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태


조경태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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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제19대 후반기
정희수

제20대 전반기
조경태

제20대 후반기
정성호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사하구 을)

제15·16대
박종웅

제17~20대
조경태

현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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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경태(趙慶泰)

출생

1968년 1월 10일 (52세)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

학력

경남고등학교 (졸업 / 40회)
부산대학교 (토목공학 / 학사·석사·박사)

병역

육군 상병 소집해제

종교

개신교(출처)

본관

함안 조씨[1]

혈액형

A형

가족관계

배우자 신미숙, 슬하 1녀

지역구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17, 18, 19, 20

소속 위원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정당

현직

제20대 국회의원
미래통합당 수석최고위원

약력

다대어민회 명예어민
명예택시기사
을숙도대교 통행료인하 추진위원장
신평-장림-다대지하철 추진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사하구청년연합회 고문
대한민국 국회의원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UST 초빙교수
민주통합당 정책위 부의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새누리당 인재영입위원장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자유한국당 수석최고위원
미래통합당 수석최고위원

외부 링크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2]

2. 정계 입문 이전
3. 정계 입문
4. 국회의원 시절
4.1. 제17대 국회
4.2. 제18대 국회
4.3. 제19대 국회
4.4. 제20대 국회
5. 여담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미래통합당의 수석최고위원이다. 본관은 함안(咸安).

대한민국의 제17대~20대 국회의원으로 소속 정당은 미래통합당이며 지역구는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지역이다. 원래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인물로, 3당 합당 이후 보수 정당의 텃밭 같은 곳이었던 부산에 민주당 간판으로는 처음으로 입성해 존재감을 과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으로 분당되는 과정에서 탈당해 새누리당으로 이적, 이후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무현대통령의 국회의원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것을 계기로 1996년 통합민주당을 통해 선거에 출마하였고, 17대~19대까지 연달아 민주당계 정당의 불모지였던 부산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3선을 한 기록이 있었다.

3당 합당 이후 부산에서 탄생한 첫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19대 총선문재인사상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 이전까지 부산의 유일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기도 했었다. 사실 이분의 선거 이력을 보면 15대, 16대 총선에서는 2회 연속 낙선을 했지만 지역구민들에게 이름을 알렸고, 17대 총선 때 최초로 당선되었는데 이때는 탄핵 역풍의 효과가 컸고 그 당시 결과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했으니 그냥 대세의 흐름에 따라서 당선되었다고 폄하하는 혹자가 있지만, 그 당시 부산에서 민주당계 정당 간판 달고 30%를 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이 점은 조경태가 대단한 것이 맞다. 다만 그 이전 2회 연속 낙선으로 인한 동정표도 있었을 것이다.

18대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전국에서 참패하는 와중에도 부산에선 혼자서 당선되어 국회에 생존했다. 17대 때 지역구 관리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아 개인 표도 나왔기도 했고, 보수 정당 후보로 친이 후보, 친박 성향 후보 2명이 출마하여 보수표가 분산되는 행운도 따라줬다.

다만 17, 18대 총선 모두 한나라당 외의 보수 계열 후보가 출마하여 표를 분산시켰기에 당시의 득표율도 39%, 44%로 절반을 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연장 공약을 실제로 성사시키는 등 지역구에 이름을 각인시킨 뒤인 19대 총선 때에 이르러서는 58.2%의 어마어마한 득표율로 당당히 본인의 경쟁력으로 3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20대 총선에서는 59.7%의 득표율을 기록해 19대 총선 때의 득표율을 넘어섰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정치인 초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2010년까지는 친노 인사로 분류될 정도였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문재인이 친노의 수장격으로 올라서고부터는 문재인과는 상성이 매우 좋지 않아, 김한길박지원, 뒤늦게 들어온 안철수를 비롯한 당내 반문재인계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었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당내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소신껏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과거의 이러한 행적들 때문에 현재의 친문 정치인들이나 그 지지자들로부터는 내부 총질러, 당내의 분탕자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서 현재까지도 민주당의 주류인 친문 성향 지지자들에게 특히 이미지가 좋지 않은 편이다.

