교 (졸업 / 20회)
성균관대학교 (사회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학 / 석사)
성균관대학교 (정치학 / 박사)

병역

해병대 병장 만기전역

소속 정당

지역구

경기 여주시·양평군

의원 선수

5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 대수

16, 17, 18, 19, 20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종교

천주교(세례명: 이냐시오)

가족 관계

2남 3녀 중 차남

배우자

이상희[7]

자녀

1남 1녀[8]

약력

제16~20대 국회의원
바른정당 당원대표자회의 의장
바른정당 대표
제45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한나라당 사무총장
바른미래당 경기도당위원장
바른미래당 청년정치학교장
새로운보수당 인재영입위원장

외부 링크

공식 블로그

1. 개요
2. 생애
2.1. 정치 입문 전까지
2.2. 정계 입문 후
2.2.1. 상도동계 입문
2.2.3. 4선
2.2.4. 5선
3. 선거 이력
4. 저서
5. 기타
6. 둘러보기

진보와 보수의 차이는 개혁의 속도에 있다. 개혁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점진적으로 변화를 통한 사회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보수이지, 변화를 외면하고 개혁하지 않으며 고여 있는 썩은 물이 되겠다는 것이 보수는 아니라는 말이다.

그의 저서 <나는 반성한다 - 다시 쓰는 개혁 보수>에서

1. 개요

대한민국민주화 운동가 출신 정치인. 2020년 현재 유일한 YS 직계 및 상도동계 국회의원이다.[9] 2017년 초반 바른정당의 초대 대표를 맡았으며, 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을 거쳐 2020년 통합신당추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10]으로서 중도-보수 통합을 주도, 2월 17일 창당 예정인 미래통합당 합류를 하면서 창당을 했다,

대학생 시절인 5공 때 민주화 운동과 학생운동을 했다가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다가 6.29 선언으로 석방된 사회운동가였으며, 정계 입문 이후 상도동계의 젊은 정치인으로 활동하였고, 2000년대 남원정이라는, 보수정당 내 민주계와 소장파를 대표하던 인물 중 하나였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새누리당이 위기를 맞을 때 유승민, 남경필 등과 함께 당내 개혁 및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였으나 친박의 비토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6년말 김무성, 유승민과 개혁 보수를 가치로 내세워 바른정당을 창당하여 초대 대표를 맡았다. 이후 바른정당이 잇따른 탈당 러쉬가 있을 때 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으며, 2018년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 참여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게 되었다. 2019년부터 중도-보수 진영 인사들과 회동하며 혁신통합추진위원회 구성에 앞장섰고, 2020년 통합신당추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21대 총선을 앞둔 보수통합의 핵심역할을 수행하였다.

2. 생애

2.1. 정치 입문 전까지

1958년 2월 10일,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당시는 여주군)에서 태어났다. 개군국민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서울로 전학을 갔고, 이후 용문중학교, 서라벌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서 공부하기를 희망하였으나, 개군국민학교에 재학 중이던 1969년에 교육제도가 바뀌어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학 1년 전부터 서울에 거주해야 하게 되었다. 이에 정병국은 서울로 이사 가기를 원하였으나 아버지는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정병국의 강한 의지를 꺾지 못하였고 마지막 날에 간신히 서류처리를 완료하였다.

1978년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하였다. 입학 직후부터 학생운동을 하다가 경찰의 수배명단에 오르기도 했다. 이를 피해 포항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 1979년 10.26 사건를 접하고, 곧바로 상경하여 다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특히 전국 총학생회 부활 준비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아 활동하였는데, 그의 의지대로 총학생회는 부활하고 있었지만, 1980년 5·17 군사정변 직후 신군부에 검거되었다. 신군부에서는 군 입대 또는 투옥 중에 선택할 것을 강요했고, 정병국은 대한민국 해병대 입대를 선택, 해병대 헌병으로 사병복무를 하였다.

전역 후 복학하여 1984년에 성균관대를 졸업, 본격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수배를 받으면서도 '세인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서울 지역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인쇄물을 공급하였고, 군사 정권과 투쟁하는 학생들을 꾸준히 지원하였다.

