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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개요
2. 중국의 발생
2.1. 중국의 선사시대
2.2. 선진(先秦) 시대
2.2.2. 상(商)나라(은나라)
2.2.3.1. 서주(西周) 시대
2.2.3.2. 동주(東周) 시대
2.2.3.2.1. 춘추시대(春秋時代)
2.2.3.2.2. 전국시대(戰國時代)
2.3. 진한시대(秦漢時代)
2.3.2. 초한쟁패 시대
3. 중국 역대 국가
4. 중국의 역대 군주
5. 중국의 역사 인물
5.1. ㄱ
5.2. ㄴ
5.3. ㄷ
5.4. ㄹ
5.5. ㅁ
5.6. ㅂ
5.7. ㅅ
5.8. ㅇ
5.9. ㅈ
5.10. ㅊ
5.11. ㅋ
5.12. ㅌ
5.13. ㅍ
5.14. ㅎ
6. 중국사 대표적 사건
6.1. 근대 이전
6.2. 근대 이후
6.3. 중국 내 공교육에서

중국은 이미 여러 번 죽었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부활했다.

─ 윌 듀란트, 문명이야기 中

중국인들은 모든 정복자들을 거꾸로 정복할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민족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

버트런드 러셀

1. 개요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황하[2]장강[3]을 끼고 있으며 다른 고대 문명인 에게문명,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에 비해 발생은 늦었지만 다른 고대 문명과는 다르게 희한하게도 망해도 계속 부활하면서 하나의 역사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이는 4대 문명 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정체성을 간직한 채 내려오고 있는 문명이다.[4] [5] 진시황 사후에는 통일과 분열을 반복하면서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근대에는 산업혁명의 기세를 탄 서구 열강들의 공격에 참패하면서 몰락했고 내적으로도 군벌의 난립, 국공내전을 겪었으며 이후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한 후 대약진 운동문화대혁명 등 삽질을 일삼다 국가적 치명타를 입어 세계 최빈국이 되었다. 그러나 1978년 중국의 지도자가 된 덩샤오핑의 경제 개혁으로 회복했고,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이후, 21세기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한국에서 배우는 근현대 이전 동양사 하면 중국사가 6할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6]

2. 중국의 발생

2.1. 중국의 선사시대

갑골문자보다 더 오래된 문자가 발견됐다.

의외로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발원지가 중국 대륙으로 추정되고 있다. 타이완 원주민들이 쓰는 언어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계통의 언어라는 것과 중국 남부지역 주민들이 유전적으로 볼때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폴리네시아인, 마다가스카르인과 어느 정도 연관을 가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기 때문이지만 오늘날의 모습과 다르다.. 이들은 대체로 신석기시대 무렵에 장강 하구일대에 자리잡았다가, 청동기로 무장한 중국티베트어족에게 점점 밀려나며 화남지역과 타이완을 거쳐서 필리핀에 정착했고 또 거기서 인도차이나 반도 일대와 인도네시아 지역까지 거쳐서 마다가스카르폴리네시아 지역에 진출한 것으로 추측된다. 물론 중국 본토의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은 타이완 섬 일대에 살던 종족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한나라와 남북조시대를 거치며 한족들이 남하하면서 혼혈이 이루어지며 한화(漢化)되었기에 이들과의 유대감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한다.

또한 오스트로아시아인들도 고대에는 장강 일대를 비롯한 중국 남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주거했으며, 현재도 중국 서남부 일대에 오스트로아시아어계 언어를 쓰는 종족들이 일부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중원 지역에서 온 한족과 통혼하였고 언어도 피진화되면서 대다수의 월족 종족은 한화(漢化)되면서 소멸하였다.

2.2. 선진(先秦) 시대[7]

2.2.1. 하(夏)나라 실재설

하나라는 문헌상 기원전 21세기부터 기원전 17세기까지 존재했다고 하는 국가로, 중국 역사상 최초의 왕조 국가로 언급된다. 국성은 사(姒). 상서 및 사기에서는 그의 사후 하나라의 왕위가 우의 아들에게 세습되면서 왕위 세습이 제도화되었다고 하는데, 죽서기년에서는 본디 백익에게 선양할 생각이었으나, 우의 아들이 백익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 세습이 고착되었다고 하는 이설도 전한다.