그렇게 문재인 당시 대표를 비롯한 주류 진영과 당내외 각종 현안에 관해 지속해서 대립한 끝에 정계 개편의 흐름에 맞추어 2016년 1월 전격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20대 총선에는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59.7%라는 높은 득표율로 다시 당선되어, 20대 국회 기준으로 최연소 4선 의원이 되는 기록을 남겼다. 정작 20대 총선은 PK권 전체적으로 보수정당의 세력이 크게 줄고 민주당이 다수의 의석을 확보했지만, 조경태는 지역구 인물 경쟁력이 당을 초월해서 워낙 강해서 이런 전체적인 흐름은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보수 전향 직후에는 부산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미래통합당 정치인들 중 가장 거물인 김무성 의원에 비해서 세력도 극히 미약한데다 철새 이미지까지 있어서 미래통합당 내의 거물로 성장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19년 당시 자유한국당 제3차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서 2위와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수석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1위 조경태 후보는 총 19만표 중 65,563표, 2위를 기록한 정미경 후보는 46,282표를 득표하였다. 무려 19,000여 표 차이로 크게 따돌린 것. 민주당 출신이라는 큰 약점을 떨쳐내고 보수성향 지지자들 사이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2. 정계 입문 이전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마동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입학 전 부산광역시 사하구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신평초등학교 - 사하중학교 - 경남고등학교 - 부산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한 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3. 정계 입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노무현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연을 맺었다. 그리고 8년 뒤인 1996년 군 복무를 마친 뒤 만 28살의 나이로 통합민주당 공천을 받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구 갑에 에 출마하였다. 신한국당 서석재 후보에 밀려 낙선했지만 15.5%를 얻어 선거비용을 돌려받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하면 당시 부산/경남권에서 신한국당의 지지세가 절대적이었던 데다 타 정당의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신인이 선거비용 보전 요건인 15%를 넘긴 것.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공보

공보물.

사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조금이나마 부산/경남권에 남아있던 야당 지지층이 정치 신인의 등장에 결집해서 저런 결과를 냈던 듯. 참고로 이 포스터는 와이프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조경태 후보의 선거 사무소에 찾아와 사인하는 노무현.
사진의 명함은 '국회의원 노무현 비서관 조경태'.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할 때 그대로 잔류하면서 한때 한나라당 당적을 가졌다. #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를 바꿔 사하구 을 공천을 신청했으나 공천에서 탈락. 이후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고 출마하였으나, 박종웅 후보(57.04%)에 밀려 2위(17.50%)로 낙선하였다.

2002년 안동선 국회의원노무현 대통령 후보 사퇴를 요구할 때 격렬하게 반발한 조경태 당시 사하구을 지구당 위원장.

4. 국회의원 시절

4.1. 제17대 국회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초선에 성공했을 때.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을 공약으로 내걸고, 마침 탄핵 역풍에다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현직 의원 박종웅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한나라당 최거훈 후보를 누르고 39.13%의 득표율로 당선된다.(최거훈 36.98%, 박종웅 15.00%)

첫 당선은 이렇게 어부지리에 가까웠으나 이후 노무현 대통령한테 부산 1호선 연장을 요구하여 기어이 승인을 받아내어 사하구 주민들의 민심이 본격적으로 조경태를 바라보게 된다.

4.2. 제18대 국회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유세 장면. (당시 통합민주당이 원내 1당으로 기호 1번을 달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할 때.

부산 도시철도 1호선 연장선 공약으로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때 통합민주당 후보들이 떡실신 당하는 와중에도 최거훈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승리(조경태 44.89% vs 최거훈 41.88%)하여 부산 1호선 다대포 연장을 기어이 실현시킨다. 여론조사에서는 최거훈 후보가 앞서나갔었다. 기사1 기사2 기사3 기사4 기사5 그야말로 짜릿한 역전승. 18대 총선 당시 최거훈 - 조경태 두 후보는 17대 때(17대 때는 조경태 후보가 개표 내내 아슬아슬하게 1위를 유지하여 당선)와 달리 개표 내내 엎치락뒤치락 하는 접전이었다. 기사1, 기사2, 기사3.

2008년 대한민국 국회 청문회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정 수정안에 반발해서 격렬하게 당시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3]을 몰아붙여서 '조포스'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기사 기사2

2009년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다대포 연장구간 기공식에서. 조경태 국회의원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업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8년 후 다대포에 지하철이 열렸다.

4.3. 제19대 국회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공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상황. 모든 동에서 1위를 달렸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에 성공할 때.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부산 1호선 적기완공을 들고나오고 공보물에 부산 도시철도 사진을 떡 하게 박는 것 하나만으로 58.19%를 얻어서 전직 부산교통공사 사장이었던 새누리당 안준태 후보를 가볍게 KO시키고 당선된다. 조경태의 행보에 긍정적인 사람이든, 부정적인 사람이든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 지하철을 끝내주게 잘 뚫어준다는 점. 그만큼 지역구 관리를 굉장히 잘하는데 특히 지하철에 대한 공약은 잘 지킨다. 조경태의 박사 세부 전공이 '도시계획'인데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낙하산인 지하철 사장보다 지하철 뚫는 박사가 더 말빨이 먹히고 노선도 조경태가 계획을 더 잘 잡고 그 노선에 의한 경제 활성화 같은 영향도 잘 아는 것이다.

