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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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은 시청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초자치단체

자치구

중구

서구

동구

영도구

부산진구

동래구

남구

북구

해운대구

사하구

금정구

강서구

연제구

수영구

사상구

자치군

기장군

중구법정동

법정동

영주동

대창동1가

대창동2가

중앙동1가

중앙동2가

중앙동3가

중앙동4가

중앙동5가

중앙동6가

중앙동7가

동광동1가

동광동2가

동광동3가

동광동4가

동광동5가

대청동1가

대청동2가

대청동3가

대청동4가

보수동1가

보수동2가

보수동3가

부평동1가

부평동2가

부평동3가

부평동4가

신창동1가

신창동2가

신창동3가

신창동4가

창선동1가

창선동2가

광복동1가

광복동2가

광복동3가

남포동1가

남포동2가

남포동3가

남포동4가

남포동5가

남포동6가

부산 중구청.[1] 주소는 부산광역시 중구 중구로 120(舊 대청동1가 1-4번지). 중구청 홈페이지

중구
中區 / Jung-gu

국가

대한민국

면적

2.82km2

광역시도

부산광역시

행정동

9개

법정동

41개

인구

43,855명
(2018년 4월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5,597.52명/km2[2]

구청장

김은숙 (자유한국당)
3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구의회

자유한국당 4석

더불어민주당 2석

공석 1석

시의원

최영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중구·영도구: 김무성 (자유한국당)
6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홈페이지

슬로건의 nice는 New, Interesting, Creative, Enjoy를 의미한다.

마스코트 자갈치아지매.

중구의 상징.

2. 동구와의 관계
3. 교통
3.1. 관내 철도 목록
4. 지역 특성
5. 정치
6. 행정 구역
7. 관내 각급학교
8. 같이보기

1. 개관

부산광역시의 남부[3]에 위치한 자치구. 남동으로는 부산대교영도대교를 경계로 영도구, 서로는 서구, 북동으로는 동구와 접한다.

하지만 이 곳을 남부산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그냥 중부산이라고 부른다.

대한민국에서 면적(2.82㎢)이 가장 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또한 인구는 대한민국의 모든 자치구를 통틀어 가장 적다.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 주제에 웬만한 보다도 스펙이 딸리는 편.[4] 다른 자치구 같았으면 일찌감치 통폐합되었을 것이지만 구한말 개항 이후부터 지금까지(?) 부산광역시의 중심이라는 역사성을 감안하여 그대로 존치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국회의원 선거구는 마찬가지로 인구가 적은 옆동네 동구와 공유했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영도구와 선거구가 통합되었다.

주거환경 면에서는 구도심권 대부분이 그렇듯이 낡은 주택이 많아 전반적으로는 상당히 열악한 편. 그렇다고 도심지에 있는 건물이라고 해서 또 결코 사정이 나은 편도 아니다. 대개 1960 ~ 197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 많은데다 일본식 적산가옥도 상당수 남아 있는 실정이다.

2. 동구와의 관계

20대 총선에서 중구와 동구의 선거구가 쪼개지게 되자, 중구와 동구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중구와 동구가 통합되면 사실상 중구는 더 큰 동구에 흡수되는 형태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중구는 통합을 반대하는 입장인 데다가, 현재 중구와 동구는 북항 재개발 지역 경계 문제로 분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서 관련 기사 통합이 실제로 성사될지는 미지수이다.

3. 교통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지나며, 중앙역·남포역·자갈치역이 중구에 있다. 부산광역시 시내버스 노선 또한 많아서 대중교통 하나는 부산시내 어디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수준. 더군다나 다른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체증이 거의 없는 편이다! 예전 시청이 있던 시절에는 가변차로를 해야 할 정도로 극심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부산의 기본 스펙만큼의 체증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다. 최근에는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개점하면서 영도입구 일대를 포함해 체증이 심해졌다. 영주동 쪽은 지대가 높아 비교적 교통이 불편했는데 시범적으로 설치한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이 실적이 나름대로 좋은 모양인지 비슷한 모노레일을 다른 곳에서도 설치해보려고 하고 있다.