1987년 6월 23일 국가안전기획부에 의해 검거되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고문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6·29 선언이 일어났고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었다. 실제 모진 고문을 받다가 6월 후반에 갑자기 풀어주었다고. 당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11] 소속 변호사들이 변론을 자청하며 도움을 받은 바 있다.

2.2. 정계 입문 후

2.2.1. 상도동계 입문

민추협과의 인연을 계기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를 도우며 정계에 입문하였다.[12] 이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통일민주당 총재비서관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민주자유당 대표비서관을 역임한다. 김영삼 정권 때는 청와대 제2부속실장[13]을 역임하였는데, 그의 나이는 당시 36세로 당시 임명된 비서관 중 가장 젊은 나이었다. 다만 61년생인 김영춘이 94년에 정무비서관이 되며 그 기록을 경신했다.

청와대 제2부속실 근무 중에 미국 국무부의 공식 초청으로 IVP (International Vistitors Programme)에 참가했다. 이 행사는 김대중, 김영삼, 김근태, 이부영 등 당대의 이름있는 정치인들도 참가한 것으로, 여러 나라에서 차세대 지도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초청된다.

2.2.2. 초선~3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경기도 양평군-가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남경필, 원희룡 등과 소장파의 대표격으로 활동하여 남-원-정 트리오로 이름붙여졌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며 친이계 정치인이 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0년 초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치러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부진한 결과를 얻자 사무총장직을 사임하였다. 2010년 제18대 국회 후반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1년 1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재임 중 평창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또한 프랑스와의 협상을 통해 국보급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를 환수하였으며, 한류의 확산을 촉진하기 위해 재외 한국문화원을 24개까지 신설하며 K-POP, 드라마 등 한류 확장을 꾀했다.

2.2.3. 4선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여주군-양평군-가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경기도 면적의 1/4이 넘는 지역구를 관리하면서도 수도권 후보자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당선 후 2013년 새누리당 지역공약실천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역대정부 최초로 대통령의 공약에 대한 실천 로드맵을 구성하였다.

또한 여야 의원 56명이 가입된 국회 최대의 의원단체인 인성교육실천포럼의 상임대표를 역임하며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법제화한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했다. 이어 국회 군 인권 개선 및 병영문화 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관련예산의 증액을 주도했으며,[14] 병영 독서운동의 확장을 위해 격오지 독서카페 나눔 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19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으로 한국식 공공외교 확장에 앞장섰으며, 국회의원축구연맹 회장으로 한일 국회의원 축구대회를 개최하며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포석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자신의 지역구 내에 소재한 교통 오지인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를 위해 여객 취급을 하지 않던 중앙선 석불역의 영업 재개를 밀어붙였고, 결국 2013년부터 작은 역사를 짓고 영업을 재개하게 되었다.[15]

2.2.4. 5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로 경기도 여주시-양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63.51%의 득표율을 기록, 20대총선 수도권 최다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016년 8월에 예정된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경선에 출마를 선언했다. 김용태, 주호영 의원과 함께 비박계 주자로 나섰다가 7월 29일자로 김용태 의원과 단일화를 합의하여 비박계 후보는 정병국과 주호영 2명이 되었다. 8월 5일에는 주호영 의원과 단일화에 합의하여 사퇴하였고, 비박계 단일 후보로 주호영 의원이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주호영 의원도 이정현 의원에게 큰 표차로 패배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이를 수습하기 위한 새누리당 비박계 중진 의원들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결국 비박계를 포함한 새누리당 의원 35명은 탈당을 결정했고, 정병국은 바른정당(당시 가칭 개혁보수신당)의 창당추진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발기인 대회를 거쳐 창당준비위원장으로 공식 추대되었고 창당과 함께 초대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2017년 1월 11일, 이명박 정당인 늘푸른한국당에 축하 인사 차 찾아와서, 이재오, 정운찬, 최병국에게 반갑게 인사한 다음, 이재오와의 인연을 언급하며 축사를 낭독했다.