2012년 3선 성공 직후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도 했으나 민주통합당 당내 경선 예비선거를 통과하지 못해 좌절되었다.

2013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전당대회 유세 때. 이때 당직에 당선된다.

2013년 2013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이후의 데일리안과의 인터뷰에서. 기사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친노로 분류되었지만, 친노 진영의 수장으로 손꼽히는 문재인 후보와 친한 친문재인계는 아니다. 보통 2009년에서 2010년경쯤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본다. 2015년 초의 한 잡지 인터뷰. 오히려 2015년에는 조경태 의원이 "진정한 노무현 계승자는 바로 나"라고 하면서 친문계와 대립각을 보이는 중.

이로 인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서 당을 해치는 자로 지목되어 윤리심판원에 제소되기까지 했다. 그러자 조경태 의원은 당시만 해도 자기 발로 당을 나갈 생각이 없었는지, 자기가 꼴보기 싫다면 자길 자르라고 항의했다. 이에 혁신안을 지지하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층은 '당에서 잘리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게 뻔한데 누구 좋으라고?'라며 냉소를 보내기도...

그러나 이를 이끌어온 안병욱 윤리위원장이 사임하고 이어서 윤리심판원들이 줄줄이 사퇴 의사를 밝힘에 따라 징계건은 더더욱 멀어져서 더 이상의 이야기가 없었으며 탈당한 시점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옛말이 되었다.

2015년의 모습

2015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에서 항의하는 조경태 의원 기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비행기에서 찍힌 사진. 링크

2015년 12월 14일 의정보고서를 재빠르게 내면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준비에 들어갔다.

2016년 1월 5일 부산일보가 낸 기사 들에 따르면, 지역구 지지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특히 현역 교체 비율이 압도하고 있는 부산광역시에서 현역 유지비율(조경태 재지지)이 교체비율보다 높고 일을 잘한다는 평가가 대다수.

안철수 의원과 김한길 의원이 탈당한 2016년 1월 중순까지는, 동교동계 핵심 멤버로 꼽히는 박지원 의원과 더불어 당내 비주류계의 대표 인사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부산이라는 지역 기반과 잦은 당내 충돌로 인해 당내 지지 기반과 독자적인 계파 세력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문재인 대표와의 마찰을 지속하다 자기 발로 당을 나갈 생각이 없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고 2016년 1월 19일 탈당을 발표하였다.

2016년 1월 20일 기사에 따르면 새누리당에 입당#한다고 알려졌다.

2016년 1월 21일에 최종 거취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고 결국 새누리당 입당(복당) 확정기사가 났다. #

탈당 직후 새누리당국민의당에서 영입 제안이 빠르게 들어왔었다고 한다. 새누리측은 12년 동안 사하구를 빼앗긴 굴욕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이며 국민의당도 인재가 필요한 시점인 데다가 평소 조 의원과 행동을 같이했던 과거 비주류계 인사들이 여기에 속해있기 때문. 21일에 기자회견을 통하여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했으며 여담이지만 당사자의 탈당으로 이번 총선 정국에 상당한 영향을 줄 열쇠 중 하나가 되었다는 점이다.

탈당으로 인해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으나, 아직까지는 판단하기 이르다는 여론이 높다. 애시당초 민주당의 친문 주류와 줄곧 거리가 멀었던데다 조경태, 문재인을 제외하고도 부산에 김영춘, 김정길, 전재수, 최인호 등등 더불어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이 의외로 제법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출마한 사람들은 전부 다 당선됐다. 그 와중에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첫 출마(20대 총선)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원외라 원내에 있는 조경태와는 명백히 이야기가 다르고, 문재인 대표의 불출마로 부산 총선에 대한 관심이 대폭 줄은 데다가, 새누리당새누리당대로 부산 12년 만에 부산 석권을 노리면서 접전 선거구에 거물을 등판시키는 등 총력전에 나설 태세라 더불어민주당의 입지는 결국 줄어들 확률이 높다. 갈 사람이 간 것이라 여겨 속 시원히 여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민주 주류가 계속 공을 들인 부산을 석권당할 수도 있는 판이니 걱정도 될 만한 것. 그러나... 정작 총선에서는 깜짝 놀랄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21일,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탈당했으니 16년 만의 복당인 셈. 이에 대해 친문계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한 방송에 출연하여 조경태 의원은 해당행위자로 원래 출당 대상자였으며 새누리당 입당은 자기 정체성에 맞는 당을 찾아간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에 출마를 준비 중이었던 새누리당 소속 석동현 전 서울동부지검장은 꼼수 정치, 단물 정치, 배신의 정치라는 용어를 써가며 그를 비판했다.