3.1. 관내 철도 목록

4. 지역 특성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중구는 부산의 도심이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로 시청이 남포동에서 연제구 연산동으로 이전하고 서면남포동을 누르고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중심상권으로 떠오르면서 도심으로서의 지위를 상당부분 상실하고 말았다. 지금은 중구뿐만 아니라 인접한 동구, 서구, 영도구를 한데 묶어서 '구(舊)도심'이라고 불리는 실정. 사실 구도심이 이모양 이꼴이 된 건 1960년대~1970년대 부산시로 편입된 구 동래군 지역이 개발되면서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남포동, 광복동 상권은 2000년대 중,후반 광복로의 간판정비와 보도정비 이후 상권이 되살아나고 있다.관련 기사 업소의 매출은 늘어났고 권리금과 토지가격도 뛰었다.광복로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역시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났고 영도대교 복원과 자갈치시장 현대화, 롯데백화점 광복점의 개점이 맞물리면서 전성기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유동인구가 증가하자 많은 요식업체들과 커피숍이 개점하였고 광복로에 주요 의류 브랜드들의 가두매장이 서면보다 더 먼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광복로뿐 아니라 국제시장 인근의 지하상가와 재래시장까지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상권이 회복되면서 도시 재생의 모범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

광복로와 남포동 상권이 살아남과 동시에 이 일대지역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깔끔해진 거리에 보수동 책방거리, 부평시장, 국제시장 등 부산만의 특색있는 공간과 씨앗호떡, 완당 등 유명 요리들의 명성이 더해져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수 없는 관광코스가 되었다.

하지만 상권회복의 이라는 밝은 면 뒤에는 어두운 뒷면 또한 존재하는데, 상권이 회복되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건물주들이 앞다투어 건물 임대료를 올리면서 일부 가게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중심 상권에서 변두리로 밀려나고 그 자리에 대기업 계열 매장들이 들어오는 현상이 진행 중이다. 심지어 개점한지 30년이 넘은 유명한 향토 제과점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이전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서면에 비하면 많이 초라해지긴 했지만 썩어도 준치라고, 남포동 상권은 아직까지 건재하다. 특히 옛 시청 부지에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시네마가 있는 롯데몰 광복점을 세웠고 제2롯데월드 고층건물을 세우려고 하여 상권 부흥을 꾀하고 있다. 광주부산이나 구도심은 롯데백화점이 먹여 살린다. 구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 여담으로 다대포에 사는 사람이 쇼핑을 나가면 20분 걸리는 남포동보다 1시간 걸리는 서면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서면은 주로 유흥 위주, 남포동은 가두 의류 매장 위주의 상권으로 그 성향이 완전히 다르다.

용두산공원부산타워, 40계단공원, 자갈치시장, 국제시장, 보수동 책방골목 등이 중구 보수동, 대청동에 있다. 이들은 과거에 부산을 상징했던 랜드마크로 명성을 떨쳤으나 지금은 광안대교해운대 쪽에는 약간 밀리고 말았다. 안습...이지만 남포동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로 이제 구도심의 상인들이 짭짤한 수익은 얻고 있는 등 현재 중흥을 꾀하는 중이다. 관련 기사

5. 정치

19대 대선 중구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9,918
(34.78%)

10,684
(37.47%)

4,675
(16.39%)

1,845
(6.47%)

1,274
(4.46%)

- 766
(▼2.69)

70.72%

중앙동

33.59%

38.30%

16.06%

6.76%

4.70%

▼4.71

64.29

동광동

34.48%

38.66%

16.46%

6.27%

3.40%

▼4.18

65.73

대청동

35.13%

36.26%

17.08%

6.50%

4.65%

▼1.13

69.22

보수동

32.72%

39.97%

16.23%

6.31%

4.43%

▼7.25

68.77

부평동

29.06%

48.24%

13.77%

5.80%

2.90%

▼19.18

66.67

광복동

28.27%

43.69%

17.23%

6.19%

3.72%

▼15.42

70.69

남포동

29.95%

47.31%

14.13%

5.22%

3.07%

▼17.36

59.91

영주1동

35.56%

33.98%

18.57%

6.05%

5.56%

△1.58

66.96

영주2동

33.54%

38.71%

17.06%

6.74%

3.62%

▼5.17

70.50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거소·선상투표

30.84%

28.97%

28.97%

3.74%

4.67%

△1.87

관외사전투표

46.26%

22.95%

15.65%

7.96%

6.75%

△23.31

재외투표

61.71%

9.91%

14.41%

3.60%

9.91%

△47.30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중구·영도구[6]

37.68%

33.93%

16.72%

6.80%

4.41%

△3.75

70.92

2012년 18대 대선/2016년 20대 총선(비례)/2017년 19대 대선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선거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율 (대선/대선)

