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륜

蔡倫(50? ~ 121년)

후한의 환관으로, 계양군 사람이며 자는 경중(敬仲)이다. 젊어서부터 학문에 큰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명제 후기에 입궁하여 장제 때 소황문이 되었고, 즉위 후 중상시가 되어 정사에 참여하였으며 상방령을 겸하였다. 원초 원(114)년에 용정후로 봉해졌고, 이후 장락태복이 되었다.

그는 상제 원흥 원년(105)에 나무껍질, 베옷, 고기잡이 그물 등을 사용하여 ‘채후지(蔡侯紙)’라는 종이발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현존하는 기록상으로는 종이를 만든 것으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사람이기 때문에 종이를 발명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현재 학계의 의견은 채륜이 처음부터 제지법을 발명했다기보다는 기존의 제지기술을 개량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대세이다. 채륜이 활동한 시기 이전에도 종이가 있었다는 고고학 증거가 발굴되고 있기 때문. 롭 노르 지(紙)가 아주 대표적인 경우다. 다른 지역에 확장해서 보면 이집트의 파피루스같은 것인데, 채륜이 처음으로 발명한 것은 제지법 중 혼합재료를 섞어서 펄프로 압축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채륜 이전의 종이가 섬유재료를 고르게 다듬어서 펴놓은 것이었다면 채후지는 최초의 합성 종이로 재료를 액상화한 후 틀을 통해 펴놓는 작업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후로도 이전 시대에서 주요 서사 재료로 활용되었던 목독, 목간, 죽간, 비단 등이 여전히 활용되었으며, 오늘날과 같은 쓰는 재료로서의 종이는 조금 뒤의 시기부터 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상시로서 환관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 명제, 장제, 화제 안제 등 4명의 황제를 보필하였으며, 장덕황후 두씨화희황후 등씨 등 2명의 섭정 황태후를 보좌하며 40여년간 궁성에서 봉직하였다. 이보다 몇십년 후에 나오는 십상시들의 더러운 오명과는 달리 청류파였고, 그나마 정화와 더불어 후대에도 평가가 그나마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정의 궁중암투에 깊이 개입했으며 화제 시절 두황후를 지지하고 송귀인을 자살로 이끌었는데(82), 이후 두씨일족이 몰락하고 송귀인의 손자인 안제가 제위에 올라 이 일을 추궁하자 채륜은 자살했다고 한다.

후대의 환관들에게는 전한 시대의 사마천, 명나라의 정화와 함께 유능한 환관으로 추앙받았다고 한다.

이 외에 채륜과 같은 청류파 환관은 후한 말에 여강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환관이었으므로 수염이 있었을 리가 없었지만, 어린이용 학습 만화 등에서는 수염이 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최종 확인 버전:

cc by-nc-sa 2.0 kr

Contents from Namu Wiki

Contact - 미러 (Namu)는 나무 위키의 표가 깨지는게 안타까워 만들어진 사이트입니다. (16.39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