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플레이션

1. 개요
2. 시작과 끝
2.1. 원인
2.2. 종결
3. 사례 목록
3.1. 현실
3.1.1. 아시아
3.1.2. 유럽
3.1.2.1.1. 이야기
3.1.2.2. 유고슬라비아
3.1.2.5. 터키
3.1.3. 북미
3.1.3.1. 미국
3.1.4. 남미
3.1.4.1. 페루
3.1.4.2. 칠레
3.1.4.3. 아르헨티나
3.1.4.4. 브라질
3.1.4.5. 니카라과
3.1.4.6.1. 원인
3.1.4.6.2. 고액권의 등장
3.1.4.6.3. 파급
3.1.4.6.4. 화폐개혁
3.1.5. 아프리카
3.1.5.1. 짐바브웨
4. 창작물
5. 같이보기

1. 개요

초인플레이션(超inflation) / Hyper-Inflation

인플레이션이 악화되어 더 이상 수습할 수 없는 상태일 때 사용하는 경제학 용어.

보통 초인플레이션은 '한 달 사이에 전 달 대비 물가가 50% 이상 상승'한 것을 말한다. 즉, 1년에 물가가 129.75배, 아니면 50일마다 물가가 2배로 뛸 때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한다. 느낌이 안 온다면, 이 자료에 따른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25년간 한국의 물가상승률을 다 합친 게 대략 100%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지난 25년 동안 물가 오를 게 50일만에 뛰는 셈.

쉽게 말해서 4천원에 먹는 자장면을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내년엔 40만원, 내후년엔 4천만원을 내고 먹어야 한다. 유머집 등에 소개되어 있는 '화장실에서 휴지가 없어 옆 칸에 있는 사람에게 돈을 줄 테니 휴지를 팔라고 하자 그 돈으로 닦으라고 했다'는 유머가 이 상황에서는 유머가 아니다.

2. 시작과 끝

2.1. 원인

초인플레이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화폐에 대한 신뢰도 하락이다. 더 쉽게 풀어 말하면 이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심이 되지 않을 때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역으로 말해서 초인플레이션은 신용화폐의 붕괴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그렇다면 화폐에 대한 신뢰는 언제 하락하는가? 첫째로 경제학적 지식이 전무한 정권이 생각 없이 돈만 찍으면 주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일례로 짐바브웨의 로버트 무가베의 경우 순수 인문학 전공이었다.

사회적 합의가 없는 통화량 증가가 어떻게 화폐에 대한 신뢰를 망가뜨리는지 한번 자세히 살펴보자. 예를 들어 바나나 100개가 있는 나라에 총 10원의 돈이 돌고 있다고 치자. 그러면 이 나라에서 1원은 바나나 10개의 가치가 있는 화폐가 된다. 그런데 독재자가 갑자기 90원을 찍어내서 가진다면? 1원의 가치는 바나나 10개에서 바나나 1개로 폭락한다. 독재자는 바나나 9개분의 시뇨리지를 이득으로 얻었지만, 국민들의 재산은 순식간에 10분의 1로 줄어줄었다. 이 사건 이후로 이 나라의 국민들은 독재자의 지배 하에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얼마든지 더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예감하게 되었다. 이제 이 나라의 국민들은 더 이상 이 돈을 오래 보관할 생각을 버리게 된다. 이제 그들은 바나나와 같은 실물재산, 또는 달러 같은 안정된 외국 돈을 대체통용화폐로 이용하게 되고, 따라서 이 나라 돈의 가치는 더욱 더 떨어진다. 돈의 가치가 계속 떨어지니까 정부는 원하는 만큼의 예산을 갖추지 못하고, 애초에 돈을 찍어서 예산을 마련하던 막장 노답 정부이므로 당연히 돈을 더 찍는 악수를 두게 된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욱 더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따라서 이 나라 돈은 전혀 저축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생길 때마다 다른 물건으로 순식간에 교환된다. 이제는 정부가 돈을 찍어내는 속도를 뛰어넘는 더 빠른 속도로 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초인플레이션의 완성이다.

둘째로 전쟁이나 국가 부도, 자연 재해, 내란, 사회적 공황, 갑자기 닥친 식민지 청산, 독립 같은 "국가비상사태"인 경우가 화폐의 발행 주체인 정부(그리고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상실되기 때문에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전쟁 때는 적국의 경제를 망가뜨리기 위해 상대국의 지폐를 위조해 대량 살포하는 경우도 있다. 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나치 독일은 서로 상대국에 위조지폐를 뿌리려고 시도했으며, 일본 제국도 중국 대륙에 거액의 위조지폐를 살포하였다. 그런데 당시 국민당 정부가 중일전쟁 전비 마련을 위해서 통화를 남발하여 스스로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버리면서 일본이 준비했던 위폐들은 효과를 발하지 못했다.(…) 당대의 중국에서는 10 ~ 15억 위안이 통용되고 있었고, 일본이 항공모함 하나 찍을 돈인 8천 9백만 엔을[1] 들여 40억 위폐 위안을 만들었는데, 국민당에서 당시 통화량의 100배를 넘는 1890억 위안을 찍어서 뿌렸다. 당시 일본의 계획 입안자는 중국은 실로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나라다(…) 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는 해방 직후 조선총독부에서 일본인들과 일본 기업 퇴각 자금 마련을 위해 통화를 남발하거나 한국전쟁 전후로 북한남한에 대량으로 위조지폐를 뿌려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밖에도 다수의 사례가 있다. 블로그

전세계 모든 국가가 위조지폐를 최대한의 중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이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이션을 겪는 주민들에게는 고통이지만, 초인플레이션은 경제학자들의 좋은 연구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2.2. 종결

초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정부의 지속적인 통화 발행은 통화발행 외에는 정부의 재원 조달 수단이 없기 때문에 시도된 것이다.

민간에서는 정부의 지속적인 통화발행과, 역시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

화폐수요(L)는 인플레이션 기대에 영향을 받아 감소하는데 이는 한층 더 높은 물가상승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경기침체와 (실질)세수감소를 막기 위해 통화량을 더 늘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지속된다.

이러한 초인플레이션은 사람들이 향후 오랜 기간 통화발행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정부 재정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 최최우선 과제이다. 통화정책만으로는 초인플레이션을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초인플레이션 현상은 '재정개혁'으로 종식되었다. 새고전학파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지만, 초인플레이션의 종식은 종종 재정적인 현상이기도 한 것이다.

정부가 신뢰성을 도저히 되찾을 수 없다면 믿을 수 있는 다른 나라의 돈을 공용 통화로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짐바브웨가 이런 방법으로 초인플레이션을 종식시켰으며, 역사적으로도 흥선대원군당백전이라는 실책을 청나라의 돈을 들여오는 것으로 땜질한 바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토마스 사전트는 저서 '초인플레이션의 종말'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독일, 폴란드 등 역대 초인플레이션과 그 종식 사례를 연구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특징이 나타났다.

  • 첫째, 초인플레이션 진행 도중 물가상승이 통화량 증가를 선행한다.
  • 둘째, 초인플레이션은 일정 시점에 갑자기 사라진다.
  • 셋째, 초인플레이션 종료 이후에도 일정 기간 통화량 공급은 증가한다.

3. 사례 목록

연도별로 보는 인플레이션 국가들 그래프가 춤을 춘다.. 핵 쓰는 1위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세계 각국 정부가 묻지마식으로 을 쏟아붓고 있는데, 닥터 둠으로 불리는 마크 파버미국마저도 짐바브웨 꼴이 날 것이라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3.1. 현실

3.1.1. 아시아

3.1.1.1. 한국

3.1.1.1.1. 조선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좌의정 김병학이 아뢰기를, "백성들의 생활은 어렵고 재정은 다 떨어졌는데 건축 공사를 크게 벌이고 있으므로 공사(公私) 간에 일을 더는 지탱해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신은 이에 밤낮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면서 어떻게 하면 잘 조절하여 메워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였지만 아직 그 방책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돈이라는 것은 경중을 잘 맞추어 준절하여 쓰는 물건입니다.