증감율 (총선/대선)

18대 대선

20대 총선

19대 대선

증감율 (대선/대선)

증감율 (총선/대선)

중구

35.39%

23.27%

34.78%

▼0.61 (-1.7%)

△11.51 (+49.5%)

64.34%

48.68%

37.47%

▼26.87 (-41.8%)

▼11.21 (-23.0%)

중구

중구-동구

중구-영도구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김광일/초선
통일민주당

정상천/초선
민주자유당

정의화/초선
신한국당

정의화/재선
한나라당

정의화/3선
한나라당

정의화/4선
한나라당

정의화/5선
새누리당

김무성/6선
새누리당

구도심답게 보수정당이 우세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까지는 65:35, 거의 2:1의 비율로 새누리당이 우세해 이웃 서구, 동구와 비슷한 표심을 보여왔다.

노무현 대통령가 변호사 일 했을 때 선배로 있었던 김광일이 있었던 그 지역이다.19대 국회까지만 해도 당시 국회 하반기 국회의장인 정의화가 5선한 상태였다. 15대에 정치신인이었던 정의화는 허삼수를, 16대에는 박찬종을 꺾는 등 상당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20대 총선에는 국회의장은 정계를 은퇴한다는 불문율에 따라 불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그 대신 인근 영도구 국회의원을 지냈던 김무성이 중구-영도구 선거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비오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정의화 - 이해성 두 후보간 개표현황. 1위를 달리는 지역이 각 색깔로 표현되었다.[7]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최대 인구 비율 차이가 2:1로 조정되면서 중구-동구의 인구 미달로 선거구가 조정되어 영도구와 합쳐졌다. 따라서 2013년 재보궐선거에서 영도구로 지역구를 옮긴 새누리당김무성더불어민주당김비오 구도로 선거가 치뤄졌고, 55:40으로 김무성이 당선되었다. 김무성은 중구에서 58.5%를 득표했는데, 매우 높은 비율임엔 틀림이 없지만 그가 새누리당 대표였던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김비오 후보가 의외로 선전한 편이었다. 부산 보수세를 견인했던 중구에서도 지지세의 균열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결과였다.

같은 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전국적으로 새누리당을 비난하는 여론이 조성되었고, 결국 박근혜가 탄핵되면서 재보궐로 치뤄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주목을 받는 곳 중 하나였다. 그동안 조금씩 약해져오던 새누리당 지지세가 이 사건으로 나락에 빠지면서 부산에서 통일민주당 이후 최초로 민주당계가 승리할 수 있을까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그 중에서도 가장 보수성향이 강한 중구의 결과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결과는 아쉽게도 자유한국당 홍준표가 1위를 가져가면서 골든크로스엔 실패했지만 득표율 차가 고작 2.7%에 불과해 문재인 대통령이 턱밑까지 추격했을 뿐더러, 항상 60~65% 지지도를 가져갔던 보수계열이 지난 총선에서 50%, 이번 대선에서 37%(바른정당을 합하면 44%)으로 주저앉으면서 민심 이반이 굉장히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결과였다. 다만 문재인에게도 조금은 아쉬운 성적이었는데, 비록 안철수, 심상정으로 세력이 분산되긴 했지만 어쨌든 탄핵과 지역 현안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상황에서도 지난 대선의 득표율을 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민주당이 사력을 다해 가져와야 할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중구는 부산의 심장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나마 거쳐갔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홍준표 후보가 각각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중구 : 홍준표 10,684표(37.47%) > 문재인 9,918표(34.78%) > 안철수 4,675표(16.39%)

1위 - 홍준표 : 부평동(48.2%), 남포동(47.3%), 광복동(43.7%), 보수동(40.0%), 영주2동(38.7%), 동광동(38.7%), 중앙동(38.3%), 대청동(36.3%) (8개동)

1위 - 문재인 : 영주1동(35.6%), 거소/선상투표(30.8%), 관외사전투표(46.3%), 재외투표(61.7%) (1개동 + 관외투표)

2위 - 홍준표 : 영주1동, 거소/선상투표(공동2등)[8], 관외사전투표 (1개동 + 거소/선상 + 관외사전)

2위 - 문재인 : 중앙동, 동광동, 대청동, 보수동, 부평동, 광복동, 남포동, 영주2동 (8개동)

2위 - 안철수 : 거소/선상투표(공동2등)[9], 재외투표 (거소/선상 + 재외투표)

6. 행정 구역

제작자가 瀛州를 瀛'洲'라고 오타를 냈지만 넘어가이소~!