마지막 왕인 은나라주왕과 더불어 하걸은주라고 불리며 고대의 2대 폭군으로 손꼽힌다. 그는 매희(말희)라는 미녀에게 현혹되어 나라를 망치고 은나라 시조 성탕에 의해서 멸망되었다고 한다.

자세한 왕계가 전하고 선진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언급이 되는 왕조라서 실존했을 가능성은 뚜렷하기는해도, 적어도 현재까지는 고고학적으로 분명한 증거가 없다. 따라서 역사상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상나라만 해도, 그 실체가 드러나기 이전에는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등에게 전설상의 왕조로 취급받았으니까… 하나라의 후보지로 뽑히는 곳이 뤄다먀오(洛達廟) 등의 지역이지만, 문자 자료가 없어 실증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고고학계를 지원해 약 1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된 얼리터우(이리두) 유적을 공인하는 한편 하의 정확한 연표까지 작성하는 등 상당한 성의를 보이고 있다. 헌데 이 얼리터우 유적은 주로 하남성을 중심으로 발굴되었는데 정작 임금이 하 나라의 도읍으로 삼았던 곳은 《제왕세기》등에 따르면 산시성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8] 또한 중국 정부가 과거, 그리고 지금에도 행하고 있는 공정들을 생각한다면(...). 실제로 지금 행해지는 작업은 하상주단대공정으로 불리고 있다. 물론 여러 문헌에서 언급된 나라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실재했을 가능성은 있으나 그 유물들이 과연 하 대 유물인가에 대해선 중국 고고학계를 제외하고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상나라(은나라)나 주나라보다 더 작은 성읍국가(또는 도시국가)로 보거나 상나라 이전의 문화나 문명을 중심으로 살았던 국가일 가능성이 높고, 연도도 역사에서 언급했던 연도보다 조금 더 짧은 등 차이가 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내부에서의 주장과는 달리 국제고고학계에서는 하나라의 존재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아직' 증거가 부족해서 '아직' 인정받지 못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결론에 끼워맞추기 위해서 연구 방식을 왜곡했다는 강한 비판을 받았다.#

2.2.2. 상(商)나라(은나라)

상나라는 기원전 17세기부터 기원전 11세기 무렵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주로 은(殷)이라고도 많이 불리지만, 적어도 상나라 사람들 자신들은 스스로를 은나라 사람이라고 부른 경우는 없다. 은이라는 통칭은 상나라의 마지막 수도가 은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고대여서 당시 국가의 실질적인 인구는 수도에 몰려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상과 은 두 가지 표현이 혼용되었고, 상나라 이후 시대부터 유명 학자나 정치인들이 상나라 시대 이야기를 할 때 '과거 은 시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과거 은의 누구는 이런 말을 했었다.'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바람에 중국 역사 기록에 상나라라는 표현보다 은이라는 표현이 훨씬 심하게 난무하면서 오해가 퍼진 것이다.[9]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상인'이라는 말이 '상나라 사람'에서 나온 말이므로 상나라라는 표현이 그렇게 안 쓰였던 것도 아님은 분명하다.

고도로 발달한 청동기 기술을 가졌으며, 기원전 12세기 무정(武丁)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했고, 주변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키며 영향력을 키웠으나, 지나친 인신공양으로 인한 반발과 동방정책 등으로 인해, 기회를 엿본 주나라에게 멸망 당하고 만다.

한때는 거의 전설상의 왕조로 여겨질 정도로 실체가 의문시되었으나, 갑골문의 발굴과 해석이 활발해지고, 은허 유적 등이 발견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존체 자체는 의심하지 않는다.문헌과 유물로 확인할 수 있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래된 왕조 국가.

상나라에서는 대규모의 인신공양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갑골문과 발굴된 해골 등으로 인해 확인된 사실로, 이 시대는 아즈텍 문명에 버금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인신공양이 벌어졌다. 순장 제도 등의 모습은 상나라 이후에도 여러 차례 나타나기는 하나, 규모 면에서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

2.2.3. 주(周)나라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 무렵에서 기원전 256년까지 존재한 나라로, 고공단보(古公亶父)의 시대에 집단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주문왕의 시기에 국(國)으로의 정체성을 확립했고, 주무왕목야대전(牧野大戰)에서 상나라를 패퇴시키고 당시 중국의 패권을 차지했다. 이후 영토를 쪼개서 공신 및 친족에게 나눠주고, 제후로서 독립적으로 통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봉건제도가 시행된다. 기원전 771년 호경(鎬京)에서 낙읍(洛邑)으로 수도를 옮기는 시점에 따라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뉘어진다.