3월 10일 박근혜 前 대통령이 파면된 가운데 분당-창당-탄핵까지 자기 소임을 다했다며 바른정당 당대표직에서 사퇴하였다.# 그 후 주호영 원내대표가 대표권한대행을 겸하게 되었다.[16]

2018년 2월에는 바른정당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의결하였는데, 잔류해 바른미래당 출범에 합류하는 쪽을 선택했다. 남원정의 일원이었던 남경필은 통합에 반발하여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하면서, 남원정의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심지어 바른미래당 창당대회에서 인삿말까지 했을 정도로 당내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남경필이 복당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바른미래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17], 본인은 바른미래당의 최다선 의원이라는 점으로 인해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

2018년 7월 11일, 주승용과 함께 하반기 국회부의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바른정당 출신들은 경선으로 결정하면 국민의당 출신 당원세가 강하므로 통합의 정신을 들며 바른미래당 최다선인 정병국의 추대를 원했지만, 결국 원래대로 경선을 치러 주승용이 부의장으로 결정되었다.

언론에서 그가 자유한국당에 복당한다는 설을 보도했는데, 정작 정병국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개혁 없이는 묻지마 반문연대는 절대 할 수도 없고 복당할 리도 없으며, 유승민 전 대표도 절대 복당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반박 인터뷰를 하였다. 해당 기사[18]

같은 당에서 4차산업혁명특별위원장을 맡던 이혜훈 의원이 정보위원장이 됨에 따라, 정병국 의원이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장에 내정되었다. 실제로 정병국 의원은 블록체인암호화폐 공개 법안 발의에 노력을 기울였고, 당 운영에 블록체인 도입을 시도하는 등의 활동을 하여, 국회 내 '블록체인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

2020년 1월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였다.

2020년 3월 9일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 당 지도부는 수원무 지역구 공천을 권유했지만 거절하고 불출마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공관위에서 최홍 후보가 공천 취소된 강남구 을에 공천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진 전 의원이 공천되었다.

3.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평·가평)

한나라당

31,013 (46.32%)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평·가평)

한나라당

39,280 (59.00%)

당선 (1위)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양평·가평)

한나라당

38,393 (65.03%)

당선 (1위)

3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여주·양평·가평)

새누리당

71,544 (67.46%)

당선 (1위)

4선 [19]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경기 여주·양평)

새누리당

59,625 (63.51%)

당선 (1위)

5선[20] [21]

4. 저서

<나는 반성한다-다시 쓰는 개혁 보수>(2017) - 정병국 본인의 정치관을 매우 자세하게 풀어낸 책이다.[22] 책 자체는 명문이나, 하필 홍준표를 언급한 부분 때문에 홍준표에게 소송이 걸려 법정다툼을 했다. 1심에서 다수 패소했으나 항소심 결과를 하루 앞두고 홍준표 측에서 고소를 취하했다.#

