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지희 The Grace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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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지희 The Grace

그룹명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CSJH The Grace (영어)

天上智喜 The Grace (한자)

출신
국가

대한민국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

데뷔

2005년 5월 1일 싱글 1집 'Too Good'

장르

아카펠라, 발라드, 댄스

수상

2007년 Mnet KM 뮤직 페스티벌 댄스 음악상 

2007년 제14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그룹부문가수상 

외부
링크

SM엔터테인먼트 공식 홈페이지

공식
팬클럽

[1]

1. 소개
1.1. 공식 팬클럽
1.2. 샤플리 커뮤니티 사이트
2. 멤버
3. 활동 역사
3.1. 결성 과정과 데뷔 초창기 활동~일본 진출
3.2. 天上智喜에서 The Grace로
3.3. 정규 1집 한번 더, OK? (One More Time, OK?)
3.4. 비운의 후속곡 'Dancer In The Rain'
3.5. 일본 싱글 5집 'Piranha'
3.6. 일본에서의 활동과 스테파니 활동 중단
3.7. 다나 & 선데이, 현재 상황
4. 국내 활동에 대한 분석 및 성과
5. 디스코그라피
6. 여담

1. 소개


天上智喜 The Grace
하늘의 지혜와 기쁨

천상지희의 몰락에 관한 요약한 기사

당시 큰 인기를 몰던 리즈 시절 인터뷰

다나, 선데이, 린아, 스테파니로 구성된 4인조 아카펠라 팝 걸그룹. 특별히 리더가 정해진 팀은 아니지만 대부분 다나가 리더 역할을 했다.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에서 'Too Good'으로 데뷔한 이들은 동방신기의 여성판으로 결성된 그룹으로, 동방신기처럼 데뷔 초창기에는 각 멤버 이름앞에 '천무', '상미', '지성', '희열' 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지만 2006년에 삭제되었다.

2009년 일본에서의 1st Live Tour 'Dear...'를 끝으로 현재까지 활동은 중단한 상태이다. 공식 해체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2008년 이후로 4인조 완전체 활동이 한번도 없었는데 사실상 해체한 그룹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이후 네명이서 사적으로 모인 모습도 단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

1.1. 공식 팬클럽



팬클럽 이름은 샤플리[2]이고, 공식 풍선 색깔은 파스텔로즈였지만 2006년 '더 그레이스'로 개명하고부터는 펄핑크를 대신 사용했다.

사진과 같이 소녀시대가 공식색으로 파스텔로즈를 받게 되면서 팬들 사이에 많은 마찰이 있었다.[3]

또한, 9년이나 먼저 데뷔한 NRG와 베이비복스 공식색이 분홍색계열이라 천상지희 The Grace의 공식색이 밝혀졌을 때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1.2. 샤플리 커뮤니티 사이트

천상지희 팬커뮤니티 사이트

현재 기준으로, 이제 그녀들의 팬규모도 이미 공중분해가 된지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그들을 잊지못한 미련을 가진 팬이였던 사람들이 유일하게 천상지희 멤버들의 덕질들과 활동에 관한 팬게시글을 올려 활동하는 유일한 사이트가 되어버렸다.. 천상지희가 4명이서 활동했던 당시 팬들이 올린 덕질 게시글도 이 사이트가 유일하게 고대유물급처럼 남아있다.

2. 멤버

2.1. 린아

린아/Lina

출생

1984년 2월 18일

본명

이지연

신체

168cm, 혈액형 A형

가족

2녀 중 둘째

배우자

장승조

포지션

2002년~2003년 이삭 N지연으로 활동.

특기

노래

종교

개신교

학력

명지전문대학교 실용음악과

2.2. 다나

다나/Dana

출생

1986년 7월 17일

본명

홍성미

신체

171cm, 48kg 혈액형 O형

가족

2녀 중 장녀

과거 활동

2001년 솔로 앨범 1집 [DANA] 데뷔,

2집까지 발매

특기

노래, 일본어, 모창

종교

개신교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 학사

2.3. 선데이

선데이/Sunday

출생

1987년 1월 12일

본명

진서윤(구 본명 진보라)

신체

160.8cm, 49kg 혈액형 O형

가족

2남 2녀 중 셋째

과거

활동

2004년~2005년 일본에서

솔로 가수 활동.2장 싱글 발매

특기

일본어, 그림그리기, 노래

경력

2001년 제1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노래짱 대상 수상

종교

개신교

학력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2.4. 스테파니

스테파니/Staphanie

출생

1987년 10월 16일

본명

김보경, Stephanie Kim

신체

167cm, 혈액형 O형

가족

무남독녀

특기

발레, 재즈댄스

경력

2004년 제7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

노래짱 대상 수상

학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3. 활동 역사

3.1. 결성 과정과 데뷔 초창기 활동~일본 진출

2000년대 초반, SM 엔터테인먼트S.E.S.를 이을 걸그룹으로 밀크(걸그룹), 신비 등을 배출시켰으나 미흡한 마케팅과 안습한 시기등으로 모두 실패에 가까운 결과를 내었다. 밀크는 2집을 준비하던 중에 멤버가 무단이탈하여 공중분해 되었고, 신비는 소리소문 없이 해체됐다. SM은 앞선 이 두그룹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2001년 솔로가수로 데뷔해 논스톱으로 유명세를 탔으나 2집이 부진한 상황이었던 다나를 필두로, 2002년 데뷔해 2004년 해체됐던 이삭 N 지연[4]의 멤버였던 지연(후에 상미린아로 개명)과 일본에서 키워지려던 보라(후에 지성선데이로 개명), 2004년 청소년 경연대회(Teen Best Competition)'에서 대상으로 입상했던 연습생 스테파니를 모아 S.E.S. 이후 SM에서 정식으로 7년만에 4인조 여성그룹을 기획한다. 이전에 나왔던 밀크와 신비는 각각 SM의 자회사에서 데뷔했기 때문에 100% SM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그룹은 천상지희(天上智喜)라는 이름으로 2004년 초여름 쯤부터 결성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본래는 프로젝트 그룹으로 기획되어 이후 계속 활동을 할것인지에 대해 확정됐던 상황은 아니었다. [5] 천상지희는 중국에 진출했던 다나, 일본에서 가수를 준비했던 선데이, 미국에서 자란 스테파니, 한국에서 활동한 린아가 함께 모여 아시아권에서 활약하고 나아가 전세계에서 인정받을 걸그룹으로 탄생되었으며 실제로 멤버 모두 SM에서 특출난 실력으로 인정받은 엘리트 연습생만 모인 구성이었다. 이에 따른 SM내에서 기대도 매우 컸던것으로 알려진다.

