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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무소속

153석

81석

18석

14석

5석

3석

25석

제18대 국회, 제18대 국회의원

투표참여자에게 2000원의 공공시설 이용료를 할인해 주는 티켓을 준 적이 있다.

1. 개요
2. 배경
3. 결과
4. 분석
5. 트리비아
5.1. 출구조사와 결과가 다르게 나온 지역구
6. 국회의원 목록
7. 관련항목

1. 개요

이명박 정부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1]

제6공화국 이래로 압도적 여대야소, 압도적 보수독주 의석구조를 안겨준 선거[2]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8년 4월 9일 수요일에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며 투표율은 46.1%였다. 참고로 2002년 6월 13일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기록 48.9%를 깨버린 국내 전국단위 선거 사상 최저 투표율이다.[3]

2. 배경

국회의원 지역구를 경기도를 49석에서 51석으로 2곳 늘리고(243->245) 비례대표를 2석 줄여(56->54) 의원 정수를 현행대로 299명으로 유지하는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했다. 선거에 참여한 정당은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친박연대, 평화통일가정당, 사회당 등이 있다.

3. 결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친박연대

무소속

합계

서울

7

40

0

0

1

0

0

48

인천

2

9

0

0

0

0

1

12

경기

17

32

0

0

0

1

1

51

강원

2

3

0

0

0

0

3

8

대전

1

0

5

0

0

0

0

6

충남

1

0

8

0

0

0

1

10

충북

6

1

1

0

0

0

0

8

광주

7

0

0

0

0

0

1

8

전남

9

0

0

0

0

0

3

12

전북

9

0

0

0

0

0

2

11

부산

1

11

0

0

0

1

5

18

울산

0

5

0

0

0

0

1

6

대구

0

8

0

0

0

3

1

12

경남

1

13

0

2

0

0

1

17

경북

0

9

0

0

0

1

5

15

제주

3

0

0

0

0

0

0

3

지역구

66

131

14

2

1

6

25

245

비례

15

22

4

3

2

8

-

54

총합

81

153

18

5

3

14

25

299

비례대표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인

통합민주당

4,313,645

25.2%

15

한나라당

6,421,727

37.5%

22

자유선진당

1,173,463

6.8%

4

민주노동당

973,445

5.7%

3

창조한국당

651,993

3.8%

2

친박연대

2,258,750

13.2%

8

국민실향안보당

93,554

0.5%

0

기독사랑실천당

443,775

2.6%

0

문화예술당

33,966

0.2%

0

시민당

17,656

0.1%

0

신미래당

12,122

0.1%

0

직능연합당

16,622

0.1%

0

진보신당

504,466

2.9%

0

평화통일가정당

180,857

1.1%

0

사회당

35,496

0.2%

0

총합

17,131,537

100.0%

54

4. 분석

출구조사 영상. 총선 출구조사답게(?) 이때도 한나라당 과반만 맞추고 정작 의석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심지어 친박연대의 경우 실제 의석과 정당 득표율이 예측 최대치의 두 배였다.(...)

한나라당뉴타운 열풍에 힘입어[4] 선거 초반 최대 200석까지 내다보는 압승을 예상하기도 했지만 친박 공천 학살의 역풍으로 수도권에서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72 vs 26) 영남권[5]충청권에서[6] 상대적으로 부진하면서 153석으로 간신히 과반수를 넘겼다.

통합민주당은 참패했다. 민주당 계열에선 그야말로 흑역사와도 같은 선거였는데, 의외로 선거운동기간 중반에는 상당수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을 따라잡아서 여론조사 상으로는 이기기도 했다만, 막상 선거일에는 투표율이 고작 46%밖에 안나오는 데다, 뉴타운 열풍이 불면서 수도권에서 당 중진들이 줄줄이 낙선하며 말 그대로 떡실신 당했다. 충청북도와 강원도에서 선전하고, 부산 경남에서도 지난 총선과 비슷한 2석을 확보함으로 그럭저럭 선전했지만 수도권에서 내상을 크게 입은 덕택에 겨우 81석밖에 못 건졌다.