조 의원의 새누리당 입당 소식에 친노 성향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나가니까 속이 다 시원하다'면서도, '자신이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했으면서, 노 전 대통령을 그렇게 만든 정당에 들어갔냐?'라면서 비판을 하기도 했었다. 조경태 의원 본인도 후자의 비판을 의식했는지 사무실에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놓고 일한다고도 했고, 새누리당에 들어왔어도 늘 '노무현 정신'을 생각하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담으로, 새누리당 입당 후 2달 후 친박계에 의해 컷오프 되어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건너오게 되는 진영보건복지부 장관도 조경태 의원이 '원조 친노'라 불리다가 비노계의 대표 주자가 되어 결국 최대의 맞수였던 정당으로 넘어갔듯이, 원래 원조 친박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노인 기초 연금 공약 후퇴에 반발하면서 비박으로 변했고 결국에는 새누리당에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넘어가게 된다. 재미있는 데칼코마니라 할 수 있다. 둘 다 20대 국회 기준 4선 국회의원이며, 2000년 16대 총선 낙선 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 처음 당선되어 쭉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었다는 점도 동일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진영 의원의 입당에 "조경태를 보내고 진영을 데려온 것이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라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조경태↔진영 트레이드'라는 우스갯소리가 돌기까지 했다.

그가 새누리당에 입당한 이유는 결국은 지역 민심이라고 밝혔다. 국민의당에서도 진지하게 제의가 들어왔으나 부산 서부라는 지역구 특성 때문에 거절했다. 새누리가 근소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최소 35%가량은 민주당계 정당을 지지한다. 아무리 지역구에서 개인적 지지가 높은 조경태 의원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당을 선택하면 새누리당 후보, 사이가 안 좋았던 더불어민주당 저격수와의 3파전이 일어날 것이 뻔하고, 당선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 조경태가 민주당 계열로 3선을 기록할 정도(사실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았다. 한 번은 탄핵역풍, 한 번은 보수후보가 2명 출마하여 보수표 분산)로 지역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으로도 얼마든지 정치 행보를 이어나갈 수는 있다. 이젠 새누리당 표까지 흡수할 수 있게 됐으니 앞으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지속적인 당선은 보장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철새이미지와 대통령 선거 후보자 경선 1차 컷오프 된 것을 봐서는 보수정당의 국회의원의 삶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산 유일의 야당 3선과 부산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이라는 두 이미지를 비교해보면 사실상 차포를 뗀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부산은 1990년 3당 합당 이래로 새누리당의 텃밭이기 때문에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은 딱히 큰 주목을 끌 일이 없지만, 민주당 계열로 3선을 기록한 것은 전국적인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조 의원이 그래도 유명했던 게 바로 그 타이틀 때문이었는데 흔하디 흔한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니 이제는 별다른 메리트가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막말로 새누리당에서 공천 안 줘도 조경태 입장에서는 기회주의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쉽게 탈당할 수도 없고... 무소속 출마한들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고...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조경태의 입당이 서부산의 야권 지지세를 차단하는데 도움이 확연하다는 큰 기대감과 부산 싹쓸이보다는 새누리당 견제 심리 결집이라는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중이다. 아무리 사하구, 즉 서부산이라고 해도 여당 지지율이 경기도 평택이나 안성시 근접 수준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객관적으로 야당에게는 호재라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6년 3월 4일 새누리당 사하을 후보로 단수 공천되어 총선 본선 진출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경선도 없이 단독 공천에 대한 반발로 석동현 예비후보는 당색이 맞지 않는 인물을 단독 공천한 것에 대해 김무성 대표에게 책임지라는 등 불복하고 있는 상황이며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나올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으나 22일에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국가와 사하을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돌아보겠다고 하면서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또 다른 예비 후보인 이호열은 준비가 부족했으며 당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의사를 밝혔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김갑민, 오창석 두 후보가 경선을 치를 예정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오창석 후보가 공천되어 본선에서 붙게될 듯 하다. 국민의당에서는 배관구 후보가 공천되었으며 정의당에서는 유홍 후보가 나와 곧 본선을 치를 모양이다.