한때 천상지희는 SM의 전 관계자 김경욱이 기획한 걸그룹이라는 얘기가 돌았는데, 시기상으로는 데뷔 시기가 김경욱이 집권할 당시는 맞지만 데뷔후 얼마안가 김경욱은 해임됐고 기사상으로도 이수만이 직접 프로듀싱했다고 밝혔었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이너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경욱이 기획해 망해가던 천상지희를 이수만이 손대면서 대박을 냈다"라는 얘기가 많지만 이건 전혀 근거도 정황도 없는 이야기다. 2016년 스테파니가 비디오 스타에 출연해 밝힌 바로는, 당시 이수만 대표가 '여자판 동방신기'를 만들겠다며 멤버들 사복부터 무대 의상, 화장품까지 모두 직접 미국에서 공수해 맞췄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줬다고 밝혔다. 그만큼 이수만 대표도 천상지희 기획에 상당히 열정적이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천상지희의 첫 공식석상 모습. 2004년 12월 기자회견

이들은 2004년 SM TOWN 여름음반에 다나의 2집 수록곡 '바램'을 4인 체제로 재녹음하여 싣으면서 데뷔 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외에도 이누야샤 5기 오프닝/엔딩주제가 '장난스런 키스'를 녹음하여 수록하기도 했다. [6] 2004년 9월 24일, SM 쇼케이스로 첫 모습을 드러낸 천상지희는 본 무대에서 '바램'을 퍼포먼스 한다. 또 린아는 화요비의 '당신과의 키스를 세어보아요'를 커버했고,[7] 선데이는 자신의 일본 데뷔곡 'リラの片想い (리라의 짝사랑)'을 부르며 개인 무대도 함께 가졌다. 이 후 12월 경, 중국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데뷔를 알린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중국인 멤버 한명을 추가로 영입해 데뷔한다고 밝혔지만 같이 기획했던 동방신기 중국인멤버 영입건이 무산되면서 천상지희도 자연스레 무산되었다. [8] 이 때 SM측에선 천상지희를 '여자판 동방신기'로 소개하는데, 이 점이 카시오페아들의 심기를 건드려 대단히 역효과를 냈다. '여자판 동방신기'에 걸맞게 각각의 멤버 이름 앞에 '상미', '희열', '지성', '천무'라는 괴상망측한 단어가 붙어 무(天舞)스테파니 미(上美)린아 성(智聲)선데이 열(喜悅)다나 라는 더욱 이상한 예명이 붙여지면서 더 비난을 받았다.

거기다 팬클럽 이름이 북두칠성이라는 둥, 활동 내내 S.E.S.의 노래를 리메이크 할 것이고 풍선 색깔 역시 이들의 상징색인 펄보라를 사용할것이다, 혹은 신화창조의 주황색을 사용할것이다 등의 헛소문이 돌면서 데뷔초부터 각종 팬덤에게 찍혀 많은 안티를 끌어들였다. 그러면서 등장했던 여론이 '재활용 그룹'이라는 것이었는데, 사실 멤버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말이 많은 부분이다. 이미 10대층에선 인지도가 있었던 다나와 지연(린아)의 합류를 비롯해 약 2년간 일본에 머무르면서 데뷔를 준비하던 선데이가 갑자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던 상황[9]등이 그룹 결성 자체가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테파니는 SM에 입사한지 1년도 안돼서 데뷔가 결정된것도 이례적인 일. 어쨌든 이들은 2004년 11월부터 녹음 작업에 돌입해 그 해 말쯤에 타이틀 곡으로 내정됐던 '부메랑'의 M/V와 자켓 촬영등을 모두 끝마치고 2005년 3월, iLikePop 사이트에 '부메랑'과 수록곡 'Can't Help Falling in love'의 미리듣기를 공개했다. 하지만 여기서 SM이 또 병크를 저지르는데 타이틀곡 선정을 팬투표로 결정한다면서 타이틀곡이 '부메랑'에서 'Too Good'으로 갑자기 바뀌어 버리는 사태가 벌어진다. 'Too Good'은 '부메랑'과는 상반되는 발라드 곡이었고 당연히 댄스곡보다 임팩트가 현저히 떨어지는 노래였다. 당시 우스갯소리로 안티들이 일부러 'Too Good'을 투표한게 아니냐는 말이 있었을 정도.

당시 천상지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가창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발라드 곡으로 노선을 바꾼것이다라고 보는 추측과 발라드곡으로 시작한 뒤 댄스곡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지만 이것이 타이틀곡 선정에 합당한 이유로 보기엔 적절치 않아보인다. '재활용 그룹'으로 욕을 먹고 있던 상황에 'Too Good'은 다나 위주로 만들어진 노래였으며 신인이었던 스테파니를 필두로 해서 '재활용 그룹'이라는 인상을 지워도 모자랄 마당에 이미 알려진 다나를 필두로 만들어진 'Too Good'을 타이틀로 민것부터가 미스였다. 타이틀 곡이 급하게 변경되면서 수록곡후속곡으로 예정됐던 'The Club'이 트랙리스트에서 누락되었고[10] 부랴부랴 'Too Good'의 뮤직비디오 촬영이 진행되었다.