옛적에 당십전이나 당오전을 쪼개어 당이전이나 당삼전으로 만들어 쓴 법은 모두 일시적으로 임시변통한 정사였습니다 지금 나라의 재정이 몹시 고갈된 때에 응당 이익되는 것과 손해보는 것을 절충해서 쓰는 원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당백대전(當百大錢)을 주조하여, 널리 쓰이고있는 통보(通寶)와 함께 사용한다면 재정을 늘리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감히 신의 좁은 소견을 대번에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임 대신(時任大臣)과 원임 대신(原任大臣), 의정부 당상(議政府堂上官)에게 하문하시기를 바랍니다."하니, 하교하기를, "진달한 것이 아주 좋다. 속히 시행하도록 하라."하였다.

- 고종 3년(1866년) 10월 30일 2번째 기사

흥선대원군 집권 시절 경복궁 중건을 위해 찍어낸 당백전은 초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조선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상평통보 최고액권이 당이전이었으니 갑자기 50배의 주화를 시장에 쏟아내게되어 경제가 도저히 버틸수가 없었다.

결국은 이 실책은 청나라 돈을 들여오는 것으로 땜질되었다. 문제는 청나라 동전 자체도 관리들이 밀수한 동전이라서 당백전에 비하면 양화였지만 당시 화폐인 상평통보 기준 1/3의 가치의 악화였다는 것. 그래서 문제가 완전 수습이 안 됐다. 그러면서도 이게 당백전보다는 부작용이 적다는 이유로 흥선대원군 지배 시기 동안에는 폐지도 되지 않았다.

후일담으로 고종은 친정을 시작한 이후 청전을 폐지했는데, 덕분에 이번에는 디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정부 금고에는 청전만 가득한 상황이라서 갑자기 재정이 파산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지방 관청에서 세금은 상평통보로 걷고 중앙에는 청전만 올려보내는 교과서적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 이 재정파산 상태를 타개하는 것에만 2년이 걸렸다. 그 덕에 운요호 사건때 돈이 부족한 군대가 제대로 항전을 못 하는 일이 벌어졌다.

3.1.1.1.2. 광복 이후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에서도 1945년 일제의 항복선언 직후 한 가마니 가격이 1945년 11월~1946년 3월까지 무려 55배가 치솟았다고 한다. 4개월에 55배면 복리로 환산할 경우 1년에는 무려 166,375배가 된다. 이 사태의 원인으론 미국의 명령으로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계속해서 행정권을 행사하던 조선총독부가 자국민의 귀환 자금을 위해 조선 엔을 무차별 방출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여기에 당시 한반도를 통치하던 미군정청의 미숙한 통치 능력도 한몫 거들었다.

광복이후 남한은 한국전쟁 전까지 조선 엔 지폐를 약간 수정한 조선은행 원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전쟁 직후에 매우 빨리 서울이 점령당해 화폐를 제조하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 직원들이 전쟁이 터지자 인쇄기와 인쇄원판들을 그대로 놓고 달아나서 북한이 그것들을 전부 접수했다. 그리고 한국은행 지하금고에는 약 105억원의 미발행은행권도 접수하였다.[2] 그래서 서울에서는 북한위조지폐[3] 대량 살포로 밀가루 한 말 가격이 1950년 7월 ~ 1950년 10월 기간에 120배가 뛴 적도 있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북한이 낙동강 방어선 내부에 위조지폐와 미발행권을 뿌려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경제교란을 염려하여 새롭게 일본에서 제작한 한국은행권 원을 자연인 1명당 10만 원씩 등가교환하는 방식으로 유통했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에 따르면 도매물가지수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약 1만 배만큼 폭등했다.

3.1.1.2. 중국

3.1.1.2.1. 후한

동탁은 여러 실정을 했지만 특히 경제 정책에서 큰 실책을 저지르게 되는데, 바로 화폐개혁. 오수전을 녹여 조그만 동전으로 주조하지만, 불량률이 심했는데, 그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이고 모양도 형편없었고 심지어는 불순물까지 잔뜩 섞여서 이게 돈인지 뭔지조차 모르게 찍힌 개체도 있었다. 그 결과 저질의 화폐가 대량으로 유통되어 화폐가치가 떨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서 후한의 경제는 혼란에 빠졌고, 화폐 경제는 이후 한동안 회복되지 못했다. 오늘날의 각 나라들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항목이 화폐임을 감안할 때, 지나치게 서둘렀다는 점은 학계의 평이 일치하고 있다.

이 초인플레이션의 정도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삼국시대 사료인 장사목간, 주마루오간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오나라 목간이 있다. 이 목간에서 쌀 44곡 3두에 무려 8억전(錢)이라는 전근대에서 상상하기 힘든 숫자가 튀어나온 것. 이를 타개하고자 촉한과 동오에서 새롭게 고액권을 발행시켜 유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동탁 문서의 r487 판, 1.2.9번 문단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3.1.1.2.2. 원나라

원나라는 쿠빌라이 칸 이래 기존의 은화를 일종의 지급준비금으로 강제적으로 몰수하고 일종의 지폐인 중통원보초/중통초(中通元寶鈔/中通鈔)를 발행했다. 처음에는 중통초 10관에 은 1냥이라는 환율을 유지하였고, 위조지폐범은 사형에 처하면서 관리한결과 상공업의 발달과 함께 원나라는 발권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원나라 정부의 방만한 지출과 말기의 혼란상에 힘입어 원나라 조정은 말 그대로 교초를 찍어 시중에 뿌려버렸다. 조정에서 발행한 교초부터 엉망인 원말의 혼란상에서 행정력도 붕괴하면서 위조지폐가 나돌게 되자 화폐가치의 급격한 하락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를 타개하고자 원말의 명신인 토크토아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새롭게 교초를 발행하면서 기존 발행한 교초와 일정 비율로 교환하게 했는데, 교환 비율과 현실적인 가치와의 괴리로 인해 교초의 가치만 떨어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신교초의 액면가를 높여서 구교초와 교환하게 했지만 신교초로 교환할 수 있는 은화는 사실상 없었으며 결국 화폐가치의 폭락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민간은 물론 관에서도 교초를 믿지 않아 은으로 교환할때 초 고액의 수수료를 떼거나 심지어는 교환을 거부하면서 원나라의 교초는 구교초 신교초 할 것 없이 사이좋게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이 결과 고려는 가지고 있던 교초가 전부 종이조각이 되어서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고, 일본은 원과의 곡물 무역이 붕괴하면서 왜구의 급증으로까지 이어지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 화폐의 혼란상 덕분에 원나라의 멸망 이후 등장하는 명나라는 기존의 화폐제도를 폐기하고 은본위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이 와중에 탄생한 조선은 교초의 트라우마로 인해 상업을 천시하고 농업을 중시하는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나아가게 된다.

3.1.1.2.3. 중화민국

의외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중화민국의 초인플레이션도 꽤나 지독했다. 주요한 원인은 전쟁으로 인한 물자 유입 부족과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 때문. 흔히 국민당 정부의 화폐투기로 그렇게 되었다고 잘못 알려졌으나 1945년 이후로 화폐발행이 인플레이션보다 높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중일전쟁 기간 일본은 중화민국의 경제를 날려버리기 위해서 위조지폐를 제조했지만 이 잘못된 경제 정책 때문에 일본이 만든 위조지폐 양보다 수십배나 되는 통화가 유통되어서 쓸모없는 짓이 되어버렸다.