4.4. 제20대 국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선거공보
(19대 선거공보의 사진을 재사용)

결국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오창석 후보를 트리플 스코어에 가깝게 누르고 승리했지만 총선 전날까지 새누리당의 부산 싹쓸이까지 예상되었던 것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이 부산에서만 무려 5석(김영춘, 박재호, 전재수, 김해영, 최인호)을 가져가는 바람에 새누리당은 조경태 입당 효과를 거의 누리지 못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조경태의 입당이 언더독 효과(조경태 역풍)를 불러일으켰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게다가 '3당 합당 이후 부산광역시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민주당 의원 & 부산에서 유일한 민주당 다선 의원'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던 시절과 달리 새누리당으로 온 뒤에는 그 당에 부산에서 많이 당선된 의원들이 수두룩한 터라 조 의원도 그냥 새누리당의 많은 부산 다선 의원들 중 한 명으로 여겨질 뿐이라 확실히 민주당 소속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눈에 덜 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부산에서 다선을 한 보수 정당 의원을 뽑으라면 무려 6선을 한 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여러 명이 있다.

그동안 조경태 의원이 지하철 연장과 같은 굵직한 인프라 개발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데는 야당의 유일한 부산 지역 다선 의원이므로 당의 특별대우를 받은 점이 컸다. 지역구의 발전과 직결된 개발안의 예산 심의에서 자기들끼리 파이를 조율해야 하는 여당과 달리 야당에서는 어차피 부산 지역에 쓰일 예산이라면 조경태 의원의 지역구 말고 밀어줄 데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본인의 대학 전공인 토목건축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공법이나 지반 등을 이유로 사하구 지하철 연장을 반대하던 이들을 다 때려잡았다고 한다. 정교수는 아니었지만 박사 학위를 따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 때문에 국회 내에서는 교수님이라는 별칭도 있다고. 따라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되었고 게다가 자유한국당에서도 여전히 비주류로 분류되는 그가 앞으로도 이전과 같은 지역 발전 추진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16년 6월 13일, 새누리당 의원 총회를 통해 기획재정위원장으로 당선되며 여당 거물급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시작하게 됐다.

이때 강성 비박계 후보인 이혜훈, 이종구를 반대하는 친박계의 압도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위가 각 당의 에이스들이 진검 승부를 벌이는 상임위라는 점에서 토목공학 전공의 조 의원이 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른 건 이례적인 일인데, 당선 초까지만 하더라도 본인은 정무위원장 자리를 희망했으나, 여당 내 중진 의원들의 설득으로 기재위로 방향을 돌렸다고 전해졌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조경태가 친박계의 눈치를 덜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자칫하면 소위 '친노 패권주의'를 견디지 못해 민주당을 떠났다던 사람이 '친박 패권주의'에는 침묵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권 신공항 무산에 대해, 정부에서 제시한 김해국제공항 확장안을 적극 지지한다고 하였다.

살인적인 수준의 더위로 전기세 누진제가 논란이 된 2016년 8월 요즘, 정부에 전기세 누진제 개편과 전기요금 정상화를 요구하고 있다. 기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있을 때와는 다르게 박근혜나 새누리당 내부의 친박 & 비박 갈등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기재위원장 직무에만 전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다가 새누리당 의원이다보니 대학교에 특강을 가도 폭풍 같이 까이는 모양이다.

새누리당 분열 상황에서 친박들의 연석회의에 참석했지만, 최순실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친박 중의 친박조원진도 찬성표를 던졌기 때문에 딱히 이것으로 어떤 성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19대 대선의 출마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새누리당의 당세가 심각하게 쪼그라든 데다 그나마 갖고있던 민주당계 영남 최초 & 최다선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도 이제는 빛이 바랜 상황이다.

2017년 3월 2일 봉하마을 노무현 묘역이 국립묘지와 같은 예우 받는 법안이 통과될 때 본인은 기권을 하였다. 정확히는 전직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은 경우에도 묘지관리 인력 및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면서 묘역이 어디에 있든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동등하게 한다는 취지의 법개정이었다.