5. 기타

  • 동안미중년이다. 2020년 현재 만 나이62세인데, 그 나이보다 젊어보인다. 게다가, 체력이나 체격도 좋다고 한다. 국회 생활을 했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의원회관 내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하는 걸 보면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20대보다 건장한 근육질이라고 한다. 심지어 등산도 매우 즐겨하는 편인지라...
  •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판했던 연극 환생경제에 출연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깍뚜기(5000년 역사 바로 세우기 위원장)역이 바로 정병국이다.
  • 애묘인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고양이 등의 반려동물들을 매우 좋아하는 걸로 알려졌는데, 관련 입법도 많이 한 편.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도 애묘를 한 마리 키우고있다. 양평 자택에도 애묘를 키우고 있다고. 2018년 지금은 잘 안 보이지만 17대 국회 때에는(그러니까 재선 때) 국회 본회의장에 고양이를 데리고 들어오기도 했다. 심지어 2019년부터는 양평 본가에서 강아지도 같이 기르고 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동물애호가인 것이 틀림 없다
  • 19대 대선 이후 '나는 반성한다-다시 쓰는 개혁보수'라는 책을 냈다. 왜 보수정당과 보수 정치인이 몰락하고 청년층에게 버림받았는지에 대한 설명과 반성, 어떻게 보수가 다시 인정을 받을지에 대한 대안을 적은 참회록이다. 출판기념회를 위한 자소설이 판치는 정계 책시장에서 보기 드문 양서이다. 여담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유한국당에서는 이 책을 두고 카오스가 열렸다.
  • 김영삼 전 대통령의 손자인 김현철의 장남이 얼마 전부터 정병국으로부터 정치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과거부터 김현철과는 친분이 있기 때문.[23]
  • 처음 청와대에서 일할 때나 상도동계에서 비서관으로 활동했을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를 친근하게 뱅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다만 정병국이 국회의원이 된 이후로는 "정 의원"이라고 불렀다고.
  • 바른정당에서는 유승민, 남경필,[24] 하태경, 지상욱 등과 함께 자강론자로 꼽힌다. 바른정당 친이계 최측근 라인 중에서 주호영, 김영우가 중재론/자강론에서 통합론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 때 결국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하게 되었다는 점을 보면 의외라면 의외겠지만,[25] 애당초 정병국의 경우 친이계 내에서도 상도동계 최측근이었고 개혁보수 성향이 강한 소장파형 인물이었다 보니 딱히 신기할 건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이상득 관련 예산을 삭감한 한나라당 소장파 중 한 명이었을 정도. 다만 남경필 지사의 경우에는 결국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 바른정당의 초대 당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당원대표자회의 의장을 맡을 정도로 당내에서 여러모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유승민 대표와 함께 바른정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을 정도. 다만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너무 빨리 대표직에서 사임하신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많았다고 한다. 그럴 법도 한 것이 정병국 사임 후 유승민 취임 전까지 바른정당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기도 했고. 이후 이혜훈 전 바른정당 대표와 함께 2018년 1월 28일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추진위원회의 인재영입위원이 되었다.[26]
  • 본인의 정치관을 들어보면 실제로 故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명순 여사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실제 손명순 여사의 보좌관으로도 활동한 바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YS 정신에 대해 민감한 정치인이기도 하다. 홍준표자유한국당 당사에 박정희김영삼 사진을 같이 걸어놓은 것에 대해서 "김영삼이 잡으려고 했던 호랑이는 박정희였다. 당신이 YS에 대해서 알긴 아느냐"며 비판했을 정도. 이런 부분 때문에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보수 정치인이기도 하다. 실제 그는 기존 보수 정치인들과는 달리 보수-진보 구분을 이승만, 박정희 시절이 아닌, 김영삼-김대중 등의 민주화의 두 아버지들에 의해 분화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이러한 관계로 3당 합당에도 군사독재 세력을 합류시킨 점에서 한계점이 명확했다고 밝혔다.[27]