싱글 1집 'Too Good' 2005.04.29 발매

2005년 5월 1일 SBS 인기가요 데뷔 무대

약 1년여간의 준비끝에 2005년 4월 29일, 중국 CCTV의 음악 방송 '중화정'을 통해 데뷔 무대를 가진다. 곧이어 한국에서도 5월 1일, SBS 인기가요를 통해 데뷔한다. [11] 데뷔무대에서 선보인 탄탄한 가창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했다.타이틀 곡 선정 미스 약 한달 반간의 짧은 활동 후 원래 타이틀 곡으로 사용하려던 '부메랑'으로 후속곡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때 스테파니의 독무가 화제가 되면서 이 같은 반응에 힘입고 스테파니는 각종 예능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하며 천상지희의 이름을 알린다. 뒤늦게 반응이 오기 시작한것이었다. 아직까지도 X맨에서 보여줬던 스테파니의 댄스 영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스테파니의 활약으로 인지도가 상승한 천상지희는 초반의 분위기보단 수월하게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큰 성과를 내진 못했고 절반의 성공 정도로 끝난다.

부메랑 (Boomerang)

사실 천상지희는 2000년대 초중반 SM 엔터테인먼트 측에서 계속 욕심을 부리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만들어진 그룹[12]이라 데뷔 초부터 중국 활동을 병행했다. 이미 다나는 2002년 중국에 진출해 중국어 실력도 어느정도 갖추어졌었고, 인지도 또한 조금이나마 있던 상황이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Too Good'이 아닌 '부메랑'을 밀었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팬들은 중국으로 활동 반경을 잡은것으로 예측하고 있었지만 2005년 10월, 천상지희는 뜬금없는 일본 진출을 선언하며 갑자기 일본으로 가버린다뭥미? 2006년 1월, '부메랑'을 일본어로 번안해[13] 데뷔 싱글을 발매한 천상지희는 일본 활동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데뷔 싱글은 오리콘 첫진입 110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한다. 그리고 무대위에서 선보인 개념 쌈싸먹은 코디로 컨셉은 더욱 안드로메다로(...)

Korea-Japan 2nd Single 'The Club'

What U Want(스테파니 솔로곡) + The Club (feat. 비)

2006년 3월,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두번째 싱글 'The Club'을 발표하며 컴백한다. 본래 이 곡은 한국 데뷔싱글에 수록되려던 곡이었으나 취소되고 두번째 싱글로 발매된다. 한국어 버전엔 비가 피쳐링을, 일본판에선 'SEAMO'가 피쳐링을 맡았다. 'The Club'은 '부메랑'을 잇는 파워풀한 댄스곡이었고 이 곡에서도 역시 스테파니의 화려한 독무 파트가 존재했다. 그리고 스테파니의 솔로곡도 수록되었다. 발매와 동시에 한국에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어 히트를 예감했으나 정말 어이없게도 일본 활동을 위해 활동을 2주만 계획하면서 수많은 팬들을 분노케 했다. 이때 'The Club'으로 활동안시킨게 최대의 실수. 그렇다고 일본에 돌아가서 이렇다할 성적을 낸것도 아니었다. 이 후 일본에서 'Sweet Flower', 'juicy LOVE', 등 총 2장의 싱글을 발매하지만 모두 100~200위권 대의 아주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다. 그래도 이 시기 일본에서 멤버 네명이 함께 지내면서 싸우기도 하고 서로 많은걸 알아가면서 팀워크가 더욱 단단해졌고 각종 이벤트 활동을 통해서 라이브 실력도 쌓았다. 약 9개월간의 일본 활동을 잠시 정리하고 가을 께 한국에서의 새로운 음반 활동을 위해 귀국한다.

3.2. 天上智喜에서 The Grace로

한국으로 오랜만에 돌아오면서 팀에 몇가지 변화가 생겼는데 팀명을 천상지희에서 '천상지희 The Grace'로 개명하면서 각 멤버들의 괴상망측했던 한자명+이름 형식도 멤버명+The Grace 형식으로 새롭게 바꿨다. ex) 린아 더 그레이스, 스테파니 더 그레이스(...)[14] 참고로 The Grace는 은총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본래 팀 색깔인 아카펠라 팝 그룹 이미지를 더 살리기 위해 붙여졌다고 한다. 그리고 영어권 국가에선 천상지희라는 이름을 발음하기가 어려운지라 일본어 발음의 앞글자를 딴 CSJH 혹은 병음 앞글자를 딴 TSZX같은 준말 표기 대신 The Grace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다고.[15]

7개월만에 한국으로 복귀한 천상지희는, 3번째 싱글 '열정 (My Everything)'으로 가요계에 컴백한다. 그룹 이미지 변화에 맡게 기존의 댄스곡들과 달리 타이틀 곡도 팝 발라드였다.

열정 (My Everything)[16]

타이틀 곡 '열정'은 일본에서 쌓아온 라이브 실력과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주기에 적절했던 발라드곡으로 활동 기간동안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비록 성적은 이전 싱글들과 다를게 없었지만 평단의 호응도 괜찮았다. 수록곡중엔 윤상과 작업한 'The Final Sentense'와 'IRIS (할 말이 있어요)'등이 팬들 사이에서 사랑 받았다. 2007년 초에 세번째 싱글 활동을 마감한 천상지희는 드디어첫 정규 앨범 작업을 시작한다.