3월 3일 오전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의 핵무장을 주장하였고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무역보복에 맞서 중국과의 단교, 중화민국 정부와의 재수교를 거론하였다. 영상

2017년 3월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19대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3월 17일에 열린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자 비전대회에서 "대통령께서 탄핵당하셨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정중히 사죄드리는 바이다."라거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개인의 탄핵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권의 탄핵" 등의 발언을 하였다. "친노에서 친박이 되었거나 범친홍으로 전향했다."라는 시각도 있다. 다만 친박이나 친홍이라고 하기엔 주류 세력과 거리가 상당한 수준이다. 조경태 본인은 탄핵소추 때는 찬성표를 던지긴 했지만. 단순히 생각하면 자유한국당 당론을 따른 것일지도 모른다.

2017년 3월 18일 자유한국당 대통령 예비 경선에서 1차 컷오프되었다.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대참패한 이후, 자유한국당 우파재건회의 소속 국회의원 중 한 명이 되었다. 구성원은 조경태, 김문수, 김진태, 심재철, 유기준, 정우택. 원조 친노계 정치인에서 이제는 완전한 우파 정치인이 된 경우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자유한국당 당대표로 출마하려다가 최고위원으로 전향하여 출마하였다. 체급을 낮추어 출마한 전략이 성공하였고, 제3차 전당대회 최고위원선거에 1위로 당선되었다. 기사 그 동안 당내에서 민주당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유한국당 내의 강성 보수층의 비토가 컸었고 당내 입지도 다른 4선의원들에 비해선 현저히 적었다. 국회의원은 보통 당협위원장을 겸임해 자기 지역구의 지방선거 후보에 대한 공천권이 있는데 조경태는 자기 사람을 후보로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던 것. 그러나 이제는 민주당 출신이라는 약점을 떨쳐내고 완전히 자유한국당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조경태 후보는 6만 5563표(24.2%)를 얻었고, 4만 6282표(17,1%)로 2위를 기록한 정미경 후보와 상당히 큰 표차를 보였다. 경선 과정 내내 자신은 민주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민주당과 어떻게 싸워야하는지 제일 잘 안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정치적으로 중요한 지역인 PK지역의 4선의원이라는 점을 어필하였는데, 꽤 많은 한국당 지지자들에게 통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승화시킨 셈. 또한 조경태 의원이 난민 수용반대 등 우파적 정책에 큰 목소리를 내왔고, 신의 한 수를 비롯한 극우 진영의 유튜브에 자주 출연해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해오는 등 극우 진영의 지지자들에게 인지도를 쌓아오는 노력을 많이 했었다.

일반 최고위원이 아닌 수석최고위원으로, 당대표 유고 등의 사유 발생 시 당대표 직무대행을 수행하는 직급이라고 한다. 서열상으로는 당대표 바로 아랫계급인 셈.

최고위원이 된 이후, 김진태김순례 의원 징계에 대해 "유야무야 넘어가서는 안 될 문제"라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한 "황교안 대표께도 우리 당이 매일 바뀌는 모습, 국민을 바라보고 가는 정치를 해야 한다. 특정 계파, 특정 세력에 묶여서는 저희 당이 내년 총선에서 더 어려운 선거를 치를 수 있다"라며 "지금부터라도 좀 더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한국당이 대개조하는 마음으로 상당히 많은 영역에서 바뀌고 또 변화해야 한다"고 하였다. 기사

최고위원 당선후 황교안 대표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는 모습이 보도 되었다. 기사

최고위원 자리에 차지한 덕분에 민주당시절부터 주장해오던 비례대표 폐지국회의원 정수 감축을 당론으로 관철시키는 데 기어이 성공했다.

2019년 10월 25일에는 국산 게임에 2년이 넘게 판호를 내주지 않는 중국 정부에 항의의 뜻을 표하고자 주한 중국대사관 앞을 찾아 1인시위를 단행했다. 기사

2020년 1월 28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중국인에 대한 입국 금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기사