  • 배우자 이상희 씨는 1991년 김영삼이 민자당 총재 시절 비서관을 뽑다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 상도동계 정치인들이 "병국이 장가 보내야지", "정병국 배우자 뽑는 것이다"라는 농담도 많이 했는데, 이 인연이 되어 결혼에 이르게 되었다고. 일종의 사내커플. 본인에 따르면 이상희 씨 덕분에 정치 활동에 여러모로 힘이 되었다고. 게다가, 부부관계도 좋은 건지 1994년생 큰아들을 제외하고 하나 있는 딸이 2018년 기준으로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딸을 44세였던 2002년에 봤는데, 무려 40대 중반이 될 무렵에 본 것. 유승민의 딸 유담보다 훨씬 더한 늦둥이인 셈.[28]
  • 정치 평론가로 활동 중인 김갑수 시인과는 친구 사이라고 한다.
  • 2017년 말 에티오피아에 순방을 갔다 왔는데, 직접 커피를 만들 때 그의 안경을 쓰지 않은 쌩얼 사진[29]이 나와 지지자들 뿐만 아니라 당원들도 환호했다. 다만 본인에 따르면 그 때 아디스아바바에 안경을 두고 와서 어쩔 수 없이 쌩얼로 다니게 되었다고. 다만 김무성/논란에서 보듯이 김무성과 같이 사파리 관광을 다녀왔다는 설이 있어 비판받기도 했다.
  • 바른미래당 창당 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18%를 넘어가면 슈퍼맨 쫄쫄이 복장을 하고 국회를 한 바퀴 돌겠다는 공약을 했었으나, 막상 지지율이 좋지 못하면서 이루어지지 못 하게 되었다.
  • 유명 연예인인 이수근과 (호적상이기는 하나) 생일이 같은데, 심지어 동향 사람이다. 이수근은 출생지가 (당시) 이천군 이천읍이었지만, 자란 곳은 양평군 개군면 주읍리였다.[30]
  •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와는 성향이 같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여러모로 유승민과 개혁보수 진영을 조력하고 있어 향후 유승민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무총리로 임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일부 커뮤니티에서 나오기도 한다.
  • 본인의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직접 관리하는 듯 하다. 거의 모든 댓글에 직접 좋아요를 눌러 주며, 질문에는 답변을 성실하게 해 주는 편이다. 주로 인스타그램에는 지역구 활동이나 자신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주로 업로드되고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게시물은 거의 업로드되지 않는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게시물은 주로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편이다.
  • 자이언트 펭TV에서 펭수외교부 청사에 방문한 것과 관련한 에피소드도 있다. 한 시민으로부터 외교부가 펭수출입과정에서 신원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해당 사안에 대한 절차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를 받은 정병국 의원이 펭수 출입절차와 관련된 절차준수 여부를 점검했으나 외교부에서는 "출입관련 업무는 행안부소관"이라고 답할뿐, 어떠한 소명도 하지 않았고, 행안부에서도 "외교부와의 협의는 비공개"라고 답할 뿐이어서 논란이 되었다. 외교부에 대한 정책적 지적이 펭수에 대한 지적으로 오해받은 것. 국가의 주요 업무를 맡는 기관인 만큼 규정을 지켜지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 걱정되어 한 말일 수도 있으나 팬들에게 펭수의 콘셉트를 깨부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후 외교부는 EBS와 협의 하에 사전에 펭수를 포함한 제작진 전원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해명했다. 덧붙여 외교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펭수가 사람이 쓴 인형탈인지는 확실치 않고 남극에서 온 10살짜리 펭귄이 맞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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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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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중