6.1. 중앙동 1~7가

영선산 아래 골짜기의 맞은편 산봉우리가 해면(海面)에 돌출해 있었다. 이 두 개의 봉우리는 용두산의 좌청룡등(左靑龍嶝)에 해당된다고 한다. 두 봉우리의 사이에는 논이 있었는데 그 곳을 논치라고 불렀으며, 산 아래의 좌우에는 논치어장이 있었다. 이 논치어장은 현재의 중부경찰서 남쪽에 있는 중앙동 지역내의 유일한 고유지명으로 알려진 것이다. 개항 이후 중앙동 거리 바로 아래지역은 바닷가였으므로 당시에는 시가지의 발전은 어려웠다. 당시 초량왜관은 11만평이라 하지만 그 중앙에 용두산(龍頭山)이 자리하고 있어 실제 사용 가능한 면적은 7만평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안을 매축하여 시가지를 형성할 목적으로 1902년에 부산매축주식회사가 설립되어, 이를 중심으로 북빈매축공사가 추진되었다. 이 매축하여 생긴 지역의 이름이 이른바 새마당이며, 새로생긴 넓은 땅이란 뜻이다. 이곳을 일제시기에는 매축허가를 받은 일본인의 이름을 딴 좌등정과 고도정, 부두에서 하역관계로 큰 창고가 생겼다 하여 붙여진 대창정, 경부선 철도의 시발지라는 데서 경부정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광복이후 부산역(지금의 본부세관 맞은편 소화물 취급소)을 가진 중앙부에 위치하여 있다는 뜻에서 1947년 동명개정 때 중앙동으로 개칭하였다. 1982년 5월 시조례에 의해 법정동인 대교1,2,3가를 중앙동 5,6,7가로 명칭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6.2. 동광동 1~5가

왜관의 출입문은 수문(守門)을 비롯하여 수문(水文)과 북문(北門)이 있었는데 수문(守門)의 통행이 가장 많았다. 이 수문(守門)을 비롯, 재판옥지(裁判屋址), 동향사지 (東向寺址) 등이 오늘날의 동광동에 해당된다.특히 수문(守門)은 왜관과 동래로 통하는 공식문으로 동래부와 부산진에서 파견하는 장교 각1명과 통사 2명, 문지기 2명이 10일 교대로 근무하며 아침저녁으로 문을 열고 닫으며, 동래부에서 발행하는 증명서를 가진 자가 아니면 출입을 허가하지 않았다.

수문은 현재의 동광초등학교의 동쪽에 있었는데 왜관에서 사망한 일인들의 관을 운반할 때만 사용했기 때문에 무상문(無相門)이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북문은 대청동의 연혁에서와 같이 평상시에는 늘 닫아두고 잔치가 있을 때만 사용하였다. 동광동은 초량왜관시대의 동관(東館)이 위치하였다.

동관은 바로 일본에서 오는 배가 정착하는 곳이며 왜관의 최고책임자의 집과 직접 거래가 이루어지는 개시대청(開市大廳)이 있어 일본조계가 되자 바로 본정(本町)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해방 후 일본식 지명이 없어짐에 따라 동관이 있던 자리라는데 동관동으로 돌이켜져야 옳으나 발음의 어려움과 이웃 광복동과의 관계상 광복동 동쪽에 위치하는 점 등으로 동광동(東光洞)으로 바뀌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 것 이다.

행정동 동광동은 면적이 0.17km2으로 행정읍면동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좁은 곳이다.

6.3. 대청동 1~4가

대청동(大廳洞)은 초량왜관(지금의 용두산부근 11만평) 북쪽 담장밖에 있는 수문너머, 동래부에서 30리 거리에 위치한 연향대청에서 유래하였다. 연향대청(晏饗大廳)은 일본사신을 맞이하여 동래부사나 부산첨사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연대청이라 불렀다. 연대청의 부속건물로는 북문인 연향문과 1간의 내북문이 있었다. 북문은 연향시 왜사(倭使)가 출입하는 곳으로서 동복병장이 지키고 평시에는 봉쇄하였다. 이 연대청 찰에는 유원(柔遠)이란 액자가 붙어 있어서, 연대청은 일명 유원관, 유원루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연원을 가진 연향대청은 현재의 남일초등학교자리에 위치하였으며, 이로서 그 지명을 일제시기부터 대청정 (大廳町)으로 불렀으며, 광복 후에도 일본식 지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대로 대청동(大廳洞)이라 하게 되었다. 대청동은 1982년 법정동인 복병동을 대청동에 병합시켰으며, 복병동은 부산지방 기상청이 있는 복병산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6.4. 보수동 1~3가