3.3. 정규 1집 한번 더, OK? (One More Time, OK?)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온 천상지희는 데뷔 2년만에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다.[17] 첫 앨범이니 만큼 그동안의 싱글 타이틀 곡들도 보너스트랙으로 함께 수록됐는데 데뷔곡 선정 미스를 인정이라도 하듯 'Too Good'은 미수록무시되고 '부메랑'만 수록되었다. 타이틀 곡은 Kenzie가 작곡한 '한번 더, OK?'[18]로 SM 걸그룹으로서는 처음으로 강도 높은 섹시 컨셉을 시도한 곡이었다. 그리고 19금딱지가 붙었다. 다소 난해하지만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곡이다. 참고로 이때 공식적이진 않지만 또 한번의 개명이 있었는데 각 멤버 이름 뒤에 붙어있던 '더 그레이스'가 암묵적으로 삭제되고 그냥 '다나', '스테파니', '린아', '선데이'로 불려지게 된다.

데뷔 2년만에 첫 1위를 수상했을 당시 모습

엠카운트다운 한번 더, OK? 무대활동

엠카운트다운 1위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

'한번 더, OK?'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2년간 한일 양국에서 쌓아온 라이브 실력과 뛰어난 곡 퀄리티, 퍼포먼스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이는 곧 대중들의 호응으로 이어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결국 6월 7일 Mnet M! Countdown 에서 데뷔 2년만에 처음으로 1위 수상의 영광을 안았고 곧 이어 SBS 인기가요에서도 뮤티즌송을 수상하며 정상에 올랐다. 당시 순위제를 운영하지 않았던 음악중심에서는 걸그룹으로는 몇년만에 엔딩 무대를 장식했고 뮤직뱅크에서도 남자 가수들이 뽑은 최고 인기 여성가수상을 수상했다. 그 당시 이렇다할 걸그룹이 없었던 상황에 천상지희는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으로서 활약했고, 멤버 개개인의 인지도도 급상승하여 선데이는 일명 초대 꿀벅지로 유명세를 탔고 린아 역시 보이쉬한 스타일로 여성팬이 크게 증가했다. 스테파니는 이전에도 가장 주목을 많이 받았었는데 '한번 더, OK?'때는 제대로 포텐이 터져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봉춤등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다나 역시 이 시기 다이어트에 성공해 비쥬얼의 정점을 찍었다.배바지는 욕먹었지만 음반 판매량 역시 이전의 싱글 판매량에서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이 시기 공식 팬카페 회원수도 10만명에 육박하며 데뷔 2년만에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활동 중반에는 다나가 드림콘서트 무대에서 발목을 삐끗해 잠시 3인 체제로 활동했다. 다나가 없는 3인 체제로 오른 인기가요 무대에서 뮤티즌송을 수상했었는데 이때 스테파니가 '다나 언니 빨리나아!'라고 외쳤다. 이 후 다나가 복귀했을때 스테파니 덕에 빨리 나을수 있었다고 얘기하며 훈훈함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이렇게 잘나가던 상황에 '한번 더, OK?'와 수록곡 'Tonight in On Me'의 가사 일부가 문제가 되어 19금 미만 청취 금지 처분을 받고 결국 1집 음반은 19세 이상만 살 수 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음반 판매에 적지않은 타격을 입었다. 타이틀 곡 활동을 급 정리하고 후속곡으로 '女友(그녀들의 수다)'가 결정되어 활동했지만 겨우 2주간의 짧은 활동으로 끝나 아쉬움을 자아냈다. 그래도 당시 팬들은 천상지희가 인기 가수로 성장했다는거 만으로도 큰 감동을 했던 상황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이 노래가 국내에서 활동한 마지막 노래가 될 줄 당시엔 아무도 몰랐겠지 활동 후반부가 흐지부지 되어 아쉽게 마무리 된 상태에서 천상지희는 다시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팬덤은 멘붕. SM은 천상지희한테 억하심정이 있는게 분명하다

3.4. 비운의 후속곡 'Dancer In The Rain'

일본으로 넘어간 사이 팬들 사이에서 강력한 후속곡으로 지지받았던 'Dancer in The Rain'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19] 8월 경 뜬금없이 Mnet M! Countdown에 출연해 이 곡을 부르고 돌아갔는데...여기에서 레전드를 탄생시켰다.

아직까지도 걸그룹 레전드 라이브로 통하는 전설의 Dancer in the Rain 무대

그냥 불러도 힘든 이 노래를 안무와 동시에 라이브로 소화해냈다. 무대가 끝나자마자 반응은 역시나 폭발적이었고 팬들은 두번째 후속곡으로 활동해달라고 외쳐댔으나 그런거 없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그놈의 일본 활동 [20]

하지만 이번엔 그 전과는 상황이 좀 달라졌다. 일본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오오

3.5. 일본 싱글 5집 'Piranha'

일본에서도 약 1년만에 발표된 싱글 'Piranha'가 오리콘 주간 차트 50위를 기록하며 바로 직전 싱글 이었던 'juicy LOVE'의 최고 순위였던 162위에서 무려 100단계 이상이나 상승한것이었다. 이 노래는 국내 음원 사이트 J-POP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는데 국내에서 발표했어도 인기를 끌었을거라는 의견이 많다.

Piranha (a-nation 07)

일본에서도 레전드 무대를 만드는데, 이 무대 역시 Dancer in the Rain 무대와 같이 아직까지도 자주 회자되는 라이브 무대이다. 당시 현장 준비된 CD 물량이 모두 매진되는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스테파니는 당시 일본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코다 쿠미와 닮았다며 비교 되기도 했다. 11월에는 일본에서도 첫 정규 앨범 'Graceful 4'를 발매한다. 타이틀 곡은 한국 1집과 동일하게 '한번 더, OK?'가 일본어로 번안되었다. [21]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천상지희는 2007년 연말 시상식을 참석하기 위해 한국으로 잠시 돌아온다. 1집 활동의 히트를 인정받아 Mnet MKMF에서 댄스음악상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연예예술상에서 여자그룹 가수상을 수상했다. 2007년은 팬들에게도 천상지희 멤버들에게도 뜻깊은 해였는데, 한국에서는 2년만에 (다나와 린아는 데뷔 6~7년만에) 정상에 올랐고 일본에서도 드디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하이라이트 시기이기도 했다.