인플레이션 자체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부터 시작되었으나 1939년 6월까지는 완만하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1939년 6월 이후로 광저우 함락, 주요 철도노선 단절, 왕징웨이 괴뢰정권의 등장, 난닝-하노이 노선의 차단과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이전까지 연당 수십% 정도의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순식간에 몇백% 단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1945년 간신히 전쟁은 승리했으나 이미 지독하게 황폐화된 상황에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이전의 문제점들이 한순간에 해결될 리도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동부 연안의 산업 시설들을 가동시켜야만 했으나 소유권을 둘러싸고 또 다시 갈등이 벌어졌다. 우선 화폐 문제가 있었는데 왕징웨이 괴뢰정권이 발행한 '저축은행권'과 국민당 정부가 발행한 '법폐'와의 적당한 교환비율 때문에 대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민당 정권은 '중국의 정통정부'라는 명목으로 법폐의 가치를 높게 책정했는데 문제는 1944년도에 이미 일본군이 국민당 정부의 법폐를 낮은 가치로 저축은행권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하여 기존의 400위안은 불과 1위안으로 추락되었고, 결과적으로 화폐가 동부로 유입되어 인플레이션을 불러왔다.

또한, 일본 자본이 소유하던 생산 설비의 전후처리 또한 문제가 많았는데 임시로 중앙정부가 관리하면서 원주인에게 환수하는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이러한 방칙을 두고 충칭-청두 지역의 자본가들이 '항일전쟁을 수행한 우리들이 그 보상으로 받아야 한다.'라고 주장하였고, 동부 연안가의 자본가들도 '경제를 운영하는것은 우리들이 더욱 능숙하다.'라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하며 충돌했다. 이에 궁여지책으로 정부는 기업을 국영화시켰으나, 이는 관료자본의 부패를 가져왔고 국민당 정권에 강한 반발을 가져와 국공내전의 패배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한편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명확한 생산물(농산물)'을 확보한 농민을 제외한 대부분의 계층의 수입원은 급락했다. 농민층도 20% 정도의 소득이 줄어들었고 일반 공무원은 무려 90% 정도의 수입이 인플레이션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여기에 국공내전의 재개로 다시 엄청난 지출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국민당 정부 화폐 가치는 급격히 떨어져 갔고 1946년 6월 한 달 만에[4] 350%가 넘는 인플레이션이 닥쳤으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1947년도에 들어오면서 국민당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졌고 1월달에 다시 300%, 2월달에 1,100%, 5월달에는 3,000%, 10월달에는 5,000%, 1948년 2월에는 무려 18,000%가 폭등했다. 결국 1949년 8월 상하이가 함락되기 직전에는 한 달 만에 600,000(60만)%가 넘게 오르며 1,368,049%의 물가지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이 감당이 되지 않다보니 상인들은 하루에 몇번씩 가격표를 바꿔야 했고 나중에는 아예 문을 닫아 버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가능한 한 늦게 팔아야 손해를 덜 보기 때문이었다.

국민당 정부도 이를 예측하고 1945년도 초에 화폐개혁을 위한 새로운 화폐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물가 폭등은 국민당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겨버렸다. 1947년 2월에 물가를 통제하고 임금을 동결하였으나 불과 석달을 가지 못해 모든 조치를 해제하였다.

국민당 정부는 최후의 수단으로 1948년 8월 19일, 재정경제긴급처분령을 발표, 8월 23일을 기하여 구권과 신권의 교환 비율을 300만분의 1로 정한 금 본위제 기반의 통화를 도입하려고 했으나 이미 상황은 정부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넘겨 버렸다. 결국 정부의 지시에 순응한 중산층만 파산시키는 대재앙을 남긴 채 공허히 끝나버렸다. 부자들은 정부를 불신해 화폐개혁에 협조하지 않았고 물건을 강제로 유통시키려고 하자 밀수, 나중에는 아예 물건을 상하이 등의 대도시로 옮기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타 도시의 지방관이 물건이 빠져나가는 걸 금지하기도 하였다. 결국 화폐개혁을 담당하던 장징궈는 10월 31일 화폐개혁이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11월 11일 금, 은, 외환의 소지를 허용하였고 이는 사실상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저지하는 걸 포기했다고 자백하는 꼴이었다. 이러한 화폐개혁은 국민당 정권에 대한 지지를 결정적으로 추락시켰고, 국공내전에서 민심이 공산당으로 돌아서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3.1.2. 유럽

3.1.2.1. 독일

독일의 어린이들이 가치가 무의미해진 돈다발을 쌓으며 놀고 있는 모습. 문자 그대로의 돈놀이라 칭할 수 있겠다. (1923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불과 약 3년(1919년~1921년)만에 물가가 무려 1조 배나 올랐다. 독일이 제1차 세계 대전에 패한 이후로 각종 생산 시설이 붕괴된데다, 전쟁 기간 동안 필요한 재원을 조달한다며 엄청난 양의 통화를 발행하는 바람에 발생한 일이었다. 독일의 전시 국채 상환 액수만으로도 연합국의 배상금을 초과했을 정도. 심지어 연합국에 배상금을 지불하기 위해 지폐를 찍어낸 것도 아니었다. 연합국이 요구한 배상금은 으로, 지폐는 해당이 안 됐고, 흔히 기록되어 있는 배상 금액은 그 상당 가치를 마르크로 환산한 것이다. 연합국이 미쳤다고 휴지조각보다도 못한 마르크화를 배상금으로 받을까... 게다가 패전 뒤에 공업력이 떨어져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지는 못하는데 반해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기도 하다.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 땔감을 사는 것보다 지폐를 땔감으로 쓰는 게 오히려 더 알뜰했고, 벽지를 사느니 그냥 지폐로 을 도배할 정도였다. 실제 지폐로 도배를 하는 사진도 있다.

당시 발행된 지폐.지폐 찍을 돈도 없어서 1,000 마르크 지폐 위에 10억 마르크라고 고쳐 쓴 거다. Milliard는 10억이다

그리고 대미를 장식할 이 동전. 이 동전은 무려 1조 마르크짜리 동전으로 인류 역사상 최고 액면의 동전이라고 한다… 이것이 10억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에 한정되는 것이고, 독일에서는 1조를 billion이라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 동전에 새겨진 사람은 슈타인 남작인데, 나폴레옹에게 프로이센이 패전하여 엄청난 배상금의 지불과 군대 축소를 겪게 된 후 카하르덴베르크 수상과 함께 프로이센을 재건하고 후일 빈 회의에서 폴란드-작센 영토와 베스트팔렌을 획득해 1815년 이후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대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다.

고종황제가 독일 은행에 맡겨둔 52만 마르크의 내탕금도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물론 내탕금의 주인인 고종 황제는 이미 죽었고 일제가 이미 고종 황제도 모르는 사이에 문서를 날조하여 그 내탕금을 탈취한 후였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다는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고종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마지막 임무가 바로 내탕금을 찾아오라는 것이었지만 끝내 그 내탕금은 찾지 못했다.

어쨌든 1920년대 독일에는 억만장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다. 개나소나 다 억만장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배고픈 억만장자들이었다.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은 몇 억, 몇 십억, 몇 백억씩이나 되는데 그 돈으로는 빵 하나, 우유 하나 사먹기도 버거울 정도였으니까. 이 인플레이션은 바이마르 공화국1923년 11월 렌텐마르크라는 새 화폐를 발행하고 옛 마르크와 1조 대 1의 비율로 화폐교환을 실시하면서 겨우 수습될 수 있었다.이를 위해 농지와 산업시설을 담보로 하는 렌텐은행이라는 새 은행을 설립하였다.