보수동(寶水洞)은 보수천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보수천은 부산개항 직후부터 부른 이름이며, 그 이전에는 법수천(法水川)이라고 불렀다.『감동어기전말등록』에는 구초량(舊草梁)의 법수천 동암(東岩) 밖이 곧 왜관 수문의 옆이라 기록되어 있다. 법수라 함은 불법계에서 중생의 번뇌를 씻어 정하게 한다는 것을 물에 비유해 일컫는 말이며, 중생의 마음 속의 때를 씻어주는 물이란 뜻이다. 법수천(法水川)이라는 이름이 어느 때부터 기원하였는지 그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다만 옛날 구덕산에 구덕사라는 오래된 절이 있었고, 또 18세기 중엽 왜인들의 약탈에 못이겨 그 절을 다른 곳으로 옮겨감으로써 폐사가 되었다는 기록 등을 아울러 생각해 볼 때, 법수천이라는 이름은 이곳 구덕사의 승려들이나 그 불신도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 한편, 법수천은 법수에서 따온 말로서 불교적 의미를 더욱 구체화하여 법주(法主)와 법왕(法王)이란 뜻으로 윤색된 표현으로 보인다. 근대개항 후 법수천의 법(法)을 보(寶)로 고쳐 보수천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그 뜻은 법수와 같은 것이다. 1880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보수천 상류로부터 대나무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하였다. 그후 1886년 나무 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을 하였으며, 1894년 보수천 상류에 물을 모으는 둑인 집수언(集水堰)을 만들고 자연여과장치를 시공하였다. 이와 아울러 거류지 가까운 곳에 대청배수지를 설치하였으며, 이것이 우리나라 상수도 기원이 되었다.

6.5. 부평동 1~4가

부평동의 부(富)는 부산의 옛 지명인 부산(富山)과 같은 뜻에서 사용한 것이라 하며, 평(平)은「터」라는 뜻으로 샛디의「디」와 통하는 글자로서, 일제시대에는 부평정(富平町)이라고 불렀으며, 광복 이후에 마찌(町)만 동(洞)으로 고쳐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6.6. 광복동 1~3가

광복동(光復洞)은 숙종 4년(1678)에 두모포왜관에 이설된 초량왜관이 고종 13년(1876)의「강화도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198년 동안 존속하였던 곳이다. 그 이후 일제강점까지 일본인전관거류지로 이어졌다. 초량왜관의 중요 건물들은 용두산을 중심으로 동관과 서관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동관에는 관수왜가, 재판왜가, 개시대청 등의 3대청이, 서관에는 동대청, 중대청, 서대청의 3대청이 있었다. 각 대청에는 동헌, 서헌과 2개의 행랑이 있었다. 1910년 일본의 강점 이후 초량왜관은 일본거류지로서의 일본단독조계가 설치되었다. 1914년 4월 부제실시로 부산부 관할구역이 되면서 광복동은 변천정·금평정·서정·행정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오늘날의 광복동이란 동명은 광복이후 동명 개칭 때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번창한 곳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아 그 뜻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이 지역을 광복동이라 이름 붙여진 것이다. 1956년 시조례로 법정동인 창선동과 신창동을 행정동인 광복동에 포함시켜 관할하고 있으며, 1977년과 1992년 동광동 일부를 광복동에 편입시켜 오늘에 이르고 있다.[10] [11]