3.6. 일본에서의 활동과 스테파니 활동 중단

'I'll Kiss You' (天上智喜 Graceful Party Vol.1 중에서)

해를 넘어와 2008년, 천상지희는 3월 20일과 23일 2회에 걸쳐 일본에서 첫 콘서트 《天上智喜 Graceful Party Vol.1》를 개최하는데 전석 매진을 기록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5월에는 추가 공연까지 결정하며 이 공연 역시 매진사례를 이루었다. 한일 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었던 콘서트였기 때문에 더욱 값진 공연이었다. 마지막 곡 'I'll Kiss You'를 부를때 그동안 해온 고생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는지 멤버들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Stand Up People

7월에는 6번째 싱글 'Stand Up People'이 발매되는데 발매 첫주 25위를 차지해 전작 'Piranha'의 피크 순위를 2배 이상 뛰어넘은 성적을 내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도 점차 반응이 오기 시작한것이다. 10월에는 영화 '홈리스 중학생'의 주제가인 일본의 힙합 유닛 'CLIFF EDGE'과의 협작 'Here'을 발매하면서[22]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 12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피크는 11위였으며, 위클리 차트에서는 18위. 그리고 데뷔후 처음으로 먼슬리 차트에도 등장하며 일본에서의 나름대로 첫 히트곡이 되었다. 이때 프로모션을 위해 메이저 급 음악 방송인 Hey! Hey! Hey!'나 음악 방송에도 이전과는 달리 상당히 많이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이는데 성공했고 당시 일부 매체에서는 '현재 침체된 여성그룹 시장에 주목할만한 한국에서 온 실력파 걸그룹이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Here (feat. CLIFF EDGE)'

'Here'의 소소한 인기를 힘입어 2009년에 일본에서의 정규 2집 'Dear...'를 발매하지만 후에 서술할 스테파니의 부상등의 악재가 겹쳐 프로모션에 차질을 빚었고 기대보다 반응을 얻진 못했다. 그러나 일본의 한 유명 평론가가 이 앨범을 호평해 하루 판매량이 급상승 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걸그룹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의 첫 전국 투어가 결정되었다. 당연히 멤버들과 일본 스탭 모두 감격스러운 마음에 이 공연을 위해 많은 것을 계획했고 노력을 쏟아부었다. 특히 멤버 전원이 안무는 물론, 무대 연출까지 직접 참여하며 심혈을 기울였고 특히 스테파니는 솔로 무대를 위해 하루 11시간 씩 킬힐을 신고 연습하는 강행군을 했다. 그러던 중 스테파니의 허리에 이상이 생겨 어느날 아침 갑자기 일어나는 것 조차도 안되는 상황이 발생한것이다. 결국 스테파니는 활동을 중단하고 치료를 위해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천상지희는 일본 프로야구 개막식 참가 행사때부터 스테파니를 제외한 3인 체제상지희로 활동해야 했고 전국 투어 역시 3인 체제로 개최했다. 투어는 오사카를 시작으로 나고야, 도쿄, 후쿠오카 총 4개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본 투어에서 신곡 '凍える太陽 (얼어붙은 태양)'[23]을 공개하기도 했다. 노래는 여기서 들어볼 수 있다.(투어 직캠 음성이라 음질은 기대하지 않는게...)

투어가 종료된 후 라디오 '천상지희의 치키(天上智喜☆チキ!)'를 진행하며 활동을 이어가는듯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일본에서 활동을 완전히 중단했고 '凍える太陽 (얼어붙은 태양)'의 발매도 무기한 연기되어 이후 활동이 불투명 해졌다.

少しでいいから, 천상지희 4인으로써의 현재까지는마지막 P/V

돌연 활동 중단 이유에 대해선 크게 두가지 설로 갈리는데, 첫번째는 2009년 한국에서 'Here'을 한국어로 번안하여 컴백할 예정이었지만 'Here'은 천상지희의 단독 명의가 아닌 '천상지희/CLIFF EDGE' 였기 때문에 CLIFF EDGE 측과의 저작권 문제로 컴백이 무산되었고 여기에 스테파니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완전체 활동이 계속 연기 되다가 자연스럽게 팀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 그리고 동방신기-JYJ 사태로 인해 일본 기획사였던 에이벡스와 SM 엔터테인먼트간의 갈등으로 일본 활동이 불투명 해지면서 활동이 중단됐다는 설로 나뉜다. 한국 컴백 무산에 관한 이야기는 해당 싱글과, 곡이 수록된 일본 정규 2집 'Dear...'이 국내에서 라이센스 발매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신빙성 있는 추측이다. 하지만 엄연히 두 얘기 모두 설에 불과하며 소속사측에서는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팬들은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는 수 밖에는... 그리고 무려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른 이유로는 소녀시대의 활동을 들수가 있을 것이다.천상지희가 스테파니의 활동 중단으로 인해 한국활동과 앨범이 무기한 연기됨에 되었고 그사이 소녀시대의 정규 2집이 2010년에 발매함에 따라 실질적으로 선배가수인 천상지희 복귀가 더욱 어렵게 되어버렸다. 여기에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SM엔터테인먼트의 전례를 보면 무단으로 팀을 이탈하는 멤버가 아니고서야 활동 기간 내 멤버 교체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스테파니의 부상으로 하차시키고 활동하는것이 어렵다는 것. 팀 유지가 어려운 상태에서 후배 그룹이 자리를 견고히 잡고 있으니 천상지희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3.7. 다나 & 선데이, 현재 상황

이 후 천상지희는 해체설, 불화설을 반복하다 데뷔 이전부터 함께 해온 공식 팬카페 드리밍이 어느 날 매각되었고[24] 멤버들이 SM 엔터와의 계약이 종료됐다는 루머, 스테파니 왕따 루머 등 근거없는 소문이 커지면서[25] 소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고 국내 팬덤은 공중분해 되었다. 팬카페 양도사건은 SM 이수만 회장 역시 크게 충격받은 일로 전해진다.