동시에 지난 총선 과반이었던 제1당 상실은 기본, 목표인 개헌저지선을 10년만에 미달하며 지선, 대선에 이은 쐐기를 박는 3연패를 당했다. 다만 이후 MB정권의 실정에 의해 민주당이 야당 버프를 받으면서 재보궐에서 족족 이기며 87석까지 확보하면서 사실상 개헌선을 지켜내긴 했다만, 개헌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반 법안들에서는 계속 끌려다녔으니 큰 의미는 없었다.(...) 통합민주당은 197곳에 공천했지만 수도권에서 참패하여 제2당으로 내려앉았는데, 이 81석은 역대 야당의석 가운데 평화민주당(70석) 이래 가장 적은 수였다. 그나마 평화민주당 땐 야권분열이나 3당합당 등의 외부적인 요인이라도 있었지...통합야권의석으로 치면 민주 81 + 호남 무소속 6 + 창조한국당 3 = 90석으로, 민주노동당 5석을 넣어도 14대 총선(98석 이상)과 15대 총선(95석 이상)에 못미치는 역대 최저였다. (무엇보다 15대 총선은 전면적인 야권 분열 상황이었고 18대는 그렇지 않았다.)

다만 까놓고 내용물로 보면 무주공산이 된 충청북도열린우리당 때처럼 계속 석권하는 등[7] 아주 내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손학규를 종로구에, 정동영을 동작구을에 배치하고도 떨어지는 등 수도권 유력인사들의 낙선이 컸다. 17대 때도 그랬지만, 뒷심이 부족한 민주당 지지율이 MB정부 불어닥친 뉴타운 열풍을 만나 흔들렸고, 이로 인해 경기도에선 한명숙, 서울특별시에선 김근태, 최재천, 임종석, 이인영 등이 낙선했다. 심지어 관악구, 금천구, 구로구, 도봉구 등 서울 서남쪽과 동북쪽의 야당 아성도 모두 무너졌다. 보통 민주당계가 유리했던 수도권 111석 가운데 고작 26석만을 건지는 대참패를 당한 셈(4년 전은 109석 가운데 76석).

한편 박지원, 이인제, 강운태와 같은 구 민주당 출신들은 이른바 "개혁 공천"에 따라 낙천되자 무소속 출마하여 대거 당선되었으며, 이후 선진당으로 간 이인제를 제외하고 대개 복당했다.[8]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탈당한 정동영이 승리 후 이 루트를 밟았다. 신계륜, 김영환도 무소속 출마에도 불구하고 20%대의 건실한 2위 득표로 결국 복당 후 부활했다. 정읍시의 유성엽은 제19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무소속으로 압도적 득표로 살아남은 후 복당. 이윤석, 김영록도 같은 케이스. "공천 학살" 소리까진 안 나왔지만 탄핵사태에 대한 책임을 상당히 물었으니 사실상 (합당을 주도한 인력을 제외한) 구민주계에 대한 복수였던 셈이다.

친박연대는 이른바 "공천 학살"에서 탈락한 서청원, 홍사덕 등의 친박 인사들이 한나라당의 결정에 불복하고 탈당하여 미래한국당에 입당한 후 당명을 친박연대로 바꾸고 총선에 출마한 당이다. 덕분에 이념이나 정책이 아닌 그저 개인 숭상을 위해 만든 당이라고 까이기도 했지만, 비례대표에선 자그만치 13%[9]를 득표하며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지지율 3위를 기록해 지역구에서 당선된 6석[10]을 비롯해 총 14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게다가 이 숫자에 10여명의 한나라당생존자 친박과, 김무성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친박 무소속 연대'[11]까지 더하면 40여명에 이르는 무시못할 숫자를 가지게 되었다. 영남 자민련 하지만 군소정당의 리즈시절은 다음 총선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잘없다 이후 여기서 미래연합, 친박연합 같은 짝퉁들까지 쏟아져나오며 18대 국회의 난장판에 기여(?)했지만, 친박이 한나라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새누리당으로 이름까지 바꾼 2012년 19대 총선쯤에 들어서면서부턴 싸그리 정리된다.