2.2.3.1. 서주(西周) 시대

기원전 11세기 무렵 주나라의 건국 무렵부터, 기원전 771년까지 주나라의 수도가 서안에 있었을 당시를 부르는 명칭. 과거의 일개 성읍 국가에 머무르는 신정 일치 체제를 넘어, 타 지역과 타국에 대해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통치하는 보다 더 규모가 큰 진정한 국가로 나아가는 첫시작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나라 성왕과 강왕의 치세는 성강지치(成康之治)로 일컫어지며 중국 역사의 태평성대로 유명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당대 주나라 정도의 행정력으로 넒은 중국 영토를 통치하는 것은 무리고, 봉건제도를 이용한 방식으로 여러 제후들이 지역을 다스렸고, 개척 작업을 벌였다. 또한 당대 주나라는 남진정책을 벌였다는 시각이 많은데, 주소왕(周召王)의 경우 한수(漢水)를 건너다 익사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단순한 익사가 아니라 남쪽 지방 개척에 나서다 사망했다고 보는 견해가 강하다.[10]

이 시기에 주나라는 제후들에 대한 영향력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었지만, 기원전 771년 견융(犬戎)이 수도 호경을 초토화 시킨 이후로, 수도를 동쪽으로 옮기게 되면서 서주시대는 막을 내린다.

2.2.3.2. 동주(東周) 시대

이 시기 위대한 생각의 폭발이 일어나는데... 바로 제자백가

동주 시대는 주나라가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일반적으로는 전국시대가 완전히 종결되는 기원전 221년까지를 가리킨다.[11]

이 시기는 제후들에 대한 주나라의 영향력이 완전히 박살난 시기로 말할 수 있으며, 주나라의 무너진 권위와 제후들의 독립과 팽창, 일개 제후국에서 전국시대 후반부에 이르면 거대한 규모의 왕조 국가로 발전해나가는 양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중원 지역 정도에 머물던 '중국'의 개념은, 이제 오월(吳越)과 연(燕)나라와 제(齊)나라까지 포함하는 범위로 한층 발전되게 된다. 동주시대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로 나뉜다.

2.2.3.2.1. 춘추시대(春秋時代)

동주시대 중, 주나라가 수도를 낙읍으로 옮긴 기원전 770년경부터, 제후국이던 진(晉)이 3개의 유력한 가문에 의해 삼분(한, 위, 조)되는 '전국시대'가 시작되기 직전까지의 시점을 가리키는 말. 명칭은 공자(孔子)가 저술한 《춘추》에서 비롯되었다. 이 시대를 기점으로 주나라에 대한 제후들의 이탈이 본격화되었다. 정장공(鄭莊公)은 주환왕의 연합군을 격파해 주나라의 위세를 깔아뭉갰고, 초나라는 칭왕을 하기 시작하면서 주나라의 위신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러한 풍토 속에 여러 제후들은 우후죽순으로 세력을 키웠다. 그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이 춘추오패.

그러나 아직은 국가체제의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후국의 기풍이 남아있던 시절이라, 전쟁의 양상은 대규모화 하지 않았고 국가간의 싸움도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일단 타국을 멸망시키고 통치를 하려해도 통치 역량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이 시기에는 그 이전까지 오랑캐 그 자체나 다름없이 취급받던 초나라, 오나라, 월나라과 같은 나라들이 역사의 향방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중국의 범위는 한층 확장되었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압도적인 힘으로 북진하는 초나라(楚)와, 중원의 맹주로서 이를 저지하는 진(晉).

2.2.3.2.2. 전국시대(戰國時代)

동주시대 중, 춘추시대의 후반부부터 기원전 221년 진나라의 통일 이전까지를 일컫는 시기. 시대 구분법에 대해 약간의 이설이 있으나, 가장 대표적인 방식은 진(晉)나라가 3명의 가신들에 의해 한나라(韓), 위나라(魏), 조나라(趙) 3국으로 구분되었을 때로 보는 견해다. 그 명칭은 유향(劉向)의 저서 <전국책(戰國策)>에서 유래하였다.

이 시대는 춘추시대를 거쳐 중앙 집권화를 확립하게 된 거대국가들이,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소국들을 모조리 병합하고, 더욱 거대화되어 엄청난 규모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춘추시대만 해도 수천, 그 시대를 뒤흔드는 가장 거대한 전투들도 수만 단위에서 벌어졌다면, 이 시대는 그야말로 국가의 역량들이 포텐을 터뜨리며 한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역량을 쥐어짜면서 수만, 수십만 대군의 전투가 밥먹듯이 펼쳐지게 된다.

