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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忠淸道 / Chungcheong Province

1. 개요
2. 특징
3. 역사

1. 개요

충청도 지도[1]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충청북도, 충청남도의 4개 광역자치단체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 면적은 16,641.54km² 이다. 인구는 2017년 현재 약 560만명. 호서(湖西)라고도 부른다. 호(湖)는 충북 제천시의림지, 전북 김제시벽골제, 호강(湖江)이라고 불리던 금강이란 설이 있다. 호(湖)가 벽골제 또는 금강이라면 그 북쪽에 있는 충청도 지역이 왜 호북이 아니라 호서가 되었는지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방위 인식에서 서쪽이 북쪽과, 동쪽이 남쪽과 혼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압록강 남쪽 6개 주는 '강남6주'가 아닌 '강동6주'라 불렸다. 다만 호서라는 명칭은 영남이나 호남, 영동 등 타 지역에 비하면 현대에는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대학교 명칭에는 하나 들어가 있다(호서대학교).

도명은 충주시청주시에서 따왔다. 참고로 두 고을은 현재 모두 충청북도 관할.[2][3] 예로부터 평야가 넓고 강이 흘러서 토지가 비옥해서 부자가 많았으며, 전국에서 양반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었다고 한다.[4] 광천에서는 돈자랑 하지 말라는 말도 있었고, 강경읍(현재의 논산시)의 번영은 유명했다. 평택시연산군 때 최초로 경기도에 편입되었으며, 원래는 충청우도(충청남도) 관할이었다.[5][6]

충청도는 지리적으로는 경상도, 전라도와 함께 남부지방에 속해있지만('삼남지방'이 바로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가리킨다), 언어문화적으로는 서울,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와 함께 중부권에 속해있다. 현재 수부도시인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의 경우 충청남도, 충청북도와 별개의 광역자치단체이긴 하지만 관습적 의미의 충청도로서는 포함된다.

수도권과 인접한 위치 덕분에, 수도권 규제와 지방지원정책으로 인해 수도권 기업들의 이전이 활발하다.

2. 특징

충남/충북은 다른 도들(경상도, 전라도 등)과 다르게 충청남도/충청북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서로가 비슷한 위도에 위치한다. 아무리 봐도 동서로 나눠놓은 것이지 남북으로 나눠놓은 게 아닌 것[7]. 충청서도/충청동도 실제로 현재 충청 남·북도의 경계는 조선시대 충청 우·좌도의 경계와 거의 일치한다.# 참고로 당시엔 임금이 있는 한양에서 보았을 때 기준으로 좌우를 나뉘었기에, 이북과 달리 한양 이남의 경우 동쪽이 좌, 서쪽이 우가 된다. 이후 1896년의 남ㆍ북도 구분은 남쪽의 강경(논산)과 북쪽의 충주에 따른 구분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지리서 택리지에서는 이 지역의 인심에 대해 다소 부정적으로 기술했는데 "오로지 세도와 재리(財利)에 따른다.(專趨勢利) 이 지방에 근거를 두고 중앙관계에 다시 진출하려는 대망(大望)을 항상 품고 살아온 사대부들은 그것이 좌절되면 그 대신 재력을 얻는 방향을 택한다. 그래서 험담가들이 호서인을 음흉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칭찬하거나 원만한 기록은 잊혀지고 자극적인 기록이 부각되는 것으로, 애초에 택리지에는 경상도평안도 빼고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인심을 기술하지 않았다.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며,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고, 함경도는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사납고 모질며, 강원도는 어리석고, 전라도는 오직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 데에 쉽게 움직이며, 경기도는 재물이 보잘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재만 좇는다"고 했다.[8]

조선시대에는 양반이 제일 많은 지역이었다. 구한말의 자료에 따르자면 양반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충청도 출신이었다. 특히 충남은 더더욱 그러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아도 양반의 수가 가장 많았다. 원래 충청도는 다른 삼남 지역보다 인구가 적었는데, 인구비율을 고려하지 않고 많았다면 인구비율을 고려한 양반 비율은 굉장히 높아진다. 무려 10가구 중 1가구(10.3%)가 양반이었다.[9]

참고로 수도권과 같이 대선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많이 했으며, 특히 정치나 선거 등과 관련해 충청도를 언급할 때 '수도권-호남-영남을 잇는 가운데'란 뜻으로 '중원(中原)'이란 표현을 많이 쓰는데, 중원은 충주시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