5. 여담

  •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보수 지지세가 강한 부산광역시에서 민주당 깃발로 3선을 한 것으로 유명하여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 중 하나로 불렸다. 그 3선 중에 17대 총선, 18대 총선은 운이 좋은 케이스(한 번은 탄핵역풍, 한 번은 친박, 비박 이렇게 보수 후보가 2명이 나와서 보수표 분산) 당선 당시 현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우 놀라워했다고 하는데, 이런 탓에 당시 당선자들 중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유일하게 호출을 받아 대통령을 독대하여 극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2000년대 후반까지도 야권 내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되었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대연정 파동 때 당내외 여론이 악화되는 와중에 대연정 제안을 강력히, 꽤 문제되는 발언까지 섞어 가며 옹호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동은 영향을 준 바가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 6.4 지방선거 때 적지인 대구광역시에 출마하였으나 안타깝게 석패. 훗날 20대 총선에서 마침내 당선되었으며. 2014년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예산폭탄 공약을 내걸고 민주당의 텃밭인 전남순천시 & 곡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상대측인 새정치민주연합서갑원 후보를 누르고 당선 된 바가 있다.
  • 현재는 미래통합당 소속이라 상술한 존재감이 상당히 퇴색되었지만, 조경태가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테고 당내 입지가 그저 그래서 '부산에서 당선된 민주당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은 조경태에겐 의미없고 지겨운 타이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민주당 시절부터 문재인과는 내내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친문 성향을 중심으로 재편된 이후 아마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보수 정당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다른 정당에 가지 않는 것을 보면 원래 성향이 보수정당에 맞아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하지만 당적을 옮기면서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잃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당장 통합당 내에 PK지역 다선의원들은 차고 넘친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특별한 일이 없다면 보통의 다선 의원들처럼 직업 정치인[4]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그러나 그가 전향한 20대 총선부터 부산에서 민주당이 다수의 의석을 확보해, 부산과 PK가 보수의 텃밭에서 수도권이나 충청처럼 양대 정당의 대결이 벌어지는 격전지로 변화하면서 나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것도 당선되었을때 얘기다.
  • 민주당 시절, 비주류인 탓에 당내 지지층이 전무했다. 2012년 19대 총선 때 그런 면이 드러났는데 당시 한명숙 지도부는 문재인 후보가 출마한 사상구는 자주 들렀지만 사상에서 별로 멀지도 않은 그의 사하구 을 선거구에는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의외로 그의 지역구에서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이자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박근혜가 이곳에서 적극적인 유세 활동을 벌였는데 이는 새누리당 측에서 조경태 의원이 상당한 강적임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건 본인이 당내 지지층을 갉아 먹는 행보를 보인 탓도 있기는 하다. 김한길 대표 시절에 최고위원을 했던 당시에도 지역 현안과 관련된 내용을 읊었던 정치인이라 지역민의 평판은 좋은 것으로 보이나, 당 주류이자 부산시당의 다수를 이루는 친노&친문 인사들과 다양한 현안에서 끝없이 대립각을 펼친 탓에 당 지지층 뿐만 아니라 지역 당원으로부터도 지지를 잃은 정황들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재선 의원 당시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낙마한 적도 있고, 막말 논란으로 징계위에 회부되었을 때, 그의 지역구인 부산 사하을의 핵심당원들이 그에 대해 중징계를 내리라고 청원하는 일까지 벌어졌었다. 또한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 언론사가 지역 여론을 취재했는데 몇몇 노년층 유권자들이 "조경태가 일은 정말 잘한데이. 그런데 요즘 들어 왜 자꾸 문재인한테 개겨서 일을 만드노?"(마치 홍준표 대표와 류여해 전 최고의원을 보는 것 같다.) 라는 말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 민주당내에서 입지가 약해 누구도 어려울 거라 예상했던 최고위원직에 자력으로 당선된 적이 있다. “부산에 3선 의원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호남 대의원이 많다. 조경태 떨어지면 호남당 소리 들을까봐 찍는다더라.”#. 하지만 2014년 7.30 재보궐선거의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지도부 총 사퇴와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당일 소란을 피운 것으로 유명한데 '친노 종북' 세력은 당에 들어 올 자격이 없다'라고 퍼부어 당내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논란이 있을 수 있는 강한 어조의 단어를 민주당 의원이 같은 당 의원들에게 사용한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비판은 적지않게 같은 당 인사들을 향했다. 이런 당내 비판 발언들이 나오는 데에는 이석기에 의한 내란음모사건과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때에도 당이 제대로 된 결단을 못 내리고 우유부단한 자세를 취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 정계 입문 후부터 당론과 다른 행보를 자주 보여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정체성을 의심받는 일이 더러 있었고, 특히 골수 강경파인 정청래 의원에게 자주 공격받는 편이었다. 정청래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라 진보 성향이 뚜렷해 보수 성향이 진한 조경태 의원과는 물과 기름의 관계였다. 정청래는 조경태를 향해 '내무반에 총질 말라', '민주당에 쓴소리하듯이 박근혜정부를 비판 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비난하자, 이에 대해 조경태는 원전 비리, 밀양송전탑 문제, 대일 외교 저자세 등에 대해 비판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조경태는 결국 새누리당에 입당했고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한국당에 잔류했다. 세월호 참사 관련 김현 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 때도 조경태 의원은 '당에 물의를 일으킨 김현을 출당시키고 일벌백계 해야 한다'라는 발언에 정청래 의원은 '조경태를 출당시켜야'라고 반박했다. 이때문인지 민주당에 오랫동안 몸담았고 PK 3선의원이라는 민주당 입장에서 나오기 쉽지 않은 기록을 세웠음에도 현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치인들과는 사이가 안좋은 편이다. 위에 나온 정청래와의 설전이 대표적인 예. 과거 보수정당에 몸담았다가 민주당계 정당으로 넘어온 손학규진영이 양대 정당의 험악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 소속, 심지어 범친박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과도 아직끼지 막역한 사이인 것을 보면 꽤 씁쓸한 부분.[5]
  • 강용석 前 의원과는 견원지간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서로 반말까는 것은 기본이고, 육두문자만 안 쓸 뿐이지, 국회의원들간의 언쟁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다. 한 번은 나이 차이 가지고 싸웠는데, 조경태 의원이 강용석 전 의원보다 딱 1살 많다. 현재는 같은 진영이 됐지만... 강용석이 일련의 사건사고로 현실정치에서 거의 리타이어당한 뒤로는 마주칠 일이 없게 되었다.
  • 민주당 시절에는 의회민주주의자를 자임하며 장외 투쟁 같은 집단 행동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았었다. 싸워도 원내 투쟁을 원칙으로 하며 세월호 장외투쟁이 벌어졌을 때는 의견이 일치하는 인사들과 장외투쟁 반대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언로가 막혔을 때야 밖에 나가 전단지도 뿌리고 하지만 지금은 매체도 많고 24시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다. 농성을 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다만 이렇게 연판장까지 돌리며 당내 반대에 집중하는 것은 당 리더십을 흔드는 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정적으로 그가 새누리당으로 건너온 후에는 장외 투쟁에 버젓이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생각이 바뀐 듯하다.
  • 당선 인사를 경남고 대선배인 김영삼 前 대통령에 갔더니 큰 일을 해냈다고 칭찬받았다고 한다.#
  • 한창 젊었을 시절에는 묘하게 김범수와 닮았다.
  • 보수정당 소속 PK 다선 의원들 중 인지도도 높은 편이고 지역구 장악력이나 인기도 높은 편이라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그간 차기 부산시장 후보로 꾸준히 지목되왔던 김세연 의원이나 박민식 전 의원에 비해 의원 선수도 높고 본래 민주당 출신이라 중도 확장성도 저 둘에 비해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 이 때문에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김세연 의원과는 은근히 기싸움이 오고 가는 듯 하다. 대표적으로 강남 병 공천사태 당시 김세연 의원이 "이 정도는 쿨하게 넘어가주자"라고 했던데에 조경태 수석최고위원이 절대 안된다며 공관위를 압박해서 공천을 철회시키는 일이 있었다. 현재 부산시정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라 다음 시장 자리를 놓고 신경전이 점점 치열해지는 듯.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갑)