이 초인플레이션의 충격이 너무 커서 바이마르 공화국이 히틀러 때문에 무너질 때까지 이런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었다거나 1929년부터 시작한 경제 대공황 때 다시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심지어 88만원 세대 같은 유명 대중서에서도 그런 오류를 저지른 적이 있다. 물론 사실이 아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이마르 초기의 초인플레이션은 렌텐마르크를 발행하면서 수습을 했으며, 대공황 때는 본질적으론 '디플레이션'이므로 이런 폭발적인 물가 상승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때는 돈 가치는 떨어지고, 사람들은 물건을 안 사려고 해서 문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큰 인플레를 겪었고, 유대인 재산 몰수를 지켜 보았던 당시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 중엔 은행을 믿지 못해 재산을 현물로 바꾸어 개인 금고에 보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사람들이 늙어서 사망하고 나서 자식들이 유품 정리를 하기 귀찮아서 대행업체에 맡기고는 했는데, 집구석 정리하다가 금덩어리나 보석이라도 나오면 다 내꺼ㅋ가 성립이 돼서 외국인(주로 터키계) 노동자들이 이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루르 점령 참조.

3.1.2.1.1. 이야기

알베르트 슈페어의 자서전에 의하면 슈바르츠발트라는 지역[5]의 물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이곳의 물가는 정말 싸다! 하루 숙박에 40만 마르크, 저녁 한 끼에 180만 마르크, 우유 한 통에 25만 마르크." 추가적으로 나중에 물가가 최고조에 도달했을 때에는 레스토랑의 한끼 식사가 100~200억 마르크, 학교 구내식당에서도 저녁 한 끼가 10억 마르크, 극장표가 3~4억 마르크였다.

또 이런 이야기들도 있다.

어떤 형제가 있었는데, 형은 성실하게 일해서 번 돈을 꼬박꼬박 저축해 두었고, 동생은 집에서 술이나 마시며 빈둥빈둥 놀고 있었다. 그런데 1차대전이 끝나고 초인플레이션이 터졌고, 형이 번 돈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다행히 동생이 마시고 모아 둔 술병이 더 값어치가 나가게 되어 어떻게든 생계는 유지할 수 있었다.

독일 어느 도시에 한 과부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 스위스로 건너가 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독일은행에 60만 마르크[6]를 예금해 놓고 스위스로 떠났다. 4년만에 독일로 다시 돌아온 그녀의 집에는 은행으로부터 3통의 우편물이 와 있었다.

첫 번째 것은 평소에 잘 알던 은행원이 보낸 것이었는데, "부인이 당 은행에 맡기신 거액의 예금을 차라리 다른 곳에 투자하시길 권합니다. 마르크화의 가치가 떨어질 전망이니 다른 실질적인 것에 투자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언제 시간이 나시면 저와 상의하도록 하십시오."

두 번째 편지는 다른 은행원이 쓴 것이었는데, "귀하의 예금은 액수가 너무 적어서 은행 입장에서 더 이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죄송하지만 빠른 시일 내에 예금을 찾아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온 편지는 그녀가 스위스에서 돌아오기 몇 주 전에 보낸 것으로, "아무리 연락을 드려도 소식이 없어서 귀하의 구좌를 임의로 폐쇄했습니다. 현재 저희 은행에서 보유하고 있는 소액권이 없어서 백만 마르크짜리 지폐를 동봉합니다."

그래서 이 과부는 지폐를 찾으려고 봉투를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지폐는 보이지 않고 겉봉투에 우체국 소인이 찍힌 백만 마르크짜리 우표만 붙어 있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60만 마르크의 예금이 4년만에 우표 한 장 값에도 못 미치게 된 것이다.

출처

또 당시를 다룬 단편소설로 슈테판 츠바이크보이지 않는 소장품이란 작품이 있다. 렘브란트를 비롯한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어느 장님 수집가에 대한 소문을 들은 주인공이 그 작품들을 보고 싶어 늙은 수집가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그런데 자신을 열렬히 환영하는 수집가의 뒤에서, 그의 아내와 딸이 사색이 되어 "손님이 배가 고프실 게 틀림없으니까, 식사를 하고 먼저 작품을 보여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노인을 뜯어말리는 것이 아닌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주인공은 배가 고프다는 핑계를 대고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집가의 딸이 그를 찾아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은 세계대전 중에 전사하고 벌이가 시원치 않아 장님인 아버지 몰래 작품을 내다 팔고 비슷한 크기의 종이로 바꿔치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팔아 거액을 받긴 했으나 며칠 만에 그게 휴지조각 값이 되어버렸고 다시 다른 작품들을 내다 팔았으나 죄다 며칠 만에 휴지조각만도 못한 가격으로 추락하면서 엄청난 가치를 가진 작품들을 죄다 팔아버리고도 빵 하나도 사지 못할 돈을 받았다는 것이다.(…)

돈이라도 많이 받았으면 모르겠는데 거의 길거리에 내다 버리다시피 한 꼴이 되어버려서 아버지에게 말도 못하고 남은 식구들만 사색이 되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작품을 보러 와서 "이게 웬 백지들입니까?"라고 하면 아버지는 그야말로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돌아가셔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발 식사를 하고 작품을 보자고 사정을 한 것이다.

어쨌거나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이 백지들을 가리키며 기뻐서 설명을 하는 장님 수집가에게 열렬히 호응을 해주며 작품들을 칭찬하고 수십년간 만져온 무게와 작품의 무게가 다른 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 수집가에게 "이러 이러한 점이 이 작품의 특징이 아니냐?"라고 재빨리 거들며 위기를 넘긴다.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뒤로 이렇게 행복해하는 독일인을 본 적이 없다."는 주인공의 말을 끝으로 소설은 끝난다.

3.1.2.2. 유고슬라비아

유고 연방이 해체된 직후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적이 있다. 사실 물가상승의 단초는 훨씬 이전부터 나왔지만 특히 1980년대 후반에 민족주의 발흥으로 인해 각 공화국별로 정치혼란이 가중되면서 물가상승률이 1000%를 넘겼고 1990년에 화폐개혁을 단행하는 김에 긴축적인 경제정책을 폈지만 이러한 경제정책 자체는 기업들의 파산을 불러왔기 때문에 오히려 분열을 확정짓는 결과를 볼러일으켰고 결국 자유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각 공화국별로 민족주의 세력들이 줄줄히 집권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거기에다가 내전이 터졌으니 화폐가치가 쓰레기가 되는것은 당연했다. 결국 스펀지에도 나왔던 문제의 5천억 디나르[7]도 이 시기에 나온 지폐이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이 벌어지는 동안 연방 전체 및 구성국은 1993년 한 해 동안 물가가 1027배 이상 뛰었고 1994년 1월 한 달 동안 20 배가 넘는 물가 상승을 경험했다. 이 때 발행된 5000억 디나르는 KBS 스펀지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방송 당시 한국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1원. 스르프스카 공화국에서도 초고속으로 물가가 올라서 1994년 1월 한 달 동안 300만 배나 물가가 뛰었다. 결국 1994년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는 화폐개혁을 실시하는 김에 자국화폐를 독일 마르크화에 페그시키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화시켰다.

3.1.2.3. 구소련 , 발트3국

이미 고르바초프 말기부터 기업경영의 자율화로 인해 물자부족이 심해지면서[8] 통화량이 급속히 증가했는데 이로 인해 암시장에서의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고르바초프는 1991년에 50루블과 100루블권 지폐를 무효화하는 방식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이는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1991년 8월 쿠데타 진압 이후로 소련 체제 자체가 화해되다시피하면서 물가상승률은 더더욱 올라갔다. 거기에다가 1992년 가격자유화와 환율자유화로 물가가 1년만에 2000% 이상 오르며 15개국 모두 자국 화폐를 발행하기 시작했지만 대다수의 국가들은 예금이 휴지조각이 되었기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려야했다. 이후 초 인플레이션은 1990년대 중반에 대강 해결되었지만[9]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다시금 초인플레이션이 재개될듯 싶었지만 다행히도 1999년 이후로 러시아의 경제가 정상화되면서 연 50% 이상의 물가상승률은 기록하는 일이 없어졌다.