충청지역정당으로 사실상 자민련의 바톤을 이어받은 자유선진당[12]은 충청권에서만 14명의 의원을 배출하며 나름 선전했지만, 비례대표는 4명만 당선되며 교섭단체를 이루는데는 실패한다. 창조한국당은 당 대표인 문국현 후보가 서울 은평구을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비례대표는 3.8%로 2명의 비례대표가 당선되었다. 참고로 2당은 2008년 하반기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교섭단체를 만드는데 이후 문국현의 의원직 상실과 2009년 8월 심대평의 탈당으로 교섭단체가 무산되고 만다. 안습

저번 총선에서 13%의 비례대표득표를 올리며 화제를 모았던 민주노동당은 이후 분열로 인해 당이 쪼개지면서 권영길의 수성과 강기갑[13]의 당선, 그리고 비례대표에서 5.7%를 득표하여 총 5명의 의원을 배출하는데 그친다. 그나마 따지고보면 이것도 꽤 선전한 편으로 진보신당은 노회찬, 심상정이 민주당 후보 출마에 따른 진보 표 분산으로 낙선하면서 지역구에서 한 명의 의원도 배출하지 못했고,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최소조건인 3%에 2만표(0.1%) 못 미쳐 원내 진입에 실패한다. 사회당이랑 연대하면 3.07% 나왔을텐데! 이로서 최상의 시나리오에선 최대 11석[14]까지 확보할 수 있었던 진보정당은 의석이 원래 10석에서 5석으로 반토막나고 그 전략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각각 야권연대와 독자 생존에 치중하는 전략으로 분화하면서 그 세력이 크게 위축되고 만다.

그 외 기독사랑실천당은 정당해산이 되지 않는 2%를 넘는 득표를 했으며[15] 한나라당과 함께 전지역구(!)를 공천한 통일교 휘하의 평화통일가정당지역구 0석, 비례대표 1%의 안습한 성적으로 해산되었다.경사났네 경사났어 허경영경제공화당안타깝게도 나오지 않았다.

참고로 20대 총선에서 부산 북구·강서구 갑에 당선된 전재수 후보가 국회의원 출마를 처음으로 시작한게 바로 이때다. 참고로 이때 얻은 득표율은 자그마치 38%로 통합민주당이 망했던 이 선거에서 꽤 선전했다.

5. 트리비아

선거 관련 기록으로는 30세에 최연소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되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엄마가 로비해서 가져다 준 비례대표의 나쁜 예로 지목된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 경기도에서 벌어진 고작 수백표차의 당선/낙선 사례가 있다.#

2008년 시점에서 4년 뒤인 2012년 대선과 총선이 모두 치뤄지면서, 대통령 임기를 조금만 줄이면 개헌이 가능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보수정당들이 개헌선을 넘지 못하면서 결국 개헌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넘었어도 딱히 보수진영 내에서조차 확립된 개헌안 자체가 없었던 상황이라 흐지부지됐을 확률이 높긴 하다만. 오히려 개헌찬반론자들은 좌우 가리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있어 진보진영과 연대했을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해도 국민투표가 남아있어서 쉽지가 않았다.

대략적인 구도는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와 놀랍게도 흡사하다. 범 보수 여권의 승리가 이루어졌지만 비주류 보수 후보들이 대거 대경권충청도를 중심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130명 정도의 주류계파[16][17], 50명 정도의 비주류계파[18]로 나뉘게 되었다. 한편 야권 역시 개헌선에서 조금 모자란 정도로 여러 당으로 나뉘어 있었던 것도 공통점이다. 역시 절묘한 민심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1996년 당시 50석의 자민련은 임기말의 캐스팅보트로서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와 연정을 이루어 정권교체 이후 아슬아슬한 역과반을 확보한 데 반해 2008년은 비주류 세력이 한나라당내 친박, 친박연대, 친박 무소속, 자유선진연합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김종필과 같은 구심점이 없었다.[19] 그 때문에 친박계와 선진당은 세종시 수정안 문제를 제외하고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으며, 개헌선 캐스팅보트였던 선진당 역시 개헌이 불발되면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친이계는 마땅한 대권주자가 없다보니[20] 2010년 지방선거 쯤을 기점으로 해서 이후부턴 매번 중요한 쟁점마다 친박계의 눈치를 봐야 했으며, 기어이 친이계가 이상득[21], 이재오계 등으로 분열되고 당내 소장파가 친박계와 협력하는 상황[22]이 되면서 친박이 기어이 당내 주류가 되고 만다. 친박+자유선진당의 교섭단체화나 연대로 심지어 민주당과 함께 내각제 개헌이나 대통령 탄핵, 그걸 제외한 평범한 전략제휴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정도 있었으나, 세종시 건을 제외하고는 그런 무리수는 일어나지 않아서 전반적 구도는 그저 친이+친박의 압도적 과반[23]을 바탕으로 한 직권상정, 일명 날치기 시도를 할 때가 많았다. 덕분에 동물 국회가 되고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되는데 기여한다.