그러던 2010년 SM TOWN 콘서트에 린아, 다나, 선데이 3인 체제로 뜬금없이 등장하면서 팬들은 컴백에 대한 희망을 가질수 있었지만 스테파니 복귀에 대해서는 대부분 반쯤 포기 상태였다. 스테파니가 미국에서 치료를 받고난 후 한예종에 입학했고 본교에서는 학생들의 연예 활동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가 갈수록 불투명해지던 천상지희 활동 계획은 2011년이 되서야 비로소 구체화되면서 이들의 복귀 소식이 들려오자 컴백을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온 팬들은 크게 열광했다. 하지만 린아와 스테파니가 없는 다나와 선데이 2인 체제 컴백으로 결정되어 완전체 컴백을 기다리던 팬들은 아쉬워했다. 자세한것은 천상지희 다나&선데이참고. 사실상 2012년 정도까지는 SM 내에서도 다나&선데이를 통해 천상지희라는 그룹을 계속 유지시켜왔지만 이제는 해체한 그룹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SM 소속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프로젝트나 매체에서도 천상지희의 이름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다나&선데이 활동도 이제 더 이상 나올거 같지 않고 멤버들 모두 각자 개인활동을 하고 있으며 린아는 배우 장승조와 결혼하면서 더더욱 어려워졌다. 거기다 2016년 5월 스테파니가 SM 엔터테인먼트와의 계약을 끝내고 제휴사였던 마피아 레코드로 완전 이적한데 이어 천상지희 공식 사이트는 폐쇄되었고 SM 메인 사이트에서 천상지희 프로필에 스테파니가 빠지면서 완전체 컴백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시간이 더 흘러 슈가맨같은 프로그램에 일회성으로 뭉치지 않는 이상 이들이 모인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4. 국내 활동에 대한 분석 및 성과

가창력과 댄스실력, 라이브를 포함한 피지컬 등 실력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역대급으로 평가받은 걸그룹 중 하나

천상지희는 걸그룹계에서 가창력으로는 브라운 아이드 걸스스피카등과 함께 최고로 뽑힌다. 오히려 R&B 그룹으로 시작했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 무대 퍼포먼스가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스피카와 달리 천상지희는 댄스, 보컬, 퍼포먼스 모두 소화가 가능했다. 춤추면서 라이브를 완벽하게 소화하는게 천상지희의 가장 큰 장점. 물론 단점도 있다. 네명 다 모두 실력과 더불어 개성도 강했기 때문에 그룹으로서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창력의 문제를 굳이 뽑자면 일단 개개인의 가창력이 너무나 뛰어났다는 것(...) 흉성 벨팅을 활용한 선 굵은 가창력을 가지고 있던 그룹이지만 소몰이창법에 가까울 정도로 과도하게 굵은 목소리로 부르는 부분은 2005년 당시에도 '부담스럽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창법은 대형 뮤지컬을 연상시킬 정도로 처음부터 끝까지 극적인데 정작 노래는 무난한 팝 댄스곡이나 발라드인지라... 차라리 소울을 시도했다면 좋았을 거라는 평. 한편 무작정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 만 모아놓아서 비슷비슷한 음색의 보컬들이 충돌하며 오히려 서로의 개성을 깎아먹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26] 노래의 기-승-전-결이 없이 전-전-전-전인 느낌.

어쨌든 노래를 너무 잘해 지적을 받을 정도의 보컬 능력치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걸그룹이 가뭄이었던 2000년대 중반에 등장해 시기적인 운도 따라주지 못했고, 활동 기간도 턱없이 적어 그마저도 회사에선 삽질만 했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대박을 이뤄내지 못한건 당연한일이었다. 대부분의 음악 팬들에게 천상지희는 실력 있었지만 잘 안된 안타까운 그룹이라고 회자된다.

사실 천상지희는 S.E.S.소녀시대 사이에 애매하게 등장한 그룹이었던 터라, 1집으로 국내에서 인기를 얻었을 당시에 SM내에서 수년간의 정성을 들여 제작한 소녀시대를 푸쉬하기 위해 일본으로 돌려보냈다는 말이 있다. 1집 앨범 발표 초창기 인터뷰에서는 분명 활동을 5개월 정도 할거라고 얘기했지만 실제 활동은 2달 남짓이었다. 후속곡으로 활동할 예정으로 알려졌지만 단 한번의 무대로 끝나버렸던 'Dancer in the Rain' 역시 멤버들이 굉장히 애착이 많았던 노래라 준비 기간도 길었고 안무도 자주 바뀌었다고 알려진다. 원래는 의자를 이용한 안무도 있었다고 한다. 2007년 6월 경 방송된 Mnet Making of Star Watch에서 멤버들이 'Dancer in the Rain'을 벤에서 립싱크하면서 노는 부분을 보면 다나 파트에선 9월 엠카 무대에서는 없던 굉장히 격렬한 안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이유에선지 이들은 한국에서 어렵게 얻은 인기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가야했다. 비슷한 시기 SM에서는 소녀시대를 론칭시켰다. [27] 사실, 천상지희의 일본 활동은 소녀시대 일본 진출 성공에 적게 나마 도움이 된건 사실이다. BoA의 일본 진출 성공에 S.E.S.의 일본 진출로 겪은 시행착오가 도움이 된 것 처럼 말이다. 천상지희의 국내팬들은 그들의 활동이 실험용으로만 이용됐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활동을 더 적극적으로 푸쉬하지 않은것도 어쩌면 활동을 시작한지 1~2년쯤 되었을때 부터 SM에서는 천상지희를 크게 키우기 보다는 천상지희를 통해 해외 시장에 대한 정보를 더 얻고자 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해온 기행들을 보면 납득이 간다.