이러한 초인플레이션은 러시아만 겪은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머지 14개국들도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다. 참고로 초인플레이션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한 나라는 에스토니아 크론을 독일 마르크화에 화폐가치를 고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한 에스토니아고 가장 늦게 해결된 나라는 벨라루스다.

3.1.2.4. 헝가리

1946년 헝가리의 청소부가 지폐더미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 사진. 아무도 저 지폐더미를 주우려고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때 헝가리에서 발행된 1해 (100,000,000,000,000,000,000 = 1020) 펭괴 지폐. 이 화폐는 당시 미국 달러로 0.2달러에 지나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해 펭괴도 발행되었으나 민간에서 통용되지는 않았다. 당시 중앙은행에서 화폐 발행을 위한 종이를 너무 소비하는 통에 시중에서는 질 좋은 종이를 구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흔히 초인플레이션으로는 독일이나 짐바브웨의 사례가 유명하지만, 사실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은 헝가리다. 숨겨진 1인자 1923년부터 1924년까지 최대 월 98%의 인플레이션을 자랑했었지만 1944년부터 나라 전체가 독소전쟁으로 산업시설의 50%[10]가 완전히 파괴되고 석탄 생산량이 40% 감소하고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11] 다리가 모조리 파괴되는 등 나라 전체가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이에 1944년 말부터 전쟁이 끝나는 5개월동안 물가가 14.5배 올라 버렸고 당연히 화폐의 가치는 폭락해 버렸다. 여기에 헝가리에 주둔한 소련군이 멋대로 군표를 발행하며 혼란을 가중시켜 버렸다. 정부는 이를 막으려고 여러 조치를 취했지만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만 초래했고 그 결과 1945년부터 1946년까지 15시간당 물가가 2배씩 뛰는 초막장 인플레이션이 또 일어났다. 역사상 평균적으로 2번째로 물가가 빨리 오른 짐바브웨 인플레이션의 경우 1일에 2배씩 뛰었다는 것에 비교하면 별 차이 아닌 것 같겠지만 계산해보면 이는 1달에 1.3경 배(1.3×1017)%의 물가상승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결국 중앙정부와 은행은 재정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일반 화폐와 다른 어도펭괴(Adópengő)라는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국채, 우편 요금, 저축 증명서도 어도펭괴로 표기되었다. 일반 펭괴로는 도저히 화폐가치를 보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월 1일 어도펭괴는 펭괴와 1대1의 가치가 있었지만 7월 31일 화폐개혁 당시에는 4.6*10의 29승 펭괴가 1 어도펭괴의 가치가 있었다.

1944년 6월 30일에 1 미국 달러당 33.5 펭괴이던 환율이, 각 월의 말일 기준으로 1945년 8월에 1,320 펭괴, 1945년 10월에 8,200 펭괴, 1945년 11월에 108,000 펭괴, 1945년 12월에 128,000 펭괴가 되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1946년의 첫 7개월에 비하면 매우 안정적이었다. 1946년 1월에 795,000 펭괴, 1946년 3월에 175만 펭괴, 1946년 4월에 590억 펭괴, 1946년 5월에 4경 펭괴가 되더니 7월에는 46양 펭괴(4.6×1029)까지 올라갔다. 이 시점에서 헝가리 펭괴의 인플레이션율은 연간으로 환산하면 9.7X10120%에 달했다. 월간 인플레이션율은 4.19X1017%.[12] 그 유명한 짐바브웨 달러가'연율환산 인플레이션율이 8.2X1022%인 것과 비교하면 실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플레이션인 것이다.

이에 도무지 버틸 수가 없자 헝가리 정부는 대대적인 조세개혁을 단행함과 동시에 소련의 혼란 종식을 위한 원조도 한 몫하여 1946년 7월 31일부로 화폐 단위를 펭괴에서 포린트로 바꿈으로서 간신히 초인플레이션을 종식시킬 수 있었다. 포린트는 1325년부터 헝가리에서 쓰이던 화폐 단위로 피렌체의 금화 플로린을 모방한 옛 헝가리 금화였다.

교환 비율도 무지막지했는데 40양[13]펭괴당 1포린트였다. 그 덕분에 1946년 7월 한 달 동안 화폐 가치가 2억 7,000만 분의 1로 떨어졌고, 8월이 되자 시중에 있는 모든 펭괴 지폐를 다 합쳐도 당시 환율로 미국 돈 0.1센트밖에 안 되는 휴지조각 미만의 물건이 되어버렸다. #, 참고로 휴지 30롤이 인터넷 쇼핑에서 만원 정도 하고, 휴지 한 롤에는 40칸의 휴지가 있으니 현재 휴지조각의 가격은 0.083센트 정도 된다. 1946년의 0.1센트는 현재 달러 가치로 1.1달러 정도 되니, 당시 헝가리의 모든 지폐를 합치면 휴지조각 13칸 정도의 가치는 되는 셈이다(...)

3.1.2.5. 터키

터키도 2004년까지 초인플레이션까진 아니어도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의 결과로 2004년 12월 1,339,000리라=1$의 막장 환율에 이르자 결국 1,000,000 구 리라 = 1리라로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3.1.3. 북미

3.1.3.1. 미국

1779년 11월 미국에서도 당시 대륙회의가 발행한 화폐인 대륙화폐(Continental Currency)의 월간 인플레이션율이 47%에 달해 간신히 초인플레이션 기준(50%)은 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이 때문에 'Not worth a continental'이라는 영어 숙어가 생겨났다.

3.1.4. 남미

사실 남미의 왠만한 주요국들은 초인플레이션을 한번씩 겪어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 칠레 모두 현대사에서 초인플레이션을 겪어왔으며 콜롬비아도 연 20~30%대의 인플레 현상을 겪어왔다. 현재는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으로 겪고있는데 사실 물가상승 문제 자체는 1983년에 고정환율제를 포기한 이래로 매우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2000년대에도 별로 안정화되지 않았던것이 외환보유고가 충분치 않았던 상황에 유가폭락, 국제재제까지 겹치며 폭발한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3.1.4.1. 페루

오일쇼크와 외채위기가 주원인으로 1980년대 전반기에 연 300%대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이를 메꾸기 위해 1986년에 화폐개혁을 했고 일시적인 조치로 물가가 잡혔지만 이 과정에서 IMF와 척을 치면서 1988년을 기점으로 물가는 다시 폭등하기 시작했고 결국 알베르토 후지모리에 의해서 화폐개혁을 단행한 뒤에 간신히 해결되었다.

3.1.4.2. 칠레

1973년 10월 칠레에서 한 달 동안 88%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한 적도 있다. 이 목록에 나온 나머지 사례에 비하면 믿기 힘들 수준의 안정적 물가지만. 원인은 미국의 경제봉쇄와 구리값 하락, 통화량 증가이다.