당연히 엄청난 대혼란과 지옥도가 펼쳐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대혼란기를 거치면서 유교, 법가, 도가, 묵가 등 온갖 사상이 우후죽순으로 등장, 발전했으며 전쟁 기술 역시 경이적인 속도로 발전하였다.

이 시대의 양상을 살펴보자면 열국 중 압도적인 진(秦)나라와, 이에 맞서는 연(燕), 조(趙), 제(齊), 위(魏), 한(韓), 초(楚)의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2.3. 진한시대(秦漢時代)

전국칠웅 중 하나이자 최강국이었던 진나라가 기원전 221년 전중국을 역사상 최초로 통합한 후, 진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이 벌어지고, 이후 통일 한나라가 출현하고 난 뒤, 왕망이 잠시 신나라(新)를 건국하였다가 후한이 성립하고 최종적으로 멸망했을 시기를 가리킨다. 기원전 221년부터 서기 220년까지의 기간.

진나라는 역사상 최초로 중국을 통일시켰고, 온갖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단위조차 다르던 모습들을 통합시켰다. 비록 진나라 자체는 곧 멸망하고 말았지만, 진나라가 뿌려놓은 '통일 중국'의 씨앗은 곧 한나라가 탄생하게 되면서 이어지고, 400년에 이르는 전한/후한의 통치 시기를 거쳐 개별적인 요소였던 중국은 이제 드디어 단일된 문화권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때문에 진나라와 한나라를 합쳐 '진한시대'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후에 어느 나라도 희한하게도 300년을 못 넘긴다.(송나라가 도중에 나라가 한번 망하긴 했어도 북송 남송 합치면 300년 가긴 했다)

2.3.1. 통일 진나라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기원전 206년 멸망할 당시까지를 일컫는 시기. 기본적으로는 전국칠웅 중 하나였던 진나라가 이어진 형태지만, 이 시대부터 중국은 온갖 다른 언어와 제도를 하나로 만들었고, 서로 이질적인 문화권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단일 문화권으로 분명하게 나아가기 시작한다. 따라서 과거의 진나라와 통일 진나라를 구별하여 말하는 경우가 많으며, 따라서 '진나라'를 아예 기원전 221년부터 시작한 왕조처럼 기술하는 경우도 있다.[12]

법가(法家)의 학문을 받아들이고 원교근공의 외교정책을 받아들여 열국을 분열시킨 진나라는 백기, 왕전, 몽염 등의 장수를 앞세워 전쟁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기원전 230년에는 먼저 한(韓)나라를 멸망시켰고, 불과 10년밖에 안 되는 사이에 조(趙) ·연(燕) ·초(楚) ·위(魏) ·제(齊)의 순으로 6국을 통일하였다.

중국의 통일을 이루어낸 진시황황제로 즉위하며 통일의 시대를 열었고, 군현제(郡縣制)를 실시하여 전국을 36개 군으로 하고 각종 통제정치를 단행, 획일적인 문화를 창조하였다. 이른바 중앙집권적 전제군주제가 완성된 것이다.

시황제는 다시 몽염을 파견하여 북쪽의 흉노를 쫓아내어 만리장성을 구축하고 남쪽은 임효조타를 보내 광둥성(廣東省) ·광시성(廣西省)에서 베트남 북부까지 정복하였다. 진나라의 위명은 해외에까지 뻗쳐, 중국의 다른 이름을 지나(支那) 혹은 진단(震旦) 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진(秦)이라는 음이 와전한 것이다.

그러나 시황제의 대외전쟁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 되는 것이어서 만년에는 민심이 동요하자 극단적인 탄압정책이 시작되었다. 진시황제가 사망한 후에는 그러한 불만이 폭발하였고, 진나라는 급속도로 붕괴했다.