천상지희는 애초에 아시아 전역에서 사랑받기 위해 만들어진 그룹으로 시작은 누구나 그랬듯이 뜻은 거창했다 과거 S.E.S.가 멤버 별로 담당한 국가가 있었듯이 천상지희 역시 그런식이었고 국내에서 성공하고 차례대로 일본과 중국에서도 사랑받은 다음 최종적으로 팝 시장에도 진출하는것이 목표였던걸로 보인다. 2007년 당시 인터뷰에서도 미국시장 성공 가능성 긍정적으로 본다며 미국 진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스테파니가 활동을 중단하고 일본 측 기획사와의 문제 등 갖가지 이유로 인해 활동재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때, 2년전 후발주자로 등장해 급속도로 성장한 같은 회사의 소녀시대가 해외 진출에 더 밝은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던건지 SM은 그대로 천상지희를 방치시킨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운도 안따라줬고 고생만 다 했다.

차라리 데뷔 시기가 2~3년 정도 빨랐거나 활동 후반부에 몇가지 문제만 없었더라면 더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았던 그룹이다.

한번 더, OK? mr 제거 영상

아카펠라 모음

현재까지 천상지희의 전체적인 피지컬과 실력을 넘어선 걸그룹은 아직까지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만큼 국내 음악 시장에서 천상지희처럼 실력을 바탕으로 파워풀함을 강조하는 그룹에 대한 수요가 거의 없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팬들이 이들을 놓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한국 가요계에서 드물었던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파 걸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잊혀졌을지언정, MR 제거 영상은 아직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5. 디스코그라피

천상지희 The Grace/음반 목록

6. 여담

  • SM엔터테인먼트의 남녀 아이돌 데뷔순은 실질적으로 동방신기이 걸그룹부터 정착된 시스템이다. 그전에도 H.O.T., S.E.S.등이 있었지만 정착 되었다고 보기에는 이들은 SM의 개국공신(...)으로서의 역할이 더 컸고 이어 등장한 가수들은 문어발식 기획으로 겉만 그럴싸하고 모두 처참히 실패했다. 천상지희도 비록 다른 SM 스타들에 비해 뜨지는 못했지만 현재 SM 남-녀아이돌의 구체적인 틀을 갖추게 한 그룹이다. 이후 슈퍼주니어가 등장했고 그들의 여자판 소녀시대가 등장했으며 이후 샤이니-f(x), EXO-레드벨벳 등이 차례로 데뷔했다.