3.1.4.3. 아르헨티나

외채위기가 주 원인이다 198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는 외채이자율 상승으로 인해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었고 군부가 물러나고 민주화 된 1980년대 중후반에 라울 알폰신 정권이 화폐개혁을 단행했지만 군부독재기때의 유산인 외채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1988년부터 화폐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그 여파로 외국인들의 투자도 급감하면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다시 한번 파국을 맞게되는데 특히 1989년에 5000%라는 물가상승률을 기록해서 라울 알폰신은 국민들의 반발속에 퇴진해야했으며 이후 카를로스 메넴이 집권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떨어지다가[14] 1991년에 화폐개혁을 시행하는 김에 페소 태환화 정책이라는 극약처방을 시행하면서 초인플레이션은 해결되었지만 달러태환화가 수출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나중에 1998년~2002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의 단초가 되었다.(...) 경제위기가 해결 된 이후의 아르헨티나는 타 중남미 국가들보다 물가상승률이 높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3.1.4.4. 브라질

초 인플레이션이 10년 넘게 진행되었다. 시실 브라질 역사에서 인플레이션은 여러번 있어왔지만 특히 1980년대와 90년대 전반기의 인플레이션은 매우 길게 이어졌다. 중남미 외채위기의 영향인데 외환보유고 자체는 적지 않았고 수출량 자체도 많았기는 했지만 재무여건이 취약한 덕택에 물가상승률이 높아졌고 결국 여러차례 극약처방을 겸한 화폐개혁을 시행해왔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다가 1994년 카르도수의 헤알화 플랜이 효과를 발행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이렇개 되면 국민들이 어떻게 생활할까 싶지만 해법은 간단한데 월급날이나 월급날이나 월급 다음날에 은행에서 현찰을 뽑아서 급히 물건을 사는데 썼다고, 그래서 브라질인들이 돈을 화끈하게 썼다는 평이 많았던것도 사실 이 때문이었는데 브라질인들 입장에서는 매우 합리적으로 소비를 한것이지만 브라질의 물가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여유도 없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과소비하는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3.1.4.5. 니카라과

남아메리카에선 1990년~1992년 기간 동안 초인플레이션을 겪은 전력이 있다. 1980년대 니카라과 내전의 영향으로 화폐가치가 폭락한 여파이다. 예를 들어 1990년 니카라과 코르도바의 환율이 30,000,000C$=1$까지 치솟았다.

3.1.4.6. 베네수엘라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은 현재 진행형이다.

3.1.4.6.1. 원인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 외화 확충을 위해 외환 거래를 전면 금지하고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이라는 이중 환율 체계를 고집하여 화폐 시장을 교란시킨 게 화근이었다. 현재 볼리바르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추락하여 2017년 기준 비공식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단위 가치가 낮은 화폐가 되었다. 왜 비공식이란 말이 붙었느냐면 공식 환율은 여전히 1달러에 10 볼리바르 선이라고 구라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4일, 현재 시장에서 거래되는 환율은 1달러에 3,345 볼리바르이며 암시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가치가 떨어져서 108,279.53 볼리바르를 줘야지만 1달러를 구할 수 있다. 2017년 올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700%를 넘어설 것으로 관측되며 2018년에는 IMF 예측으로 2,30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기사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 정부는 공식 환율을 끝까지 1달러에 10 볼리바르라는 가짜 환율을 꾸준히 밀고 있다. 그 이유는 안 봐도 비디오인데 바로 정권 유지를 하기 위해서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물가를 잡는답시고 생필품, 의약품, 공공재 등을 모두 공식 환율로 팔 것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2017년 12월 4일 기준으로 시장 환율과 공식 환율의 갭이 무려 330배를 넘는데다 암시장 환율로는 1만배 넘게 차이난다는 것이다.

본래 베네수엘라 자체가 석유 팔아서 생필품을 수입하는 나라인데 생필품 수입상들이 미쳤다고 국영 상점에다 팔겠는가? 최소 300배, 최대 1만배 넘게 손해를 보면서 말이다. 당연히 이들이 국영 상점에다 팔리는 없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시장 환율 가격으로 쳐주는 일반 상점에 팔고 비양심적인 사람이라면 암시장에다 팔아버린다.

여기서 일반 상점이란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대형마트 같은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베네수엘라에서 일반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 중산층 이상들이다. 중산층 이하 계층들은 돈이 없어서 국영 상점밖에 못 간다. 그러니 국영 상점은 물품이 없어서 텅텅 비어 있고 살 사람은 줄을 서니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다. 사는 사람이 늘어나면 물가는 올라가기 마련이니까. 이러니 병원의 의약품조차도 없어서 환자들이 병원에서 제대로 치료도 못 받는 실정이고 항암제가 암시장에서 굴러다니는 등 말이 아니다.기사

3.1.4.6.2. 고액권의 등장

2016년까지만 해도 최고액 화폐는 100 볼리바르로 버티고 있었으나 이제 더는 상승하는 물가를 통제할 수 없게 되자 500 볼리바르 발행을 시작으로 1,000 볼리바르, 2,000 볼리바르, 5,000 볼리바르를 발행하더니 연말에는 급기야 1만 볼리바르, 2만 볼리바르를 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17년에는 더욱더 물가 상승폭이 커져서 결국 11월에 10만 볼리바르를 추가 발행했다.기사

10만 볼리바르라고 해 봤자 베네수엘라 정부에서 고지한 시장 환율로는 그래도 30달러 정도는 받을 수 있지만 현실에 가깝다고 하는 암시장 환율은 발행일 당시 1달러에 41,290.28 볼리바르로 거래되고 있어 실제로는 2달러 42센트 정도 가치에 불과한 실정이다. 당시 환율을 적용하면 한화로 2,660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2달러 이상 받던 것도 며칠밖에 안 되고 불과 34일 지난 12월 4일에는 암시장 환율이 2배 이상으로 더 뛰어버려 역대 최고치인 1달러에 108,279.53 볼리바르를 기록했다. 그러므로 실제 1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92센트 정도에 불과하고 한화로는 1,000원 조금 안 되는 정도이다. 물론 베네수엘라와 한국의 물가 차이를 고려해야겠지만 최고액권인 10만 볼리바르의 가치는 고작 캔 음료 1캔이라고 말할 수 있다.

2018년 벽두부터는 지폐로 공예품을 만들어서 그걸 외국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인터뷰에 의하면 원재료인 베네수엘라 볼리바르화 지폐는 암시장에서 1센트 동전 5~6개에 뭉텅이로 사올 수 있다고 하며 길거리 좌판에 뭉치 채로 놔 두어도 한번도 도난당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저 베네수엘라 돈으로 만든 핸드백을 자세히 보면 흰색은 시몬 로드리게스의 안경이 보이고 오렌지색은 시몬 볼리바르의 구레나룻이 보인다. 최상위에 해당되는 고액권인 10,000 볼리바르와 20,000 볼리바르가 이런 식으로 사용되는 처지에 몰렸다.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5만원권과 1만원권을 이용해 손가방을 만든 셈이다.

3.1.4.6.3. 파급

나라가 망해가자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주변국으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고 있으며, 유엔 산하 국제이주기구에 따르면 2018년까지 230만명이 베네수엘라를 탈출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7.2%에 달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부에서는 국경경찰대를 창설하여 국경 탈출을 막고 있으며, 합법적으로 출국하기 위해 여권을 신청하는 국민에게는 자국 가상화폐인 페트로를 강매하는 등 폭압을 일삼고 있다.

3.1.4.6.4. 화폐개혁

결국 2018년 8월 액면가를 10만분의 1로 줄이는 리디노미네이션을 감행하고, 자국의 석유에 연동된 가상화폐페트로를 개발하여 자국 통화를 여기에 페그시켰다. 일종의 석유본위제를 실시하는 것인데, 초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자국 통화에 대한 불신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때까지의 처방 중에서는 가장 핵심을 찌르는 처방이라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페트로로 석유를 구입하면 최대 30% 할인을 해 주겠다고 말하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과 9월 물가상승률이 223%와 233%를 각각 찍으면서 석유본위제도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페트로로 거래가 이루어 질 경우 암호화폐로 각종 경제재제를 피할 수 있기에 미국이 페트로마저 경제제재 대상으로 삼으면서 페트로의 신용도에 큰 타격을 주었다. 결론적으로는 1 페트로 = 1배럴이라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의 약속은 시행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다는 것이 시장의 의견인 것.