3. 역사

고려시대에는 지금의 경기도 남부와 강원도 일부까지 합쳐서 '양광도'(楊廣道)[10]라 불렸으며, 고려말기부터 조선 초기까지 지속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겪는 과정에서 양광도 북부 일대를 경기도에게 내주고 그 대신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지역을 이관받는 식으로 고려 중기와 관할 구역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고[11], 태종대 들어 충청도로 명칭을 바꾼다. 조선왕조 내내 수시로 도의 이름이 바뀌었다. 기사. 위키백과 정리. 가장 유명한 건은 명종문정왕후를 비방하는 양재역 벽서사건(을사사화의 후속 건)으로,[12] 이 때 충주는 현으로 강등되어 유신현이라 불리고 충청도는 잠시 홍주(현재의 홍성군)의 이름을 따서 18년간 "청홍도"가 되었다.

이 외에도 잦은 강등과 복권이 있어서 공주와 홍주까지 더해서 충공도충격과 공포[13], 청공도(1년, 공청도는 3회 28년), 공충도(4회 27년), 충홍도(3회, 5년 이하), 홍충도(1회, 1년), 공홍도(3회 30년)... 4주의 6가지 조합이 다 나왔으며, 선후까지 합하면 안 나온 조합은 12개 조합 중 청충도일부러 거꾸로 할리 없잖아와 홍공도 뿐이다. 대략 조선 역사에서 110년간은 충청도가 충청도가 아니었던 셈이며, 명종(청홍도), 광해군(공홍도), 인조(공청도), 순조(공충도, 공청도) 대에는 충청도를 쓰지 않은 기간이 더 길었다. 또 충청도가 온전히 그 이름을 보전했던 대는 인종, 선조(!), 경종, 헌종 정도다. 충청도가 유독 반역(가끔 강상이나 음풍)의 고장(...)이었다는 이야기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조정에 순순히 따르지 않고 저항하는 의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충청도내의 주요 도시였던 충주, 청주, 공주, 홍주가 전주나 경주, 평양과 같이 그 도시를 빼면 말이 안 될 정도로 도내에서 인구적/문화적 중심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네 도시 모두 6만 정도(영조 시기)의 거의 비슷한 인구를 유지하여 도내에 마땅한 중심 역할을 한 도시가 없는 것도 도 이름이 마구 바뀐 이유로 추측할 수 있다.


  1. [1] 2012년 출범한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이 표시되어있지 않다.
  2. [2] 충청남도가 이름을 바꾸고자 한다면 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3. [3] 조선 시대에는 홍주(홍성)과 청주를 따서 '홍청도'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4. [4] 여기에서 유래된 지역별명이 충청도 양반.
  5. [5] 효종 때 김육이 충청도에도 대동법이 적용된 것을 감사하며 세운 비석이 평택에 있는 이유가 이것이다.
  6. [6] 조선시대의 좌ㆍ우도 개념은 북쪽을 위쪽으로 하여 그려지는 지도상에서 보았을 때가 아니라, 임금이 계신 서울(한성부)에서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이 때문에 서울 이남인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동쪽이 좌도가 되고 서쪽이 우도가 된다.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는 반대가 되는 것. 대신 서울 이북인 황해도, 평안도는 일반적인 지도에서 볼 때와 마찬가지로 동쪽이 우도, 서쪽이 좌도가 된다. 참고로 함경도는 현재와 같이 좌우가 아닌 남북으로 나뉘어 있었다.
  7. [7] 굳이 따지자면 충북 북단인 단양-제천-충주충남 북단인 서산-당진-아산-천안보다는 북쪽에 위치한다.
  8. [8] 택리지의 이러한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호남 항목에도 인용되었다.
  9. [9] 2위는 충북으로 전체 가구 중에서 4.5%, 3위는 경북으로 3.8%, 4위는 서울로 2.2%의 비중을 차지하였다.
  10. [10] 양주광주에서 따온 것
  11. [11] 현재의 논산시와 서천군, 보령시의 남동단부 지역이 원래는 전라도 관할이었고 (금산군는 1963년에 충청남도로 편입되었으니 제외) 영동군과 옥천군은 고려시대 당시에는 경상도 관할이었다.
  12. [12] 물론 조작 사건이라는 견해가 많다.
  13. [13] 나름대로 충격과 공포라고 할 만 하다. 한번은 연산군김처선을 죽일 때 나왔고(중종반정으로 1년), 또 한번은 효종 말, 현종 초에 청주와 홍주가 3년 터울로 차례로 역모를 일으켜서 나왔으니까. 물론 2번 밖에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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