  1. [1] 이미 폐쇄되었지만 아직도 그들을 잊지못한 샤플리였던 사람들이 남아있는 커뮤니티 사이트는 남아있다.
  2. [2] '천년에 한번씩 뜨는 별'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3. [3]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던게 당시 NRG팬클럽인 천재일우와 협의하에 분홍색계열을 같이 쓰기로 한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SM에서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자기 공식색을 발표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얽힌 뒷얘기가 많은데 천상지희의 경우 팬클럽이 당시 여러갈래로 쪼개진 상태였다. 임원진들과 공방을 다니는 팬 들은 야간비행이라는 공방팬카페가 따로 있었고, 가장 큰 팬카페이던 드리밍은 대부분이 집에서 팬질을 하는 팬들이였고, 실질적으로 공방이나 이벤트에 참여하는 갤러들은 천상지희 갤러리를 이용했으며, 다나의 천상지희 결성 전의 팬카페이던 다나팅은 천상지희 결성을 반대하며 독자노선을 타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큰 곳이 어디냐라고 물었을 때 드리밍이라는 대답이 나오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어디가 팬카페냐고 묻는다면 대답을 하기 곤란한 상황이였다.요즘은 대부분 공식카페를 회사에서 관리하지만 드리밍은 숫자가 많았던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개인 팬카페였다 그렇게 사분오열 된 상황에서 SM이나 임원진들의 팬카페 관리는 없었기 때문에 샤플리들은 대체로 공식발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사를 통해 접하는 것이 대부분이였다. 파스텔로즈가 소녀시대에게 돌아가기 1년 전 파스텔로즈에서 펄핑크로 바뀔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팬 들은 기사를 통해 접했으며 당시에도 파스텔로즈를 뭔데 니네 마음대로 바꾸냐며 팬 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했으나 SM은 들은체도 안하다가 펄핑크는 더 그레이스로 해외활동용으로 쓰고 파스텔로즈는 국내활동용으로 쓴다라는 이야기로 어물쩡 넘어가는 수순이였다. 그리고 이 이후 SM의 삽질로 난데없이 풍선색이 바뀐 샤플리는 펄핑크때문에 오랜시간동안 NRG팬클럽인 천재일우와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었고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국내활동때는 파스텔로즈를 쓴다라는 전제하에 한번 더 OK 활동이 되어서야 겨우 천재일우와 마찰이 줄어 든 분위기였지만당시 NRG활동이 없어서 조용해진 탓도 있었다. 1집 활동이 끝나고 3년간의 해외활동이 발표되자마자 기습적으로 SM에서 파스텔로즈를 소녀시대가 공식으로 쓴다고 발표해버렸다. 소녀시대의 경우 당시 빨간색을 쓴다고 하다가 MC몽과 카라가 쓰고 있던 펄피치를 쓴다고 하는 등 파스텔로즈 이전에도 SM의 이해 할 수 없는 행보때문에 논란이 심했는데 기습적으로 파스텔로즈를 쓴다고 공식발표해버렸기 때문에 여기저기 건드려보다가 안되니까 만만한 우리한테 난리라고 샤플리 들이 폭팔해버렸다. 그러나 파스텔로즈에서 펄핑크로 바뀔때도 마찬가지였으나 팬 들 끼리 단합이 안되고 여기저기 갈라진데다가 공식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이이제기를 할 만한 장소가 샤플리들에게는 없었고 결국 이번에도 천상지희가 해외활동을 하는 동안 임대해서 쓰는 것 이라며 어물쩡 넘어가는 바람에 화 난 샤플리들은 더러워서 SM 여돌팬질 못 해먹겠다며 집단탈퇴를 했었고,드리밍에서만 천단위로 집단탈퇴를 했다 결국 소원과 샤플리들은 척을 지며 신인상 투표때도 다른 걸그룹을 대놓고 몰아 줄 정도로 한 때 사이가 나빠졌었다.
  4. [4] 이쪽도 SM 암흑기에 등장했던 여성듀오다. Fly To The Sky 여성판을 자칭하며 등장했으나 역시나 실패
  5. [5] 원래 다나는 당시 3집 발매를 계획하고 있었다.
  6. [6] 이 곡은 다나 솔로곡으로 알려졌지만 잘 들어보면 네명의 목소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천상지희가 불렀다고 발표된건 아니지만 이미 기정사실화된 부분.
  7. [7] 이 곡은 원래 리메이크 판권이 SM에 있었으며, 데뷔 전 비공개 쇼케이스에서 이미 린아가 불렀었는데, 지금과는 가사가 약간 다르다.
  8. [8] 중국인 멤버를 추가해 천상지희화(天上智喜華)로 데뷔할 예정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름은 루머지만 중국인 멤버 영입이 될뻔한건 사실이다.
  9. [9] 심지어 선데이는 천상지희 데뷔 10일 전에 일본에서 두번째 싱글을 발매하기도 했다.
  10. [10] 이 때문에 발매일이 일주일 연기됐었다.
  11. [11] 첫 데뷔는 4월 29일이지만 공식 데뷔일은 국내 데뷔일인 5월 1일로 친다.
  12. [12] 크게는 아시아 전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글로벌 그룹이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13. [13] SM 측에서도 타이틀곡 선정 미스를 시인하는 듯하다.
  14. [14] 사실 이쪽도 괴기스럽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희열다나보단 낫다! 분명히! 스테파니는 천무가 더 나은거 같은데?
  15. [15] 동방신기의 TVXQ는? 통칭은 사라지지 않는다 근데 왠지 TVXQ!는 멋있다 느낌표의 중요성?
  16. [16] 뮤직비디오에는 슈퍼주니어의 기범과 연습생이었던 소녀시대 윤아가 출연한다. 기범의 아역은 당시 SM 연습생이었던 핫샷의 티모테오다.
  17. [17] 타 sm아이돌들에 비해 상당히 늦어진 부분이다.
  18. [18] 원제는 Nasty였다.
  19. [19] 스페셜 앨범으로 리패키지형태로 1집이 재발매 될 예정에 있었으나 일본활동때문에 흐지부지됐다. 여우 활동이 끝날때쯤 해서 뮤비를 찍고 잠깐 쉬고 다시 나올 예정이였는데 일본활동이랑 겹치는 바람에 앨범발매가 취소되었다.
  20. [20] 멤버들도 이 곡에 대한 미련이 많았는지 스테파니는 이 곡을 심폐소생송에 제보하기도 했다.
  21. [21] 일본판 제목은 One More Time, OK?이고 편곡과 애드립이 부분 수정되었다. 일본어로 번안된 곡들은 대부분 새롭게 편곡되었다.
  22. [22] Staff Diary에 의하면 4월말에 녹음도 끝내고 PV촬영까지 마치고 봄에 발표될 예정이었지만 CLIFF EDGE쪽의 기획사와의 조율이 늦어져 여러가지 플랜이 수정되면서 가을에 발표되었다.
  23. [23] 투어 종료 후 싱글로 나올 예정이었던 곡이다. 2016년 현재까지도 정식 음원은 미발표 상태. 이제 에이벡스와 천상지희와의 계약도 만료된것으로 보여 이 노래가 공개될 가능성은 없다.
  24. [24] 2009년 5월에 팔렸다. 양도되던 당시 최종 회원수는 59712명이였으며 당시 사이트 운영을 하던 운영자가 본인은 돈 받고 팔지 않았다고 했으나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기에 80만원에 팔아버렸다라는 설이 유력하다. 드리밍의 초기 운영자인 닉네임 R씨가 i-13으로 갈아타며 1차로 매각이 될 뻔 했으나 그 걸 이어받은게 양도사건 당시 운영자였던 닉네임 C씨였기에 논란이 커졌으며 당시 멤버들의 개인팬카페까지 한꺼번에 양도시켜 논란이 많았다.
  25. [25] 당시 드리밍의 뒤를 이어 만들어진 팬카페 가이아의 운영자 닉네임 K씨가 베스티즈에 근거없는 루머 글을 올린게 발단이 되어 사건이 커졌었다. 현재는 스테파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팬 생활을 하고 있는 중 이다.
  26. [26] 일 년 뒤에 데뷔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경우 정통파 파워보컬 제아를 중심으로 미성의 나르샤와 속삭이는 톤의 가인이 균형을 맞추며 서로의 음색에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성공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도 데뷔 당시에는 소몰이를 했지만.
  27. [27] 추측하건데 이건 동방신기와 관련이 깊다. 천상지희가 활동하던 2007년 당시에는 동방신기가 국내활동이 아닌 일본 활동에 올인하던 시점이다. 동방신기의 일본 현지화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자 천상지희가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일본활동만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동방신기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한 이유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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