3.1.5. 아프리카

3.1.5.1. 짐바브웨

초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짐바브웨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사진. 이 지폐를 발행할 당시 100조 짐바브웨 달러는 한국 환율로 1만 5천원 내외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공식 환율을 적용하면 0.28센트 (2019년-01-10일 기준으로 "3.14원"). 그러니까 이거 하나 가진다고 부자가 되는 게 아니다. 달걀 하나도 못 사는 가격이었다.

짐바브웨는 인플레이션이 상상을 초월했던 걸로 유명했다. USD로 1,000억 달러라면 2009년 1월 환율로 100조원이 훨씬 넘어간다. 그러나 짐바브웨 달러로 1,000억 달러는 고작 달걀 세 개 값밖에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짐바브웨 달러 지폐를 보면 0이 무식하게 많이 붙어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이게 왜 무섭냐면 예를 들어 오늘 1,000억 짐바브웨 달러를 벌었다고 치자. 그럼 오늘 물가로는 이 1,000억 짐바브웨 달러에 달걀 3개를 살 수 있는데, 이 돈을 다음 달까지 가지고 있으면 1,000억 짐바브웨 달러로 달걀 3개는 커녕 1개도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짐바브웨의 인플레이션율은 2008년 1월~7월간 2억%였다. 즉 오늘 짐바브웨에서 1 짐바브웨 달러에 산 물건이 있고 그걸 1년 뒤에 되팔면 200만 짐바브웨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다. 만약에 이걸 한국식으로 계산해 보면, 500원 하던 두부 1모의 가격이 1년 뒤 10억원으로 폭등하는 셈이다. 짐바브웨 화폐 개혁 전인 2008년 7월 기준으로 환율은 1달러 = 69,484,070,056 짐바브웨 달러, 즉 700억 짐바브웨 달러를 벌어 와도 당신은 1달러 벌어온 거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1천억 짐바브웨 달러를 은행에 가서 바꿔달라고 내밀면 아마 1,500원을 내 줄 것이다. 물론 이것도 2009년 얘기고 지금은 그냥 종이쪼가리... 짐바브웨 달러의 최종 공식 환율은 1달러에 3경 5,000조 짐바브웨 달러였다! 고로 짐바브웨 달러 역사상 최고액 화폐였던 100조 짐바브웨 달러를 환전해 봤자 0.28센트이다. 고로 우리 돈으로 100원 가치에도 못 미친다는 뜻이다. 100조 달러가 그 정도인데 1,000억 짐바브웨 달러를 환전해 봤자 2.8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아예 환전이 불가능하다.

2009년 2월에 세계적인 경제잡지인 포브스(Forbes)에서는 짐바브웨의 2008년 초인플레이션을 6.5×10108% = 6,500만 구골%이라고 발표했다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다. 2008년 11월 중순에 최고점 찍었는데 그 때 월 상승률이 1억배에 좀 못 미치는 79억 6천만%. 10108 %로 오르려면 매달 10억(109)배 가까이 올라야 한다. 관련링크

이코노미스트에서 보인 짐바브웨베네수엘라인플레이션율. 짐바브웨가 2008년 4분기에만 7.3×10^22% 폭등했다고 나온다. 기사 그래프도 아예 천정부지로 치솟아 주어진 공간을 뚫고 나갈 정도인데, 왼쪽 위에 붙은 제목은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To infinity, and beyond)!"다(...). 대놓고 풍자하는 의미.

그래서 결국 통화 발행을 금지하고 달러를 통화로 사용하는 걸로 해결했다. 외국 통화의 유통은 인플레를 해결하는 검증된 방법 중 하나다.

3.2. 온라인 게임

온라인 게임 내에서도 운영자들이 경제 밸런스 잡는 데 실패하거나, 작업장에서 돈을 무한히 찍어낼 경우 생긴다.

  • 이미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수없이 시달려 온 메이플스토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타포스 강화아케인 심볼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해서 강화비로 억 단위 메소가 무진장 깨져나가도록 유도했다. 2020년 기준 비공식적인[15] 현실 화폐 교환비는 1억 메소:4,000원 수준. 그러나 막상 신규 유저들은 1억 모으기도 여간 어려운 수준이 아닌지라, 빈익빈 부익부와 현금만능주의 풍조로 인한 진입장벽이 새로 세워졌다. 사실 온라인 RPG 공통이긴 한데
  • 억단위 수표가 그냥 단위로 쓰이고 있는 대항해시대 온라인. 이 게임은 현재 한국 내 서비스 중인 온라인 MMORPG 중 가장 극렬하게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초보자에게 권하는 선박이 수십억 단위를 찍고 있고, 이로 인하여 10억 두캇은 중산층 취급 받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본 서버인 일본 서버를 가 보자. 이쪽 동네도 조금 낌새가 보이지만 어쨌든 거래 금액 단위 수부터가 한국보다 낮다.
  • 엘소드의 인플레이션도 이런 경우이다. 단, 이 사례는 작업장에서 변조핵을 사용해 게임 내 화폐를 말 그대로 찍어낸 경우이다. 아무리 게임 내라도 인플레이션이 그리 쉽게 일어나진 않는다. 게임으로 배우는 경제! 나를 빼놓으면 섭하지
  • 다만 게임머니가 지나치게 풀릴 경우 이를 회수하기 위한 해결책도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는 강화로 돈의 소모를 유도하거나, 게임 내 아이템을 사기 위한 유료 캐시와 게임상 돈을 변동환율로 교환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길드워 2 같은 경우가 후자인데 변동환율이므로 게임상 돈이 늘어날수록 유료 캐시를 사는 비용이 비싸져서 더 많이 회수되므로 균형이 맞춰진다. 유료 캐시인 젬이 초기에는 100젬당 0.5골드 정도의 환율이었다면 발매 5년 후에는 무려 31골드까지 올라갔다. 반면 로블록스란 웹 게임은 틱스(Tix, ticket의 줄임말)를 로벅스(Robux, 게임화폐이다. 유료.)로 바꿀 수 있었는데 틱스가 삭제된다는 무슨 미국달러에서 센트를 빼는 소리를 했다. 지금은 삭제되었지만 아무튼 삭제되기 전에는 기간이 남아 있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는 로벅스 1:틱스 30까지 올라갔었다. 현재도 로벅스의 결제 가격이 올라가는 추세다.
  • 웹 게임인 동물농장에서는 한 때 치트오매틱으로 돈을 최대 21억 4,748만 3,647포인트[16]로 미친 듯이 불리고 탐험 컨텐츠의 최종 보스를 주무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당연히 아이템 시세가 박살났고 그 후로도 여전히 박살난 상태라서 와글와글 장터에서 좀 귀해 보이는 물건이다 하면 몇 백만, 몇 억 포인트 단위로 입찰되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2016년 6월 30일을 기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 이상 볼 수 없다.
  • 군주 온라인에서도 주요 아이템의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였다. 심지어 관복(판서만 착용 가능) 같이 아무나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엄청 비싸졌다.
  • 이터널시티에서도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초인플레이션도 최악의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2004년에 1조 7천억 원 (물론 게임 머니) 해킹 사건이 터진 이후로 초인플레이션이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다. 2018년 12월 기준으로 1조 7천억 원은 현금으로 20만 원 수준이지만, 2004년 1조 7천억 원은 무려 현금 9억 원 수준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돈을 시세의 20%로 팔아 치웠으니 초인플레이션이 터질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도 운영진들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물가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 이 초인플레이션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터널시티를 이탈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7년 대격변 패치로 게임의 많은 부분을 손 봤음에도 손대지 못 한 것이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물가다. 또한 포상 시스템으로 화폐의 공급은 계속해서 늘어나는데 사용자들의 이탈로 인해 수요가 계속 감소하는 것도 원인 중 하나. 얼마나 심각하냐면 일단 HP나 AP를 회복시켜주는 포션 아이템인 음식들 가격부터가 헉 소리가 난다. 삼계탕이 몇 십만 원을 한다. (...) 무기를 구매하려면 5~6등급 이후부터는 억이 넘어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건 싼 거다. 상위급 컨텐츠인 불법 무기와 용병의 가격을 보는 순간 정말 컴퓨터 끄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왜 사람들이 이터널시티를 접었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물가가 답이 없는 수준이다. 심지어 2003년 종로에서 팬티만 입고 앵벌이를 하면 10억 원이 뚝딱하고 들어온다. 물론 이 돈으로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애초에 10억 원은 2018년 12월 기준 현금 100원이다.
  • RF온라인은 이전부터 작업장머니로 인해 물가가 서서히 오르고 있었지만 유저들의 노력으로 어느정도 억제는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운영자의 잘못된 패치로 초인플레이션이 터져버렸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문제가 된건 2018년 2월1일자 리파인 업데이트의 내용 중 하나인 정예병 양성소를 포함한 일일퀘스트로 퀘스트 완료시 보상에 게임머니가 포함된 것이 원인이었다. 정예병 일퀘가 아니더라도 나머지 두개의 일퀘는 하나는 그저 퀘템만 있으면 완료고 나머지 하나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하루에 적게는 수계정 많게는 수십계정씩 퀘를 해버려 대량의 겜머니가 풀려버린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은 일목요연했지만 운영자들은 사태를 방관했고 1년도 안되는 사이에 물가는 수배에서 십수배이상으로 껑충 뛰어버렸다. 게다가 개인머니소지한도가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지못해 겜머니로는 장비조차 구하기 어려운 사태에 이르렀지만 운영자측에선 어떤 해결방안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GTA 온라인은 PC판 출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핵이 판을 치는 바람에 개나소나 핵쟁이들한테 구걸하면 슈퍼카 한 대 정도는 가뿐히 뽑을 수 있게 되어서 핵쟁이들이 뿌려댄 돈에 대한 인과응보로 2016년 중반부터 나오는 신규 이동수단의 평균 가격이 올랐다. 이 덕분에 핵유저가 없는 신세대 콘솔판만 피를 봤다.(...) 다만, 이건 핵쟁이들의 돈뿌리기에 대한 인과응보인지 개발사인 락스타 게임즈 측에서 샤크카드 많이 팔아먹으려고 돈독이 올라서 이동수단 가격을 올려댄건지는 게임 개발자들만이 알 듯.