통합민주당

10,835 (15.51%)

낙선 (3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새천년민주당

13,351 (17.50%)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열린우리당

36,614 (39.13%)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통합민주당

31,330 (44.89%)

당선 (1위)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민주통합당

49,849 (58.17%)

당선 (1위)

3선[6]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새누리당

50,337 (59.65%)

당선 (1위)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사하 을)

미래통합당

7. 둘러보기

부산광역시 제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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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24세손 口태(泰)자 항렬로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30세손 口래(來)자 항렬이다. 그리고 족보명은 태래(泰來)이며, 아버지는 조재제(趙在濟)다. 출처 자료.
  2. [2] 트위터는 2014년 2월 이후 업데이트가 없다.
  3. [3]미래한국당 의원
  4. [4] 이렇게 되는 걸 피하고자 통상 3선 이상부턴 국회의원 선수를 늘리기보단 장관입각, 광역자치단체장 선거등에 나서거나 국회 내외부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국회의원들이 몇선 했는지 세심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잘 없을 것이다.
  5. [5] 손학규는 현재 바른미래당 소속이긴 하지만 민주당계 정당에 10년이상 몸담으며 대표까지 지낸 인물이고 현 바른미래당도 민주당과 점점 가까워지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이명박,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등과는 막역한 관계라고 한다. 진영의 경우에는 문재인 정부 장관까지 됐음에도 불구하고 현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서 "지금 당하고는 잘 맞는거 같냐?", "다시 우리당에 오면 안되냐?"라는 식의 말을 주고받는게 청문회장이나 국정감사장에서 나올 정도이다.
  6. [6] 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탈당, 새누리당 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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