6.7. 남포동 1~6가

용두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남포(南浦) 일대의 바닷가를 자갈치라 한다. 이 자갈치는 부산을 대표하는 명물중 하나이다. 남포동 바닷가 쪽에 시장과 횟집이 들어서 있어 자갈치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자갈치는 본래 자갈+치로 구성된 지명이다. 이 지명은 이 해안이 매립되기 전에 이미 명명된 것으로 본래 주먹만한 크기의 옥돌자갈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자갈해안이었기 때문에 명명된 것이다. 치는 언저리, 언덕빼기라는 뜻이니 이에 자갈치는 자갈언저리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말미암아 명명된 지명이다. 지금은 그 아름다운 바닷가의 경치는 볼 수 없고 이름만 남아 과거의 아름다움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남포동은 남포에서 유래한 것이다. 남포는 영도대교 (일명 영도다리)로부터 보수천 하구를 지나 부산공동어시장에 이르는 남항의 해안에 해당하는데 본래 이곳은 자갈치였다. 그런데 이곳이 매립되면서 일본식 지명인 남빈으로 불리다가 광복 이후인 1947년 우리식의 한자 지명인 남포로 바뀌어 지금의 동명으로 되었다. 1977년 시조례에 따라 중앙동과 동광동 일부가 편입되었고, 1982년 법정동인 대교동 3가와 동광동 1가가 편입되었다. 또한 1982년 충무로1,2,3가를 남포동4,5,6가로 명칭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6.8. 영주1·2동

영주동(瀛州洞)의 옛이름을 임소(任所)라 하였다. 이 임소의 유래는 감리서(監理署) 설치에서 비롯되었다. 개항 후 외교통상의 업무량이 늘어나자, 고종 27년(1890)부터 업무처리를 위하여 감리서가 설치되었다. 그 관아는 지금의 봉래초등학교 자리에 있었으나, 그 자취는 사라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감리서가 있었다는 의미에서 또 관원이 근무하는 직소(職所)라는 뜻에서 임소라 불렀다. 그리고 영선고개는 영선산(瀛仙山)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영선산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영선(瀛仙)이 아니고 용선(容膳)이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영선이라는 설로 이 산에서 왜관안의 일본인과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 고개 밑에 동관문이 있어 상방(相方)이 선물을 보낼 때에는 감리에게 허가를 받으면 역관이 이곳까지 와서 입회한 상태에서 용인(容認) 선물(膳物)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명칭이지만 견강부회(牽强附會)한 느낌이 든다.

다른 한 설은 영선산이 두 개의 봉우리로 양산(兩山) 또는 쌍악(雙岳)이라고 했는데 숙종 때 두모포왜관을 초량왜관으로 이설 할 때, 초량왜관을 건축하고 수리하는 재목이 이 고개를 통해 운반되었고, 또 일부의 부재는 이 산에서 공급되었기 때문에 영선산이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용두산 주위에 초량왜관이 설치되고 그 초량왜관의 수문 밖에는 초량왜관을 관리하는 조선측의 관위건물이 지금의 영주동의 봉래초등학교 자리를 중심으로 지어졌다. 그때는 지금의 영선고개에서 동쪽 바다를 향해 영선산이 두 봉우리로 솟아 바다 저 멀리 바라보는 경관이 아주 좋았다. 그런 자리에 지금의 외교관이자 통역관격인 훈도가 집무하는 성신당(誠信堂)과 별차(別差)가 집무하는 빈일헌(賓日軒)들이 있었다. 그 훈도와 별차들이 자기들이 있는 곳을 신선이 사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으로 빗댄 말에서 영주란 마을 이름이 형성되었다.

7. 관내 각급학교

고등학교

참고로 고등학교는 모두 사립으로 공립은 하나도 없다.

중학교

초등학교

  • 광일초등학교 (대청동4가 95)[14]
  • 남성초등학교 (대청동1가 10)
  • 보수초등학교 (보수동1가 50)
  • 봉래초등학교 (영주동 582-2)