여하간 이건 모두 훗날의 일이고, 박형준(부산광역시 수영구)[24], 정종복(경주시), 이재오(은평구을), 이방호(사천시)[25] 등의 친이계 핵심들이 친박계와 야권(!)의 공조로 낙선한 것은 당시엔 대단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26] 2010년 재보궐로 복귀한 이재오 정도를 제외하곤 이후 내각이나 청와대에 입각하여 상대적으로 세도를 부리지 못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당시 MBC의 일부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이 20대에서 53.1%의 지지를 받았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는 점이다.# 물론 여론조사란게 으레 그렇듯 신뢰도에 의문점은 있지만[27], 여튼 이 조사결과에서는 20대가 30대는 물론 40대보다도 높고 50대와 거의 비슷한 지지율을 보였던 셈. 보통 저연령층에서는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걸 고려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결과였다. 이는 뉴타운 열풍 등 정권초기 MB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정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투표율이 낮은 편이었다는 것을 볼때 보수지지층이 늘어났다기보단 진보지지층이 잠시 이탈한 점이 크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사실 실제 투표도 아니고 일개 여론조사를 이렇게 언급하는 이유는 이런 여론조사 결과들이 2010년대 들어 본격화된 20대 개새끼론(...)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19대 총선까지 담론이 이어지면서 "30대 개객끼론", "비수도권 20대 개객끼론"으로 바뀌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엔 결과에 껴맞추기식으로 청소년기에 IMF와 뒤이은 양극화를 맞은 이 세대(80년대 초반생)가 유독 보수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당시 20대였던 80년대생들은 되려 가장 진보적인 성향의 세대가 되었다.# 실제 8년 후 20대 총선에서 이 당시 20대였던 30대의 경우, 새누리당 득표율은 14.9%에 불과했던 반면 야권 득표율은 무려 79.5%에 달했다.# 그리고 이땐 보수층에서 강력하게 20대 개새끼론을 시전했다(...) 결론은 보수나 진보나 지들 입맛따라 분석이 왔다리갔다리

결과적으로 이후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20대가 보수화했다는 당시의 논변은 선거 결과의 충격에서 나온 일회성 분석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진짜 문제는 낮은 투표율. 20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52.7%[28][29]인데, 18대 총선의 20대 투표율은 고작 28.1%(...)[30]였다. 20대에서 보수정당 득표율 수치의 뻥튀기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 고로 당시 정치구도에 실망한 진보 성향 20대 다수가 투표를 포기했다는 분석이 더 타당하다. 8년 사이 20대 투표율이 2배 상승했고, 그 표의 대다수가 야당에게 간 것이다.[31]

5.1. 출구조사와 결과가 다르게 나온 지역구

18대 총선에서 KBS-MBC 출구조사와 실제 당선자가 바뀐 지역은 아래와 같다. (앞쪽이 출구조사 1위, 뒤쪽은 실제 당선자) 총 22개 지역. 굵은 글씨는 출구조사에서 경합으로 표시되지 않았는데도 결과가 뒤집힌 지역.

6. 국회의원 목록

제18대 국회의원 목록 항목 참조.