4. 창작물

  • 라이트노벨 무책임 남자 시리즈(무책임함장 테일러의 원작) 에서는 타일러가 라르곤 공화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우주태풍의 위기를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전우주 스케일의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픽션이니만큼 몇달도 안되는 사이에 10억분의 1 디노미네이션 끼워서 '자'를 넘어간다. 떡하니 자기 이름으로 화폐단위를 삼아 놓고서는 느긋하니 다음 수 단위가 어떻게 나가는지 읊는 장면이 압권.
  • 라이트노벨 만능감정사 Q의 사건수첩에서도 초반부에 세토우치 리쿠가 리사이클 숍의 경영 정상화를 위하여 위조지폐 트릭으로 초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데 성공하였다. 초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현금보다 현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유리하다. 즉, 세토우치는 중고품으로 빚을 청산하고 오히려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원래 8만 3천엔 하던 니시이케부쿠로 3번지의 원룸멘션 월세가 순식간에 40만엔으로 올랐고, 180엔 하던 JR 기본운임이 3,200엔(!)까지 치솟았으며[17], 곧 영원히 욕먹을 회사[18]와 도쿄가스는 아예 광열비를 달러로만 납부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 소설 내의 초인플레이션은 꽤 세세하게 묘사되는데, 위폐 보도 이틀 후 패스트푸드점은 치즈버거세트 35,200엔, 데리버거세트 55,000엔, 주간소년점프 최신호 6만엔, 도시락 6만엔, 오이 5개 6천엔/80센트, 장어 1조각 4,500엔/1달러, 무조림 100g 5,200엔/1.2달러, 톳나물 100g 6천엔/1.5달러, 청어조림 100그램 6,800엔/2달러, 카페의 스몰사이즈 블렌드커피 22,000엔/2.9달러, 택시 기본요금 42,000엔, 원래 40,900엔이던 하네다-나하 전일공 요금은 312,000엔(이건 리코가 사건 전모를 밝힐 생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드러난 것).,작중에서 이전 가격을 명확히 밝힌 장어 1조각(120엔)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33시간만에 37.5배 인상되었으니그나마도 햄버거는 더 올랐다 위에서 언급한 헝가리나 짐바브웨를 아득히 쌈싸먹는 캐막장 인플레다.물론 주인공 린다 리코의 활약에 의해 검거되고 물가는 정상화되기는 하지만. 애초에 작중에서 위조지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나마 빠르게 정상화 된 케이스다. 실제로 위조지폐가 돌아다녔다면 빠른 정상화는 어림도 없다. 화폐의 진위를 의심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만화판에서 공예관 토도 슈이치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와중에도 이익을 챙기려 발버둥치던 높으신 분들이 있었던 모양. 실제로 그새 자산을 불린 경우도 꽤 많았다. 만능위조사라든가.
  • 바보 이반에선 악마가 타라스를 망하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5. 같이보기


  1. [1] 쇼카쿠급 항공모함의 한 척당 건조 비용이 8천 500만 엔 정도였다.
  2. [2] 참고로 전쟁이전에도 북한당국은 아니지만 남로당 계열이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일으켜서 사회혼란을 일으키려 한적이 있다. 다만 이 사건은 진위에 논란이 있다.
  3. [3] 사실 위조지폐라고 하기도 뭐하다. 진짜 인쇄원판을 가지고 만든 지폐니 가짜라고 할 수도 없다. 원래의 지폐와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다.
  4. [4] 1945년 9월의 물가지수를 100%로 환산해서.
  5. [5] 마르틴 하이데거가 노년에 정착한 곳.
  6. [6] 당시 환율 달러당 4.2마르크, 원으로는 약 1억4천만원.
  7. [7] 방송에 의하면 우리 돈으로 1원 정도 된다고 했다.
  8. [8] 이유인 즉슨, 국영상점에 국정가격대로 물건을 납품하기보다는 암시장에 몇배 이상의 가격에 파는것이 훨씬 이득이었던데다가 정치적인 자유화 조치로 이러한 행위에 대한 재제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국정가격을 아무리 올린다해도 암시장에서 파는것보다는 훨씬 낮았으니 수익을 내기 위해서 더더욱 암시장에 매달렸고 물자난이 심해졌던 것.
  9. [9] 다만 벨라루스와 투르크메니스탄은 고질적인 물가상승 문제에 시달렸다.
  10. [10] 나머지 50%도 90% 정도 파괴된 상태였다.
  11. [11] 현재는 이 두 도시가 통합되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가 되었다.
  12. [12] 영문 위키백과에서의 값. 출처
  13. [13] 4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 4×1029, 1양은 1해의 1억 배=10×1028
  14. [14] 다만 이 과정에서 예금동결을 시행해서 예금이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15. [15] 운영정책 및 현행법상 게임 내에서의 메소-현금 거래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오직 메이플 포인트(구매 후 아이템 양도가 불가능한 제2의 캐시)로만 교환할 수 있는 메소마켓만이 허용된다. 그러나 고확 광고, 지인, 길드 단위로는 지하 단계에서 현실화폐-메소 교환이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
  16. [16] 32비트 정수(Integer) 최대값이다.
  17. [17] 그나마도 사철의 반값이다
  18. [18] 첫 출간은 2010년이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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