2.3.2. 초한쟁패 시대

3. 중국 역대 국가

중국 역대 국가명 참조

4. 중국의 역대 군주

5. 중국의 역사 인물

5.1. ㄱ

5.2. ㄴ

5.3. ㄷ

5.4. ㄹ

5.5. ㅁ

5.6. ㅂ

5.7. ㅅ

5.8. ㅇ

5.9. ㅈ

5.10. ㅊ

5.11. ㅋ

5.12. ㅌ

5.13. ㅍ

5.14. ㅎ

6. 중국사 대표적 사건

6.1. 근대 이전

6.2. 근대 이후

6.3. 중국 내 공교육에서

(중국/대만 내 역사교과서를 참고하여) 중국의 공교육은 자국의 역사를 어떻게 교육하고 있는지 다룰 필요가 있다. 중화권(중국/대만)의 학교에서 사용하는 역사교과서 한 권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책의 앞 페이지에 있는 목차 부분을 끌어내서 설명하기로 한다.


  1. [1] 대륙통치기 중화민국이 빠져있다.
  2. [2] https://www.youtube.com/watch?v=3NEC8ERjMEk
  3. [3] 장강 문명은 황허문명이 확대된 것이 아니라 별개의 계통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국은 황하에서 일어난 문명이 장강 문명을 흡수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춘추전국시대 당시에 초나라와 오나라 월나라가 장강문명권 국가였지만 장강문명권 국가들이 차차 중원에 진출하면서 융합이 진행되었고 결정적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시기를 거치면서 동화된 것이다.
  4. [4] 틀린 소리다. 그리스도 에게문명의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고 이집트도 나일강 문명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도 역시 인더스 문명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국가나 민족도 다들 인정한다. 논란이 되는건 이라크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계승 문제뿐
  5. [5] 정복자들이 피정복민의 앞선 문화에 동화되는 사례는 딱히 중국에서만 발생한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게르만족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로마문명에 동화되었고 중세의 노르드족(바이킹) 역시 죄다 게르만-로망스 문명에 동화되었다. 괜히 유럽에서 그리스-로마를 유럽문명의 어버이로 여기는게 아니다. 또한 중동을 휩쓸던 투르크족도 이슬람 세계에 동화되었고 몽골족이 세운 칸국들도 남김없이 동화되었다. 물론 투르크족은 문화와 혈통은 선조들과 완전히 변해버렸어도 민족적 정체성 자체는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대표적으로 터키) 중국 역시 티베트와 위구르를 무력으로 강제합병 했으나 문화적으로는 아직까지도 동화되지 않았다. 아니, 그걸 넘어서 둘 다 거센 탄압에도 현재까지도 지속적인 독립운동과 시위를 일으키고 있어 중국정부는 강경한 유혈진압을 하고 있다. 거란족도 모두 중국에게 흡수된게 아니라 일부는 여진족한테 멸망당한 이후 서쪽으로 이동해 서요를 세워 국가를 계속 이어나가다 중앙아시아 이슬람 세력에게 동화되었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독립국가로 잘살고 있는 몽골이 있다.
  6. [6] 이는 서구문명과 접촉하기 전까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자주, 다양한 분야에서 직접적으로 교류를 해오던 국가가 바로 중국이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영향을 받은 문화는 중국을 제외하고도 여러 국가들이 있지만 그러한 문화들이 유입되는 대부분의 루트는 바로 중국이었다. 일본은 근대 이전까지는 한반도와의 경제무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와의 교류보다는 자기들끼리 열도에서 치고받는 역사가 길었고, 그외 동남아시아 역사는 한국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다. 또한 몽골이나 유목민족들은 몽골을 제외하곤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소수민족으로 전락했거나 아예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보면 한국과 일본, 몽골 등을 제외하면 거의 동아시아의 소수민족들이 중국이라는 국가에 흡수되었다고 볼 수도 있거나 옛날에는 유럽처럼 많은 국가들이 있었는데 하나로 통합된 대륙의 국가가 되었던 국가가 중국이라고 볼 수 있다.
  7. [7] 진시황이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하기 이전의 시대.
  8. [8] 두 지역이 서로 붙어있긴 하고 산시성에서도 얼리터우 유적이 발견되기는 했다.
  9. [9] 한국을 적용시켜 보자면 미래에 후손들이 한국을 가리키면서 '서울 시대'라고 부르는 격이라 할 수 있다.
  10. [10] 이런 시각은 비단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당장 춘추시대만 해도, 관중이 초나라 대부 굴완(屈完)에게 이 일을 따져물은 적이 있다. 당대에도 벌써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것.
  11. [11] 주나라 자체는 기원전 256년에 멸망했다.
  12. [12] 두산백과, 한국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등
  13. [13] 한을 계승하는 의미로 정식 국명 자체는 '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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