7. 관련항목


  1. [1] 사실 엄밀하게 따지면 최고의 선물은 아니다. 우선 한나라당 후보들이 많이 당선된 만큼 당 내 친박 후보들, 그리고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 후보들도 많이 당선되었다. 또 친이 후보들 중에서도 수도권 지역의 정치 신인들은 거의 대부분 당선되었지만, 대통령인 이명박을 대신해서 당을 실질적으로 이끌 친이 중진들 중에서는 친박 공천 학살에 대한 역풍으로 낙선한 사람들도 꽤 된다. 대표적으로 이재오, 이방호, 정종복, 박형준 등이 있다.
  2. [2] 제1야당 통합민주당조차 세자릿수에 한참 못미치는 의석을 얻으면서 방송장악, 4대강 사업,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자원외교 관련 비리, 방산비리 등을 전혀 견제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 여파는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에도 이어져 보수정권이 연장된 요인이 되기도 했다.
  3. [3] 판세도 판세일 뿐더러 투표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와서 투표율이 더 저조해졌다.
  4. [4] 특히 서울과 경기 남부 지역에서 잘 먹혔다.
  5. [5] 대경권은 친박연대, 부울경은 친박 무소속연대에게 일정 부분 잠식당했다.
  6. [6] 다만 충청권의 부진은 제2의 자민련 충청권 지역정당 자유선진당의 영향이 더 컸다.
  7. [7] 예외가 남부의 자유선진당 소속 이용희 의원 정도인데 하도 지역 기반이 강한 의원이긴 했다. 동교동계 출신으로 5선 의원에 76세의 나이에 당선된 최고령 의원. 군수, 지역 도의원, 군의원 등도 사실상 자기가 고르고, 세습까지도 해냈다. 충북 보은군, 영동군, 옥천군 별명이 '이용희 나라'(...)인 적도 있었다. 17대 대선에서는 정동영과 연계했건만 공심위가 매몰차게 버리자 자유선진당으로 들어가 당선되었고 이후 다시 탈당하여 차남 이재한을 민주당에 입당시켰다. 결국 이용희 의원까지 합치면 충북 석권 맞네
  8. [8] 이인제는 충청남도 논산시/계룡시/금산군에서 한나라, 민주, 친박, 자유선진당의 네 후보와 모두 싸우며 27.7%이란 역대 총선 최저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철새 불사조의 위엄 (그 이전 최저 기록은 역시 충청권인 대전광역시 유성구 이상민의 32.1%) 반면 광주광역시 동구의 박주선 의원은 구 민주당 출신으로 옥중 출마에서도 늘 생환한 실력답게 88.74%의 경이로운 득표율을 올렸다.
  9. [9] 지난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득표한 비율과 일치한다.
  10. [10] 대구3석, 경북1석, 부산1석, 경기 1석. 사실상 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보수텃밭지역이라는 점에서 친이vs친박 진검승부가 벌어진 셈인데, 영남 지역구 경쟁에선 한나라당이 대거 석권하며 사실상 패한 셈. 다만 이방호, 정종복 같은 친이계 핵심인사들을 떨궜다는 작은 위안소득은 있었다.
  11. [11] 2008년의 김무성은 서청원 다음가는 친박 핵심, 부울경의 대표적인 지역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위상이 매우 높았다. 또한 김무성은 서청원, 최경환, 유승민 등 다른 친박 핵심들과 다르게 독자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스스로 부울경 지역 친박 정치인들을 모아 무소속 연대를 만들고, 이들 중 상당수가 당선되어 한나라당으로 무사히 복당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친박 무소속 연대를 친무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바로 다음 선거 때도 김무성을 중심으로 자유선진당 출신 충청권 의원들과 수도권이나 부울경 지역의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계 의원들이 모여 비박 범우파 신당을 만들고자 했던 시도가 있었으나, 그 때는 워낙 판세가 새누리당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던 때라 보수 우파 전체의 승리를 위해 힘을 모아주는 결정을 할 수 밖에 없었다.
  12. [12] 엄밀히 따지면 자유선진당은 이회창을 중심으로 한 이회창계와 심대평 등 자민련에서 이어져 온 국민중심당 출신들이 혼재된 상태의 정당이다. 같은 충청 기반의 정치집단으로서 부여 출신의 왕족과 마한 시대부터 이어져온 토착 귀족들로 이루어진 백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국민중심당이 마한
  13. [13] 당시 지역구는 친이계의 거물이었던 이방호의 당선이 유력했지만, 공천학살을 당한 친박의 앙심이 이방호를 떨어뜨리려는 수단으로 강기갑을 팍팍 밀어주는 촌극 끝에 신승했던 재미있는 이력이 있다. 친이 타도 앞에서 위 아더 월드