8. 같이보기


  1. [1] 구청 치고는 꽤나 작다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중구의 면적이 워낙 작다보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2. [2] 전국에 있는 모든 구 지역중 인구가 제일 적지만 땅이 워낙 작은 탓에 인구밀도는 매우 높다. 사실 이것도 그나마 한산해진 거지 인구가 정점을 찍었던 1966년(126,679명) 당시에는 km²당 44,921명이라는 무시무시한 인구밀도였었다. 이는 한국 역사상 최고 기록으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3. [3] 부산 시가지가 구도심에 한정되어 있던 과거에는 이름 그대로 부산 시가지의 중심이었지만, 남쪽은 남해 바다가 있으니 점차 북쪽 해운대, 서면, 동래 쪽으로만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의 중구는 상대적으로 남쪽이 되어 버렸다.
  4. [4] 일개 행정동화명1동보다도 인구가 적다. 다만 화명1동이 행정동치고 인구가 워낙 많은 거다
  5. [5] 부산역은 1965년 동구로 이전, 부산잔교역은 1945년 광복과 함께 폐역되었다.
  6. [6] 지역구 국회의원 : 김무성 (새누리당 → 바른정당, 6선)
  7. [7] 참고로 정의화 후보와 이해성 후보는 부산고등학교 선후배 관계였다. 본격적 선후배 매치
  8. [8] 홍준표, 안철수 후보가 모두 31표를 얻어 같은 값이 나왔다.
  9. [9] 홍준표, 안철수 후보가 모두 31표를 얻어 같은 값이 나왔다.
  10. [10] 신창동: 신창동(新昌洞)은 숙종 4년(1678) 두모포 왜관에서 이설된 초량왜관이 고종 13년(1876) 「강화도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198년 동안이나 존속하였고, 그 이후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계속 존속하였다. 초량왜관의 중요건물은 조선정부에서 지어준 동관과 서관으로 갈라져 있었으며, 동관(東館)은 광복동과 동광동 쪽이고, 서관(西館)은 신창동과 창선동 쪽이었다. 동관에는 관수왜가, 재판왜가, 개시대청 등의 3대청이, 서관에는 동대청, 중대청, 서대청의 3대청이 있었고, 각 대청에는 동헌, 서헌과 2개의 행랑이 있었다. 1910년 일제강점으로 초량왜관은 일본거류지로 일본인 단독조계가 설치되었다. 1914년 부산부 관할구역에 보면 신창동은 서정(西町)으로 그 명칭이 이름지어졌다. 이곳은 일본인의 주택가와 상가가 들어서 있었던 곳이다. 광복 이후인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개칭 때 서정(西町)을 신창동(新昌洞)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6년 7월 시조례로 법정동인 신창동을 행정동인 광복동에 편입시켜 관할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1. [11] 창선동: 창신동(昌新洞) 역시 신창동과 마찬가지로 숙종 4년(1678) 두모포 왜관에서 이설된 초량왜관이 고종 13년(1876)「강화도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198년 동안이나 존속 하였고, 그 이후 일본인 전관거류지로 계속 존속하였다. 초량왜관의 중요건물은 조선정부에서 지어준 동관과 서관으로 갈라져 있었으며, 동관은 광복동과 동광동 쪽이고, 서관은 신창동과 창선동 쪽이었다. 동관에는 관수왜가, 재판왜가, 개시대청 등의 3대청이 있었고, 서관에는 동대청, 중대청, 서대청의 3대청이 있었고, 각 대청에는 동헌, 서헌과 2개의 행랑이 있었다. 1910년 일제강점으로 초량왜관은 일본거류지로 일본인 단독조계가 설치되었다. 1914년 4월 부산부 관할구역에 보면, 신창동은 행정(幸町)으로 그 명칭이 이름지어 졌다. 이곳은 일본인들의 주택가와 상가가 들어서 있었던 곳으로 1884년에는 부산전신국을 개설하여 업무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광복 이후에는 일본인들이 철수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돗떼기, 깡통시장이라 하는 오늘날의 국제시장이 생겨 부산과 경남은 물론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쳤었다. 1947년 7월 일제식 동명개정 때 행정을 창선동(昌善洞)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56년 7월 시조례에 의해 법정동인 창신동을 행정동인 광복동에 병합하여 행정관련 업무를 관장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12. [12] 대구광역시에도 모 사건이 일어난 동명의 학교가 있지만, 거기는 남녀공학이다.
  13. [13] 관내의 유일한 중학교. 참고로 남자중학교이다. 고로 여중생들은 190번을 타고(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인접 구인 서구나 동구, 영도구까지 가야 한다.. 사실 과거에는 중구의 유일한 여중인 남성여자중학교가 있었으나, 2004년에 폐교되었고 그 이전에는 동주여자중학교도 있었고 남중으로 혜광중학교와 건국중학교도 있었지만, 동주여자중학교는 1974년에 사하구 괴정동 동주대학교가 있는 부근으로 이전하였고 혜광중학교는 1976년에 폐교되었으며 건국중학교도 1983년에 사하구 하단동으로 이전하였다.
  14. [14] 2000년대 초 남일초등학교와 동광초등학교가 서로 통합해 광일초등학교로 개명되었다. 현재 광일초등학교 부지가 옛 남일초등학교 부지, 용두산공영주차장이 옛 동광초등학교 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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