조응천

김한정

주광덕

안민석

함진규

조정식

김정우

이학영

이현재

이우현

김민기

한선교

용인 정

파주 갑

파주 을

이천

안성

표창원

윤후덕

박정

송석준

김학용

김포 갑

김포 을

화성 갑

화성 을

화성 병

김두관

홍철호

서청원

이원욱

권칠승

광주 갑

광주 을

양주

포천·가평

여주·양평

소병훈

임종성

정성호

김영우

정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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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 1.1 양평군·가평군 선거구 제16대,제17대,제18대 국회의원여주군·양평군·가평군 선거구 제19대 국회의원여주시·양평군 선거구 제20대 국회의원
  2. [2] 여주군·양평군·가평군
  3. [3] 이천시·여주군
  4. [4] 양평군·가평군
  5. [5] 여주시·양평군
  6. [6] 포천시·가평군
  7. [7] 그녀 역시 사회운동가 출신으로, 1990년 김영삼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가 1993년 정병국과 결혼했다.
  8. [8] 장남은 1994년생. 장녀는 2002년생이다.
  9. [9] 원외 인사까지 포함하면 손학규 2대 대표까지 포함하지만, 손학규는 YS 직계라 보기에는 애매하다. 또한 정운천과 유이하게 친이계 정치인이기도 하다. 다만 네임드 상도동계 정치인인 이재오, 정의화 등의 친이 중진과는 달리 친이 중진이라 보기에는 행보에 차이점이 있어서 친이계라기보다는 친이 성향을 가진 상도동계로 더 많이 분류된다.(여담으로 현역 20대 국회의원인 친이계로는(친무, 친홍 제외) 정병국 외에는 주호영김영우가 있다. 친이계는 19대 국회에서도 중진 위주로만 살아남았고 20대에서는 새누리당 공천 파동으로 인해 세가 많이 죽어있는 편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는 같은 세대인 김영춘, 박재호가 막내라 볼 수 있다. 즉, 정병국과 김무성, 김영춘, 박재호는 상도동계 막내뻘 정치인인 셈. 재밌는 것은 범동교동계박주선바른미래당에 합류하면서 한솥밥 사이를 지냈다.
  10. [10] 통합혁신추진위원장 박형준, 자유한국당의 심재철, 전진4.0의 이언주 등과 함께 창당준비위 공동위원장을 역임했다.
  11. [11] 1984년 당시 야권의 재야정치인들이 조직한 정치단체로, 김대중김영삼을 중심으로 결집한 단체다.
  12. [12] 이 때문에 상도동계 막내뻘 정치인으로 보기도 한다. 단 일반적인 시각에서 상도동계 막내 정치인은 김무성 의원.
  13. [13] 제 1부속실은 대통령을 담당하고, 제 2부속실은 영부인을 담당한다. 단 대통령 배우자가 없던 박근혜 정부 시절에 제 2부속실은 비선실세최순실을 담당했고(...) 지금은 김정숙 여사(영부인)을 담당한다.
  14. [14] 정병국은 해병대 출신이기도 하다.
  15. [15] 정차하는 열차는 상행은 1626(제천 발 청량리/오전), 1606(안동 발 청량리/저녁), 하행은 1631(청량리발 강릉/오전), 1609(안동 발 청량리/저녁) 총 2왕복이다.
  16. [16] 이후 6월 26일 이혜훈이 새 대표로 선출되었으나 수천만원 금품수수 의혹으로 낙마하고 다시 주호영 원내대표가 겸하다가 11월에 유승민 의원이 3대 대표에 취임했다.
  17. [17] 만일 이게 실제 이루어졌으면 남원정의 멤버 중 2명이 경쟁하게 되는 결과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바른미래당 후보로는 김영환 전 장관이 출마했다. 이외에도 이언주, 유의동 의원도 거론된 바 있다.
  18. [18] 심지어 정병국 의원에 따르면, 유승민 의원은 이학재 의원이 자유한국당 복당을 고민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답이 아니다."라고 말렸다고 한다. 물론 유승민 전 대표가 현 바른미래당 지도부에 대해 개혁보수를 외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고는 했다지만, 그렇다고 자유한국당행은 할 생각이 없다는 뜻. 정황상 바른미래당 내에서 보다 개혁보수 노선을 적극 외치는 쪽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19. [19] 수도권 최다득표율
  20. [20] 2016.12.27 새누리당 탈당
    2017.01.24 바른정당 창당
    2018.02.13 바른미래당 창당(신설합당)
    2020.01.03 바른미래당 탈당
    2020.01.05 새로운보수당 창당
  21. [21] 수도권 최다득표율
  22. [22] 같은 당 유승민 전 대표의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23. [23] 다만 초창기 정병국이 청와대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김현철과 미묘하게 갈등은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동년배 측근들은 대체로 행정관급이었는데, 정병국 혼자 실장급이었기 때문(즉, 한 급 더 높았다). 이 때문에 김현철이 실제로 부모님인 김영삼-손명순 부부와 다툼도 벌였을 정도였다.
  24. [24] 남경필은 2018년 1월 8일 바른정당을 탈당하여 같은 해 1월 15일 자유한국당에 복당했다.
  25. [25] 바른정당 內 친이계 최측근들은 이명박 前 대통령이 적폐청산 대상으로 지정되며 공격당하게 된 상황에, 이명박, 이재오 및 친이계와 상당한 친분이 있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자유한국당에 정치보복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이명박을 감싸는 행동을 하면서 이들과 물밑 교류를 지속했고, 그 결과 바른정당 1차 탈당사태 때 김무성의 측근들인 친무라인들이 모두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한 것에 이어, 바른정당 2차 탈당사태 때는 친이계가 바른정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하게 된다. 실제로 바른정당 탈당사태 때의 양상을 보면, 1차 때는 김무성계 인물들이 모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고, 2차 탈당사태 때 친이계 인물들이 정병국과 몇몇을 제외하고 대거 자유한국당으로 입당하게 된다.
  26. [26] 국민의당에서는 김중로 의원, 이동섭 의원이 임명되었다.
  27. [27] 실제 3당합당이 발표되었을 때 정병국은 반발했으나, 이후 김영삼이 설득하면서 받아들였다고.
  28. [28] 다만 정병국의 경우 결혼 자체가 늦었던 편이라(유승민보다 11년 정도 늦었다.) 큰아들이 유담 또래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승민보다도 자녀들의 터울이 더 큰 건 사실.
  29. [29] 1990년대 청와대 근무 이후로는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30. [30] 이수근의 호적상 생일은 1975년 2월 10일로, 정병국과 17년 차이가 난다. 다만 실제 이수근의 생일은 1974년 12월 30일.
  31. [31] 이언주 의원은 2011년 무렵 성공회로 개종하기는 했으나, 이와는 별도로 국회 내 천주교 신자 모임에는 계속 참석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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