  14. [14] 기존 민노당 5석 + 진보신당 3% 비례 2석 +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김선동. 이 숫자는 다음 총선의 통합진보당의 13석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실질적으론 더 많은 것이다. (참여계, 시민사회계 숫자를 제하면 10~11석으로 동일.)
  15. [15] 이는 17대보다 1% 오른 것. 개드립 종교정당이 점점 지지율이 오른다니 흠좀무.
  16. [16] 15대는 민주계(YS), 18대는 친이계.
  17. [17] 15대 국회시절 종로구 국회의원이었던 이명박은 민주계로 분류되었고, 이후 그의 축근이 된 이재오, 김문수, 정의화 등과 친박에서 범친이가 된 김무성도 민주계로 분류되어, 민주계의 후신이 친이계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친이계에는 이상득 형제끼리 계파가 다르다니, 박희태, 김형오 등 신민주계가 된 민정당 출신도 있기는 하다.
  18. [18] 15대는 자민련, 18대는 친박 + 자유선진당.
  19. [19]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박근혜와 이회창이라는 구심점이 있긴 했는데, 둘이 사이가 안좋았다.(...)
  20. [20] 사실 정운찬이나 오세훈, 김태호 등을 대권주자로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친박의 방해로 번번히 실패했다.
  21. [21] 이명박과 이상득의 고향인 영일 포항 지역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영포회라고도 부른다.
  22. [22] 남경필, 원희룡 등은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패배한 이후 친박계 의원들보다도 먼저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홍준표 대표 체제를 무너뜨리고 박근혜 주도하의 비상대책위원회 창설에 기여하면서 결과적으로 박근혜에게 도움을 준다. 그 소장파 의원들이 현재는 바른정당으로 넘어가 박근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
  23. [23] 최대 181석에 달했다. 최종 합당이 마무리된 2012년 시점에선 176석.
  24. [24] 이 사람은 후에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다.
  25. [25]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사무총장으로 친박계 공천 학살을 주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26. [26] 화룡점정이 이방호 의원과 사천시에서 붙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당선이었다.(...) 얼마나 친이가 미웠으면 강기갑을 지원.. 역시 국제전보다 더 냉혹한게 내전.
  27. [27] 당장 기사에 나오는 여론조사 기관부터가 공신력이 떨어지는 비교적 무명 회사고, 같은 시기 조사했다는 한겨레 조사만 봐도 20대의 한나라당 지지가 42.4%로 확 떨어진다. 게다가 각종 선거 결과를 보면 원래 여론조사에서 진보 지지층이 보수보다 한 5~15% 정도 낮게 나온다는 점도 감안해야한다.
  28. [28] 20대 초반: 55.3%, 20대 후반: 49.8% / 전체투표율: 58.0%
  29. [29] 20대 초반 투표율이 후반보다 높은 이유는 군인표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선거에서나 동일.
  30. [30] 20대 초반: 32.9%, 20대 후반: 24.2%(...) / 전체투표율: 46.1%
  31. [31] 20대총선의 비례대표 출구조사 결과, 20대에서 새누리당 득표율은 16%에 불과했고 野3당(더민주+국민의당+정의당)은 76%가 나왔다. 그리고 위의 본문에도 언급되었듯 30대(8년전 20대였던 세대)에선 오히려 현재 20대보다 새누리지지율이 더 낮게 나온다.
  32. [32] 최종 개표 결과 129표차로 18대 총선 최소 표차로 당선.
  33. [33] 여담으로 심장수는 8년 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누리당 공천을 받고 출구조사에서도 근소하게 앞섰지만, 이때도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후보가 출구조사를 뒤집고 당선되었다. 개표 진행동안 계속 리드를 유지해 와서 미리 당선증 받으러 선관위 가고 있었지만(...) 사전투표함에서 밀려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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